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2-45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0 views
Notes
Transcript
설교 - 감사
서론
오늘은 우리 교회 60주년 생일 날이다. 이중에서 오늘이 교회 설립 60주년인지 알았던 사람이 있나? 별로 없을 것이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교회 설립 60주년인 오늘, 나를 돌아보며, 우리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본론
오늘 본문은 다윗이 지은 감사시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떤 상황이길래 이렇게 감사하고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다윗성, 예루살렘에 들어왔기 때문에 감사하고 있다.
이말을 들으니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무 생각이 안들지? 그냥 아무생각없이 다음 말을 들으면 다행일 것이다. 혹시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생각하지 말고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자.
왜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성궤가 들어오자 이렇게 기뻐했을까? 우리가 아는 ‘다윗처럼 춤을 출거야’라는 찬양도 언약궤가 들어올 때, 다윗의 모습을 본딴 찬양이다. 왕임에도 불구하고 바지가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기뻐서 팔짝팔짝 춤을 춘 다윗의 모습을 본받겠다는 찬양이다.
왕인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다윗은 기뻐할까? 언약궤가 무엇이기에 다윗이 이렇게 기뻐할까.
중요한 것은 언약궤가 아니다. 언약궤가 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예루살렘,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누가? 하나님께서 함께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윗은 오늘 정말로 기뻐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소리높여 찬양하고 있다.
정말로 다윗에게 하나님은 선하고 인자하시기만 한 분이신가? 다윗이 왕자로 태어났는가? 아닌거 다 안다. 그렇다면 쉽게 왕이 되었나? 모태신앙인 사람은 다윗이 어떻게 왕위에 올랐는지 알 것이다.
소위 사울에게 죽을뻔한적만 몇 번인가. 전쟁하고 있는 적국의 왕에게 고개숙인 적도 있다. 심지어 미친척한 적도 있다.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 다윗의 곁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지금으로 따지면 양아치, 건달, 깡패, 조폭, 전과자같은 사람들뿐이었다. 제대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다윗을 따르지 않았다.
골리앗때도 그렇고 여러번, 다윗덕분에 살았는데 말이다.
왕이 되고,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는 과정도 순탄했나? 아니다. 언약궤를 운반하는데 이미 1번 실패를 했다. 소가 날뛰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언약궤를 만져 사람이 죽기도 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가다가 말고 중간에 오벧에돔의 집으로 언약궤를 옮기기도 했다.
그 일은 다윗에게 엄청난 위기이자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왜? 생각해보라. 다윗은 누구의 선택으로 왕이 되었나? 하나님의 선택이다. 이것밖에 없다. 초대왕은 사울이다. 왕위가 선거로 뽑히나? 그 당시 왕위는 무엇으로 결정되었나? 혈통이다. 혈통이 가장 큰 자격이다. 사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이용해먹는 경우가 많다. 특히, 왕좌에서 신의 선택이란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도구, 명분중 하나였다. 가장 큰 명분은 바로 혈통이다. 다윗은 사울의 아들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서 왕이 되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 아니 하나님이 계신 것과 동일하게 여겨지는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사람이 많이 죽었다.
분명 다윗은 하나님께 거부당한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다윗이 기쁠까?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인가? 오히려 이번 시도마저 실패한다면, 다윗의 왕좌도 흔들릴수 있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다윗이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는 자신의 왕좌때문인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상징이 언약궤이다. 이미 1번 운송에 실패해서 뒷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약궤를 운송하는데 성공한 다윗이 더 기뻐하는 건가? 자신의 왕좌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증명해서 그렇게 기뻐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럴거같았으면, 우리가 아는, 다윗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바지가 벗겨지도록, 옷이 벗겨지도록 춤추는 다윗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옷이 벗겨지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기뻐하는 다윗은 없었을 것이다. 다윗은 순수하게 하나님께서 오셨다는 사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8절에서 나오는 첫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그 성호 그자체에 대한 감사다. 하나님이 전능하셔서 감사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뭔가를 하셔서 감사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첫째 감사이다.
그 이후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감사가 나온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쭉 나온 이후 25절부터는 하나님의 능력, 전능하심에 대한 찬양이 나온다.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도 첫째 찬양의 대상,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우리의 찬양과 감사의 대상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자체가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자체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 우리뿐 아니라 세상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아래에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다. 찬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른들은 교회 설립 60주년을 기념하는 것인가? 오늘 저녁에 무엇을 하는가? 찬양제를 한다. 즉, 하나님을 찬양한다. 교회 설립때 찬양제를 하는 이유가 뭔가? 바로 우리를 있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따져볼까? 교회가 없었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났을까? 하나님이 없었다면 여러분의 부모님의 결혼이 있었을까? 우리의 삶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모두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 삶이 지탱되고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냥 언제나 있는 교회. 주일날 빠지든가 말든가 그 자리에 서있는 교회. 우리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일하심의 증거란 것이다.
그 과정, 60년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통해 일하셨다. 은혜를 나누어주셨다. 어떤 교회는 사라졌다. 건물의 흔적만 남은 교회도 많다. 심지어 이슬람 사원이 되어버린 교회도 윗지방에는 있다.
바로 우리가 이 자리에 모임이 기적임을 믿길 바란다. 어찌보면 연결될 아무런 명분도 이유도 없는 우리를 모은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통해 우리를 모으시고 키우셨다. 아직 교회의 60주년은 여러분의 행사는 아닐수 있다. 그러니 70주년이 되고 80주년이 되었을 때, 나는 여기 있는 여러분이 저 저녁의 찬양의 자리에 서있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은혜를 나누어주셨다. 그리고 기도하며 예배드리는 자를 통해 교회를 지켜나가셨다. 60주년인 오늘, 나는 여기 모인 여러분이 하나님과 같이 여전히 교회를 섬기는자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은 비록 어른들의 축제이지만, 70, 80 90 100주년이 되었을 때, 그것이 여러분의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교회의 모습을 보며,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돌아볼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존재만으로 감사하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셨음을 느끼며 감사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영원히 가득한 우리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 찬양후 기도
헌금 “내게 있는 향유옥합” 후 기도
축도
지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함께 있을 지어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