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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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95장 큰 죄에 빠진 나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죄 가운데 있던 우리를 구원해주셔서 주의 나라와 교회로 삼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허락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로 주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허락해주시고, 우리도 아버지의 뜻을 사모하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요 5:1-16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설교
오늘 말씀은 베데스다 연못의 38년된 환자를 언급합니다. 현재 베데스다 연못에는 물도 없고, 행각의 흔적만 남아 있지만 이 때는 물도 있었고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베데스다 연못에 대한 소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의 물이 움직인 후에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은 병을 낫게 된다는 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베데스다 연못 주변에 누워서 물이 움직이길 기다렸습니다. 3절 말씀을 보면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연못 주변에 가득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38년된 환자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38년 된 환자를 보면서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친구가 없어서 물이 움직일 때 연못에 옮겨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이 움직일 때 들어가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킵니다. 우리는 이 환자의 간절함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7절에 그가 예수님을 향해 ‘주여’라고 말한 것을 두고 어떤 사람은 이 환자가 신실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38년된 환자를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묘사합니다. 우선 ‘주여’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당시 호칭 중의 하나였습니다. 우리로 치면 ‘선생님’ 정도의 호칭입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말씀하는데, 환자는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적절히 대답한 것이라기 보다는 환자가 퉁명스럽게 대답한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그런 뻔한 질문은 왜 하느냐 같은 대답입니다. 이 환자가 신실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유대인 지도자들과의 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면 유대 지도자들이 안식일 규정에 대해 따져오자 그는 그 책임을 예수님께 넘깁니다. 게다가 13절을 보면 환자는 자신을 고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환자는 예수님을 믿는 신실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5절 말씀을 보면 그가 나중에 예수님을 만나자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가서 자신을 고친 사람이 예수님이라고 알려주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38년된 환자는 신실한 사람도 아니고, 유대 지도자들의 추궁에 예수님을 파는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환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요한은 이 환자의 병이 완전히 고쳐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9절 말씀에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선 왜 이 환자의 병을 고쳐주셨을까요? 그것은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선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심으로 그 의미를 드러내셨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환자가 자기 자리를 들고 움직이는 것이 안식일 규정에 맞지 않다고 추궁했지만 예수님께선 진정한 안식일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 환자를 고치시고,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은 환자의 육신이 완전히 건강해졌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다음 말씀부터 나오는 안식일 논쟁을 통해 예수님께선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시고,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나타내주십시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베데스다 연못의 38년된 환자는 예수님을 믿는 신실한 사람이 아니라 무책임하고 신실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선 이 환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환자를 고치심으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주셨습니다. 본문에서 나오는 베데스다의 환자와 우리를 비교하면 우리도 그와 같은 사람입니다. 신실하지 않고, 무책임하며, 예수님을 외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선 그런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셨고, 의로운 길을 따라 살게 하셨습니다. 마치 베데스다의 환자가 자리를 들고 걸어간 것처럼 의로운 길을 따라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우리를 일으켜서 의의 길을 따라 걷게 하셨습니다. 비록 베데스다 환자는 예수님의 소식을 유대 지도자들에게 팔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증거하며,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생각하시면서 우리가 이 일을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