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자녀의 권세 (요 1:6-13)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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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요한복음강해2 (20210110)
작년 6월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한 공군 부사관이 자기 부대의 잘못된 것이 있으니 감찰해 달라는 청원이었어요. 부대 내에 한 병사가 배치를 받았는데 부대에서 온갖 특혜를 제공받아 이른바 황제복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병사들과 잘 지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혼자만 사용할 수 있는 내무실을 배정해줍니다. 그런가하면 본인 빨래도 본인이 하지 않고 매주 주말 아침에 부대 밖으로 보내서 세탁을 해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세탁된 빨래를 들여보낼 때는 음료수도 함께 받아왔다는 것입니다. 밖에 그 일을 해주는 사람은 병사의 가족 비서였고, 비서에게 빨래를 전달해주는 역할은 부사관이 했다는 것입니다. 부사관도 간부인데 그런 일을 하라고 군대에 있는 게 아니죠. 아무리 공군이 선진화가 되었다고 해도 이건 잘못된 것이고 특혜입니다. 아마 몇 번 그 일을 하다가 자괴감이 들지 않았겠어요. 병사들을 교육시키고 지휘를 해야 할 간부가 오히려 병사의 사적인 일을 심부름이나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병사의 아버지는 모 신용평가회사의 회장이었다고 합니다. 잘못된 행동이긴 합니다만 아버지가 기업의 회장이니까 그 자녀까지도 권세를 누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재벌2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2절 말씀을 보세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권세를 잘못 사용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그저 교회 안에서 심리적인 위안꺼리로만 여기는 교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 자녀의 권세라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권세를 얻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자녀를 생각할 때 우리는 재벌이나, 요즘의 대통령의 자녀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할 당시 나라는 황제나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다스리는 왕국이었어요. 황제나 왕의 말이 곧 법이었어요. 그러니 그 권위는 절대적입니다. 오늘날 태국 왕실의 모습에서 이런 면모를 조금 발견할 수 있어요. 태국 왕족들을 알현하려면 신분이 높거나 낮거나 상관없이 그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인어공주가 앉아있는 자세를 연상하면 쉬운데요, 옆으로 비스듬히 몸을 돌린 채 반은 엎드린 자세입니다. 몇 년 전인가요 태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쿠데타를 일으킨 군대 최고 지휘관과 쿠데타 반대세력의 최고 지도자 두 사람이 태국 왕 앞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태국 왕이 쿠데타 세력을 인정하지 않자, 결국 쿠데타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왕의 권세입니다. 한 나라의 왕의 권세가 이렇다면 모든 왕의 왕이요, 모든 주인들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권세는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이사야 6장에 보니까 천사들 중에서도 가장 영광스럽다고 하는 천사들도 하나님 앞에서 두 날개로는 얼굴을,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날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를 쉼없이 외칩니다. 죄와 죽음으로 사람들을 옭아매는 사탄의 능력이 대단하지만 그런 사탄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만 움직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사탄이 건드릴 수가 없어요. 우리를 만질 수도 없습니다. 어떤 주술로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해할 수가 없어요.
연말연초에 사람들은 올해 자신의 운이 어떨지 점을 보러 갑니다. 오늘의 운세도 엄청나게 많이 봅니다. 그런데요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점괘가 안 나와요. 만약에 점괘가 나온다면 둘 중에 하나예요. 그 점쟁이가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 아니거나, 점보러 간 사람이 교회만 출석할 뿐 예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신내림 받은 용한 점쟁이는 벌써 압니다. ‘예수쟁이가 예수나 잘 믿을 것이지 여기는 왜 와?’ 예수 믿는 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는데 그곳에 귀신이 감히 어떻게 올 수 있겠어요.
