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세 번째 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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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7일 새벽기도
찬송가 : 341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 갑니다.
본문 : 사도행전 24장 10-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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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바울의 1,2차 변호를 지나 드디어 세 번째로 변호하는 내용을 보고 있습니다. 가이사랴의 총독; 벨릭스의 재판정에 선 바울은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이 고용한 변호사 더둘로의 고소에 맞서 변호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어떻게 변호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더둘로가 고소한 내용에 하나하나 반박을 하고 있습니다. 5절에 보면 더둘로는 바울을 전염병 같은 자, 유대인을 소요하게 만드는 자라고 합니다. 로마 정부에 반발을 일으키는 자라고 고발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말에 반박합니다. 자신이 정치범이 아니라고 반박합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 12일 밖에 안 되었고.’ 바울이 12일 동안 도저히 사람들을 선동하고 소란스럽게 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바울은 ‘성전과 시장에서 다른 누구와도 변론한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을 고발한 유대인들이 바로 바울의 증인이 되는 셈입니다. 이로써 더둘로가 고소한 내용은 하나도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다 무효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자신의 신앙을 변증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소를 다 무효화 시키고 이제 자신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고 논증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여기서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14절의 ‘조상의 하나님’ 그리고 15절에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입니다. 이 용어는 유대인들이 바라고 있는 것들입니다. 유대인 자신들이 바라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바울 자신도 가졌고 그것을 전파했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충성되어 전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전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한 번 더 확증합니다. 바울 자신이 예루살렘에 와서 정결례를 행하였지만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그것에 대해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9절입니다.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바울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렇게 재판받고 고소 받는 이유를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에 바울이 재판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고난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고난 받습니다. 오늘날 중고등부 아이들을 보면 학교에서 ‘신앙’ 때문에 고난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중고등부 아이들 중에 교회를 다니는 아이들이 2,3%입니다. 한 반에 25명 정도 있는데 교회를 다니는 아이가 1명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반에는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바울은 3번째 변호를 하고 있지만 중고등부 아이들은 매일 매일 자신을 변호해야 합니다. 그나마 반에서 1:1로 묻고 답하면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때로는 1:다수 혹은 선생님까지 다른 아이들의 편에 서서 신앙에 대해서 위협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진화론과 매일 매일 싸워야 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변호해야 하며, 오늘날 교회가 왜 이런지에 대해서도 대답해야 합니다.
신학을 배우는 목회자와 신학자들도 땀 흘려 고민하고 대답해야 하는 문제들을 우리 아이들이 매일 매일 맞닥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 뿐 만 아니라 우리 어른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대학생들은 자신의 취업을 앞두고 자신의 신앙을 변호해야 하며, 직장인들은 직장 내에서 자신의 신앙을 변호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매일 순간의 삶이 재판정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재판정인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 번째로 우리는 주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13을 보겠습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인은 항상 고난 속에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과 믿지 않는 자들은 바라보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지만, 그들은 지혜와 돈, 부귀와 명예를 찾기 때문입니다. 속이고 거짓말하면 금세 성공하는데, 정직하게 살면 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미련하고, 멍청한 자, 무식한 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날마다 고난이 따라다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고난이 아니라 기쁨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께서는 이 미련한 것, 고난 받는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두 번째로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선한 행실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3:16은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고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선한 양심과 행실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우리가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섬길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 날의 부끄러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들은 다시 없을 고난을 두고 기뻐하며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할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재판정에 설 때, 우리는 주와 함께한다는 것 때문에 기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에 매일 매일 재판받으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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