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부장의 믿음

김종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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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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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에게 배우기 (마8장 5-13절) / 2020년 6월 14일 주일설교 / 만군자원
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리도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하늘아래 하나밖에 없는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내가 보는 나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내가 진짜 나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들고 살 수 없습니다. 누군가 나를 욕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는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가가 중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고 당당하게 사시길 축복합니다.
(들어가는 글) 화면을 볼까요?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선교하는 김명수선교사님 가족입니다. 김병수 선교사님은 지난5월 11일 발열이 시작됐고, 5월 21일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았습니다. 다행인 것은 사모님과 자녀는 음성으로 판정되었다고 합니다. 김명수선교사님이 투병중에 쓴 기도문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제가 일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주여, 기왕이면 선교사가 걸려 감사합니다. 코로나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미 막혔으니 시간이 남는 선교사가 걸려 감사할 뿐입니다. 오히려 사업을 하는 교민이 걸린다면 그 사업체에 큰 어려움이 있을테니까요.
기왕이면 세네갈에 있는 선교사가 걸려 감사합니다. 이 곳의 의술과 시설이 한국보다는 훨씬 낙후되었지만 그래도 주변의 감비아나 말리, 기네, 기네비사우 같은 나라들보다는 의료 환경이 더 좋아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주여, 기왕이면 외로운 선교사가 코로나에 걸려 감사합니다. 주님만 바라본다 하면서도~ 늘 이방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아프리카 땅에서 홀로 외로울 때가 종종 있고 혹 친구들은 나를 잊고 있겠지라고 체념 비슷하게 살아가기도 하는데 이번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다시 한번 나를 기억하며 기도하기에 나는 혼자가 아니며 결코 외롭지 않은 선교사라는 사실에 감사할 뿐입니다.
주여, 기왕이면 연고자가 거의 없는 자가 코로나에 걸리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양가 일가친척들 중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 영적으로 무연고자 같지만 그래도 이번 일을 통해 같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도움의 손길로 펴서 위로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에 나는 무연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김명수선교사님의 기도문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백부장의 고백이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백부장입니다. 백부장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군대에서 100명을 이끄는 지휘자입니다. 오늘날 군대로 말하면 소대장, 중대장급입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아래에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이방인이고 군대 장교입니다. 결코 낮은 위치는 아닙니다. 이 백부장의 하인이 중풍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설명) 중풍병은 이 당시 거의 고치기 어려운 병입니다. 오늘날 말하면 뇌경색, 뇌출혈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본문은 예수님이 백부장의 하인을 치료하시는 말씀입니다. 백부장의 하인이 치료되기 까지 백부장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백부장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긍휼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백부장은 로마의 군인입니다. 백부장이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었습니다. 가버나움은 어디일가요? 지도를 보겠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하인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긍휼의 마음입니다. 이게 바로 사랑의 마음입니다.
성경은 백부장의 하인이라고 말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그 당시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거의 물건과 같습니다. 이 당시 로마법 의하면 주인은 하인을 죽일 수도 있고 돈을 받고 팔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비참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백부장은 하인을 물건으로 보지 않고 인격으로 보았습니다.
마태복음8장 2절에는 나병환자가 나옵니다. 나병환자는 자신의 질병의 문제를 가지고 자기가 직접 예수님을 찾습니다. 오늘 중풍병자는 자신이 직접 문제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백부장이 대신 요청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은 자기 자식이 아픈게 아닙니다. 자기 아내가 아픈게 아닙니다. 자기의 하인이 병에 걸렸습니다. 중풍병에 걸린 하인의 입장에서는 이런 주인을 만나는게 축복입니다. 요즘 기업들은 어떻습니까? 직원들을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아주 냉정합니다. 인간미가 없습니다.
백부장에게는 긍휼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실 백부장은 구지 종에게 잘 보일필요가 없습니다. 종에게 잘 해준다고 엄청난 이득이 생기지 않습니다. 백부장은 이득도 없는데 왜 종의 질병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을까요? 이게 바로 긍휼의 마음입니다.
보통 교회성도 중에 긍휼의 은사를 가지고 계신 분은 평균적으로 30%라고 합니다. 우리교회는 30%휠씬 넘는 것 같습니다.
