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하는 것을 기뻐하라

복있는사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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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3:22–36 NKRV
22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들어가며

악기를 배우는 사람들이 동일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혼자 연습할 때는 잘 되는데, 선생님 앞에만 서면 연습 때 실력이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혼자 연습할 때는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고, 틀려도 괜찮고, 잘 못해도 괜찮다 보니, 제 실력이 잘 나오는데,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실력은 늘었는지, 실수는 하지 않는지 꼼꼼히 지켜보는 선생님이 옆에 있으면 실력이 발휘가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잘 해야한다’는 생각이 가득차면, 오히려 몸에 힘이 들어가고, 하지 않았던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러한 것은 꼭 악기에 국한 된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준비한 어떤 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결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경우는 대부분 해당합니다. 운동의 경우도 그렇고, 학생들이 시험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직장인들은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에 대해 발표해야 하는 경우에도 동일한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특별히 교회에서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평소에는 기도를 참 잘하시는 분이고, 기도생활도 잘 하시는 분인데, 어떤 모임에서 대표기도를 하면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는 그런 모습을 종종 보곤 합니다.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 일했는가?

설교자인 저는 언제 떨릴까요. 맞습니다. 설교할 때 가장 떨립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설교할 때 별로 긴장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설교단에 서있으면 참으로 긴장됩니다. 아니, 설교단에 올라가기도 전에도 많이 긴장이 됩니다.
그런데, 특별히 더 긴장될 때가 있습니다. 언제인지 아십니까? 처음 설교단에 섰을 때일겁니다.
악기를 배우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할 때 입니다. “정말 잘 해야겠다!, 나의 첫 설교를 통해서 홍성욱 전도사는 참 설교를 잘하는 전도사구나 라는 마음이 들도록, 내가 오늘은 완전히 끝장을 봐야겠다!”라는 생각들 때문에 오히려 긴장이 더 많이 되었습니다.
결과가 어땠겠습니까? 스스로 생각할 때 처참한 수준의, 기대에 못미치는 설교를 하고 나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전하려고 했던 것인가?”하는 생각에 한창 빠져있었 습니다. ‘잘하고 싶은 욕심을 부리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쳤구나’ 후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일은 저뿐만 아니라 성도님들 중에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남들보기에도 참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정작 남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듣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는지,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가 구분이 잘 안 되는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다보니 생각만큼 결과가 잘 나오지도 않는 그런 경우들도 왕왕 있습니다.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

하지만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은 달랐습니다. 자신이 잘되고 자신이 드러나기 위해서 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망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합니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고 있는데, 세례 요한의 제자가 요한에게 와서 “선생님, 선생님께서 세례를 베푸셨던 예수라는 청년이 강 건너편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로 가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우리 우리를 좋아하던 사람들을 다 뺏기게 생겼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때 세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고 대답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는 대답입니다. 저라면 “그분이 흥하면 우리도 흥하는 것이다!”라고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많아지면 나를 따르는 사람들도 많아지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치 아주 유명한 맛집 옆에 있는 카페도 같이 장사가 잘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예수님은 흥하고, 자신은 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29절에 보면 예수님이 드러나고 자신이 망하는 것을 기뻐한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냥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원어를 살펴보면 기쁨이라는 단어가 3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신랑 친구가 기쁨으로 기뻐하는 것처럼 나도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해졌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결국 쇠하여지고 쇠하여져서 죽음에까지 이르게 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쇠하여져 죽음에 이른 요한의 모습과 고백을 오늘날에 비추어 보면 참 어리석어 보입니다. 예수님의 이름도 높아지고 자신의 이름도 높아지면 좋을 텐데, 망하기까지 해야할까… 망하는 것을 기뻐해야 할까....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이러해야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나’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 모든 초점이 맞추어지도록 해야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자신이 주목받기를 원합니다. 소위 자기 PR시대라고 하며 자신을 드러내기 바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드러내고 예수님이 높아지는 것을 기뻐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다보니 수요일에 있었던 제직 세미나에서 정필도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혹시 안 보신 분들은.... 정필도 목사님께서는 은혜 받은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 내가 무엇을 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실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우리가 정말 주님만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그분만을 높이고, 그분만을 기쁘시게 하는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 안에 그런 열망과 소망이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칭찬과 격려를 위해서가 아니라, 알아주길 바라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길 원하는 그런 한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약하다

세례 요한은 이런 마음을 끝까지 잘 지킨 사람입니다. 아무리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도 인기를 얻고 칭찬을 얻다보면 마음이 변하기도 마련인데, 세례 요한은 끝까지 오직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었던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에 비해서 평범한 사람인 우리들은 작은 칭찬에도 마음이 흔들립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했다가도, 칭찬 한 두번, 격려 한 두번 받다보면 ‘아,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구나’라고 의식을 하게 되고 점점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를 매일매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매일매일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하나님, 내가 하나님께 받은 것이 이미 족합니다. 주의 종은 쇠하여도 좋으니 주님만 영광을 받으시옵소서.”라는 고백이 절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은혜가 족하십니까? 이미 많은 것을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주님 은혜가 너무 큽니다. 저는 이미 은혜가 족합니다. 저는 혹 못나보여도,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다짐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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