그런가하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예요. 그러니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영광도 대단하지만 그것은 결국 없어질 영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쇠퇴하지도 않습니다. 영원합니다. 베드로전서 1:3-4절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것이며 우리는 주님과 같은 영광스러운 몸이 됩니다. 그 몸은 어떤 장애도 없는 완벽한 몸입니다. 늙거나 병들거나 아프거나 죽지 않는 늙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그 영광을 돈으로 살 수 있습니까? 중국의 진시황의 부와 권력으로도 얻지 못했어요.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 얻을 수가 없어요. 그 나라에는 죄도 없고 죄인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생명으로 흘러넘칩니다. 이 땅에서는 결핍과 부족함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고 다투죠. 덜 가진 자는 가진 자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집니다. 반면에 가진 자는 가진 것을 자랑하며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립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에요. 사람들은 서로 더 사랑하고 아끼고 섬기려고 애씁니다. 날마다 새로운 기쁨이 충만한 곳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이미 이런 천국의 기쁨을 순간순간 맛보고 삽니다. 이것이 완성된 그날에는 얼마나 좋을까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요, 권세입니다. 뿐만 입니까?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이 땅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저는 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2.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12절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과 믿는 것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요, 바로 앞 구절을 보면 영접하는 것에는 좀 더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1절을 보세요. 자기 땅에 오매 자기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여러분 이 구절을 눈여겨 보세요. 당시에는 왕국이라고 했습니다. 왕이 얼마 동안 다른 나라를 방문하다가 자기 왕국에 돌아왔어요. 왕을 보고도 엎드려 경의를 표하지도 않습니다. 성문도 열어주지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반역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신데 육신이 되셨고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천국의 복음을 가르치셨고, 수많은 기적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 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셨어요.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는지 압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두 번 재판을 받으시죠. 먼저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신성모독죄를 적용해서 사형을 구형합니다. 사람이면서 하나님 행세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로마는 어떻습니까? 총독 빌라도도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내어줍니다. 반역죄라는 것입니다. 황제 외에 자신을 큐리오스, 즉 주님이라고 칭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린 죄패를 보십시오.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져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들은 왕을 처형한 것입니다. 그들은 왕을 왕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설교를 듣는 분들 중에서 ‘나는 유대인도 아닌데 나와는 무슨 상관인가? 내가 언제 예수님을 거부했고, 반역을 했단 말인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10절은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변명을 막아버립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예수님은 단지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온 세상의 창조주라는 말입니다. 온 세상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하나님께 반역한 대역죄인들입니다.
Bcf.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피조물들 중에 가장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드셨어요. 오직 인간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어요. 먼저 창조의 순서를 눈여겨보십시오. 제일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십니다. 인간이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 주신 것이죠. 제 딸 아영이가 태어나기 전에 참 많은 준비를 했어요. 방에 아기침대를 마련했어요. 또 침대 바로 위에 천장에는 움직이는 인형을 달았고, 밤에 불을 끄면 별처럼 보이도록 형광 별들을 붙였어요. 인형들과 옷가지들을 다 준비했어요. 그리고 이름까지도 공모하고는 태어나기만을 기다렸어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세심하게 배려하신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창조의 방법은 어떻습니까? 인간만 직접 빚어서 만드셨어요. 하나님의 터치가 있었어요. 그리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십니다.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나눠주신 것입니다. 인간 외에 어떤 피조물에게도 이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는 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인간에게 허락해주셨어요. 하나님을 대신해서 땅을 다스리도록 땅의 왕으로도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이미 하나님께 반역한 마귀의 간사한 유혹에 넘어가서 반역에 동참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합니다. 인류의 대표인 아담 안에서 우리는 반역에 동참한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맞서고 명령을 거역하는 반역, 이것이 죄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반역자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도 반역의 피가 흐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걸핏하면 하나님께 반역합니다. 그 증거중의 하나가 은혜를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Ex) 우리 가족 네 식구가 아이스크림을 각각 다른 종류로 샀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고른 아이스크림이 맛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건희야 아빠 한 입만 먹어보자’ 그러면 ‘안 돼. 내꺼야. 아빠꺼 먹어’ 또 기분이 나쁘면 ‘내 방에서 나가’라고 합니다. 참 기가 막히죠. 아이스크림도 내가 사줬고, 집도 내 집인데 자기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역에 대한 대가는 죽음입니다. 예외가 없어요. 어떻게 죽느냐 그 방법만 조금씩 다를 뿐, 처참한 죽음을 피하지는 못합니다. 반역이 얼마나 무서운 대가를 치르는지 알리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처형합니다.
