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義)의 소망 되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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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반갑습니다. 대강절,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소망 가운데 사세요’하고 인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대강절입니다. 앞으로 성탄절까지 다섯 번에 걸쳐 우리는 오실 주님을 깊이 기대하는 대강절을 보내며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소망이 되시는 지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성경은 믿음과 소망이 인과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믿음의 사람은 소망이 생겨납니다. 소망의 사람은 믿음이 든든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구약의 모든 믿음의 조상들은 소망을 붙들고 살았다고 기록합니다. 칼빈은 히브리서가 증거하는 믿음의 조상들이야말로 진정한 소망의 사람들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소망없는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은 소망을 우리 가운데 가져다 줍니다. 믿음의 사람들만이 소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참 믿음 안에서 은혜의 소망을 붙들고 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노아와 만물이 방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홍수라는 큰 심판이 임하기 전에 노아와 세상은 심판으로부터 살아날 수 있는 구조선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이렇게 구조선인 방주에 오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그 시대에 의로운 자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의로운 사람으로 인해 그 자신과 자녀들, 그리고 자연 만물이 방주라는 구조선을 통해 심판의 세상에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노아를 의롭다 하신 하나님의 선언을 통해 참된 의가 무엇인지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아버지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라는 통치를 의미한다면, 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성도들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먼저 구해야 할 하나님의 의가 무엇일까요? 오늘은 하나님께서 노아를 의롭다고 하신 말씀의 뜻을 살펴보고,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의에 대해 함께 묵상하면서 대강절 소망의 첫 주일을 보내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의의 소망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깊은 은혜를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문제 제기
문제 제기
모세는 노아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자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시대에 노아에게서 의로움을 보셨다고 말씀하시고 그를 방주에 들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본문 1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에서 하나님 앞에서 노아가 가진 의로움을 보셨다고 선언하십니다. 우리는 먼저 노아가 자신의 의로 인해 방주로 들어갔고, 또한 그의 온 집, 곧 노아의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도 다 구원의 방주에 승선하는 은혜를 봅니다. 더군다나 노아 언약의 특성상 노아의 의로 인해 자연의 만물들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본문 2, 3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 봅시다.
2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3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의를 통해 노아와 그의 권속들, 그리고 자연 만물을 방주로 불러들여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에게 심판의 계획을 알려 주십니다. 이제 일주일 후에 하나님께서는 사십일 동안 큰비를 내려 자연의 모든 생물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4절 말씀을 봅시다.
4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이제 일주일 후면 사십일 간 큰 비가 내릴 것입니다. 노아와 그 모든 생물들이 배로 올라가는 데는 일주일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자연 만물을 모으고 배에 올려 이 모든 이들을 다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없지 않았겠지만,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한 모든 것을 준행합니다. 우리 5절 말씀을 같이 봅시다.
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의 순종과 말없는 헌신을 통해 그의 가족들과 만물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가히 노아는 시대의 의인이라 할만큼 말씀에 순종했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의인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S2’ 문제 제기
S2’ 문제 제기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노아가 가진 의가 어떤 의이기에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다 죽는데 그와 그의 가족들과 짐승들만 구원을 얻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모두보다 얼마나 더 의로워야 모두가 죽는 상황에서 오직 그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그 의의 무게를 측정하고 하나님은 어떻게 그렇게 그만을 의롭다고 보실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노아를 의롭다고 하셨던 히브리어 ‘차디크’라는 말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차디크’라는 이 말은 법정에서 죄없다고 판결을 할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법정에서 그 사람이 죄가없다고 인정을 받을 때 사용하는 말이 ‘차디크’라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guilty냐 innocent 냐를 가릴 때 그가 innocent 하다고 판단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과 이어진 부패 이후 모든 인간을 불의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죄 아래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고 선언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사도 바울은 시편을 인용하여 모든 인간이 죄 아래에 있다고 선언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 로마서 3장 23절 말씀을 같이 봅시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는데 어떻게 노아는 의롭게 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노아가 의로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는데 노아가 어떻게 의로운 자가 되어 심판을 면할 수가 있었을까요?
