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Notes
Transcript
공예배는 언약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와 주시고, 우리는 삼위 하나님께 반응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일하시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반응하는 것. 2가지 순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언약에 대해서 말할 때 하나님께선 일하시는데 우리는 반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향하여 일한다고 하지 않고, 반응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로 반응하고,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공해주신 것으로 하나님께 반응을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이것이 잘 드러나는 것이 ‘헌금’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헌신과 감사를 나타냅니다. 매주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그 하나님께 충성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사실에 감사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사와 헌신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순서가 헌금입니다. 미국의 CRC 교단의 예배위원장이었던 제임스 드 종 목사는 이러한 예배의 모습을 보면서 교회의 성도들을 ‘헌신된 자들의 공동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배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을 향한 반응들을 ‘헌신으로서의 예배’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온전한 헌신’이라고 말했고, 십계명은 ‘감사의 헌신’으로, 헌금은 ‘비이기적인 헌신’이라고 불렀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자신의 것이라 고백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려드리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드 종 목사가 말한 것처럼 예배는 곧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시간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마음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감사로 다시 돌려드리는 시간입니다.
헌금이라는 표현은 ‘돈을 바친다’는 뜻인데 신앙의 선배들은 헌금보다 연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헌금은 돈을 바친다는 행위 자체를 말한다면 연보는 헌금의 목적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재물을 내어서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는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연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합니다.
예배 시간에 하는 헌금이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인가, 아니면 우리의 이웃을 돕기 위한 기부금인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보를 거둔 예를 사도 바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 교회에 복음을 전하였고, 복음을 통해 세워진 이방 교회를 향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교회를 위해 연보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기근으로 인해 큰 곤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을 겪는 예루살렘 교회를 향하여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향하여 연보를 하는 것은 복음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을 받은 자들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이웃 교회를 향하여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합당한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서 연보의 중요성에 대해 길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를 포함한 이방인 교회들에게 사도가 요청한 연보는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구제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회의 예를 들고 있는데 마케도니아 교회가 큰 환란과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도 예루살렘을 향한 구제를 크게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을 보겠습니다. 8장 2절부터 5절까지 내용을 읽어보겠습니다.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고후8:2-5) 마케도니아 교회는 이 일이 자신들에게 큰 특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고,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이 연보하는 행위를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말씀을 보겠습니다. 9장 13절 말씀을 보시면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라고 말합니다. 이 직무 곧 연보를 증거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어떤 증거입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믿고 있는지 연보를 통해서 확인하겠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 연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헌금은 예수님을 너희가 잘 믿고 있는지 확인하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바울이 이방교회를 향해 연보를 요청하면서 이렇게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연보가 너희의 믿음을 드러낸다고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연보를 받는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교회가 한 연보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 이방 교회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우리랑 같은 교회가 이니기 때문에 이것을 받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방 교회는 그들 스스로 자원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연보를 내어주었고,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기꺼이 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그 연보를 기쁨을 받았고 이방 교회도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을 확인하고 복음을 서로 주고 받았습니다. 연약한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주는 것으로 한 공동체라는 것을 확인했고,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것이 은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연보를 통해서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였고, 하나님의 한 교회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한 형제 자매들이 서로의 어려움을 도와주고, 궁핍함을 채워주면서 서로 같은 은혜를 받은 자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실 때와 비슷합니다.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는데 모든 사람들은 만나를 가족의 양에 따라 거두어 갔습니다. 각자 만나를 거두어 온 다음에 가족별로 필요한 분량을 위해 서로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르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위해서 나누어주고 거기에 만족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만나 때와 같이 연보도 평균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많이 가진 자들이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내어주고, 또 연약한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또 다른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내어주었습니다. 한 교회가 풍요롭다면 연보를 통해 궁핍한 교회의 어려움을 채워주는 평균하게 하는 원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통해 우리는 은혜에 참여함을 얻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헌금은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확인하는 것이고, 평균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예배 시간에 행함으로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한 백성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을 채워줍니다.
