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

출애굽기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317 views
Notes
Transcript

출애굽기

< 박승호 목사의 >
출애급기 강의
(2010년 3월 21-23일, 울산)
(2011. 5. 10)
타 코 마 연 합 장 로 교 회
KOREAN UNITED PRESBYTERIAN CHURCH
720 121st St. E. Tacoma, WA 98445
☎ (253) 537-2246; 535-3341 (fax) 537-8130
나 균 용 목사 (Rev. Kyun Yong Nah)
< 박승호 목사의 >
출애급기 강의
녹취 - (1-2강) 김삼중
(3-8강) 이필은
(9-10강) 나균용
(11-12강) 이필은
각주 및 해설 - 나균용
출애급 사건이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역사
출애급기를 알면 인생이 보인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행 17:11-12)
“주여.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시 119:18,3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7-10).
머 리 말
생명샘 교회의 박승호 목사님은 이 시대의 별과 같이 귀한 분입니다. 성경공부를 통하여 교회를 부흥시키고 수많은 목사님들에게 성경을 새롭게 보는 눈을 열어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을 한 권, 한 권 이렇게 강의해 나가면서 평신도들도 훌륭한 교사가 되도록 만드는 일은 장차 세계 선교를 맡을 우리 민족에게 주신 놀라운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그의 강의는 강의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전도하도록 권장하면서 실질적으로 돕고 있음은 뛰어난 장점입니다.
이분의 강의는 복습을 통해서 반복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적절한 예화와 우리 생활 주변에서 그냥 스쳐 지나갔던 일들 속에 놀라운 비밀이 있음을 잘 지적해 줍니다.
특히 강의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명선언문, 개인의 십계명, 복음선포문 등을 소개하고 각자가 이를 행함으로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함은 놀라운 복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성실히 실천하여 더욱 큰 복을 받고 은혜의 깊은 세계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2010년 9월 13-15일에 타코마에서도 이 분을 모시고 서북미지역 목회자 100여 명이 모여서 출애급기 강의를 들으며 큰 은혜와 도전을 받은 바 있습니다.
저도 오래 목회를 하였지만, 누구의 설교나 강의를 일일이 녹취(錄取)해 본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분의 강의는 녹취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되어 이렇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말씀, 말씀 속에 놀라운 은혜가 있고, 그에게 주신 지혜가 번쩍입니다.
그러나 박 목사님과 나와는 성경해석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는 칼빈주의 교리에 따라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의 비판적인 사견을 넣었습니다. 그의 이 강의는 교파를 초월하여 듣는 것이기에 다른 견해를 덧붙인 것도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성경을 좀 더 깊이 있게 연구하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타코마지역 목성연(목회자성경연구원)에서 박 목사님이 작년 3월 21-23일에 울산에서 목회자들을 상대로 행한 출애급기 강의를 녹취하여 발표하기로 했는데, 발표를 맡았던 사람들이 녹취한 것을 사장(死藏)시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도 읽고 좀 더 깊이 공부하며,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기를 원해서 이렇게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강의를 한 번 듣고 끝나버리면 일주일도 못 되어 95% 이상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강의를 들을 당시에도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미처 알아듣지 못하고 흘려버리는 경우도 많고, 정말 중요한 말씀들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책으로 만들어서 읽게 되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되지 않고 이 말씀들을 접할 수 있고, 들을 때보다 훨씬 더 깊이 깨달으면서 은혜를 받을 수도 있고, 나아가 책에 기록된 것보다 더 발전시켜서 자세히 공부할 수도 있으니까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정결한 짐승의 첫째 조건은 되새김질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김질해야 함을 뜻하지 않습니까? 좋은 말씀은 반복하여 읽어야 할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중국에 선교하러 갔을 때에, 영어를 잘하시는 장로님 한 분과 함께 갔었는데, 신학생들에게 강의를 하시라고 시간을 드렸더니, 통역을 하는 학생이 즉시즉시 통역을 못하고 쩔쩔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할 때는 그렇게도 잘하던 학생이 웬 일인가 했더니, 이분이 영어를 너무 많이 섞어서 쓰니까, 그가 잘 알아듣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요즘에 우리나라에 영어교육 열풍이 불어서 이젠 그 말이 우리말인지, 영어인지 분별이 잘 안될 정도로 되어가고 있고, 우리말의 훼손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목사님들을 상대로 한 강의니까 그 정도의 영어야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강의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을 고려하여 되도록 우리말로만 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혹시 영어를 써야 할 경우라면 우리말로도 번역이나 해설을 붙여야 옳을 것입니다.
박 목사님의 경우에는 영어가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영어로 한 경우도 있어서 영어로 한 단어들은 가급적 영문으로 기록했습니다.
이 강의는 내용을 요약해 놓은 교재(작은 책)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재를 보면서 강의를 듣도록 하였는데, 이 책에서는 교재의 내용을 네모상자 안에 넣어서 수록하였습니다.
이 강의를 녹취하느라 수고해 주신 목사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김삼중 목사님은 1, 2강을 하셨고, 제가 9, 10강을 했습니다. 나머지 8개의 강의는 이필은 목사님이 많은 수고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강의 테이프를 다시 들으면서 그 녹취한 것들과 일일이 대조하면서 교정하고 각주(脚註)와 해설을 더 붙여서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하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만들기 전에 박 목사님께 양해를 구했어야 하는데, 자기의 자료는 자유롭게 사용하라는 그분의 취지에 따라서 프린트물이기는 하지만, 우선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그냥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전달 강의를 위해서는 테이프보다 프린트물이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강의 내용 중에 오류가 있는 것은 바로잡았고, 신학적이거나 성경 해석상에 견해가 다른 것들도 각주에 해설을 넣었습니다.
읽으시는 분들은 지혜롭게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 4월 20일 고난주간에
타코마에서 나 균 용 목사
목 차
강의 (1) 의미로 본 전체 개요 ………………………………………………… 5
강의 (2) 1과 : 언약의 하나님 …………………………………………………16
2과 : 피의 구원
3과 : 신앙의 원칙과 세례
4과 : 광야에서의 내려놓음
5과 : 광야에서의 수업 목표 : 직면
강의 (3) 6과 : 구원, 하나님 나라 ……………………………………………29
7과 : 제사장 나라로의 변화, 성장
8과 : 구원의 process
9과 : 사람을 통한 구속사
강의 (4) 본문 연구 …………………………………………………………… 44
1-2장 : 보고, 듣고, 알고
1장 : 구원의 준비
2장 : 80년 전부터 사람을 준비시키심
3장 : 호렙산의 영적 경험
4장 : 하나님의 동행 표지 - 리더의 자질
강의 (5) 5장 : 내 백성을 내보내라. …………………………………………66
6장 : 하나님의 새 이름 계시 - 여호와
7장 : 모세를 바로 앞에 신이 되게 하심
8-11장 : 바로의 타협안
강의 (6) 바로를 구속사에서 사용하시는 하나님 ……………………………84
강의 (7) 12장 : 유월절에 경험하는 새로운 출발 …………………………101
열 가지 재앙의 의미
유월절 - 새로운 존재
강의 (8) 13-24장 인도하여 (1) - 가까운 길로 인도하지 않으심 ……117
14장 : 홍해를 건넘 (세례)
13-18장 : 성화(聖化)의 진행
강의 (9) 15-18장 : 광야를 통과하는 비결 (1) ………………………… 134
강의 (10) 15-18장 : 광야를 통과하는 비결 (2) ………………………… 147
19-24장 : 성화 - 하나님의 자기 계시
계시 -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채움
시내산
강의 (11) 25-40장 : 이르려 하노라. ……………………………………… 158
성막 - 하나님의 거처
32장 : 우상숭배 - 종교의 영
35장 : 성막 건축 - 마음, 순종
강의 (12) 성막의 구조적 의미 - 생명의 성숙 …………………………… 171
예수 그리스도를 누림
나의 구속사 점검하기
1) 구속사를 위해 하나님이 배열해 주신 환경은? (1-2장)
2) 구속사를 위한 나의 준비과정들은? (3-4장)
3) 나의 영적 전쟁의 역사는? (5-11장)
4) 유월절 경험은 확실한가? (12장)
5) 세례는 받았는가? (13-14장)
6) 광야훈련을 마쳤는가? (15-18장)
7) 말씀훈련이 끝났는가? (19-24장)
8) 성막훈련이 잘 되고 있는가? (25-40장)
9)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는가?
10) 왕 같은 제사장으로 나아가라.
재생산의 원리만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
성막예배를 드려라.
부록 : 견본들 ……………………………………………………………………196
1) 나의 사명선언문
2) 나의 매일의 십계명
3) 복음선포문
< 제 1 강 > 의미로 본 전체 개요
** 출애굽기를 공부하고 난 다음에 그 공부한 사람들이 “아. 출애급기를 알고 나니까 인생이 보이구나.”해서 이 말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출애급기를 공부하면서 은혜를 받아 인생이 보였으면 합니다. 이것이 출애급기를 배운 목표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도 함께 따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출애급기를 알면 인생이 보인다.”
인생을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시 한 번 더 해 보시기 바랍니다. “출애급기를 알면 인생이 보인다!”
우리가 여행을 해 보면, 아는 길을 가면, 그 길을 가는데 신바람도 나고 즐겁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길을 가면 두려움도 있고 너무도 답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출애급기를 알면, 우리가 지금 어느 위치에 와 있는지, 그리고 내가 도착해야 위치를 알게 되기 때문에 인생이 즐거운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우리들의 가는 길을 잘 모르지만 이 출애급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navigation’이 되어 우리들의 인생을 목표에 도달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핵심 성구 (출 3:7-8)
(3: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급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급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 여기에서 동사를 찾아보도록 합니다.
“보고, 듣고, 알고, 내려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데려가려 하노라.”
* 이것을 외우셔야 합니다. 외우시면 전체가 정리가 됩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다시 한 번 더 해보시겠습니다. 보고, 듣고, 알고, 내려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데려가려 하노라.
보고, 듣고, 알고 1장 - 2장
내려가서 3장 -11장
12장
인도하여 13장 - 24장
하노라 25장 - 40장
1) 보고, 듣고, 알고는 1장, 2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의 탄압 속에서 고통당하고 힘들어 하는 상황을 보고,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그들의 우고(憂苦)를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과 부르짖는 소리를 보고, 듣고. 아셨습니다.
2) 내려가서 (3장-11장)
그들을 구원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오실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 아담과 하와, 그들을 통하여, 창세기 3:15에서 사탄이 사람을 꼬드겨 사람을 접수해 버렸어요. 그 때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너를 깨트릴 것이다.” 이때부터 이 세상에 대한 구원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지 않고 반드시 대행자를 통하여 사람을 통하여 구속자를 세워서 그들이 그 땅을 구원합니다.
이 울산 지역은 천사나 와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오시어 구원을 하신 것이 아니라, 울산에 부름을 받은 여러분들이 여전히 부족하여 한계가 있고 연약할지라도 그러나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담의 후손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모세를 통하여 내려오십니다. 이것이 구속사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람을 통하여 구원한다는 것을 놓쳐버리면, 사람들이 자기의 맘에 들면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쳐버리는데, 이것이 구속사에 얼마나 많은 장애 요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존중히 여겨야 되고, 사람을 키워야 되고, 사람을 세우는 것이 교회의 1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천사가 동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일은 사람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사람으로 만들게 하시고 그 문제를 사람으로 풀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하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사의 방법입니다.
** 모세가 태어날 즈음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애급 생활을 참으로 참혹하였습니다.
① 아이들의 출산을 억제하기 위하여 남자들에게 중노동을 시켰던 것입니다. 피곤하면 부부생활을 안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나 더욱 자녀들의 생산이 많아진 것입니다.
② 그래서 둘째 정책이 산파들에게 명하여 “남자 아이들이 낳으면 죽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것도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③ 셋째 정책을 쓰는데 무엇인가 하면 모든 남자 아이들이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절대절명의 위기 가운데 있었단 말입니다. 얼마나 급합니까? 지금. 그런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하여 아이가 태어나게 하시고, 그때부터 몇 년입니까? 80년 동안 준비를 시키십니다. 구속사는 이렇게 진지한 것입니다. 급하다고 아무나 데려다 놓고 쓰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행자로 세우기까지, 그 급한 상황인데도, 가정마다 아들을 낳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위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때부터 80년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80년을 준비시켜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비극은 지도자를 세워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긴 세월을 통하여 사람을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신 분이신데 이렇게 세운 하나님의 종을 사람들을 폄하(貶下)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대행자로 보지 않고 자기 입맛에 맞으면 좋아하고 하나님의 칼 같은 말씀 앞에서 명령을 하면 싫어하며 대적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데 부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자를 세우는데, 선거만 해줄 뿐이지 그 분들을 기관의 장으로 인정하고 따르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서서 일하는 분들에게 일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지도자가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서로 격려하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칭찬해 주고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셔야 할 자리에 모세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이스라엘을 구출하는 사건이 3장부터 11장입니다.
3) 건져내고 (12 장)
12장은 애급 사람들만 하나님의 반대 입장에 서 있는 게 아니라, 400년 동안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고, 그들의 잘못된 문화 가운데 있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1차적으로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피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건짐을 받습니다. 이것이 유월절사건입니다.
그러므로 12장은 요즘으로 말하면 영접기도를 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전환점”입니다. 구원사건이지요. 그런데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구원’ 이후에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구원 이후에 우리를 이끌고 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박영선 목사님이 쓴 책 가운데, 그 시절에는 모든 신학생과 목회자들이 읽었던 책 가운데 하나가 “구원 그 이후”라는 것입니다. 벌써 한 30년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약점은 구원을 받은 이후의 목표를 잘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2장은 소위 천당(天堂) 가는 문제는 해결이 되었어요.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천당이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가 천당 가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라고 한다면 12장까지만 알면 됩니다. 로마서 3:21-31의 말씀으로 해결이 된 것입니다.
(롬 3:24-27)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看過)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로마서 4장에서는 이 구원에 대한 원리를 믿음이라고 하는 단어로 설명을 하신 다음에 로마서 5장 이후에는 구원 받은 백성이 그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을 말하고 있습니다.
4) 인도하여 (13장 -24장)
12장 이후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12장까지는 우리의 갈망이고, 13장부터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3장-24장은 하나님의 어떤 목적을 향하여 우리들을 인도하십니다. 어디로 인도하십니까?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가고가도 또 광야, 가고가도 또 광야로 이어집니다. “Go, Go, Mountain”의 원조가 거기에 있습니다.
수르 광야, 신 광야, 르비딤 광야로 계속 광야로 갑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안 받아서 광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곳이 바로 광야였다는 것입니다.
이때 모세가 할 일은 이 광야를 미리 경험하고, 광야에서 그 백성들이 어려움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찾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출애급기 18장까지 광야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계속 만나고, 19-24장까지는 시내산으로 데리고 가셔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13장-24장은 ‘인도하여’입니다.
5) 데려가려 하노라 (25장-40장)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막으로, 매일 매시간 죄를 지을 때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절기마다 제사를 드려야 할 상황마다 성막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고, 거기에 계신 하나님께 내가 코드를 맞추고 살게 하십니다.
레위기에 보면 알지만, 제사는 참으로 엄격합니다. 내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원칙,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받아주십니다. 그래서 성막에서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 생각, 가치관, 인생의 목표가 다 바꾸어집니다. 계속 그분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문제가 있을 때 찾아가고 하면서 1년, 2년, 3년이 지난 다음에 요즘 말하는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가 이루어집니다. 곧 사고의 구조가 전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성막에서 훈련을 받고 난 다음에는 그들의 얼굴이, 그들의 사상이, 그들의 언어가, 그들의 가치관이, 하나님을 대행할 수 있도록, 요즘 말로 하면 ‘spirit’이 바꾸어진다는 것입니다. 피카소의 spirit, 김홍도의 spirit, 사상, 정신, 혼... 하나님의 인격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사상으로 우리들이 바꾸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12장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계속해서 우리들을 광야로, 시내산으로, 성막으로 인도하시어 매일 예배하는 생활, 하나님께 코드를 맞추는 생활, 하나님의 영광을 기대하는 생활을 향하여 우리들에게 계속 코드를 바꾸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인간처럼 “너는 우리들의 형상이다. 너희는 우리들의 모양이다.”라고 한 그 형상을 회복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둘째 구원, 또는 재창조라고 합니다. 처음 인간은 실패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형상을 회복하신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담과 하와에게 “하늘과 땅과 모든 것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주셨는데” 성막생활, 즉 예배 생활을 통하여 우리들의 생각과 사상이 바뀌면 이제부터 우리가 사람을 대하거나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하나님의 통치권을 가지고 살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격려하고, 세워주고,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품고, 제사장의 가슴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것을 하나님과 연결을 시켜드리고, 또 그것을 회복하기 위하여 기도드리는 제사장 mind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40장까지의 출애급 사건을 통하여, 타락한 죄인, 바로를 섬겼고, 10가지 우상을 섬겼던, 잘못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하나님 중심의 사람,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하는 것이 출애급기의 목적입니다.
가나안의 삶은 뭐냐? 가나안은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야 할 땅입니다. 내가 이런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을 대행할 수 있는 통치권을 가진 자로 세워지게 되면, 문제가 있는 내 가정, 문제가 있는 내 교회, 타락한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 동행하면, 광야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잖아요? 하나님의 성막이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잖아요? 여기에 술집 많은 동네도 있더군요. 그러나 타락한 광야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은 바로 이 울산 지역에, 교회가 있고, 또 주의 형상으로 준비되어 있는 주의 종들이 있으면, 바로 울산 지역이 가나안 땅이며, 하나님의 나라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런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구원 역사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 믿어서 천당 보내는 것이 구원 역사가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소원이고, 하나님의 소원은 아담족들이 결자해지(結者解之), 사고 친 그 여자보고 “너와 네 자손을 통하여 이 세상을 원상복귀 시킬 것이다.” 하나님이 호언장담하신 거예요. 자신이 있으셨으니까. 사실은 2,000년 전에 예수님으로 끝내실 수도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지신 거죠. 애들 싸움에 어른이 개입하신 거잖아요? 사탄도 피조물이고, 사람도 피조물인데, 피조물끼리 싸웠는데,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너무 깊이 개입하시면 자존심이 상하시는 거죠. 애들끼리 싸웠는데, 내가 너희들끼리 해결하도록 하겠다.
오래 전에 저희 교회에 고급장교가 계셨습니다. 딸이 셋이었어요. 여자 애들 셋이 날마다 맞고 오는 거예요. 화가 난 거예요. 애들 셋을 앉혀놓고 “아버지는 그렇게 안 살았는데, 너희들은 왜 그러느냐? 자. 누가 태권도를 배울래?”큰딸이 배웠어요. 유단자가 되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해결된 거예요. 이해가 되십니까? 애들 싸움에 어른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거죠. “너희들끼리 해결해라. 그 대신에 나는 너를 키우겠다.”그렇게 하고는 큰딸에게 집중적으로 운동을 가르치고, 계속 그 아이를 키운 거예요. 때가 되니까 셋이 나타나면 싹쓸이하는 거예요. 모든 사건 다 해결하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천사를 통하여 울산 지역 접수 못하시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고, 연약한 우리, 과거에 싸움에서 졌고, 여전히 문제가 있는 우리지만, 잘 훈련시켜서 이 땅을 접수하게 하신다. 이것이 출애급 사건입니다.
“출애급기를 알면 인생이 보인다.” 따라서 해 봅시다.
고난이 보이고, 가야 할 목표가 보이고, 목회의 비밀이 보이고, 아주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전체 구조를 머릿속에 입력해 놓으면, 울산 지도를 머릿속에 입력해 놓은 것처럼, 어디를 가든지 헤매지 않습니다. 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급기를 알면 인생이 보입니다. ** 제가 내용을 말하면 여러분들은‘장’을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보고, 듣고, 알고 ( 장); 내려가서 ( 장); 건져내고 ( 장); 인도하여 ( 장); 데려가려 하노라 ( 장)
** 이번에는 제가 장을 말하면 여러분이 해당되는 내용을 말씀하십니다.
1-2장 ( ), 3-11장 ( ), 12장 ( ), 13-24장 ( ), 25장-40장 ( )
책 보지 마시고 두 분씩 짝을 지어서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미로 본 전체 개요
1장 - 11장 준비하신 은혜, 준비시킨 목자
아브라함 의 성취
12장 어린양의 로 구원 받음
13장 - 14장 오리엔테이션, 세례
15장 - 18장
19장 - 24장 시내산
25장 - 40장 성막
1) 1장-11장을 한마디로 말하면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뭘 준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계획을 가지셨고, 사람 지도자를 준비시키셨고, 또 그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기억하신 거예요.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전혀 내 의도나 계획이 없는데 어느 날 주님이 나를 찾아오십니다.
