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대한 합당한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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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집중
주의집중
가끔씩 강의를 하거나 상담을 하다가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에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있기는 있다고 믿고 있고, 교회에 사역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밥을 먹을 때도 꼬박꼬박 식기도도 하고 있고, 나름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뭔가가 부족합니다. 예수를 열심히 믿는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별로 뜨겁지가 않습니다. 별로 즐겁지도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날 예배당 와서 찬양하는데 저 앞에서 찬양하는 사람은 옷을 저렇게 입었냐 말았냐 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좁은 예배당, 그리고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빙빙 도는 것이 짜증나게 생각됩니다.
열심히 봉사하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생각대로 잘되지는 않고, 힘들기만 합니다. 그래서 연말만 되면 빨리 그만둘 생각부터 합니다.
문제제기
문제제기
왜 그럴까요? 찬양을 불러보면 은혜가 내게 풍성하다, 기쁨이 넘친다. 등등의 별 말을 다하는데 왜 나는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그런 것들이 떨어지게 될까요?
그것은요. 내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 은혜가 큰지 모를까요? 그 은혜는 위로부터 임하지만, 그 은혜를 받아들일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큰 능력을, 제대로된 반응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생각해볼까요? 우리는 어떻게 그 복음에 대해 반응해야 할까요?
왜 해답제시
첫째. 복음의 반응은 믿음과 순종이다!
첫째. 복음의 반응은 믿음과 순종이다!
마리아
마리아
구약의 이름으로는 미리암 입니다. ‘높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엄청나게 흔한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웅이었던 모세의 누나이자 선지자였던 사람이 미리암이었기 때문에 이 이름은 그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골 같은 나사렛 촌구석에 사는 마리아라는 한 여자 아이는 세상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이게 웬일입니까? 갑자기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처녀인 너에게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우리를 구원할 아들이 날 것이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것이 정말 골치 아픈 순간이죠. 사실 이 약속은 걸림돌이 상당히 많은 약속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이 여인은 남자를 모르는 여인이며(34), 이 표현은 성관계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완곡어법이죠.
사회적으로 이 처녀가 아이를 낳아서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또한 이 여인은 지극히 '큰 자'인 아들을 낳을 가문도, 배경도 없는 사람이다. 스스로 비천하다고 생각하는 자이지요(48).
여러모로, 이 여인은 한 번도 자신이 이 약속의 실현의 주인공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꺼에요. 이 글을 처음 읽는 당시 시대의 독자들도 그랬을 꺼에요.
여인도 스스로 생각합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
겸손이 아니다. 이것은 그녀의 현실을 이야기할 뿐이죠.
우리의 현실은 날마다 이러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이야기는 알지만, 그 위대한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과 우리의 삶에 간극은 너무나도 넓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계획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는 분이십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nothing is impossible" 능하지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이 능하지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이 모든 불가능을 뚫고 우리에게 오셨다. 그 능력의 말씀이, 우리의 인식의 불가능과, 우리의 현실의 불가능을 뚫고 들어오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은혜"로 주어진 "복음"이다.
능력의 하나님, 능하지 못함이 없으신 하나님!
이 하나님이 오늘 나의 하나님이다. 이 하나님이 오늘 내 가정의 하나님이시며, 우리 공동체의 하나님이시다.
아무리 코로나가 이 시대를 덮고, 아무리 우울함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하더라도, 그분의 약속은 부족함이 없는 그분의 능력으로 인해 이루어질 것이다.
능력의 하나님. 주님의 능력이 오늘 저의 일상을 뚫고, 저의 인식의 부족함을 뚫고 다가오심을 봅니다.
주님! 이 어지럽고 혼잡한 시대 가운데 당신의 약속을, 그 크신 능력으로 이루어 주옵소서!!
2) 그 크신 능력은 낮은 이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 이루어졌다.
마리아는 기껏 해봐야... 14-16세 정도의 소녀일 뿐이다.
그녀의 상황에, 이런 일은 일어나기도 힘들고, 일어나서도 안되는 상황일 수도 있다. 결혼도 안한 여자가 임신을 하면 돌을 맞아죽거나, 평생 독신으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갈 수도 있다. 기업이 없는 과부와 고아가 엮인 상황이므로 그녀는 살기 위해 창녀가 되거나 구걸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즉 무시무시한 상황이다.
되는 것도 어렵지만, 사는 것은 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그녀의 대답은 충격이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사라도 믿지 않았던 약속, 심지어는 사가랴도 믿지 못했던 이 성령에 의한 임신을 그녀는 믿었다. 그 말씀을 받아 들였다. 이 믿음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복의 통로가 되는 순종을 낳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들은 자의 복된 반응이다. 옳은 반응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이 낮고 천하고 가능성 없는 한 여인의 믿음과 순종을 통하여 받게 되는 순간이다. 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주님은 세상의 가장 큰 약속을 세상에서 가장 별 볼일 없는 한 소녀의 믿음을 통해서 이루셨다.
