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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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말씀은 요한복음 전체의 서론 부분에 해당합니다. 책의 서론은 앞으로 등장할 책의 본격적인 내용의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서론을 통해서 이 책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복음 1장을 통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한 저자인 요한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하는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1장이 우리에게 밝히는 메시지를 가지고 요한복음을 읽어나가면 그 중요한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1장 1-18절의 말씀은 서론의 내용 중에서도 다른 본문과 다른 특별한 문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18절은 그리스도 찬양시인 서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의 특징 중 하나는 글의 내용이 행과 연으로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서시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행과 연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본문을 연으로 구분하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연은 1-8절, 두 번째 연은 9-13절, 세 번째 연은 14-18절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서시의 형태로 기록된 본문 말씀을 그 특징에 따라서 구분하여 본문이 말하고 있는 중요한 메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연에 해당하는 1-8절입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서시의 시작은 이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다라는 선포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하게 들리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의 첫 시작인 창세기에서 이와 비슷한 말씀을 들어본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처럼 요한복음의 시작은 창세기의 첫 구절을 상기시킵니다. 그 이유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크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합니다. 3절 말씀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은 모든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 태초부터 존재하셨고 하나님의 창조사역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1-3절은 이 말씀이라는 인격체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 인격체가 하나님과 동일한 신성을 가진 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 인격체가 하나님과 구분되는 존재임을 밝히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요한은 이 말씀을 생명과 빛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말씀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 그 존재 자체가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곧 말씀과 생명은 같은 본질입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이 됩니다. 빛의 역할은 어둠을 밝히는 것이죠. 말씀은 생명의 빛으로서 어둠을 밝힙니다. 어둠에 덮혀있는 이 세상 가운데 빛을 비추어 죽음을 몰아내고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어둠에 덮혀 살아가는 모든 인류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런데 5절 말씀은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깨달았다는 단어를 원문으로 보면 ‘카텔라벤’이라는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개역개정에 번역된 것과 같은 ‘깨달았다’이고, 두 번째는 ‘이겼다’입니다. 개역개정과 같이 깨달았다고 번역하면 어둠의 거하는 사람들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생명의 말씀인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뜻이 되고, 이겼다고 번역하면 어둠의 세력인 사탄이 이 말씀을 이기지 못했다는 뜻이 됩니다. 요한이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 두 가지의 내용을 모두 포괄하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첫 번째 연을 정리해보면 요한은 말씀이라는 하나의 인격체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의 창조사역에도 동참하셨고, 하나님과 동일한 신성을 가졌지만 그와는 구분되는 존재입니다. 또 이 말씀은 생명 그 자체이고 사람들에게 빛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어둠에 거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이 빛으로 어둠을 밝히시는 이 생명의 말씀인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결코 말씀이 어둠에 패배하는 것은 아니죠. 어둠의 세력은 결코 이 빛의 말씀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제 두 번째 연을 살펴보겠습니다. 9-13절 말씀입니다. 첫 번째 연이 말씀에 대한 내용, 즉 기독론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면, 두 번째 연은 그와 함께 교회론적 혹은 구원론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9절 말씀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하며 앞서 소개했던 생명의 빛을 다시 언급합니다. 9절에서 다시 참 빛을 소개하는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7-8절에서 세례요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세례요한을 그저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로 소개하고 그 뒤에 참 빛을 언급하면서 세례요한과 대비시켜 빛을 소개합니다. 그 빛은 세상에 왔고, 각 사람에게 비추어 졌습니다. 그런데 10절 말씀에는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빛이 세상에 왔고 세상은 그 빛으로부터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그 빛을 인식하고 영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합니다. 여기서 쓰인 ‘알다’라는 동사는 요한복음에서 어떤 사물에 대한 지적인 인지보다는 관계적 혹은 경험적인 인식을 말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빛을 안다라는 것은 그 빛을 믿는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단순히 이 빛에 대해서 알고 모르는 문제가 아니라 그 빛과 관계하며 그 빛을 믿어야 하는데, 세상은 그러지 않는 것이죠. 또한 11절에는 자기 땅에 왔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이 빛이 세상을 창조했으니 세상은 당연히 그의 소유입니다.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땅의 주인의 백성입니다. 하지만 백성이 주인을 영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땅하고 당연한 것도 하지 않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12절부터는 그와 반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상에 온 빛을 영접하지 않은 세상과 달리 그를 영접한 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한다는 것은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오신 빛을 믿는 것, 그 빛의 이름을 믿는 것이 영접한다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 빛을 영접한 자에게는 무엇이 주어집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집니다. 이 권세는 온전히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사역입니다. 이어지는 13절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도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간이 자녀를 낳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의 피들의 결합, 육체의 정욕, 사람의 의지 등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그것들로 되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죠. 오직 하나님의 결정, 하나님의 사역으로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인간적이거나 육체적인 기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신적인 기원을 가진 것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이 땅에 매여서 땅의 것들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것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오신 빛을 영접하지 않은 자들은 여전히 이 땅에 매여 살아가고, 그를 영접한 자들은 풀림을 받아 하늘을 바라보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인 세 번째 연입니다. 14-18절 말씀입니다. 요한은 이 마지막 연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야기하고 있던 말씀의 정체를 밝히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 세상을 창조한 말씀, 생명이자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말씀, 그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몸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육신하신 것이죠. 사람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성육신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성경은 성육신하여 오신 단 한 분을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세상을 창조한 말씀, 곧 세상을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놀랍고도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에서, 어떤 신이 스스로 피조물이 되어 나타납니까?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셨고, 가능한 일입니다.
요한은 성육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거하다고 번역된 동사의 원문은 “에스케노센”입니다. 에스케노센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성막 가운데 거하시는 것을 연상하게 하는 단어입니다. 구약의 성막이 이스라엘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하나님의 임재이죠. 성막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셔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통하여 그들 가운데 찾아가셔서 임재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스스로의 결단과 사랑으로 본인이 직접 사람이 되시면서까지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에 오신 빛을 영접한 사람들,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바로 우리 성도들 가운데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자기 백성 가운데 거처를 삼으십니다. 우리 성도는 우리 안에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 모세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만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예수님의 승천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고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을 보는 즉시 죽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을 보는 순간 우리의 존재자체가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봐야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를 믿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성육신하셔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서 우리가 하나님을 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1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그 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고, 하나님을 볼 수도 없지만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나타내시고 계십니다.
요한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요한복음 전체의 주제이자,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한 영광과 신성을 지니신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그가 구약에서 예언하고 있는 약속된 메시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요한이 이 내용을 책의 전체 주제로 삼은 것은 이 내용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핵심은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기 때문이죠. 아는 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알지 못하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데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그래서 헛된 믿음을 지닌 이단들이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까?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것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길과 행동으로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것, 바르게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계시하고 계십니다. 모든 자연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내시고, 또한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내십니다. 그 계시의 절정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것이죠.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가운데 예수님을 경험하여 그를 아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예수님과 교제할 수 없고 결코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이 말씀은 우리에게 참된 위로와 희망이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결코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신 만큼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앎으로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인간의 지식의 한계는 결코 하나님을 다 알 수 없고, 또한 인간의 연약함은 날마다 하나님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여 그 말씀을 묵상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자들의 삶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참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너무나도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고, 또한 교회는 세상의 분별없는 비난까지 받으며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성도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더욱더 힘이듭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저 교회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고,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둠은 빛이 오면 반드시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둠이 빛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 땅의 주인인것처럼 행세하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재림에 날에는 모든 어둠이 빛에 완전히 물러가서 오직 빛이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만이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그날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말씀 가운데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