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께 경배하라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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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가족 성탄감사예배 (20201225)
우리는 난생 처음으로 집에서 온라인으로 성탄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최초의 성탄예배가 드려진 곳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그곳은 아기이신 예수님이 누워계신 짐승의 구유 앞입니다. 거기에 누가 있습니까? 요셉과 마리아가 있어요. 또 예배하는 시간은 달랐을지 모르지만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있던 곳을 떠나서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비록 우리가 공동체로 모이지는 못했지만, 성령께서 여러분이 예배하는 각 가정과 처소에 임재하시기를 바라고,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이천년 전 아기 예수께 경배한 목자와 동박 박사들이 누렸던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메시지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실까요? 예수님께 무릎을 꿇어 경배하는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처럼요. 동방 박사들은 누굽니까?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바벨론이나 페르시아의 점성술가라고 합니다. 천체를 관찰하는 것을 통해서 나라의 흥망성쇠와 같은 것을 예측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로는 매우 학식이 높은 엘리트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이 사람들이 어느 날 엄청난 별을 발견합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별이었어요. 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그 별빛이 얼마나 대단했겠어요?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한 별, 아니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놀라운 별을 발견한 거예요. 그들은 모두 그 별빛의 찬란함과 아름다움에 마음이 빼앗겼습니다. 그리고는 먼 길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이 유대 땅에 온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바로 경배하기 위해서입니다. 2절을 보세요.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우리는 동방의 박사들처럼 예배해야겠는데, 동방 박사들의 예배 모습을 본받기 위해서 경배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대조해보려고 합니다.
1. 먼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입니다. 이들은 걸어 다니는 성경이었어요. 헤롯이 그리스도의 출생지를 묻자 구약 미가서를 인용해서 곧바로 대답합니다. 5절입니다.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기록된 바’ 그러나 문제는 무엇입니까? 왕이 나셨는데 경배하러 가지 않습니다. 이들은 지식적인 동의에 머문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지식은 믿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지식을 가진 것이 곧 믿음은 아닙니다. 많은 성경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에게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는 도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고 벌벌 떨었던 존재가 귀신들입니다. 지식적인 동의는 귀신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믿음은 주님 앞에 무릎꿇는 경배로, 예배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배는 그냥 예배시간에 앉아있는 게 아닙니다. 내 생애의 최고의 가치는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요, 따라서 주님께 마음의 무릎을 꿇는 시간입니다. 이들이 있었던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10킬로미터 정도입니다. 걸어서 두 시간이면 가는 거립니다. 그런데도 너무 멀게 느껴져요. 진정한 믿음, 진정한 경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식적인 동의에만 그쳤기 때문이에요.
반면에 동방박사들을 보세요.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들이에요. 성경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메시야에 대한 정확한 예언을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치른 대가를 보세요. 만약에 이들이 바벨론에서 왔다면 적어도 천오백 킬로미터쯤 됩니다. 낙타를 타고 오더라도 한 달은 걸릴 거예요. 지식적인 동의가 아니라, 지식은 부족하지만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예배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합니까?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정말 가치 있는 분입니까?
지식적인 동의가 주님을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는 믿음, 경배하는 믿음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진지하게 알려는 노력입니다. 우리는 동방박사들처럼 별을 연구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인 신구약성경이 있습니다. 우리는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요. 동방박사들이 별을 연구하듯이 우리는 성경을 읽고 연구해야 합니다. 주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정말 살아 계신가, 그분은 믿을만한 분인가, 이분에게 정말 내 인생을 걸어도 될까? 도전해봐야죠. 하나님을 한 번 시험해봐야 합니다. 믿기 위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이 용납해주세요. 기드온이 양털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습니까?
ex) 제가 신앙에 회의를 가지기 시작할 때, 다양한 형태로 하나님께 증거를 구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시험한 적이 있었어요. 고1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중고등부에 1년 이상 교회를 나오지 않던 자매가 있었어요. 어느 날 기도하면서 다시금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정말 거짓말 같은 우연이 일어나더라구요. 정확히 그 주일에 나왔습니다. 그때 제가 굉장히 놀랐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했는데 하나님에 대한 저의 신뢰가 조금씩 커져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식적인 동의에 그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2. 두 번째는 헤롯왕입니다. 헤롯왕은 동방박사들에게 아기를 찾으면 알려달라고 합니다. 자기도 가서 경배하려고 한다고 하죠. 그러나 사실은 거짓입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죽여 버립니다. 16절을 보세요.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헤롯은 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합니까? 자기가 왕이니까요. 여러분, 권력의 구도 속으로 들어가면 둘 중의 하나 밖에 없어요. 내가 올라가서 짓밟느냐 아니면 짓밟히느냐? 헤롯이 어떻게 해서 차지한 왕의 자리입니까?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고 에돔인이었어요. 집안 대대로 로마에게 잘 보였고 그래서 로마에서 자기를 왕으로 앉혀준 것입니다. 무력을 앞세운 혁명으로 로마에 대항해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보려고 하는 민족주의 세력을 물리쳤어요.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고 예루살렘 성전도 멋지게 증축을 시작했고, 또 유대인이 아니라는 혈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순수 유대혈통 가문과 결혼도 했거든요. 이제 좀 권력을 누리고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한편으로는 열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론 헤롯왕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왕이 되려고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그것은 바로 분노입니다. 나중에 동방박사들이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합니다. 그냥 화가 아니라 ‘심히 노하여’라고 말합니다. 나의 마음이 높아져있을 때 나타나는 증상 중의 하나가 분노입니다. 분노의 사촌은 짜증과 삐짐입니다. 화가 날 때 여러분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세요. 그러면 거의 대부분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내 생각대로 사람이나 상황을 컨트롤 하려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게 막혀버리니까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거예요.
