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의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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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번제에 이어 제사장들이 소제의 제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동물을 제사로 드리는 경우 제사장들은 동물의 몸을 제단 위의 불에 얹어두었죠. 화목제물이나 속죄제, 속건제의 경우에는 제물의 기름만을 제단 위에 얹어두었습니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제물의 피를 제단에 뿌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곡식을 드리는 제물인 소제는 어떻게 드려져야 했을까요? 곡식에는 피도 없었고, 지방도 없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과학의 발전으로 곡식에 지방이 있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토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곡식의 가루 한 움큼을 제단 불에 태우라고 말입니다. 그 한줌의 가루는 기념물이 되어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고 말하지요. 그리고 남은 곡식의 제물들은 제사장들에게 나누어졌습니다. 유대인 전승에 의하면 여기 이 한 움큼의 가루는 동물을 도살하는 것, 그리고 그 피를 제단에 뿌리는 것과 완전히 같다고 말합니다.
제물의 일부, 즉 한 움큼의 가루는 말 그대로 일부이지만, 소제 전체를 신성하게 만들어주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저술한 로마서에 이와 같이 말합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로마서 11:16)"
소제 제사의 절차에 대해서 그리고 곡식 한 움큼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요. 제사장이 소제의 한 움큼을 들어 제단 위에 올려놓았으므로, 소제 전체는 거룩해집니다. 그렇기에 한 움큼을 제외하고 남은 제물들로 만든 반죽도 거룩하게 됩니다.
모든 제사는 거룩하지만, 토라는 세 가지 유형의 희생에 대해서 "지극히 거룩하다(영어로는 가장 거룩)"고 말합니다. 속죄제물, 속건제물 그리고 소제의 제물입니다. "지극히 거룩하다"는 말의 히브리어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kodesh kadashim (קדש קדשים), 이라고 하는 이 단어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성스러운 것 중의 성스러운 것"ㅇㅂ니다. 대체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토라는 성막과 그 제물에 관련해 여러가지를 "지극히 거룩한 것" 오로 여깁니다. 번제단, 제단, 그 부속 그릇과 기구, 향과 곡식 제물, 속죄죄와 속죄제물 등등입니다. 또한 성소 안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게 됩니다. 성소 안에 "지성소"가 나뉘는 이유는, 성소 중에서도 더욱 성스러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분류된 것은 성막이라고 하는 거룩한 공간 안에서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소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곡식제물,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을 성소 안에서 먹어야만 했습니다. 이것들은 성막 바깥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남은 부분을 집 밖으로 가져가서 가족들과 함께 나누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되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될 경우 제사는 무효화 되었습니다.
필름 카메라를 이용해서 사진을 찍어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보통 어떻게 사진을 얻게 되는지 아시나요? 네 바로 암실을 이용해서 필름에서 사진을 추출하게 됩니다. 만일 이 필름을 암실이 아닌 빛이 있는 공간에 노출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필름은 망가지게 되어버립니다. 본문의 소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거룩한 제사들은 성막의 신성함 안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 원칙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생명에는 연약하고, 소중하기에 주의 깊게 다루어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성막의 가장 거룩한 물건들과 제물을 다른 곳으로 가져갈 수 없었던 것처럼, 삶 속의 어떤 것들은 가장 거룩한 것이므로 절대로 아무곳에서나 꺼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태복음 7:6)"
이 원칙은 크게 두 종류의 관계에 적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두 번째는 부부 간의 관계입니다. 삶 속에서 아무 곳에서나 꺼내서는 안되는 두 가지 관계이지요.
우상을 숭배하는 일은 단순히 우상을 숭배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상을 숭배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신 분입니다. 우상을 숭배할 때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암실에서 벗어나면, 우리 모두는 마치 망가진 필름처럼 그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이것은 부부 사이의 결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 관계라는 암실에서 벗어나면, 부부 사이는 끔찍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