그것이 고난을 통하여, 자식을 잃은 아픔이랄지, 경제적인 큰 손실을 입었다할지,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할지, 인생의 의미를 잃었다할지, 이러한 감당할 수 없는 벅찬 위기를 경험할 때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은 “아이고”하면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배를 타고 여행을 하는데 그 안에는 여러 종교, 여러 문화에 살고 있는 분들이 함께 탔습니다. 그 안에 한 스님이 타고 있었는데 물이 잔잔할 때에는 ‘나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하더니만 배가 풍랑을 받아 뒤집힐 것 같으니까 “아이고 하나님!” 하더랍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는 다 하나님을 찾는구나.”라고 깨달았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여건을 다 준비하신 것입니다. 심지어 성도들에게 “내가 어떤 목사님을 만날 것인가?”하는 것도 다 하나님께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1장-11장은 ‘은혜’입니다.
2) 그런가 하면 12장은 어린양의 피로 구원을 받습니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 법으로부터 우리가 자유롭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대속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대신해서 죄 값을 치러주는 죄 값의 대속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미성년자가 죄를 지으면 부모가 책임을 집니다. 부모가 책임을 지어 주면 그 아이는 그 죄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같은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책임지셨다.”는 것입니다. 좁은 의미에서 구원을 경험한 것입니다. 구원 받았습니다.
3) 13장-14장은 이렇게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자녀들)이 구원받은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삶의 가치관을 가르쳐 줍니다. 마태복음 5장-7장까지를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고도 하고, ‘하나님 나라의 Magna Carta, 대헌장’이라고도 합니다. 구원 받은 자녀들의 새로운 질서를 가르쳐 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13장과 14장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앞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야 할 것에 대한 orientation과 그 첫 번째 하나님과 사람과의 계약으로서 ‘세례계약(洗禮契約)’을 맺습니다.
‘피의 계약’ - 12장에서의 계약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어떻게 하시겠다는 계약입니다. “이 피가 있으면 내가 심판하지 않고 넘어갈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서약을 하는 것이고, 14장에서 나오는 세례는 우리 쪽에서 하나님께 서약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는 이렇게 살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가 신앙 안에서 성숙하게 되면 세례를 받게 합니다. 이 세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심판은 ‘피’ 때문에 하나님께 우리를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피의 구원은 하나님께 우리들에게 지켜야 할 약속입니다.
‘물세례’ - 물에 의한 계약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켜야 할 계약입니다. 쌍방 간에 인격적인 계약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쪽에서만 계약을 하고 지키면 안 됩니다.
4) 15-18장은 이렇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겠다고, 세례를 받았는데 진정으로 나를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도록 훈련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반복하여 훈련을 하면서 “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아니라 성령님이십니다.”라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실 수 있도록 삶의 현장에서 사건을 통해서 exercise해 주시는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가 금년에 우리를 참 즐겁게 해주지 않았어요? 박태환 선수가 수고를 많이 했고, 박지성 선수가 했는데, 어떤 분이 박지성 선수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만약에 박지성 선수의 발바닥에다가 붉은 페인트를 칠해 놓고, 한 게임이 끝나면 온 그라운드가 다 빨간색으로 도배가 될 것이다.” 그만큼 많이 뛰어다닌다는 거지요. 그런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고 우승을 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exercise가 있었겠습니까? 한 번에 우승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수없는 훈련을 통해서, 그들이 결국은 최강자가 되고 우승자가 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어느 날 불 받아가지고 확 바꿔지고, 그렇게 하면 인생이 얼마나 쉽겠습니까? 세월이 급한 때에, 모세를 데리고 80년 동안 그렇게 하실 이유가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인격 구석구석, 우리의 성품, 언어, 행동, 사람을 대하는 태도, 부분부분, 구석구석까지 하나님으로 채워지도록 기다리십니다.
혹시 서해안 기름띠 사건이 있었을 때에 가셔서 기름띠 제거하는 작업에 참여해 보셨어요? 그냥 가서 쓱 쓸고 온 것 아니지요? towel 가지고 가고, 숟가락, 젓가락 동원해 가지고 가서, 바위틈 사이사이에... 제가 보니까 하루 종일 했는데, 한 평도 못했어요. 한 평도. 그 바위틈에 기름이 끼어 있는데요, 그것은 100년이 가도 안 없어진대요. 그래서 거기에 젓가락을 집어넣어 가지고 일일이 다 벗겨낸 거예요. 수건 한 장 분의 기름을 닦고 왔는데, 그때 제가 닦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 우리 인격 속에 죄가 묻어 있었는데, 그 죄를 닦아내는 작업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구나.”
용서 받은 것은 12장에서 이루어졌지만 인격이 바꿔지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거칠고 투박하기만 했던 사람의 언어가 그리스도로 사람을 살리는 언어로 바꾸어지고, 사람을 볼 때마다 공격하고 비난하고 소문내서 전달하는 이런 이적행위, 마귀를 도왔던 사람이 사람을 살리고, 문제 있는 사람을 품고 기도해 주는 제사장으로 바꾸어지기까지는 너무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exercise를 광야에서 한 것입니다. 어려움을 겪고, 위기를 만나고 하면서...
제가 이제 senior group에 속해 있어요. 제 동기들이 노회장도 하고, 총회에 진출하는 그런 수준에 와 있는데, 목회가 처음에는 그냥 벼락같이, 어느 교회는 몇 년 만에 몇 명 모였다 그러는 것을 무척 부러워하였어요. 그래서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주로 보았던 책이 Billy Graham, 한경직 목사님, 조용기 목사님 같은 거물들의 책만 많이 보았거든요. “나도 목회를 하면 거목(巨牧)을 하리라.” 그러면서.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뒤를 돌아보니까 나를 그렇게 인도하시지 않은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목회를 기초부터, 정말 차근차근, 정말 어렵게 해 오게 하신 것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사람의 인격이 변화되는 것인 하루아침의 사건으로 바꿔지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저도 71년도에 성령을 체험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경험했지만, 그 때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이 아니라, 계속 어려움을 겪으면서 광야, 또 광야, 이제 끝났는가 하면 또 광야, 끝났는가 하면 또 광야... 끝없는 세월의 광야를 지나오면서, 지금 되돌아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사건 하나하나마다, 기름 때 벗겨내듯이 내 인격 속에 묻어 있는 오염된 것들, 잘못된 것들을 닦아내시느라고 얼마나 수고하셨는지 이제 보이는 거예요. “아! 목회가 이런 거구나. 사람을 돌본다는 게 이런 거구나.”
우리 한국교회가 그 동안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급성장하기도 했었고, 또한 간판만 걸면 사람들이 몰려오는 그런 때를 우리가 목회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었고, 사실은 지금이 진짜로 목회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안 오잖아요? 왔다가 조금 있으면 가버리고... 이런 때에 한 사람을 인격자로 맞아들여서, 정말 그 분의 모든 것들을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또한 그를 양육하는 목자의 마음으로 가지고 일일이 돌보고, 섬세하게 살피는 이것이 진짜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목회 힘드시죠? 그런데 이제 우리가 제대로 목회를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몇 십 명씩 몰려올 때에는 사실은 잘 모르거든요.
하나님께 모세를 키우는 방법도 그랬었고, 그 탁월한 지도자 모세를 통해서 목회를 하셨던 광야교회의 상황도 똑 같습니다. 한꺼번에 확 해결한 것이 아니라, 사건들을 통하여 차근차근 한 가지 해결하고, 또 한 가지를 해결하고, 이렇게...
혹시 진주조개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세요? 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으면 이물질이 하나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 이물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액체를 끄집어내요. 우리 몸으로 말하면 백혈구가 나와서 적과 싸우는 것입니다. 모래가 들어와서 이제 움직일 때마다 살이 막 패이고 아프니까, 계속해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진액을 뽑아가지고 이 모래가 더 이상 자기를 해치지 못하도록 싸우는 작업을 계속하는 거예요. 그 때 나왔던 그 진액들이 모이고 모여서 진주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성도의 인격이라는 것이 “어느 날 성령이 오셔서 확 뒤집어져서 360도 바꾸어졌다.” 이런 개념이 아니고, 사건 사건을 경험하면서 그때마다 그것을 견디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또 겸손하게 엎드리고, 또 회개하고, 이런 사건,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의 인격 속의, 우리의 품성 속의 거짓된 것들은 씻겨 나가고, 하나님의 인격으로 차근차근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년, 20년이 지난 다음에 진주가 되어 하나님께 멋지게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용광로(鎔鑛爐)에 금광석(金鑛石)을 집어넣어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연단의 과정을 통하여 비로소 정금이 되어 나온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이 광야는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영적인 신학교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목회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습니까? 목회를 그만 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요? 그런데 그런 사건들이 내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목회의 방법을 가르쳐주시는 정석이라는 거예요.
5) 이렇게 광야를 지나면서 삶으로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이제 하나님의 principle, 하나님의 spirit, 하나님의 사상과 생각, 하나님의 가치관, 하나님의 철학,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는 것이 19장부터 24장, 시내산입니다.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십니다. “나는 이런 것은 싫어하고 이런 것은 좋아한다.” “이제 네가 나와 연합하고, 내 사람이 되려면 이런 것은 피해야 되고, 이런 것은 순종해야 한다.”라고 detail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광야를 경험하지 않고 ‘시내산’을 경험하게 되면 사변적(思辨的)이 됩니다. ‘관념적(觀念的)’이 되고‘지식지향적(知識指向的)’이 됩니다. 머리만 돌아간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이미 삶속에서 하나님을 몸의 필요로, 삶의 필요로 경험한 사람들은 배운 말씀들이 사변적인 사상이 아니라, 철학이 되고, 삶이 되고, 자기 원칙이 됩니다.
6) 25-40장은 광야에서는 삶으로, 시내산에서는 그들의 사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한 다음에, 매일의 삶속에서 습관적으로 몸에 배게, 익숙하게 하기 위하여 매일 성막(聖幕)을 보고 일어나고, 성막이 진 중앙에 있기 때문에 사방으로 진을 쳤는데 그들의 진문을 성막 쪽으로 향하게 했잖아요? 그러므로 눈을 뜨면서 성막을 보고, 눈을 감으면서 성막을 보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몸에 배게 한 것입니다.
한때 모태(母胎)신앙은 뭐든지 ‘못해. 못해.’라고 하는 신앙이라고 하여서, 그때 목회자 자녀들이나 모태부터 믿음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열등한 의식을 가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목회자 가정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나 모태부터 믿음을 가진 부모님 밑에서 살았던 사람들보다 더 복된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믿으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어요. 이미 믿어졌으니까요. 성경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려고 하면 복잡합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한두 가지입니까? 그런데 모태신앙인들은 믿어야 한다는 것, 교회에 가야 한다는 것,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 기도해야 한다는 것, 어찌 되었건 하나님을 믿어야 잘 산다는 것은 이미 기본으로 주어진 복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믿을 것인가를 우리는 고민하잖아요? 모태신앙을 자꾸 평가절하(平價切下)하지 마세요. 몸에 배어 있잖아요? 최고의 복입니다. 성막생활이 그런 거였어요. 복음서에도 보면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다”(눅 22:39). “습관을 좇아 회당에 가셨다,” “습관을 좇아 성경을 읽으셨다.”는 말씀이 많이 나오잖아요? 이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몸에 배어 있지 않은 것은 다 무너집니다.
** 결국은 이 성막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격으로, 하나님의 사상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의 삶으로 매일 반복적인 생활을 통하여 이것이 생각만이 아니라 행동이 되고, 습관이 되고, 자신의 가치관이 되고 인격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작업을 하십니다. 그들이 성막에서 나올 때 모세의 얼굴에 하나님의 광채가 빛났고 심지어 모세의 얼굴이 너무도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마만큼 하나님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 고린도후서 3:18에 보면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형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작은 영광이었는데 그 이후에 매일 성막에 나아가 예배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다 보니 작은 영광에서 큰 영광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형상으로 나아가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가면 2-3시간씩 예배를 드려요. 일주일에 한번밖에 안 보이니까요. 우리 한국교회는 새벽기도하고,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등 일주일에 10번도 더 모여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이 반복적인 예배생활이 인격화하고 삶이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은 우리를 보고 비난해요. “너희들 그래봐야 안 바꿔진다.”고 하는데, 그래서 한국교회도 미국교회를 따라가서 새벽기도회도 없애버리고, 밤 예배도 없애버리는데, 이거 참 큰일입니다. 교회에 안 모이면 가정에서라도 계속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훈련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문화가 너무 세속화문화고, 교회가 자꾸 따라가고 있어요. 이제 남은 시간에 뭐해요? 금요일 오후에 일과가 끝나면 시간이 많으니까 둘이 놀러 다닌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부부가 언제 놀아본 기억이 있어야지요? 차 타고 가다가 운전 험하게 한다고 “왜 그따위로 운전하느냐?”고 욕하고, 다투다가 “차에서 내려라.” 그러고, 돌아와서는 이혼하는 거예요. 이것이 현실이에요. 언제 부부가 대화하는 법을 배워보았습니까? 명절날 모여 앉아서 고스톱이나 칠 줄 알지, 삼겹살 가지고 나가서 쌈 싸먹고 자다가 오는 것이 우리의 놀이문화인데, 시간을 주니까 사고가 생기는 거예요. 표현이 좀 죄송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시간들을 많이 활용해서 훈련시키고, 거룩한 문화로 바꾸어주어야 합니다. 큰일입니다. leisure를 즐길 줄 아는 실력이 없는 사람들이 돈 있고, 시간 있으니까 다 사고 치잖아요? 지금. 문제가 심각합니다. 교회만이 살 길인 줄로 믿습니다.
< 제 2 강 >
한번 복습하십시다. 1-2장 ( ), 3-11장 ( ), 12장 ( ), 13-24장 ( ), 25-40장 ( ), 이제 여러분들은 몇 장인가를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보고, 듣고, 알고 ( 장) 내려가서 ( 장) 건져내어 ( 장), 인도하여 ( 장), 데려가려 하노라( 장). 이제는 전체를 쉽게 파악이 된 줄 압니다. 이렇게 대략적인 약도를 가지면 전체를 파악하는 데 아주 쉽습니다.
1. 언약의 하나님 “은혜”
1 - 11 준비하신 , 준비시킨 목자
- 조상들과의 언약을 기억하심
- 배열
- 돕는 사람 준비
- 신비 체험, 체험
- 우상의 무력함을 드러냄
- 수많은 간증들
우선 ‘은혜’를 알아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는 것을 ‘은혜’라고 하지요
‘언약의 하나님’ 1장-11장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은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목자를 우리들에게 보여 주십니다.
1)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네가 4대만에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라는 언약을 기억하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찾도록 환경을 배열하십니다. 주로 사람들은 위기 상황을 만나야 하나님을 찾습니다. 살 만하면 하나님을 떠납니다. 제가 선교지를 다녀 보니까요. 선교의 적절한 시기는 문명화하기 전입니다. 경제적으로 부강해지고, 지적 수준이 높아져 버리면 하나님을 거절합니다. 유럽 같은 곳은 정말 선교하기 힘이 듭니다. 사실 선교사들조차도 많이 오염이 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독일 쪽을 가보니 너무도 자유주의 신학이 만연하여 “왜 성경을 공부하여야 합니까?”라고 합니다. 일본 가서 선교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문명화한 나라들은 선교하기가 아주 어렵고, 그 대신에 경제가 어렵고 빈도가 낮은 데는 그냥 가서 “우리 믿고 복 받읍시다.”라고 말을 하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한국 역시 70, 80년대에 그렇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환경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 불편한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환경을 배열하십니다. 거기에 바로 왕들이 쓰임을 받아서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어려운 고통을 주고, 힘들게 합니다. 우리나라도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군사 정권이 오랫동안 백성들을 억압하고 어렵게 하고 착취하여서 오히려 영적으로는 훨씬 더 살아나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중국 같은 경우에서도 공산화하였을 때 세계가 다 걱정을 했습니다. “신앙인들이 다 사라질 것이 아닌가?”했는데 나중에 문화혁명이 일어 난 이후에 열어봤더니 10배 이상 부흥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핍박이나 어려운 환경이 우리들을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3) 또 하나님은 돕는 사람들을 준비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위기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전혀 외면하지 않고 산파들을 통하여 그런 위기의 현장에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지만 부분부분 우리들을 도울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위로를 주고 격려하도록 돕는 사람을 배열해 주십니다.
개척교회를 하면서 정말 힘들고 희망이 없다고 할 때 어떤 분이 만 원을 탁 보내준다. 이럴 때 위로와 기쁨이라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우리가 어렵게 목회를 하고 교인들이 어려운 환경에 있을 때, 어떤 까마귀 한 마리가 와서 한 되의 쌀을 갖다 주고 갔다. 이것 굉장한 위로가 되지 않아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현장에서 돕는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들을 격려하십니다.
4) 또 이때는 하나님께서 신비와 기적을 많이 체험하게 하십니다. 모세가 80년이 지난 다음에 하나님을 인정하기까지 호렙산의 떨기나무 불꽃의 경험이 참으로 중요한 경험이 됩니다. 바울 사도가 다메섹으로 갈 때 얼마나 剛愎한 사람이었습니까? 열심도 보통이 아니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눈이 멀고, 말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고, 주님을 환상 가운데 만나게 되고, 이런 사건들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삶을 돌릴 수 있는 turning point를 주님이 제공해 주시는 것입니다.
5) 또 우상의 무력함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10가지 재앙은 애급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들입니다. 그들은 그 우상들이 자기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더 큰 신 더 powerful한 신이 나타나서 박살을 내는 것입니다. “와. 더 큰 분이 계시는구나.”라고 경외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6) 그래서 1장에서 11장까지는 간증이 많습니다. 믿지도 않는데 계속 믿도록 간증을 주는 것입니다. 사건마다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믿겠다고 결심을 하면 간증이 없어져 버립니다. 기적도 없어져 버립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부분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에 성도들에게 배열을 잘해 주어야 합니다.
1장에서 11장까지의 은혜가 13장 이후에도 똑 같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나타납니다. 1장에서 11장까지는 기도 안 해도 다 나타나잖아요? 내가 떡이 먹고 싶다 하면 그 다음날 누가 떡을 가져다줍니다. 아, 요즘에 먹을 게 부실해서 영양실조가 생긴 것 아닌가 하면 그 다음날 누가 쇠고기를 사다가 줍니다. 사실 기도도 안하고 생각만 했는데 그렇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고 나면 그렇게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할지라도 한 달이 지나도 고기를 사오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렇게 전혀 다른 환경을 주십니다.
우리가 유치원 다니는 아이를 대하는 태도하고, 중학교를 다니는 아이를 대하는 태도하고 대하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까? 아이가 옹알이 하면 예쁘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중학교 다니는 아들이 옹알이를 하면 부모가 어떻게 생각할까요? 예쁘다고 할까요? 쥐어박힙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대하는 태도가 똑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런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런 간증자를 계속해서 강단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교인들의 수준이 내려가 버리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출애급기를 공부하다 보면 그런 것들이 분별이 되는 것입니다.
