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유전과 중보자(대속)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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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유전과 중보자 곧 대속자의 약속

Notes
Transcript
창세기 9장 18-27(창세기 9-3)

S1. 환영 및 인사

반갑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믿음을 굳게 합시다’ 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를 유지한 중에 예배에 한 해서는 10%까지 출석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화요일부터 새벽 기도회와 수요, 금요 기도회를 이런 기준으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자녀들은 완전 오픈이 어려워 계속해서 실시간 혹은 녹화 영상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부모님들은 시간을 잘 확인하셔서 자녀들을 꼭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S2 본문 주제 제시

오늘 말씀은 노아 홍수 이후의 삶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홍수의 대심판 이후에 노아의 후손들은 온 세상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홍수 심판 이후 가장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인류의 죄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죠.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데로 세상은 여전히 타락과 부패의 열매를 없애지 못했습니다. 홍수심판도 인간의 죄성을 없애지 못해 여전히 지금까지 타락과 부패의 삶은 이어져 내려 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홍수 심판의 생존자였던 노아와 그 아들 함에게서 이미 타락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이런 부패와 타락의 형편을 아시고 셈을 통해 대속의 중보자를 약속하시고 믿음을 계승해 주십니다. 나면서부터 부패한 인간의 삶은 홍수 대심판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큰 짐이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을 위해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통해 오실 메시야 신앙을 계승하심으로 인류의 미래에 소망을 알려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도 부패의 사슬을 이기고 예수님 안에서 약속하신 대속의 중보를 통해 참됨 믿음의 승리를 누리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모세는 홍수 이후 세상은 온 세상에 흩어진 노아의 자손들로 가득하게 되었다고 기술합니다. 오늘 본문 이후와 10장으로 이어지는 말씀은 생육하고 번성하라신 하나님의 명령이 노아의 자손들의 흩어짐을 통해 성취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후 본문의 서론이 되는 18, 19절 말씀을 함께 읽어 봅시다.
창세기 9장 18, 19절
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세상은 노아의 자녀들로 가득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 충만하라신 명령과, 그 땅에서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신 인간의 사명이 이렇게 흩어진 노아 자손들을 통해 성취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S3. 문제제기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여기에 더하여 홍수의 대심판 이후 과연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게 되었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임한 죄에 대한 심판을 경험한 인간은 과연 죄를 이기고 거룩과 경건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이들은 이제 죄성의 지배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 우리의 질문이 됩니다. 그러나 대답은 ‘아니요’ 입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은 당시 대홍수의 생존자였던 노아 자신이나, 그의 아들 중 함에게서 타락과 부패가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20절로부터 27절까지의 말씀은 인간이 여전히 죄성의 영향으로 참된 경건을 이루지 못했음을 보여 줍니다. 먼저 노아에게서 이러한 경건의 실패가 보입니다. 우리 20, 21절 말씀을 같이 봅시다.
창세기 9장 20, 21절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농사를 짓고 이를 위해 포도나무를 심어 열매를 거두는 것은 잘못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노동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포도로 술을 만들고 만취하여 온몸을 벌거벗은 체 장막 안에 있었습니다. ‘벌거벗다’는 말은 대체로 성경에서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더군다나 그의 이런 모습은 아들 함에게 노출이 됩니다. 그는 아버지의 하체를 쳐다 보고, 장막 밖으로 나가 그것을 다른 형제들에게 알렸습니다. 22절을 봅시다.
창세기 9장 22절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여기에서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본 것은 장막 안으로 들어가서의 일입니다. 그리고 장막을 나와 그것을 알렸습니다. 본문은 장막 안에서 함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는 기록하고 있지 않으나 많은 학자들은 함이 장막 안에서 쳐다 본 것을 함에 의해 어떤 부정한 일이 저질러졌음을 뜻한다고 이해합니다. 우리가 ‘아이를 본다’고 하는 것 눈으로 보고만 있는 것이 아은닙니다. 모든 돌보는 행위를 다 포함합니다. 그러니까 벌거벗은 것을 본다는 것은 노아의 벌거벗음만이 아니라 장막 안에서 함이 아버지에게 어떤 심각한 부패의 일을 한 것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은 아버지의 장막을 나와 이 일을 다른 형제들에게 알렸는데 이것도 단순히 아버지의 하체를 알린 수준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술에서 깬 노아가 제일 먼저 함이 자기에 한 일을 인지하고 바로 함을 저주하합니다. 우리 24, 25절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9장 24, 25절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술이 깬 노아가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는 노아의 술취함과 아들의 범죄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홍수 심판 이후의 세대는 홍수 생존자인 노아 자신과 그의 아들 함에서부터 이미 큰 부패와 타락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홍수 심판은 인간의 죄성을 단절시키지 못했고, 인간은 여전히 죄성의 유전 속에서 범죄하고 타락한 존재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J1. 하나님의 속성, 심정, 그리고 방법

