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교회
베드드로전서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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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views세상에서 가치없다 여길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사용하실 것이며 존귀하게 대하실 것이다.
Notes
Transcript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저 아무 대책 없이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라고 명령하실 때, 우리가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제공하십니다. 새로운 단락을 시작하는 2장 11절부터 ‘체류하는 외국인과 여행자’ 같은 교회에 적극적으로 명령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전에 이 지점에 이르기까지 베드로는 교회가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철저하고 풍부한 근거를 오늘 본문에서 제시합니다.
세상 속에 흩어져, 세상과 부딪히며 여러 갈등을 빚는 교회는 어디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그 해답을 그리스도 예수 자신에게서 찾습니다. 이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결정적입니다. 적대적인 세상 한가운데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베드로가 소개하는 그분은 4절에서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쓸모없다고 버림을 받았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산 돌’입니다. 원래 이 문구는 시편 118편 22절에서 온 것입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니.” 시편 118편은 찬송시의 하나로, 레위 지파들이 유월절 어린양을 잡을 때 불렸던 시편에 해당합니다. 악인들에게는 고난을 겪고 버림을 받지만,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고 구원을 얻는다는 내용의 찬송시입니다.
베드로는 구약의 ‘돌’에 다른 많은 말씀을 인용하여 오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어떤 존재인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 이사야 28장 16을 인용하여 “시온에 택하여 둔 모퉁잇돌”, 7절에서 시편 118편 22절의 “건축자의 버린 돌”, 8절에서 이사야 8장 14절의 “걸려 넘어지는 돌이요 부딪히는 반석”을 인용합니다.
베드로의 인용은 이사야서의 문맥에서 가져온 단지 하나의 예언적인 단어(“돌”)이지만, 베드로가 그것을 적용하는 데는 문맥 전체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비록 단어들이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라도, 분명히 베드로는 성경의 넓은 문맥 안에서 이 단어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택함을 받았지만 버림받고 고난을 겪는 역설적인 정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산 돌’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존귀한 신분이요 장래의 영광을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쫓겨 다니며 멸시와 천대를 받는 처지입니다. 누가 생각납니까? 우리는 지난번 베드로전서 2장 3절 본문을 묵상하면서 “주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는 본문이 시편 34편 8절에서 왔다는 사실을 이미 보았습니다. 시편 34편은 다윗이 왕이 되리라는 약속을 받고도 쫓겨 다니며 공격을 받고 미친 척까지 해야 하는 수모를 당하는 상황 가운데 기록된 노래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윗의 경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존귀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그분은 동시대 유대인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분이야말로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으나 사람에게는 버림을 당한 자입니다.
“살아 있는 돌”이신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거절당했지만, 그분은 하나님께 선택받으신 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비슷한 거부를 경험하지만, 그들 또한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선택하신 자들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너무도 큰 위로를 경험합니다. 주님 자신이 지금 우리들의 처지보다 더 절절하게 그런 처지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는 선택받은 존재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은 존재입니다. 영광의 약속으로 소망을 누리지만, 세상에서는 능멸과 모욕을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이 길을 가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능히 이 고난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계속하여 영적인 자양분을 갈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집의 한 부분으로서 함께 만들어져 가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것에 있어서 선하심을 맛본 사람은 실제로 영적인 집을 세우게 됩니다. 더불어 교회인 그리스도인들은 성전임과 동시에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성도들은 먼저 “살아 있는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세워지는 “살아 있는 성전”입니다. 성전의 가장 결정적 요소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기초가 되는 살아 있는 성도들의 공동체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교회는 그 기초 돌이신 예수님께서 그러신 것처럼,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무가치하고 쓸모없다고 버림받는 존재일지 모르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세상을 위하여 택하신 제사장직을 맡긴 ‘제사장 공동체’입니다.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할 관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베드로는 줄곧 삼위일체 하나님에게서 오는 관점, 구약의 계시로부터 바라보는 관점, 하늘의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을 제시합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우리를 바라보면 스스로 초라해지고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외롭고 쓸쓸합니다. 우리의 신분도 방향도 목적지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보든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세상을 중보하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하나님께로 이끌고 나와야 하는 제사장직을 맡기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 백성으로 모든 인류를 위한 제사장 역할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이 역할은 어떻게 감당합니까? 고난 속에서도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을 행하면서 감당합니다. 우리의 선에 대하여 악으로 갚음을 당할 때도 참음으로 제사장직을 수행합니다. 다음에 볼 9절부터의 본문에서 베드로는 이것을 더욱 구체화합니다.
마지막으로 6절에서 8절까지 세상과는 이제는 같을 수 없는 우리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서 이러한 상황이 올 것을 예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패한 예루살렘의 성전을 허무시고, 그 시온 산 위에 한 ‘바위’를 둘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건축자들이 버렸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보배로운 모퉁잇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모퉁잇돌(cornerstone)이란 하나의 건축물을 세울 때 기준이 되고 기초가 되는 돌을 말합니다. 즉 다른 모든 돌이 그 돌을 중심과 기준으로 삼는 기초 돌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건물을 알리는 주춧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래에 이 모퉁이 돌을 알아보지 못하고 내다 버릴 것이라고 내다보았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많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을 성문 밖 십자가에 달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보혈로 인해 그분의 교회가 태어났습니다. 그분의 십자자와 빈 무덤이 새로운 하나님의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살아 있는 성전, 곧 교회의 모퉁잇돌이 되게 했습니다.
8절에서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넘어지나니”라고 말합니다. 말씀은 그 말씀에 부딪히는 사람의 본질을 나타냅니다. 복음이 전해지면 결국은 그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드러납니다. ‘걸려 넘어지는 돌이요, 부딪히는 반석’이라는 표현은 이사야 8절 14절에 나옵니다. 하지만 더욱 선명한 이미지는 다니엘 2장에 나옵니다. ‘뜨인 돌, 즉 ‘날아다니는 돌’입니다. 살아 있는 것처럼 떠다니며 진흙과 놋과 금과 운으로 만든 신상들을 파괴합니다. 모든 거대한 각종 우상을 산산이 조각내어 버립니다. 바로 뚜렷한 심판의 이미지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복음, 그분의 말씀에 부딪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걸려 넘어지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는 심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에 부딪힌 사람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말씀 앞에 순종하지 않음은 그들이 완악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세상으로 드러납니다. 그 세상 속에 교회는 더욱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더욱 성도다워야 합니다. 교회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나라에 속해 있음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다름을 철저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결단코 세상과 같아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길은 전혀 다른 길입니다. 고난의 길이지만 겸손히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지금은 패배하여 버려진 것처럼 쓸모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영광스럽고도 고귀한 존재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이 걸음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고, 힘겹고, 때로는 버려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존귀하고 소중하게 우리를 여기시고, 거룩한 사명을 주셨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게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