“아. 이럴 때는 어떤 간증자가 필요하고 부흥회를 해도 어떤 강사가 와야 된다.”하는 것이 분별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해 보니까 3:7 정도, 담임목사가 70%를 감당하고 못하는 부분은 외부강사를 의존하는 것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1장-11장에는 우리가 전혀 준비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구원을 위하여 수많은 기적을 준비하시고 간증을 예비하시고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우리들을 계속 그것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2. 피의 구원
12장. 어린양의 피로 하심
- 새로운 을 주심
- 정하신 에 근거하여 양을 선택함
- 양을 잡음
-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름
- 집 안에 있어 양고기, 무교병, 쓴나물,
- 나그네 복장으로 그 밤을 지냄
1) 어린 양의 피로 구원함을 받는다는 새로운 시작을 주십니다. 달력도 다시 쓰게 합니다. B.C.(Before Christ) 그리스도 이전 시간과 A.D.(Anno Domini) 주님으로부터 출발하는 주님의 시간들, History를 His Story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 분의 이야기”입니다. 역사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역사와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후의 역사가 BC와 AD로 갈라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역사와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후의 역사가 확실하게 다릅니다.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변화가 없다는 것은 잘못만난 것입니다.
2) 정하신 기준에 의하여 양을 선택한다. 자. 여기서부터는 이렇습니다.
1장에서 11장까지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맞추는 것입니다. 화살표로 말하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내가 도망을 치면 그 도망을 치는 자리까지 좇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12장에서 40장까지는 누가 누구에게 맞추는가요? 내가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 그러면 너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맞추어 주시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죽을 때가지 이것만 붙잡고 살려고 그럽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반드시 ‘responding’이 있어야 합니다. ‘응답(應答)’이 있어야 합니다. 순종해야 성숙이 일어납니다.
12장부터는 하나님이 엄격한 기준을 가르쳐 주십니다. 목적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잃어버린 하나님의 통치권 하나님의 대행자로 세우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사람이 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고 사람을 버리고,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나에게 맞춰라.
7-80년대에 복음이 아직 가리어져 있을 때입니다. 당시 극동방송에서 권신찬 계열의 구원파가 복음을 가르치면서 한국교회에 복음이 소개되었습니다. 구원파가 복음을 소개하는 일에는 탁월합니다. 값없이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받는 것에 대하여서는 너무도 잘 가르칩니다. 구원파가 왜 이단이 되었는가 하면 ‘구원 받은 이후에 사람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또 목표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문제가 되었는데 구원파가 많은 교인들에게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언제 거듭났습니까? 거듭날 때 어떠하셨습니까?”하면서 사람들을 빼앗아가니까, 한국 교회가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이단들이 우리를 많이 도와준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인지, 영접기도가 무엇인지, 그 때에 사영리(四靈理)가 나와서 CCC에서 예수님 영접하는 것을 가르치면서 CCC가 한국 교회에 굉장한 호응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해야 되고 구원받은 구체적인 날짜, 또 성격의 약속들을 확인시키면서 구원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가르쳐주는 것은 참으로 좋았는데, 그 후로 제임스 케네디가 만든 개인 전도와 전도 폭발이 한국에 들어와 가지고 “오늘밤 죽어도 당신은 하나님 나라에 갈 준비가 되셨습니까?”하는, 이런 것들이 교회 가운데 큰 유익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았는가 확인하고, 못 받았다고 하면 복음을 제시해 주고 예수님 영접하게 하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그것이 복음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천당 갈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대로 살아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하면서 지금 교회가 그리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이후에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나 천당 가게 되었다.” “나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천당 간다.”는 구원의 확신! 그러고는 그 다음의 삶이 없는 것입니다.
3) 출애급기로 말하면 딱 한 가지만 가르친 것입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를 구원한다.”지금 이 12장을 보면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에 의하여 양을 선택하고, 양을 잡는 방법, 피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 밤에 그것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어떤 복장을 해야 하는지, 그 다음에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가 아주 detail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5분짜리 10분짜리 복음은 우리가 제시했지만 10년, 20년 이후의 복음을 우리들은 안 가르쳐 준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임종을 앞둔 환자나 한번 만나고 다시 안 만날 사람이나 긴박한 상황에 놓일 때 30분짜리, 한 시간짜리 복음 제시가 너무 유익합니다. ‘글 없는 책’ ‘사영리’ ‘부릿지 예화’ 요즘에는 글 없는 책을 다섯 가지 색깔의 팔찌로 만들어서 “그것을 줄 테니 이 말씀을 암송하라.”하면 그것을 받기 위하여 열심히 암송하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복음의 출발은 잘 되었는데, 이것을 가지고 전도하고 복음을 제시하는 것은 좋았는데, 유감스럽게도 이것이 목회의 text가 돼 버린 것입니다. 목회가 이것만 가지고 됩니까? 목회란 12장 이후의 삶을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데 계속 구원 받은 것만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온 메시지가 “열심히 잘 살면 상급을 받는다.”라고 기준도 없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12장 이후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내게 맞춘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이후에는 내가 하나님께 맞추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이후의 삶은 목회자가 해 주어야 합니다. 부흥사들은 이것을 못합니다.
4) 구원이라는 개념이 12장에서 피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곳을 출발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고 하나님의 동역자의 수준에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양을 잡고,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집안에 있어서 양고기를 먹고, 무교병을 먹고, 쓴 나물을 먹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집 밖으로 나가면 도움을 못 받지요? 여호수아 2장에서 기생 라합에게 여리고를 정복했을 때 모든 집안 식구들을 붉은 줄이 매여 있는 집 안에 있도록 했습니다. 만약에 집 밖으로 나가면 책임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피 안에 있는 복음’입니다. 이것이 기준입니다.
1장에서 11장까지는 기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는데도 막 들이받고, 말도 안 되는 억지도 부립니다. 그것을 하나님 쪽에서 꼬실라이제이션하려고 얼마나 propose를 합니까? 한 번도 아니고 열 번씩 다가섭니다. 그 때 “10번 찍어 안 넘어간 나무 없다.”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설득하신 것입니다. 강력한 방법으로 “이래도 안 믿을래?”하고 또 기적을 베풀고, “이렇게 해도 안 믿을래?”하고 또 기적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10번씩이나 기적을 베풀어도 사람들은 강팍하여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계속 찾아오신 것입니다. 언제까지? ‘꼬실라이즈드’될 때까지입니다.
그리고 12장에서 “아. 하나님 참으로 놀랍습니다. 진짜십니다.”라고 고백을 하면 “아. 이제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하시면서 구조를 바꾸십니다. 내려오는 화살표에서 올라가는 화살표로 바꾸십니다. 여기서부터 목회자가 하는 일입니다. 선교 단체에서도 여기까지 잘해 줍니다. 예수님을 믿게 해 줍니다. 영접기도도 해 줍니다.
목회는 12장부터 진짜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훈련받지 않은 사람은 못하는 것입니다.
11장까지는 어느 날 불 받아가지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 미국에 ‘타드 벤틀리(Todd Bentley)’라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 분을 보면 온 몸에 문신이 가득합니다. 그런데도 그 분을 통하여 어마어마한 일들이 나타나가지고 56명이나 죽은 사람이 살아났잖아요? 그 분의 비디오를 봤는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합니다. 그런 일은 불 받아서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예수님을 믿고 영접기도한 사람들에게 삶 속에서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고 주님이 대접받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목회자가 아니면 못 도와줍니다. 그러므로 목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양육은 아버지가 가정에서 하고, 교회가 하고, 영적인 아버지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2장 이후에 하나하나 이 필요한 요소들을 교육시키고 훈련시키는 것이 좋은 목회자입니다.
우리들도 자녀를 키우는데 30, 40년 걸리지 않습니까? 결혼한 이후에도 부모들은 자녀들을 care를 해 줍니다. 그렇게 한 사람을 키운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 5년 동안 고아원에 가서 돈을 확 풀고 돌아오는 것을 목회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5) 나그네 복장으로 그 밤을 지냅니다.
3. 신앙의 원칙과 세례
13-14장 : 홍해 길로 인도하심
- 신앙의 기본 원칙 세 가지를 가르쳐주심
- 로 돌려서 인도하심
- 배수진을 치게 하심 - 절망케 하심
- 바로와 그의 군대를 수장(水葬)시키심
- 모세(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게 하심
13-14장은 앞서서 피에 의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신앙이 뭔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한 ‘orientation’ 즉 원칙(原則)을 가르쳐 줍니다.
1) 13장은 신앙의 ‘orientation’입니다. 세 가지를 가르쳐 주지요.
2) 14장은 홍해 길로 돌려서 인도하십니다. 일부러 가까운 길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일부러 돌리십니다. 그래서 바다를 건너가게 하시고, 어려움을 겪게 합니다.
출애급 경로를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라암셋과 숙곳을 보십시오. 여기에 라암셋이고, 여기가 숙곳이지요? 라암셋에서 숙곳에 머무르게 되고, 이렇게 돌려서, 사실은 윗길, 가까운 길이 있지요? 여기서 이렇게 올라가면 가까운 길이 있는데 그길로 안 가고 이렇게 돌려서 밑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비하이롯’에서 홍해를 만나게 되고, ‘마라’에 들어가게 하고 그 다음에 르비딤광야, 그리고 아말렉과 여기서 싸우고, 시내산에 들러서 금송아지 숭배하고 여기서, 이렇게 홍해의 해변 길을 따라 가데스 바네아로 갑니다. 여기까지 가는 데 2년이 걸립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12 정탐꾼을 파송하여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는데 부정적인 결과를 얻게 되자 돌려서 38년을 더 광야에서 헤매게 합니다. 이렇게 바란 광야에서 돌다가 에시온게벨, 룻바다로 해서 동쪽으로 들어갑니다. 사실은 정탐하는 사람들이 정탐하는 코스가 아닙니다. 이렇게 우측으로 들어가서... 여리고는 가나안 가운데 있습니다.
3) “홍해 길로 돌려서 인도하셨다.”- 배수진을 치게 하시어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도록 다른 것을 전혀 의지할 수 없도록 절체절명의 위기의 자리로 몰아넣어 버립니다. 다른 길이 보이면 도망을 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홍해로 배수진을 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위기상황까지 데리고 가십니다. 거기서 “아이고 하나님. 나 살려 주세요.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결단을 하게 합니다.
4) 이스라엘은 구원하지만 바로와 그의 군대는 홍해에서 수장을 시킵니다.
5) 그리고 모세의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요한계시록 15장에 보면 이 모세의 노래가 신약시대에는 어린양의 노래로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광야에서의 내려놓음
15-18 광야 길로 인도하심
15: 수르광야, 마라의 쓴물 - 기대가 무너져 실망함
16: 신광야, 양식이 떨어짐 - 경제문제(건강, 관계...)
17A: 르비딤, 목마름을 경험함 - 를 잃음
17B: 아말렉을 만나게 하심 - 원수가 괴롭힘
18: leadership의 한계를 경험함 - 에 대해 실망함
13, 14장에서 신앙의 orientation과 세례를 경험하게 한 다음에 15장에서 18장까지는 광야의 길을 걷게 합니다. 수르광야, 신 광야, 르비딤, 아말렉을 만나고 모세의 leadership에 한계를 경험하는, 이 다섯 가지 일련의 경험은 굉장히 중요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중심의 사고’에서 ‘하나님 중심의 사고’로, 애급의 문화중심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 culture로 바꾸어지게 하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옵니다.
1) 수르광야에서 사흘 동안 물을 먹지 못할 때 마라에 가서 쓴물을 만나게 됩니다.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고 기대가 무너져 실망하게 합니다.
2) 신 광야에 갔을 때에는 양식이 떨어집니다. 경제의 문제가 온다는 것은 근본이 흔들린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마음을 먹고 예수님 잘 믿겠다고 하는데 건강에 위기가 오거나 그렇게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면 근본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근본이 흔들렸다는 것은 근본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근본 삼아야 할 텐데 왜 다른 것을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에 그 의지하는 것을 놓게 하십니다.
3) 17장에 가면 르비딤 광야로 갑니다. 목이 마릅니다. 인생이 dry하게 된 것입니다. dry할 때 어떻게 하느냐? 사추기(思秋期)라는 개념이 유행하는데 애들 다 키워 놓고 남편도 직장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고 “내가 지금 뭐냐? 이것이 인생이란 말이냐?”하면서 여자들이 그 기간에서 위기를 느끼는 것을 사추기라고 그러는데 그 동안 해 왔던 일들이 의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dry할 때 반석이신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라.” 그리스도에게 나아갔더니 생수가 터져 나온 것입니다. 성령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목마르고 배고플 때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성령을 체험하게 됩니다.
4) 그 다음에 그곳에서 아말렉을 만납니다. 내가 가는 길에서 사람 원수를 만나게 됩니다. 반드시 교회 안에 사람 원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모세가 기도의 짝을 찾습니다. 그전에는 아론과 훌이 중요한 일을 하지 않았지만 이 사건 이후로는 모세의 중요한 동역자가 됩니다.
5) 또 18장에 가면 이 200만을 감당하기에 모세에게 한계가 옵니다. 백성들도 지치고 모세도 지칠 때 이드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리더십의 원리를 가르쳐줍니다. 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동역자를 세워라 그 때에 하나님 나라의 구조가 출발하게 됩니다.
5. 광야에서의 수업목표 : 직면
15: 중심의 신앙 - 문제가 꼬이면 십자가를 적용하라.
⋅기대에 어긋났을 때 하나님의 원칙으로 돌이키라.
16: 하나님 중심 - 바로가 아닌 께 집중하라.
⋅사람이나 환경이 아닌 하나님, 그 말씀에 집중하라.
17A: 성령님 중심 - 목마르면 반석을 찾아라.
⋅메마른 광야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리라.
17B: 사람 중심 - 영적 전쟁을 위한 를 만들라.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할 때 의 조력자를 찾아라.
18: 하나님 나라 중심 - 를 이루어가라.
⋅목자를 돕는 하나님 나라 드림팀을 이루라.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이런 광야 길로 의도적으로 인도를 하셨는가?
1) 자. 15장에서 마라의 쓴물에, 물은 있지만 마실 수가 없기 때문에, 나무를 집어넣으라고 하십니다. 이 한 나무를 워렌 유어스비는 ‘십자가’로 해석을 합니다. “문제가 꼬이면 십자가를 집어넣어라.” 십자가를 적용한다는 것은 회개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나의 잘못을 고백하고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피의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는 하나님의 심판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피를 붙잡으면 항상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거든요
“피 바르면 내가 무조건 살려 준다.” 하나님이 약속했거든요. 그러니까 문제가 생기면 “아이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데...” 하면서 얼른 갖다가 피를 바른 것입니다.
한번 따라서 합시다. “꼬이고 안 풀리면 얼른 피 발라라.”
피를 바르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니까 우리가 피를 바르면 하나님은 꼼짝없이 도와주게 돼있어요. 약속이니까 얼마나 놀라운 복음입니까?
회개기도 해서 안 풀리는 문제가 거의 없습니다. 90%는 풀립니다. 철저하게 회개기도 하면 다 풀립니다. 회개는 내 중심에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돌아가는 거지요
그래서 이런 문제를 경험하면서, 이런 광야를 지나면서 사람들이 십자가 중심의 신앙을 붙잡게 됩니다. 피의 복음, 보혈의 능력, 십자가의 원리 등 신앙생활의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2) 16장에 가면 양식이 떨어져 버렸어요. 경제는 사람생활의 근본인데 경제가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가지고 갔던 양식이 다 고갈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리기 시작해요. 지금까지는 양식을 누가 줬어요? 바로가 줬어요. 그러니까 바로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 만나기 전에는 세상에 아부해야 되고, 또 상사에게 뇌물 바쳐야 되고, 그렇게 공급을 받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주인이에요. 그래서 더 이상 뒤를 보지 말고, 바로를 기대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16장이 바로 이런 말입니다.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네가 밥이 없고, 돈이 없어도 약속 믿고 말씀 붙잡고 살 수 있겠느냐?” 이것이 목사들에게 제일 real한 필요입니다. 개척교회하면서 정말 쌀이 떨어지고 목사가 사례비도 못 받고 교회관리비도 못 낼 상황에 갔을 때 정말 약속을 붙잡고 몸부림치는 시간들...
말씀으로 살아야 되고 떡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바로가 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애급에 충성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떡을 주신다, 하나님이 내 양식이 되신다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양식되고 힘이 되고 그 말씀을 먹었을 때에 내게 힘이 된다는 것을 경험하기 전에는 돈이 힘이었습니다.
돈이 떨어지니까 힘이 쪽 빠지더라고요. 그런데 돈이 아닌 말씀을 붙잡고 그 힘든 시간들을 지나면서 “아! 인생이 돈이 아니라 떡이 아니라 말씀이구나.”하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 다 경험해 보셨지요?” 개척교회를 하신 분들은 다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척교회를 하지 않으신 분들은 가정에서 경험하시도록 하더라고요. 어찌 되었던 돈이 아니라, 빵이 아니라, 말씀이라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들을 돌리십니다. 이것 해결 안 되면 목사가 먹사가 되는 거예요. 맨날 연말이 되면 돈 얼마나 올려줄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고, 더 많이 준다고 하면 직장을 옮기려고 하고, 목회자가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작업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바꿔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들어보니까 다 대동소이하더라고요. 이럴 때 사람 찾아다니면서 구걸하면 이것이 자꾸 늘어납니다. 기간이 연장이 됩니다. 그러니까 절대 이런 위기가 오면 사람 찾아다니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딱 하나님께 맡기도 말씀 붙잡고 매달립니다. 그리고 몇 달 살아갑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 말씀 주세요.”하고 매달리면 말씀으로 사는 구조로 바꾸어집니다. 지금 아멘 하신 분들은 다 경험이 있는 분들이지요? 바로가 아닌 하나님이, 애급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는 말씀 안에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이 신광야가 극복되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성도가 말씀중심인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예수님께서 시험을 당하실 때 하신 말씀의 믿음으로 사는데 이것이 보통고백이 아닙니다. “진짜 나는 돈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산다.”고 양심적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되는데 사실 우리가 그렇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계셔야 할 자리에 돈이 딱 앉아가지고 ‘맘몬신’이 나를 지배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워낙 목회가 어려우니까 “야. 나한테 저런 풍성한 시대가 올까?” 하면서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량적인 것을 기대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의 제목입니다.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돈을 좇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실체를 보게 됩니다. “아 내가 돈을 의지하고 살고 있네.” 돈이 나의 위로가 되고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가 아니라, “나의 힘이 되신 돈이여! 그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그러면서 내가 돈을 좇는 삶을 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3) 17장에 가면 dry해집니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고 합니다. 목마르면 어떻게 하느냐? 반석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반석이 생수를 낸다.” 거기 갔더니 생수가 터진 것입니다. “메마른 광야에서 생수가 터지리라.” 세상은 목이 마릅니다.
교인 100명 되면, 200명 되면 숨 좀 쉴 것 같습니다. 한 300명 되면 “아 교회가 너무 작으니까 시끄럽다 한 500명은 넘어야 하지 않을까?”한 500명 되니까 “그래도 1,000명은 돼야 그래도 교회가 폼을 잡지.”라고 하십니다. 목회의 목마름이 해갈이 되요, 안 되요? 한 만 명 되는 교회 목사님께 물어보세요. 그러면 “만 명은 아직 작아. 그래도 오만 명은 되야 선교도 하고 그렇지.”목마름이 해갈이 안 됩니다. 결국은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반석이신 그리스도에게 가서 그 분으로부터 성령을 체험하고 그분으로부터 뜨거운 불이 우리를 지배하면 그때부터 목회가 재미가 있고, 성도 한 사람을 보면 속에서 의욕이 일어나고, 기도하는 시간이 즐겁고, 설교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사람 때문에 즐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다른 기쁨이 아니라 성령께서 내 인생에 적셔 주시는 그 목회의 감격, 신앙생활에 어떤 감격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사모님은 길을 가면서 계속 전봇대를 붙잡고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왜 전봇대를 붙잡고 기도를 했느냐?”고 물으니까 “전봇대 끝에 십자가가 달려 있지 않아요?”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교회당 건물만 보아도 가슴이 찌릿찌릿하고 목사님 뒷모습만 봐도 울렁울렁한 것은 성령 받으면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목회의 dry함이 언제 해결 됩니까? 수효가 늘어나고 누가 예우를 잘해 주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인 성령께서 내 마음을 채워 주시고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 날 만져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아들아. 수고했다. 내가 너의 수고를 알고 있다. 하늘에서 해같이 빛나리.” 하면 눈물이 쭉 흐르는 것입니다.
