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유혹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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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날마다 죄의 유혹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어떻게 우리가 죄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예화) 날마다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한 젊은이가 슬기로운 왕을 찾아와서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잔에 술을 가득 따라 부은 후, 그것을 젊은이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비결을 알고 싶다면, 이 잔을 들고 시내로 나가 거리를 한 바퀴 돌아오너라. 만약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네 뒤를 따라간 군사가 네 목을 쳐 버릴 것이다.”
젊은이는 조심스럽게 술잔을 든 채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왕이 말합니다. “잘 했다. 그래 다녀오는 중에 뭘 좀 보거나 들었느냐?” “전혀 본 것도, 들은 것도 없습니다. 폐하” 왕은 묻습니다. “본 것이 없다고? 거리에 널려있는 거지들, 가게마다 있는 상인들, 술집에 노름꾼들, 무리지어 있는 협잡꾼들을 못 보았단 말이냐?” 네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보지도 못했고, 그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도 못 들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습니다. “옳도다 이제 너는 비결을 알았구나. 네가 술잔에만 신경을 곤두세웠듯이 하나님께만 마음을 바치거라. 그리하면 온갖 시험도, 세상의 헛된 유혹도 너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유혹을 이기는가? 목표가 분명한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시험을 이기는 방법은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분만 바라보고 신뢰할 때 시험과 유혹을 이기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개인의 삶이 아닌 메시야로서의 공적사역을 하던 기간을 ‘공생애’라고 하는데요. 오늘 성경이 바로 그 시점입니다. 아주 중요한 순간이죠. 그 중요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한 가지 사건을 겪으십니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십니다. 그리고 광야에서의 훈련과 준비가 끝나자마자 마귀가 나타나 시험합니다.
한글 성경에는 시험이라고 표현되었지만, 시험을 두 가지로 구별하여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는 ‘Test’이고, 또 하나는 ‘Temptation’입니다.
테스트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셔서 성장시키려고 우리를 시험(Test)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 있었던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시기 위해 광야에서의 시험을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템테이션, 즉 유혹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우리에게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도록 유혹(Temptation)하는 것입니다.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게 하였고, 요셉에게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습니다. 영어성경은 오늘 이 시험이라는 단어를 ‘유혹하다(Tempt)’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당연히 죄를 짓게 하는 이 유혹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마귀가 세 가지 시험을 하는데, 첫 번째 시험은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 시험은 마귀에게 절하면 천하만국을 주겠다는 것이며, 세 번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예수님은 이 모든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성취하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귀의 모든 유혹을 구약성경에 기록된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의 시험받으신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큰 위로와 도전을 줍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처럼, 우리도 말씀으로 유혹을 이기길 원합니다.
1. 생명은 말씀에 순종에 달려있다.
1. 생명은 말씀에 순종에 달려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즉 옛날이나 현재나 모든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이면서도 가장 절박한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조선시대는 여러 번의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해졌고, 일본의 국권침탈과 한국전쟁을 치루고 먹을 것이 정말 귀하던 시대입니다.
저의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그런 어려운 시대를 살아 오셨기에 배고픔이 얼마나 인간의 본성과 직결되어 있는지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먹을 것 때문에 구걸하는 자존심을 버리는 일도 생기고, 남의 음식을 몰래 먹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배고픔이라는 가장 말초적인 본능 앞에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할 것 없게 되는 것이죠.
작년 개봉하여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 불었던, 조선시대 좀비영화인 ‘킹덤’에서도 처음 전염병이 퍼지게 된 계기가 배고픔에 지친 사람들이 죽은 아이의 시체를 삶아 먹으면서 부터였습니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몇 번의 왜란을 거치면서 국토가 황폐화되고 식량은 소진되었고, 흉년까지 들면서 굶어죽은 백성이 늘어났습니다. 임진왜란이 있었던 선조 왕 때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기근으로 사람을 잡아먹는 일을 엄금할 것을 명한다 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어떻습니까? 반대로 먹을 것이 넘쳐납니다. 선진국에서 가장 꾸준히 잘 팔리는 책은 요리와 다이어트에 관한 책이라고 합니다. 의식주 문제가 사라진 선진국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문제와 또 그로인해 생긴 비만으로 살 빼는 일이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TV프로그램을 가만히 살펴보면, 먹방, 요리, 맛집 프로가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살을 빼고 몸을 만드는 홈트나 몸짱을 만드는 프로그램과 유튜버들이 넘쳐납니다.
(먹방프로 이미지)
우리가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을 ‘탐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기독교의 오랜 역사와 전통에서는 이 ‘탐식’을 죄라고 보았습니다. 4세기 수도사들은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를 말했습니다. 그 일곱 가지 가운데 ‘탐식’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먹는 것이 뭐가 죄가 될 수 있어?’라며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말씀을 잘 들어보세요.
