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과 사도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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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신명기 5:1-21
제목 : 십계명과 사도신경
우리는 계속해서 언약적 예배와 예배의 순서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언약적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를 그분의 백성으로 삼아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 계속해서 일하고 계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번갈아 가면서 교제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언약적 예배입니다.
그리고 예배의 순서를 우리가 살펴보았는데, 예배에서 가장 처음 순서는 예배로의 부름입니다. 예배로의 부름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도우심입니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라고 말한 시편 124편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셨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의 시작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그리고 예배의 부름 다음에 나오는 것은 기원입니다. 기원은 곧 하나님의 인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입니다 라고 말했다면 하나님께선 이제 그 대답을 들으시고 우리를 향하여 인사를 해주십니다. 이 하나님의 인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은혜와 평강입니다.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나의 도움을 의지하는 너희에게 내가 은혜와 평강을 준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는 모든 순서까지 은혜를 주고, 예배가 끝나더라도 내가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인사, 기원입니다.
하나님의 인사를 받은 다음에는 어떤 순서가 옵니까?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시겠다 말씀하신 하나님께 우리는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자비로우심, 은혜가 풍성하심, 그분의 선하심을 우리는 우리의 입으로 고백하며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이것이 지난 번까지 우리가 배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다룰 말씀은 바로 십계명과 사도신경입니다. 십계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입니다. 구약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그런데 신약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왜 십계명을 가져올까요? 예수님께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큰 계명을 주셨는데 왜 굳이 십계명을 예배 시간에 낭독할까요? 왜냐하면 복음과 율법은 서로 반대되고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약속이 율법을 끌어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그저 이것 해라, 저것은 하면 안 된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은 구약에서만 사용되고, 신약에서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십계명은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지도하고, 가르쳐주는 언약의 말씀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인 종교개혁자들은 교리문답을 작성할 때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십계명에 대한 해설을 넣었습니다. 왜냐하면 십계명 속에 하나님의 뜻이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 십계명이 모세의 시대 때 주어졌기는 했지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바로 우리들을 위한 것이 십계명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십계명이라고 말하면 구약에서만 사용된 것이라는 생각을 주는 것 같아서, 십계명이 아니라 언약의 열 가지 말씀들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언약의 열 가지 말씀이라는 말을 통해서 이 십계명이 신구약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주신 언약의 말씀인 것을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상황과도 잘 맞습니다. 성경 속에는 십계명에 관한 내용이 2번 나오는데 하나는 출애굽기 20장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5장입니다. 출애굽기 20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고 나서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주셨습니다. 즉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신 뒤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것들을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언약 관계를 맺은 자기 백성에게 지켜야 할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것은 구약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약 백성인 신약 백성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또한 신명기 5장은 이제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앞에 두고 40년 광야 생활을 다 지내고 난 뒤 다음 세대들에게 선포한 언약의 말씀입니다. 너희 조상들에게 주신 이 언약의 계명들은 다음 세대인 너희에게도 적용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십계명은 언약의 모든 세대들을 향하여 말씀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통하여 언약 백성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다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 교회는 언약의 열 가지 말씀들을 그대로 낭독하면서 자신들이 구약 시대로부터 이어지는 그 언약 백성의 후예인 것을 고백합니다. 십계명을 읽으면서 우리가 이것을 다 지키겠습니다라고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들에게 주신 첫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을 믿고 고백하면서 십계명을 낭독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배의 순서 때 십계명을 고백하는 것은 우리가 구약에서 이어지는 언약의 백성들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주전 4천년 전부터 이어지는 그 언약의 역사들이 우리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이 십계명을 예배의 순서 가운데 넣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신약의 성도들이 십계명을 온전히 다 지킬 수 없지만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다 지키셨다는 것을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영광을 돌립니다. 십계명을 낭독하면서 이것을 다 이루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십계명이 예배의 순서 가운데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는 많은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낭독하면서 예배하기 전에 신자들이 개인적으로 마음을 준비하고, 십계명을 통해 회개하고 나서 예배에 참석하라고 말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설교 전에 넣기도 하고, 설교 후에 넣기도 했습니다. 설교 전에 십계명을 읽는 것은 주로 회개를 일으키기 위함입니다. 온 성도들이 예배 가운데 십계명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주로 이것을 말한 것은 마틴 루터입니다. 루터는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는 도구라고 보았기 때문에 십계명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나면 그 다음으로 설교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죄 많은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루터와 반대로 설교 후에 십계명을 읽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칼빈입니다. 칼빈은 십계명이 죄를 깨닫게 하는 것도 있지만 감사를 나타내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뒤에 십계명을 낭독함으로 성도들은 이제 한 주 동안 세상에서 살아갈 자신들을 위한 지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맞을까요? 설교 전에 십계명을 낭독해야 할까요? 설교 후에 십계명을 낭독해야 할까요? 이것은 교회가 자유롭게 정하면 됩니다. 예배의 순서는 교회의 당회에서 결정하여 이 예배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비록 로마 가톨릭은 어느 성당을 가던지 그 예배의 순서가 거의 동일하지만 우리 기독교는 교회마다 예배의 순서가 다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교회의 당회에서 예배의 순서를 정하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순서를 그 지역 성도들의 특성에 따라 자유롭게 구성하면서 그 예배의 영광과 의미를 더욱 깊이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십계명의 순서가 어디에 있습니까? 설교 전에 있습니다. 설교 전에 우리가 십계명을 낭독하면서 이 십계명대로 우리가 행하지 못하였음을 고백하고,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이 십계명을 완전히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도록 만듭니다. 그런 뒤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듣고, 그분을 더욱 의지하도록 만듭니다. 