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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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맞이하여 시 한 편으로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과 마주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벽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사회의 구조나 환경이기도 합니다. 이런 벽과 마주할 때, 우리는 대부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낙담하고 절망합니다.
그런데, 이런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개를 떨구고 절망하는 다른 담쟁이 잎 수 천개를 이끌고 끝끝내 그 벽을 넘어버리는 담쟁이 잎 하나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여호수아와 갈렙이 바로 이런 벽을 넘는 한 잎의 담쟁이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난 지, 2년이 지났건만 변변한 정착지조차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점 지쳐갔습니다. 약속의 땅이라는 가나안 땅에 이르렀건만, 그 땅은 빈 땅이 아니었습니다. 기골이 장대한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강한 군대를 이루어 지키는 땅이었고, 그 땅을 둘러싸고 있는 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제대로 된 무기도, 체계적인 군대도 없는 이스라엘과는 너무나 대조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가나안 땅을 정복한다는 것,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말 그대로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느껴졌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낙담하고 통곡했던 이유입니다. 자유보다 생존이 더 중요해 보였기에, 스스로의 손과 발을 묶어 다시금 노예의 신분이 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이집트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도, 여호수아와 갈렙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낙담한 이스라엘 백성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함께 믿음으로 이 벽을 넘기를 권합니다. 하나님을 닮아가고자 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공동체를 품는, 바로 이 시대가 원하는 기독교적 리더십의 모범입니다. 이 시간에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해 기독교적 리더십에 대해 좀 더 깊게 살펴보길 원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메이커스 공동체의 지체 모두가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뛰어난 크리스천 리더로 세워지게 될 줄 믿습니다.
<본론 1 - 거룩과 분별된 공동체 >
여호수아와 갈렙의 리더십 첫번째, 바로 공동체를 사랑하고 생각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은,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구별된 민족이길 바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본문 8절에서 9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그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주님을 거역하지만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들의 방어력은 사라졌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호수아와 갈렙은 낙담한 나머지 주저앉아 통곡하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옷을 찢으며 “지금 우리의 감정과 생각은 잘못되었다. 우리의 통곡과 탄식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께만 집중하자”고 외쳤습니다. 눈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의 벽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이 믿음,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통곡하고 탄식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 200만명이었습니다. 자칫 이들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가나안 거주민과 싸우기도 전에 아군의 손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 민족 모두를 품는 마음으로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운명 공동체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부족함을 탓하기 보다 함께 아파하고 체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 공동체가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출애굽 후 2년간 함께 광야생활을 한 이유,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훈련과정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거룩함을 추구하는, 함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며 나아갈 수 있는 공동체가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한 사람도 놓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을 가리켜 ‘리더의 믿음’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바울이 이야기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의 마음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품었습니다. 반면, 열 정탐꾼들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예배와 제사보다 생존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집트로 돌아가 다시 노예생활을 하더라도 살아남는 것에 더 집중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악하다”라고 평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 도저히 뛰어넘지 못할 벽을 두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그 벽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 벽을 깨거나 뛰어넘을 것을 원하신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란 한 가지 모습, 거룩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바라며, 예배 안에서 하나되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공동체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습니까? 혹 아무 애정이 없거나, 열 정탐꾼 마냥 거룩보다 생존에 더 가치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청년2부 메이커스, 지금 이 시간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세상 가운데 거룩함과 구별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 나아가길 꿈꾸는 공동체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형제와 아비의 마음으로 서로 돌아보며, 거룩한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꿈을 함께 공유하는 청년2부로 자라나게 되길 소망합니다. 나를 넘어,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찬 우리 메이커스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고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본론 2 뚜렷한 목표의식의 여부 : Comfort-Zone 을 벗어나라 / 이 산지를 >
여호수아와 갈렙의 리더십의 두번째, ‘여호와의 백성으로서의 뚜렷한 목적의식’이었습니다. 이는 정탐을 다녀온 10명과 크게 대조가 됩니다. 앞서 열 명의 정탐꾼들이 약속의 땅을 저주의 땅으로 바라본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이렇게 바라보았습니다. 본문 7절에서 8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가리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농사에 적합해 보이지도 않은, 척박해 보이는 땅임에도 그 땅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합한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목축을 하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집트에서도 기름진 농경지가 아닌 고센 땅에 머물렀습니다. 소와 양이 먹을 풀이 계속해서 날 수 있는 땅, 이로 말미암아 소와 양이 새끼를 낳아 젖이 흘러 넘치는 땅, 곳곳에 석청과 같은 야생꿀이 있는 땅이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땅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갈렙은 주저함 없이 그 땅을 차지하자고 이야기 합니다. 민수기 13장 30절입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갈렙의 이러한 담대함, 이스라엘 민족이 무엇을 해야 하는 공동체인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갈렙은 이스라엘 민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야 하며, 머뭇거릴 것이 아니라,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달려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처럼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 힘이 솟아나고, 적극성이 생겨납니다. 목표를 위해 들이는 수고와 위험조차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연습이나 훈련이 지겹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고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이를 가리켜 안데르스 에릭슨이라는 학자는 ‘안전지대를 벗어나게 하는 목표의식의 힘’이라고 지칭합니다.
