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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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views우리는교회는 무엇을 위해 부름을 받았는가? - 우리가 부르심받은 공동체입니다. 리액션이 중요합니다. 는다라는 말보다 닮다라는 말에 주목합시다. 교제는 교회의 강력한 힘입니다. 회원이 아니라 제자임을 기억합시다.
Notes
Transcript
주의집중
주의집중
우리는 교회 1년을 축하드립니다. 사실 저도 19년 첫주에 성서유니온선교회에 정식으로 사역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저랑 생일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목사님 여기 내려오셔서 개척하신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있는데 여러 우여곡절 끝에 이런 귀한 공동체가 있음을 너무 감사드립니다. 진작 오고 싶어 했는데 이제야 왔네요!
문제제기
문제제기
처음에 설교를 부탁받고 이런 저런 것 생각하다가, 다 바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늘 이 공동체를 향해 어떤 말씀을 주실까! 매일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매일 성경을 봤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공동체를 위한 말씀이 딱 있더군요!
정답암시
정답암시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저를 통해 여러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이것이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였는데,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 은혜받아서 다섯가지 주제나 봤는데, 노여워마시고 귀를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설명
설명
1.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1.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벧전 3:9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라고 표현합니다.
이 부르심을 알려면 베드로전서 1:1-2 로 넘어갑니다.
이게 이 베드로전서 처음 인사로서 여기에 발신자와 수신자가 나옵니다.
발신자는 누굴까요? 네! 발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라고 합니다.
수신자는 누굽니까? 수신자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지아에 흩어진 나그네라고 표현합니다. 이 지명들은요, 소아시아라고 불렀던 지금의 터키 지역의 여러 지역을 이야기 합니다. 지금 이 편지는 여러 지역에 교회들에게 돌아가면서 읽으라고 보낸 편지이기 때문에 수신할 여려 교회들의 지역 이름을 부른 것이죠.
오늘 여러분들이 베드로 사도의 편지를 보고 있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여러분의 지역 이름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김해에 있는 나그네들이라고 추가될 수 있겠죠!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의 부르심의 정체성이 나옵니다.
2절에 있어요.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
우리는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예수님이 피 뿌림을 주셨고,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택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걸 벧전 1:15 절에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그것이 바로 “너희’라고 표현합니다.
여러분! 이름 잘 지었습니다. ‘우리는 교회’ 여러분! ‘ ‘우리’가 바로 교회이고, 우리는 9절 말씀대로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고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이 복이 어떤 복일까요? 2:9절에서는 이 ‘우리’가 어떤 복을 누리고 있는지를 더 자세히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우리가 모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오늘 여기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부르셨습니다. 내가 그 복을 누리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피 뿌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누구에게요. 바로 ‘우리’에게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또 예수님의 역할을 주셔서 왕이요, 제사장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요 “우리는”이요
교회 그러면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목사님도 아니고, 나를 포함한 ‘우리’가 교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교회들입니다.
2. ‘리액션’이 중요합니다.
2. ‘리액션’이 중요합니다.
부르심을 받았다면 이 부르심은 반드시 리액션을 필요합니다.
리액션은 반응하는 것입니다.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 베드로전서는 1:1-2:10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은혜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조금전에 부르심 받은 장면에 대해서 살펴봤지요? 그렇다면 2장부터 나머지 5장까지의 말씀은 모두다 리액션의 대한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1:15절에서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이 누리고 있는 이 복속에 우리를 초청했다면,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 첫번째 리액션은 바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10절부터 11절을 보면 잘 나옵니다.
베드로전서 3:10–11 (NKRV)
10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네! 악한 혀와 악한 말과 악한 행실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돌이킴이죠. 회개라고도 합니다.
베드로는 1:14절에서는 예전에 따르던 욕심을 본받지 말라고 했고. 2장 1절에는 모든 악독과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했고, 2:11절에서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았으면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개척된지 1년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함께 계셨던 분들도 계시고, 중간에 합류해서 오신 분도 있겠지만, 어쨌든 1년이라고 생각하고 돌아보십시오.
1년 전의 나와 1년 후에 지금 나의 모습이 달라지셨습니까? 여러분! 1년 전에나 지금이나 동일한 죄를 짓고 있다면 아직도 우리를 우리로 부르신 이에게 돌아서지 않고 여전히 악한 행실을 살고 있다면 돌아서시기 바랍니다.
부름받은 사람답게 리액션하시기 바랍니다.
3. ‘는다’라는 말보다 ‘닮다’라는 말에 주목합시다
3. ‘는다’라는 말보다 ‘닮다’라는 말에 주목합시다
리액션의 두번째 반응이기도 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면, 처음에 필요한 것은 돌이킴이고, 두번째 필요한 것은 닮아감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하라는 것을 보십시오.