헌금 중에서도 대표적인 헌금을 들자면 십일조 헌금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만큼 십일조를 잘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카톨릭 교회는 개신교회의 십일조를 굉장히 부러워합니다. 왜냐하면 카톨릭에서는 십일조 개념이 없고 모든 신자들이 교무금이라고 해서 정기적으로 내는 것이 있는데 십일조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십일조를 왜 할까요? 하나님께선 율법을 통해 십일조 제도를 확립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십일조는 특별히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전을 위해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의 생활을 위해서입니다. 레위인들은 다른 지파들과 다르게 땅을 얻지도 못하고, 거기서 농산물이나 가축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에 나머지 지파들이 십일조를 내어서 레위인들의 생활을 지탱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로 하여금 성전을 잘 관리하고 예배를 주관하도록 채워주었습니다. 또 다른 목적은 연보라는 말과 같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금으로 십일조를 사용했습니다. 사실상 구약 시대에서 십일조만 드린 것이 아니라 거의 십의 삼조를 드렸습니다. 레위인들을 위해서,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절기별로 내어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에는 어떻게 행했을까요? 신약 시대에도 복음을 전하는 자 혹은 감독 지금으로 치면 목사를 위해서 헌금을 나누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연보를 받은 것에 대해서 일부러 그것을 받지 않음을 통해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진리라는 것을 나타내었지만 그 때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위해 헌금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방인 과부들을 구제할 목적으로 집사를 세웠습니다. 그들을 구제하는 연보를 모았고 그들에게 적절히 배분되도록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십일조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정기적으로 복음 전하는 자와 가난한 자를 위해서 헌금을 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신약에서는 오히려 십일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십 중에서 십이 전부 하나님의 것임을 말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개혁교회들은 십일조라는 것을 따로 하지 않습니다. 신년이 되면 교회에 필요한 예산을 짜서, 목회자 생활비를 포함해서 예배비, 건물 유지 등에 필요한 예산을 짜서 교회 앞에 공지한 뒤에 각 가정이 이 예산에 맞게 헌금할 액수를 내도록 합니다. 그래서 그 금액을 합산하여 모자라면 다시 공고해서 얼마나 모자르니 더 헌금을 내라고 요청합니다. 이렇게 해서 유럽 교회는 새 해 지출 부분을 미리 채웁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 교회의 십일조에 해당합니다 교회의 필요한 지출 예산을 각 교인들이 나누어서 자원하여 헌금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하고 나서 주일예배마다 나오는 헌금은 모두 연보가 됩니다. 집사회가 중심이 되어서 구제가 필요한 곳을 작성해서 헌금을 요청합니다. 매 주일마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헌금을 했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이러한 목적 헌금, 구제 헌금은 성찬식 때 이루어졌습니다. 고대 교회는 신자들이 집에서 먹을 것을 가지고 와서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성찬을 행했습니다. 성찬을 다 행하고 나서 성찬 테이블 옆에 집사들이 준비해놓은 헌금 바구니에 연보를 하며 헤어졌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몸을 주의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신 것을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헌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이 연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그것을 다시 이웃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은혜에 참여함을 얻었으며, 자신의 신앙을 나타내었습니다.
이처럼 예배 속에서 헌금이 일어나기 때문에 교회는 직분자를 세워 이 헌금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집사입니다. 처음 집사직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과부들을 구제할 목적으로 세웠습니다. 성찬의 식탁 봉사를 위해 집사를 세웠습니다. 초창기에는 사도들이 이 일을 맡고 있다가 교인이 많아지자 이 일까지 하기엔 너무 벅찼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자신들이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겠다고 결단하고 집사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집사의 직분이 중세 시대로 넘어가면서 고위 성직자 즉 신부를 수종드는 하위 성직자가 되면서 집사의 제대로 된 역할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예배를 다시 회복하면서 예배를 수종드는 집사의 직분도 회복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돕고 구제하도록 집사를 세웠습니다. 종교개혁은 이 집사직의 회복으로 당시 교회들에게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도 집사직은 교회 재정을 관리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구제와 교회 재정 전반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사는 성도들을 잘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배를 위해서 세워진 직분자들은 각기 자신의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하는데, 목사는 말씀을 제대로 선포해야 하고, 장로는 말씀을 감독할 뿐 아니라 그 말씀으로 회중을 잘 감독해야 합니다. 그리고 집사는 물질적인 부분을 포함하여 회중 가운데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보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의 교제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도록 돌아보아야 합니다. 물질적인 가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과 외로움을 겪고 있는 성도들을 돌아보는 일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말씀이 구체화되도록,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하고 실천하는 직분이 바로 집사 직분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예배 중에서 헌금을 강조하였고, 헌금을 잘 지키토록 하기 위해서 집사의 직분을 세웠습니다. 헌금과 집사의 직분은 교회가 은혜 가운데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그 은혜를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에게 직접 베풀도록 하여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헌금은 이것 자체로 하나의 예배 순서입니다. 헌금 시간에는 오르간이나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헌신을 받아주시길 기대하며 헌금에 참여합니다. 헌금을 하고 난 다음에 예배 인도자는 헌금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 헌금을 통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도록, 또한 하나님께서 그 성도의 사랑과 헌신에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헌금 시간을 통해 성경 봉독과 설교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행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우리가 순종하는 것을 나타내고, 성도의 사랑과 평균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합니다. 또한 집사를 세워서 이 일을 잘 감당하도록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문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