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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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6장 22-27절, 하나님의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민수기 6장 22-27절, 하나님의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오늘은 신년주일입니다.
오늘은 신년주일입니다.
기쁨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을 지어다
기쁨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을 지어다
사실 이런 인사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인사말에 오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미꽃에는 가시가 있습니다.
복에 대해 자주 말하지 않는 것은 복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기복신앙에 빠질까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사실 모든 좋은 말에는 조금씩의 염려가 있습니다.
중창단을 만들고 이름을 지으려고 했더니 좋은 이름에는 항상 이단들이 연결 되어 있었습니다.
장미꽃에는 가시가 있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중요한 성경의 언약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중요한 성경의 언약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오해하고 잘못 사용했었습니다.
3가지 오해가 있습니다(오늘은 2가지만)
3가지 오해가 있습니다(오늘은 2가지만)
오늘 본문은 제사장의 축복으로 이름 붙여진 본문입니다.
예배 마칠 때 설교자가 소위 축도를 하는데 이 축도의 근거가 되는 구약 성경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예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오랜 세월 이 말씀과 연결된 삶을 살았으나 사실 여기에는 깊은 오해가 있습니다.
3가지인데 시간상 다 할 수는 없기에 다음 주에도 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는 본문 제목에 대한 오해입니다.
첫째는 본문 제목에 대한 오해입니다.
개정개역은 제사장의 축복이라 제목했습니다.
제목을 이렇게 하면 당연히 이렇게 재해석합니다.
오늘날에 제사장은 누구입니까?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은 목사의 축복을 강조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오늘날 모두가 제사장이니 모두가 축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내가 축복한다고 할 것입니다.
복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빠졌습니다.
아니 빠진 정도가 아니라 심각하게 하나님의 복을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사용합니다.
오늘날 성직자의 축복권이라고도 이름합니다.
노회에서는 목사 안수식을 합니다.
이제 안수를 받은 목사에게 기도를 시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덕담을 하느냐하면 이제 안수 받아 뜨끈뜨끈할 때 기도를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을 빼고 사람의 것으로 만드는 망발입니다.
24 여호와는 …, 25 여호와는 …, 26 여호와는 …
어떤 분들은 제사장의 축도라고 제목합니다.
우리의 예배에서는 축도라고 줄여서 표현합니다.
제사장이 하나님께 이 백성에게 복을 달라 기도한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목회자가 이를 중계한다는 생각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복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물론 제사장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분명하게 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복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전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은 친히 복 주시는 분입니다.
기도는 더더욱 아닙니다.
사람들이 하는 어떤 기도이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공로도 없으며 우리의 간구가 주님의 이름을 거치지 않고는 주님께 전달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만약 여기에 제사장을 넣으면 우리가 천주교와 다른 점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런 점에서 축도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본문은 강복 선언입니다.
본문은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분임을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어떤 복을 주시는지 선언합니다.
둘째 오해는 복 받는 대상입니다.
둘째 오해는 복 받는 대상입니다.
여기에 기록된 강복의 대상은 누구인가 하는 것이지요.
여기에 기록된 강복의 대상은 누구인가 하는 것이지요.
유대인들,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이라 합니다.
교회는 교인들이라 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세기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민수기 10:29 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요한계시록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간결하게 요약하면, 주님 안에서 행하는 자가 복 받습니다.
간결하게 요약하면, 주님 안에서 행하는 자가 복 받습니다.
본문이 이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본문이 이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으려는 야곱은 불러내셨습니다.
애굽에 머물려는 이스라엘을 모세를 통해 불러 내셨습니다.
이들은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행진을 준비 중입니다.
민수기 1-8장은 행진을 위한 준비가 기록된 분문입니다.
1-6장까지 사실 실제적인 준비입니다.
그 준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준비는 중심을 드리는 것.
속죄제, 화목제를 드립니다.
이어서 나실인을 통해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준비가 이루어 집니다.
그리고 거친 광야를 향해 나갈 준비를 마쳤을 때 본문이 선포됩니다.
그리고 거친 광야를 향해 나갈 준비를 마쳤을 때 본문이 선포됩니다.
주님 안에 행하는 자가 복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의 삶을 순종하는 이가 복 받습니다.
누가 주님 안에서 행하는 사람일까요?
누가 주님 안에서 행하는 사람일까요?
누구나 교회 다니면 주님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이지요.
기도 안하던 내가 기도하니 주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에 쩔쩔매는 내가 헌금을 하고 있으니 주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자리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일자리를 위해 기도합니다.
저는 일하는 것에서 가장 분명하게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는 일이 하나님 손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일자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겠지요.
일, 주님 안에 있는 것과 나를 위한 것으로 구분됩니다.
일, 주님 안에 있는 것과 나를 위한 것으로 구분됩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이처럼 기도하고 그 응답을 통해 확인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주님 안에 있는 것은 어떻게 확인될까요?
그것은 일을 주님 안에서 하느냐 아니면 나를 위해 일하느냐에 따라 구분된다고 말씀드립니다.
일; job, work, occupation, labor, career (in), profession, trade
일에 대해 오랜 세월 고민한 나라는 우리 나라보다는 서양일 것입니다.
이런 고민은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에 나타납니다.
일을 표현하는 단어를 찾아보면 대개 이렇습니다.
일은 자아 실현의 현장이며 수입 창출의 도구이고 삶의 만족을 실현시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나의 만족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Vocation; 천직, 소명
Vocation; 천직, 소명
하지만 신자들은 일이란 단어를 다른 단어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복을 명하실까요?
하나님은 누구에게 복을 명하실까요?
목사와 교인의 관계에 머물지 마십시오.
하나님 안에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사는 복 있는 사람, 우리이기를
기도 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