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있는 믿음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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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행의 목적은 주님과의 만남이다.
우리 여행의 목적은 주님과의 만남이다.
목적이 있는 믿음의 여행
장상택 전도사
본문 : 전도서 11장 7절 -12장 8절
할렐루야!
청년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이번에 새로 청년부를 섬기게된 장상택전도사입니다.
저는 만으로 14살에 어느 집사님의 전도를 받아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온 세상의 구원자이실 뿐 아니라 제 개인의 구원자 되심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만 16살 되던 해에 개인적인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죠.
그 후 유교가 강한 집에서 자란 제가 제사를 거부하게되고, 여러가지 핍박과 어려움들을 당했었습니다.
다운타운에서 길거리 전도를 하다 친형에게 들켜서 시내 한복판에서 심하게 두들겨 맞기도 했었습니다.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깨어진 가정에서 자란 나를 하나님이 사랑해주시고 구원해 주셨다는 그 감동이 너무나 커서 얻어맞으면서도 기뻤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고, 신학교로 진학을 결정하게 되자 제 아버지는 저를 집에서 쫓아 내셨었습니다.
제 청년, 대학 시절은 배고픔과 재정적인 압박감의 연속이었던 것같아요.
그런 어려움의 한 복판에서 주님은 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셨죠.
그리고 저는 당연히 주님앞에 제 모든 것을 드려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제 아내 박미희 사모를 예수전도단, Youth with a Mission 대학사역, 즉 캠퍼스 미니스트리에서 간사로 섬기며 만났습니다.
저희 둘다 ‘과격한 헌신’을 하기로 주님앞에 기도하고 있던 터라, 곧 선교지로 나가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둘다 가지고 있었던 기도제목이,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 가기를 원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어느 선교사님으로부터 방글라데시를 소개 받게 되었는데, 그분 말씀이 “방글라데시는 정말 열악하고 힘든 나라인데, 선교사들도 오기를 꺼려하는 곳이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저와 제 아내는 기도를 하게 되었고, 한번도 방글라데시를 가본적도 없지만, 주님의 부르심이란 확신을 가지고 2003년 말에 9개월된 성우를 데리고 무작정 방글라데시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여러번의 죽을 고비도 넘기고, 실제로 저는 천국문앞까지 다녀왔습니다~ㅎㅎ
저희가 사역해왔던 대상은 항상 청년이었습니다.
방글라데시로 떠나기전에도 교회와 예수전도단에서 청년, 대학생들을 섬겼었고, 방글라데시에서도 마찬가지로 청년, 대학생들이 제 사역의 대상이었어요.
그래서 청년들만 보면 가슴이 뜁니다.
제가 경험한 하나님, 그 사랑 많으신 아버지를 정말로 소개해 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오늘 불타는 금요일 밤에 여러분들은 다른 여러가지 일들을 뒤로 하고 온라인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예배에 참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만약 그토록 기다리던 펜데믹이 끝났다고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그동안 미뤄뒀던, 아니 그토록 가고싶었던 여행을 할수 있겠죠?
만약 우리가 여행을 계획한다고 하면 우리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각자 일의 우선 순위가 있겠지만 저는 여행의 목적지를 먼저 결정할 것입니다.
크루즈를 타고 알레스카의 빙하를 보러 갈지 아니면 탄자니아의 세렝케티 국립공원을 갈지 먼저 결정하는 것이죠^^
물론 두 곳 어느곳도 가본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두곳의 날씨나 환경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죠.
우리의 여행 목적지에 따라 우리의 준비물들이 달라질 것입니다.
털옷을 준비하느냐 아니면 반바지를 준비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여행 목적지가 어디인가에 달려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른 어떤 일들을 해도 그 일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어떤 결과를 원하는가는 우리가 무슨 일을 시작할때 기본적으로 하는 질문들이죠.
여행뿐만 아니라 공부에도 어떤 기대와 목적이 있을 것이고요.