또한 십계명은 우리가 언약 백성이라는 것을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그 십계명을 우리도 동일하게 받으면서 그들과 우리가 동일한 언약 백성이고,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 순서 가운데 십계명이 있는 이유입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십계명은 우리가 구약 시대의 백성들과 동일한 언약 백성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순서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아래 이어져 온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한 십계명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을 붙잡게 하며, 그리스도를 의지하도록 만듭니다. 예배의 부름을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사를 받아 은혜와 평강을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을 더욱 붙잡으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그런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계명 다음에 오는 것이 사도신경 곧 신앙고백의 순서입니다. 성경에서는 신자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여기서 ‘시인하다’는 말은 바로 공개적인 고백을 말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나의 주라고 고백하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앞에서 이 자가 내 백성이라 고백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항상 고백이 중요합니다. 마음으로 믿고 난 뒤에 그런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입술과 우리의 행동을 통해 드러나고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은 성경 말씀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이것은 초창기 교회에서부터 이어져온 고백입니다. 사도신경을 열 두 사도들이 만들었다고 해서 사도신경이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과 그들의 신앙고백에 기초해서 작성된 신경이라고 해서 사도신경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사도신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성부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그분께서 창조와 섭리를 행하셨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성자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동정녀 탄생부터 시작해서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승천을 거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또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것을 고백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하나님을 향한 고백은 교회와 성도의 교제, 죄 사함과 부활과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고백할 때, ‘성령을 믿사오며’에서 끝나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뒤에 나오는 모든 내용들이 다 성령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즉 이처럼 사도신경을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신경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고백하며 나아갑니다.
사실 이 사도신경의 기원, 사도신경의 처음은 세례를 받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초대 교회 때 세례문답을 보면, 세례를 베풀기 전에 질문을 했습니다. 맨 처음에 성부 하나님을 믿느냐고 묻고 믿는다고 고백하면 머리에 손을 얹고 그 머리를 물에 잠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성자 하나님에 대한 내용을 죽 읽고 믿느냐고 묻고, 또 그 질문에 믿는다고 대답하면 또 물 속에 넣었습니다. 또 성령 하나님에 관해 묻고 답을 하면서 물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이렇게 세례 받는 사람을 가르치고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하게 한 것이 발전해서 사도신경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마지막 구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이 근거가 되어서 작성된 것이 사도신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례로부터 시작된 고백이 이제는 예배 순서 가운데 들어와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짐과 높아짐을 고백하고 노래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교회는 고백하는 교회였습니다. 우리는 이 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아서 예배의 순서 때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이 고백을 통하여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이어져 온 교회의 역사를 이어받습니다. 십계명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면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신앙고백, 사도신경을 통하여 고백하는 것입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이 신앙고백의 위치는 매우 다양하게 바뀌었습니다. 예배의 시작에서부터 끝 부분까지 계속해서 순서를 옮겨 다녔습니다.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이 순서를 예배 순서의 집시라고 별명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집시처럼 이곳, 저곳을 왔다, 갔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곧 교회가 이 순서를 잘 활용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노력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한국 교회는 전통적으로 예배 시작 부분에 이 신앙고백을 배치했습니다. 복음을 접하지 못한 한국 사회 속에서 예배의 시작 때 신앙고백을 먼저 한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닙니다. 마치 세례를 받는 것처럼 우리가 믿는 분이 어떤 분인지를 먼저 고백하며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 곧 신앙고백을 요약하자면 이 순서는 교회의 온 회중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간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주일에 휴식을 취하고, 여행을 다니지만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그 시간에 삼위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하나님을 우리의 주로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동시에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은 초대 교회에서 고백하던 그 고백을 우리도 이어받아 함께 고백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그 가르침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그것을 우리의 신앙으로 삼겠다는 시간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십계명과 사도신경을 살펴보았습니다. 십계명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동시에 우리가 언약의 백성인 것을 나타내는 순서였습니다. 사도신경 또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고백하고 초대 교회로부터 이어져 온 역사와 전통을 유지하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서입니다. 그렇기에 이 두 순서는 서로 공통점을 갖습니다. 바로 옛 언약 백성들과 지금 우리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받을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지금 우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들이 고백한 신앙을 우리도 고백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십계명과 사도신경을 고백하면서 우리가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의 인사를 받은 우리가 십계명과 신앙고백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나아가는 순서입니다.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붙잡으며, 삼위 일체 하나님을 우리의 입으로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점점 더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시간은 굉장히 역동적입니다. 비록 우리가 예배 시간에 자리에 앉아있지만 그 순서는 우리를 더욱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고,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 앞에 계신 것처럼 만듭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우리는 우리의 입술로 고백하고, 찬양하며, 그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그분을 붙잡고, 의지하도록,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우리는 산성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이 예배는 한국 교회와 동시에 예배드리는 것과 같으며, 이 시대를 뛰어넘어서 초대 교회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과 동일하게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온 교회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찬양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시간입니다.
십계명과 신앙고백을 통해 더욱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