갈렙은 이와 같은 목표의식의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목표의식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렇기에 두려움과 상황이 어찌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으로 설수 있었습니다. 결국 갈렙은 안전지대에 머물지 않는 주의 청년으로서의 삶을 평생동안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갈렙의 모습의 절정, 여호수아 14장 10절에서 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 내리이다 하니”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 다른 무엇이 아닌 두려움 그 자체여야 합니다. 두려워한다는 것 그 자체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땅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청년으로서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담대히 나아가는, 갈렙의 열정과 믿음이 충만한 청년2부, 나이의 적고 많음과 상황의 어려움을 믿음으로 뛰어넘는 메이커스 공동체이길 축복합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의지함으로 담대한 믿음의 용사로 설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싸우시고,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 본론 3 삶의 영역에서의 이순신, >
여호수아와 갈렙의 리더십, (1) 더불어 함께 거룩함과 구별됨을 사모하는 공동체로 나아가길 소망하는 것이었고, (2)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목표의식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광야에서도,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이 두 가지 속성을 가리켜 “거룩한 야성”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회복해야 할 덕목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거룩한 야성’을 회복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423년 전 오늘, 전장에 섰던 한 사람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나라의 명운을 짊어진 장군이었건만, 그에게는 고작 800여명의 병사뿐이었습니다. 그조차 얼마 전의 참패로 인해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나머지, 장수들조차 싸우기보다 틈만 나면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이에 비해 눈 앞의 적들은 사기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병력도 아군의 10배인 8,000명을 넘었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전장으로 나아갔고, 우리 역사에서 가장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입니다.
학자들은 명량대첩의 주요 승리요인으로, 바다의 성이라고까지 불린 튼튼한 판옥선과 화포의 힘, 그리고 이순신의 뛰어난 지휘력을 꼽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돌진해오는 적의 배가 깨질 정도로 견고한 바다의 성, 판옥선을 우리의 요새되신 여호와 하나님께 견줄 수 있습니까? 탁월한 지휘력과 통솔력을 지닌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지만, 그를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비교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왜 여호와께 피할 생각을 하지 아니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나아가길 주저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방패이자 요새이신 하나님께 나아가실 권면합니다. 판옥선과는 비교도 안 될 압도적인 안전함 가운데 거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동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능히 상황을 깨치고 나아가는 거룩한 주의 군사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여호수아는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여호수아 24장 14절에서 15절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다른 무엇이 아닌,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 정말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 주의 백성으로서의 거룩이며 구별됨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보다 더 귀히 여기는, 애굽의 신,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 있음을 우리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나의 시간, 물질, 재능, 열정이 하나님보다 더 소중합니다. 나를 성공으로 이끌어 줄 여러 인맥들이 하나님보다 더 현실적으로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선포하며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나아가시길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거룩한 야성을 회복시키시고, 요새와 산성이 되어주시며, 우리 앞의 적을 소멸시켜 주실 것입니다.
<결론 및 적용>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리더십의 비결, (1) 거룩하고 구별된 공동체에 대한 소망 (2)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목표를 뚜렷이 인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거룩한 야성’으로 말미암아 여호수아와 갈렙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고, 훌륭한 리더로 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 청년2부 메이커스, ‘거룩한 야성’의 회복을 소원하는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주의 청년들이 모인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흔들리고 어지럽다 하더라도, 우리는 주님을 섬기겠다고 결단하며 일어서는 이 시대의 빛과 소금들이길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거룩한 야성의 회복을 시키시고, 우리 삶의 각 영역에서 이스라엘을 이끈 여호수아와 갈렙으로, 나라를 구한 이순신으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을 충만하게 경험하게 되길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