주일날 피곤해서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교회를 떠나기 전에 강단에 엎드리어 “하나님!”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아들아 수고했다.”라고 만져주십니다.
그렇게 한번 만져주시는 touching에 한 달은 그냥 가요. 무슨 재미로 목회를 하십니까? 우리 목회가 dry할 때 누가 어떻게 많이 모였다. 라고 방법론을 찾지 말고 성령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위로부터 오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위로부터 공급되어진 위로와 그 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입니다. 목마르면 반석을 찾아서 주님께 호소하고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처한 목회의 상황, 장로님들과의 갈등구조, 교회가 자꾸 어려움을 겪고 교회가 갈수록 숫자가 줄어듭니다. 그리고 분열을 합니다. 이러한 메마른 광야와 같은 상황에서 내가 만난 그리스도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생수의 공급이 우리 목회를 기름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오고 고통이 온다고 할지라고 강단이 꿋꿋하게 서 있으면 교회가 흔들림이 없습니다. 지금 광야가 십자가 중심,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성령님 중심, 우리들을 하나님 만나도록 유도해 주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사건은 하나님을 만나도록 우리들을 끌고 갑니다. 이런 표현이 있지요? “신구약 66권 어디를 찔러봐도 피가 나온다.”
창세기에도 예수님의 피가 있고, 레위기에도 예수님의 피가 있고, 요한계시록에도 예수님의 피가 있는 구속사적인 성경 해석의 틀이 있어요.
“성경 어디를 열어봐도 그리스도의 철철 흘러넘치는 십자가의 피가 있다.”
마찬가지입니다. 광야 어느 사건도 하나님을 만나도록 도와주지 않는 사건이 없습니다. 이것을 로마서 8:28에는 뭐라고 했어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뭘 말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고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고 성령님을 체험하도록 우리들을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방법론을 찾으면 하나님을 못 만나게 됩니다. 방법론은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 key가 되지만 그것이 원칙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광야를 지날 때,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이 이 사건을 왜 배열하셨을까를 생각하면서 이 사건 속에서 그리스도를 예수님을 성령님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로 focus를 바꾸어 버리면 쉽게 해결이 됩니다.
4) 아말렉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주 호전적이고 싸움을 잘하는 아말렉이 그들을 막았을 때 하나님은 영적인 전투를 위한 partner를 찾게 했어요. 아론과 훌을 좌우에 세우고 모세의 약점을 보완하게 한 다음에, 현장에는 여호수아를 보내서 싸우게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시는가 하면 “이 전쟁은 혼자 하는 싸움이 아니라 단체로 하는 싸움이다.” 하면서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목사가 계속 부흥하고 그러면 사람이 귀한 줄을 모릅니다. 사람들이 하도 왔다 갔다 하니까 “저것 저러다가 또 가겠지. 그리고 더 좋은 사람 보내 주겠지”하면서 사람 소중한지를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사람에게 괴로움을 당할 때, 옆에서 돕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동역자, 나에게 격려와 지지를 해줄 한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을 얻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할 때 기도의 조력자를 찾아라!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사람은 목자가 될 수 없고 지도자가 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내가 이놈들을 다 쓸어버리겠다고 하실 때 모세가 뭐라고 말을 합니까? “절대로 안 됩니다.”우리 한국식으로 말하면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됩니다.”라고 사람을 붙잡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근본 mind거든요. 자기 누이와 형이 배신을 할 때도 모세가 중보해 주었던 것입니다. “가족들이 되어서 나를 배신해?”라고 화를 낼 수 있었지만, 끝까지 그들을 중보했습니다. 사람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회의 성숙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드디어 교회의 틀을 얻기 시작합니다. 교회는 사람과 사람의 연대거든요.
5) 그 다음에 18장에 가면 모세의 leadership에 한계가 생겼어요. 그럴 때 모세의 장인 이드로를 통하여 지혜를 주시는데 “이 나라는 모세의 탁월한 지도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영력을 가진 사람, 능력을 가진 사람,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을 세워서” 모세가 하는 일을 동역하도록 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 나라의 틀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완전한 틀이지요. 교회 안에 이렇게 목자를 도와서 어느 part를 책임져 줄 수 있는 dream-team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아론과 훌의 역할을 감당해 주고 기도의 동역자가 되어 주고 한 part를 맡아서 “이 부분은 제가 책임져 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목사님께서는 전적으로 목회에 전념하십시오. 제가 다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dream-team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이거든요. 이 dream-team을 못 만들면 계속해서 leadership의 한계가 드러나거든요. 희한한 것은 목사가 해결 못하는 것을 교인들이 해결을 합니다. 목사 말은 안 듣는데 같은 평신도 말은 잘 듣거든요.
그래서 이 광야가 뭐냐 하면 어떤 사건을 통해서 기대가 무너지면서 십자가를 알게 하시고, 양식이 떨어지면서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게 집중하는 훈련을 시켜주시고, 목이 마르고 해갈이 안 될 때 반석이신 주님께 찾아가서 기도함으로 성령을 경험하게 하시고, 사람이 소중한 것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목자와 함께 dream-team이 이루어져서 같이 만들어 간다는 이 놀라운 하나님 나라 비밀을 광야가 그대로 우리 몸에 익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냥 이유 없는 고난 “하나님은 나만 미워해.” 하는 고난이 아니라, 너무도 정확하게 하나님이 의도하는 쪽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정확한 방법들의 고난을 배열하셨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인도하는 광야교회가 그랬다면 오늘 이 시대를 사는 21세기의 교회, 오늘의 우리 목회 현장, 교인들의 삶의 현장에도 결국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날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은 광야를 배열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광야를 정확하게 분별해야 해요.
지금 하나님이 뭘 주시려고 이 사건을 배열하셨는가? 한번 따라서 합시다.
“틀림없이 무슨 뜻이 있을 텐데...” 시작!
‘틀’에다가 발음을 쎄게 해서 이빨이 빠질 정도로 해야 뭐가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광야를 보지만 하나님은 광야 너머에 하나님의 의도를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나를 네 속에 집어넣기 위하여, 네가 다른 것을 가질까봐서, 본질이 아닌 다른 것을 가질까봐서, 네가 붙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게 하고 본질인 하나님을 붙잡게 하려고 너를 광야로 인도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13장- 24장까지가 뭐예요? “인도하여”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서 인도하신 것입니다. 홍해도 하나님의 의도였고, 광야도 하나님의 의도였고, 돈 떨어진 것도, 사람 원수 만난 것도, 목사님 혼자서 다 할 것 같았는데 목사님의 문제가 사방에서 터지는 것입니다.
“이럴 수가 있느냐? 옛날 목사님이 아니다. 변질되었다. 부흥하니까 목사님이 돈 많은 여자들만 좋아한다. 우리 목사님은 대학 나온 사람들만 좋아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문제가 터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 다 경험해 보셨지요? 그럴 때는 “목사가 다 하는 것 아니야. 누구 도와줄 사람 없습니까?” 하면 교인들이 다 가서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역자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오해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교회에 동역자가 구석구석 세워지면서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져가는 것입니다. 드디어 networking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교회는 절대로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 지체들이 연합하여 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 12장 보세요. 다 지체가 몸을 이루어간다고 그랬어요. 그러나 똑똑한 목사님들을 그것을 못해요. 시원치 않거든요. 누구에게 맡기지 못해요. 자기가 다 해야 하고 부목이 하는 꼴을 못 봐요. 그러면 하나님이 박살을 내 버리는 것입니다. 담임목사 하는 것마다 교인들이 시비를 걸게 합니다. 심지어 설교하면 설교하는 것마다 꼬투리를 잡고 “누가 고자질했습니까? 오늘 설교 왜 그렇게 하십니까?”하고 바로 전화가 옵니다. 설교 준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리저리 피하다 보면 설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하고 내려와야 합니다.
그렇게 leadership의 위기를 느끼면서 “아. 돕는 사람이 필요하구나.”하면서 부교역자를 인정하게 되고 장로님들을 인정하게 되고, “이제는 남선교회 회장, 여선교회 회장님들이 나 와서 이 일을 좀 해 주십시오.” 하면서 목사의 영역들을 양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동의하시면 ‘아멘’ 합시다.
“출애급기를 통하여 인생이 보이게 하시고, 목회가 보이게 하소서.”
< 출애급기 강의 (3) >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신분만 변화되었지 본질은 아직 안 바꾸어졌습니다. 여전히 생각이나 삶의 목표나 삶의 패턴, 문화생활이 다 애급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씨,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후사. 이런 새로운 신분, 새로운 삶으로 우리들 초대해 주셨는데 사람이 바꾸어진다는 것이 천지가 개벽하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어떤 문화생활을 30년, 40년 해버리면 새로운 문화권에 변화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선교사로 나가시는 분들을 보니까 선교사로 나가려면 30대 이전에 나가야 합니다. 40대 이후에 나가신 분들은 고생을 엄청 해요. 생각도 잘 안 바뀌고, 특별히 언어가 잘 안 되고 문화가 안 바꾸어집니다. 가서 매일 김치 생각하고, 된장찌개 생각하고, 이러면 안 되는 것이거든요. 향수병 걸려 가지고 아내들은 다 우울증에 걸려 있고, 그러나 일찍 20대, 30대에 가신 분들은 그래도 적응이 빠릅니다. 덜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400년이란 세월 동안에 애급에서 애급 사람으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 날 모세가 나타나서 ‘우르릉 쾅쾅’하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알지? 날 따라오면 돼.” 하면서 데리고 나왔는데, 몸뚱이는 데리고 나왔는데 전혀 생각이 안 바뀌는 것이에요. 40년 다 끝날 때까지도 하는 얘기가 뭐냐 하면 “그때가 좋았는데 ⋯, 바로에게서 우리가 끓는 가마에 고기가 좋았고 부추, 파, 마늘이 좋았고 ⋯” 이런 헷갈리는 얘기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을 100번, 200번, 매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잖아요?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떴고 만나, 메추라기, 생수 터지고 그 이집트 광야를 가보신 분들은 알아요. 물을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거기서 매일, 고린도전서 10장에 보니까, 저희들을 따르는 반석으로부터 매일 생수를 공급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매일 물이 200만 명 이상이 먹으려면 강이 흘러야 되잖아요? 그런 기적을 경험해도 사람이 안 바뀌는 것이에요. “사람이 변하는 것이 참 어렵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광야를 준비하셨고, 시내산을 준비하셨고, 성막을 준비하셨어요. 이 과정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교인들을 환경으로 자꾸 다루셔요. 목사님은 바로 시내산의 메시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상을 가르칠 뿐 아니라 광야에서 그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들을 어떻게 영적으로 인도할 것인가? 이걸 우리가 잘 배워야 되요. 모세의 경우를 보니까, 미리 가서 그 동네에서 40년을 살게 하셨어요. 목회할 때도 그의 우리 패턴이, 저는 평생에 건강이 약해서 늘 몸이 아팠어요. 그래서 치유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어요. “환자를 돌보고⋯, 또 정신적으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외롭고” 하는, 혼자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그런 내면세계의 아픔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학을 공부하고 계속 치유에 대한 관심을 가진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은 사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살아왔던 삶의 과정들이 내 mission하고 연결이 되어 있어요. ⌜위치크래프트(witchcraft)⌟라는 좋은 책이 있어요. 그 책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와요. 초등학교 5-6학년 때까지 제일 좋아했던 것이 무엇인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냥 밥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픈 일들이 있어요. 초등학교 때까지 그 12세 이전에 경험했던 자기 삶의 열정과 관심과, 또 자기가 소일했던 시간들을 조사해보면 우리 인생의 mission과 연결이 된다는 거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지 사명이 무언가를 찾아낼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광야가 사역하고 연결이 되더라고요. 또 제가 이 말씀 너무 궁금했어요. 성경이 알고 싶고 진리가 뭔지 도대체 인생이 뭔지 역사가 뭔지 이런 것이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런데 속 시원하게 가르쳐주는 데가 없잖아요. 책을 봐도 그렇고..., 그러니까 그런 자기가 살아왔던 갈증, 배고팠던 시절 내가 경험했던 아픔들이 결국은 내가 앞으로 해야 할 mission, 사명과 연결이 되어서 쫘악 펼쳐지는 거예요. 하나님은 모세를 미리 그 광야에 보내서 광야 생활 경험하게 함으로 40년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을 도와줬다 말이요 이렇게. 이런 게 하나님이 아주아주 정확한 인도하심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목회의 어려움들 개인을 통하여 push를 받고 고통을 당하고 이런 것들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어요. 그게 다 mission과 연결이 되어 있어요. 그것이 내 운이 나빠서 하나님이 날 미워해서 이런 것이 아니에요. “이 사건이 내게 의미를 줄까? 하나님의 구속사역에서 틀림없이 무슨 뜻이 있을 텐데⋯.” 자꾸 메시지에 대하여 물어보아야 합니다. 물어보면 해답이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 왜 마라에 쓴 물을 경험하게 했습니까?” 물어 봤더니 그게 구속사의 한 비밀을 얘기한다는 말입니다. 왜 돈이 떨어지게 하고 어려움을 당하게 하십니까? 저의 동기 가운데 부산에서 보건소 소장을 하다가 늦게 부르심을 받아가지고 약사 출신인데 신학교에 왔어요. 신대원(神大院) 다니면서 돈이 많으니까 부자였어요. 그 때 돈으로 8,000만 원이라면 어마어마한 큰돈인데, 8,000만원을 들여서 2층 넓은 평수 임대해 가지고 개업예배가 아니고, 그것 뭐라 그래요? 오픈 예배, 첫 예배를 드리는데 얼마나 치장을... 샹들리에(chandelier) 쫘악 달아놓고, 교회인데, 그 때 베스타가 처음 나왔을 때 베스타 턱~ 빼가지고 이름 쭉 써가지고 다니고 금방 교회 부흥할 줄 알았어요. 교회 부흥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돈 다 떨어질 때까지 하나님이 부흥 안 시켜 주시더라고요. 전부 돈으로 하더라고요. 교인이 헌금해야 할 이유가 없어요. 목사님이 돈 많으니까. 목회했던 자리가 송파였는데, 사모님은 매일 영동 돌아다니면서 (그 때 아직 강남이 번성하지 않을 때), 돌아다니면서 그 때 돈으로 1,500만 원짜리 자개농 보러 다니고, “내가 약사한테 시집왔지, 내가 목사한테 시집왔나?” 그러면서 ⋯, 돈 다 떨어질 때까지. 하나님께서 목회에 어려움을 주시더라고요. 그 때 그걸 제가 옆에서 보면서 “돈이 하나님이 아니다,” 목회하면서 자기 자신 있는 것 있잖아요? 그걸 다 하나님이 접수하시는 거예요. 돈 접수, 사람 접수, 의지하는 것 접수하면서 “내가 아니며 하나님입니다.” “바로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살아왔던 방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고백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paradigm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계시는 거지요. 모세는 80년 동안 훈련 마치고 왔고, 우리는 하나님이 불렀는지, 내가 불렀는지 일찍 왔기 때문에 목회하면서 훈련을 받는 거예요. 좀 어렵지요? 훈련 받고 왔으면 쉬운데 그러나 어찌되었든 우리가 경험한 아픔들 뜻대로 안 되었던 것들이 전부가 무위가 아니고 헛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들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사실을 광야 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이해할 수 있어요.
자. 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가르쳐주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가르쳐 주는데 구원은 우리가 천당 가는, 구원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에요. 그러나 구원 받은 이후에 이제는 내가 하나님의 필요를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필요는 뭐냐? 하나님의 나라에요. 나라가 망가졌거든요. 하나님이 왕으로서 통치하셔야 되는데 대접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셔야 되는데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이 왕권을 사탄에게 넘겨줘 그 때부터 이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사탄의 나라가 되어 버린 거예요. 음부의 권세가 세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6. 구원, 하나님의 나라 6:5-8
1) 백성 - 나는 누구인가? (소속, 신분) 5
⋅ 씨(seed)와 소속 - 신분이 바뀐 사람
⋅ 장자를 잃은 자와 장자권자(후사)
2) 주권 - 누구를 섬기느냐? (예배) 6-7
⋅ 누가 나의 구원자냐?
⋅ 나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느냐?
⋅ 누가 나를 끌고 가느냐?
3) 영토 -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문화, 가치관) 8
⋅ 애급을 사느냐? 가나안을 사느냐?
⋅ 나의 기업은 무엇이냐? (공급, 위로, 상급, 기업)
⋅ 나의 영은 누구와 교통하는가? - 영의 생각을 좇음
그래서 6장 5절부터 8절을 보면 구원이 바로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줘요. “(5) 이제 애급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급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7)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급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
1) 백성 - 나는 누구인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해요. 무엇 무엇입니까? 초등학교 3학년 사회생활에 나오는 얘기인데, 국가를 이루기 위한 세 가지 조건, 영토(領土), 백성(百姓), 주권(主權).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에요? 영토, 주권, 백성, 다수결로 정할까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해에 있었어요. 국민도 없고, 또 땅도 잃어버렸지만. 나라가 있었어요, 없었어요? 있었죠. 같은 땅, 같은 민족이지만 왕건(王建)이 다스리던 나라를 고려(高麗)라 하고, 이성계(李成桂)가 다스리던 나라는 조선(朝鮮)이라고 그럽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뭐에요? 주권입니다. 주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어요? 하나님께 있습니다. 마귀가 주권을 장악해 가지고 있으면 지옥입니다. 사탄의 왕국이에요. 내 인생의 주권을 하나님이 쥐고 계시면 나는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 거고, 내가 쥐고 있으면 내 왕국 살고 있는 거고, 사탄에게 주권을 내주면 사탄의 왕국에 사는 거예요. 누가 주권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자. 세 가지 중 첫째, 5절에 보니까 백성, 나는 누구인가? 소속(所屬) 신분(身分)
5절 봅니다. “이제 애급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지금까지 이 백성은 애급 사람이 종으로 삼았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들을 다시 calling한 거예요. 씨와 소속, 전에는 애급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에요. 애급 사람들은 장자를 잃었어요. 출애급 사건 때에 장자를 죽었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장자권의 복을 갖고 출발합니다. “이스라엘은 나의 장자(長子)라” 그랬지요? 예수님을 믿게 되면 구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장자권(長子權)을 가져요. 장남들 한번 손들어 보세요. 예. 고맙습니다. 옛날 우리나라 문화와 이스라엘 문화가 비슷한데, 왜 장남들이 유산을 많이 받아요? 예, 부모님 모셔야 되고, 또요, 부모님 일찍 돌아가시면 가족들 다 돌봐야 되지요. 이스라엘이 장자라는 말은 무슨 말이겠어요?
< 장자의 특권과 책임 >
“내가 이스라엘을 장자로 삼는다.” 뭘 말하겠어요. 유산을 많이 받는다는 개념만이 아니에요. 권리가 크지만 뭐가 커요? 책임이에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나라가 전 세계를 책임져야 되요. “세계가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내가 너희를 제사장 나라로 삼아서 세계를 네게 속하게 하겠다.” 출애급기 19:6에 나오는 말씀인데 세계를 하나님께로 되돌리기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장자로 세워서 그들이 제사장 사명을 감당함으로 세계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본으로 장자권의 복을 받아요. 이유가 뭐냐 하면 우리가 복을 먼저 받아서 지금 안 돌아온 저 세계 만민들, 내 곁에 있는 불신자들을, 그들을 주께로 돌이키게 하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먼저 나에게 복을 준다는 거죠. 돈도 더 많이 주시고, 특권도 더 주시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도 받게 하셔서 이것 가지고 저들을 구원하라고. 이걸 가지고 빨리 사회로 보내서 선교하고 구제하고 하면서, 저 사람들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들이는 게 장자권의 특징입니다.
