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델비아 교회

계시록 일곱교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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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는 아시아 동북 지역으로 나가는 무역로의 교차점으로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또한 빌라델비아의 주민들은 종교심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2의 아테네, 혹은 작은 아테네로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AD 17년에 있었던 아시아의 대지진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이 바로 빌라델비아였습니다. 로마의 재정지원으로 도시를 재건하기는 했지만, 계속되는 여진은 빌라델비아의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땅이 흔들린다 싶으면 주민들이 건물들에서 쏟아져 나오곤 했습니다. 조금 심할 때는 도시 밖으로 대피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들은 어떤 신이든 의지하기를 원했고, 수많은 헬라의 신전들만큼이나 종교행사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빌라델비아 교회는 하나님께 어떠한 책망도 듣지 않고, 칭찬만 받은 두 교회 중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14세기에 터키에 종교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빌라델비아는 '작은 아테네'에서 '하나님의 도시'라고 불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자신을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로 소개하십니다. "거룩하고 진실하다"는 표현은 구약에서 수십 차례 사용되는 문구입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는 데 사용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는 메시아의 왕권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의 혈통을 이으시는 메시아의 신분을 가지고 오심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열쇠는 가지신 분께서 여시면 닫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닫으시면 열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와서야 이 진짜의 의미를 알겠더군요. 저희 집 자물쇠를 보면 안과 밖 모두 열쇠를 꽂을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안에서 열쇠로 문을 잠그면 밖에서 열 수 없는 것은 당연한데, 밖에서 열쇠로 문을 잠글 때도 열쇠가 없으면 안에서 열 수 없더군요. 열쇠를 가진 사람이 안에서건, 밖에서건 열쇠로 잠그거나 열면 열쇠 없는 사람은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건 예수님의 권세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권세로 문을 여실 수도, 닫으실 수도 있으십니다. 선택은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사랑으로 문을 열어두심을 선택하셨습니다. 8절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그 강력한 권세로 닫으신다면 아무도 열 수 없을 텐데, 우리 앞에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도 닫을 수 있는 이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런 권세를 가지게 되셨습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받게 되신 권세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존전에서 거룩한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교제함에 들어갈 수 있는 이 문을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전달해주셨습니다. 누구도 닫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기 시작하십니다. 그 칭찬의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이게 전부입니다. 이후로 9절부터는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의 성도들에게 주어질 축복을 설명하느라 할애하십니다. 칭찬도 짧지만, 그 내용은 더 초라합니다. 그들의 가진 능력이 "작았다"라고 말하십니다. 여기에 "작은"이라는 단어는 원어에 "마이크론"을 사용합니다. 영어에서 '마이크로'라고 쓰이죠. 대체 그 능력이 얼마나 작다는 것이겠습니까?
빌라델비아 교회가 작은 능력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의 경제적 체계 때문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 지역에도 역시 상인연합이 있었고, 앞선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충성된 이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로 빌라델비아 전역에 걸친 자연재해의 위협이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계속 된 여진은 시민들이 헬라 종교에 매달리게 했고, 그로 인해 빌라델비아 교회의 교세는 힘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의 핍박입니다. 다른 지역들과 다르게 교회의 영향력이 없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그들을 만만하게 볼 수 있도록 했고, 당연히 유대인들의 핍박은 다른 교회들보다 거셌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지켰고,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칭찬 받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빌라델비아 교회는 무엇 하나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교세도 작았고, 영향력도 없었습니다. 빌라델비아의 시민들이 보기에도 그저 무력한 이들의 작은 모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작은 능력에도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오해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이들을 더 사랑하시고, 사용하시느냐' 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더욱 그렇게 보입니다. 매번 영향력이 없는 이들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였고, 바울은 천재였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큰 무리였고, 그들의 영향력은 무시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충성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목적은 그 일을 이루어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가 있습니다. 번지점프를 하러 특수부대 요원과 요엘이가 섰습니다. 특수부대 요원은 정말 멋있게 뛰어내렸습니다. 요엘이는 너무 무서웠지만, 큰 용기를 내어서 겨우 뛰어내렸습니다. 누가 더 큰 박수를 받겠습니까? 이것과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칭찬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고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책망을 받은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고,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제가 확신하는 것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만약에 한 달란트를 더 만들어내었다면 다섯 달란트를 받은 이보다 훨씬 큰 칭찬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의 내용을 보면 아주 실제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델비아를 핍박하는 자칭 유대인들을 '사단의 회당'이라 부르십니다. 이들은 거짓말하는 자들로 복음을 희석시키는 자들이었습니다. 거짓교사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전을 이루시고, 핍박하던 자들로 굴복하게 하십니다. 뒷꿈치를 내어주고, 머리를 상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전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여기에 그 의도 역시 드러내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사랑의 고백입니까?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심을 알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대체 이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했던 것은 "인내의 말씀을 지켜낸 것"이었습니다. 고난 중에 인내했습니다. 너가 말씀을 지켰으니, 이제 내가 너를 지키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시험이 무엇입니까? "장차 온 세상에 임하는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시험"입니다. 그런데 그 시험의 면제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정말 사모합니다. 미국에 있는 놀이동산에 가보았습니다. 거기에는 특별한 티켓을 팝니다. 더 돈을 주고 이 티켓을 사면 긴 줄을 피해서 바로 놀이기구를 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긴 줄에 있는 저는 그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속히 오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그러니 그때를 기다리며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입니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라." 여기에 네가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뒤에 보면 "네 면류관"이라고 말하며 빼앗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면류관은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책망을 받지 않은 또 하나의 교회, '서머나'에게 하신 말씀에 등장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계 2:10) 이 면류관은 운동경기에서 우승한 자에게 주어지는 화관이었습니다. 끝까지 인내를 이루어 이 생명의 면류관을 상실하지 말라는 것이 이들에게 주어진 명령이었습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 역시 실제적입니다.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어떤 이름입니까? "하나님의 이름, 새 예루살렘의 이름, 나의 새 이름" 무언가에 이름을 새긴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것의 소유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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