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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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버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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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마7장 24-27절 나의 버팀목은? / 2020년 6월 7일 주일설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는 하늘아래 하나밖에 없는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꿀을 담아 놓으면 꿀단지, 보석을 담아 놓으면 보석함이 됩니다. 그릇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물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하여 질그릇이라고 말합니다. 흙으로 만들어져서 깨지기 쉽습니다. 즉 우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질그릇 안에 누가 계십니까? 보배이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보시기에 두고보기에도 아까운 존재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화) 2018년 서울에 있는 상도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건물이 갑자기 10도 이상 기울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건물은 지하1층 지상3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화면을 볼까요?) 다행이 아이들이 없는 밤에 건물이 기울어져서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건축 전에 지질상태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조사되었습니다. 상도초등학교 유치원 건물은 편마암지대라고 합니다. 화면을 볼까요? 편마암지대는 지질 약하기 때문에 흙막이 뿐 아니라 긴 철근을 박아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철근을 더 많이 더 깊게 막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건물이 안전하게 지탱할 수 있습니다.
건축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기초가 중요합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건물이 안정적입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한 건물을 지어도 의미가 없어집니다. 성경은 반석위에 집을 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튼튼하고 안전한 집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모래위에 집을 지면 어떻게 될까요? 불완전하고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26절 말씀입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한 두 달 살라고 집을 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10-20년을 살려면 튼튼하고 안전한 집을 건축해야 합니다.
모래위에 집을 건축해도 살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비바람이 몰아칠 때도 있고 강한 태풍이 지나갈 때도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실체가 드러납니다. 집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나무의 핵심은 뭘까요? 나무는 무엇이 중요할까요? 뿌리가 중요합니다.
시편1편 3절 말씀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상상해보세요. 항상 나무 잎이 광택제를 뿌린 것처럼 반짝반짝 윤기가 납니다. 나무들은 시냇물소리에 맞춰서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왜요? 충분한 물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물이 풍족하다는 것은 결국 뿌리를 잘 내릴 수 있음을 말합니다. 수분을 공급 받은 나무는 잎으로 전달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나무는 뿌리가 중요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을 나무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골로새서2장 7절 말씀입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뿌리를 잘 박아야 합니다.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한 비결은 좋은 땅에 뿌리를 견고하게 내릴 때입니다. 땅이 좋으면 뿌리를 잘 내릴 수 있고 나무는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견고하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예화) 우리 교회는 본당에서 화초를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햇볓과 바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중에는 로비쪽으로 옮겨놓습니다. 처음에는 화분 관리를 잘 못해서 큰 나무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대부분 물 관리 실패입니다. 또 한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부 선물용 화분에는 스트로폼이 너무 많이 들어 있습니다. 화분이 클 경우 보통 스트로폼을 넣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넣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식물이 뿌리를 잘 내릴 수 없습니다. 화면을 볼까요? 화원에서는 무게도 줄이고 돈을 아끼려고 저렇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는 무엇을 기초로 삼아야 할까요? 예수님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반석위에 지은 집, 모래위에 지은 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1층짜리 건물을 지었느냐, 10층짜리 건물을 지었느냐를 묻고 있는게 아닙니다. 럭셔리한 집을 지었느냐 평범한 집을 지었느냐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본질이 무엇이냐를 묻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기초가 무엇이냐를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초로 삼고 있느냐? 예수님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있느냐?
(성경) 예수님이 어느 날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어떤 이는 요한, 어떤 이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 선지자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이 이렇게 질문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 말씀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최고의 신앙고백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무슨 뜻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전부, 예수님만이 참 생명, 참 기쁨~ 아멘할때까지..... 예수님이 참 능력, 예수님이 참 소망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예수님이 감탄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바요나 시몬아라고 부릅니다. 베드로의 이름 전체를 불러주십니다. 네가 복이 있도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무 기뻐하시면서 가슴깊이 숨겨두었던 교회의 비밀을 이야기 합니다. 마태복음16장 18절 말씀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가 1대 교황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기초는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기뻐하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일부 목사들은 자신의 야망을 이루려고 합니다. 일부 장로님들은 자신의 야먕을 이루려고 합니다. 말은 주님을 위한다고 하는데 자기 욕심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태복음7장 24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여기서 반석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시온의 대로만 있는게 아닙니다. 내 기대가 무너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건강에 불청객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사람으로부터 받는 상처도 있습니다. 물질의 어려움도 겪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환난이 있다고 말합니다. 마태복음7장 27절 말씀입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성도에게도 고난이 있습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 때가 있습니다.