(설명) 긍휼의 은사기 있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요? 긍휼의 은사가 있는 분은 소외된 사람, 상처받은 사람, 불쌍한 사람, 연약한 사람에게 마음이 끌립니다.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이 끌립니다. 긍휼의 은사를 가진 분에게 가장 맞는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서12장 15절 말씀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긍휼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긍휼의 은사가 있는 분은 언제든 울 준비가 되어습니다. 가장 많이 아퍼해 주고 가장 속상해하는 사람입니다. 내일도 아닌데 내일처럼 아퍼해 주는 사람입니다.
긍휼의 은사가 있는 분은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매우 조심스럽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을 합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모습을 보아도 싫은 소리를 잘 하지 못합니다. 혹시 그 사람이 나로 인해서 상처를 받을까봐 말을 잘 못합니다. 공감과 배려를 잘 합니다. 긍휼의 은사가 있는 분은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예언의 은사나 다스림의 은사가 있는 분은 부족한 부분을 꼭 찝어 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상처가 되도 그 말을 꼭 합니다. 그 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 내가 안 해주면 해줄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예언의 은사가 좋을 까요? 긍휼의 은사가 좋을까요? 좋고 나쁨이 아닙니다. 예언의 은사를 갖고 계신 분도 사랑하기 때문에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권면 할 때는 항상 사랑의 마음,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만하게 말하면 상대가 뭐라고 할까요? ‘너나 잘해라~’
긍휼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무리를 보실 때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즉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구약이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의 마음을 볼까요? 이사야 42장 3절 말씀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우리는 상한 갈대와 같습니다. 흔들리는 갈대가 아닙니다. 상한 갈대입니다. 언제 부러질지 모르는 존재입니다. 누군가가 사정없이 짓밟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메시야 즉 예수님은 그것을 꺽지 않으십니다.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상처를 싸매주시고 희망과 용기를 주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즉 예수님의 마음은 고쳐주고 싶고, 살려주고 싶고,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길 축복합니다. 결국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우리는 살리는 존재로 살 수 있습니다.
백부장이 말합니다. 내 종이 중풍병으로 누워있고 고통이 심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내가 가서 고쳐주신다고 했습니다’ 백부장은 고쳐달라고 말하기 전에 예수님은 벌써 백부장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예수님은 복잡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내가 누군인지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10장 30절 말씀을 보면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머리털까지 세신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형편을 잘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안고 일어남을 아십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마음을 아시고 고쳐주신다고 하십니다.
두 번째 백부장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두 번째 겸손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서 고쳐주신다고 했습니다. 백부장은 오지 말라고 합니다. 무슨 일 입니까? 예수님은 가신다고 하고 백부장은 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현대인의 성경을 볼까요? ‘장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내 집에까지 오시게 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나으라는 말씀만 한마디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자격이 없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열등감일까요? 아닙니다. 겸손합니다.
겸손의 반대는 교만입니다. 자기주장입니다. 자기를 앞세우는 사람은 늘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넘어지기 쉬운 사람입니다.
(예화) 어떤 사람은 항상 화가 나 있습니다. 자기가 높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교만한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손해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섭섭한 일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늘 감사를 고백합니다. 여기까지 온 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산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합니다.
(예화) 예를들어 우리교회가 엄청난 부흥을 했습니다. 그래서 국민일보에서 연락이 옵니다. 목사님 교회를 취재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자가 질문합니다. 어떻게 시골에 있는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까? 이때 제가 잘해서 이렇게 부흥을 했습니다. 그러면 나쁜 목사죠.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좋은 사람을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좋은 부목사님을 만나게 해주셨고 좋은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보이지 않게 뒤에서 묵묵히 섬겨주신 분들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 무너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중에 하나가 교만입니다. 사울왕이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웁니다.
사무엘상15장 12절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그가 기념비를 세운 것은 승리의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전술과 전략이 뛰어났고 용맹이 작용해서 승리했다고 여겼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결국 실패자가 됩니다. 늘 높아지려는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를 자랑하지 말고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성경)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첫 번째 하신 말씀이 뭐죠? 심령이 가난한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진짜 복은 성공이 아닙니다. 진짜 복은 출세가 아닙니다. 진짜 복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가난한자라는 말은 거지처럼 살라는 뜻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절대적 극빈상태’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힘입니다. 하나님만의 나의 도움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능력입니다. 진짜 복은 하루하루 하나님과 교통하며 사는 삶을 말합니다.
