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신 하나님 (요 1:1-5)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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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요한복음1 (20210103)
송구영신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한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씀해주셨어요. 갈수록 불안해지고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이 세대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딱 하나,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그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목자가 어떤 분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그분을 참으로 아는 만큼 믿을 수가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믿음을 얘기할 때 주로 강도를 말합니다. ‘집사님은 믿음이 참 강하시네요.’ 그런데요, 믿음의 강도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잘못되면 아무리 강하게 믿어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2주전 주일 밤인가요? 가족들과 함께 호수공원을 산책했어요. 호수에 비친 아파트와 불빛이 참 아름답잖아요. 그런데 그날 날씨가 추워서 호수가 꽝꽝 얼어붙었고 따라서 호수에 비친 야경을 볼 수가 없었어요. 얼마나 얼었는지 돌을 던져보았는데 딱하는 소리와 함께 돌이 굴러갑니다. 한참 지나다가 얼음이 덜 얼어있는 부분이 보여서 또 돌을 던져보니까 얼음을 깨고 들어갑니다. 만약에 제가 꽝꽝 언 부분만 생각하고 ‘이 호수는 안전해’하며 큰 믿음을 가지고 덜 얼어서 약한 부분을 밟고 들어갔다고 생각해보세요. 저의 강한 믿음 때문에 저는 안전할까요? 전혀 아닙니다. 저의 믿음과 달리 물에 빠지고 말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믿음의 강도가 아무리 쎄도, 믿음의 대상이 견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호수 전체가 바닥까지 꽝꽝 얼었다면 제가 아무리 불안한 믿음을 가지고 무서워하며 호수에 들어갔더라도 저는 안전합니다. 무엇이 차이를 만듭니까? 믿음의 강도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새해부터 매주 요한복음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요한복음은 우리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을 확실하게 제시하며, 그분을 믿도록 하는 책이기 때문이에요. 요한복음 20:31절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첫 시간인 오늘은 예수님이 바로 말씀이신 하나님이요, 창조주요, 사람들의 빛이라는 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첫째,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은 굉장히 독특하게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소개합니다. 그것도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1절을 다시 보세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고 14절에서는 이 말씀의 정체를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독생자라고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아버지의 독생자가 누굽니까? 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요, 하나님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단이 됩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교회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렇게 주장한 첫 번째 이단이 바로 아리우스라는 사람입니다. 골로새서 1장 5절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만물보다 먼저 나셨다’라고 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서 아리우스가 뭐라고 말하느냐면 ‘태어나셨다’는 말은 태어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요, 따라서 아들은 아버지와 동등한 하나님이 아니요, 종속적인 존재요, 질적으로 다른 존재다, 즉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는데요, 한구절만 가지고 해석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 구절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합니다. 그런가하면 성경이 말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도 침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침묵하는데 맘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서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면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아리우스는 요한복음을 주의 깊게 살폈어야 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십니다. 10:30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더욱 분명한 것은 오늘 1장 1절에서 분명히 못박아 얘기합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아버지와 예수님이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어요. 똑같은 하나님입니다. 첫 번째에서 두 번째 요지가 자연스럽게 도출됩니다.
