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이 큰 구원
Notes
Transcript
- 묵도하심으로 수요기도회를 시작하겠습니다.
- 찬송가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 장춘희 권사님 기도하시겠습니다.
- 성경 본문: 히브리서 2:1-9 (신약 354면)
설교 주제: 이같이 큰 구원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를 보면 길게 늘어져 있는 줄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홋줄이라고 합니다. 배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항구에 묶어두는 줄을 말합니다. 홋줄을 항구에 솟아나 있는 계선주 혹은 비트에 꽉 묶으면 물살에 흘러가지도 않고, 다른 배와 충돌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말씀은 마치 배의 홋줄을 비트에 매듯이 우리가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붙잡지 않으면 흘려 떠내려가고 결국 그에 따른 보응을 받을 것이라 말합니다.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1절 말씀은 말씀을 듣는 자들을 향하여 떠내려가지 말라고 합니다. 무엇으로부터 떠내려가지 말라고 합니까? 바로 들은 것입니다. 들은 것에 유념해서 떠내려가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유념이란 말은 머무를 유와 생각 념을 합쳐서 만든 말입니다. 즉 생각을 머무르게 하라는 말입니다. 들은 것을 우리 머릿속에 머물게 하고 그것을 계속해서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다른 것으로 그것을 밀어내고, 그것을 흘려보내게 하지 말고 그 들은 것을 계속해서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마치 배의 홋줄과 같이 그것을 붙들고 있으라고 말합니다.
들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3절에 나와있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1절 말씀은 흘려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라고 했는데 3절은 이것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생각해야 하고, 굳게 붙잡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들로 말미암은 구원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그것을 잊지 말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보다 더 나아가서 구원 앞에 ‘이같이 큰’이란 말로 수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가치와 영광이 얼마나 큰지 설명합니다. 구원이 이토록 우리에게 크고 영광스런 것인데 그것을 놓치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도 바로 이것입니다. 이같이 큰 구원을 우리가 계속해서 붙잡고, 우리의 머릿속에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설교의 요지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견지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놓쳐버리고 흘려 떠내려가게 한다면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보응, 심판을 받게 됩니다. 2절부터 4절까지 그것을 증언합니다. 2절을 보시면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도 견고하게 되어서 그것에 순종하지 않고 범죄한 자들에게 공정한 보응이 이뤄졌다고 말씀합니다. 즉 천사를 통해 주신 말씀을 듣지 않은 자들에게 심판이 내려졌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천사들을 통한 말씀도 그러한 심판이 내려졌는데, 4절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증언하신 구원의 말씀을 등한히 여기면 어떻게 그 심판을 피할 수 있겠냐고 말씀합니다. 이 구원의 말씀은 3절 뒷부분에 나오는 것처럼 주로 말씀하신 것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이고 또한 사도들도 그것을 증언했으며, 하나님께서도 여러 능력과 뜻을 따라 성령님을 통해 함께 증언하셨습니다. 즉 삼위 하나님께서 이 구원을 증언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구원을 놓치면 하나님의 심판이 더 엄중하면 엄중했지, 결코 약한 심판이 아닌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나서 단순하게 흘려보내선 안 됩니다. 구원을 경시한 것에 대한 엄중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설교 말씀을 들을 때 이런 잘못을 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들을 때 우리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기에 그저 흘려보낼 때가 많습니다. 머릿속에 들어왔다가 스쳐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그 말씀을 붙들라고 말씀합니다. 구원의 복음을 굳게 붙잡고 있으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거기에 집중해서 그 말씀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라고 합니다. 예배 시간에 설교 말씀을 듣고 문을 나서는 순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붙들고 삶의 자리에 나아가서 그 말씀대로 행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살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고,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우리가 경히 여긴다면 그것은 얼마나 배은망덕한 일입니까?
