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력 있는 신앙인으로 살아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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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력 있는 신앙은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설득력 있는 신앙은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자의 조건을 말하는 시편입니다. 그 조건을 누군가 물었을 때, 누군가 대답합니다. 문답으로 되어 있는 구조의 시편입니다. 사실 이 시편은 명절을 맞아 성전을 향해 오르던 사람들이 1절을 질문하면, 2-5절을 제사장들이 대답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현대 교회에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문지기도 없습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시대에는 성전에 문지기가 있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현존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지 실제로 묻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19 여호야다는 또한 주님의 성전 문마다 문지기를 두어, 부정한 사람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성전의 문마다 문지기를 두었습니다. 부정한 사람은 아무도 성전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확실히 오늘날보다 문턱이 높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전은 아무래도 접촉하기에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장막은 달랐습니다.
이렇게 벽이 높았던 것은 하나님은 오직 지목된 장소에서만 만날 수 있으며, 이 장소인 성소는 접근이 제한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 장소는 거룩하기에 어느 누구도 실제로 성소에 살 수 없으며, 하나님의 친밀한 교통을 위해 성소를 방문할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사막에는 돌무더기들이 보인다고 합니다. 그 돌무더기는 베두인들이 기도하는 장소랍니다. 돌무더기를 중심으로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게 빙 둘러 기도하고는 헤어진다고 합니다. 장막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에게 그런 의미였습니다.
제사장의 위엄이 드러나는 복색이 갖춰지기 전
의례가 복잡해지기 전
이방인의 뜰, 여인의 뜰, 유대인의 뜰처럼 아직 위계질서가 복잡해지기 전
그들에게는 회막, 천막이 있었습니다. 종교적 진실은 위계를 넘어 누구라도 상처입은 사람,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겁니다. 아마도 시인은 그 마음으로 이 시를 적었고, 성전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의 조각난 마음이 그러했을 겁니다.
김수우 시인의 천막의 산문시의 3개연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둥그렇게 바닥을 펴면 세상의 중심이 생긴다
네 개의 나무기둥을 세우면 지상의 축이 팽팽해진다
지붕을 펼쳐 얹으면 천막은 아침 신전이 된다
그렇게 주의 장막을 추억하며 1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1 주님,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주님의 장막에 사는 사람,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당연하게 그리스도인으로 살고만 있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손님으로 받아들여진 존재,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는 존재, 곧 하나님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잊어버렸던 이 질문을 했던 선지자가 있습니다.
6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7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 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을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8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