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봉독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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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느헤미야 8:1-12
제목 : 성경봉독과 설교
오늘 읽은 말씀은 느헤미야의 말씀입니다. 느헤미야는 어떤 사람이었냐면 유대인이었는데 페르시아로 끌려가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느헤미야의 능력을 인정받아 왕의 술을 담당하는 자가 된 사람입니다. 왕의 술을 담당했다는 것은 곧 대단한 직위를 가졌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왜냐하면 왕이 마시는 술에 독을 타면 왕이 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왕의 신임을 받고, 왕에게 인정을 받는 자만이 술을 담당하는 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이었던 느헤미야가 왜 유대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페르시아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왜냐하면 그 유대 나라가 멸망하고 유대인들은 붙잡혀서 바벨론과 앗수르, 페르시아로 보내졌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시대 이후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었졌던 나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자 심판을 받아 동방의 나라로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도 그 때 끌려가서 페르시아로 오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갔다고 해서 이것을 포로기 시대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이 공격을 받아 불에 타고 허물어진 유대인들의 비극과도 같은 시기입니다.
그렇게 포로로 끌려온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자들의 소식을 늘 기다렸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을 끌고 간 것이 아니라 외모가 뛰어나고 지혜가 뛰어난 자들을 골라서 다른 나라로 데려갔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예루살렘에는 그들의 가족들이 남아있고, 그들의 친척들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이 느헤미야에게 찾아왔는데 그는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타고 성벽을 허물어졌다고 말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상당히 빠른 시기에 포로로 끌려왔기 때문에 아직 예루살렘 성이 건재할 때 그가 페르시아로 가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불타고 무너졌다는 이 소식을 듣고 그 마음이 매우 끊어질 듯이 아팠습니다. 자신의 친척들이 남아있는 그곳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인 예루살렘이 무너져내린 것에 대해 크게 낙담을 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근심에 쌓여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자 페르시아의 왕을 느헤미야를 보고 왜 그렇게 하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페르시아 왕은 느헤미야를 예루살렘의 성벽을 다시 쌓도록 그를 이스라엘로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 왕이 허락했다고 해서 성벽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유대인들의 모략도 있었고 주변 나라들의 방해가 계속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독려하고, 일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성벽이 완공되었고 예루살렘에 있던 백성들은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읽은 말씀이 그 다음의 내용입니다. 성벽이 완성되고, 예루살렘 성읍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1절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에스라를 통해 모세의 율법책을 듣습니다. 학사 에스라는 율법책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아가서 모든 사람 앞에서 그 율법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라가 모든 백성 앞에서 율법책을 읽으려고 그 책을 펴자, 모든 백성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이 율법책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살면서 결국 포로기를 맞이하고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는 결과를 맞이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소중한 것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에스라가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자 백성들은 그 찬양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그 하나님을 우리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에스라가 이 말씀을 읽었고, 그리고 읽은 그 말씀을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말씀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이 말씀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 울었습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는지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죄를 다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이 백성들은 울면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날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기 때문에 크게 즐거워하며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봉독과 설교의 원형입니다. 성경 봉독은 무엇일까요? 학사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책을 들고 그것을 읽은 것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율법책을 펼 때 자리에서 일어났고, 에스라가 하나님의 영광과 긍휼을 찬양할 때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백성들이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을, 또한 에스라가 성경을 읽었지만 그것은 에스라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라 믿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성경 봉독입니다.
설교는 무엇입니까?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책을 다 읽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그 뜻을 모르는 백성들에게 찾아다니면서 이 말씀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고,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밝히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성경 봉독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시간이며, 설교는 읽은 그 말씀을 밝히 깨닫게 하고,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이 순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에 교회의 공예배 순서에서 매우 중요한 순서입니다. 우리가 각 순서를 통해서 하나님께 점차적으로 조금씩 나아갔다면 그렇게 나아간 우리가 하나님을 드디어 만나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66권의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의 믿음과 하나님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남겨두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음성을 들려주시면 신앙을 지키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구약 시대처럼 환상과 음성을 통해서 말씀하시면 신앙을 지키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생각해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평생 하나님의 음성을 몇 번 들은 것이 끝입니다. 너는 네 고향을 떠나 내가 보여주는 땅으로 가라. 말씀하시고 몇 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 때 동안 하나님께선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 그것 하나만 의지하고 몇 년을 지나보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기록해주셨습니다. 기록한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이것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확신할 수 있도록, 우리가 이것을 펴서 읽음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구약 시대의 특별한 음성이나 환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록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기록한 말씀과 그 기록한 말씀을 설교자를 통해 설교하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이 바로 성경 봉독과 설교시간입니다.
