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으라 순종하라
Notes
Transcript
8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12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13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14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나라를 이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이겠지요. 성경의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시어 임명하는 세 직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는 제사장 그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왕입니다. 그만큼 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이 어렵고 중요하지요. 대통령의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의 일을 결정하는 결정권과 권한을 부여 받습니다. 정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직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권한과 그 영광에 상응하는 막중한 책임이 따릅니다. 아홉 가지를 잘하다가도 한 가지라도 잘못하면 능력이 없다는 질책을 듣게 됩니다.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은 나라와 국민 모두를 혼란과 위기에 빠트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코로나19가 대통령의 초기의 잘못된 판단과 대응으로 이 사태가 커졌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편으론 얼마나 대통령은 애가 탈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통령을 격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재 온 나라가 코로나19로 불안과 어려움에 하루를 보내고 있지요. 빨리 이 사태가 진정이 되기만을 바라면서요.
지난 해 봄에 있었던 마스크 품귀현상을 보면서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하길 없습니다. 사재기를 하는 사람, 가격을 몇 십 배로 올려 판매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이 어려운 시기에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고 남들에게 고통과 어려움을 겪게 할까 하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들보다 많은 성금과 위문품들을 보내는 사랑의 손길들이 더 많다는 사실에 다시 힘을 내어 보지요.
아무쪼록 대통령께서 이 위기가 빨리 진정되도록 모든 일에 빠르고 올바른 결정을 하여 주시길 그래서 올 해안에 코로나19의 위기를 극복하고 코로나 이전의 상태로 나라가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대통령을 돕는 참모진과 정부의 각료들에게도 지혜를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며 서로 비판할 때가 아닙니다.
열악한 의료환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의료진들에게도 쓰러지지 않도록 힘을 내도록 그들을 지켜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하나님께 그분의 긍휼하심에 의지하여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기도하면 이 위기를 모든 국민이 합심하여 버텨내고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도 한 나라의 지도자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된 사람이 여호수아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 모세의 인도로 다른 나라에서 400년 동안이나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으로부터 탈출하여 40년의 광야 생활을 거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 땅에 들어가 정착을 시작하지요.
물론 그들은 출애굽을 경험하지 못한 2세대들입니다. 이제 그들은 지도자 여호수아를 따라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적들과 싸워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면 언제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자신들을 지키시어 그들을 대적할 자들이 없을 것이므로 강하고 담대하라고 여호수아 1장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모세를 이은 이스라엘의 차세대 지도자로 세우시며 약속하십니다.
가나안 땅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곳이기에 그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살기 위해 이전부터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을 다 멸하라고 하시는가? 이것은 옳지 않은 것이 아닌가? 라고요.
여호수아서는 언약 백성, 이스라엘민족의 관점에서는 약속의 성취가 되지만 하나님의 공의의 관점에서는 죄에 대한 심판을 기록이지요. 타락한 우상들을 숭배하고 성적 문란으로 그 죄가 극에 달하였기에 그들을 그대로 두는 것은 마치 지금의 코로나 전염병이 전파되는 것을 방치하여 온 세계에 퍼지는 것처럼 죄악이 온 세상에 퍼져 공의의 하나님의 제2의 노아의 홍수 심판을 불러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도구로 삼아 가나안 족속의 죄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 올바른 신앙 고백을 할 때에는 가나안 땅의 사람들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라합이라는 여인입니다.
여호수아는 정탐꾼 두 명을 보내어 여리고 성과 그 주변의 땅에 대한 정보를 캐어 오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전의 열 두 정탐꾼 이야기를 기억하시지요?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명씩을 뽑아 열 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을 살펴보고 오라고 보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꾼들은 하나같이 가나안 땅에 살던 거인들을 보고 겁을 먹어 자신들은 그들과 비교하면 메뚜기 같은 존재들이라 그들과 상대가 되질 않으니 전쟁을 하면 반드시 지고 자신들은 다 죽을 것이라고 한 사건이지요.
부정적이고 악의에 찬 이전의 열 정탐꾼과는 전혀 다르게 오늘 이야기의 시작점인 두 정탐꾼을 오늘 읽지 않은 수2:23-24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이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나아가서 그들이 겪은 모든 일을 고하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하더라.” 아멘, 아멘.
‘누구의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느냐 죽느냐’가 결정되지요.
