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찾아가는 신앙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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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은 날마다 말씀과 기도와 겸손으로 주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신앙의 여정이다.

지난 번에 김민아 전도사님이 설교를 하실 때, 설교 초반부에 노래를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지난 주에는 양다은 전도사님이 설교 끝 무렵에 노래를 하셨습니다. 저도 설교 중반에 노래 한곡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지난주에 찬양 인도를 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노래를 갈음하기로 하겠습니다.
이천년 전 동방의 박사들이 밤하늘을 관찰하다가 큰 별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 별은 너무나 밝고 특이했습니다. 딱 봐도 뭔가 징조가 있는 별이다 그런 생각이 들게끔 하는 별이었습니다. 박사들은 밤마다 별의 이동을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그러다 별이 유대 하늘 위에 멈춰 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점성술사였습니다. 이들은 별이 유대 하늘에 멈춰서자 그 땅에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새로 태어난 왕을 경배하기 위해 지체하지 않고 유대를 향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주님을 찾아가는 신앙 여정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별이 동기가 되어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별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분은 부모님이 신앙의 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친구가 신앙의 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이웃이 신앙의 별이 되어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각자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의 목적은 모두 똑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신앙인들이 이 목적을 망각한 채 더 이상 신앙의 여정을 계속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나온 것으로 만족해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오는 것은 신앙의 완성이 아닙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 온 곳이 어디입니까? 예루살렘입니다. 왜 예루살렘에 왔습니까? 예루살렘에 궁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왕께 경배하러 온 사람이 궁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입니다. 교회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각자 별을 발견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이 교회에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 출석이 신앙 여정의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향해 출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여정의 목적지 되신 예수님께 만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 이 시간에는 어떻게 하면 신앙여정의 목적지 되신 예수님을 이해하고 경험하고 만날 수 있는지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말씀 묵상을 통해서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 6절입니다.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동방박사들은 유대 하늘에 있는 별을 보고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왕궁을 찾아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이를 찾았습니다. 온 예루살렘이 난리가 났습니다. 왕이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왕자도 아니고 왕이 새로 태어났다고 하니 모두가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 왕은 명석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는 이 왕이 누구를 뜻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헤롯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태어나면 어디서 태어날 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선지자의 글을 근거로 유다 베들레헴이라도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만나려면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등장하고 모세도 등장하고 엘리야도 등장하고 다니엘도 등장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누가 주인공인지 헷갈립니다. 여러분 마블의 어벤져스라는 영화를 보신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 아이언맨도 나오고 캡틴 아메리카도 나오고 스파이더맨도 나오고 헐크도 나오고 토르도 나오고 여러 히어로들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영화 주인공이 누구인지 헷갈립니다. 아이언맨이 타노스를 물리쳤기 때문에 아이언맨이 주인공인지 캡틴 아메리카가 주인공인지 헷갈리는 것입니다. 성경도 주인공이 여러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성경의 주인공은 자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이렇게 성경은 예수님에 관한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더 깊이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읽기 쉬운 책이 아닙니다. 내용도 어렵고 두께도 엄청 두꺼운 책입니다. 잘 때 배게로 쓰면 딱 알맞은 두께죠. 그래서 잘 때 머리에 두고 자시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읽지 않는다면 평생 일독도 못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가수였다가 몇 년 전부터 배우로 전향한 손담비씨가 ‘나혼자산다’라는 예능에 출현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손담비씨가 연예인들과 단톡방을 만들어 성경을 묵상하고 있더라구요. 때마침 에스겔 본문을 읽고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에서 예언서는 쉬운 책이 아니거든요. 특히 에스겔을 정말 읽기 어려운 책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심하게 표현해서 에스겔이 예언할 때 돌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에스겔은 읽기 어려운 책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걸 읽고 있으니 이해가 되겠습니까? 아니죠. 자기도 그 프로에서도 너무 어렵더라고 이야기하더라구요. 그런데도 성경을 놓지 않고 계속 읽더라구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성경이 어렵더라도 계속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계속 읽어나갈 때, 성경 속에서 예수님이 누구인신지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입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을 향해 떠났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출발하자 유대 하늘 위에 있던 별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을 인도해서 예수님이 태어난 여관 위에 멈춰 섰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은 베들레헴에 있는 여관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만약 별의 인도가 없었더라면, 베들레헴에는 무사히 도착했을지언정 예수님을 즉시로 찾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생각해 보십시오. 