새 설교 (5)

마가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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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질문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 (마 22:41–46; 눅 20:41–44)

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36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할렐루야~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청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영어로 essence 라는 단어를 여러 번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많은 청년들이 에센스라는 단어는 화장품을 의미하는 것이라 많이들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에센스라는 단어의 뜻은 본질, 정수, 진수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가복음에서 말하는 아니 기독교의 에센스의 내용이 담긴 내용입니다.
청년들이 많이들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짧은 성경구절이 기독교의 본질이라고요? 라고 질문할 수 있겠지요.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해 보면 나오는 특징들이 있습니다.
마가는 왜 이 말씀을 기록했을까?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라는 특징입니다.
사실 묵상할 때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이 본문이 마가복음 아니 기독교의 본질의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려운 본문이지만 한절씩 그 의미와 내용을 함께 살펴보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행복한 교회 청년 여러분!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없는 기독교 상상이 되십니까?
전 상상 조차 안 됩니다.
그렇다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생각해보면 이런 것입니다.
행복한 교회에서 성도들이 모이는데 예배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이 교회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일까요?
설교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어떠실 것 같으세요?
어떤 분은 조금 설교가 쉽고 성경의 내용을 빼고 현대적으로 말해주길 원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 설교가 단순한 강의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설교는 인본주의적 사고의 절정이 되고 말 것입니다.
즉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기독교의 기본진리라는 책에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기독교의 주장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는 주제가 무엇입니까?
창조 타락 계시 구원 심판 등등 이런 것들이 성경의 주된 키워드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 다 가능한 것들인가요?
이것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창조가 가능할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계시가 가능한건가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구원이 가능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심판이 가능합니까?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바로 성경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마가복음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설교 시간에만 듣지 마시고 집에 가셔서도 처음부터 쭉 읽어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 되었을 때 어떤 일들이 생깁니까?
사단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복음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세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반대 할 뿐만 아니라 결국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 결과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행합니다.
그때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사도들을 붙잡고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예수의 이름을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독교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기독교의 본질인데 오늘 본문이 그 본질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그 핵심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2장은 온통 성전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질문 공세를 받으셨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누가 너에게 권위를 주었냐고 묻습니다.
그뿐입니까?
바리새인들은 세금에 대해서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과 부활 이후에 대해서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서기관들에게 질문을 던지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무엇을 질문하셨을까요?
내용은 2가지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냐 하느냐? 라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봅시다.
마가복음 10장 46-47절에 보면 여리고 성에 바디메오가 나옵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막 10: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막 10: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바디메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가 한 소리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소리였습니다.
즉 이 말은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인 바디메오는 그리스도로 오시는 분이 다윗의 자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즉 이 내용은 유대인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지요.
메시야로 오시는 분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이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다윗은 자신의 후손으로 온 자에게 왜 주님이라고 고백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지금의 식으로 바꾸어 보면 이렇게 이해가 됩니다.
기본적으로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에게 절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왜 자신의 아들에게 절을 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후손을 주님이라고 여기고 엎드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은 왜 그렇게 했는가? 라는 질문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질문을 하시면서 인용하고 계시는 성구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110편 1절의 말씀입니다.
오늘 마가복음 12장 36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막 12:36]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사랑하는 행복한 교회 청년 여러분!
방금 읽은 이 시편의 내용을 잘 알고 계시고 혹시 암송하고 있는 청년이 있습니까?
아마 한명도 이 시편을 암송하고 있는 청년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편 중에 어느 시편을 좋아하십니까?
많은 한국교회 성도들이 시편 23편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가 시편 23편입니다.
저 역시 시편 23편을 자주 외우고 자주 나의 마음속에 두고 암송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시편을 다들 좋아합니다.
그런데 시편 23편과 110편 모두 다윗이 쓴 시편입니다.
이처럼 인기가 있고 유명한 시편 23편은 신약성경에서 단 한 번도 인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시편 110편은 신약성경에서 7번이나 직접적으로 인용한 구절입니다.
우리에게는 전혀 인기가 없는 시편 110편을 신약저자들은 다 알고 있고 인용도 하는 유명한 말씀이라는 것이지요.
심지어 예수님도 인용하니 얼마나 유명한 구절이겠습니까?
그런데 시편 110편은 간접적으로 인용된 부분도 있어서 총 신약에서 15번 정도 인용이 됩니다.
시편 150편중에서 이렇게 많이 인용된 시가 없습니다.
그런데 시편 110편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희는 잘 모릅니다.
유명하지도 않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편 110편을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7절까지 내용에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7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 110:7]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성경은 연구하는 학자들은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신다 라고 기록한 이 부분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루살렘 성을 나오면 바로 있는 기드론 시냇가를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왕이 될 사람이 예루살렘 왕궁을 나오면 기드론 시내가 있는데 기드론 시내에서 물을 마시고 나팔소리와 함께 찬송하면서 대관식에 참여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합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초대교회에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보는 주 예수는 바로 이런 모습이다.
왕이나 제사장이면서 우리와 똑같이 인간적 약함 때문에 목이 말라서 시냇물을 마시려고 무릎을 꿇지만 목을 축인 다음에는 목을 들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시면서 왕으로 제사장으로 통치하시고 구원하시는 모습이다.
시편 110편에는 예수님의 두 가지 모습이 등장합니다.
2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시 110: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라는 말은 왕이 사용하는 막대기를 규라고 합니다.
즉 왕의 지팡이를 드신 분이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즉 이 말은 권능의 막대기를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면서 왕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또 4절에는 이렇게 되어져 있습니다.
[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하십니다.
즉 시편 110편에 기록된 주님의 모습이 왕이시오 제사장이심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 오시는 메시야는 왕과 제사장의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면서 시편 110편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십니다.
35-36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막 12: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막 12:36]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다윗이 주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우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분이니 우리에게 오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곁에 오셔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분을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분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하나님이 왕으로 오시고 제사장으로 오신 그분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역시 예수님을 무엇이라고 설명합니까?
로마서 1장 3절 말씀입니다.
[롬 1: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예수님에 대해서 육신으로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다윗은 왕입니다.
즉 왕권을 가지신 이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입장에서는 다윗의 왕권은 무너졌습니다.
지금은 로마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어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여전히 역사적으로 다윗의 후손이 와서 통일과 이스라엘의 강력한 국가를 만들어 주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으로 오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후손이라는 개념은 성전과 연관되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전을 솔로몬의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성전하면 솔로몬보다 다윗을 더 위대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준비한 왕이 다윗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으로 히브리어로 쉐키나 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하는 곳이라고 성전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하면 성전과 왕권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왕으로 오신 그리고 제사장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두 성품을 믿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이시고 참 인간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시편 110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 즉 본질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을 교회가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이 아니라 내가 듣고 싶어 하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주고 나를 어려움을 위로해주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바라보고 메시야를 기달린 것처럼 말입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아니라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종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나를 기쁘게 해줘야 하고 내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하는 예수를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너는 성경이 기록된 예수님을 믿고 있느냐?
창조주이시고 너를 구원하고 하나님이신 그분을 믿고 있느냐? 라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여기에 있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믿고 있느냐?
사랑하는 행복한 교회 청년 여러분!
우리의 왕이시오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의지하는 백성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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