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4. 생각이 불러오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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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교회를 시작하려는 우리들에게 여러가지 질문들이 생길 것이다. 그 중에 불안한 질문 몇가지를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이 있지않을까 싶다.
'우리가 끝까지 잘 할 수 있을까?' ' 이 마음이 언제까지 갈까?'
사실 이런 질문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계속 해오는 질문들이다. 구원에 관해서 똑같은 불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근원적인 질문들을 다시 한번 고민해보자.
특별히 오늘은 구원에 관해서 생기는 이런 질문들의 근본적인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러면 교회에 대한, 내 신앙에 대한 불안한 질문의 답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본문은 구원을 설명한다.
우리는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본문은 말한다. 무슨 말인가? 구원은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신 것이다. 이것의 출발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명확히 한다.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했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이것이 구원을 어떻게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 된다.
선물은 무엇인가? 선물 받은 사람이 아니라 선물을 준 사람의 성품과 생각이 드러나는 매개체이다. 받은 사람은 선물을 준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 이런 선물을 주고 어떤 마음으로 이런걸 준비했을까? 그의 정성과 과정에 감격하게 된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면 우리가 선물 받은 구원에 대해 생각하면 그 선물을 주신 분의 성품과 생각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구원을 선물하시려고 어떤 과정을 거치시고, 어떤 생각을 하며, 나를 어떻게 생각해주셨는지 구원을 묵상하면 알게된다. 즉 구원을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 분을 아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다. 알아야 그 분을 찬양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 분을 알게되면 우리는 그 분을 찬양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구원은 우리의 생각보다 큰 개념이다. 구원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니까 그렇다. 구원은 생명만 주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그 구원을 위해 주신 그리스도를 생각해보라.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고 몸이 되는 교회를 세워주셨다.
그리고 교회를 세워주시고 이제는 너희가 알아서 잘 이끌고가봐 하고 손놓고 계시지 않고. '직분은 이렇게 세우고' '성례는 이렇게 행하고..' 하면서 자세한 방법들을 알려주셨다. 구원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에게 생명만 주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살아가는 법도 친절하고 자세히 알려주시고, 그 삶으로 계속 이끌어가시는게 구원이다.
전도사 3:13 말씀을 보자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 3:13
하나님의 선물은 구원 이후의 삶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즐거움과 또 때론 고통스럽지만 그 헌신과 수고로 기쁨을 누리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고 자세하다.
절대 살려줬으니 이제 너희 스스로 알아서 잘해봐. 이러지 않으신다. 이 은혜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론 막막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님은 결국은 우리로하여금 또 한걸음 나가게 하실 것이다.
구원은 이런 것이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일하시는 순간 순간들이다. 그래서 우리 편에서 구원에 관해서는 자랑할 게 없다. 구원을 진지하게 묵상하면 할수록 하나님만 자랑하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무엇을 자랑하나?
'부득불 자랑할진데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자신의 사도권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자신의 고생과 부끄러운 모습들을 가감없이 말한다. 자신의 약하고 구차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자랑도 좀 하지만 약함도 드러낸다.
약함을 자랑하는 것은 구원 받은 자가 누리는 현실적인 위로 중의 하나다.
사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약함을 드러내서는 안된다. 오히려 과장해서라도 자기의 부족함을 가려야하고 잘난 모습을 더욱 어필해야한다. 그래야 살아남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연애관계에서도 자기를 다 보여주지 않는다. 약자가 되지 않으려고 밀당을 한다. 내 마음다 보여주고, 내가 가진 카드를 다 보여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약함을 자랑하는 것은 진짜 용감한 것이고,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진짜 부자는 자기의 부를 굳이 자랑하지 않는다. 부자는 굳이 외제차 안타도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도 그렇다. 삼성의 이재용이 국산차탄다면? 사업이 어렵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멋지다. 검소하네 이렇게 생각한다. 빌게이츠는 오히려 대학중퇴한 것을 자랑한다.
