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이 자리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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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views그토록 기다려 왔던 것을 거부한 적이 없는가? 1. 가나안 입성/희년을 선포하신 예수님! 마침내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그분은 그것을 위해 마귀를 물리치셨다! 성령의 능력으로 움직이셨다! 그리고 마침내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셨다! 2. 누가 진짜 그 백성인가? 그러나 그들은 거부했다! 이방인들도 믿고 따라온 복음을 말이다! 독립이 왔으나 독립을 믿지 못하는 자여!
Notes
Transcript
독립을 기다리는 사람
독립을 기다리는 사람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 <그날이 오면>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천국에서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 <동포에게 고함>
1910년에서 1945년까지, 35년의 일제의 압제에서 고통당하던 이 백성이 외친 목소리입니다. 일제는 한 민족을 침입해, 개화를 시켜주고 근대화를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나라를 강점해서 다스렸습니다.
나라에 철도가 생기고, 신식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전에 살았던 시대보다 뭔가 더 좋은 삶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 나라에서 빌붙어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가운데서 행복할 수 없죠. 일제는 거짓의 앞잡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좋은 건물을 세우고, 아무리 좋은 것을 만들어도, 이들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백성들의 소원은 독립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독립을 선포하셨습니다.
모세가 저 열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을 나올 때처럼(출 12:42),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넘어 와서 가나안 땅 입성을 선포하는 것처럼(수 5:9),
선지자 이사야가 저 거룩한 예언으로 희년을 선포하는 것처럼!(사 61:1-2)
오늘 독립을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담 이후 깨어진 세상속에서 날마다 신음하고 있는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요. 오늘 이 깨어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한 예수님의 독립 선포인 것입니다.
자 오늘 우리가 2000년 전 나사렛에서 그 말씀을 듣고 있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열렬히 환영하며 기뻐했을까요? 2002년 월드컵 때처럼 퍼레이드를 하며 즐거워했을까요?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웬일입니까? 이것이 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감사하기는 커녕, 예수님을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던져버리려고까지 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축복과 경고의 메시지를 살펴봅시다.
첫째. 예수님은 선포는 효력 있는 들하나님 나라 선포였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선포는 효력 있는 들하나님 나라 선포였습니다!
이 말씀을 먼저 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의 행적을 잠깐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 본문 전에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소년 시절 이후,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귀한 부르심으로 사역하게 된 예수님의 행적은 누가복음 3:21 부터 시작됩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세례는 왕위 등극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습니다. 또 위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울렸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것은 시편 2 편에서 예언된 선포를 하나님께서 확증시키시는 장면입니다. 그는 이사야 42:1 에서 예언한 대로 하나님의 영을 받은 택한 종이요, 철창으로 헛된 것을 추구하는 세상을 깨드려 질그릇 같이 부수어 버릴 하나님의 메시아라는 것을 공식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눅 3:23-38 까지의 족보를 통해 보여주는 것 예수님의 보내심은 하나님으로까지 올라가는 것이며, 그 보내심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맞다면 유대인 뿐아니라 온 백성에게 미칠 하나님의 귀한 소식인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사역을 하자마자, 그는 광야에 가서 40일을 금식하면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십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의 성령과 공식적인 메시아로서의 인정을 받은 예수님이 왜 아무도 없는 광야로 가서 시험을 당하셨을까요?
네! 그곳에서 예수님은 반드시 마귀를 이겼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빠져 넘어진 첫번째 인류의 주자 아담 대신, 예수님은 두번째 인류의 주자가 되셔서 철저히 사람으로 마귀의 세가지 시험을 맞닥뜨렸습니다. 이 세가지 시험은 마귀가 아담을 넘어뜨렸던 시험이며, 이스라엘을 넘어뜨렸던 시험이며, 모든 사람을 넘어뜨렸던 그 유혹이었습니다. 그것 문에, 모든 사람이 범죄에 빠져 버렸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철저하게 인간으로 그 시험과 싸워, 성령의 인도와 정확한 말씀 즉 하나님의 뜻으로 따라감으로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이 땅에 다시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하려면, 마치 세상의 권세를 자기가 다 잡은냥 떠들며 유혹하는 마귀를 반드시 물리쳐야만 했거든요!