그래서, 오늘 더욱 더 말씀을 보고 그 말씀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미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셨고, 이미 이루어진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는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둘째.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찬양이 터져 나온다!
둘째.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찬양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이 마리아라는 여자 아이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질 것입니다”는 훌륭한 신앙고백을 통하여 하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천사가 가고 나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착각했겠지요. 너무나도 놀랍고, 너무나도 걱정되는 일 - 사실 처녀의 몸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이어서 고민하던 차에, 천사가 말하던 엘리사벳이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이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친척이 되는 사람이었지요.
그래서 마리아는 그 즉시 나사렛에서 유대 산골로 그 친척을 찾아갔습니다. 천사는요, 이 친척인 엘리사벳이 나이가 들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인데 낳았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마리아가 확인하고 뭔가 위로를 받으려고 찾아갑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문을 두드렸을 때, 이 엘리사벳이 배가 부른 상태로 나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저 가능성 없는 언니가, 이제 나이를 너무 먹어서 결국 자식 없이 죽는구나’ 생각했던 저 사람이 배가 불러서 나오는 거에요.
마리아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겠죠!
“아 이건 사실이구나! 내 뱃속에 성령으로 아이가 잉태되는 것이 사실이구나!” 그 때 엘리사벳에 뱃속에 있는 아이가 평소와는 다르게 요동치며 움직입니다. 이 때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어찌 된 일인가.... 그리고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여러분! 엘리사벳은요. 나이가 마리아보다 많은 친척입니다. 사촌 언니나 이모 정도 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요. 어떤 표현을 씁니까?
“내 주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씁니다. 벌써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이 성령으로 예수님을 벤 마리아를 보고 그런 표현을 쓰지요.
이런 친척의 말에, 당황하고, 겁이 나기도 했던 마리아는 새 힘과 능력을 얻습니다. 나에게 왔던 천사가 꿈이 아니고 진짜가 맞구나!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계획이 정말 사실이구나! 정말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늘 나를 사용하시는구나!
마리아가 생각해보니! 이건요 감당할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저 시골 촌뜨기에다가 남들 아무나 쓰는 흔한 이름을 가지고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 가난뱅이인 마리아를 통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셨던 그 약속을 이루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인가요! 이 구약성경을 통해서 약속하신 놀라운 사실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요?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것을 보면 모든 개막식 퍼레이드를 하고 나서 모든 것이 시작하기 전에, 그 나라 대통령이 나와서 정식으로 선포합니다.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지요.
“올림픽을 우리나라에서 하게 되는 것을 허락합니다.” 이렇게 선포하면 음악이 퍼지고 폭죽이 터지며 세계의 잔치가 시작됩니다.
그런데요. 이 대통령이 해야 할 올림픽 선포를, 그냥 시골 한 동네에 살고 있는 한 평범한 시민인 나에게 대통령이 부탁을 해서 내가 선포하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온 세계 사람이 보는 앞에서 내가 역사적인 올림픽이 시작하는 것을 선포하게 된다면 얼마나 감격적이고 영광스럽겠습니까?
그런데요! 오늘 마리아에게 주어진 이 은혜는요, 올림픽 선포 같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출발하는 첫 단계를 이 마리아라는 시골 여인에게 주셨을 때 마리아는 주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이 정도의 사랑을 생각할 때 마리아는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46절부터 55절까지 주체할 수 없어서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그리하여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마리아는 앞으로 걸을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에 젖어서 그 분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요즘 시대에 살았다면 이런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요?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을 알 사람이 없도다” “한량없는 은혜 값을 길 없는 은혜”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여러분!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리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비교할 수도 없는 은혜는 오늘 우리의 삶에도 여전히 역사하고 있습니다.
나 한명이 변화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성경에 있는 모든 인물을 쓰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래전부터 계획을 하셨습니다.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갓난아기로 오셨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별 볼일 없고 하찮고 죄 많은 나에게 들어오셔서 나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나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또 나와 함께 교회를 세우고, 사람을 세우고,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나를 사용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감당할 수 없는 은혜입니까?
에이! 목사님! 그건 모든 사람을 위해서 그러신 거잖아요!
꼭 나한테만 주어진 것이 아니잖아요! 아니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인데, 세상에 아무도 없고 나만 있다고 해보세요. 주님이 날 위해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예!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자 은혜입니다. 나를 위한 감당할 수 없는 그분의 사랑입니다.
적용과 결단
적용과 결단
여러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다지도 큽니다. 그러면 오늘 이 복음에 합당한 반응이 뭐겠습니까?
오늘 이 마리아와 같이 나에게 이 같은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우리 삶을 통하여 마음껏 힘을 다해 찬양합시다. 감사합시다. 그리고 마리아와 같이 나를 통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그 어떤 어려움과 아픔과 힘듦이 있더라도, 그 은혜와 사랑이 날마다 승리하게 하고, 이길 수 있는 기쁨과 힘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은혜가 크고 크고 크십니다. 놀랍고 놀랍고 놀라우십니다. 하나님 그 은혜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일평생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에 젖어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