2) 둘째로 누구를 섬기느냐? 예배의 대상이죠. 6-7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급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급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나는 너희 하나님의 되고 싶다. 너희를 내 백성 삼는 것은 너희 하나님 되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내가 구원자인 걸 너희가 알고 너희가 예배를 드리고 섬겨야 할 여호와 하나님인 줄 알게 하기 위해서 내가 너희를 구원했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 나의 구원자냐? 나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느냐, 누가 나를 끌고 가느냐? 이것은 주권자가 누구냐를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 되기 위해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3) 셋째는 영토(領土)입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으로 삼게 하고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영토!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단지 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문화권을 말하는 거예요. 문화, 가치관 애급을 사느냐 가나안을 사느냐? 나의 기업은 무엇이냐? 나를 위로하고 나의 공급이 되고 나의 상급이 되고 나의 기업이 되는 게 무엇이냐?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기쁨을 얻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살 때 하나님이 직접 먹이셨어요. 만나를 주셨어요.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니까 그 땅에 소산을 먹게 해요. 우리가 은혜에 단계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도우심을 받고 하나님이 일일이 도와주셔요. 그러나 성숙하게 되면 우리가 사역하고 일하는 현장에서 우리가 기쁨을 누립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 믿고 성경공부하고 교회 생활하는 게 이것 잊고 따로 자기 문화를 가진 건 그건 이중문화로 안 되는 거예요. 이중적입니다. 그것이 광야 백성이거든요. 몸뚱어리는 나왔는데 옛날을 그리워하는 거예요. 그때가 좋았는데, 그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세 가지가 필요한데 순서적으로 보면 제일 먼저가 뭐에요? 주권입니다. 예배의 대상이 누구냐? 누구를 섬기며, 누구를 따르느냐? 누가 너희의 예배 대상이냐?
① 주권의 문제가 첫째로 결정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② 둘째로 주권의 문제가 결정되면, 백성이 바꿔져야 합니다. 점점 우리의 가치관, 사고나, 우리의 문화 우리의 생각들 백성의 수준이 바꿔지기 시작해요.
③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 땅이에요. 영토입니다. 즐기고 또 relax하고 이런 것들 굉장히 중요합니다. 나의 영은 누구와 교통하는가? 나는 무얼 좇아 사는가? 이것도 문화생활(文化生活)이죠, 생각이 아주 중요해요. 그래서 구원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불행하게 살았던 사람,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 살았던 사람들이 죽은 다음 내세에 가서 위로를 받고 보상을 받는다는 그런 차원이 아니고, 바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하나님이 다시 예배를 받으시고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고, 그리고 그 문화적 삶의 영역들이 다 하나님의 냄새를 풍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공급하신 것들로 즐기며 사는 그런 삶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구원의 목적입니다.
7. 제사장 나라로의 변화, 성장
1-12 은혜 : 피동적
⋅ 바로의 종, 노예 ⇒ 하나님의 장자
13-18 결단 : 자기부인, 능동적
⋅ 바로를 따름(종, 타율) ⇒ 모세를 따름(백성, 자율)
⋅ 자기 기대치 ⇒ 인도하심을 따름, 예배자가 됨
19-24 시내산 : 의도적 결단
⋅ 사상, 생각, 가치관의 변화
25-40 성막 : 습관화, 체질화
⋅ 하나님의 스피릿으로 삶
⋅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대행자로 나아감
1) 자. 제사장 나라, 하나님이 제사장 나라로 그들을 부르셨는데,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1장-11장, 12장까지도 보면 은혜입니다. 피동적이에요.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것, 심지어 유월절 양 마저도 우리가 결정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지정해 놓은 거예요. 양을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만약 하나님이 “코끼리를 잡아라.” 하셨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코끼리를 잡아야 되죠, “돼지를 잡아라.” 했으면 돼지를 잡아야 되죠,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거예요. 피동적입니다. 바로의 종 된 상태에서 노예 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장자가 되는 은혜의 단계라고 합니다. 은혜. 율법의 행위 공로로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개념은 우리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셨다는 개념이죠.
2) 13-18장은 이제 내가 action을 취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calling에 대해서 내가 응답을 하는 겁니다. 결단을 하는 거죠. 내 식, 내 방법, 내 스타일 내가 살아왔던 방식을 내가 버리겠습니다. 자기 부인하겠습니다. 전에는 피동적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능동적으로 대처를 합니다. 바로를 따랐던 때는 종으로 타율적으로 남에 의해서 끌려갔죠. 그러나 모세를 따를 때부터는 하나님이 백성들을 타율에 의한 사람이 아닌 자율적인 사람으로 바꿨어요. 이런 개념입니다. 말을 안 들어요. 백성들이 그러면 한 삼 일만 물을 안 줘 봐요. 영 헷갈리는 소리를 해요. 그러면. 만나를 한 일주일 안 줘 봐요. 그러면 말 듣겠어요, 안 듣겠어요? 잘 듣지요. 200만 명 가운데 그렇게 했으면 몇 사람쯤 들어갔을까요? 그렇게 했으면, 아마 두 사람은 빠지고 199만 9998명은 다 들어갔을 거예요. 그 뭐 옛날에 우리 부모들이 어떻게 했어요. 말 안 들으면 “어엇” 그러면 다 해결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종밖에 안 되요. 노예입니다. 매가 무서워서 주먹이 무서워서 불이익이 무서워서 끌려오는 것은 종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 받은 이후에 그렇게 타율에 의하여 끌려 다니는 인생을 살기를 원하지 않으셔요. 본인이 선택하게 하는 거예요. 땅 다 주고 물 다 주고 필요한 것 다 주면서 그래도 네가 네 의지 속에서 나를 선택하겠느냐? 기회를 주는 거예요. 선택할 기회가 있는 사람은 자율적인 사람이에요. 그런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기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른다고 하는 것, “나는 저리 가고 싶은데요,” “아니야, 이리 따라와. 여기가 더 좋아.” “난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닌데요.” 이렇게 나와 하나님의 세계가 자꾸 부딪쳐요. 그럴 때에 내 기대치를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를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왕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 이걸 훈련하는 것이 광야입니다. 가끔 어떤 분들이 그렇게 표현을 해요. 또 우리가 교회에서 그러한 간증들을 할 때가 있지요. 대구에서 어떤 분이 목사님을 대적 했대요. 그랬더니 문둥병이 걸려 버렸대요. 얼마 전에 저희 지역에서 일어난 일인데, 교회 수 장로님이 주일날 중국으로 골프를 치러 갔다가 심장마비로 죽어버렸어요. 주일날 오후에, 큰 교회 대표 장로님인데, 주일날 테니스를 치러 갔다가 자동차가 뒤집혀 가지고 회개했대요. 하나님이 이런 방법을 가끔 쓰셔요. 아주 희귀하게. 그런 방법을 계속 쓰시면 사람들이 종이에요, 자유인에요? 종이 되어 버립니다.
한 번 물어볼게요. 교회에서 목사님 대적하면 문둥병이 막 와 버려요. 솔직하게 한번 말해보세요. 하나님이 바로 손을 보시면, 한 번만 손보면 내 목회가 편할 텐데. 손보시던가요, 안 보시던가요? 솔직하게 얘기해 봅시다. 손보시던가요, 안 보시던가요? 한 10년에 한 번 있을 희귀한 것을 간증하면 안 되요. 그러면 사람들이 뭐가 되요? 종이 되면, 구원의 개념이 완전히 희석되어 버려요.
주먹으로 다스리는 거요. 엄마 아빠 안 계시면 당장에 원상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어떤 집 아버지가 우리 집 애들은 텔레비전도 안 보고 공부 열심히 하고 내가 가면 다 공부하고 있다고요, 어느 날 친구하고 같이 술을 마시다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큰소리치지 말라고 하자, “아~ 우리 집 아이들은 안 그렇다고⋯” “그러면 내가 오늘 요령을 하나 가르쳐 줄 테니까 전화하지 말고 집에 바로 가라”고 했어요. 그날 집에 도착하여 초인종을 딱 눌렸어요. 그날 진짜로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것이에요. 가르쳐준 대로 예전에 LCD 나오기 전입니다. 뒤에 가서 불 안구(眼球)를 잡아봤대요. 뜨끈뜨끈해요. 애들이 공부를 잘하고 있는 거예요? 쇼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것이 주먹의 결과입니다. 아버지가 계시면서 “공부해!” 소리 지르면서 했던 공부는 아버지가 안 계시면 다 무너져 버립니다. 아버지가 계시거나 안 계시거나 스스로 좀 더디지만 스스로 선택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놔둬야 해요. 우리 한국의 부모들은 그걸 못해요. 그러니까 미국 가면 다 망가지는 거예요.
제가 워싱턴 가까이에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사는 동네가 있어요. 교회에 가서 인사를 하는데, “저 분은 무슨 국회의원 사모님, 저 분은 무슨 장관님 사모님, three-star 사모님...” 전부 한국의 기라성 같은 분들의 부인들이 거기에 다 와 있어요. 뭐하느냐? 하루 종일 그 짓하고 있는 거예요. 참~ 애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기회를 부모들이 안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혼하고 나면 마마보이가 되어가지고 선택을 못하는 거예요. 전화기 들고 “엄마. 냉장고를 대우 사야 되요? 삼성 사야 되요?” 그러고 있어요. 교회 와서도 목사님들이 주먹으로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심판한다고 협박하고, 10년에 한 번도 안 나오는 그런 간증 막 얘기하고...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으로 만드는 거예요. 하나님은 40년 동안 문제 해결을 그렇게 안 했어요. 죄를 지어도 그 다음날 어김없이 만나를 내리고, 모세를 대적하고, 돌로 때려죽이려고 그럴 때도 그 다음 날, 물 주시고, 애급에서 광야로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고 해서 하나님 백성 되는 것 아니에요. 사고의 구조가 바꾸어져야 됩니다. 타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선택해서 불이익을 당해도 나는 기쁨으로 헌신하겠다.” 이것이 진짜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광야에서 주먹으로 해결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스스로 일어나서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거예요. 목회가 잘 될 때 순종 잘하는 거야 쉽지요. 그러나 진짜 목회를 안 하고 싶을 때, 교인들이 말 잘 안 듣고 헷갈리고 들이받고, 모세는 아말렉을 한 번밖에 안 만났는데 나는 세 번이나 만나야 되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을, 나는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나는 주께서 부르신 calling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그 때 우리가 드리는 찬양, 눈물 흘리며 “그래도 하나님 하나님은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예배는 살아있는 예배에요. 우리 교인들 그렇게 만들어야 되요. 부자가 되어서도 변질되지 않고 부도가 나서 완전히 거지가 되어 손을 다 터는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 어떤 조건 때문에 따라오면 복을 많이 주고 안 따라오면 매를 때리는 이런 조건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중심 속에서 하나님을 나의 인생의 구주로 고백할 수 있는 그걸 만드느라고 몇 년 걸렸어요? 40년 걸렸어요. 40년. 주먹으로 해결했으면 40년까지 걸릴 것 어디 있어요? 몇 번만 손봐주면 깨끗하게 말 잘 듣는 사람 되지요. 기계처럼 그냥. 때로는 광야가 답답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거기 있습니다. 능동적으로 하나님 앞에 응답하기 위해서 이렇게 광야에서 하나님을 예배자로 또 하나님을 나를 인도하시는 분으로 나의 목자로 인정하도록 반복, 반복하시더니.
3) 19-24장은 시내산으로 데리고 갑니다. 의도적인 결단을 하게 하시죠. 선택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상 하나님의 가치관 하나님의 생각들 하나님의 principle을 보여주신 다음에 이걸 따르겠느냐고 선택하라는 거예요. 십계명(十誡命) 또 시민법(市民法), 하나님의 원하는 어떤 요구 조건을 죽∼ 설명하면서 우리의 사고 생각을 바꾸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4) 25-40장은 이것이 체질화하도록 습관화 시킵니다. 하나님의 spirit으로 살고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대행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매일 반복시키는 거예요.
자 그러면 출애급기를 크게 네 가지 구도로 한번 나누어 봅시다.
첫째 은혜(恩惠)에요, 은혜.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것이지요.
둘째 결단(決斷)이에요 결단, 뭘 결단하느냐 하면 자기 길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겠다는 결단을 해요. 세례(洗禮)가 중요합니다. 여기서는 은혜, 첫째 부분은 은혜, 둘째 부분은 자기를 내려놓겠다는 세례,
셋째가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교인들에게 말씀이 들어온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목사가 설교했는데 그 말씀을 그냥 100%로 순종하고 따라온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과정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사람이 쉽게 따라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넷째가 예배생활(禮拜生活)이에요. 하나님으로 완전히 적셔지는 것입니다.
자. 보세요. 사람을 이렇게 구도화 시킨다고 하면, 은혜라는 하는 것은 조금 들어오신 거예요, 조금. 하나님이 내 안으로 조금하시는 것이에요. 세례는 내가 더 많이 열어드리는 거예요. 좀 더 들어오십시오. 내가 좀 하나님이 들어오시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거절하겠습니다. 자기가 결단해 조금 더 들어오신 거예요. 말씀은 이것을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신 구체적으로, 체계적으로, 세심하게 더 나를 열어주는 거예요. 예배 생활은 뭐냐? 완전히 내가 적셔지는 거예요. 신약적 개념으로 말하면 이것을 성령 세례라고 말할 수 있어요.
자. 보세요. 토레이(R.A. Torrey) 신부님이 쓴 책 가운데 ⌜산골짜기에서 외치는 소리⌟라는 책이 있어요. 오래된 책이라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분이 성령론을 얘기하면서 성령의 외적 역사와 성령의 내적 역사를 얘기했어요. 자 성령님이 먼저 역사하실 때에 내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조금 들어오셔요. 그래서 ‘충만(充滿)’이라는 말은 두 가지인데 이것은 ‘플레레스’라는 단어를 쓰고 여기는 ‘플레로마’라는 단어를 써요. 둘 다 우리말로는 ‘충만’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자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했다 할 때, 성령 충만은 안에 있는 것들이 가득 채워진 겁니다. 주로 요한복음은 성령의 내적 역사를 얘기합니다.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너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실 것이고, 내가 너희들에게 했던 말을 기억나게 할 것이고, 성령이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너희를 책망하실 것이다.” 이런 것들은 다 성령이 우리 내면에 역사하는 거예요. 그러나 바울 서신에 특별히 교회론을 얘기할 때에 성령의 역사는 외적 역사가 많습니다. 충만하다는 ‘플레로마’ 사도행전의 역사도 역시 성령의 외적 역사입니다. 밖에서 이렇게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출애급기에서 40장까지, 우리가 처음에는 은혜로 시작해서 둘째 자기를 내려놓고, 계속 accept하는 거예요, 받아들이는 거예요. 자기부인(自己否認), 세례.
셋째로 말씀으로 우리를 체계화 시켜서 우리의 내면의 세계를 정리시켜 주시고,
마지막 예배 생활을 통해서 아예 적셔지도록 우리가 하나님의 사상, 하나님의 철학, 하나님의 원칙들을 가지고 나와서 말하면 하나님의 말인 거예요. 워낙 적셔졌기 때문에 출애급기 40장까지에 우리에게 요청하는 수준이 뭐냐 하면 바로 위에 그림으로 말하면 안으로도 꽉차버렸고 밖으로도 침례교회나 오순절 교회에서 오신 분들은 침례통이 있지요? 이렇게 성령 세례가 뭐냐 하면 밥티죠(baptivzw)이거든요. 사람이 통 속에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이렇게. 기름통이에요. 기름통. 성령통인데 성령침례, 성령세례라는 말은 뭐냐 하면 내가 풍덩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성령의 내적역사는 내 속에 성령이 꽉 찬 것이고 성령의 외적 역사로서의 성령 충만은 내가 성령 통속에 들어가 버리는 것이에요. 안팎으로 안에도 성령이 꽉 차 있고 밖에도 성령으로 적셔져 있고 이런 개념이 출애급기 40장까지의 이 개념은 안팎으로 내안에도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차고 내 밖으로 보이는 것도 사역을 할 때 은사를 행할 때 능력을 행할 때, 사람을 대할 때, 이런 외적으로 보이는 것들도 성령으로 묻어 있는 거예요. 그냥. 사상이 완전히 바뀐 거예요.
우리 대학 다닐 때에 김교신(金敎臣)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에 취했던 신학생이 있어요. 함석헌(咸錫憲), 이런 분들 그가 추종하면 나중에 그 사상으로 완전히 적셔지죠. 또 운동권, 한 6개월만 운동권에 들어가서 독서하고 막 따라다니면 말이 투쟁적이에요. 그냥 공격적이잖아요? 때려 엎어야 한다고 하고 프로레타리아 이러면서 부르조아를 어쩌고... 벌써 언어가 달라지는 거예요, 언어가, 신학교 다닐 때에 후배가 하나가 있었어요. “형, 형” 그러면서 제 전도사할 때에 따라다니면서... 교사하고 졸업하고 얼마쯤에 만났는데 나를 보는 눈빛이 벌써 다른 거예요. 언어가 달라졌더라고요. “목사 냄새가 나는구먼.” 이러면서, “형. 설교하지 마...,” 언어가 바꿔진 거예요. 그래서 내가 너무 당황이 되어 “야! 너 어떻게 된 거야?” 그랬는데,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신학교 졸업하고 목사 안 되고 산업현장에 가서 노동운동했던 거예요. 가서. 한 10년 살고 나니까 완전히 개조가 되어 버린 거예요. 사람이 적셔지는 거예요, 이게. 사상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령 충만하다는 개념은 무슨 펄쩍펄쩍 뛰면서 방언하고, 무슨 환상 보고, 그런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하나의 현상이고, 안팎으로 우리가 하나님으로 적셔져야 된다니까요. 말을 하나, 생각을 하나, 행동을 하나 전부 하나님 냄새밖에 안 나, 적셔져 가지고..., 그게 예배 생활이라니까요.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나님처럼 행동하고, 목회를 해도 하나님처럼 하고, 사람을 대할 때도 자기 왕국 만들기 위해 자기 사람 챙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는 이런 마음을 갖게 되고, 하나님이 지금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은혜로 내게 찾아오시고, 내 안에 침투해 들어오시고, 나의 결단과 나의 선택을 통해서 자기 부인을 통해서 더 내 깊이에 들어오셔 가지고, 내가 가지고 있었던 불편한 부분들, 광야적인 요소들 깨뜨려야 할 부분들을 사건을 통해서 계속 깨뜨리고 하나님으로 채우고 걸러내고, 또 하나님으로 걸러내고 씻어내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이 광야(曠野)입니다. 그것을 교통정리 시키고 이론화시키고 체계화시킨 게 시내산 교육이에요. 말씀으로 딱 정리를 해 준다는 거예요. 그리고 습관화 체질화하도록 계속 반복 학습시키는 거예요. 같이 살고, 매일 바라보고, 생각하고, 기대하게 하고, 그래서 적셔지게 하는 거예요. 신약적 개념으로는 “성령 충만해가지고 나가라, 이제 너희는 내 증인이 되어야 한다. 나가라.” 보냈더니, 빌립 집사도 가서 내시(內侍)를 바꿔버리고, 지역을 장악해 버리지요. 또 바울이 성령 충만해 갔더니 역사의 지도가 바뀌어 버리잖아요? 이것이 구원의 process에요.
이게. 크게 네 가지로 본다면, 은혜(恩惠), 자기부인(自己否認), 광야기간(曠野期間) 있지요? 내가 안 되니 하나님이 환경을 통하여 해 주는 거예요. 광야, 말씀교육 예배생활. 우리가 봉사를 하고 섬긴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거예요? 여기 예배생활에 나와서 하나님 얼굴을 섬기는 거예요. 이게 제사장이에요. 몇 가지 테크닉 배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훈련하셔도 모세가 80년이에요. 신학교 하나 나왔다고 해서 우리가 쓰임 받는 그런 거 아닙니다. 테크닉 몇 가지 배운 거죠. 원칙만 배울 뿐이지, 아직 언어도 사상도 몸도 따라 가려면 한 참 멀었죠.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 제사장 나라로 세우신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보일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을 대행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 백성들을 돌볼 수 있도록 우리의 수준을 출애급기 전체의 과정을 통해서 성숙을 시킨 겁니다.
자, 네 부분으로 출애급기를 한 번 정리해보세요. 은혜, 자기부인. 자기부인은 세례와 광야를 통해서, 그 다음에 말씀 교육, 마지막이 예배생활. 딱 정리가.