예수님은 마귀를 제압하심으로, 진짜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보이시며 가르치시며 나사렛으로 온 것입니다.
이 나사렛의 어느 안식일, 예수님은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시면서 말씀을 읽었습니다.
레위기에서 말씀하시는 대표적인 안식일인 희년의 선포이자(레 25:10), 저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했던 대표적인 메시아의 사역의 예언인 이사야 61 장 말씀을 꺼내서 읽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 말씀은 바벨론 포로에 잡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 포로되고, 가난하고, 눈 먼자와 같이 되어서 아무런 소망도 없는 백성들에게 주의 은혜를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깨어진 세상 속에서 빈부의 격차가 생기고, 형제의 종이 되어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가 되어 살아가는 소망 없는 백성에게 주시는 희년의 선포였습니다.
사단의 속임수에 빠져, 날마다 먹고 사는 것과, 모든 사람의 칭찬을 받고 인정받는 길만 찾아가는 눈 먼자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선포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셨던 안식이요, 이것이 바로 선지자들이 외쳤던 하나님의 구원이요.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 이 희년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눅 3:22, 눅 4:1, 눅 4:22, 그리고 오늘 본문 눅 4:18 을 살펴 보세요!
예수님이 그냥 움직이신게 아니라,
성령을 받으시고
성령에 충만하여
성령의 인도함대로 다 움직이시는 겁니다. 이 성령의 인도하심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 나라가 바로 성령의 지배함을 받는 나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건 우리가 바란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셔야만 하는 거에요! 그분의 지혜로 그분의 은혜대로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사도행전 2 장에 오순절날 이 성령을 받았죠!
예수님이 이 말씀을 선포하시니 20절에 보면 회당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주목하여 봤다고 말씀합니다.
너무나도 어마어마한 말씀을 꺼냈으니 과연 저걸로 어떻게 설교할까 바라보지 않았을까요?
근데 예수님의 설교는 단 한 마디였습니다. 그게 완전 폭탄이었죠!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이미 성취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단 한마디였지만,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폭탄설교였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이미 이루어진 능력입니다. 상징적 선포가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일이며, 성취된 일이며, 효력이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는,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가 왔습니다! 우리에게로 왔습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그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제시한 광복선언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충만하여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둘째. 그러나 이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둘째. 그러나 이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토록 바라던 독립이 이루어졌는데, 광복이 되었는데, 안 받아들이는 거에요. 22절을 보면 이들은 은혜도 받았습니다. 23절을 보면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이 했던 메시아로서의 기적도 봤습니다.
그런데 안 받아들이는 거에요.
이들의 태도를 한 번 보세요! 말은 은혜를 받고 있는 것 같지만, 이들의 태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의 속내는 이래요!
“야! 의사도 남의 병 말고 자기 병이나 고치라는 말이 있는데, 너도 가버나움에서 기적을 했다는데, 여기서도 해봐라!!!”
마치 광대를 부르듯이, 여기서도 기적이나 한 번 해봐라! 하는 것이죠.
사실 경우는 다르지만, 저도 이런 일을 참 많이 느껴본적이 있습니다.
저도 20대 후반부터 모교회 사역을 했지요. 수요예배도 설교하고 주일 저녁예배, 새벽기도도 설교했지요. 그런데 이렇게 설교하고 나오는 길에 사람들의 반응이 참 달라요. 근데 참 많은 경우에 이렇게 이야기 하더라구요!
“설교 잘 했습니다!”
이 말을 듣는데 왜 이리 느낌이 묘한지 모르겠어요!
비록 어린 설교자가 설교했지만, 영혼을 찌르는 설교를 했는데(아 이 영혼을 찌르는 설교는 내가 설교를 잘했단 말이 아니라 설교의 본질입니다.) 그걸 듣고 회개회거나 결단하지 않고, “잘 했다!”라고 칭찬하는 거에요!
나쁜 것이 아니죠. 그분들 입장에서는 은혜받았다 이런 말을 하고 싶긴 한건데, 이게 명백히 느낌이 다른 말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게 아니라 그냥 우리가 키워낸, 저 젊은 전도사 말 참 잘~~하네 하는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어떤 프로에서 코미디언이 이야기 하는 걸 봤는데, 어디 갔을 때 제일 난감한게, 뜬금없이 ‘웃겨 봐'하는 거랍니다.
