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다가 죽게 된다고 하실지라
Notes
Transcript
지난 주일 설교 요약
지난 주일 설교 요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때 유대인 사역자인 베드로는 귀하게 쓰시는 것이고, 이방인 사도인 바울은 천하게 사용하신 것인가? 아니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말씀 사역자인 데메드리오는 귀하게 사용하시고, 후원하며 지지해 주었던 가이오는 천하게 사용하신 것인가? 아니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열매를 본 사람은 귀하게 사용하신 것이고, 나중이나 하나님 나라에서 열매를 보게 한 사람은 천하게 사용하신 것인가? 이 역시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가에 쓰시든, 보이지 않는 일에 사용하시든, 그 가치를 뒤에 보게 하시든 주님께서 쓰셨다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이것이 쓰임 받기를 원하는 신자의 자세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독이십니다.
하나님은 감독이십니다.
차범근과 최용수
차범근과 최용수
1998년 월드컵 경기 때 우리나라는 역사 이래 처음으로 예선을 거쳐 본선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독일 축구계에서 월드클래스임을 증명했던 차범근 선수가 감독으로 있었는데, 월드컵 예선을 너무도 잘 치뤘습니다.
그 당시 얼마나 인기가 대단했었으냐 하면 차범근 감독은 집 운동장 교회만 안다고 했습니다. 그를 대통령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메이저 광고는 모두 차 감독 차지였습니다. 그러나 차 감독을 월드컵 대회 도중 감독 자리에서 경질 당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거기에는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던 언론의 무책임함이 있었습니다. 차 감독은 독일과의 경기에 당시 예선전에서 많은 골을 넣었던 최용수 선수를 빼고 김도훈 선수를 투입합니다. 그때부터 국민 감독들이 저마다 감독이 되어서 한 마디씩 합니다. 김도훈 빼라, 최용수 안넣고 뭐하냐. 당시 독일팀에는 벨드캄프를 비롯해서 세계를 흔드는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하석주 선수에게서 일어났습니다. 백태클을 했고 세계적인 선수들을 위협했다는 괘씸죄가 더해지면서 하석주 선수는 퇴장을 당합니다. 경기 결과는 0-5였습니다. 이 경기에 대한 실망감은 곧 엉터리 카드라 통신으로 이어졌습니다. 차 감독이 기독교신자인데 불교 신자인 최용수를 빼고 기독교신자인 김도훈을 넣은 것이다. 그래서 경기에 졌다는 엉터리 소문이 언론이 되었습니다.
사실 최용수 선수가 기독교인이고 김도훈 선수가 불교도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든지 소문을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용수 선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자신을 경기에 넣지 않은 차 감독이 미웠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감독이 된 최용수 선수는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자신이 감독이었던 셈입니다. 자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인정해 주었고 그래서 감독의 계획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감독이 따라와 주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지요.
제 생각에 많은 신자들이 최용수 선수와 같습니다. 그래서 감독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스스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되려고 합니다.
스스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알리십니다.
말씀은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 하나님을 보게 하셨습니다.
섭리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매우 놀랍게도 고아인 에스더가 왕비가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왕비의 자리에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감독되신 하나님을 고백하지 않으면 제일 먼저 나를 이 자리에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습니다. 거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내 실력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그 자리를 괜한 투정이나 불맨 소리로 대신할 때도 있습니다.
에스더는 왕비가 되었으나 왕비라는 자리가 왕의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사라질 수도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자리는 없습니다. 교만해도 괜찮은 출세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리를 주셨으나 그 자리에서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 없으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게 하십니다.
쓰임 받으려는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본은 감독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그 쓰시는 때가 계속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그 쓰시는 때가 계속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제가 물건 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 사용하던 제 헬멧입니다.
저는 이 헬멧에 2번 놀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교사로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의사로 세우십니다.
대부분은 평범한 교사와 의사로 살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자체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에 대한 많은 신자들의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반드시 가치롭게 그리고 빛나게 사용하실 때를 허락하십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키우다 시피한 양육자요 후원자입니다. 그런 그가 에스더에게 지금 유대 공동체가 당한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에스더의 대답이 미지근합니다.
그러자 모르드개가 이렇게 답을 합니다. 너만 혼자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이때 쓰시려고 너를 그 자리에 앉히신 것이 아니냐
에스더 입장에서 그 부르심을 따르다가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런데 이내 대답이 바뀝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쓰시다가 죽게 하신다고 해도 부르심에 순종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녀가 일으킨 놀라운 일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부림절을 지키면서 동시에 에스더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실 그때, 쓰시다가 죽게 하신다고 해도 감독이신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는 줄을 알고 에스더와 같이 고백하실 수 있으십니까?
예수님의 시험과 모범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험 당하심으로 시작하셨습니다.
그가 당한 시험은 하나님의 사랑이 너에게서 떠나갔다는 시험이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이 세상에 온 너는 성부에게 속은 것이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부를 철저하게 고백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종으로서 흔들리지 않고 모든 것을 맡기심으로 승리하십니다.
성부께서 예수님을 애스더와 같이 쓰시고자 했습니다. 그 부르심은 죽음이었습니다. 십자가 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영광과 즐거움을 바라 보시며 감당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을 자꾸만 스스로 감독이 되려고 합니다.
인간을 자꾸만 스스로 감독이 되려고 합니다.
직분자 선거 때, 사람들은 자꾸만 스스로 감독이 되려고 했습니다.
제 아이들이 아버지를 따라 목회자를 생각한 적이 한번씩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매우 강력하게 막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이면 사람이 막아도 하나님께서 세우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내 곧 스스로 자신들은 목회자로 부르신 것 같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때 주님은 2번의 선거를 하게 하셨습니다. 어느 때보다 길고 긴 과정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스스로 확증하는 시간들을 많이 가지게 하셨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직분은 자랑거리일 뿐이며 계급장일 뿐이며 승자와 패자가 있는 전투일 뿐인 것이지요.
흔히들 세속적인 직업으로도 주님을 부르시고, 성직자의 수고와 똑같이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내 정욕과 교만으로 쌓은 일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포장하지 마십시오.
직업으로도 장소로도 수입으로도 구분되지 않으나 주님께서 죽게 된다 하실지라도 주님의 감독되심을 인정하며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그가 참으로 귀하게 쓰임 받는 자가 됩니다.
내 직업 아니고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내 만족을 위한 자리가 아니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자리입니다.
그런 사라들 주님이 쓰십니다.
죽어야 한다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주님 우리를 사용하여 주십시오.
죽어야 한다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주님 우리를 사용하여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