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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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7일 새벽기도
찬송가 : 397장 주 사랑 안에 살면
본문 : 디모데전서 1장 1-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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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디모데 전서를 왜 쓰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디모데 전서라는 이름을 통해 이 편지를 받는 사람이 디모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디모데는 지금의 터키인 아시아 지역 특별히 에베소 교회를 목회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고 있지만 사실 디모데가 목회하는 에베소 교회를 향해 쓴 것이기도 합니다. 즉 디모데 전서는 에베소, 즉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한 서신입니다. 바울은 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면서 안부와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당시에 3년 동안 가르친 곳입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 뿐만 아니라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더 가르쳤던 그 에베소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에베소 교회에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3절과 4절에 나오듯이 어떤 사람들이 다른 교훈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른 교훈은 바로 신화와 끝없는 족보입니다. 구약에 종종 등장하는 여러 족보의 인물들 중에서 잘 들어보지 못한 인물들에 대한 전설과 신화를 가르친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들을 과도하게 강조하다 보니 믿음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바르게 보지 못하였고, 족보와 인물에 대한 논쟁과 변론만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디모데를 이 에베소 교회에 남겨두었습니다.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이들에게 바른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화와 끝없는 족보, 즉 다른 교훈을 버리고 5절에 나오는 바른 교훈의 목적.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으로 교회를 바르게 세울 수 있을까요? 다른 교훈에 빠진 교회를 어떻게 성숙한 교회, 올바른 교회, 참된 믿음 안에 있는 교회로 세울 수 있을까요? 2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교회는 구약이 말하는 율법에 대해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 즉 율법을 과도하게 강조해서 다르게 이해한 그들을 향해 말합니다. 율법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율법은 하나님의 의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의와 뜻을 이룰 수 없기에 이 율법이 사람을 죄 아래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본문 9절과 10절에 나오듯이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자 경건하지 않은 자,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로부터 시작해서 거짓맹세하는 자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은 죄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오기 전에 율법 아래에 매인 자였고 계시될 믿음, 곧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율법에 갇힌 자였습니다. 갈라디아서 3:24은 율법을 어떻게 말합니까?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교사라고 합니다.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도움이 주님께 있음을 가르쳐주는 교사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11절에 나오듯이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율법이 복음을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갈라디아서 3:24-25을 읽겠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의롭다 함을 얻게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의 말씀, 율법에 나타나있는 것들을 따라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교회의 거짓선생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율법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을 모르고 이 율법에 대해서 강조했습니다. 족보와 신화들을 통해 구약의 말씀들을 와전하고 율법을 왜곡시켜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 다른 교훈에서 벗어나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교회는 우리의 구주가 하나님인 것과 우리의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디모데와 바울의 권위는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까? 디모데의 은사입니까? 바울의 뛰어난 지식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의 권위가 주께로부터 오는 것을 말합니다. 1절에 보면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이라고 합니다. 구주 하나님과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자신의 권위, 곧 사도의 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참된 구원자가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힘과 삶과 능력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생겨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약속,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선포하시고 그 언약 백성들을 애굽과 바벨론에서 구원하셨으며, 하나님은 그 약속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해방하셨습니다. 또한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의 참 소망, 영원한 생명인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의 없어질 고난과 핍박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며 살게 하시고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고난이 아니라 참된 평안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힘이요 생명이요 소망입니다. 교회는 이 믿음 안에서 견고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앞서 율법이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는 것을 살펴보았고, 둘째로 우리의 소망이 구주이신 하나님께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의 눈을 주께로 향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을 들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약속과 은혜들을 보게 하시고, 또한 우리의 눈을 들어 주님의 도우심과 일하심을 바라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바른 교회, 견고한 교회, 성숙한 교회로 만들어갑니다. 영원하시고, 전능하시고, 선하시며, 참 진리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데 다른 교훈과 헛된 행실로 빠질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전서 1장 15-16절입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눈을 들어 주를 바라봅시다. 그래서 우리의 소망이 주께 있음을, 우리의 능력이 주께 있음을 깨달아 알고 주의 몸된 교회를 견고하게 세워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