2. 둘째,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3절을 보세요.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 자체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성경의 제일 첫 구절 창세기 1장1절이 무엇입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천지를 창조한 분이 누구라구요?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무엇으로 창조하십니까? 말씀으로 창조하셨어요.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이런 말씀이 자그마치 열 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게 바로 말씀이요,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성경의 창조가 범신론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범신론은 영어로 pantheism인데요, ‘모든 만물이 신’이라는 뜻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신이라는 존재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들의 총합이 곧 신이라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꽃도 신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과 구분되어서 따로 존재하는 것을 부인합니다. 절대자요 인격적인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cf. 이런 생각의 현대판 운동이 바로 ‘뉴에이지’입니다. 하나님이 만물과 별개로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은 외부로부터 오는 게 아니에요.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내 안에 있는 내적 능력을 개발시키고 극대화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우주의 차원에 도달하면 되는 거예요.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우라”는 것이죠. 왜요? 내가 신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죠. 결국 자기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가르침도 이와 비슷합니다. 불교의 구원개념은 열반 아닙니까? 불교경전 중에 [잡아함경]이란 곳에서 염부차가 석가의 제자인 사리불에게 묻습니다. “사리불이여, 거듭거듭 수행하면 열반을 얻는 방법이 있습니까?” 사리불이 대답합니다. “있습니다. 그것은 팔정도이니, 즉 바르게 알기, 바르게 사유하기, 바르게 말하기, 바르게 행동하기, 바르게 생활하기, 바르게 노력하기, 바르게 알아차리기, 바르게 집중하기입니다.” 팔정도를 수행하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불교가 바른 것을 추구하도록 사람들을 독려하고 정진하도록 하는 면에서 우리 사회의 윤리적 삶을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인간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 수행해야 열반에 이를 수 있을까요? 또 8가지의 바른 길을 실천한다고 하는데, 바르다 바르지 않다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일까요? 누가 그것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결국 인간이 판단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인간의 기준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은 인간 밖에서 와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에 비유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곡을 심혈을 기울여 칩니다. 그 사람이 잘 연주했는지는 무엇을 가지고 판단합니까? 악보입니다. 그런데 악보는 피아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별개로 따로 존재하죠. 마찬가집니다. 우리 삶에 대해서 바른가 바르지 않은가, 충분히 수행을 했는가 하지 못했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의해서만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 완전하게 의로우시고, 완전하게 선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bcf. 예수님에게 어느 날 한 청년이 찾아옵니다. 이 청년은 구원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 하면 바른 삶을 살 수 있을지 늘 고심하는 진지한 사람이었어요.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분이 없느니라’ 이 말은 예수님이 선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을 사람으로 알고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이죠. 예수님은 청년의 잘못된 생각을 짚어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선하지 않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은 바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알아도 잘못 아는 것이 많고, 말을 하지만 잘못 말하는 것 투성이고, 행동하지만 그릇 행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가진 지식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그 안에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봐야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셋째, 예수님만이 사람들의 생명과 빛이 되십니다. 4절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자연계의 생명이 태양빛을 통해서 유지되는 것처럼, 사람의 생명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자연계에 비치는 태양빛과 사람의 영혼에 비치는 빛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하실 때 그냥 빛은 비췄고 그 빛으로 모든 만물이 생명을 얻습니다. 그런데요 사람의 영혼에 빛이 비치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5절을 보십시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자연적으로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뭔가 장애물이 있고 반항하는 세력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mtph. 밤에 집에 불을 다 켜도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으면 그 안은 캄캄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빛이 비치지 못하도록 가리고 있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죄를 지으니까 스스로 빛이신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그리고는 동산 나무숲 사이에 숨습니다. 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스스로 가려버린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거부하고 나니까 영혼의 빛을 스스로 차단해버리게 된 것이죠. 말씀의 절대적인 기준을 버리니까 이제 스스로 만든 상대적인 기준이 마치 절대적인 진리인양 스스로 위안을 삼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착각이요, 스스로 속는 것이죠. 그럴수록 더욱 자신의 삶을 스스로 옭아매고 스스로 해롭게 할 뿐입니다. 왜요? 빛이 없어서 앞을 볼 수가 없으니까요.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거예요. 영혼의 빛이신 말씀이 없기 때문이에요.
cf. 펜트하우스라는 드라마가 요즘 인기입니다. 대한민국 최상류층을 자부하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이루어서 고층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아파트 이름이 “헤라 팰리스”예요. 매우 상징적이지 않습니까?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신 제우스의 부인이 헤라 여신이잖아요. 그만큼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남부럽지 않은 재산과 사회적인 지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만족이 없어요. 더 높은 성공과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서 쉼 없이 노력합니다. 헤라 팰리스를 설계하고 커뮤니티를 이룬 핵심인물이 주단테라는 회장인데요. 실패를 모르는 삶입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인생의 위기를 만나게 되는데요, 이렇게 혼잣말을 합니다. “아무도 내 삶에 흡집을 낼 수는 없어. 내 삶은 완벽해야 해.” 그러나 현실은 전혀 완벽하지 못합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유부녀와 불륜을 저지릅니다. 일류 예술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최고의 성적을 받게 하려고 시험 답안지를 빼돌려 외우게 합니다. 게다가 자신의 불륜을 알고 있는 과외선생을 결국 죽이고 사체를 유기해요.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영혼에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공과 영향력 있는 지위, 많은 재산이 잘못됐다는 게 아닙니다. 그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니죠.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그런 것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핵심이 무엇입니까? 말씀의 빛 가운데서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분명히 보고 있고 깨닫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살고 있습니까? 새해를 무슨 목적으로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은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까? 영혼의 생명인 그리스도를 소유하여 빛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까?
cf. 드라마를 보면서 박진영 씨의 <하프 타임>이란 곡이 생각났어요. 인생의 전반전은 성공을 위해서 달린 삶이었다고 고백합니다.