일을 해도 그 일의 목적과 그 일을 통해 얻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불타는 금요일 저녁, 그것도 현장 예배가 아닌 줌을 통해 드리는 이 예배에 어떤 목적과 기대감을 가지고 오셨나요?
여러분들은 처음가보는 새로운 여행지를 갈때 왠지 들뜨는 기분이 드나요?
저는 여행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여행하기에 앞서 그 곳에 대한 리서치를 하고 여행 계획을 짜고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합니다. 물론 숙소가 필요할 경우 호텔 예약도 하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 또한 너무나 좋아합니다. 왠지 들뜨기도하고, 흥분되기도 하지요.
저는 우리의 신앙이 여행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여행을 태어나면서부터 시작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형제, 자매들이죠.
요즘 흔히 쓰는 금수저, 흙수저라는 표현이 있잖습니까?
부자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라고 하지요.
그리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흙수저를 물고 태어 났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입에 십자가를 물고 태어났다고도 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에 의해서 신앙 여행에 동참하게 된 것이죠. 어릴때부터 성경이야기를 수도없이 듣고 자랐습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서 자란 korean과 대한민국에서 자란 korean은 비슷한 것 같지만 그들의 생각과 행동방식은 구별되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화에서 태어나고 자랐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방식이 달라지는 것이죠.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기독교 문화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교회가 익숙하고 성경이 익숙합니다. 이들은 믿고 안믿고를 떠나 기독교 문화안에서 자랐기에 기독교적 환경에서 대부분은 기독교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불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이 누군가의 전도를 받아, 혹은 어떤 어려움을 겪으며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앞서 제 소개를 하며 나웠지만 어떤 집사님의 전도를 통해 교회를 다니게 되었죠.
우리가 어떤 루트로 이 여행에 동참 했든지 우리는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진 신앙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여행이 너무나 익숙해 더 이상 흥분이나 기대감이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비행기를 처음 탈때는 창가쪽 자리를 예약하는 방법도 몰랐습니다. 그때 창가쪽에 앉은 사람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통로쪽에 앉아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창가를 통해 들어오는 바깥 풍경을 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지금은 비행기를 하도 많이 타봐서, 장거리 여행시 더 이상 창가쪽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비행기를 탄다는 설레임이나 기대감도 줄어 들었고요.단순히 목적지만 집중하게 된 것이죠.
비행기를 처음 타봤을때의 저처럼 어떤 분들은 이 여행에대해 더 많이 듣고 싶고 알고 싶은 흥분과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처음 사귀게 될때 더 많이 알고 싶고, 또 보고싶고, 다시 보고싶고, 더 시간을 보내고 싶고,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고, 또 어찌나 집에 갈 시간은 빨리 오는지. 또다시 만나게 될 그날을 어떻게 기다리지. 콩닥 콩닥 거리는 가슴으로 연애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동일하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마음 가득 하지만 말이죠.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합류하게 된 이 신앙의 여행에 대한 흥분감과 기대감을 가지고 있나요?
혹은 이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또한 목적지는 어디인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함을 가지고 계시나요?
아니면 어떤 의무감을 가지고 이 여행에 동참하고 계신가요?
가족 여행을 하는 내내 본인의사와 상관없이 떠난 가족여행이 불만이어서 심드렁한 십대 아이처럼 이 여행에 동참하고 계신가요?
그 아이를 기쁘게 하기 위해 부모는 선물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며 달래고 달래서 데리고 다니죠. 지난 여름 밴프에 갔을때 밴치에 앉아 한 가족의 모습을 처다 봤습니다. 부모님과 어린 딸은 여행에 대한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이곳 저곳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쁜 모습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 가족 중의 한명인 한 십대아이의 모습을 볼수 있었어요.
전형적인 사춘기의 소년의 모습을 한아이는 후디를 입고, 손을 바지에 찔러 놓고 풍경엔 관심도 없이 땅만 보며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떠나게 된 이 여행에 사춘기를 격고 있는 10대 청소년 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못마땅해 하며 질질 끌려다니고 있지는 않은지요?
