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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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삼일절입니다. 삼일절은 1919년 3월 1일 일제로부터 자유를 꿈꿔오던 선조들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독립을, 해방을, 그리고 자유를 맛보았습니다. 오늘 삼일절을 맞이하며, 그리스도인에게 자유해진다는 것, 해방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해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자유해진다는 것은 곧 무언가 속박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것도 나를 속박하고 있는 것이 없다면, 그는 이미 자유인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겠습니까? Covid-19로부터의 걱정, 지난 주 새벽예배 말씀을 통해서 살펴본 각종 두려움, 생명이 끝나고 맞게 되는 죽음, 또한 사망이 죄의 삯이기에 죄가 그 속박의 근원일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들로부터 해방되면 우리는 자유로워질까요?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롬 6:20) 의의 종이 되기 싫어서, 죄의 종으로 남아있을 때 의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죄로부터 해방되어(자유해짐으로)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8) 뭔가 꺼림칙합니다. 두 선택지 모두 결국에는 종으로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고 있는 선택지는 이것이 전부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일제 치하에서 친일로 살 것인지, 독립에 힘쓸 것인지를 결정했던 것처럼 우리도 결정을 해야 합니다. "죄의 종으로 살 것인가? 의의 종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결정입니다.
그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먼저는 진리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요 8:31-36)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정리하자면, "예수의 말에 거하면, 참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에게 자유를 줄 것이다."입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입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예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존재이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이시고, 우리는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개념을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와 가지로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를 자유케하는 존재로 성경이 증언하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여기에서 주의 영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눅 4:18) 정리해본다면 우리는 말씀(예수) 안에 거하고, 성령은 우리 안에 임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며, 제자들만 남는 것을 우려하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내주(임재)하신 성령님은 제자들의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끊임 없이 우리를 예수 안으로 이끄십니다. 여기까지의 말씀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놓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한가지 더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의 자유는 우리가 어떻게 하여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삼일운동과 독립투쟁 등으로 인해 얻어진 독립의 자유와는 다르게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우리의 투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또한 성령님을 우리가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32절 말씀을 다시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진리에 대해서 전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투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중요한 개념이 추가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로부터의 영적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로 우리는 죄로부터의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죄로부터의 해방을 우리는 "구원"이라고 합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의 법으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갈 5:13),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벧전 2:16) 죄로부터 자유해졌다는 것은 더 이상 죄를 짓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유자는 또한 그들의 자유를 악을, 부정을, 불법을, 육체의 기회로의 구실로 삼을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로 사용한다면 그는 자유자가 아닙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4)
앞서 살펴본 것처럼 스스로를 의의 종이라 칭할 수 있겠지만, 의의 종이라 칭하며 죄를 범하는 자는 죄의 종일 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주신 자유로 죄를 범하는 자유했던 사람은 이제 그 책임을 지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그 책임은 영원한 죽음입니다. "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롬 6:21)
의의 종으로 자유를 누리는 우리에는 또 다른 종류의 책임이 따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에 대한 자유로운 주이며,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에 예속된 종이며, 누구에게나 예속되어 있다” 루터는 아무렇게나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 자유를 얻은 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자유롭지만, 또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 5:13) 그리고 그 바탕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도 Covid-19에 대한 대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 따른 안내문도 전달해드리고, 소독제를 구비하고, 마스크를 구입해놓았습니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님들께 여쭙겠습니다. 성도님들은 하실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까? 자유인으로써 우리의 눈은 이웃을 향해야 합니다. 어제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되어있는 기사 중에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해드라인이 이렇습니다. "마스크는 커녕 밥도 끊겨, 코로나에 더 소외되는 소외계층" 전국 25개 천사 무료 급식소 잠정 휴업, 복지관도 감염을 우려해 배식과 도시락 중단으로 가난한 노인분들과 노숙인분들이 당장의 끼니를 걱정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구원 받아 죄로부터의 자유만 누리는 자들이 아니라, 굶주림이나 헐벗음으로부터의 자유도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이 자유의 책임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우리에게 자유를 주려 하셨습니까? 왜 사도 바울은 자유민임에도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까? 왜 믿음의 선진들은 만물에 대해서 자유로우면서도 만물에 종이 되기를 선택하였습니까? 우리 마지막으로 이사야서 61장 말씀을 보겠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 61:1-3)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독립을 외치고, 해방을 부르짖었던 날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백성들인 우리는 삼일절을 맞이하며 조국의 독립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와 성령으로 구원 받아 자유를 누리는 우리의 삶에 감사하며 서길 원합니다. 또한 자유 얻은 자의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는 이번 한 주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