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rmon on the M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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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마태복음 5장은 예수님의 산상 설교입니다. 산상 설교는 예수님의 취임사와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그 백성들에게 천국 시민의 복, 특징, 윤리를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모세처럼 산에 오르사 그 나라의 법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십니다. 먼저 등장하는 말씀은 유명한 팔복입니다. 그가 “복되다"란 단어를 선포하셨을 때 사람들은 마음의 귀를 기울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은 세상 나라의 복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영적, 내면적, 인격적인 복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징, 곧 그 인격의 복입니다. 여덟가지 인격의 특징은 심령의 가난함, 죄를 애통함, 온유함, 의를 갈망함, 긍휼히 여김, 마음의 청결, 화평케 함, 의를 위하여 핍박 받음입니다. 천국 시민은 이러한 인격적 특징을 가지며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복 주십니다. 이들이 행복을 삶의 목적으로 추구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단순히 천국 시민의 삶을 산 것입니다. 그 결과로 행복이 따른 것입니다. 행복은 하나님이 이들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천국, 위로, 기업, 만족, 긍휼, 영적 시각, 자녀의 신분, 천국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고통이 많은 이 세상에서도 이들이 행복한 이유입니다. 이들은 그 인격의 선한 열매로 세상의 부패와 어두움을 대항하는 빛과 소금이 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영광돌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구약의 말씀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해를 종식시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시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것입니다. 구약은 예수님의 오심과 사역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이 모두를 성취하십니다. 하지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의 말씀을 의시적으로 외형적으로 행하는 죄를 범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율법주의와 형식 주의를 비판하시고 율법의 참된 정신을 따라 행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율법의 문자가 아니라 율법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여러 예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살인 문제와 관련하여 실제적 살인도 죄지만 마음에 분노하는 것이 살인의 원인임을 말씀하십니다. 형제에게 분노하고 미워하면 이미 그를 영적으로 죽인 것과 같다고 말씀하시며 율법의 참 정신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살인을 막으려면 불화한 형제가 있다면 예배 중이라도 먼저 가서 화해하여 참 예배를 드리라고 명하십니다. 또한 고소하는 형제가 있다면 재판 전에 그와 화해할 것을 명하십니다. 간음의 문제에 관하여는 마음의 간음, 곧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을 간음으로 규정하십니다. 간음 행동을 하지 않아도 간음의 마음을 품으면 이미 간음한 것이니 철저하고 단호하게 죄를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몰아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이혼 문제에 대하여는 여성의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싫다고 사소한 이유로 이혼 증서를 써서 내 보내는 규례를 정죄하십니다. 음행한 이유 외에는 이혼을 금하여 아내를 지키고 결혼을 지킬 것을 말씀하십니다. 맹세 문제와 관련해서는 과장이나 허풍, 헛 맹세를 금하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다른 이들이 믿도록 신성한 것들을 들어 맹세하며 떠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진실되게 있는 그대로 말할 것을 명하십니다. 원수 갚은 것은 금하시고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것을 명하십니다. 하나님이 선인과 악인에게 일반 은총을 베푸듯이 사랑의 범위를 원수와 이방인에게까지 확대할 것을 명하십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완전하신 하나님을 닮은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은 예수님의 산상 설교입니다. 예수님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외식을 비판하십니다. 대표적인 종교적 의무인 구제, 기도, 금식을 사람에게 보여 자신들의 경건을 선전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종교적 의무는 자신들의 위대함을 홍보하는 위선입니다. 예수님은 은밀하게 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도록 그러한 일을 행치 말것을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갚으시고 응답하시니 이것을 믿고 은밀하게 행하여 하나님의 상급을 잃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특히 기도에 관하여 주의해야 할 것과 모범적인 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며 바르게 기도할 것을 주문하십니다. 또한 하늘에 보물을 쌓아 마음의 눈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재물에 대한 탐심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재물을 섬기면 의식주를 염려하게 된다고 경계하십니다. 