그렇기에 말씀보다 내 생각을 우선하고, 그저 내가 살아왔던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겸손해지고, 하나님 앞에 겸허히 엎드려서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굳게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3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머릿속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들을 깊이 생각하고,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참 힘듭니다. 어렵고 무거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는 죄와 연약함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을 깊이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어려워서 다른 것들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다른 것들에 우리의 시선을 두고, 눈앞에 놓인 것들을 생각하며 살지, 막연한 것처럼 보이는 예수님을 생각하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나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시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삶의 환경이 녹록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생각한다 하더라도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겪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을 다스린다는 것을 믿어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보며 많은 고민을 겪습니다. 시대의 악함 속에서 신자들의 고통을 보며 고민과 걱정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만물을 그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이 말은 말씀이 이 세상 가운데 이뤄지는 것을 우리가 잘 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아들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잘 보지 못합니다. 현실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기에 믿기 어려운 일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선 믿는 자들이 고난을 당하고, 정의도 없으며 온갖 악한 일들이 가득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신데 왜 세상이 이렇습니까?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게 됩니다.
그렇게 주님을 찾을 때 우리는 누구를 만나게 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라고 말씀합니다. 고난 속에서 부르짖을 때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저주를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보게 됩니다.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음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조금이나마 알게 됩니다. 바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입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왜 속히 이루어지지 않는지 말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선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그것을 유보하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9절 뒷부분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여기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모든 자들을 뜻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꿈꾸지만, 삼위 하나님께선 택정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려는 큰 계획 속에 섭리해가십니다. 길이 참으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행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구원을 경험했고,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 가운데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택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하게 되고, 언약의 교제를 누리며, 삼위 하나님과 더불어 기쁨과 즐거움, 평안, 안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구원의 기쁨을 택하신 자들에게 다 주시기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땅을 다스리시면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는 섭리를 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계속 고난을 받으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기까지 신자들이 계속해서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6절부터 8절 말씀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 8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시편 8편은 창조 후에 잃어버린 아담의 영광이 회복될 것을 기대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누구를 통해 이뤄졌다고 말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담이 잃어버린 창조의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고 성취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만 누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도 영광의 회복이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 주셨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자들에게도 주어집니다.
본래 사람의 현실은 죄의 결과로 수치와 더러움 속에 살아갑니다. 사람의 모습을 생각해보십시오. 순수함도 없고 올곧음도 없습니다. 죄와 탐욕으로 가득 차 있는 고통의 연속일 뿐입니다. 죄로 오염되고 상처한 가득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고쳐주실 분이 계십니다. 잃어버린 창조의 영광을 회복해주실 분이 계십니다. 시편 8편에서 기대한 분이 우리에게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택함을 받은 자들은 영광과 존귀를 누리게 됩니다. 시편 8편을 성취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영광의 회복을 누리게 됩니다. 잃어버린 창조의 영광을 노래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구원입니다. 고통과 슬픔이 아니라 영광과 존귀와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구원입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환난을 당하나 우리에게 영광이 약속되어 있고 지금도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우리를 향하여 이같이 큰 구원을 놓치지 말고 더욱 유념하라고 말씀합니다. 굳게 붙잡고 있으라고 말합니다. 환난과 어려움이 오더라도 이같이 큰 구원을 굳게 붙잡고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비록 세상이 우리를 어렵게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자들을 회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려고 지금도 길이 참으시며 다스리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구원을 입은 자들에게 창조의 영광과 존귀를 회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들은 복음에 대하여 유념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의 파도에 휩쓸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단단히 붙잡는다면 우리는 떠내려가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영광과 기쁨과 참된 평안 안에서 머물며 그것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같이 큰 구원입니다. 비록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눈에 보기 좋게 다가올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같이 큰 구원으로 말미암아 이겨내고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붙잡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죄와 수치와 더러움과 온갖 악함으로 가득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길이 참으심으로 새 언약의 교제 가운데 초청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굳게 붙잡지 않았습니다. 무지하고 연약한 저희를 용서해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심령이 변화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게 하옵소서. 주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영광과 기쁨과 즐거움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주기도문 : “주기도문으로 수요기도회를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