우리는 노아의 의가 자신이 이루어 낸 위대한 도덕적, 영적 성취를 통해 얻는 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차디크’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도달한 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재판정에서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그를 죄없다고 인정해 주심으로 얻은 의를 말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죄인을 죄없다고 선언하실 수 있습니까? 바울은 로마서 3장 24절에서 그 이유는 속량의 은혜 때문임을 밝힙니다.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여기 속량이라는 헬라어는 ‘아포뤼트로시스’라는 말로서 구속, 해방 혹은 몸값을 지불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죄를 범했으나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시고, 그 속량의 은혜로 무죄로 죄인은 이루에게 문죄를 선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 스스로 선택하여 범죄하는 삶을 산 어떤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지불하신 속량의 은혜 안에 있으면 그는 스스로의 죄값을 자기가 지불하지 않고, 즉 값없이 죄용서 함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J1. 하나님의 반응
J1. 하나님의 반응
우리 하나님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인을 위한 속량물이 되시도록, 즉 인간의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하시도록 하셨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지불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의 값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대신 지불하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로마서 3장 25-26절을 봅시다.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세우셨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길이 참으시는 중에 그 죄를 간과하시고 의롭다고 선언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위한 용서의 길을 주셨고, 이를 믿음으로 받는 사람, 하나님의 용서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그 죄를 따지지 않고 의인이 되게 뜻하셨던 것입니다.
J2. 예수님의 신성
J2. 예수님의 신성
하나님은 하나님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의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죄값을 지불하려면 죄가 없는 이가 속량물이 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죄인이 죄인을 위해 대신 죽어 주는 일은 있을 수는 있으나 그것이 의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아담 아래에서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끼리는 서로를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희생제물을 선택할 때는 흠없는 어린 양을 선택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오실 메시야는 하나님으로 아무런 흠도 점도 없는 완전한 대속물이 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구약 시대부터 속죄제물은 가장 흠없고 완전한 것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20 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가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죄나 허물이 없는 가장 온전한 대속물이 되십니다. 하나님이신 아들 하나님께서 아담 이후 범죄한 우리의 죄값인 사망을 대신 당하시고, 그 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인간으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의인이 된 것입니다.
J3. 예수님의 인성
J3. 예수님의 인성
또한 예수님은 참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으로 죄 없으신 분이 사람이 되셨기에 예수님은 가장 완전한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그 완전한 인간이 인간을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비로소 인간의 죄의 값을 지불하기 위한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속죄를 위해 짐승을 죽인 것은 피의 상징을 두기 위함이지 짐승의 생명이 사람의 죄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그냥 하나님으로만 계셨다면 그 분은 인간이 아니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신할 수 있는 분이 못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사람이 되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위한 완전한 죄값이 갚아지게 하신 것입니다.
W1. 칭의의 근원이신 예수님
W1. 칭의의 근원이신 예수님
성도인 우리 모두는 바로 이 예수님의 의로 인해 의인이 됩니다. 이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의롭다고 불러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도덕적 목표로서 의를 이루어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율법 앞에서 언제나 부족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의 값을 다 갚으심으로 이제 예수님의 부활 생명 안에서 의인이 된 것입니다. 성도는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과 온전한 연합을 이루게 됨으로써 종말의 날에 있을 하나님의 재판정 앞에서 완전한 의인으로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W2. 하나님의 의는 칭의
W2. 하나님의 의는 칭의
하나님께서 보시는 의는 인간의 공로적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그 생각과 계획 모든 것이 악함을 아십니다. 어린 아이들이 착하고 깨끗한가요? 아이를 길러본 부모라면 사랑스러움과는 별도로 인간의 죄성이 어린 아이의 마음에도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스스로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참된 의는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이 땅에서 이루신 그 완전함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내가 깨끗한 것이 아니고 의로움이라는 옷을 입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칭의의 은혜이고 하나님이 보시는 성도의 의로움입니다.