ex) 코로나 때문에 사춘기 아이들이 집에 있으니까 좋기도 하면서 너무 힘들어요. 애들이 내 맘대로 안 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됩니다. 방이 쓰레기와 옷으로 널려있습니다. 치우라고 해도 안 치웁니다. 좋은 말로 하다가 큰소리를 내면 ‘왜 누나는, 동생은 나보다 더 심한데 나한테만 뭐라고 그러냐’고 억울해합니다. 목사와 사모가 돼서 좀 더 인격적으로 대해줄 수 없겠냐고 합니다. 지적할 것은 잔뜩 보이고, 여러 번 얘기해도 변화가 없는 것 같은데 참아야 하니까 정말 미치는 겁니다. 그럴 때 마음속에 드는 생각은 ‘나는 저 나이 때에 저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다 조금 생각해보면 ‘조금 저런 면도 있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러다 조금 더 생각하면 ‘어쩌면 저 모습이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결국 이런 생각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다하다 방법이 없으셔서 예수님이 죽으신 거구나’
여러분, 우리는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은 옳다’ ‘나는 판단할 자격, 분노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기준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판단할 자격이 없어요. 우리는 왕이 될 자질이 없어요. 우리는 자기중심적이요, 한쪽으로 치우쳐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제일 안 어울리는 말이 ‘객관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객관적이지 않아요. 우리는 자기 생각대로 시나리오를 쓰는데 익숙합니다.
cf. 교회에 예배드리러 왔어요. 그런데 목사가 옆에 있는 성도에게는 잘해주는 것 같은데 나한테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아요. 목사한테 전화를 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번 다 연결이 안 됩니다. 그러면 마음속에 ‘목사님이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죠. 그러다가 그 주에 교회 가서 지나가면서 인사를 했는데 목사님이 제대로 대꾸를 안 하고 급하게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러면 ‘목사님은 나를 싫어해.’ 확신으로 바뀝니다. 한 번 이렇게 믿으면 신기하게도 그 다음에 벌어지는 모든 일은 다 그 확신을 지지하는 쪽으로 해석됩니다. 믿는 대로 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에만 나의 잘못된 확신과 시나리오가 깨지게 됩니다. 나는 자격이 있고, 내 판단은 옳다는 것은 교만한 마음입니다. 내가 왕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경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는 일도 감사로 받지 못하고 화가 나고 삐지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동방박사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니까 기쁜 겁니다. 10절입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왕을 만난다는 사실에, 그 앞에 경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무릎을 꿇기까지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맛볼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경배하며 예물을 드렸어요. 11절입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우리가 주님을 왕으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왕에게 합당한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려야 할 예물은 무엇입니까? 우리 삶 전체를 드려야 합니다.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시간도 물질도 나의 능력도 모두 주님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아마 이해가 안 갈 것입니다. 광신도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미친 것이 아니라, 그것이야 말로 바른 정신으로 한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3. 진정한 왕은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왕은 헤롯과 다릅니다. 헤롯은 자신의 왕위를 지키려고 사람들을 죽이지만, 우리의 왕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만약 왕권을 유지하고 높아지는데만 관심이 있다면 베들레헴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오셨을 것입니다. 왕궁은 예루살렘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베들레헴에 오셨어요. 작은 마을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 ‘빵집’이라는 뜻입니다. 교회 앞에도 하얀 풍차라는 맛있는 빵집이 있잖아요. 베들레헴 중에서도 번듯한 집이 아니라 구유에 누우셨어요. 소나 말의 밥그릇입니다. 빵집, 구유가 뭘 말해줍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식탁을 차려주시고 섬기러 오셨어요. 무엇으로 우리를 먹이십니까? 자신의 살과 피로,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를 먹이기 위해서 오셨어요.
bcf. 그게 오병이어 사건이 말하려는 핵심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깨닫지를 못했어요. 다음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서에요. 예수님만 있으면 이제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거죠. 그때 주님은 뼈를 때리는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어제 먹은 빵은 아무리 먹어도 결국 죽는다.’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벌어야 한다고 보통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인생을 100년을 한 단위로 보면 먹고 사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먹고 죽습니다. 그런데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먹으면 영원히 삽니다. 요한복음 6장 47-48절을 함께 읽습니다. 시작~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예수님만이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는 떡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고 너는 살라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거예요. 나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주님은 영원한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이런 왕이 어디 있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왕 예수님께 참으로 예배하고 경배합시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처럼 하지 맙시다. 아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경배하는 자리까지 나가십시오. 헤롯왕처럼 하지 맙시다. 진정한 왕이신 그리스도가 오셨으니 내가 왕 노릇 하던 것은 그만둡시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분노하던 모습을 내려놓읍시다. 동방박사들처럼 경배합시다. 주님께 엎드려 절합시다. 주님 알기를 힘쓰고 아는 만큼 주님을 시험해봅시다. 기쁨으로 예배합시다.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신 그분께 우리도 내 삶을 드립시다. 주님을 위해,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삽시다.
♬ 참 반가운 성도여 (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