우리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부패성의 연속을 안타까이 여기시고, 인간을 위한 구원의 길을 준비하십니다. 홍수로 인해 인간은 고쳐지지 않았고, 모두가 여전히 죄성을 가지고 범죄를 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부패를 불쌍하게 여기시며, 죄의 본질을 용서하시고이들을 회복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자녀들이 되게 하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노아의 아들 셈을 통해 이러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함으로부터 아버지의 하체와 관련한 일들과 함 자신의 행동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셈은 야벳과 함께 아버지의 하체를 가리기 위해 아버지의 장막을 찾습니다. 23절입니다.
창세기 9장 23절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셈과 야벳도 장막을 찾았으나 이들은 옷을 어개에 매고 뒷걸음을 쳐서 아버지의 장막 안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가렸고, 얼굴을 돌려 그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가리고 덮어 보지 않고 아버지의 존엄을 지켜드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셈의 이러한 행동을 통해 우리의 죄를 가리고 덮으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적으로 보여 주고 계십니다. 바울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역이 바로 대속 중보 사역임을 선언합니다.
디모데 전서 2장 5, 6절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중보하실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내셨는데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심을 밝힙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기한이 찬 시간에 예수님을 우리 죄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대속물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가리고 덮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대신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홍수 이후 노아와 그 아들의 범죄와 타락의 시간 때부터 이미 우리 하나님은 셈을 통해 우리의 죄를 가리고 덮으실 대속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의 중보자로 보낼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J2.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중보자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도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을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8, 9절을 봅시다.
요한복음 14장 8, 9절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은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제자 빌립의 요청에 나를 본 자가 바로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사실 빌립의 질문은 성립되지 않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보이지 않으신데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면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을 보이신 것인데, 당시 빌립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이신 아버지를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중보자로서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십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자녀라 불리기 때문에 구분을 하자면, 우리는 양자들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아들인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셈은 아버지의 부패를 드러내는 벌거벗은 하체를 가리면서 앞으로 하나님이신 중보자 예수님의 할 일을 드러내는 예표적인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J3.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또한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중보를 완성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하심을 통해 택함 받은 모든 이들이 구원을 얻었음을 증언합니다. 로마서 5장 19절 말씀을 같이 봅시다.
로마서 5장 19절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이 낳은 모든 인류의 범죄를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순종하심으로 인간의 순종을 완성해 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 성도의 모든 죄는 사함을 얻고 하나님 앞에서 칭의의 영광을 누리고 노아와 약속하신 아담과 맺으신 그 언약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셈 안에서 예표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아담으로 인해 깨어진 모든 것들이 회복되고, 홍수 심판 이후로 유전되어 지속된 죄성의 부패와 타락들도 다 용서함을 받아 새로운 생명의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W1. 예수님은 중보자로 오셔서

타락한 인간의 모든 죄를 덮으시고 가리셔서 하나님과의 놀라운 연합의 관계, 즉 언약의 관계를 회복해 주십니다. 노아 언약의 당사자 노아 자신과 그의 아들 함의 부패와 같이 해결할 수 없었던 인간의 타락과 죄악을 약속의 때에 세상을 찾오신 예수님께서 모두 해결해 주십니다. 대홍수의 심판도 사람의 죄를 해결할 수 없었지만, 중보자로 오신 예수님 안에서 모든 죄악은 그 힘을 잃고 성도는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의 관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W2. 중보자와 그 대속의 사역은

오직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 안에서만 성취가 됩니다. 사람이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구약에 많은 이들이 중보자로 오실 예수님을 예표하였지만, 그들도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노아의 언약을 기술하고 있는 모세 자신이 가장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예표하지만, 그 자신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요단을 건너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이는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모세는 광야에 남아야 했던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대속하시는 중보자가 되십니다.