♬ 정말 열심히 살고 싶었어 돈과 인기를 얻으면 예쁘고 멋진 여자도 얻고 하고 싶은 일만 고르면 그것만 하고 살 수 있으면 성공인 줄 알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에 자신의 영혼에 희미한 빛이 들어오게 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창조주에게서 벗어나서 생명도 의미도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 갤럭시를 똑바로 쓰려면 애플에게 물어보듯이 / 인생을 똑바로 살려면 인간 만든 사람을 찾아 / 세상을 똑바로 살려면 세상 만든 사람을 찾아 물어보는 게 당연한 이친데 / 그동안 내가 뭘 안다고 떠들어댔는지 부끄러워... / 기나긴 역사의 한 점도 안 되는 내가 이 넓은 우주의 한 먼지도 안 되는 내가 / 이 모든 걸 만든 사람에게 찾아가 물어보지도 않고 / 내 조그만 뇌로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단정하고 큰소리로 떠든다는 게 얼마나 교만한 일인지 내 자신을 믿고 살다가 얼마나 초라해질는지 / 지금이라도 알아서 정말 다행이야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이라도 알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 생명을 정말 소유하고 있습니까? 그 빛 가운데 분명히 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 생명이 누구입니까? 그 빛이 누구입니까? 말씀이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우리 영혼 가운데 환하게 빛나야 합니다.
bcf. 사도행전에 보면 어둠 가운데 있다가 극적으로 빛을 본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어 보려고 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어요.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까지 했습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대낮이었는데도 태양빛이 무색해질 정도로 굉장히 강한 빛이었어요. 너무 밝아서 그만 눈이 멀어버립니다. 그런데요, 그리스도의 빛이 그의 영혼에 비치게 되자 그제서야 자신 얼마나 가증스럽고 위선적 죄인인지를 알게 됩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됩니다. 로마서 7장 14,15절 말씀을 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나는 육정에 매인 존재로서 죄 아래에 팔린 몸입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19절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24절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주겠습니까” 누가 건져줍니까? 25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영혼의 빛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빛이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사실을 믿는다면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가 결단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제 매일 우리의 영혼에 매일 영혼의 빛이 비추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육체는 햇볕을 오래 쐬지 못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비타민D가 부족해져서 등이 굽습니다. 뼈가 약해집니다. 우울증에 걸립니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에요. 예수 믿어서 거듭났다고 하더라도 생기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기쁨도 없고 평안도 없어요. 나의 영혼에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날마다 말씀인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말씀인 성경을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말씀을 읽는 목적을 분명히 하십시오. 왜 성경을 읽습니까? 목사가 읽으라고 하니까, 읽으면 연말에 상주고 목사가 칭찬해주니까 읽습니까? 그렇게라도 안 읽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영혼에 빛을 받기 위해서 은혜를 받기 위해서 읽는 거예요. 요한복음 5:39을 함께 읽습니다. 시작~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기도하면서 읽으십시오. “주님, 저의 지식으로는 주님을 알 수 없습니다. 저의 어두운 눈을 열어서 빛이신 주님을 보게 하소서. 만나게 하소서. 오늘도 주의 빛을 받아 살게 하소서.” 식물이 햇빛을 받지 못하면 살 수 없는 것처럼, 그런 사모하는 마음으로 읽으십시오. 그리고 새벽설교말씀을 들으십시오.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바로 아십시오. 예수님은 종교가 아닙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단지 한 인간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요, 하나님이십니다. 온 우주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말씀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우리 영혼의 빛이십니다. 올 한 해 그 생명으로 충만합시다. 그 빛으로 충만한 더시티사랑의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예수 열방의 소망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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