비는 위에서 내립니다. 창수는 밑에서 올라옵니다. 창수는 홍수를 말합니다. 바람은 옆에서 우리를 흔듭니다. 위에서 아래에서 옆에서 고난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 모든 어려움이 예상하지 못할 때 옵니다. 비, 창수, 바람이 한꺼번에 올 수 있습니다. 기도 열심히 해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열심히 헌신해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바람을 견디지 못해 방황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없이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절망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반석이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25절 말씀입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반석위에 세웠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좀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릎에 피가 줄줄 흐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넘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목적이 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까?
혹시 돈이 기초가 되고 있진 않습니까?
혹시 자식이 기초가 되고 있진 않습니까?
권력, 명예가 기초가 되고 있진 않습니까?
세상 것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더 공허할 뿐입니다.
(예화) 제가 전도사 때 받은 사례비가 150만정도 였습니다. 부목사 때는 200만정도 받았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오르긴 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휠 씬 많이 받습니다. 그러면 휠 씬 부유하고 행복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큰 차이 없습니다. 하루 밥 세 번 먹는 것 똑같습니다.
제가 쓰는 돈은 별로 없습니다. 머리 갂는 것, 요즘 나를 위해서 투자하자~ 트립커피 사서먹습니다. 나머지 돈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세상 것으로 채워도 만족이 없습니다. 종종 성형중독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이해가 갑니다. 처음에 눈만 고치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눈을 고치니까? 코가 좀 걸렸습니다. 코만 좀 세우면 될 줄 알았습니다. 막상 코를 세우니 턱이 문제입니다. 턱만 좀 깍으면 될 줄 알았습니다. 턱을 깍으면 만족할까요? 세상 것은 채워도 채워도 목이 마른 것입니다.
그래서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자족은 예수님 안에 있을 때 가능함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있으면 감사하고 없으면 없는 데로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번째 성도는 무엇을 기초로 삼아야 할까요? 말씀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24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6절 말씀입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말씀이 기초가 된다는 것은 말씀의 실천을 말합니다.
마태복음5-7장까지를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축복의 산에서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치시고 설교한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을 천국의 대헌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5장 – 천국시민으로서의 자격론
마태복음6장 – 천국시민으로서의 생활론
마태복음7장 – 천국시민으로서의 경계론
1) 1-5절 : 타인과의 태도 / 비판하지 말라
2) 6-14절: 자신과의 테도 / 받고 싶으면 줘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3) 15-23: 교회에 태도 /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4) 24-29: 결론
오늘 말씀이 결론에 해당합니다. 결론은 무엇일까요? 말씀대로 살아라. 나의 이 말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이 기초가 되고 기초가 된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합니다. 저도 걷기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은 하루 7천보에서 9천보를 늘렸습니다. 우리는 건강을 위해서 투자해야 합니다.
내면의 건강을 위해서도 투자해야 합니다. 즉 마음관리입니다. 어떤 분은 감사일기를 쓰시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책을 읽는 분도 계십니다.
여성들은 외모를 위해서 투자를 합니다. 화장도 하고 얼굴 팩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영성관리를 위해서는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화장은 한 시간 하는데 성경읽기는 1분도 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도 감사하는 것은 월간새벽큐티 책을 꾸준히 읽고 묵상하시는 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늘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성경)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후에 첫 번째 만나는 관문이 있습니다. 홍해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바다를 가르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십니다. 홍해를 건너는 것은 영적의미가 있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애굽의 문화, 애굽의 습관, 애굽의 우상숭배는 버려라~ 이젠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살라는 의미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가장 기초적인 고난을 만납니다. 애굽에서 가지고 온 양식이 떨어집니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동안 만나를 먹고 삽니다.
만나는 하루에 한 번 주었을까요? 일주일에 한 번 주었을까요? 아니면 한 달에 한 번씩 주었을까요? 하루에 한번~ 하나님은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양식을 짱막아 놓지 말고 ~ 매일 거두라고 말씀하십니다. 만나는 오늘날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공급자이십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말씀으로 공급받아야 합니다.
마태복음4장 4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집사님~ 말씀으로 삽시다~ 말씀을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게 중요합니다.
(성경)성경에 보면 나실인이 있습니다. 나실인은 하나님을 위해 특별히 헌신을 서약한 사람입니다.