왜 약함을 자랑하나?
약함을 자랑할 때 오히려 드러나는 강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약함을 자랑할 때 드러나는 강함은 무엇인가?
우리의 약함으로써 하나님의 강함이 드러난다. 이렇게 지찔하고 모양빠지는 모습으로 사는 우리같은 자들을 통해서도 복음의 진보를 이루시는 하나님이 드러난다.
무협영화에서 고수가 젓가락으로 적을 무찌를 때 그 고수의 실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가? 하나님도 사망에서 생명을 빚어내심으로 당신의 위대함과 긍휼과 사랑을 이 땅에 한껏 드러내신다.
우리교회가 계속 생존한다면 이건 완전히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이 자랑이 될 때까지 역사하신다. 그러니 안심하라. 약함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렇게 될 날이 온다.
생각해보라. 가장 감추고 싶은 연약함도 자연스럽게 드러낼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즐거워 지겠나?
굳이 내 약함을 감추기 위해 yes man 이 되지 않아도 되고, 거짓으로 웃지 않아도 되고, 기쁜 척 밝은 척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실 진짜 기쁨이다. 그날을 믿음으로 소망하라.
우리 안에서 하나님은 계속 일하실 것이다. 그 흔적들이 이미 우리 안에 나타나고 있다.
10절 말씀에서 뭐라고 하시나?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존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으셨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았지만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어버렸기에 선한 일을 못하고 악만 생산해냈다. 가족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작은 선들이 있었다. 완전한 악으로만 우리 인생이 점철되지 않았다.
그 선행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나님의 은혜의 흔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내가 잘나서 선을 행하게 된게 아니다. 하나님이 그 목적으로 지으신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선행은 은혜의 흔적이다. 그래서 구원의 근거가 되진 않는다. 다만 감사의 근거가 된다. 여전히 우리 안에 하나님의 흔적을 남겨놓으셔서 악한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며 살아왔다. 그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허물과 죄로 죽은 가운데서도 선행이 맺혔다면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게 된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많은 열매가 맺혀가겠는가? 은혜의 흔적들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은혜의 흔적이 되어 주셨다. 하나님과 너무 멀어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셨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2:14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계속해서 선한 일이라는 열매가 맺힐 것이다. 가족도 사랑할 수 없는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가 죽으시고 이제는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 주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드디어 선한 일을 열심히 행하는 백성이 된다.
구원의 목적은 분명하다.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라. 이것이 구원의 목적이다. 교회가 타락해서 욕먹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교회를 새롭게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끝없는 열심을 보라. 우리는 포기할지라도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이 은혜를 날마다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자.
그 분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나?
"생각"을 요구하신다. 생각하라고 말씀하신다. 너희의 과거를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우리를 괴롭히려고 하시는 의도가 아니다.
명령에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가 있다. 과거의 연약함으로 절대 돌아가게 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있다. 그래서 과거를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를 보호하는 수단이 된다.
우리는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죄에는 관성이 있이서 계속 죄짓는 것이 편하다. 또한 우리는 무신론의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실천적 무신론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끝까지 우리를 추격해서 옛날로 돌아가게 하지 않으신다.
다 실패한 예수님의 제자들을 생각해보라.
베드로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찾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절망한다. 나는 다시 물고기 잡으러 간다고 돌아가버린다. 버리고 온 자리로 다시 간다. 그런데 어떻게 되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끝까지 찾아가셨다. 그리고 다시 사도로 회복시키셨다.
우리는 이제 이런 존재다. 죄의 본성에 이끌렸던 옛날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 자리가 그리워서 간다해도 거기서도 은혜에 발견되서 다시 은혜의 자리로 오게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 생각이 필요하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다.
생각하자.
구원이 무엇인지, 어떤 은혜를 베풀어주셨는지.. 그 은혜를 날마다 묵상하라.
우리에겐 여전히 소망이 있다. 이 소망을 풍성하게 이루실 주님만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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