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월) 새벽설교
Notes
Transcript
<야곱의 이중성>
본문/ 창세기 33:1-17
야곱이 에서를 만나다
33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12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13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15 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16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오늘 본문은 야곱이 에서와 화해하는 이야기입니다.
1.불신앙의 모습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부여받은 야곱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지난 밤 사이에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그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2-3절)
에서를 향하여 가면서 사람들의 위치를 정하였는데 그 위치를 보면 자신의 아내가 된 여종과 그 아들들을 제일 앞에 두고 그 뒤에 레아와 그 아들들을 두었으며 제일 뒤에 라헬과 그의 아들 요셉을 위치시켰습니다. 물론 이 전과는 다르게 자신이 제일 앞에 나간 것은 좋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가 위치시킨 아내들의 순서에 너무 인간적인 냄새가 많이 납니다. 야곱은 결혼할 때부터 라헬을 편애 하였고 그 편애는 오랫동안 그에게 큰 아킬레스건이 됩니다. 그래서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라 불릴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그 안에 많은 허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야곱에게 있는 이런 허물은 어찌보면 참으로 말도 안 되는 허물입니다. 그러나 야곱에게 이런 허물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것은 다 신앙인의 모습인데 어떤 모습을 보면 진짜 너무 인간적인 냄새가 많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신앙 자체가 의심스럽게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진정한 신앙인이어도 아직은 그 안에 허물이 많이 남아 있어 참으로 하지 말아야 할 모습이 있는 것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변의 허물 많은 신앙인들에 대해 때로는 아직은 변화되지 못한 연약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허물 많은 신앙인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한 적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아직 모두 죄인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를 향하여 조금은 더 용납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2.신앙의 모습
야곱에게 그렇게 인간적인 모습만 있다면 그는 신앙인이 아니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신앙인의 참다운 모습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러 올 때 그에게는 아직도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괴로워했습니다.
그가 얍복 강에서 하나님을 만나 씨름한 이후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가 바뀌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3절)
쌍둥이 형에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마치 왕에게 나가듯이 형에게 나갔습니다. 그 모습이 참으로 겸손하고, 한편으로 겸손이 지나쳐 비굴하다고 할 수 있을 모습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낮아져 있었습니다. 야곱이 낮아지자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만약 야곱이 걱정만 하고 낮아지지 않았으면 에서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낮아진 야곱의 모습에 어떤 사람이 화를 낼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구와의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듯 철저히 낮아지십시오.
강한 야곱이 약한 야곱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얍복 강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 철저히 깨졌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가족의 행렬 순서를 정하는 모습은 지극히 인간적이었는데 깨진 이 모습은 또한 매우 신앙적인 모습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 때로는 이중적인 사람으로 보여 오히려 더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중적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야곱이 이렇게 깨지는 모습이 위선적일 때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깨진 모습은 위선적인 모습이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야곱의 이중성은 비판적으로 보기 보다는 긍휼의 마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연약함 가운데서도 이렇게 믿음의 모습이 있음을 보며 칭찬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을 향해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누군가 신앙의 모습을 보일 때 이중인격자라고 비난하지 말고 그렇게 믿음의 모습도 보이는 것에 칭찬하십시오.
우리는 야곱이 믿음으로 형 에서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철저히 깨진 낮아진 모습으로 나감으로 형 에서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믿음으로 우리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야곱의 이중성을 보았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편애하는 뿌리 깊은 그 모습을 어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가 형 에서와 화해하는 그 낮은 모습을 위선이라고 몰아붙여서도 안 될 것입니다.
둘 다 야곱 안에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야곱의 연약함에 대해서는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그의 믿음에 대해서는 칭찬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사람의 연약함을 보았을 때 너무 비난하지 말고 긍휼히 여기고, 또한 그들의 믿음의 모습을 위선이라 비난하지 말고 씨름하는 그들의 믿음을 격려하고 칭찬해야 할 것입니다.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가 서로에 대하여 긍휼의 마음을 갖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긍휼의 은혜와 사랑이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