이 믿음의 여행중에 만난 귀한 동역자인 여러분들과 함께 걸어갈 앞날들이 저는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오늘 읽었던 성경 “전도서 1:1인 제목은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으로 전도서를 소개한다. 전도서의 저자가 솔로몬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 제목은 솔로몬이 ‘왕’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지혜 교사, 즉 전도자(히:코헬렛)로서 자신의 경험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관찰과 묵상의 결과로서 전도서를 기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는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미 있게 사는 것인지를 ‘허무’와 ‘즐거운 삶’을 대조시키며 제시하고 있다.”[1]
그래서 “전도서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 없는 ‘수고’만 하다가 ‘헛된’(‘바람을 잡으려는 것’)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서 삶을 즐기라는 것이다.”[2]
전도서의 저자인 솔로몬이 밝힌 인생의 목적지는 12장 7절에서 “흙은 땅으로 돌아가지만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언젠가 우리가 주님앞에 서게 될 그 순간,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우리 믿음 여행, 신앙여행의 목적지입니다.
제가 나이가 많이 먹은 건 아니지만 어느정도 나이가 들며 느끼는 것은 시간이 참 빨리 흐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하늘의 구름을 보면 천천히 흘러갑니다. 하지만 그것을 타임랩스 촬영 기법으로 찍으면, 타임랩스 촬영은 일초에 한장이나 시간 간격을 두고 찍은 사진들을 영상으로 처리한 것이죠, 꽃이 피는 장면이나, 하늘의 별들이 움직이는 장면들, 그리고 구름이 흘러가는 장면들을 역동적으로 보여주기 원할때 많이 쓰는 촬영기법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청년때는 시간이 참 느리게도 흘러가지만 어느정도 나이가 쌓여 돌아본 청년의 때는 타임랩스 영상을 보는 것 처럼 역동적이고도 빠르게 흘러 간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은 채 마음껏 살다 허무함만을 남기는 인생이 아니라, 청년의 때에 창조주 하나님을 만남으로 목적이 분명하고 목적지 또한 정확한 멋진 인생을 살아라는 지혜자의 충고인 것입니다.
여러분들 혹시 제 카톡 프로필을 보신 분들이 계신가요?
아마 다들 바빠서 보진 못했을 것 같은데,
제 카톡 프로필에 쓰진 인용문이 있습니다.
“To live with all my might while I do live.”
이 인용문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엮은 책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의 생애와 일기’라는 책에서 읽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1700년대 초반 미국의 1차 영적 대 각성을 이끈 위대한 신학자요 영성가 였습니다. 그런 그가 가장 큰 도전과 감명을 받은 젊은 선교사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아메리칸 원주민들에 대한 선교가 전무하던 시대에 선교사로써 원주민들을 섬기다 젊은 나이에 페결핵으로 숨졌습니다.
그는 숨지기전 조나단 에드워즈의 집에서 간병을 받았었는데, 그의 유일한 소유였던 일기장만을 남기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죠.
“ 지난 2년 동안 그는 인디언의 말을 배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으며 온 밤을 깨어 기도했고 믿음의 친구들과 이웃 전도자를 위한 중보기도를 했다. 무엇보다 자기에게 맡겨진 양들을 위해 기도하느라 며칠이고 기도에만 열중하기도 했다. 그는 옥수수죽을 먹고 짚더미 속에서 잤으며 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고질적인 우울증에 항상 시달렸는데 그것을 이기는 것도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는 자주 몸이 아파왔지만 그 누구도 그를 돌봐 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원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인디언들이 우상과 백인에 대한 미움을 버리고 예수님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열매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단 몇 주일 만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열매들이 맺히기 시작한 것이다. 놀라운 성령의 능력이 인디언 마을을 뒤집어 놓았다. 추장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고, 마을 사람들은 마을 입구의 우상의 제단을 모두 무너뜨렸다. 집회가 시작되자마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말씀을 듣다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고, 과거의 삶을 청산하려고 몸부림쳤다. 지난 과거를 용서받기 위해 공개적으로 회개를 하기도 했다. 아내를 버렸던 어떤 사람은 회개하고 아내와 함께 살겠노라고 약속했다. 어떤 사람은 원수 되었던 사람에게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관계를 회복했다.