그러니까 한 사람이 교회 안에 들어왔다 하면 맨 먼저 무얼 경험하게 해 줘야 해요? 은혜 받게 해야지요. 은혜. 본인은 ‘가만 있어라.’ 그래요. 모세 혼자 다 한 거예요. 불 내리는 것도 벼락 때리는 것도 모세가 하는 거고 그 때는 목사님이 다하는 거예요. 넌 은혜만 받으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 놔두고 계속 하나님 경험할 수 있도록... 이 사람이 드디어 하나님 은혜가 자기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적셔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조금 성장하면, 자! 어떻게 자기 길 내려놓겠습니까? 살아왔던 방식 내려놓고 세례 받으시겠습니까? 세례 교육을 잘해야 되요. 그래서 “100프로 순종하시겠습니까?” “예, 하겠습니다. 세례 받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광야를 도와줘야 되요. 그 사람이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는 곁에 가셔서 이 광야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섯 가지 조금 있다가 배웁니다. 그걸 가르쳐주는 거예요. 그럼 본인이 그걸 풀어가는 거예요. 그걸. 그러면서 성경공부를 시키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교회는 이런 것이고, 우리가 이 땅에서 돈을 벌게 하고 출세하게 하고 우리 자녀를 외국 유학시키고 박사학위 받게 하는 목적이 뭐다. 하나님의 사상 하나님의 원칙을 가르쳐 주는 거예요. 의식 교육을 시켜주는 거예요.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살도록 예배생활, 하나님과 교제하고 교통하고 하나님으로 적셔지는 예배생활, 계∼속...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계속 Benchmarking하는 거예요. 그대로 카피(copy)하는 거예요. 좋아하고 따라가면 그대로 닮잖아요? 하나님의 spirit으로 살도록 도와주는 거지요.
다시 한 번. 네 구도(構圖) - 은혜, 자기부인, 말씀공부, 예배생활.
그러니까. 목사님이 한 사람을 대할 때 “아! 이 사람은 은혜의 단계다, 이 사람은 자기부인의 단계다. 이 사람은 지금 말씀교육의 단계다. 이 사람은 예배 생활의 단계다. 제사장 훈련이죠.” 물론 이것이 단계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한꺼번에 네 가지가 다 나타날 수도 있죠. 어쨌거나 그 사람의 영적 수준은 한 단계에 이른 거예요.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디에 걸려있어요? 둘째를 못 넘어가고 끝납니다. 200만 명 가운데 199만 9998명은 여기에 걸렸어요. 자기부인을 못하는 거예요. 자기 생각만 얘기하는 거예요. “그 때가 좋았는데 왜 이렇게 안 해줍니까? 나 싫어요. 저런 거. 나 이런 거 좋아해요.” 또 교회 바꿉니다. 또 “이 목사님 내 편이구나.” 좋아했다가 아니거든요. 또 바꿔버려요. 거기 광야에요. 우리 시대가 지금 그런 시대에요. 그래서 이런 훈련을 받은 사람은 다 제사장으로 출발하는 거예요.
8. 구원의 프로세스(process)
1)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구원 역사
① 하나님의 준비 - 언약 성취를 위한 상황 준비 1-2
② 준비된 사람 - 하나님이 준비시키시는 목자의 영적자질 3-4
③ 두 진영의 대결 - 모세 vs 바로의 싸움 5-11
2) 하나님의 대행자를 통해 진행되는 구원 역사
④ 피의 효력 12 - 피의 언약
⑤ 훈련(1) 13-18 자기부인(옛 문화, 옛 생활) - 세례 언약
⑥ 훈련(2) 19-24 진리(원칙)훈련, 하나님 집중 - 말씀 언약
⑦ 구원의 목표 25-40 임재, 교통, 대행, 통치 - 스피릿
⋅ 인격, DNA의 전수 ⇒ 하나님의 대행자 (왕 같은 제사장)
하나님의 얼굴로 하나님의 대행자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구원 역사와 하나님의 대행자를 통해 진행되는 구원 역사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 1-2장. 하나님이 언약성취를 위한 환경을 준비해 주십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시대적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1-2장은 애급의 왕조를 바꾸어 주시고 바로에게 이스라엘을 핍박하게 하시고 하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십니다.
2) 3-4장에서는 한 사람을 선택하셔서 목자로써 훈련을 시켜줍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 80년 동안 그를 훈련시켜요.
3) 그리고 5-11장은 두 진영의 대결인데 모세와 바로가 싸워요. 교인들이 싸우는 것이 아니고, 모세와 바로가 싸워요. 선교지에 가보면 이런 건 아주 real하게 나타나요. 전도 대상자들은 아무것도 못해요. 그리고 그 지역의 제사장격인 마녀(魔女)가 있어요. 무당(巫堂)들이 있어요. 그 무당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짜가지고 백성들을 억압하고 있어요. 선교는 뭐냐 하면 먼저 무당부터 때려잡아야 되요. 누가 더 왕권이 큰지 가서 보여주는 거예요. 가서, 능력대결을 하는 거예요. 그 witchcraft를 딱 때려잡으면 나머지 백성은 다 따라오게 되어있어요. 이게 선교에요. 목회도 마찬가지거든요. 너무 문명화하여 있기 때문에 real하게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로는 1장부터 11장에 왕권 대결은 모세가 하는 거예요.
4) 12장부터는 이제 영적 지도자를 통해서 그들이 결정하는 거예요. “피 발라라.” 12장의 피 언약을 지키게 되고, 13장부터 18장은 자기부인. 옛 문화의 생활, 이걸 버리도록 세례 언약을 하게 해요. 피의 언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켜주신 언약이고, 세례 언약, 물의 언약은 누가 누구한테 지키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께 지키는 거예요.
19장부터 24장은 진리의 훈련, 하나님의 원칙을 가르쳐줘요. 말씀 언약이라고 그래요, 하나님 말씀 앞에 내가 어떻게 응답할 것이냐? 25장부터 40장 구원의 목표, 하나님 임재 가운데 교통하고 하나님을 대행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펼치는 거예요. spirit, 인격, DNA의 전수,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대행자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9. 사람을 통한 구속사
① (창 3:15)
② (출 19:5)
③ (벧전 2:5)
④ (벧전 2:9)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의 구체적인 핵심은 사람입니다. 사람.
1)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자와 여인의 후손, 여자는 전 인류를 말합니다. 하와와 아담에 속한 모든 사람을 여자, 여인의 후손은 예수님이 먼저 씨로 오셨어요. 그리고 모든 아담족들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여인의 후손과 같은 사역을 하는 거예요. 둘이 연합해가지고, 결국은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사람으로 (하여금) 찾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구원의 원칙을 설명해주는 거예요.
제가 러시아를 갔을 때에 러시아의 대표적인 지도자가 ‘사마르’라는 지역에 가서 연합집회를 하는데 열 개 교회 이상의 목사들이 모여가지고 저녁에는 전체적으로 집회를 하고 낮에는 목회자들을 불러가지고 그쪽에 한 30명되는 목사들을 다 불러 가지고 세미나를 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는데, 이 Boss되는 사람이 첫 질문을 던지는데 아주 현기증 나는 질문을 했어요.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로 끝장을 내셨으면 우리가 고생을 안 해도 되는데, 왜 그때 해결을 다 안 해 가지고 우리를 이렇게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고...”
이 사람은 침례교 목사님이신데 14대째 목사, 14대째, 그런데 자기 아버지가 KGB에 의해서 순교를 당했고 자기가 또 목사가 되었는데 자기 딸이 어렸을 때, 말(馬)로 자기 딸을 끌고 가는데 딸이 쓰러지니까, 그냥 맨 땅에 끌고 가니까 배가 다 찢어지는 거예요. 피투성이가 된 거예요. 그걸 보면서 이제 제안을 하는 거예요. “네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공산주의로 들어오면 이 딸 살려주겠다.”라고, 그때 그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절규합니다.
“하나님 살아계십니까? 이게 뭡니까? 십자가가 능력이 부족해서 여기까지 와야 됩니까? 이 공산주의 언제 무너집니까?” 절규를 합니다.
자기 안에 해결되지 못한 이 문제를 가지고 강사가 오니까 첫 질문을 하는 거예요. “십자가의 능력이 부족해서 사탄을 완전히 박멸하지 못했습니까? 이유가 뭡니까?” 묻는 겁니다. 이거 대답 못하면 세미나 끝. 아이고. 이거 얼마나 중요한 질문입니까. “십자가의 능력이 그때 부족해서 끝장 못 낸 거예요? 왜 초림 때 해결 못하고 재림 때까지 연장을 시키고 했어요? 이유가 뭐예요?” 이겁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원칙이요. 창세기 3:15에서 하나님이 선언을 하신 거예요. “너 여자 정복했다고 까불지 마. 이 여자와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통을 깰 거야.” 하나님이 선언하셨어요.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사람이에요, 헷갈리는 사람, 타락한 사람, 비틀거리는 사람, 실패한 사람, 그를 회복시켜서 다시 머리통을 깨겠다는 거예요.
2) (출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나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여기서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이 뭘 말하느냐는 거예요.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이 세계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데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게 아니라, 이 나라를 세워서 이 나라에 먼저 복을 주시고 이 나라를 키워서 이스라엘 나라가 세계를 주께로 돌이키는 일에 쓰임 받도록 한다는 거예요. 목사님들이 목회하실 때에 혼자 다 하시려고 하지 마시고 사람 몇을 뽑아가지고 그들을 잘 키워서 그들로 하여금 목회를 돕도록 해야 되요. 이게 요즘 나오는 cell 목회의 원리입니다. 혼자 다 하시면 안 돼요. 그러면 나라가 안 이루어져요. 그래서 아무리 교회가 작아도 절대 혼자 하려고 마시고 하나님의 목회 원칙을 우리가 따라가야 되요. 그들로 하여금 사람을 세워서 그들이 섬길 수 있도록 또 그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delivery해서 그가 섬길 수 있도록, 제가 우리 목성연(牧聖硏)을 이끌어가는, 이게 principle입니다.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저는 여러분을 도와드리고 여러분이 현장에 가서 delivery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거예요. 자료를 드리고, 격려해 드리고, 또 못하겠다고 하면 가르쳐 드리고, 얼마든지 도와드리는 거예요. 이게 성경적인 하나님의 목회방법이에요. 사람을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절대 목사님들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마시고 사람을 세우세요.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잔나가 자식이 열여섯 명이었대요. 그 16명 가운데 4명이나 탁월한 지도자가 나왔잖아요? 우리 찬송가에 요한 웨슬레(John Wesley) 말고 또 누구? 찰스 웨슬레(Charles Wesley) 찬송이 많아요. 그 분이 같은 형제거든요. 수잔나가 아주 탁월한 리더였어요. 큰애를 잘 키워놓으면 큰애가 둘째 애 키우고, 첫째 둘째가 셋째 넷째를 키우고, 이런 식으로⋯. 그래서 요한 웨슬레가 그 어머니에게서 배워 가지고 밴드목회(Band Ministry)를 했어요. 이게 셀(Cell)의 효시(嚆矢)가 됩니다. 요한 웨슬레의 목회철학 가운데, band가 class가 되고, society가 되는 거예요. 이게 소그룹 원리입니다. 그래서 몇몇 사람을 키워서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care하게 하고 다시 전달될 수 있도록 delivery하는 거죠.
3) (벧전 2:5)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우리를 거룩한 제사장으로 불러주신 거예요. 우리를 통해서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를 통로 삼으신다는 거지요. 우리가 성전이라는 거예요. 산돌이신 예수님이 성전인데, 우리도 신령한 집 성전이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서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4)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족속, 하나님을 대행하는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가 된 백성. 이유가 뭐냐 하면 먼저 우리가 경험을 해서 어둠에서 불러내어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으니 이게 뭐라고 하냐 하면 은혜라 해요 은혜.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우리로 경험하게 하고 그의 은혜가 결국 나를 계속 성숙시켜서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채워져서 예배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spirit이 하나님의 사상과 인격이 내게 전달되어서 이렇게 훈련 받은 사람들이 이 분,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 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하면 너무 쉽잖아요. 그렇게 안하고 어두운 가운데 있던 우리들을 불러내서 우리를 통해서 그 분의 아름다운 덕 , 그 분의 사랑 자비, 그 분을 전달하도록 계획하셨다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주요 관심사는 사람입니다, 사람. 목사님의 주요 관심사도 자리가 아니고 돈이 아니고 보상이 아니라 뭐가 되어야 해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사람.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키우는 목회에 7할 8할을 두어야 해요.
< 출애급기 강의 (4) >
또 한 번 복습할까요? 1-2장, 3-12장, 13-24장, 25-40장, 조금 더 자세하게 합니다.
1-2장 하나님이 환경을 준비하심, 3-4장 하나님이 일꾼을 준비하심,
5-11장 두 진영의 대결: 바로와 모세의 싸움, 12장 피의 언약.
13장 신앙의 orientation. 14장 세례.
15-18장 광야. 19-24장 시내산. 25-40장 성막, 예배생활.
본 문 연 구
1. 1장-2장 보고 듣고 알고
때가 찬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절망의 환경(環境)을 예비하심
⋅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급 왕이 통치케 함
⋅ 애급 사람들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심
⋅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로 노역함
⋅ 사내아이를 낳으면 모두 나일강에 던짐
⋅ 인간의 무능함을 깨닫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됨
⋅ 하나님의 때가 찼을 때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게 됨
때가 찬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절망의 환경을 예비하심. 깨닫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이 환경을 통하여 말씀하심. 성도의 삶의 환경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1) 요셉이 알지 못하는 애급 왕이 통치케 함. 함족이 애급을 다스리다가 셈족이 들어와서 얼마 동안 다스렸어요. 요셉이 셈족이기 때문에 노예출신이지만 쉽게 총리로 기용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셈족이 쫓겨나고 함족이 일어났어요. 그러니까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통치했다는 것은 바 로 셈족의 역사가 무너지고 다시 함족이 다스렸다는 것이지요. 그 사람들은 요셉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기분이 나쁜 거예요. 그 왕조 자체를, 그래서 셈족인 유대인들 이스라엘 사람들을 싫어한 겁니다.
2) 애급사람들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심. 이스라엘인에 대한 부담을 갖게 하고 미워하게 하고,
3)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로 노역함. - 살기가 좋으면 하나님 찾겠어요? 살기가 힘드니까 노예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거지요. 미국에 가면 백인교회가 있고 흑인교회가 있는데 상상을 해보세요. 백인교회가 뜨겁겠어요, 흑인교회가 뜨겁겠어요? 흑인교회가 훨씬 뜨겁습니다. 펄쩍펄쩍 뛰어요. 다섯 시간씩 예배드리고 해요. 왜 그럴까요? 그들이 살아왔던 환경이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반 실성한 사람 같아요, 흑인교회 예배드리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뛰어도 그냥 뛰는 것이 아니에요. 얼마나 흑인영가(黑人靈歌)가 전부가 내세 지향적이잖아요? “가고 싶다. 이 땅에 살고 싶지 않다.” 환경이 어려우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들의 신앙이 돈독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달라스에 가면 외곽지대에 포러스하우스(Potter's House)라는 교회가 있어요. 교인이 한 4-5만 명이 될 거예요. 흑인교회인데 목사님에게 세계에서 제일 고급승용차 여덟 대가 있어요. 롤스로이스가 두 대, 난 차 이름을 잘 모르니까 그것밖에 모르니까, 벤츠 및 그냥 싼 차가 아니고, 수제차(手製車) 여덟 대가 있어요. 꼭 그 분을 만나 뵙고 싶어서 갔는데 만나기는커녕 교회 구경도 안 시켜줘요. 시간 딱 정해가지고 안내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아주 대단한 교회에요. 물어봤어요. “도대체 목사님이 왜 그렇게 고급 승용차 여덟 대를 사느냐?” 과시효과라는 거예요. 흑인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것은 풋볼선수들이에요. 풋볼 선수들 어마어마하잖아요? 풋볼선수들. 둘째로 흑인들이 동경하는 사람들이 목사님이에요 목사님. 왜 그러냐? 흑인 목사님들 가운데 세상적으로 이렇게 아주 화려하게도 해야 된대요. 안 그러면 그 다음 신앙이 없는 아이들이 누구를 좋아하는가 하면, 마약 밀매자들, 조폭들, 그러니까 흑인들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안 된다는 거예요. 정말 잘 살고 싶으면 풋볼 선수가 되든지 ⋯, 그 교회에 미국의 유명한 풋볼 선수가 열두 명인가 된대요. 그 사람들은 보통 한 번 헌금하면 우리로 말하면 몇 억 원씩 그냥, “목사님 차 바꾸시죠.” 롤스로이스, 12억짜리 딱 갖다 주고 이렇게. “와! 그런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그 흑인 아이들에게 우상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자기를 부러워하면서 애들이 마약으로 가지 않고 목사를 흠모한다는 거지요. 상당히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이 되요. 희망이 없으니까 흑인들은. 물론 이제 대통령까지 되었으니까 희망은 더 많아졌겠지만 ⋯, 그래도 밑바닥에 가면, 흑인들은 아주 어려움을 당합니다. 어찌되었건 하나님께서 환경적으로 어렵게 하셔서 그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게 하고,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바로 서게 하고 이런 작업들을 역사 속에서 많이 하셨어요. 하나님이 환경적으로 손을 보시니까 우리가 본질을 찾아가는 거예요.
4)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노역을 했고, 사내아이가 나면 모두 나일강에 던졌다.”
참. 내가 고등학교 때에 이 말씀을 읽으면서요. 진짜 미련 곰퉁이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사탄의 지혜는 너무 한계가 있어요. “여러분. 인구를 줄이려면 남자를 죽여야 되요, 여자를 죽여야 되요? 남자를 죽여야 인구가 줄어들 것 같아요?” 아이구, 몰라도 한참 모르시네, 여자를 죽여야 되요. 여자를.... 한 번 물어볼까요? 남자가 100명에 여자가 1명으로 일 년에 몇 명 낳을 수 있어요? 좀 문제가 있어도, 남자 한 명에 여자 백 명 있어요. 일 년에 몇 명 낳을 것 같아요? 인구를 줄이려면 여자를 죽여야 하는데 남자를 죽였으니... 그러니 미련한 거지, 이게... 사탄의 지혜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아무리 큰 시험이 와도 여러분 정신 똑바로 차리면 그런 빈틈이 보여요. 야! 진짜 하나님 멋있다. 여자를 죽여야 한다니까. 그런데 눈을 멀게 해가지고 남자를 죽이는 거예요, 남자. 남자는 하나만 살리면 되요.
5) 인간의 무능함을 깨닫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됨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구나, 도저히 안 되겠구나. 그리고 이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그들이 잊어버리고 살았던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는 거예요. 부르짖는 것이 중요합니다. 1장과 2장에서 보면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그랬어요. 교회 안에서 통성 기도가 참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자기에 울분과 한과 아픔들을 쫙 품어낼 수 있도록 교회 구조를 그렇게 만들어야 해요. 요즘 문명사회에서 교회가 너무 gentle해요. 그저 조용하게 그러면 변화가 없어요. 자기 한계를 뛰어 넘어서 떼굴떼굴 구르면서...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고 그럴 때에 역사가 나타나요. 부르짖는 기도가 중요합니다.
6) 하나님의 때가 찼을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때라는 말은 약속의 때에요. 하나님의 약속의 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때를 정하셨는데 때가 되었을 때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는 거예요.
1장: 구원의 준비
1) 그들이 당한 상황을 보심 - 보고
2) 위기 앞에 설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심 - 듣고
3) 조상들과의 언약을 기억하심 - 알고
4) 최악의 경우에서도 번성케 하심 (언약의 성취)
① 그들이 당한 상황을 하나님이 보셨어요. - 보고,
② 위기 앞에 설 때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심 - 듣고
③ 조상과 맺은 언약을 하나님이 기억하셨어요. - 알고, 알고.