20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7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먹는 것에 즐거움을 찾아 쫓아다니며, 절제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먹으면, 비만과 각종 질병을 가져올 뿐 아니라, 반대로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이웃을 돌보지 못하는 것은 무관심을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욕심은 하나님의 나라의 의를 추구하는 삶이 아닌 무절제와 먹는 것에 끌려 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세 수도사들은 수도원에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그들은 우선적으로 육체의 욕망을 벗어나기 위해 식탐을 가장 먼저 경계했습니다. 먹는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닌 것 같고, 가장 낮은 수준인 것 같지만 가장 극복하기 힘든 죄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과거에는 고기가 별로 먹고 싶지 않았는데, 최근 언제부터인가 살이 찌면서 고기가 계속 먹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배 살이 점점 불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제 아내가 어떤 음식을 해주든지, 감사함으로 받아야 하는데도, 저의 맘에 들지 않는 음식이 나오면 감사를 잃어버릴 때가 있더라는 것이죠. 저는 지난 주간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어떤 음식이든 올 한 해 감사함으로 먹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먹을 것 때문에 무너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첫 사람이었던 아담도 먹는 것에 무너졌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서 동산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에서는 사냥하고 돌아와 급한 허기를 채우기 위해 팥죽 한 그릇에 장의 복을 소홀이 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가르고 광야에서 기적을 맛보았지만 먹는 것에서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신 만나를 먹으면서도 불평하고 고기를 그리워하면서 종이었던 이집트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오늘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굶주리셨습니다. 40일간이나 금식하셨기 때문에 얼마나 배가 고프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매우 허기지고 지쳐 계실 그 때에, 기막히게 유혹하기 좋은 타이밍에 마귀가 나타납니다. 3절입니다.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먼저, 사탄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존귀한 아들이라고 상기시깁니다. 그러면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합니다. 겉으로는 높이는 척하면서 은연중에 예수님을 본능을 따르는 비천하고 평범한 인간으로 폄하합니다.
사탄의 유혹이 이렇습니다. 겉으로는 자존심과 명예심을 부추기지만, 동시에 육체적 본능을 만족시키라는 것입니다. 교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4절입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이 내려주신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셔서 그것을 먹고 살았지만, 만나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 게 한 것이 아니라, 만나를 주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만나를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신 선물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보니 그 선물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만나를 보면 하나님을 잊게 됩니다. 그러나 떡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주님의 나라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당장에 배고픈 현실 속에서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떡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뜻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때 우리는 시험을 이길 줄 믿습니다.
2. 하나님만 경배하라
2. 하나님만 경배하라
두 번째 시험은 마귀에게 절하면 천하만국의 권위와 영광을 주겠다는 유혹입니다. 5-7절입니다.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먹는 것에 비해서 아주 고차원적인 유혹입니다. 마귀에게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면 마귀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마귀에게 절하는 순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8절입니다.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세상의 권력과 영광이 아닌 섬기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탐욕은 인간이 물리치기 힘든 죄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최고의 의인이었던 욥에 대해서도 사탄은 주장하길,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가 부자이기 때문이라고 헐뜯었고, 모든 것을 빼앗기면 더 이상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우리 인간은 갖을수록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습니다. 이 탐욕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경제 성장과 물질의 풍요는 이제 일종의 선으로까지 여겨집니다. 과거에는 상점이나 마트들이 저녁 전이면 다 문 닫았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조금 더 벌자를 외치고 있습니다. 24시간을 영업하는 편의점이 있어서 언제든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어서 참 편리하죠. 우리나라에 벌써 4만개가 넘어섰습니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초의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은 1927년 미국 텍사스에서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영업하겠다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영업방침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자 1962년부터는 아예 24시간 문을 여는 영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영업하겠다는 인간의 탐욕을 파고든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력과 영광에만 탐욕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분만 섬기는 신앙과 대조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유명지지 말라, 성공하지 말라, 돈을 많이 벌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는 탐욕은 부정직과 거짓을 낳게 됩니다.
‘탐욕’은 하나님보다도 재물을 더 사랑하게 되고, 탐욕으로 인해 여러 가지 죄의 모습으로 열매가 드러나게 됩니다. 도박, 투기, 사기의 원인이 탐욕입니다.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사랑하라고 명하신 이웃들의 재산을 탐하게 됩니다. 회사나 국가를 배신하여 기물을 경쟁 국가에 넘기기도 하고, 옳지 않은 일인 줄 알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기도 합니다. 사기를 쳐서 남의 재산을 갈취하고, 영향력있는 자리에서 뇌물을 받고 그 지위를 이용해서 빼앗기도 합니다.
성공과 권력과 영광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싫어하시는 갖은 방법들이 동원됩니다. 마귀가 그렇게 하도록 유혹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을 벌고, 나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권력의 자리에 올라라. 많은 사람들이 이 유혹에 넘어갑니다.
결국 탐욕을 이기는 근본적 방법은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보호자심을 알 때 그분 안에서 안전함을 누립니다. 다른 것을 의지하는 불안함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너 자신이 스스로 주인 되어라, 끊임없이 더 가지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이셨던 유혹을 이기신 모습은, 권력과 물질의 지배를 받는 사탄의 앞잡이가 아니라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분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는 청지기적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분만 섬길 것인가? 아니면 권력과 영광을 가지고 싶어 마귀에게 절을 할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주권아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진정한 권위와 영광은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옴을 믿고 따르는 예배자들 되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2021년 새해가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가고 있습니다.
광야는 고독한 자리이며, 굶주림과 유혹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광야는 주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기억하는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야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광야에서 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마귀에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강력한 유혹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예수님이 인용하신 이 신명기의 말씀은 모두가 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셨던 말씀들입니다. 왜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주신 말씀을 인용하셨을까? 주님이 이 말씀을 인용하신 이유는 지금 주님이 받고 계신 시험들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받았던 시험과 같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한 것 아닐까요?
무슨 말이에요?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던 것은 광야 같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 인간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보이신 것 아닐까요? 우리의 육적인 본능 앞에, 권력과 명예에 대한 마귀의 속삭임에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를 주님이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 시험을 통해 어떤 영적 체험을 경험하거나 강력한 능력을 연마한 것이 아닙니다. 광야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치신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새해,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으로 살아내려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마귀의 유혹을 이기게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살립니다. 세상의 유혹과 시험 앞에 온전히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이겨내시는 예배자들 되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