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에 압도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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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장 1-6절
에베소서 4장 1-6절
에베소서 4장은 “그러므로(Therefore)”라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그러므로"라는 표현은 앞에 말한 내용이 뒤에 말하는 사실의 원인, 조건, 근가 됨을 나타내는 표현 입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코로나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스크 착용과 개인 위생에 더 힘써야 한다.” 우리가 행동하는 어떤 행동의 원인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한 일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러한 행동을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뜻, 예정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되었고,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아 살리심을 받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해 주시고,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때까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며, 동행하시고, 보호해 주시며, 인도해주시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4장 1절을 시작하며, 그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성령의 이끄심 가운데 헌신하여 먼저 갇힌자 된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내가 헌신하여 갇힌 자가 되었으니, 너희도 갇힌 자가 되어라!
바울이 이런 뜻으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갇힌 자가 된 이 순간에도 그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잃어버리지 않은 채 평범한 오늘 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에베소교회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 간절함을 담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 후반절에 보면 “너희에게 요청한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 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절 말씀을 더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고, 그 은혜에 감사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목적, 그 부르심의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는 그 은혜에 사로잡혀 나를 향한 그 부르심의 목적대로 달려오다 감옥에 갇혀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에게 주신 그 은혜에 감격하고 있습니다. 그르므로 여러분들도 그러한 나를 본받아 여러분들의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여러분들을 부르시고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라고 사도바울이 사랑하는 에베소 교회의 양들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몇주전 에베소서 1장을 설교할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신 목적이 있으시다라고 나눴었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었나요? 기억나는 분이 있을까요? 마이크 켜주시고 대답해 주셔서 좋을 것같아요^^
1장 6절과 12절 그리고 14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반복적으로 나오는 표현이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케 하기 위함이십니다.
주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예배로 또는 예배가운데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 말씀들에서 반복적으로 얘기하는 주님을 찬송함이 단순히 성도들이 함께 모여 노래부르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에 국한된, 그것에만 해당하는 일인가 했을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2장 8절에서 10절 말씀을 다시 한번 살펴 봅시다.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엡 2:8–10). South Korea.
우리는 분명 우리의 노력이나 댓가 지불과 아무런 상관없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9절에서 명확하게 우리의 행위로 은혜가 임한 것이 아님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중 그누구도 우리가 받은 은혜를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씀을 살펴보면 9절과 10절에 동일하게 행위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다시 말해 바울이 9절에서 얘기한 ‘행위’와 10절에서 얘기한 ‘선한 일’은 똑같이 우리들이 행하는 action, 즉 행동, 혹은 행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뜻은 전혀 다릅니다.
9절에 나오는 첫번째 ‘행위’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자 우리들 스스로 행하는 일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10절에 나오는 두번째 행위인 ‘선한 일’은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인정, 은혜를 받은 자로써,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신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 내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죠.
그렇다라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은혜를 받은 우리들의 선한 일, 삶을 통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삶으로 드리는 찬양(Praise), 우리의 삶으로 인해 주님이 칭찬 받으시고, 주님의 이름이 열방가운데
높임을 받으시도록 하는 것을 위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이름이 왜 우리의 선한 삶, 행동, 행위, 행실을 통해 열방가운데 높임을 받으셔야 할까요?
그 이유는 열방가운데서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삶의 스타일, 삶의 방식, 태도, 언행, 행동, 선함, 착함, 섬김, 희생, 사랑, 겸손, 오래참음, 평화를 끼치는 삶을 보고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높여 드리며 그분께 나오도록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한없는 은혜를 부어주시고, 그 은혜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열방가운데 세상가운데 흘러 가기를 원하신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은 상당히 선교적입니다.
라틴어로 Missio Dei라고 하죠, 선교하시는 하나님, 선교의 하나님.
하나님의 관심과 눈은 항상 잃어버린 양들을 향하십니다.
차마 잃어버리기 안타까운 한 영혼을 애타게 찾으시는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도 충만히 부어지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하심, 의도하심, 목적하심을 너무나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알고 있었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다해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았고, 그 결과로 감옥에 갇혀 죽게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을 압도하시며 이제까지 이끄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온 삶을 다해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당당하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이 의역한 메시지 성경에는 4장 1절의 역동적이고도 강력한 외침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바라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주님을 위해 죄수가 되어 이곳에 갇혀 있지만, 여러분은 저 바깥으로 나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셔서 걷게 하신 그 길을 걸어 가십시오. 아니, 달려 가십시오! 나는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구도 팔짱끼고 가만히 앉아 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엉뚱한 길에서 헤메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유진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에서 표현한 에베소서 4장 1절을 읽으니 제 가슴이 마구 뜁니다. 흥분되고요. 그래 팔짱만 끼고, 판단만하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지. 그래 다시 뛰어야지! 내가 받은 은혜가 어떤 은혜인데!!
저는 전도사이기 이전에 선교사입니다.
여러분들도 청년이기 이전에 선교사인것이죠.
약 10여년전에 방글라데시에 왔던 대학생 전도여행팀이 있었습니다.
약 한달간의 전도여행을 마치고 평가회를 함께 가졌는데,
나이가 제일 어린 자매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선교사도 참 괜찮은 직업인 것같아요"
한달간 방글라데시의 여러지역에서 집회를 가지고, 매년 저희 사역에서 개최하던 전국 규모의 청년 컨퍼런스에 이 팀이 참석해서 발렌티어로 섬겼는데, 많은 방글라데시의 청년들이 회심하고, 하나님앞에 자신들의 삶을 드리기로 결단하는 모습들을 보며 깊은 인상과 감동을 받았던 것같습니다.
그렇게 고백했던 자매는 현재 일본에서 선교사라는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교사는 특정한 직업일수도 있지만,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 모두가 사실은 선교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사도바울이 도전한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교사의 삶을 위해 내 처소를 떠나야 할때도 있지만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선함을 통해 주님께서 영광받으시게 하는 일이 선교의 시작일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너희도 나 처럼 복음을 위해 헌신하다 감옥에 갇히길 원한다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이 있고, 헌신해야 할 분야가 있습니다. 우리는 공부하는 혹은 일하는 혹은 미래를 준비하는 그런 위치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세상의 방식, 방법, 흐름에 영향을 받아 그것에 길들여 지고, 그것에 조종을 받고, 그것이 최선인 것 처럼, 아무런 존재감없이, 아무런 빛도 들어내지 못하고,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지 말고, 세상에 길들지 않는, 세상이 길들일 수 없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의 사람으로 서서, 선교사적인 삶으로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내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삶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