W3. 하나님의 은혜로서의 칭의
W3. 하나님의 은혜로서의 칭의
우리 하나님은 노아에게 바로 이 의로움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옷을 보시고 하나님은 노아를 의롭다고 인정하셨고, 그를 구원의 방주에 오르게 하신 것입니다. 노아는 시대의 모든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을 믿고 구했던 것입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든 죄의 값을 대신 갚아 주심으로 우리 악한 죄인이 의롭게 고, 이제 그 의로움 안에서 심판을 넘어 구원의 은혜로 인도해 주되시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T1. 노아의 누리는 칭의의 복
T1. 노아의 누리는 칭의의 복
노아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이 의의 옷을 입고 방주에 오르는 영광을 누립니다. 그만이 아니라 그의 보존의 사명을 위해 구원에 이르지 못할 자들도, 만물들과 함께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까지 세상은 여전히 보존될 것을 약속받은 그는 오실 예수님 안에서 믿음의 의를 소유함으로 참된 천국을 얻게 되는 영광의 소망을 가진 사람이 된 것입니다.
T2. 세상이 누리는 칭의의 혜택
T2. 세상이 누리는 칭의의 혜택
세상은 바로 이 주님의 의를 통해 보존의 은혜를 함께 누리게 됩니다. 다만 세상은 여전히 이 대속의 은혜, 예수님의 의로 인한 구원을 인정하지 못한 체 삶을 살아가는 안타까움은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 복음의 영광을 듣게 되고, 믿게 되는 은혜를 얻게 된다면 누구나 보존을 넘어 구원의 은혜의 자리로 나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여전히 돈을 가진 자, 힘이 있는 자가 의롭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 것입니다.
T3. 성도가 누리는 칭의의 영광
T3. 성도가 누리는 칭의의 영광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 안에서 주신 이 의로움, 칭의의 은혜를 항상 감사와 겸손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들도 세상과 다름없는 동일한 죄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 믿음을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의 옷을 입혀 주심으로 의로운 자가 된 것입니다. 더하여 말씀을 따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백성이 된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은혜를 감사하고 천국을 소망하며 세상을 위해 항상 중보하고 전도하는 소명을 잊지 않고 살아 더 큰 은혜의 상급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L5. 칭의를 구하는 삶
L5. 칭의를 구하는 삶
이제 성도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닌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되어, 최후 재판정에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의의 옷을 입고 설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만든 세상의 의의 옷을 입고 최후 심판장에 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순간에 노아를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구원의 방주를 오르게 하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의 의를 힘입어 최후 심판의 날에 의롭다고 인정받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의 의를 항상 소망하고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을 때 이 의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사회적 정의를 넘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죄없는 참온전함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이 의로움은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내가 남보다 좀 더 나아 보인다고, 좀 더 잘된다고, 좀 더 가졌다고 내가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고3 자녀들이 열심히 시험을 준비하고 이 어려운 코로나 시절을 인내해 왔지만, 그것은 사회 진출을 위한 관문이지, 수능 성적이 남보다 더 좋다고 그 사람이 더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뿐입니다. 예수님이 가지신 그 하나님의 의가 우리를 구원하는 우리의 소망임을 깊이 붙잡고 참된 의가 되신 예수님을 소망하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L6. 먼저 그의 의를 구하는 결단
L6. 먼저 그의 의를 구하는 결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소망의 절기를 시작합니다. 이 시대의 갈등과 혼란, 개인적인 마음의 복잡한 등 모든 것들을 소망 되신 주님께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스스로가 옳다하며 시비를 가리려 하고 다툼을 일으키는 시대의 혼란 앞에서 성도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참 은혜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온 땅이 심판의 대상인 시대에도 예수님의 의를 가진 이들은 구원의 방주에 승선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도 이 시대에 예수님만을 붙들고 그리스도만을 믿고 소망할 때, 다시 오실 주님이 세우실 새 나라의 들어갈 영광의 의로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을 더욱 소망하며 예수님의 오심을 기뻐하는 성탄 절기 가운데 소망의 풍성함을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