8절부터 9절까지 보시면 너희가 다 마음을 같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누구의 모습일까요?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면 이제 우리는 점점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야 합니다. 여기 있는 그 누구든, 그 개인이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이 공동체인 우리가 모였을 때 우리가 하는 사업과 계획, 또 교제하는 것, 회의하는 것, 예배하는 것 이 모두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세상에 지탄을 받는 이유는 교회가 예수는 닮지 않았는데, 자꾸만 교회 오라고 전도만 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한 번은 오지만 두 번은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제발 사람이 ‘느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사람이 여러분! 예수 닮은 ‘우리’가 되시길 바랍니다.
4. ‘교제’는 교회의 강력한 힘입니다!
4. ‘교제’는 교회의 강력한 힘입니다!
방금전에 우리는 예수님을 닮고 닮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면 8-9절의 모습과 같이 예수님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렇게 닮아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8절 시작할 때 나온 ‘너희가 마음을 같이 같이하여!’라는 말입니다. 이 ‘같이 하여’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같은 마음으로’라는 의미입니다. 영어번역으로는 of one mind 같은 마음으로, 또는 be like-minded 비슷한 마음으로, harmonious해서 조화롭게 해서 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혼자서는 못한다는 말입니다. 함께 마음을 뭉치고 조화롭게 해야 한답니다. 어떤 마음이요?
빌립보서 2:5 절에 보면 사도바울도 똑같은 것을 이야기 하는데요.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네! 예수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2을 보면 이제 너희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맞아요. 이것이 교회에 필요합니다. 한 마음으로 한 뜻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려면 우리에게 필요한게 있습니다.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 함께 나누는 교제입니다.
서로 자주 만나십시오. 서로 보고싶어 하십시오.
분명히 붙어 있으면 싸웁니다. 우리가 죄인이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8절을 보면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고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등등 이야기 하는데 이거 누구부터 하라고 합니까? “형제를 사랑하며”입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형제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혹 형제가 잘못을 저질러도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마십시오. 복을 빌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거든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드러낼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 모든 사회는 비대면의 시대로, 거리두기 시대로 흘러가고 있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거룩한 교제를 하셔야 합니다. 코로나를 옮기는게 아니라, 최대한 조심해야죠! 그러나 예수를 나눠야 합니다. 여러분! 말씀으로 삶을 나누십시오. 1장 22절에서 말씀하듯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십시오.
5. ’회원’이 아니라 ‘제자’입니다.
5. ’회원’이 아니라 ‘제자’입니다.
회원과 제자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보통 회원은 어떤 분입니까?
헬스장, 수영장, 테니스장 등에 등록한 사람들이 회원 아닙니까? 교회에서도 사실 회원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요. 남전도회원 여전도회원.. 등등이요. 회원은 돈을 쓰고 내 멋대로 하면 하고 말면 마는 사람이지만, 제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돈을 내고 스승을 따라가는 자입니다. 회원은 내 권리를 주장하지만 제자는 진리를 위해 내 권리를 포기하고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회원이 아니라 제자입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심석보 목사님의 따라가는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과 행동을 따라가는 제자들입니다.
왜 제자입니까?
9절을 보면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는데,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복은 딴 복이 아닙니다. 앞에서 나왔던 주님의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으로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긍휼을 입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누구한테 온다구요? 마음을 같이 하여 동정하여 형제를 사랑하여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예수님의 모습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그 복이, 우리에게 이어받게 된다는 거에요.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보이신대로 선을 위하여 고난받고 핍박받으면서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도리어 복을 비는 존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아내는 공동체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고난받고 사셨다면, 우리도 그를 따라 살 것이고, 예수님이 하늘의 영광을 받으셨다면 우리도 그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공동체 우리 중 누구 한 명을 꺼내놔도 작은 메시아! 대문자 M을 쓰는 메시아가 예수님이라면, 우리는 소문자 m을 쓰는 작은 메시아가 되어야 합니다. 누구를 통해서도 예수님의 흔적을 발견하는 그분의 제자가 됩니다.
그 때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우리가 이어받고, 이제 그 복을 이 동네에 퍼뜨려서 이 동네가 천국가기 쉽고 지옥가기 어려운 동네로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더 많은 동네 사람들이 이 우리에 합류해서 복을 이어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리가 제자로 살 때요!
결론
결론
이 다섯가지 ‘우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부르심받은 공동체입니다.
리액션이 중요합니다.
는다라는 말보다 닮다라는 말에 주목합시다.
교제는 교회의 강력한 힘입니다.
회원이 아니라 제자임을 기억합시다.
눈치 채신 분이 계시겠지만 앞글자를 따면 ‘우리는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생기고 1년 동안 목사님 직간접적으로 심목사님의 부담과 애로사항을 잘 보고 느꼈습니다. 코로나 사태까지 터져서 더 힘들겠지요. 하지만 세상은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교회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동체인 우리가 예수를 닮은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면 이 세상에서 핍박과 고난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성경이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교회임을 기억하시고 예수를 닮아 선을 따라 고난을 받아 그 약속을 소망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12절 말씀과 같이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에 간구에 기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그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을 소망하며 한 해 두 해가 지날수록 우리는교회가 그리스도의 이 복을 점점 더 이 지역에 넓혀나가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