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을 구원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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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디모데전서 1장 12~17절
제목: 죄인을 구원하심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디모데에게만 보낸 것이 아니라 디모데가 담임하고 있는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도 보내졌습니다. 따라서 이 편지는 에베소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지난주에는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우리의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눈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15절이 바로 오늘 말씀의 중심 구절입니다. 15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미쁘다는 말은 곧 믿을만하다는 말입니다. 우리 말로 의역하면 이렇게 바뀝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만큼 믿을만한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무엇을 강조합니까?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지난 주 말씀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배우면서 우리는 율법이 곧 우리를 죄인인 것을 밝히 드러낸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통해 나는 죄인이구나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는데, 오늘 말씀은 그 예수님께서, 우리가 바라본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졌습니다. 우리 모두 죄인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이 죄인들을 구원해주셔서 교회로 삼아주시고, 거룩한 자라 불러주시며,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기초였습니다. 바울도 예수님의 구원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꺼내놓습니다. 13절을 보시면, “내가 전에는”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변화 받게 되었는지 설명합니다. 바울은 본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선생 가말리엘 밑에서 유망한 유대 지도자로 키워졌던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그들의 생명을 쥐락 펴락하던 자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어떻게 말합니까? 자신은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폭행하던 자였습니다. 그는 스데반 집사를 죽게 만든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그리스도인들조차 바울이 회심했을 때 자신들을 붙잡으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라 말할 만큼 격렬한 유대주의자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바울은 부르셨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하면서 그 마지막에...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그토록 죄인이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자였지만 그도 구원을 얻었습니다. 훗날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자들이 바울을 보고 나도 구원을 얻을 수 있구나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된 사람들 중에 죄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마음으로 죄를 지은 사람 뿐 아니라 실제 사회 속에서 법률적인 죄와 사회적 죄를 지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런 사람이 교회를 다녀도 되나 생각할 만큼 교회 안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바울은 증언합니다. 그런 죄인조차도,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자들이라도 구원을 얻게 됩니다. 물론 구원을 받은 뒤에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았던 악한 삶들에 대해 책임을 지고, 그것을 갚아나가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떠한 죄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어떠한 행동이나 마음을 보시고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아마 그렇게 구원하시기로 약속하셨다면 우리는 어떤 구원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긍휼한 마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너무나 불쌍해서, 죄 가운데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원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7절입니다.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은 자신이 구원받은 사실에 대해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자신은 구원받을 수 없는 자인 것 같았는데, 그런 절망 속에 살았는데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셨다는 그 사실에 감격하며 나아갑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이 사실을 굳게 믿으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우리 안에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죄가 우리 속에 숨어있다가 어떤 상황을 딱 마주하면 사자가 풀숲에서 뛰쳐 나오듯이 죄를 짓게 됩니다. 또한 우리 마음 속에 얼마나 많은 죄가 있습니까?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부러움과 비방하고 욕하는 것들이 우리 속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러주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말씀에 기록된 복과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 기반 위에 교회는 세워집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이 믿음을 굳게 붙잡고 또 이것을 매번 강조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신 말씀을 우리의 마음 깊이 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이 두 측면을 우리가 마음 깊이 새길 때 교회는 바르게 세워질 것입니다. 첫 번째 측면은 바로 우리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 지 생각해야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이를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지 생각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악한지를 생각하면 그 구원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뉴스를 보십시오. 악한 일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미투 운동으로 고발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적인 문제들과, 사기, 거짓 정보로 돈을 취하는 것, 사회적 약자들의 돈까지도 빼앗아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모습, 사회적으로 고립되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 고립에 못 이겨 자살까지 하게 만드는 일이 이 사회에 넘쳐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그런 상황에 오면 죄를 짓게 되는 유혹이 가득가득 솟아오릅니다. 이것이 사람의 비참함입니다. 죄를 지을 수 밖에 없고, 또 그것이 우리에게 패망의 길과 실패를 불러일으킬 것을 알고도 죄를 짓습니다. 죄가 그토록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를 예수님께서는 구원해주셨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예수님께서 구원해주셨습니다. 이것이 구원을 바르게 인식하는 첫 측면입니다. 우리는 성도들을 바라볼 때 죄가 많은 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연약함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죄인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어떻게 말합니까? 자신은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합니다. 여전히 죄의 영향 속에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도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두 번째 측면은 구원의 기쁨과 가치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구원을 얻음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주어졌는지 살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제는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죽을 자가 아니라 산 자가 됩니다. 영원한 생명 곧 부활의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로 덮여 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원래 죄인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즉시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그 피가 우리를 덮어서 우리를 의인이라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던 자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함께 기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기쁨과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불확신 속에 살아가지만 우리는 확신 속에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과 우리가 그 분 아래서 거닐며 새롭게 태어날 것을 확신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평안이 주어집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송하면서 기쁨을 얻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우리의 입술로 찬양하면서 나에게 이루어진 이 놀라운 사실을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이해하는 두 번째 측면입니다.
우리는 두 측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구원을 바르게 알 수 있고 교회를 바르게 세울 수 있습니다. 곧 우리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지,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이 얼마나 큰 지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큰 기쁨이 있기 때문에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보다 이 기쁨이 더 크고 영광스럽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교회는 바르게 세워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구원의 영광을 기억할 때 교회는 견고하게 세워집니다. 나에게 있는 무언가를 찾기보다 주님께 있는 것을 찾으며,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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