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태중에서 기뻐하다
2020 우리의 기쁨이 되시는 예수 시리즈1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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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이 태중에서 기뻐하다–2020우리의 기쁨이 되시는 예수 시리즈1
(2020.12.2 수원 온누리교회 수요저녁예배-서 현 목사)
본문: 눅1:41-45
주제: 예수님의 존재는 태중의 아기에게도 기쁨이다.
1. 서론-기쁨을 잃어버린 시대.
우리는 기쁨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까요? 저는 기쁨을 빼앗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서도 기쁨의 소식은 들을 수 없습니다. 절망과 우울과 슬픔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올해 초, 멀리서 들려오던 코로나는 어느 순간 우리 곁에 찾아왔고 우리를 지배했습니다. 11월 말 현재, 감염자가 전 세계적으로 6천만 명이 넘었습니다. 사망자는 150만 명에 달합니다. 미국은 하루에도 십만 명 넘는 사람들이 감염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점점 감염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고, 일자리를 잃게 되고, 영업장의 문을 닫아야 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한 삶을 살아갑니다. 일반적인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는 줄었지만, 정신과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을 코로나 블루라고 하는데, 그 증세가 심해서 코로나 블랙이라고 부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쁨을 빼앗겼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기쁨을 경험하셨습니까? 너무 오래 되지는 않았습니까? 우리는 기쁨의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쁨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보다는, 말초적인 쾌락에 빠지고 있습니다. 모바일 게임의 매출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유튜브 프리미엄 등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사상 최고로 늘었습니다.
우리는 기쁨을 외부의 요인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존재에서 찾아야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기쁨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기쁨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의 존재 자체가 기쁨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예수님을 만나서 기쁨을 경험한 사람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기쁨을 확인해보기 원합니다. 주님의 잉태부터 마지막 말씀까지. 예수님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기쁨이 되심을 볼 것입니다.
그 첫 번째로, 요한이 태중에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존재는 태중의 아기에게도 기쁨이 되었습니다. 요한이 태중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기뻐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잉태되자마자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기쁨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기쁨을 전하는 존재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
1) 말씀에 바로 순종할 때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첫 번째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바로 순종할 때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눅1:39 를 읽어 주십시오.
그 무렵 마리아가 일어나 유대 산골에 있는 한 마을로 서둘러 갔습니다.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수태 고지를 합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잉태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두려웠습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처녀인 제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그 때 가브리엘은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엘리사벳도 아기를 낳지 못했는데 임신한지 벌써 여섯 달 째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39절이 시작됩니다. 가브리엘의 이야기를 들은 마리아는, 서둘러 이동합니다. 그녀가 간 곳은 사가랴의 집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 것입니다. 마리아는 서둘러 갔습니다. ‘스푸데’라는 말은 흥분하여, 급하게, 부지런히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가브리엘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다른 곳이 아닌 엘리사벳에게 갔다는 의미입니다. 산 위에 있는 집이었지만, 마리아는 가쁜 숨을 쉬면서 엘리사벳을 만나러 간 것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말씀에 바로 순종할 때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바로 순종했습니다. 아마 천사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서 엘리사벳을 만나러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는 마음이 바뀌기 전, 첫 명령과 첫 마음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쁨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첫 마음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곱씹어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자발적인 순종이 아니라 억지로 순종하게 됩니다. 그 결과 기쁨이 사라집니다. 기쁨은 자발적인 순종에서 나옵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할 때 기쁨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듣고, 마리아는 바로 움직입니다. 순종합니다. 여러분은 바로 순종하고 계십니까? 첫 마음이 진짜입니다. 망설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셨을 때 그대로 움직이십시오.
2) 그리스도를 만날 때 기쁨이 충만하다.