첫 번째 술을 먹지 않았습니다. 사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포도주는 술이라기 보다 음료수에 가깝습니다. 수질이 좋지 않기 때문에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하지만 술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절제하지 못하게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술을 먹지 않겠다는 것은 영적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향락으로 갈증을 채우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세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기쁨으로 삼겠습니다.
두 번째 머리를 자르지 않았습니다. 머리는 사람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는 것은 나를 다스리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나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세 번째 사체를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사망은 죄의 결과입니다. 죄가 장성한 것이 사망입니다. 죄와 악한 길을 버리고, 사망의 길을 버리고 의의길, 생명의 길로 가겠다는 결단입니다. 사망 가운데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나실인들은 이런 서원을 지켰습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과 맺은 서원,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고백은 쉽게 하지만 삶은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은 사울왕입니다. 처음에는 멋지게 출발합니다. 인물이 좋았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할 줄 알았습니다. 맡겨진 일에 성실했습니다. 부자집에 태어났습니다. 사울왕은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멋지게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끝이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왕관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욕심과 질투, 이기심 빠져 분별력을 상실했습니다. 삼손도 나실인으로 처음에 쓰임 받았지만 마지막은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왜요? 세상의 향락에 그의 마음이 빼앗겨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사무엘을 볼까요? 시작도 아름답게 시작했고 인생의 마침도 아름다웠습니다. 사무엘은 사사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쓰임 받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사울 왕을 기름 붓습니다. 사무엘은 사람을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일부 대형교회 목사님이 교회를 자식에게 세습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도 편법을 사용해서 세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지막이 추하면 안 됩니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이 아름다운 사람도 있습니다. 신약시대에 베드로, 바울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길로 갔지만 중간에 주님을 만나고 쓰임받는 인생입니다.
기름부음 받았어도~ 능력을 행했어도~ 예언을 행했어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이나 다윗은 살리는 일을 위해서 자기의 생애를 바쳤던 사람입니다.
믿음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끝까지 우리의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혜성처럼 등장합니다. 교회에 큰 공을 세울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출발은 좋습니다. 그런데 마무리가 약합니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초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기초가 되고 예수님이 중심이 되고 예수님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목적이 된 것은 아닐까요?
성경은 마지막 때가 되면 다 드러난다고 합니다.
마태복음13장에 보면 가라지 비유가 나옵니다.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가라지가 올라옵니다. 그 가라지는 원수가 몰래 뿌린 씨입니다. 종들이 주인에게 가라지를 뽑아 버리냐고 묻습니다. 그때 주인이 뭐라고 말합니까? 뽑지 말라고 합니다. 왜요?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된다고 했습니다. 추수 때까지 나두라고 합니다.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는 불사라 버리게 됩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을 실천하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구원도 중요하지만 열매도 중요합니다. 물론 열매로 구원받는게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로 구원 받는게 아닙니다. 구원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에는 칭의에 구원이 있습니다. 즉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죄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두 번째 성화의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오면 변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완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성이 있기 때문에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변화에는 점진적인 변화도 있고 급진적인 변화도 있습니다. 변화가 없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가짜거나 병들었거나 한 눈 팔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변화가 있습니다. 큰 변화일 수도 있고 작은 변화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열매일 수도 있고 적은 열매일 수도 있습니다. 다 다르지만 변화는 있습니다.
생각의 변화, 언어의 변화, 마음의 변화중에 반드시 있습니다.
가끔 목사가 성취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추행을 당한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습니까? 감히 주의 종한테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이라도 성취행하면 사기꾼입니다. 바보 같은 여자들이 분별할 줄 모릅니다. 열매가 아니면 아닌 것입니다.
가끔 기도원 같은 곳에 가면 돈 받고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사기꾼입니다. 열매가 벌써 이상하잖아요?
가끔 목사들이 돈을 빌리고 값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기꾼입니다. 어떤 분은 말합니다. 얼마나 돈이 없었으면....그게 아닙니다. 사기꾼입니다. 마태복음7장 18절 말씀입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좋은 나무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열매가 이상하면 이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말씀을 지키는 자가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 나를 닮듯이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완벽할 수 없고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몸부림쳐야 합니다. 빌립보서2장에 보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진짜라면 행위는 믿음의 증거이고 열매입니다.
