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강해- 인내
Notes
Transcript
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가 있지요. ‘쓴 것이 끝나면, 단 것이 찾아온다.’, 그러니까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이런 뜻입니다. 쓴 것이 끝날 때까지, 고생이 마쳐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인내”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야고보서 말씀과 성경에서 인내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부분들을 살펴보며, 인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리하고, 적용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고진감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인내가 필요한 시점은 고난과 환난의 때입니다. 기쁨과 환의의 때에는 굳이 인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순간을 기뻐하고, 영광 돌리며 즐기면 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 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너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낸다.” 시련이 인내를 만듭니다. 로마서 5장 3-4절에서도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을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련과 환난을 인내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서 살펴볼 내용은 바로 “인내를 만들다.”는 표현입니다. 시련과 환난은 인내를 만들어줍니다. 인내는 태어나면서 들고 태어나서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활어를 살아있는 상태로 수송하는 것은 상품가치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많은 방법들이 연구되었습니다. 자연상태에 가깝게 하기 위해서 수조의 규모를 키우기도 하고, 물의 온도를 낮추어 대사를 낮추기도 했습니다. 효과는 있었지만, 확실하게 생존율을 높여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수조에 활어를 잡아먹는 상어 새끼와 같은 천적을 같이 넣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활어들이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열심히 발버둥 치기 때문에 오히려 생존율도 높아지고, 팔팔하게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 같은 시련과 환난은 우리에게 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이렇게 얻어지는 인내를 저는 상황에서의 인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에서의 인내가 필요한 경우는 넘치도록 많이 있습니다. 어떠한 타개책도 없는 상황에서 바로 이 인내가 필요합니다. 가령 군대에 갓 입대한 신병이 그러합니다. 대학 입시원서를 넣고,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경우도 그러합니다. 출산하러 들어간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의 상황이 그러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견디는 것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는 그 상황에서 우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야고보는 5장에서 상황에서의 인내의 표본이 되는 사람을 소개합니다. 바로 “욥”입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약 5:10-11) 세상에서의 사람들은 견디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의 인내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의 상황에서의 인내입니다.
관계에서의 인내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얼마나 큰 인내가 필요한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에게 듣는 이야기가 이렇습니다. “일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려운 것은 사람들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마치 바울이 로마서에서 환난이 인내를 이끈다고 했던 것처럼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 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그런데 그 끝에 베드로가 뭐라 말하는 지 아십니까?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베드로가 말하는 인내가 바로 관계에서의 인내입니다.
인내를 표현하는 다른 단어는 “참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참음”보다 훨씬 많이 등장하는 표현이 있으니 “오래 참음”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2-3) 오래 참음으로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것은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 서로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100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가 않습니다. 성경은 협력해서 선을 이루라고 말하는 데, 협력은 커녕 용납도 못합니다. 이런 말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틀린 것과 다른 것은 다르다.”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을 가지고,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틀렸다고 말하곤 합니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만 보기 때문에 오래 참지도 못하고, 용납도 못합니다.
우리가 누군들 용납할 수 없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시는데, 우리가 누군들 사랑할 수 없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먼저 오래 참음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원수 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납하시고, 우리에 대한 분노를 이토록 오래 참아주셨는데, 우리가 누군들 용납할 수 없겠습니까? 우리 교회에 출석하시는 장년 성도님들이 약 300여분 계십니다. 300명의 다양한 출신과 환경과 성향과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가 한 곳에 모여있으니 얼마나 사랑과 용납이 필요하겠습니까?
마지막 인내는 신앙에서의 인내라고 이름을 붙여보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네 가지 밭의 비유에서 좋은 밭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그런데 그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합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눅 8:15) 그냥 좋은 땅에 씨앗이 심겨졌다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추수 때까지 인내로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 오늘 본문 3절에 “믿음의 시련”을 이야기 합니다. 이 본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 로마서 8장 24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소망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미 눈 앞에 소유하고 있는 데, 그것을 바라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구원을 소망하는 자들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신앙의 경주가 끝나기 까지 참음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주 드리는 말씀인데, 신앙의 경주는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스피드가 아니라 인내입니다. 먼저 들어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승점을 통과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은 장거리 경주입니다. 그냥 참아야지 하고 참고만 있으면 경주가 아니겠죠.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 영생으로 하시고” (롬 2:7)
신앙에서의 인내 중에 우리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신 29:29)
드디어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게 무엇인지 보기 위해서 “온전”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본문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는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가려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이 존재가 하나님이심은 우리 모두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하는데, 그 이유가 우리로 인내를 온전히 이루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지난주 믿음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임과 동시에 믿음을 이루게 하기 위한 도구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온전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의 온전한 인내는 결과이고, 뒤에서의 온전하고, 구비되는 것은 과정입니다.
지난주에 평창 올림픽이 폐막했습니다. 피땀 흘려 수고한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여자 쇼트트랙 3,000m 준결승 전에서 한 선수가 넘어지면서 반 바퀴 차이로 뒤쳐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역전시키고 1위로 결승에 진출하더군요.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런 결과를 얻기 위해서 선수들이 얼마나 열심히 훈련했을까요?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양은 정말 엄청나더군요. 계속해서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프로그램이 주어지고, 그때마다 선수들에게는 트레이너의 코치를 따라가기 위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훈련시켜가십니다. 실제 경기에 나가서 지치지 않도록 준비시키는 것처럼 세상에 나아가서 온전할 수 있도록, 부족하지 않도록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이미 고난을 견뎌낸 이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후 1:6)
인내와 믿음으로 자랑이 되는 교회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살후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