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사함의 권세를 가진 예수님
Notes
Transcript
2018년 1월 29일 새벽기도
찬송가 : 313장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본문 : 누가복음 7장 36-5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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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사함의 권세를 가진 예수님, 평안케 하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살펴보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누가복음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앞선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며, 이스라엘이 기다리고 소망하는 바로 그 분이자 참된 선지자로 설명하였고 오늘 본문에선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진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1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 19:10에는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며 디모데전서 1:15에는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 우리가 착각하고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지 않고 하나님과 화목하며, 평안하며, 사랑하도록 하십니다. 로마서 5:1에서 말하듯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실 뿐 아니라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뿐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과 평안하도록, 사랑하도록 하신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한 가지의 사건과 한 가지의 비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과 죄를 지은 한 여인,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와 오십 데나리온 빚진 자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어떻게 대합니까? 본문 45절에 나오듯이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께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하였으며 감람유도 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39절에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이라고 말한 것처럼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이 선지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당연히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메시야라는 것을 생각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그를 시험하고 멸시하려고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환대의 방식들, 입을 맞추고 씻을 물을 주고 기름을 주는 것을 일부러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반해 죄를 지은 한 여인은 어떻게 대합니까?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붓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라고 말하고 있는 이 여인은 바리새인 시몬과는 반대로 자신의 죄를 구원해주신 예수님께 대한 감사로 향유와 눈물로 예수님을 환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를 누가는 죄를 지은 한 여인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마리아가 음란하고 율법을 어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직업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창기 뿐 아니라 세리와 대장장이, 낙타를 파는 자들을 죄인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비유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 마리아를 죄인으로 한정짓습니다.
비유가 무엇입니까?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와 오십 데나리온 빚진 자입니다.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 더 많이 빚진 자가 그것을 탕감해준 자를 더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마리아를 죄인으로 기록했습니다. 결국은 무엇입니까? 많은 죄가 사하여졌기 때문에 더 많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일부러 바리새인과 죄를 지은 한 여인을 비교하면서 여인이 이렇게 사랑하는 이유가 더 많은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비유를 한 번 생각해볼 때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가 거의 노동자의 1년 반 정도의 금액을 빚진 자가 그 돈 빌린 자를 제대로 볼 수 있었겠습니까? 42절에 이들이 갚을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도무지 갚을 능력도 없는 자들이 그 돈 빌린 자를 보지도 못하고 아마 피해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나 빚 진 것을 탕감 받았을 때 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돈 빌려준 자, 빚을 탕감해준 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이 죄를 도무지 갚을 수도 없을 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저주받은 자가 되심으로 우리가 성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설 수 없는 자였지만, 반드시 죽을 자요. 심판받아 마땅한 자요. 저주받을 자였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게 되었습니다. 롬 5: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평안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마리아는 그처럼 죄에서 구원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감사와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도 고려하지 않고 마치 종처럼 예수님의 발 곁에 서서 울며 그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고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붓습니다. 자신을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죄 사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합니다. 단순히 우리의 죄가 사해지고 그리스도의 의를 받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삼위 하나님,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과 화목하며 평안을 누릴 뿐 아니라 그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와 함께 살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입니다. 죄인 되었던 우리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가 사해질 뿐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 평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0절에도 예수님이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평안과 사랑이 있습니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사랑하고 화목하도록 하신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습니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 새벽에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하신 그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감격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설 수 없는 자였지만, 반드시 죽을 자요. 심판받아 마땅한 자요. 저주받을 자였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며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오늘 하루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