보고 듣고 알고, 우리 상황을 주님이 보고 계시고 우리가 부르짖는 소리를 주님이 듣고 계시고. 제가 오산리 기도원에 가서 여의도 교회 남선교회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어요. 강사한테 설교하도록 시간은 30분밖에 안 주면서 자기들이 통성 기도하는데 나는 그렇게 기도하는 것 처음 봤어요, 와 기도를 하는데 나와 봐요, 이름 붙였어요. 레슬링 기도라고. 딱 팔을 어긋맞겨 봐요. 이렇게 그렇죠. 팔 깍지 끼어요. 그리고는 둘이서 하는데 기도하다가 눈 뜨고 봤다니까요. 막 “주여! 아버지여!” 약 500명이 하는데요. 와! 볼 만해요 볼 만해..., 하늘에서 불이 안 내려오면 땅에서 불이 일어날 것 같아... 얼마나 뜨거운지 강사가 은혜를 끼치러 간 게 아니라 그걸 눈 뜨고 구경하는 거예요. 와! 불이 번쩍번쩍하는 것 같아요. 그냥. 그렇게 한 30분 땀을 흘리고 기도하고 나니까 사람들이 완전히 바꿔지는 거예요. 완전히..., 여러분 항복이 뭐예요? 항복이..., 정신적인 항복이 아니에요. 왜 부르짖는 기도를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같아요? 어른은요, 급한 일 생겨도 안 뛰어요. 소리도 안 질러요. 자기 체면이 있기 때문에..., 애들은 ‘엄마!’ 소리 지르잖아요? 그게 애예요. 애, 애. 하나님이 우리가 어른이 되길 원해요, 아이가 되길 원해요? 아이가 되길 원해요. 어려운 일 생긴대도 하나님 알아서 하십시오. 이게 믿음이 좋은 게 아니에요. 정말 떼굴떼굴 구르면서 “하나님. 하나님, 아니면 안 됩니다.” 사실은 우리가 떼굴떼굴 구른다고 하나님 들어주시는 것은 아니거든요. 몰라서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gentle해 진 거예요. 우리가 너무 점잖아 우리가 너무 체면을 차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 너무 어른이 되어버린 거예요. 까짓것 내가 해결할 거예요 하나님 건드리지 마세요,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그런 만남을 하나님이 원하는데 사람들은 머리가 커지면 급하지도 않고 통성기도도 하지 않고 작정기도 금식기도 그런 거 이제 안 합니다. 이제..., 예전에는 휴일 오고 명절이 되고 그러면 기도원이 꽉꽉 찼어요. 발 디딜 틈도 없어요. 제가 오산리 기도원을 아주 많이 갔는데, 사람 많을 때에 굴 하나 차지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에요. 그래가지고 문 걸어 잠그고 예배도 안 갔어요. 굴 뺏길까 봐서..., 한 번 뺏기면 못 차지하잖아요. 이건 숨은 비밀인데 절대 어디 공개하지 마세요.
둘째는 신발을 두 개 갖고 가요. 이건 말하면 안 되는데..., 이젠 그 이상 얘기 안 할게요. 그렇게 굴 하나 차지하려고 투쟁을 합니다. 투쟁을 그냥, 안 되면 나중에 공동묘지 올라가야 되니까, 저 뒤쪽에... 지금 가면요 명절에 가도 사람 없어요. 사람들 먹고 살 만한데 무슨 금식을 합니까? 안 해요 지금. 기도원도 손님 다 떨어져가지고 운영이 안 되어 파는 기도원도 많지 않아요? 교인들 문제 생겨도 교회 안 옵니다. 옛날에는 그저 울고 부르짖고 밤새도록 기도하고 작정하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기도하는데 이제는 그렇게 안 해요. 왜 먹고 살 만하거든요.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내가 의지할 것이 있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어린아이처럼 떼굴떼굴 구르면서 하나님 살려주세요. 이런 것을 너무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래 네가 이제 제자리를 찾아가는구나, 주권은 나한테 있지 네가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네가 왜 어른 노릇하냐? 그래서 통성 기도가 중요한 거예요. 교인들 통성기도 시키면 잘 안하지요. 그래도 그것을 깨뜨리세요. 그래서 떼굴떼굴 구를 수 있도록, 우리 교회 수준을 내가 레슬링 기도를 시키려고 하는데 아직은 좀 덜 된 것 같아요. 레슬링기도 둘씩 묶어가지고 30분간 등에서 땀 안 나오는 사람 같으면 등짝을 때리는 거예요. 땀 좀 흘리라고 ⋯, 그렇게 하면 교회가 불바다가 되요. 기도의 권능이 나타나거든요.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그래서요, 부르짖는 소리, 속으로 기도소리를 들었다가 아니라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했어요. 부르짖는 기도. 아주 중요한 거예요.
④ 최악의 경우에서도 하나님은 번성케 하셨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이거든요. 너희가 중다한 민족이 되어서 나온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은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계속 진행이 되고 있는 거예요. 하여튼 많이 낳았어요. 야곱 자손 기본이 12명이잖아요. 12명. 요즘은 목사님들도 애를 안 낳아요. 많이 낳아야 되요. 전도가 안 되니까. 자연 증가라도 해야 되요.
적용질문
1) 고난 중에라도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성취는 무엇입니까?
(1: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생육 번성 충만이죠.
(1: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급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 내 씨가 나라를 이루고 민족을 이룰 것이다. 반드시 번성해야 되요. 이것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면 이걸 뭐라고 하냐 하면 전도요 선교입니다.
2) 사탄은 어떤 일을 했습니까? 22절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강에 던지고”
사탄은 사람 죽이는 일을 해요. 번성을 못하게 막습니다. 씨를 말리려고 그래요. 교회가 살아있을 때에는 막 번성해요.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교회가 영적으로 능력을 상실해 버리면 그때부터 자꾸 사람을 죽여요, 있는 교인들도 쫓아내잖아요?
3) 구속사를 도왔던 산파들의 신앙과 보상은 어떠합니까?
(1: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급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 어디를 가든지 돕는 사람들이 있어요.
(1: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 애급 왕들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았으나..., ‘바로’는 대명사죠? ‘파라오’라는 이름은 “태양신의 아들이다.”라는 그런 개념이지 ‘바로’가 이름은 아닙니다.
(애급 왕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두 산파의 이름을 기록한 성경의 강조점은 무엇인지 유의해 보자.) 1:15에 십브라와 부아라는 두 산파의 이름이 나오죠. 하나님은 일국의 제왕이 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작은 거라도 기여하는 사람이 훨씬 더 귀하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2장: 80년 전부터 (사람)을 준비시킴
1) 가정교육(5세) - 신앙교육, , 사상교육, 신앙의 생활화, 습관화
(2: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 신앙의 배경, 기도의 배경들 - 요게벳(모세), 한나(사무엘), 엘리사벳(세례 요한), 유니게와 로이스(디모데)
2) 왕자수업 - (행 7:22). 공동체의식
3) 광야훈련 - 신발을 벗은 사람, 하나님께만 집중함
반드시 세 가지 교육을 시켜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교육을 시켜요.
하나는 가정교육, 하나는 공교육. 사회를 알고 문화를 알아야 되기 때문에 공교육을 시켜요. 그리고 셋째가 광야훈련입니다.
1) 가정교육 - 신앙교육, 정체성, 사상교육, 신앙의 생활화와 습관화, 이것은 6세 이전에 우리 정신세계의 윤곽이 거의 결정이 되는데, 가정의 영향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심리학자들은 5세까지 거의 결정이 된다고 합니다. 5세, 6세.
2장 1절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가슴이 절절해 지더라고요. 지금 상황이 어떤 때입니까? 남자들이 중노동에 시달리고 너무 어려워하는데, 장가를 가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거기서 레위 사람이 또 다른 레위 여자를 찾아서 장가들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얘깁니까? 어저껜가 신문을 보니까 캄보디아 정부가 당분간 한국에 있는 남자들과 캄보디아 여자들이 결혼하는 것을 금한다는 법을 발표해버렸어요. 한국의 남자들이 짝꿍이 없으니까 외제를 선호합니다. 지금. 필리핀 여자들, 베트남 여자들, 캄보디아 여자들 ⋯ 이렇게 해서, 그것을 이제 브로커들이 중간 역할해서 한국으로 일 년에 몇 만 명씩 결혼을 시킨대요. 왜 외국 여자한테 말도 안 통하는데 결혼을 합니까? 장가를 못 가니까요. 농촌에 있는 청년들은 장가를 못 갑니다. 그러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는 고난의 상황은 생존 자체가 위기를 당하는 때인데 아무런 여자가 있으면 결혼하면 되지요. 그렇게 안하고 그 어려운 때라도 레위 여자를 찾아서 결혼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우리 부모들 의식 속에 이런 신앙의 의식이 있어야 되요. 절대로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신앙 좋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사명이 같은 사람을 찾아 결혼 시키는 이런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이게. 하나님은 결혼을 전도의 수단으로 삼길 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전도하기 위해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사랑은 사상이 같아야 되고, 영이 같아야 되고 한 정신으로 가야 되는데, 신앙적으로 보면 역사 속에서 큰일을 했던 사람들의 배경은 전부 신앙부모가 계셨던 거예요. 모세 뒤에는 믿음의 사람 요게벳이 있었어요. 목숨을 내걸고 궁궐까지 들어와서 신앙교육을 시켰지요. 히브리서 11:24-25에 보면 모세가 어렸을 때부터 이미 자기 고난 받는 동족에 대한 관심과,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난 가운데 동참하는 것을 본인이 선택했다는 내용이 나오잖아요? 누가 그걸 가르쳤을 것 같아요? 엄마가, 엄마가..., 말귀를 알아듣기 전부터 가슴의 젖을 먹이면서 “너는 유태인이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너는 약속의 백성이다. 돈 보다도 소중한 것은 사명이다.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 mission을 따라 사는 것이다.” 이걸 계속 주입시키는 것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에 탁 박혀 있는 거예요.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심어주고 바른 사상, 바른 가치관, 바른 철학을 심어주는 거예요. 그게 제일 안 된 사람들이 장로님들의 자녀, 목사님들의 자녀에요. 사무엘은 한나의 기도가 있었어요. 또 세례 요한에게는 엘리사벳의 기도가 있었고, 디모데에게는 유니게와 로이스의 신앙의 배경이 있었어요. 거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배후에서 기도하고, 신앙으로 양육하고, 영적으로 계속 신앙으로 지원할 때 훌륭한 자녀가 나오는 거지요. 가정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짝꿍 만들 때부터 잘해야 되는 거예요.
2) 둘째는 공교육(公敎育)입니다. 그 시대를 알고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공교육, 어찌되었던 일반화 된 교육을 받게 해줘야 되요. 그렇게 해서 세상을 알고, 시대를 알고, 문화를 알고..., 알아야 우리가 목회를 하지요. 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배경 자체가 세상이니까. 이런 공교육을 통해서 모세는 왕자 수업을 받았고 최고의 leadership 훈련을 받았어요. 사도행전 7:22에 보니까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그랬어요. 좋은 교육을 받았어요. 수사학, 변론, 변증학, 다 공부한 거예요. 목사님들도 돈이 좀 들어도 재교육을 좀 받으세요. 재교육(再敎育)! 혼자 막 독불장군처럼 하지 마시고 돈 비싸도 기도하고 공부하셔야 되요. 요즘 지식 구조가 3년이 안 넘어요. 3년이 뭐에요? 3개월마다 막 바뀌기 때문에 시대를 못 따라가면 우리가 헷갈리는 소리해요. 제가 우리나라에 몇 분 존경하는 분이 계시는데 다른 분들은 다 케케묵은 이야기하는데 그 분들은 신선한 이야기를 해요. 차이가 뭔가 하면 공부하는 분들이에요. 나이가 들어도 공부하면 생각하는 게 다르고, 시대의 필요를 알고, 사람들의 need를 알고, 그들의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목사가 최고 첨단 leader 아닙니까? 옆의 분에게 “공부합시다.” 좀 해 봐요.
예수님 만나면 눈이 벗겨져요. 눈이 싸악 비늘이 벗겨지면서 세상이 보이고 사람의 영혼이 보이고 시대가 보이고… 전병욱 목사님 책을 읽었더니 이런 얘기가 나와요. 자기는 지금 중학생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100개를 전화기에 받아 가지고 계속 듣는대요. 그 알아듣겠던가요? “야! 이 사람 참 탁월한 사람이다.” 시대를 알기 위해서 자기는 지금 나이가 들어가는데 청소년을 이해하지 못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중학생들이 듣고 다니는 음악을 계속 듣고 다닌다는 거예요. 적어도 목사라면 그런 정도의 앞서가는 의식이 있어야 되요. 하나님이 왜 모세를 궁궐에 집어넣었을까? 그 때 당시에 최고의 학교 아닙니까? Royal Academy, 거기 가서 그 시대에 최고의 첨단 과학, 행정, 경영, 교육, 수학, 이런 것들을 다 공부하게 한 거예요. 특별히 ‘나라’라고 하는 것을 그 때 배웠어요. 나라! 왕자 수업이니까. 나라를 배웠을 것 아니에요?
3) 이 교육, 가정교육과 왕자 수업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은 광야 훈련을 또 시켰어요. 하나님과의 관계, 영성훈련이죠. 이게. 신발을 벗은 사람, 신발이란 개념은 자기주권(自己主權)을 말합니다. 종이나 노예들은 신발이 없었어요. 탕자가 돌아왔을 때에 신발을 신기고 가락지를 끼웠어요. “가락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겨라.” 가락지도 역시 주권을 말합니다. “주권이 하나님께 있고 내게 있지 않다.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하겠다.”
이 신발 벗기기 위해서 80년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셨어요. 40년, 또 추가의 시간을 하나님이 요구하십니다. 그렇게 주권이란 개념은 중요합니다. 자기야망, 자기왕국 세우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도록, 광야 훈련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훈련이에요. 우리가 목회하면서 계속 자기 것 챙겨 버리면 광야가 계속 길어집니다. 내 왕국 챙기는 것 아니에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부름을 받았지요.
3장: 호렙산의 영적 경험 (召命)
⋅ 초월적, 초이성적, 초자연적 세계의 인정
⋅ 신비주의와 성령체험의 다른 점 - 누가 을 가지고 있느냐?
⋅ 현상이냐, 본질이냐?
- 종점이 아닌 출발점
- 누구에게로의 calling이냐? 무엇에로의 calling이냐?
1) 하나님 살아계셨습니까?
2) 우리를 버리지 않았습니까?
3) 그렇다면 왜 400년을 기다려야 했습니까?
자. 80년의 훈련이 다 끝났어요. 하나님이 이제 너 해야 되겠다고 calling하는 부분이죠.
⋅ 초월적, 초이성적, 초자연적 세계의 인정.
이런 영적체험이 참 중요합니다. 이성으로 살고 논리로 살고 과학과 경험으로 사는 이런 시대에,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 내 이성과 사고로 용납되지 않는 또 다른 초월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새로운 존재가 되는 거예요. 이게.
저는 고1 때 하나님 만나고 그 때 방언을 경험했어요. 석 달 동안 말을 못하고 학교에 가서 대답을 못하고, “널럴럴럴” 학교 끝나고 나서 “널럴럴럴” 석 달을 그랬어요. 석 달을... 그 때에 생각이 바꿔지는 거예요. 사람이 마음대로 안 되는 새로운 세계가 있구나, 영적 세계가 있다는 것이 깨달아지면서 인생의 방향이 바꿔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인생의 고난이 쭈욱 그때부터 30년 동안에 죽을 뚱 살 뚱 하면서 살았는데, 그때 경험했던 초월적인 세계, 이성이 아니고 논리가 아닌, 내가 찾아가는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인생 속에 개입한 이것을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in-breaking이라고 그래요. in-breaking. 큰 바위 덩어리를 깨뜨리는데 해머로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구멍을 뚫어 가지고 여기다 다이너마이트를 넣어 폭발하면 바위가 다 깨져버리는 거예요. 얼음송곳 하나 가지고 큰 얼음을 깨듯이 이것을 in-breaking이라고 해요. 하나님이 내 인생 속에 뚫고 들어오신 거예요. 작은 사건이지만. 방언을 하는 작은 것, 아주 작은 현상이었지만 제 생애가 그때 완전히 바뀌는 거예요. 지금 모세에게 있어서 떨기나무 불꽃의 현상은 그런 것이었어요. 하나님이 이 인생 속에 개입한 거예요. 가까이 가서 봤더니 불길을 타오르데 나무는 타지 않는 거예요. 이것이 도대체 무얼까?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이 초월적인 사건, 신비적인 사건 앞에 모세가 무릎을 꿇지요. 현상, 현상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신비주의(神秘主義)와 성령체험(聖靈體驗)의 다른 점이 무얼까?
신비주의는 자기가 경험했다는 것을 강조해요. 나는 뭘 경험했다, 뭘 봤다, 자기가 주권을 갖고 있을 때 신비주의입니다. 그러나 성령체험은 하나님 체험이에요. 신비주의는 계속 신비현상만 강조를 해요. “나는 눈만 감으면 음성이 들린다. 나는 기도하면 계시를 받는다.” 그러나 성령체험은 이 신비사건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 구속사가 진행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본질적인 것이냐 현상적인 것이냐에서, 이것이 종점이 되어버리면, 봤다는 것으로 끝나버리면 그것은 현상이에요. 그러나 이 본 사건, 이 경험한 사건을 통해서 그 다음 후속 사건을 이어지는 것은 이것은 본질이에요. 모세가 이 사건을 경험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 계속해서 이 부르심 앞에 응답하지요. 바울은 눈 감았다가 눈을 떴어요. 그러면서 그가 무얼 깨달았느냐? 사도행전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눈 감았다가 떴어요.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너도 이렇게 눈감은 사람들, 너도 그 동안 눈 감아서 사람들 많이 죽였지, 너 크리스천들 얼마나 박해했니? 너 사람들 눈 뜨게 하고,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을 위해서 눈 뜨게 하는 작업을 네가 해라.” 그 현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본질을 본 거예요. 이건 현상이 아니고 본질입니다.
- 누구에게로의 calling이냐, 무엇에로의 calling이냐? 현상은 현상으로 끝나버리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것이 누구누구에게로, 어떠어떠한 사건으로 우리를 불러 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저는 방언이라고 하는 간단한 현상을 경험했지만, 그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날 부르고 계심을 알게 되었고, 또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냥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성령을 받아야 산다는 것을 그때 깨달은 거예요. 신앙생활은 이성으로도 하지만 이런 영의 인도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 때 깨달은 거예요. 그러니까 다음 단계로 계속 성숙해 가는 거예요. calling은 목적이 있다는 거지요.
자. 그러면 이 현상, 떨기나무에 불꽃이 붙었는데, 나무는 타지지 않고 불꽃만 타오르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세 분씩 떨기나무 환상이 무얼 의미하는지 의논해 보세요.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다. 나무는 안 타고 불이 계속 타오른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되느냐?
< ‘떨기나무의 불꽃’ 이해를 위한 설명. 예화 >
저희 교회에 독립군 딸이 있었어요. 이 딸은 아버지 얼굴을 한 번도 못 봤어요. 북간도(北間島)로 상해(上海)로 막 도망 다니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소식이 끊겨버린 거예요. 그래서 이제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고 제사를 지낸 거예요. 이 딸이 스무 살 될 때까지, 딸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안 계신 줄 알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한 거예요. 20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가 나타난 거예요. 자! 우리 사모님들이 한 번 이야기해 보세요. 20년 만에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랐던 남편이 나타났어요. 어떤 반응을 보이겠어요? 말씀해 보세요. 첫째 “놀란다,” “이 원수가 나타났다.” 목사님이 말씀하시네요. 어떻게 여자 심정을 그렇게 잘 아십니까?
처음에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보더래요. 지금 딸이 하는 얘기에요. 똥그랗게 뜨고 보고, 가만히 있다가 남편이 확인이 되니 소리를 질러대면서 “나가! 야, 이 웬쑤야!” 그러더래요. 있는 물건을 집어 던지고 난리가 난 거에요. 어머니가 완전히 뒤집어지더래요. 남편이 석고대죄를 한 거예요. 무릎을 꿇고 삼 일 동안을 석고대죄를 하더랍니다. 여자도 독하고 남자도 독하지요? 그러니까 독립투사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독립투사의 아내도 아무나 합니까?