두 번째로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만날 때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41절을 읽어 주십시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를 받을 때 배 속의 아기가 뛰놀았고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충만해져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만났습니다. 그 때,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임신 6개월 된 요한이 엘리사벳의 배 속에서 뛰놀았던 것입니다. 원어를 보니 ‘스키르타오’라고 하는데, 이 말은 큰 기쁨에 대한 표시로 연속해서 껑충껑충 뛰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펄쩍펄쩍 뛰는 것입니다. 이것을 44절에 더욱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44절을 읽어 주십시오.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이 내 귀에 들릴 때 내 배 속에서 아기가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아기가 왜 뛰놀았습니까? 기뻐하며 뛰놀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뻐하다라는 말은 매우 기뻐하는 것. 기뻐서 소리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기가 움직이는 것을 어머니가 느낍니다. 어머니는 좋아서 움직이는지 아닌지 압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보자마자 뱃속의 요한이 반응하는 것을 보며 놀랐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면 기쁨이 충만합니다. 뱃속의 아기도 기뻐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얼굴로 본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서 뜁니다. 아기는 기뻐 뛰고 엄마는 성령 충만해집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얼굴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얼굴로 만나는 것 보다 더 기뻐합니다. 그것이 신비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예수님을 만날 때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교회만 다니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기쁨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하고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해도,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모든 봉사와 사역은 예수님을 만난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기쁨을 잃어버리셨다면, 예수님께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창세기 25:22-26 를 보면, 야곱과 에서가 태 중에서 싸우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먼저 나오려고 싸웠습니다. 아기라고 하더라도 서로 욕심을 부리는 죄인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다릅니다. 예수님을 만나, 태중에서 기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대립을 끊고 화평케 하기 위함입니다. 이미 잉태되자마자 예수님은 화목의 사역을 하십니다. 기쁨을 주십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에게도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3) 누구와 관련되는가가 기쁨을 결정한다
세 번째로 알 수 있는 것은, 누구와 관련되는가가 기쁨을 결정짓는다는 것입니다. 42절을 읽어 주십시오.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중에 복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배 속에 있는 아기도 복을 받았습니다.
엘리사벳이 말한 이 내용은, 모든 여성 중에 가장 복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본문의 표현은 관용적인 표현으로, 매우 기뻐한다는 뜻입니다.(참조:삿5:24) 요한이 기뻐 뛰노는 것과 함께, 엘리사벳도 기뻐합니다. 그 이전에는 없었던 반응입니다. 마리아를 만나고, 마리아 안에 있는 예수님을 만나니 기뻐합니다. 요한만 기뻐하지 않고 엘리사벳도 기뻐합니다. 누구를 만나는가, 누구와 관련되는가가 기쁨을 결정합니다. 그 기쁨이 퍼져나갑니다. 어떤 분은 그분이 가는 곳마다 기쁨이 넘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가는 곳마다 분란을 일으키는 분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와 함께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환경을 정리하십시오. 어떤 물건은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킵니다. 그 물건만 보면 그 물건에 관련된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물건은 정리하십시오. 어떤 물건은 행복한 기억을 주는 물건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남겨두십시오.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주위에 여러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고 정리하십시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계를 정리하십시오. 여러분이 모든 사람에게 다 칭찬받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맞추다 보면 정신병에 걸립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잉태되셨습니다. 그 일을 통해 엘리사벳도, 요한도 기뻐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기쁨이 전염되는 것입니다.
3. 결론-우리의 존재는 기쁨이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보면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합니다. 그 결과 엘리사벳과 요한은 기뻐합니다. 신뢰와 기쁨은 하나님과의 성공적인 동행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넘칩니다. 주님은 우리를 보며 기뻐하십니다. 주님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잉태되고 몇 달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 바로 잉태되었습니다. 잉태된 존재 그 자체가 기쁨의 근원이 됩니다. 45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정말 이루어질 것을 믿은 여인은 복이 있을 것입니다.
믿는 그 순간 예수님이 수태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뻐합니다. 생명이 잉태되자마자 기뻐합니다. 지난주 이기복 목사님이 낙태에 대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태중의 요한이 반응하는 것을 보십시오. 태아도 반응합니다. 기쁨을 느낍니다. 태아도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기쁨이 됩니다. 한 생명이 존재하는 것이 기쁨이 됩니다. 56절을 보면, 마리아가 석 달 동안 엘리사벳과 함께 있다가 갑니다. 그것은, 임신에 대한 보증과 증인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사벳과 석 달 동안 함께 하면서, 엘리사벳이 요한을 출산하는 것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또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것에 대해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증인이 됩니다. 석 달이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다른 남자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왜요? 수태고지를 듣고서 바로 이동했고, 석 달 동안 엘리사벳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시 순종함으로 마리아는 보호를 받았습니다. 즉시 순종함으로 마리아는 기쁨을 경험합니다. 즉시 순종함으로 모두에게 기쁨이 됩니다. 그리고 그 기쁨의 중심은 예수님이라는 존재가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이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존재의 기쁨은 태중의 아기에게까지 미치게 됩니다. 여러분은 저주의 존재가 아닙니다. 저주의 존재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속이는 사탄의 소리를 끊으십시오. 저주의 이유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그것을 끊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1)우리는 말씀에 바로 순종할 때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2)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날 때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3)누구와 관련되는가가 기쁨을 결정합니다.
이 일들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일어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우리가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