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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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기다림은 예수님의 기다림이다.

Notes
Transcript
AG1 노아와 그 가족들, AG2 예수님, AP 만물들, CP 왕래하더라 PW 기다림, MIW 땅이 말랐더라 SC 예수님의 오심을 통해 기다림은 응답됩니다.

S1. 인사와 교제

반갑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일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성령님의 위로와 평안이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하고 인사하십니다.
네 감사합니다. 우리의 2020년은 힘겨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세상이 안전하고 사회는 발전하여 삶은 더 평안해졌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최근 수십년동안 나라에는 전쟁이 없었고 교회는 성장하고, 기술과 경제의 발달로 우리 모두는 안전한 삶을 누린다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우리끼리 좀 더 잘 살려고 아둥바둥 다투는 것이야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일이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라고 하는 엄청난 충격이 온 세상을 뒤덮게 되자, 선진국으로만 보였던 유럽이나 미국도 다 어쩔 수 없이 비슷하게, 어쩌면 우리보다 더 어렵게 지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세상은 안전하지 않았고, 우리의 삶은 우리 힘으로 다 해결할 수 없는 힘든 삶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런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께 많은 요청을 드렸습니다. 언제쯤 이 고통이 떠나가게 됩니까? 묻기도 했습니다. 이제 백신 소식도 들리면서 곧 회복이 되겠지 했는데 이 겨울 우리는 회복을 위해 더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체득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앙적으로는 좀 더 성숙함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 모든 것이 주님 것인 줄도 좀 더 알게 되었고, 오랜만에 주일에 부모와 자녀들이 한자리에 앉아 예배드리며 말씀에 대하여 나눔과 격려가 소중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기다려야 합니다. 영상 예배도 드리고, 영상으로 성경 공부도 하면서, 앞으로는 구역 모임이나 부속회도 이런 방법으로 좀 더 인내하며 보내야 합니다. 오늘 노아의 이야기는 반복되는 듯하면서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인내의 학교에서 회복을 소망하는 노아가 가만히 앉아 모든 것을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인 노아는 하나님의 약속이 응답될 것을 소망하면서 온갖 몸부림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응답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지는 기다림의 모습을 함께 묵상하면서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우리의 삶에 지침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S2. 본문의 주제

모세는 노아가 방주 안에서 회복을 기다릴 때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흔히들 기다림은 수동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노아의 기다림은 매우 능동적인 특징을 보여 줍니다. 우리 6, 7절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8장 6, 7절
6.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7.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노아는 회복을 기다리며 방주의 창문을 열고 까마귀를 내놓아 물의 상태를 점검했습니다. 까마귀는 땅이 마르지 않아 계속해서 물과 방주 사이를 왕래하며 날아다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비둘기를 내보냈습니다. 8, 9절을 봅시다.
창세기 8장 8, 9절
8.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9.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비둘기 역시 온 지면에 있던 물로 인해 땅에 내리지 못하고 방주로 되돌아 왔고, 노아는 손을 내밀어 받아주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내 보냈습니다. 10, 11절을 봅시다.
창세기 8장 10, 11절
10.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이번에는 비둘기가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왔습니다. 땅에 있던 올리브 나무에서 새 잎이 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더 소망을 가지고 다시 일주일 뒤에 비둘기를 내 보냈더니 이제는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어 마침내 땅이 마르고 방주에서 내려 올 날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13, 14절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8장 13, 14절
13.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14.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S3. 문제 제기

모세는 왜 이렇게 노아의 기다림을 우리에게 자세히 알려 주고 있을까요? 그냥 물이 말라서 노아와 가족들이 배에서 내렸다고 하면 될 텐데 왜 노아가 물이 마르기를 기다릴 때까지 했던 일들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을까요?
아마도 모세는 당시의 백성들과 오늘의 우리들에게 기다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려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시는 데 우리가 할게 뭐가 있나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시면 되는데 왜 내가 나서서 마음도 다치고, 몸도 상해야 하나요?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그냥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실 것 아닌가요? 세상 일 내 맘대로 되는 것 없는데 내가 뭘 할 수 있나요? 이런 마음들이 보통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그 이면을 보면 다 삐진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토라진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해야지, 뭘 할 수 있겠어, 하나님이 다 하시겠지’ 하고 마음을 등지는 것입니다.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방법