겸손은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삶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는 예수님이 죽고 내가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는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죄악, 수치, 허물, 가난, 저주을 다 가져가시고 우리에게 자유, 치유와 부유함을 주셨습니다. 그게 믿어지는게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첫 번째 십자가는 예수님이 지셨습니다. 두 번째는 내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일 무서운 싸움의 대상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문제가 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를 못 이깁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옛사람을 벗어야 함을 말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내 힘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내 인생의 왕으로 모시면 자연스럽게 자기가 죽습니다. 자아가 죽은 사람이 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인격 중에 가장 아름다운 인격은 겸손한 인격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더 많은 일을 맡기십니다. 오늘 예수님은 백부장의 겸손을 받으셨습니다.
세 번째 백부장에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세 번째 확신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의 경우는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왔고, 그의 믿음을 통해서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중풍병자의 하인의 경우는 본인의 믿음이 아니라 주인의 믿음으로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보기도의 능력입니다. 백부장의 믿음, 백부장의 기도가 하인의 병을 고쳐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9장 2절에 보면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남편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자녀들이 교회에 가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야고보서5장 15절 말씀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서 고쳐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백부장이 오시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그런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합니까?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8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영어성경으로 보니까 ‘ just say the word’ 백부장은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말씀자체에 능력이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예화) 베드로가 밤새 물고기를 잡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낚시를 해보시 분은 알겠지만 고기가 많이 잡히면 밤새워 낚시를 해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밤새 허탕을 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했습니다. 사실 배드로는 직업이 어부입니다. 물고기 잡이에 달인입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게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누가복음5장 5절 말씀입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말씀이 기적이고 축복이고 능력이고 은혜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백부장에게는 100명의 부하가 있습니다. 백부장이 부하에게 명령하면 바로 실행이 됩니다. ‘엎드려’ 하면 엎드립니다. ‘앞으로 전진하면’ 전진합니다. 말 한마디 부하들은 철저하게 복종합니다. 군대는 조직입니다. 조직의 권위가 무너지면 군대는 무너지게 대어있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에게 상사도 있고 자신의 아랫 사람도 있습니다.
(예화) 교통경찰이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체구가 작아도 손짓하나면 큰 트럭을 세울 수 있습니다. 경찰에게는 권세가 있습니다. 권세는 지위에서 나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권세를 알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말씀의 능력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집으로 가지 않아도 말씀 한마디로 중풍병이 치료될 것을 믿었습니다.
8절 말씀을 다시보면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한마디로 오시지 말고 말씀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에게는 확신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순수한 믿음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보지 않고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여주어야 믿으려 합니다. 백부장은 보지 않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반응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그런 행동을 보고 놀라셨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이 기이해 여기셨습니다. 기이히는 놀라게 여기다. 감탄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만한 믿음을 만나지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영어성경으로 보니까? ‘so great faith’ 큰 믿음, 거대한 믿음, 대단한 믿음~ 큰 믿음은 무엇입니까?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이방인입니다. 즉 어릴 때부터 율법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전통을 이어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셨는데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출신을 보고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보고 칭찬하셨습니다.
13절 말씀을 볼까요?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얼마나 놀랐습니까? 예수님이 안수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냥 나았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바로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의 예수님을 놀라게 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의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성공일까요? 기적일까요? 축복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1장 6절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중에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암4기에 걸려서 고치 받는 기적을 좋아합니다. 저도 좋아합니다. 암4기에서 고침받았다고 믿음이 큰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암에 걸렸는데 간절히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결과와 상관없이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더 많은 복음을 전하고 영향력을 끼쳤던 사도 바울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네 은혜가 네가 족하다 오히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해진다’
내게 신비한 체험이 없을 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고 사는 성도가 1등성도입니다.
진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그리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백부장처럼 긍휼과 겸손과 확신의 믿음 갖고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영상시청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어떤 상황에도 믿음의 끝을 놓치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의 힘으로 부족합니다. 성령하나님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찬양 – 주의 말씀 의지하여 깊은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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