산상수훈은 믿는자에게 주신 말씀일까요? 믿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말씀일까요? 마태복음5장 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중에도 가라지가 있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모릅니다. 시간이 되면 드러나게 됩니다. 심판 때가 되면 다 드러나게 됩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다 드러나게 됩니다. 환난을 만나보면 실체가 드러납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로 많은 것이 바뀌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비대면 사업이 발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어떨까요? 정체되고 있는 교회는 앞으로 더 복음전도에 어려울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해서 예배 출석률도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목사님이 다른 관점으로 쓴 글이 있습니다.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교회가 요란을 떨 일이 아니다. 온라인 예배니 드라이브스루 예배니~
성도들은 교회에 나오지 못하던 더 긴 기간도
예배드리지 못하던 더 난감한 상황도 많이 겪었다.
우리 성도들은 교회 나오지 말래서 못 나오는 것이 아니고
예배 드리지 말래서 못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만큼 나는 성도들을 신뢰한다. 그동안 설교했던 만큼 나는 성도들을 신뢰한다. 성도는 목회자의 생각보다 휠씬 성숙하고 건강하고 신실하다.
성도들에게 교회가 어렵다고 위기라고 엄살 떨 것이 아니다. 교회는 늘 담대함으로 넉넉함으로 성도들을 응원한다.> 공감이 되지 않습니까?
코로나19바이러스는 교인들의 숫자가 줄어든다면 한국교회의 믿음의 수준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앞으로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나라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진짜신앙이라면 어떤 환난이 있어도 주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떠나더라도 바로 돌아옵니다.
기초가 없는 사람은 방황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반석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버팀목입니다. 예수님을 기초로 날마다 말씀으로 공급받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연약함니다. 그래서 자주 넘어지고 자주 낙심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어떤 환난이 있어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흔들리지 않는 것을 붙잡게 하여주싱봈
예수님이 기초가 되게 하시고 말씀이 기초가 되는 삶을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참된 성도는 시련과 환난 때에 그 신앙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는순간까지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빌2장 12절 구원을 이루어가라고 하십니다.
구원을 받았는데 왜 이루어가야 합니까? 여전히 죄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육신의 소욕가 싸우며 살아갑니다. 발버둥치는게 당연합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순종의 삶을 살아갑니다.
마음껏 불법을 행하는자, 는 모래위에 지븡ㄹ 짓는 사람입니다.
구원파는 모래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비슷합니다. 구원은 칭의를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깨달음, 모든죄가 다 용서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회개가 없습니다.
구원에는 시작과 과정과 완성이 있습니다.
시작을 칭의라고 하고 과정을 성화라고 하고 완성을 영화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욥기23장 10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우리는 반복적으로 계속적으로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불안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의, 자신의 순종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 우리의 순종, 우리의 의로움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참 믿음을 소유한 사람,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옵니다.
때론 점진적으로 급진적으로 변화가 됩니다.
열매맺기 위해서 발버둥을 칩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젠 구원받은 사람
구원에는 칭의도 있지만 성화도 있습니다. 구원에는 과거도 있지만 현재도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반응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성화의 과정이 없는 찔림이 없는자....
진짜 선택받은자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점진적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구원의 현재입니다.
우리는 성화의 삶을 통해서 온전해질 수는 없습니다.
성화의 과정을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죽어야 완벽한 영화가 이루어집니다. 구원은 미래도 있습니다. 구원의 현재를 강조하고 있습니디
삶으로 열매로 입중해봐라.....
문제가 있으면 기초를점검해보라는 것입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이런 고백이 나오면 됩니다. 사무엘상7장 12절입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에벤에셀 하나님 – 과거 / 임마누엘 하나님: 현재 / 여호와이레 하나님: 미래
고후1장 10절 말씀입니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첫 번째 과거에 건져주셨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고난 가운데 피할길을 주셨습니다. 즉 과거에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경험했습니다.
두 번째 또 건지십니다. 표준새번역은 “지금도 건져주십니다” 과거에만 건져주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함께하십니다. 지금 건져주십니다. 지금 역사하십니다. 지금도 새 일을 행하십니다.
세 번째 앞으로더 건져주십시다. 미래시제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이후에도 건져주시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약속을 붙드는 믿음입니다.
-실천
큐티책 – 꾸준히 하시는 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 8000천보
마음관리를 위해서 – 책, 감사일기
영성관리 – 큐티, 예배
이런 것이 쌓여서 인격이 되고 열매가 됩니다. 우리는 한번에 기적을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가난한 자가 복있다고 말합니다. 거지처럼 살라는 뜻일까요? 가난 자체가 복이라는 뜻일까요?