우리 하나님의 인내의 학교에서는 기다림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주변에 회복의 증거들이 있고, 변화가 나타나도 하나님은 마지막까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노아도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다림은 하나님께 삐지거나 마음이 상해서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를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배에서 놀고 먹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까마귀를 내놓아 지속적 왕래를 하게 해 땅의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언젠가 내려갈 그 날을 기다리며 비둘기도 보냈습니다. 또 칠일, 그리고 또 칠일을 기다려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다르신 분이십니다. 회복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뜻과 다르시다고 선지자는 증언했습니다. 이사야 55장 8절의 말씀을 봅시다.
이사야 55장 8절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우리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악인이 그 길에서, 불의한 자가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 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왜 하나님이 기다리십니까? 그것은 우리 편의 문제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적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따르고 섬기기 위한 성숙함을 이루는 데는 세월이 필요한 것입니다. 잠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언 13장 12절
1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우리들은 소망이 더디 이루어짐으로 생기는 마음의 상처 속에서 성숙함을 이루어 갑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십니다. 기다림의 아픔이 우리를 성숙하게 합니다. 어느 대중 가수는 ‘아픈 만큼 성숙해 지는 것’이라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은 소망을 더디 이루심으로 우리를 아프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왜요? 그 아픔을 통해 죄인인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우리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다는 약속을 통해 믿음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메시야를 바라고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랜 기다림을 통해 우리의 땅과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구원과 회복을 완성하셨습니다. 언제부터 예수님이 예언되어 왔습니까? 에덴 동산에서 노아가 타락한 순간부터 예수님이 오신다고 선포되셨습니다. 노아 시대까지 무수한 사람들이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렸지만, 예수님은 심지어 노아에게조차도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히브리서를 통해 믿음의 사람들은 약속의 성취가 아니라 약속을 바라봄, 곧 약속을 기다림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26절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기다림으로 구원의 큰 상을 주십니다. 믿음은 바라봄이고, 바라봄은 기다림을 통해 상급이 있게 합니다. 탄생하신 메시야 예수님을 가슴에 품은 시므온과 안나는 오랜 세월 기도하며 주님 오시기를 기다렸던 인물입니다.
누가복음 2장 28-32절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메시야를 않은 노년의 시므온만 아니라 그 시대에는 오랜 세월 기다린 과부 선지자 안나가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 37, 38절을 봅시다.
누가복음 2장 37, 38절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이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을 오랜 기다림의 응답이라 찬송했습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도 사역을 하실 때는 항상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이시면 아무 때나 일하시면 될 듯 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주님은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는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시기 위해 어머니 마리아의 요청을 거절하기도 하셨습니다. 우리 요한복음 2장 4절 말씀을 같이 봅시다.
요한복음 2장 4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예수님은 능력을 행하실 때조차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오빠를 잃고 통곡했던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왜 좀 더 일찍 오지 않으셨냐고 원망의 말을 쏟아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후 나흘이 지나서야 장례식장에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늦게 오신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43, 44절을 봅시다.
요한복음 11장 43, 44절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자매는 기다리느라 지쳐 예수님을 원망했지만, 예수님은 가장 정확한 시간에 나사로를 위한 최고의 때를 기다렸고, 성취하신 것입니다. 기다림이 성숙입니다.

W1. 기다림의 응답이신 예수님

예수님이야말로 성도들의 기다림의 응답이십니다. 이미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은 앞으로 얼마의 세월인지는 몰라도 기다림 뒤에 반드시 세상에 오실 바로 그 응답입니다. 예수님은 성도의 기다림의 대답으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기다리면 응답이 있습니다. 기다린 자만이 응답을 누릴 수 있습니다.

W2. 기다림은 하나님 때를 따르는 순종입니다.

기다림은 막연한 어떤 것을 위해 한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기다림은 나의 때를 성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다림은 내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따르는 순종입니다. 노아는 그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기 때문에 방주를 뛰어 내리지 않고, 까마귀를 보내고, 비둘기도 내놓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기 위해 잔치집에 가셨고,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고자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뒤에 장례식장에 가셨던 것입니다.

W3. 하나님의 기다림에 응답하셔서 성도를 온전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다림에 마침내 예수님을 응답하심으로 성도를 강건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도는 인내의 학교에서 기다림을 통해 완전한 자로 훈련됩니다. 포기하지 않고, 삐지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고, 소망을 잃지 않고 씨를 뿌리고 새를 내보내며 하나님의 응답을 얻게 하십니다. 기다림의 하나님을 깊이 발견하고 만나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T1. 노아의 축복

노아는 기다림의 몸부림 끝에 마침내 응답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는 한 주간, 한 주간을 마음 졸여야 했고, 한 날, 한 날을 기다려야 했으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 방주의 삶을 마치게 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노아야말로 성경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심정적으로 가장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인물이었지만, 그의 긴 마음의 상처는 마침내 물이 다 물러가고 땅이 말라 사람이 거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디딜 수 있는 위대한 삶의 개척자가 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T2. 현대인의 실패

현대인은 기다릴 줄 모릅니다. 우리 모두는 항상 빨리빨리에 익숙해져서 기다림이 만드는 성숙한 삶의 숙성을 잘 모릅니다. 그저 물량적인 크기만 자랑합니다. 아마 지금의 사람들은 노아가 큰 배를 만들어 기네스북에 오를만 했으니까 성공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돈만 많으면 되고, 양적으로 넘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노아의 성공은 큰 배를 만들고, 세계에서 최고의 기록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기다렸고, 기다림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긴 세월 어느 날, 그러나 반드시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놀라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T3. 성도의 축복

성도는 기다림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당장 안된다고 원망하고, 삐지고, 마음 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믿고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과 방법으로 고함지르고 소리쳐서 교회와 세상을 움직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시간과 방법만이 길인 줄 알고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L5 적용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기다림에 응답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깊이 마음에 모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세상의 조급함이나 상황의 급변함을 따라 움직이는 분이 아니시고, 오직 뜻하시고 계획하신 그때에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연약한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기다림이 인내이고, 기다림이 우리를 성숙케 하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 우리는 기다림을 배웠습니다. 아직 아버지의 회복의 때는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침내 응답하실 아버지를 기다리고, 그의 독생하신 아들 안에서 참된 회복을 주실 날을 소망하며 기다립시다. 원망과 비난이 아니라 감사와 소망 안에서 기다림에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됩시다.

L6 결단

이를 위해 우리 모두 기다길 것을 결단하십시다. 삐지고 원망하고, 주장하고 소리 지른다고 기다림 없이 응답이 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까마귀도 보내고, 비둘기도 보내어서 소망이 응답될 날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항상 확인하고 믿음으로 기다리는 삶을 살기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불편해도 영상으로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고, 힘들어도 비대면으로 말씀을 배우고, 익혀서 하나님이 마침내 모든 것을 회복하실 때까지 소망을 붙잡고 기도하고 인내하기를 결단합시다. 그래서 결국은 응답하시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만나 천국의 기쁨과 영광을 누리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30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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