오늘 예수님에게 하는 이야기가 딱 그런 거에요!
하늘의 왕께서 오셔서 나사렛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이 귀한 자리에서 사람들이 킥킥 웃으며 손가락질 하며 듣는 거에요.
속으로 “쳇"하며 듣는 거죠!
그러다가 “이 말이 너희에게 응하였다!”하는 말을 듣고, 그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입니다. 이 고향 출신에 풋내기 사역자가 하는 말이 다른 것은 귀엽지만, 이런 말씀은 네 놈 따위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야! 하는 거에요!
겉으로는 은혜 받았습니다. 겉으로는 "아이고 좋은 말씀입니다.” 합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거에요.
예수님이 그들의 가슴을 찌르는 결정적인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들의 반응은 ‘저놈 요셉의 아들이잖아!, 내가 크는 것 봤는데 어디서 감히 이 따위 소리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더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23절부터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내게다 끌어대면서, ‘우리가 들은 대로 당신이 가버나움에서 했다는 모든 일을, 여기 당신의 고향에서도 해보시오’ 하고 말하려고 한다.”
너희가 속담 운운하며 나를 인정하지 않고 비꼬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받는 자가 없는데, 지금 딱 그 모습이구나!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 시대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서 온 땅에 기근이 심했을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들이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엘리야를 그 많은 과부 가운데서 다른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으시고, 오 직 시돈에 있는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셨다.
예전에 그 위대했던 선지자 시대에 3년 6개월간 비가 오지 않아 온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에도 먹고 살기 힘든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엘리야가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저 이방땅 시돈에 사는 사렙다의 한 과부 뿐이었다!
또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나병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서 아무도 고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이 고침을 받았다.”
선지자 엘리사 때도 보아라! 이스라엘에 수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지만,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만 나음을 입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게 무슨 말이죠?
그 엘리야 선지자 때도, 엘리사 선지자 때도 이스라엘에 구원받을 사람이 많았지만 진짜 구원을 받았던 사람은 저 이방 사람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저 사렙다라는 곳은 ‘시돈'에 있었다고 하는데, 그 시돈은 그 당시 엘리야가 싸우고 있는 바알신의 본거지가 시돈이고, 나아만의 고향인 수리아는 얼마 후에 이스라엘을 침공한 원수같은 나라였습니다!
그런 나라의 사람도, 그 선지자를 믿고 나음을 받았는데, 그 당시에도 진짜 이스라엘은 믿지 않고 나음을 받지 못했다는 거에요!
그런데, 지금은 이 선지자 보다 더 큰 분이 오셨습니다.
이 엘리야와 엘리사가 종이라면, 그들의 주인이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이스라엘은 여전히 받아 들이지 않는 거에요.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경배하기는 커녕 28-29을 보면 화가 나서 예수님을 산의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서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왜요?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의 가슴을 찔렀고, 그들 마음 속에는 은혜는 받아도 내 삶의 주인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변화될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러니 이 약속의 민족, 이 하나님의 구원받을 원래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이스라엘은 한 명도 구원을 못 받고, 저 이방땅 그것도 원수된 곳의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 이곳에 어떤 마음으로 앉아계세요?
오늘 우리는 누구의 심정으로 왔습니까?
비록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저 사람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을 믿고 좇아온 나아만 장군처럼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면서도 전혀 내 삶의 변화를 주지 않으려는 이스라엘의 모습입니까?
갈급하게 구원을 바래서 주님이 찾아오신 사렙다 과부의 모습입니까? 아니면 좋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삶이 전혀 바뀌지 않는 저 나사렛 회당 사람들의 모습입니까?
여러분의 모습이 구원받는 자의 모습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단해야할 시간입니다.
결단해야할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의 생각을 완전 바꿉시다!
진리를 들어도 반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건들고, 말씀하신다면 진짜 그 말씀을 믿어야죠! 앎이 확신에 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반응하셔야 합니다. 주시는 말씀대로 이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분의 나라가 우리의 유일한 소망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유일한 소망임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을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세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들이세요! 그래서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들 가운데 현재적으로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