하나님의 채우심을 믿지 못하면 세상 염려에 빠지니 자연 세계를 입히시고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배우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분명 그 자녀를 잊지 않으시고 그 필요들을 모두 아시고 채워주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심을 기억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처럼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은 예수님의 산상 설교입니다. 예수님은 무익한 형제 비판을 피하여 동일한 비판을 받지 말라고 경계하십니다. 남들의 흠은 크게 잘 보지만 자신의 흠은 잘 보지 못하는 인간의 성향을 지적하시며 먼저 자신의 흠을 해결하라고 권고하십니다. 또한 거룩하고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짓밟는 자들에게는 그런 것들을 주지 말라서 해를 당치 말라고 권고하십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이기에 그분께 필요한 것을 구하면 주실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황금률을 따를 것을 권고하십니다. 왜냐하면 황금률은 구약의 말씀을 요약한 하나님 나라의 윤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가르침은 천국 시민의 특징과 도덕입니다. 이것을 따라 사는 것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버리고 넓고 쉬운 길을 따르면 멸망에 이른다고 경고하십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세상의 넓은 길을 따르라고 종용합니다. 이들은 마음의 포악함을 감추고 양으로 모습으로 가장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악한 열매를 맺기에 겉 모습이 아닌 열매를 분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이와 같이 말씀을 듣고 이러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입술로 주님의 이름으로 부른다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이적을 행한다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산상 설교를 맺으시며 들은 말씀을 행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라고 권면하십니다. 산상 설교의 가르침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위에 세운 자와 같아서 재난이 발생할 때 그 집이 튼튼하게 섭니다. 하지만 듣고 행치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재난 때에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로 설교를 맺으시며 순종하는 자가 지혜롭고 복된 자임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설교와는 달랐습니다. 말씀을 들은 무리들은 예수님 말씀에 권세가 있는 것을 깨닫습니다.
마태복음 8장은 질병, 귀신, 자연을 통치하는 왕의 신적 권세를 드러내시는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설교를 마치시고 하산하십니다. 치유를 구하는 한 나병 환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깨끗하게 피부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모세의 명한 법을 따라 제사장에게 보여 치유됨을 증거하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회복하라고 명하십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백부장의 하인의 중풍병을 말씀으로 치유해 주십니다. 백부장은 그 하인의 질병을 치유해 주시도록 예수님을 찾아와 간구합니다. 예수님은 직접 가서 고쳐 주시겠다고 하지만 백부장은 예수님 말씀의 신전 권세를 인정하며 말씀만 하셔도 하인이 낫겠다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중에도 없는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믿음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참한 결말을 경고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가 앓고 있는 열병을 치유해 주십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신적 권세를 경험하고 곧 예수님을 수종듭니다. 이러한 소문이 돌고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들과 병든 자들을 많이 데리고 예수님께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이들의 연약함과 병을 담당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치유와 축사 사역으로 유명해 지시고 많은 무리가 그를 에워쌉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갈릴리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명합니다. 이때 예수님를 따르는 제자도를 가르치십니다. 제자도의 대가를 생각치 않고 따르려는 자에게는 그 길의 어려움을 말씀하시고 제자도의 우선성을 무시한 자에게는 그를 따름이 우선함을 말씀해 주십니다. 후에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시다가 큰 풍랑이 몰아치고 예수님은 피곤하시어 주무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적 권세를 목격하고도 여전히 죽을까 두려워하며 예수님을 깨워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작은 믿음을 꾸짖으시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케 하십니다. 제자들은 질병이나 귀신 뿐만 아니라 자연 세계도 순종케 하는 그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곧 예수님은 가다라 지방에 도착하고 무덤 사이에서 귀신 들린 두 사람이 그를 만납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아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치 않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을 꾸짖고 소원대로 돼지 떼에 들어가도록 허락합니다. 돼지 떼는 갈릴리 바다에 뛰어 들어 몰사합니다. 돼지를 치던 자들은 이 모든 일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러 와서 보고는 그를 영접치 않고 오히려 떠나시길 간구합니다. 귀신들이나 돼지를 치던 자들이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의 신적 권세를 보고도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지 않습니다. 이는 불행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