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
Notes
Transcript
- 묵도하심으로 수요기도회를 시작하겠습니다.
- 찬송가 88장 내 진정 사모하는
- 기도하시겠습니다.
- 성경 본문: 히브리서 2:10-18 (신약 354면)
- 설교 주제: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
히브리서 1장의 내용을 잠시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인데 바로 오실 것 같지는 않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선 지금까지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방법과 모양으로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완전하고 궁극적으로 말씀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으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가 다르게 산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끝까지 예수를 붙들라고 말했습니다. 영원하고 궁극적이고 완전한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으라고 했습니다. 당시 천사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천사보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천사보다 더 영광스럽고 높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따라서 예수님을 붙잡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1장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찬양했다면 2장에선 그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것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것을 이야기합니다. 왜 하나님께선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신하게 하셨는가? 하나님의 모든 계시의 종결이신 예수님을 성육신하시는 방식으로 하셨는가? 그 답이 오늘 본문에서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이유가 뭔가?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우리를 그리스도처럼 만드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고, 승리의 삶을 가져오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고난당하시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무엇이라 표현합니까?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시다. 우리의 신실한 대제사장이라 고백합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선 우리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고난 당하셨다. 우리를 형제로 삼아주시기 위해 고난 당하셨다. 우리를 능히 돕고 승리의 삶을 살게 하도록 고난 당하셨다. 이것이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굳게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첫째,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고난 당하셨습니다.
17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과 같이 혈과 육을 입으셨음을 선언합니다. 혈과 육을 입으셨다는 것은 곧 우리 인간의 약함과 수치의 자리에 처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영광의 광채시고, 만물을 지으신 예수님께서 낮아지시고, 고난받으셨음을 의미합니다. 왜 예수님께선 우리와 같은 몸이 되셨습니까? 17절 마지막에 그 답이 나옵니다.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선 당신의 백성들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혈과 육을 입으셨습니다.
‘속량’은 헬라어로 ‘힐라스코마이’로 구약의 제사 의식과 관련된 말입니다. 동물에게 자신의 죄를 전가하고 대속하는 것을 속량이라 합니다. 이는 구약의 대속죄일에 잘 드러나는데, 대제사장은 희생제물의 피를 언약궤 위에 있는 속죄소의 위와 앞, 그리고 동쪽에 있는 휘장에 뿌렸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희생제물이 대신 피를 흘린 것입니다. 또 대제사장은 아사셀의 염소 위에 자기의 손을 얹고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악을 고백했습니다. 염소는 이스라엘의 모든 죄악과 함께 광야로 내보내졌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추방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희생제물에게 전가되어, 동물이 피를 흘리고 쫓겨나는 것, 이것이 속량입니다. 죄를 희생제물에게 대속하는 것이 속량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백성의 죄를 속량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동물의 피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을 대신해서 스스로 고난받으시고 자신의 피를 뿌리셨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스스로, 자발적으로 떠맡아서 자기 목숨을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렸습니다. 바로 우리 죄인들을 속량하시려고,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서 직접 담당하시고, 예수님께서 직접 짊어지시고 저주받으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으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고난 받으시고 피흘리심으로 죄와 죽음에 있던 우리를 이끌어 영광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10절 말씀이 이를 증언합니다. “많은 아들들을 이끌러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우리 죄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영광에 이르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직접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이유가 무엇이냐면?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굳게 붙잡습니다.
둘째,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로 삼아주시기 위해 고난당하셨습니다.
11절 말씀에 예수님께선 백성들을 향하여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우리를 형제로 삼아주셨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형제와 같은 자로 높여주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우리를 형제로 삼아주셨습니다.
그 내용이 12절과 13절에 나옵니다. 12절은 메시야 시편인 시편 22편을 인용하는데, 내용을 이렇습니다. 시편 기자는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게 응답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소망을 주님께 둡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마침내 나를 구원하시고 영화롭게 나를 올려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교회가 이 노래를 함께 찬양합니다. 이것이 본문이 인용한 시편 22편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가 궁극적으로 예수님께 성취됩니다. 예수님께선 하나님께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셨으나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고 신실하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선 예수님께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워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영광을 누구와 함께 누립니까? 주의 교회들과 함께 누리고 교회와 함께 찬양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그리스도께서 죽어주신 자들,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을 동일하게 누립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심으로 그분의 형제들을 높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형제들 곧 교회 안에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과 형제들이 함께 찬양하는 것은 곧 예수님과 형제들이 한 공동체임을 말해줍니다. 또한 13절은 이사야서를 인용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저버릴 때 이사야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과 함께 그 신앙을 지켰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선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즉, 12절, 13절은 예수님과 형제들이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형제들이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선 스스로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를 형제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를 높여주셨습니다. 형제로 삼아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함께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할 수 있게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자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어, 예수님의 형제라 불리게 되었고, 예수님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선 우리를 이에 동참시켜주시기 위해 직접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를 형제로 삼아주시기 위해,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셋째,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능히 도우시고 승리의 삶을 살도록 고난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선 죽음을 통하여 16절에 나오는 것처럼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여기서 붙드는 것은 도와주기 위해 붙잡아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께선 아브라함의 자손 곧 언약의 자손들을 도와주시기 위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선 언약의 자손들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예수님께선 죽음을 통해 죽음의 세력은 잡은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선 자신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시고,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언약의 자녀들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성도들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사악한 자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어린 양의 피로써 사악한 자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은 더 이상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15절에 나오는 것처럼 죽음에 종 노릇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도록 붙들어주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18절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께선 시험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신 것을 통해 여전히 시험 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능히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동일한 어려움과 고난을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성을 예수님께서도 잘 아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예수님께서 아시기 때문에 능히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도움은 천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을 위한 것입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선 스스로 고난을 담당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하셨고, 우리를 형제로 삼아주셨으며, 우리를 능히 도와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버리시고 혈과 육을 입은 몸으로 낮아지신 이유가 바로 우리를 돕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모든 고난과 죽음을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영광에 이르게 되었고, 예수님과 한 형제가 되었으며, 예수님의 도움을 힘입어 살게 되었습니다. 자비하시고 신실하신 대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속량하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찬양하고 의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능히 도와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이유입니다. 자비하시고 신실하신 예수님을 믿는 이유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자비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죽음에 종 노릇하던 우리를 속량하신 예수님의 사랑, 그분의 낮아지심을 통해 우리가 높임을 받은 은혜, 능히 우리를 도와주시고 연약함을 아시는 자비하심을 말씀을 읽을 때마다 깊이 알아가게 되며, 찬양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더욱 알아감으로 기쁨과 감사와 은혜와 찬양이 풍성해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 :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죄와 수치와 더러움과 온갖 악함으로 가득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길이 참으심으로 새 언약의 교제 가운데 초청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굳게 붙잡지 않았습니다. 무지하고 연약한 저희를 용서해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심령이 변화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게 하옵소서. 주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영광과 기쁨과 즐거움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가 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주기도문 : “주기도문으로 수요기도회를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