우리는 설교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성경 봉독 시간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성경 말씀을 읽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 봉독 시간은 설교 시간보다 더 중요한 시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남겨주신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여러 시대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존하시고, 우리들에게 남겨주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그 말씀을 풀어서 우리에게 그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이지만 성경 봉독은 말씀 그 자체이며, 하나님께서 남겨주신 보석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풀어서 설명하지만 성경 봉독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이 순서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한국교회는 대체로 성경 말씀을 한 본문만 읽지만 유럽의 개혁교회들은 이 성경 말씀과 관련된 구약의 한 본문, 신약의 한 본문 그리고 시편 3가지를 다 같이 읽었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더욱 풍성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 약속하신 것이 신약 시대에 이루어진 그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성경을 읽는 이 시간을 마치 에스라 시대와 같이 일어서서 말씀을 받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이처럼 성경 봉독 시간은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성경 기자에게 영감하셔서 이것을 기록하셨는데 그 말씀을 직접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성경 봉독 시간은 매우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서 성경을 봉독하는 봉독자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고대 교회에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백성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이들이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전문가들을 교회 밖에서 불러와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후로는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예배의 직분자인 장로가 이 일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예배가 점차 순서가 짜여지고, 목사라는 직분이 생기게 되면서 성경 봉독을 설교자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설교자만큼 그 성경 본문을 깊이 연구하고 아는 교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설교자와 예배에 참석 교인들이 서로 번갈아가면서 교독하는 순서를 갖게 되었습니다. 예배에 자녀들이 참여하고 있다면 그들이 성경 구절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교독을 하게 했습니다. 성경 봉독의 방식에는 여러 방법들이 있지만 그만큼 이 성경 봉독의 순서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헌법에 보면 성경 봉독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4장 17조 성경 봉독입니다. ‘구약과 신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생활에 대한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칙이므로 봉독자는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신의 입장을 바르게 인식하고 엄숙히 해야 한다. 성경을 봉독할 때 청중은 일체의 잡념을 버리고 겸허한 마음과 진지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여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봉독할 때 이것이 하나님을 대신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을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봉독자는 복장과 외모를 단정히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달해야 합니다. 미리 성경을 읽어서 이 문장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끊어읽기나 이 문장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정확하고 바르게 전달해야만 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설교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성도들에게 깨닫게 합니다. 느헤미야 시대 때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깨닫게 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 설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설교를 향하여 예배의 꽃이라고 말합니다. 신학의 꽃의 예배고, 예배의 꽃은 설교라고 말합니다. 시간적으로도 설교는 예배 시간의 절반 혹은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다른 모든 순서를 합친 것과 설교가 비슷합니다. 성경 봉독은 1분에서 3분 정도 걸리지만 설교 시간은 20분, 30분, 1시간도 넘게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 설교의 시간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배의 순서에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점점 더 나아갔다면 이제 우리는 성경 봉독과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앞에 나아가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상하게 혹은 우리의 죄를 질책하시며 하시는 그 말씀에 집중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계셔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시간이 설교 시간입니다.
즉 설교 시간은 예배의 꽃이고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밝히 알도록 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설교를 하는 설교자는 설교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설교는 성경 봉독과는 다르게 기록된 성경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기 때문에 목사의 재량과 자유가 많이 개입됩니다. 목사는 처한 교회의 상황에 비추어 설교할 본문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고, 본문 안에서 여러 주제가 있다면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설교할 수 있습니다. 목사의 재량에 따라 설교가 좌지우지 됩니다. 그렇지만 성경 봉독은 그러한 설교자의 엇나감을 막아줍니다. 설교는 성경 봉독과 함께 하기 때문에 설교자의 설교가 말씀에서 엇나갈 때 성경 본문은 그것을 잡아줍니다. 설교는 목사의 신념이나 목사의 목회철학을 전하는 것이 되어선 안 되고 봉독한 성경 구절에 근거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설교는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공적인 선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청중들에게 전하고 말씀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할 당시에 영감하신 것처럼 설교를 듣는 청중들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셔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이중영감이라고 합니다. 성경 기록자에게 영감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듣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영감시켜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감은 밝히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을 읽기 전에 조명을 위한 기도를 합니다.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서 이 말씀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처럼 설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성경을 근거로 옛 언약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선 옛날에 말씀하시고 끝난 분이 아니라 기록한 말씀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씀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와 만나주시고, 우리를 불러주시고, 말씀하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배를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 예배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배를 드리는 청중은 성경 봉독과 설교를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청중은 설교 본문을 미리 읽고 그 뜻을 묵상해야 합니다. 또한 설교자의 설교에 복을 주셔서 그 말씀이 제대로 전달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듣기 지침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1. 설교 내용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2. 설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3. 설교는 이웃과 주위 환경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 가지라고 하는가?
4. 설교의 어떤 부분이 나와 교회를 향하여 특별하게 말하고 있는가?
5. 설교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
6. 어떤 태도를 가져야 설교가 잘 전달되도록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지침을 통해 우리가 말씀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더 나아가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확인하고, 마음에 새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성경 봉독과 설교는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직접 만나 말씀하시는 시간입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동일한 언약의 백성인 우리들에게 찾아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배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 시대 때 백성들이 말씀 앞에 겸손히 회개하고 눈물 흘린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그 백성들이 말씀을 깨닫고 즐거워한 것처럼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의 꽃인 하나님의 말씀 시간 곧 성경봉독과 설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