W3. 우리 하나님은 중보자이신

예수님 안에서 죄인인 우리와 사랑의 언약 관계를 회복하십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아무도 그 직분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어떤 도덕이나 덕행도 하나님을 만족케 하여 죄를 대속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대속자이시고, 모든 죄를 가려 덮으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이 길 외에는 어떤 길도 내지 않으셨습니다.

T1. 셈은

이 놀라운 중보적 사역을 예표함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노아는 셈을 향해 큰 복의 예언을 줍니다. 26절을 봅시다.
창세기 9장 26절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이제 여호와는 셈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는 모세가 앞으로 자신이 인도할 이스라엘 백성들, 곧 셈의 자손들인 자기들이 누릴 복과 영광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 되셔서 함의 자손인 가나안을 심판하시고, 그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셈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놀라운 은혜를 누립니다.

T2. 또한 야벳의 후손들도

셈과 함께 복을 누립니다. 하나님은 야벳을 창대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큰 복을 누릴 수 있도록 은혜의 문을 여셨습니다. 우리 27절을 봅시다.
창세기 9장 27절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 구절을 하나님께서 야벳을 창대하게 하셔서 야벳이 셈의 장막에 살게 하셨다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오해입니다. 27절은 이렇게 읽는 것이 좋습니다.
창세기 9장 27절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신다. 또한 하나님이 셈의 장막에 거하신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한다.
우리 교단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이신 한정건 교수님은 이 부분을 이렇게 세 개의 구절로 이해합니다. 실제로 장막에 거한다는 의미의 ‘샤칸’은 칼형, 즉 평서문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 사역형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세 개의 구절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즉, 하나님은 셈에 협조하였던 야벳을 창대하게 해 주시기를 축복한 것입니다. ‘창대하다’는 뜻은 문을 활짝 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야벳도 소유와 땅의 풍성함을 누리는 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가나안은 모세의 백성 이스라엘에 패하여 땅을 빼앗기고 그 종이 되는 것입니다.

T3. 성도에게는

셈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이방인들도 중보자의 일반 통치 안에서 복을 누리지만, 성도는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비록 코로나와 같은 큰 재앙을 성도인 우리도 경험하고 있으나, 성도는대속의 중보자이신 예수님 안에서 죄의 용서와 함께 새로이 임하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놀라운 소망과 은혜를 누리게 되고, 지금도 하나님의 놀라운 공급과 위로를 누리게 됩니다.

L5.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홍수와 같은 대심판을 체험한 이전 세대들과 같이 오늘날 코로나의 대재앙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노아나 함과 같이 여전히 자신의 부패성과 죄악성에 빠져 그 유혹에 흔들리고 살아야겠습니까? 아니면 셈과 야벳과 같이 오히려 중보자의 은혜와 사랑으로 형편없이 벌거벗고 있는 세상과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어쩌면 코로나는 우리의 믿음의 본질을 평가하는 큰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유혹이 아니라 ‘신앙의 테스트’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의 민낯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상황에서 성도는 더 인내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세상의 허물과 죄를 가려주시는 은혜를 더 붙들어야 합니다. 어려움으로 인한 모든 불평과 불만, 좌절과 절망을 버리고, 중보자로 오신 예수님 안에서 소망과 겸손으로 이웃과 형제 자매를 섬기고 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려울 수록 더 성도를 돌아보고 힘든 시기를 한 마음으로 견뎌가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L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안에서 주신 중보자의 약속은 마침내 이루어져 우리 주님이 이 땅을 이미 다녀가셨고, 이제 성령님 안에서 믿음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향한 약속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오실 주님을 소망하고, 믿음의 길에 굳게 서서, 중보자로 오신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예수님의 빛과 사랑으로 온전한 섬김을 행하며 살기를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죄 아래에 눌려 있는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이 놀라운사랑과 섬김의 삶이 중보자시인 주님이 주신 성령님 안에서 내 속에 이루어지기를 항상 소망하며 주님을 더 가까이 하며 항상 주님을 묵상하여 승리하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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