Cf. 조선시대에는 반역한 대역죄인들은 ‘능지처참’이라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기둥에 묶어놓고 아주 예리한 칼로 마치 회를 뜨는 것처럼 살을 얇게 조금씩 베었다고 합니다. 고통스럽게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죠. 십자가 처형도 반역한 사람들에게 내리던 형벌이었어요. 그러나, 여러분 잘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은 반역한 자들에 대해서 처참한 형벌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반역한 아담을 하나님은 자신의 면전에서 쫓아낼 뿐 죽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떻습니까? 시내 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는 이것이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반역이죠.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난지 불과 세 달만에 은혜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십니다. 그런가하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라고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어요. 반역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다 몰살시킵니까? 아닙니다. 용서하십니다. 창조주시며 세상의 어떤 왕보다 권세와 위엄이 있는 하나님이 왜 죽음으로 갚지 않으십니까? 세상의 왕들과 다르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항상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집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 건희는 우스갯소리로 ‘부모이기는 자식 없다’고 합니다. 자식은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직 뭘 잘 모르는 것이죠. 여러분,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에게 져주고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주님은 왕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환영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죽임을 당할 것을 아시고 반역의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반역의 무리들에게 오신 이유는 보복하고 처단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설득하시고 보여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반역의 죄를 물어 우리를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반역의 죄를 자신이 스스로 지시고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뜻은 단지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보험을 들 듯 종교 하나 갖는 것도 아니며, 단지 영접기도를 따라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이제껏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반역의 길에서 돌이킨다는 의미이며, 주님께 두 손을 들고 투항하고 항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며 그분의 명령에 복종하겠다는 뜻입니다.
♬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 주 나를 외면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흘려 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앞에 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놀랍지 않습니까? 반역자를 사면만 해주어도 놀라운 것인데,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삼아 주십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자신의 마음이 부딪혀 본 사람은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더시티사랑의교회 성도들 모두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 하나님의 은혜에 마음이 녹아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전하며 사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바로 이 사명 때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어요. 7절을 봅시다.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예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은 때가 되면 하나님이 알아서 구원하시겠지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교회가, 성도가 복음을 전함으로써 사람들이 구원얻는 놀라운 특권과 기쁨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어요.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이 바뀐다니 얼마나 대단한 특권입니까? 모태신앙이든 중간에 예수를 믿었든 우리도 누군가의 전도와 인도를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어요. 우리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때 세상은 점점 밝아질 것입니다.
Cf. 탈옥수 신창원을 모르는 분이 아무도 없을 거예요. 신창원 씨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는데요. 탈옥해서 쫓기고 있던 어느 날밤에 한 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처녀 혼자 살고 있습니다. 순간적인 욕정으로 그 여인을 범했는데, 곧바로 굉장한 죄책감이 몰려옵니다. 그 여인이 처녀였고 더구나 눈이 너무나 순진했기 때문에 자신이 한 여인의 인생을 망쳐놓았다고 자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신창원 씨의 옷이 더러운 것을 보고 빨아주겠다고 하고 삼일 동안 밥을 못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밥상을 차려줍니다. 신창원 씨는 너무 미안한 마음에 여인을 집밖으로 밀어내면서 꼼짝않고 여기 있을 테니 경찰에 신고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수천 만원의 현상금을 받을 수 있다구요. 그런데 조금 후에 여인이 혼자 그냥 들어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저씨 제가 신고할 사람처럼 보여요? 대신 부탁이 있어요. 아저씨도 예수 믿으세요” 저는 그 아가씨가 말하는 대목을 읽으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아니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사람을 신고하면 보복도 할 수 있고, 현상금도 받을 수 있을텐데 그것을 다 포기하고 어떻게 그 상황에서 전도를 할 수 있지? 한편으로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아가씨를 통해서 범죄자를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사랑에 감격했습니다. 그 아가씨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 아가씨의 행동에 신창원씨는 충격을 받고 나중에 붙잡히고 교도소에 들어가서는 예수를 믿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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