캄캄한 밤) 하지만 별의 인도함을 받자 동방박사들은 주님을 곧 바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통달해도 우리를 주님께로 곧바로 인도하는 존재가 없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런데 많은 이들이 진리 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똑똑하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주님이 진리이시라는 것 즉,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노력으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되심을 온전히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이재철 목사님이 주님의 교회를 섬길 때, 프랑스 소르본에서 불교학 박사를 받으신 스님을 교회에 불러 특강 강사로 초청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스님은 프랑스 유학 당시 카톨릭 수도원을 숙소로 삼았습니다. 당시 수두원은 미사 참석의 의무였기 때문에 한국의 어느 신학생들보다도 성경을 잘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특강에서 자기가 성경을 많이 읽어봤는데 아무리 성경을 읽어봐도 성경이 잘 믿어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냥 읽는다고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조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해주시는 적용의 영이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예수님은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진리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 어떻게해야겠습니까? 바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성령충만 받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승천 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시길 ‘성령이 임하시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성령이 임하시면, 머리 속에 있던 주님에 관한 지식이 머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내려와 가슴이 뜨거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예루살렘 떠나지 않고 오직 기도에 힘썼습니다.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성령님이 불같이 임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뜨겁게 기도할 때, 성령 충만할 수 있고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낮은 곳으로 향할 때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입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동방박사들이 집에 들어가 예수님을 경배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듯보면, 예수님이 평범한 가정집에서 태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태어난 곳은 평범한 가정집이 아니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 7절입니다.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여관에 자리가 없어서 가축이 있는 구유에 누워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낮고 낮은 곳으로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소설가 지오바니 파니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넓은 천지에서 왜 하필이면 짐승의 구유에 태어나셨는가? 그곳이 그분이 이 세상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깨끗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주님이 보시기에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곳이 바로 구유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계신 구유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과 시선이 낮은 곳을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깨지고 상할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상한 심령을 가진 사람입니다. 통회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나 삶의 고난에 직면하게 되면, 그곳이 예수님이 계신 구유라 생각하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마가복음은 신학적으로 독톡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가복음 안에 예수님이 직접 자신을 ‘메시아’라고 언급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역이 심화될수록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숨기셨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밝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입니다.(대제사장에게 심문받는 자리는 예수님에게 가장 낮고 낮은 자리입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네가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내가 그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여기서 ‘내가 그니라’라는 대답은 출애굽기 3장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스스로 있는자라’라고 대답하신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누가 과연 스스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신적 존재만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가 스스로 있는 자니라와 같은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낮은 자리에 계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낮은 자리로 향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고 헌신하고 병들고 아파하는 성도들을 위해서 함께 울며, 사회적 약자를 위해 그들과 함께 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자리에서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교회 나왔다고 여정이 마무리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사 이 땅위에 피흘려 죽으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이해해야 하고 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겸손히 섬김으로 주님과 깊은 교제를 이어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의 여정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향한 신앙의 여정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은혜와 사랑과 존재의 깊이는 너무나 깊고 넓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온전히 알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말씀과 기도 또한 낮은 자리에서 겸손히 섬김으로 주님을 매일매일 알아가는 신앙의 여정을 이어가야 합니다. 언제나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신앙의 여정으로 이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는 본래 죄인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주님 우리를 신앙의 여정으로 불러 주셨사오니 늘 말씀과 기도 그리고 겸손히 낮아짐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깊이 알고 경험하고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세상에서 기쁨을 준다한들 그것은 잠깐이고 금방 사라져버릴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그 예수님을 알아가는 기쁨, 경험하는 기쁨, 만나며 교제하는 기쁨을 주셔서, 우리의 신앙 여정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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