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4:21-23 (이동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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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모세
5번 정도 부르심을 거부하다가 이집트로 가게 된다.
바로 앞에서 행해야 할 것,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를 알려주신다.
주해하겠습니다.
사역)
이집트에서 행할 경고 - 그때 마지막에 행할 재앙을 한다.
신학적 주제)
바로에게 하나님께서 하시셨다. 완악함의 책임이 여호와께 있는 것 아닌가. 중세 시대, 계몽 주의 시대도 논쟁의 주제다.
2. 맞아들 관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제
완악하게 하셨다는 의미는 - 심판 당하는 것이 부당한가요? 움베르토 카스토는 두 가지 견해로 - 1) 표현 배후에는 절대주권의 고대 히브리 신앙관이 있다. / 감기 몸살이 걸렸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셨다. 병들게 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유속에는 - 모든 국면을 통치하신다는 것/ 2. 억압 억제에 대한 이전의 심판이다. - 종국적으로 징벌하심이다. 완고함, 완악함은 이전의 죄악의 심판이다. 구원계획의 성취로 이해한다.
결론 - 바로의 책임이다.
원인자, 조성자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9번 징계 -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효 그걸 보여주는 것이다.) 람세스 2세는 자신애를 가진 최장수 바로였다. 고대 문헌에 - 자식을 잃었고 그 후에도 다른 자녀들도 잃었다고 한다./
뉘우치고 돌이켰다면 - 과연 /
징계가 계속될 수록 계속해서 - 롬2:4-5절에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회개하셨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이러한 반문 - 우리가 징계를 받을 때 우리는 과연 돌이키는가? 롬1장 ‘내어버려 둠으로써 심판하신다' 스스로 완악해짐으로 심판에 이르렀다. // 5번의 완악해져갔다. 후반부 5번 돌이키지 않는다. 욕망대로 내버려두신 것이다. = 히브리적 방식으로 = 완악하게 만들었다.
동태복수법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인가?
나의 아들, 너의 아들 = 이렇게 나누는가? 루터, 구약학자는 동태복수법으로 이해한다. (교수) 의로운 재판관의 공의로운 성품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이라고 주석한다. 재판의 원리로 제시하고 있다. 복수에 대한 가르침이 아닌 공의로은 재판을 가르치고 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복수를 방지하신다. 히브리 민족을 장자로 삼으시고, 네가 내 맞아들을 압제했다. 그래서 너의 아들을 죽인다. -> 올바른 재판을 하시겠다.
영생과 심판의 개념에도 마찬가지다. 이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재판이시다. 부의. 부당한 것이 아니다. 고대근동 노예민족이었던 히브리 민족을 장자로 삼으시고 합법적 근거 ‘내 아들, 내 장자'라고 하심으로 분명한 명분을 삼으신다.
당신은 히브리 민족과 무슨 관계이시기에 그러십니까? 라고 묻는다면 - 맞아들이기 때문이다.
미드라쉬 - 왜 자녀를 삼으셨는가? 그들이 훌륭 아니고 가장 미천, 불쌍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완악하게 하심을 살펴보았다. 히브리서 신앙관에 반영되었다. 스스로가 완악해졌갔음, 그런 기회가 있었다.
징계하실 때 완악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다고 마음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
파라오에 대한 복수가 아닌 공정한 심판이다. 공의로운 심판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자비, 긍휼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