어느 인디언 마을에는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열병으로 죽어가는 아이와 그 아버지가 주술사를 찾아가 낫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주술사는 몸을 흔들며 별짓을 다했지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때 한순간 데이비드는 달려들어 아이를 안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 뻔했다. 그러나 아이는 그대로 인 것처럼 보였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낚아채듯 데리고 갔고, 데이비드는 더 이상 기도할 힘도 없었다. 그는 실망감으로 몸서리를 쳤다. 그는 하나님을 묵상하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왜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는가를 묵상하고 있었다. 그 때 통역관이 들어와 외쳤다. “아이가 방금 살아났어요. 아이가!!”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이다.
데이비드는 이 많은 열매를 보면서, 하나님께 질문했다. “그럼 이 열매들이 맺히기 전 수년 동안, 하나님은 왜 침묵하셨습니까?” 그리고 그는 이사야 30장 18절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고 고백한다.
이사야 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오래 기다리게 하신 이유는 더욱 큰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무서운 열정으로 인디언들을 섬겼다. 그에게 감동된 인디언들은 백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브레이너드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그는 인디언 마을들을 방문하기 위해 여행한 거리는 줄잡아 8,000km 이상이었다. 대부분 말을 타고 다녔지만 어떤 때는 말의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수십 km를 걸어가기도 하고, 밤중에 숲속을 헤맨 때도 많았다. 그는 폭우를 맞으면서도 여행을 중단하지 않았고, 험한 산을 넘기도 했으며, 쓸쓸한 황야 길을 걷기도 했다. 끼니를 채우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였으며, 잠을 자지 못하기도 했고, 길가에서 노숙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는 건강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주 몸이 아팠고, 그의 말년에는 폐결핵으로 인해 수도 없이 피를 쏟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몸을 살피는 시간에 조금 더 많은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 했다. 그는 언제나 인디언들만 생각했다. 어떤 힘으로 그것이 가능했을까? 그는 자신의 일기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면 내가 어디에 있든지, 어떻게 살든지, 또 무엇을 견디게 되든지 나는 관계치 않노라. 잠을 자면 저들을 꿈꾸고, 잠을 깨면 첫 번째 드는 생각이 잃어버린 영혼들이라. 아무리 박식하고 능란하며 또 심오한 설교와 청중을 감동시키는 웅변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결코 인간의 심령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결핍을 대신할 수는 없노라.”
그 힘은 영혼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왔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인디언을 위한 기도를 그치지 않았다. 그가 죽기 얼마 전에도 인디언 마을로 가겠노라고 집을 나섰다가 실패한 일도 있었다. 그는 정말 한 영혼을 사랑했다.”[3]
비록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짧은 인생속에서 믿음의 여행을 했지만 그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저 또한 그런 믿음의 여행중에 여러분들을 만났고요.
저의 여행은 아직 마치지 않았죠.
언제가 주님앞에 서게 되는 날 저는 저의 여행을 마무리하게 될 것입니다.
예배는 이 여행을 꾸준히 그치지 않고 갈수 있게 하는 힘을 제공합니다.
예배에 임하신 주님을 만날때 우리는 그러한 힘을 얻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들 하나님께서 얼마의 시간동안 여러분들과 함께 이 여행을 동행하게 하실 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믿음의 여행을 흥분됨과 기대감,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함께 떠나길 원합니다.
허무함만이 남는 피곤한 여행이 아니라,
영원을 얻는 놀라운 여행
목적이 있는 멋진 믿음의 여행의 동반자들로 여러분들을 만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기도하십시다.
[1] 김성수. (2017). 구약의 키 (3쇄 ed., p. 172).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생명의 양식.
[2] 김성수. (2017). 구약의 키 (3쇄 ed., p. 17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생명의 양식.
[3] http://ds-ch.org/sub10_04_03/11877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