오늘 본문의 말씀 내용은 여호수아가 두 정탐꾼을 여리고성에 보내 이들이 라합의 집에 들었으나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자신의 성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리고성의 왕의 사람들이 그들을 잡으려 하지요. 그러나 라합이 그들을 숨겨주고 그들을 쫓는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따돌려 보내고 나서 라합과 두 정탐꾼이 나누는 대화입니다
라합은 우상을 숭배하는 아모리 족속 이방인입니다 성경은 라합을 기생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그녀의 집을 창녀의 집, 혹자는 주막, 또는 여관으로도 해석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천한 신분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라합의 집은 여리고 사람들도 들어오고 나가고 낯선 사람들도 들어오고 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항상 오고 가는 그런 곳으로 짐작됩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은밀히 정탐하기 위하여 두 부하를 보냈고 정탐꾼들은 라합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왜 어떤 이유로 라합의 집으로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롬 8: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정탐꾼들이 굳이 라합의 집으로 들어간 이유를 설명하라면 주님만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는지를 알며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을 예비하신다는 것이지요
라합은 천하고 죄 많은 여인이지만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적 의지를 들었고 그것을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단순하고 담대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나는 믿음이 약하다고 믿음이 적다고 표현합니다
믿음이란 믿으면 완전히 믿는 것이고 아니면 믿지 않는 것이지 조금만 믿거나 점점 믿어지는 것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믿는 것은 전적으로 믿고 그래서 완전히 의지하는 것이지 적당히 어느 부분만 믿고 부분적으로만 의지하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믿음이란 표현을 쓰면서 그것에 대한 확신이 연약한 우리의 육체와 생각에 의해서 일시적 상황적으로 흔들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나 저 모두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았으므로 인격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육체와 생각을 훈련을 통하여 연단 받아 그 흔들림을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합은 이방인으로서 우상을 섬기던 여인이었으나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와 주권 그리고 전능하신 능력을 전해 듣고 그것을 믿어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여리고 왕의 전달자들에게 거짓말을 하여 따돌리고 그들의 탈출을 돕습니다. 그리고는 훗날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함락시키고자 공격할 때 자신과 부모와 형제 자매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죽음에서 구해줄 것을 요청하고 결과적으로 라합과 그의 모든 가족들만이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적 의지로 말미암아 여리고에서 유일하게 구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라합의 믿음에 대해 히 11:31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아무도 견고한 여리고성이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무너지리라 믿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여리고성이 얼마나 견고한 성이었냐 하면 그 성벽은 외벽과 내벽으로 이루어졌는데 외벽은 그 두께가 2미터이고 내벽은 두께가 4미터였고 내벽과 외벽 사이가 5미터 도합 성벽의 두께는 11미터나 되었습니다 그런 성벽이 이스라엘 군대가 그저 나팔을 불며 그 주위를 돌며 외치기만 하였는데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합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은 ‘오직 믿음으로’란 두 단어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의 믿음의 장인 11장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를 제외하고는 오직 라합만이 여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라합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하는 반면에 야고보서에는 그녀가 행함으로 정탐꾼들을 구하여 탈출하게 하는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약 2: 25-26을 찾아 보지요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로마서의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는 것과 야고보서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것에 혼란스러워 합니다 확실히 정리하자면 믿음이 라합을 의롭게 했고 행위가 그 믿음의 순종을 행했기 때문에 믿음과 행함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 것입니다 라합이 정탐꾼들을 위해 행한 것은 실천적인 믿음인 것입니다
롬 10: 9-10을 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렇습니다! 라합은 마음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유일한 하나님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했으며 그리고 목숨을 걸고 행동한 것입니다 라합은 자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으나 그 실체가 그녀의 마음 속에 확고히 있었습니다.
9절을 보면 두 정탐꾼에게 라합이 한 첫마디가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입니다.
이어서 그녀는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광야 여정 전과정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알고 있었지요. 그녀는 선포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라”
이 고백이 어떻게 처한 신분의 이방이 여인의 입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서에서 당신의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이전의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그들의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 믿음을 이방여인 그것도 천한 기생이었던 라합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믿음을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롬10:17
그렇습니다. 여러분, 믿옴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얼마나 자주, 그리고 진지하게 듣는가에 따라 그 존재 여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도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믿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하물며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또한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습니다 하고 선포할 때 이미 그것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저의 이제까지의 짧은 신앙 생활로 믿음과 행위를 표현하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순간부터 하나님을 믿으면 이해가 되든 되질 않던 순종으로 행해야만 합니다 아니 반드시 행하게 됩니다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내자신 스스로가 외치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기생 라합은 마태복음 1장의 그리스도 족보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요. 라합은 유다 지파에 속한 살몬의 아내가 되어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라합의 손자인 오벳은 이새를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조상이 됩니다.
이방여인이요, 기생이라는 그 당시 천한 신분이던 한 여자인 라합은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믿었고 그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고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실 것을 또한 믿었습니다. 이것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구원하였습니다.
라합이 구원을 얻은 것은 그녀가 구원하는 진리를 많이 소유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유한 진리에 믿음의 순종을 하는데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하는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로움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우리의 믿음으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라합의 신분과 직업이 무엇이었는가 라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거듭날 때에 무엇으로 변화를 받았는가에 우리는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라합과 다름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한 분이신 하나님을 향한 라합의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과 주권적 의지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삶을 영원히 보호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마지막 구절인 14절에 두 정탐꾼은 라합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약속합니다.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아멘, 아멘.
이제까지 세상을 우리의 잣대로 판단하고 세상의 힘을 의지하여 살며 우리의 의를 드러내던 나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돌려 고정하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게 하시길 이 시간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202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온통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인하여 어수선하고 서로의 신뢰가 무너지고 사람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교회는 아직도 바이러스전파의 매개체가 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멸시와 질타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을 긍휼하심에 의지하여 계속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여러분들의 건강도 각별히 유의하시길 당부 드립니다. 그렇지만 함께 계신 분들을 위해 서로 격려하고 나보다 연세 드신 분이나 건강이 안 좋은 지체들을 돕는 마음은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
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 52: 7)
우리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지키며 새 해를 시작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라합의 단순하고도 담대한 흔들리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오늘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붙들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 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아멘, 아멘.
그렇습니다. 언제든지 무슨 일이 생기든지 저희가 하나님 앞에 믿음의 순종을 하도록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희를 항상 인도하여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으로 이 모든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하심을 감사 드리며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