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를 타고 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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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9:9-10 말씀과 연결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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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로의 부름, 시편 24:3-4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기도

연약하고 낮고 추하여 스스로 숨을 수밖에 없는 저희들임에도 이곳에 임재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도 주님은 우리에게 오시기에 우리의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예배합니다.
이곳에 오셔서, 기쁨 가족들이 예배하는 그곳에 오셔서 주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홀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87장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죄의 공적 고백과 개인 참회

사죄의 선포

이사야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대표기도 / 성춘경 장로,

특송 / 김화수 집사 부부

본문

요한복음 12장 12-19절, 나귀를 타고 오신 예수님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17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18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설교

대강절, 성육신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

성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로

성탄을 통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약속대로 예루살렘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십니다. 이때에도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오신 예수님은 교회에 오셨습니다.

다시 오실 것입니다.

성탄을 통해 오심을 배우고 기억야해야 할 이유는 첫 오심이 확실해야 마침내 다시 오시는 것까지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육신, 겸손하신 예수님

본문의 메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종려나무, 호산나, 나귀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온 무리들이 예수님을 환대하며 열광하는 장면이다.

‘종려나무 가지’(13절)는 예수님의 승리의 입성을 나타내는데, 공관복음에는 등장하지 않고(마 21:1–11; 막 11:1–11; 눅 19:28–40), 오직 요한복음에만 나온다.

종려나무 가지는 레위기 23:40에 따르면 초막절에 사용되는 식물이다.
그러나 유대 전통에 따르면, 초막절이 아닌 다른 절기에도 종려나무가 사용되었고, 특히 승리를 상징하는 식물이 되었다(마카비 상 13:51; 마카비 하 10:7).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맞이한 이유는 바로 승리의 왕, 메시야를 환영하기 위해서였다.

‘호산나’(13절)는 히브리어 혹은 아람어로 ‘구원하소서!’라는 뜻으로, 시편 118:25에서 왔다.

나귀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최종적으로 진입하셨다.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시고 타시니. 예수님은 약 3km 정도를 오시면서 나귀를 타실 필요가 없었다.
예수님은 먼 거리를 걸으시는 데 익숙하셨으며 육체적으로도 건강하셨을 것이다.
순례자들은 대개 걸어서 거룩한 도성으로 들어가곤 했다.
예수님의 행동에는 의미가 있다.
Zechariah 9:9 NKRV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이는 기록된 바 시온의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나귀 새끼를 타시는 평화의 왕으로 묘사한다.

스가랴 9:10은 에브라임 병거와 예루살렘 말을 끊고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으로 말한다. 이러한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의식하시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유대인의 왕으로서 대중적인 기대의 군국주의적 메시아가 아니라 우주적인 평화의 왕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해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다.

예루살렘에 오신 왕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시편 118:26에서 인용한 것인데, 사람들은 ‘이스라엘 왕’이신 메시야가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담고 외치고 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그가 우리에게 빛을 비추셨으니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시 118:26–27).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칭송했기 때문이다.
원문을 수정했음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가 아니라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이다. 이전에 무리들이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는 시도에 그가 반응했던 것과 달리(참조, 6:15)

예수님은 순례자들의 그러한 칭송을 받아들이셨다.

앞서 나다나엘도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호칭했고(1:49), 오병이어 기적 후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했다(6:15).

그때 당시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하셨으나, 이제는 더 이상 피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의 십자가 시간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요 12: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이 의미를 얼마나 공감하십니까?

2. 우리는 바리새인들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소리 지렀기 때문일까요? 종려나무를 흔들었기 때문일까요? 이 본문에서 유대인들만이 발견할 수 있는 강조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왕이라, 자신을 그 백성이라 고백합니다.

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말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제 이야기를 하나 전하겠습니다.

세윤이가 태어난 95년은 저와 저희 가정에 드라마틱한 한 해였습니다.

저의 집이 꽤 사는 집이었다는 말씀은 드린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어머니는 그때까지도 신학을 그만 두고 돈을 버는 일을 했으면 했지만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어머니께서 직접 돈을 더 많이 벌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한 회사의 빚보증이 잘못 되면서 하루 아침에 어디에 살아야 할까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부모님 거처가 가장 큰 문제였고, 집을 팔고 나와야 했습니다.
여름성경학교를 끝내고 담임목사님께 사실을 말씀 드렸더니 사임하라고 하셨고, 저는 집과 교회를 함께 찾아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때 제게 제안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소개하던 친구가 매우 머뭇거리며 말했습니다. 교회 한곳에서 전도사를 찾는데 조건이 있다는 겁니다. 사택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게는 기도 응답이었습니다. 교회와 집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계속 말하기를 그 교회는 나환자들이 있는 교회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기도의 응답인데 거기가 어딘들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왜 말할 때 머뭇거렸느냐 했더니 사실은 앞에 먼저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매우 불쾌하게 생각해서 사과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곳에서 3년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행복했습니다.

어느날 제가 살고 사택으로 신문이 배달 되었습니다. 당회가 신학만 아니라 세상도 알아야 한다며 신문을 넣어 주셨습니다.
또 여름이 다가올 때 벽걸이 에어컨 중에 가장 큰 것을 달아주셨습니다. 보니 전도사님 뚱뚱해서 여름 나기가 힘들어 보이고 또 아이까지 태어났는데 옥상집이라 덥다며 그렇게 살펴 주셨습니다.
전도사로서 호사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왜 그렇게 해주십니까

조사님 사실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이 쉽지 않는데 우리에게 오셨는데 감사하지요.

제가 부임한 교회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마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왜 겸손입니까?

예루살렘에 오신 것이시지요.

예레미야 15:5 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너를 위해 울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냐
마태복음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주님은 죄인을 살리려고 우리에게로 오셨습니다.

겸손하신 예수님, 성탄은 예수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낮고 추한 곳에는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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