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하는 요셉, 개입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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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요셉은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마태복음은 요셉을 중심으로, 누가복음은 마리아를 중심으로 전개
1. 사건의 전개
1)마리아의 잉태를 알게 됨
2)의로운 사람 / 조용한 이혼이 義의 증거인가? 순접인가, 역접인가?
“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
법적인 정의라고만 이해하면 어려워진다.
해결책은 요셉이 왜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했는가에 있다.
3)어쨌거나 이혼이다. 주님은 아버지의 보호없이 자라게 생겼다. 뭣보다 다윗의 후순일 수도 없다.
님의 약속은 요셉 때문체 차질이 오게 생겼다. 요셉의 판단은 온당한가?
4)compassionate justice?
마리아를 조용히 돌려보내면 그것이 어떻게 자비인가? 그녀는 사람들의 눈총과 입총과 돌에 맞을 수 있는데?
그러잖아도 ‘동정녀 탄생’ 교리가 문제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래서 사도행전 설교에는 동정녀 탄생 설교가 없지 않는가?
그런데 사생아라면?
-성령 잉태임을 알았을까 ?
알았다면 더욱이 지금 그의 결정은 어떤 의미가 있는?
- 의로운 사람 요셉에 의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좌절 될 위기에 처해진다. 가
헤롯의 대 학살 이전에 그리스도의 탄생은 위기를 맞는다. 헤롯의 경우와는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2. 반전 / 보라!
마태가 많이 쓰는 이 “보라!”라는 감탄사가 우리 성경에서는 생략됨.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천사가… 그러니 놀랄만 하지 않는가?
계시, 직접 계시가 지금도 나타나다니~~! 중단된 하나님의 계시가 여기서 다시?
신약 최초의 계시 / 마리이에게 이었떤 수태고지가 먼저일 수도 / 마태가 먼저 나와 있으니까
이 < 보라>, 가 등장할 때 반전이 일어난다. 놀랄만한 진술이 이어진다.
1)다윗의 자손
예수님께 쓰이지 않은 유일한 경우
-1:1, 다위의 자손인 예수님… 그 계보의 선 위에 있는 요셉. 다윗의 자손 메시아의 탄생에 관여해야 하는...
예수님이 법적인 다윗의 자손이 되게 해야 하는 책임을 진 요셉. 그가 책임을 회피하려 하다니...
2)천사를 통해 주신 명령
-아내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 왜 두려운가? 뭐가 두려운가? 단순히 불편하다는 정도인가?
- 하나님의 아들의 아버지가 되는 불편, 불안
- 조용히 끊고자 한 것은 아내에게 자비를 베풀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맡은 바 책무를 다할 자신이 없어서이다. 두려웠다.
-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떨었던 그 두려움이다.
* “데려오는 책임”을 다하는 요 셉
1:20, 24 : 2:13, 14 : 21, 22
다윗 왕통에 소속됨
다윗의 자손으로서 그가 해야할 책임을 보여준다.
3. 그러면 요셉의 의로움은 무엇인가?
의로움은 당연히 율법에의 순종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 이것이 가장 하나님 백성 다움이다.
그러면 요셉의 순종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이다.
마지막까지 가서 그의 으로움은 더 잘 드러난다.
요셉은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뤄나가는데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잘 감당했다.
그래서 의로운 사람이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의 아버지” 역할을 ㄹ부담스러워 하는 것도 어쩌면 하나님 백성다운 면모이다.
<<주제로 돌아가자>>
마태복음의 주제는, 이 사건의 핵심은 인간 요셉의 감정이 아니다.
그가 이 때 몇살이었느냐도 물론 중요하지 않다. 굳이 논하자면 10대이다. 특히나 신부는 10대 중반이다.
중요한 점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실 때 인간의 나약함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뤄가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임재, 이것이 구원 역사의 주제이다. 그리고 마태복음의 핵심이다.
결론/적용
인간의 어림과 연략함, 하나님의 일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함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진전은 막을 수 없다.
오직 삼위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뤄가실 뿐디ㅏ.
이렇게 임마누엘, 그 놀라운 역사는 실현의 단계로 접어든다.
구약 역사에서 예표되고 예시된 구원이, 임마누엘이 완성체를 맞는다.
참 성전이 이 땅에 서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