여기서 가난은 ‘절대적 극빈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궁핍’을 말합니다..... 즉 심령이 가난 한다는 것은.......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힘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고 하나님만이 나의 전부입니다.
절대극빈상태에 있는 사람은 타인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장 먹을게 없는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이 바로 절대극빈 상태를 말합니다.
천국시민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신령한 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행복은 쫓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입니다.
행복의 파랑새를 쫓지 말고 행복을 지금 누리시길 바랍니다.
신광야 – 하루치만 거둔다. 욕심부리지 마라. 욕심을 부리면 썩는다. 하나님 나라에 사명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굶어죽지 않는다. 공급자는 하나님이시다.
두 번째 성도에게서 중요한 것은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지않는자는 모래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쉽게 낙망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산상보훈을 설교하신 예수님 그 말씀대로 "행할 것"을 마지막 결론에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집 짓는 문제는 종말론적인 문제라고 본 것이지요. 얼마나 열심히 집을 지었느냐가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모래위에 지어진 집, 반석위에 지어진 집, 거기에 따라서 얼마나 땀을 흘리고 얼마나 수고했느냐에 따라서 부실공사가 되기도 하고 건강한 집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일본에 임페리얼호텔이 있습니다. 이 호텔은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로이드라이프라는 사람이 세운 건물입니다. 오래전에 이 건물이 지어질 때에 2년동안 기초작업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비용을 들인다, 너무 시간을 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수년의 골조공사가 끝난다음 다시 내장공사가 완전히 끝마치는데에 또다시 2년이 걸려서 세운 건물입니다. 1952년 동경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에 동경에 있던 모든 건물들이 무너지고 부서지고 초토화 되어지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이 임페리얼호텔만큼은 그 안에 있는 물건하나 손상되지 않고 온전히 서 있을 수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고층빌딩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뉴욕의 맨하탄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비롯하여 하늘을 찌르는 빌딩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 섬이라고 할 수 있는 조그마한 도시에 어떻게 엄청난 빌딩들이 들어설 수 있는 비밀이 어디에 있을까? 많은 건축가들은 뉴욕 도시는 그 지하가 거대한 암반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빌딩들을 견딜 수 있고 빌딩들이 건강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을 아주 짧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여럿 있다. 보편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 사람이 질 그릇 같다는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담기 위하여 만들어진 존재이고, 예수님은 사람이 그 안에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지를 보이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산상수훈의 많은 말씀이 연관되어 있다.
산상수훈의 마지막에 접어들어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를 언급하신다. 성경이 말하는 거짓을 총칭하면 안과 밖이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다. 거짓말쟁이가 거짓말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거짓이 아니다. 거짓말쟁이가 거짓말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 속에 거짓말하는 것이 들어 있으니 그 입과 몸이 거짓을 행하는 것이다. 그가 하는 말은 거짓일지 몰라도 적어도 그는 겉과 속이 다른 존재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성경이 말하는 거짓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그렇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짓 선지자도 바로 그런 관점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를 말씀하실 때 '양의 옷을 입은 이리'라고 하신 것이 바로 그것이다. 속에 이리가 있다면 옷이 아무리 양이라도 결국은 이리의 본성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온 우주를 그 안에 품을 수 있는 사람의 본성이고 능력이다. 즉 마음 안에 있는 것은 결국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법이다. 생명이란 그런 것이라는 것이다. 생명이 가진 유전자는 결국 그것에 의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좋은 나무, 나쁜 나무를 말씀하심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으면 죽일 수는 있어도 그것을 금하게 할 수 없고, 사람 안에 이리와 같은 것이 있으면 노릇은 할 수 있어도 그 또한 감출 수 없는 것이다.
*목사의 성추행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사람 마태
III. 두 종류의 집
"행하는 자"에 엑센트를 두면 본문은 두 종류의 집에 관한 비유로 이해되어집니다. 제가 처음에 설교제목으로 잡았던 반석위에 세운 집 제목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때에 주님의 충격적인 대답이 들려옵니다.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지 아니하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주님이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산상보훈을 설교하신 예수님 그 말씀대로 "행할 것"을 마지막 결론에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집 짓는 문제는 종말론적인 문제라고 본 것이지요. 얼마나 열심히 집을 지었느냐가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모래위에 지어진 집, 반석위에 지어진 집, 거기에 따라서 얼마나 땀을 흘리고 얼마나 수고했느냐에 따라서 부실공사가 되기도 하고 건강한 집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IV. 건축자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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