“네가 사람이냐?” 그러더랍니다. “못 오더라도 네가 살아있으면 소식이라도 줘야 할 거 아니냐? 네가 살아있었다면 사람을 통하여 통지를 해서 이런 서러움을 안 당하게 해야지, 네가 사람이냐?” 그러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딸은 이제 스무 살인데 엄마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엄마가..., 돌아왔으면 감사한 거지, 딸은 이해를 못 했대요. 20년 만에 첫 대면했던 느낌을 한 번 살려보세요....,
모세 앞에 하나님이 80년 만에 탁 나타났어요. 그것도 40년 전에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자기가 애급의 궁궐의 보좌를 버리고 쫓겨났는데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거예요. 쫓겨나게 한 거예요. 그러다가 침묵하시다가 40년 만에 나타나셨어요. 모세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겠어요? 지금 그 여자의 마음과 똑 같은 거예요. 사십 년 만에 모습을 보였는데 어떤 분노가 있어요?
1) 하나님 살아계셨습니까? 이럴 수 있는 겁니까?
2) 하나님이 살아계셨다면 나를 이렇게 놔둔 것, 이거 이상한 것 아닙니까? 내가 40년 동안에 광야에서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이 말을 더 확대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400년 만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어요. 400년 만에... 좋은 상황도 아니고 남자들은 중노동에 시달려야 하고,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집어 던져야 하고, 그런 기가 막힌 상황인데도 하나님은 외면하신 거예요. 살아계셨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한 바로에게 벼락을 때려서 죽이든지 무슨 조치를 하셔야지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하나님 살아계신 것 맞습니까? 나는 살아 있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를 버렸습니까?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니면 요셉을 모르는 왕조가 나타난 날부터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데 하나님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이 미리 그림을 보여준 거예요. “아니다, 나는 살아 있었고 너희와 함께 있었다.” “뭘로 증명합니까?” “봐라. 떨기나무, 잡초 같고 잡목 같은 아무 쓸모없는 떨기나무같이 너희가 애급 땅에서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취급받았는데, 고난 받는 민족이었는데, 너희를 태웠더냐? 고난의 불꽃이 너희를 재로 만들었더냐? 아니잖느냐? 고난의 불꽃이 타오르면 타오를수록 나무는 더 견고하게 서 있었지 않았느냐? 나는 너희를 버리지 않았다.”
지금 그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질문에 답변을 그림으로 주신 거예요. 모세가 가지고 있던 질문의 답을 그림으로 준 거지요. 우리 목회하면서 이런 질문 많이 하잖아요? “하나님. 이래도 되시는 겁니까? 나를 목사로 불렀으면 기본은 해결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저런 사람 하나님이 손 보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 더 잘 되요. 그 사람이. 하나님 이래도 되는 겁니까?”
3) 그렇다면 왜 400년을 기다려야 했습니까? 왜 좀 진작 나타나시지 내가 나이 80이 되기까지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시지 않으셨다가 이제야 나타난 이유가 뭡니까? 그 때에 하나님이 “네 발에 신을 벗어라.” “네 발에 신을 벗어라.” 모세의 발에 신발 벗기기 위하여, 40년을 또 하나님이 기다리신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종 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우리가 주권 가지고 우리의 왕국 만들고, 그런 거 원하지 않아요. 내 맘에 맞는 사람, 내가 원하는 교회... 교인들도 요즘은요 자기왕국이에요. 목사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해요. 참 이런 게 앞으로 심각합니다. 개척을 한 사람은 개척한 공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은퇴할 때까지는 그래도 특별한 실수가 없는 한 보장을 받아요. 그런데 이제 2대 목사님을 청빙할 때부터는 문제가 심각해지는 거예요. 장로님들이 이제 청빙을 하는데 당신들이 심사를 하니까 고용주와 고용인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선택하니까. 입맛 안 맞으면 “당신 나가시오.” 우리 통합측 같은 경우는 3년마다 청빙을 해야 되요. 뭐라고 하지요? 연임청원(連任請願)이라고 합니까? 임시목사 연임청원. 그걸 가지고 장난을 치는 거예요. 3년 후에 청원 안하면 자연으로 더 이상 목회를 못하는 거예요. 하나님. 이런 게 너무 싫은 거예요.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목회를 해야지... 모세는 그럴 만한 기질이 너무 탁월한 분이에요. 이 사람이 너무 똑똑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계속 독기(毒氣)가 빠질 때까지 기다리신 거예요. 이제 나이도 들고, 이제 인생에 파란만장한 세월도 보내고, 더더군다나 처가살이를 했잖아요.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면 어떻게 되요? 독기가 쏙 빠져버려요 아주. 야곱은 처가살이했어도 챙길 것 다 챙겼잖아요? 독기를 더 빼려고 고생이 또 있는 거예요. 모세는 나올 때 하나도 안 가지고 나왔어요. 왜요? 갖고 나올 것이 없어요. 그 만큼 죽어 살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세는 더 이상 광야가 필요 없는 거예요. 야곱은 그러고 나서도 광야가 끔찍하게 남아있었어요. 라헬 죽고, 디나 추행당하고, 또 요셉 팔려가고, 나중엔 베냐민까지도, 나중엔 어떤 비명을 지릅니까? 내 머리가 백발이 되어 음부에 내려간다고 그랬잖아요?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그 인간이 그래도 독기를 안 빼요. 또 딴 주머니 차고 있고⋯ 이렇게 하면 또 얍복강에서 그렇게 기도해 놓고 그 다음, 사람 짠 것 보세요. 제일 미운 아내와 종들은 저 앞에 세워놓고 제일 예쁜 여자는 뒤로 세우고, “야. 앞에 침략하면 뒤로 도망가.”하며 ⋯. 참 잔머리 굴리는 데는 천재라, 아주 그냥. 그러니 하나님이 아직 손을 더 봐야지요. 손을 보는데 주로 중요한 거만 보잖아요? 제일 중요하게 붙잡고 있는 거, 하나님이 다 때려버려요. 너무 아프잖아요?
모세는 나올 때 지팡이 하나 들고 나온 거예요. “인생이 다 그런 거지요, 뭐.” 그러면서 나온 거예요. 하나님이 이렇게 자기 주권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에 100% 순종할 수 있는 사람, 신발 벗은 사람 만들기 위해서 80세까지 기다리신 거예요. 기가 막힌 얘기 아닙니까?
목회는 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에요. 부흥하고, 뭐 어마어마한 일을 하고..,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code에 맞는 일을 해야 되요.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나를 떠나가라.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 “주여, 주여” 한다고, 말로만 주라고 고백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그 자가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사람 같다.” 여러분. 주의 음성 듣습니까? 하나님이 이 목회를 통해서 뭘 원하시는지, 들으십니까? 아침마다 주인 앞에 가서 오늘 내가 하루를 내가 어떻게 보내야 합니까? 어떤 일을 해야 됩니까? 사건이 생겼을 때 하나님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누군가 들이받는 사람 있을 때, “하나님. 이 사람에게 내가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까?”
주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에요. 주권을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 자기 마음대로 해 버리는 거예요. 선교비도 자기 마음대로.., 선교비는 내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까? 그러면 선교사 지원할 때 물어야 합니까, 내 마음대로 해야 되요? 물어야죠. 내 마음대로 해 버리면 공금 횡령입니다. 내 마음에 안 들어도 하나님이 보내라면 보내야 되요.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보내지 말라고 하시면 안 보내야 해요. 하나님 것은 누구한테 허락 받고 해야 되요?
우리 목회자들이 그런 부문에 굉장히 조심해야 되요. 교회 돈 쓰면서 자기 것처럼 써 버리는 것 너무 많아요. 그러고 나면 반드시 그 신발을 벗기려고 하나님이 작업을 하셔요. “네가 주인이냐?” 그래서 광야가 길어요. 그런데 지도자가 되고 난 다음에 겪는 고난은 아주 끔찍합니다. 아주. 파장이 아주 커요 아주. 모세 같은 사람이 딴 주머니 차버리면 나라가 휘청휘청해 버리는 거예요. 한 국가가 좌우되잖아요? 지금. 그래서 하나님이 차~근 차근하게 확실하게 신발 벗도록 기다리는 거예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목회가 아니라 하나님 목회입니다. 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목회를 하는데 헷갈리는 사람이 있어요. 30%만 도움이 되고 70%는 나를 힘들게 해요. 이 사람 써야 되요, 말아야 되요? 자기 양심으로 말하지 말고 그냥 상식으로 얘기합시다. 써야 되요, 말아야 되요? 30%는 도와주고 70%는 나를 힘들게 해요. 써야 되요, 말아야 되요? 묻는 거예요. 계속해서,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대답 없으면 안 해야 되요. 아니, 어른을 무시하고 내가 마음대로 해요? 이게 하나님 나라예요.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우리는 종이 되어야 한다. 이게 쉽지 않더라고요. 정말 쉽지 않아요.
목사님들이 여행사를 통해서 관광을 하잖아요? 우리 교회 여행사하시는 집사님들이 몇 분 계시는데 저한테 한 번 애로를 이야기하더라고요.
“guide할 때 힘든 분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누구누구예요?”
“선생님들, 그리고 목사님들, 장로님들이랍니다.”
왜 힘들 것 같아요? 말 안 들어요. 다 선생님이잖아요. 교회생활 오래 하게 되면 이런 것들이 몸에 익어버려요. 남 가르치려고 하고, 지시하려고 하고, 명령하려고 하고, 리모콘으로 조종하려고 하고, 몸에 배어 있어요. 그래서 잘 듣지 않고, 주권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따라가려고 하지 않고, 자기 소리만 계속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토록 오랫동안 모세를 다루셔야 했던 이유, 신발 때문에 신발!
우리 신발 벗는 목회합시다. 교회가 크건 작건 목회가 오래 되었든 짧든 간에 관계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인도해야 되요. 그러나 이렇게 출발했지만, 출발할 때는 우리가 종 의식 가지고 출발했지만 어느 틈엔가 내가 주인 자리에 서서 내가 칼자루 쥐고, 이런 게 목회에 굉장한 문제가 됩니다.
‘네 조상의 하나님’- 백성
신앙의 역사성, 스피릿의 대물림
언약의 흐름, 언약백성의 계보
(출 3:6)
(출 3:15-16)
(출 2:24-25)
(삿 2:7-10)
(삿 2:11-17)
(출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이 ‘네 조상에게 나타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지금 모세가 쓰임을 받아야 되는데 모세를 부르실 때 어떤 일을 위해 부르고 계시는지 하나님이 그에게 일깨워주십니다. 지금. 네 조상의 하나님. 신약성경에도 이 표현이 많이 나오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신앙의 역사성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을 만나셨던 하나님은 동일하게 이삭에게도 만나셔야 됩니다. 그 하나님은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spirit의 대(代)물림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출 3:15-16)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급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역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이건 뭘 의미하냐 하면 우리나라의 이조백자, 고려청자의 기술이 전수가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안됐죠. 됐습니까? 안 됐죠. 너무 아까운 일이에요. 왜 안 되었을까요? 안 된 이유가 뭐에요? 제자를 안 키운 겁니다. 그 아까운 기술을 전수시키지 않고 죽었어요. 내가 만난 하나님을 내 아들에게 전수시키지 않으면 이렇게 이 하나님을 고백할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백되었던 하나님은 이삭에게도 동일하게 고백되어집니다. 그 하나님은 손자 야곱에게도 그대로 똑같이 전수되는 거예요. 이게 신앙의 역사성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한 하나님인데 아브라함에게도 동일하게 이삭에게도 동일하게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고백되어져야 하는데, 하나님은 이것을 나의 이름이라고 표현했어요, 나의 이름이다. 나는 네가 만난 하나님, 네가 경험했던 영적 유산을 네 자손에게 물려줘서 네 아들도 똑같이 고백하도록 하라. 이것이 신앙교육이라는 거예요. 신앙교육. 하나님은 내 이름이라고 말해요. 그게 내 이름 언약의 하나님 내 조상의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고, 내가 고백하는 방법으로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을 고백하는데 내 자식이, 또 내가 도와주고 있는 내 제자들이 똑 같이 그것이 전수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출 2:24-25)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역사 속에 한 번 약속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지키시기를 원하는데, 그 하나님이 나에게만이 아니라 내 아들代에 가서도 내 손자代에 가서도 그대로 고백되어지기를 원하시고, 나하고 계약 맺었던 것은 내 아들도 똑같이 동일한 선상에 있고 내 손자도 그런 계약관계에서 만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죠. 이게 도대체 왜 이렇게 중요한 거냐?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소개할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런 하나님을 만났어요. 그렇게 사역을 했는데 여호수아 대에 가서 문제가 생겼어요.
(삿 2:7-10)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수아가 110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게 심각한 겁니다. 뭘 안한 거예요? 신앙교육을 안 시킨 거예요. 전수하지 않은 거예요. 여러분, 여호수아가 얼마나 탁월한 분입니까? 제자훈련을 안한 거예요. 한 목사님이 긴 세월 동안 환경적인 어려움과 여러 가지 시련, 광야의 훈련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고 탁월하게 목회를 했어요. 그 어른이 가셨어요. 그 어른은 가셨지만 뭐가 남아있어야 되요? 그 spirit을 받은 제자가 남아있어야 되요. 그게 목회예요. 모세는 성공했어요. 하나님이 이런 분이신 줄 알고 그대로 누구에게 전수(傳授)해 주었어요? 누구에게 그대로? 여호수아에게 그대로 전수해 주었어요. 그대로. 여호수아는 너무 탁월한 분이에요. 그런데 이걸 안했어요. 자기하고 같은 세대에 사람들이 다 살아있을 때에는 백성들이 다 하나님을 믿었어요. 그러나 그 세대가 끝나고 다음 세대가 시작되었을 때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이후로,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로 근 400년 동안 사사시대가, 혼돈 속에서 사사시대가 진행된 거예요. 사사시대 특징이 뭔 줄 알아요? 한 사람이 일어났다가 사라져버리는 거예요. 이걸 delivery 해주지 못하고 한 번 쓰임 받고 그대로 끝나버리는 거예요. 또 다른 사람 누군가 또 해야 되고, 하나님이 무지무지하게 피곤해졌어요.
오늘 여러분 교회 안에 여러분의 spirit을 전수할 누군가가 있어요? 이것을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의도적으로 키워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유산을 물려주지 않는 것, 그건 죄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거든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너는 이 언약의 하나님을 믿고 사느냐?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은 기가 막힌 실패입니다. 아무리 당 세대에 큰일을 했어도 delivery 못하고 죽으면 하나님 앞에 문책 받아요. 어찌되었든, 내가 만났던 하나님, 나를, 나의 인생을 붙잡았던 하나님, 내 인생을 헌신케 했던 그 하나님을 내가 섬기고 예배할 뿐만 아니라, 누군가 한 사람 두 사람을 세워서 그들로 똑같이 하나님을 섬기게 해 줘야 되요. 목사가 그 mind를 가지고 교인들을 훈련시켜야 되요. 주님 잘 모십시다. 예배정신, 헌신의 spirit, 종의 의식들을 그대로 delivery해 줘야 되요. 그 분은 떠나갔지만 그 분의 사상과 철학을 받은 사람들이 똑 같이 하나님 섬기는 거예요.
창세기 50장까지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창조에 대한 기록은 두 장밖에 없어요. 그렇죠, 창조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창조를 자세히 써놓았으면 진화론자들이 까불지 않지요. 그렇게 간단하게 싹 요약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12장부터 50장까지, 그것도 좋은 이야기가 아니에요. 지저분한, 마누라 두 번씩 팔아먹고... 야곱 같은 경우는 그 잔머리 굴리는 거, 그렇게 자세히 안 써도 되잖아요? “야곱이 잔머리를 너무 많이 돌려서 고생을 많이 하다가 나중에 요셉 자식 덕분에 잘 되었다,” 그래도 되요. 야곱은. 그런데도 그걸 그냥... 그걸 많이 썼다고 내가 시비 거는 것은 아니고, 앞의 두 장에 쏟은 것에 비하면 너무하다는 거예요. 이쪽이 배열이 너무 그렇잖아요? 제가 주일학교 때부터 이 창세기를 하도 많이 들어가지고, 안 보고도 1장부터 50장까지 다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실은 두 장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그 두 장을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이 직접 하신 일에 대해서는 너무너무 인색하게 두 장밖에 할애를 안 하게 하고, 이 헷갈리는 인간들 잔머리 굴리고 부전자전으로 아버지가 아내 팔아먹으니까 아들놈도 똑같이 아내 팔아먹고 이런 얘기, 야곱이 머리 쓰면서 그냥 여자들끼리 싸워가지고 마누라가 둘 더 생겨가지고, 넷이나 다 거느리느라고 고생이나 하고... 합환채(合歡菜), 합환채가 요즘 뭔지 알아요? 요즘 비아그라에요. 비아그라, 이런 얘기를 성경에 써놓고 그냥... 신풍나무 벗겨놓고 새끼 낳을 때 어떻게 하고... 그런 말 안 썼으면 좋겠어요. 뺐으면 좋겠어요. 유다가 다말하고 어떻게 해서... 그런 얘기. 아니.. 하나님의 성경인데 두 장이 중요하지, 이런 얘기가 뭐 중요합니까?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냐 하면, “아니다, 두 장도 중요하지만 마흔여덟 장이 더 중요하다 하시는 거예요. 이 타락한 세상에서 그래도 delivery하고 있는 그 사람들의 정신이 중요하다.” 하시는 거예요. 내가 기다리는 것은 이렇게 헷갈리고 잔머리 굴리고 문제 있는 사람들이 돌아와서 하나님을 고백하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그 순간 나는 보람이 있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목회를 하는데 두 장이 많이 나타나면 우리는 어마어마하다고 그래요. 하나님이 불을 내리셨고 뭐 기적이 나타나가지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하면 우린 멋있다 그래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건 두 장만 써라 두 장만. 내가 한 것은 두 장만 쓰고 너희들끼리 헷갈리고 싸우고 장로들과 목사가 당회에서 막 싸우고 헷갈리고, 김 장로가 나갔고, 막 이상한 짓 하고 그런 걸 많이 써라. 그런 걸.” 그렇게 헷갈리었던 인간들이 돌아와서 “우리 목사님이 고백한 하나님이 내가 고백한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 이것이 인간 승리라는 거예요. 그걸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멋있는 목회하는 거 너무 기대하지 말고, 그런 헷갈리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도 내가 만난 하나님을 그들도 동일하게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이고,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목회 현장, 그런 선교지, 이게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거예요.
“내가 한 일은 두 장만 써도 괜찮다. 그러나 너희들이 하는 수고, 말귀도 못 알아듣고 10년, 20년 헷갈리며 방황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내 사상과 내 철학 내 spirit을 전달하기 위해 수고한 너희들에 대해 많~이 기록해라.” 이게 창세기 메시지에요.
성경에 한 번 봅시다. 3대, 4대가 간 경우가 얼마나 있어요? 성경에서, 창세기 말고 3대 4대가 간 사람들이 있어요? 한 번 얘기해 봐요. 모세, 여호수아로 끝나고... 또 얘기해 봐요, 다윗, 솔로몬, 르호보암 시대에 가서 깨졌어요. 나라가 박살났지요. 3-4대 못 가요. 또 훌륭한 사람 얘기해 봐요. 사무엘, 두 아들 타락했어요. 또 누구 있어요? 바울, 디모데, 디모데 제자가 누군지 모르지요. 저도 잘 몰라요. 있긴 있었을 거예요. 사도 요한, 폴리갑, 이레니우스, 거기는 내가 공부를 좀 했기 때문에 좀 알아요. 한 3-4대 가지요. 성경에 3-4대가 간 경우가 많지 않아요. 많지 않은 게 아니고, 누가 애써서 찾아보세요. 거의 없어요. 신앙전수가 쉽다? 어렵다? 너무 어렵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훈련이 얼마나 탁월한가를 우리가 알 수 있는 거예요. 그게 지금 2,000년 동안 이어져 온 거예요. 굉장한 겁니다. 이것은... 그것이 뭐 삐까뻔쩍하고 멋있는 사람이 나와 가지고... 그런 게 아니라, 야곱처럼 헷갈리는 사람, 이삭처럼 우유부단한 사람, 아브라함처럼 따라가기는 따라가는데 가는 건지 마는 건지... 그런 사람들이 창세기에 4대가 나와요. 4대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탁월한 것 아닙니까? 제자훈련은 4대가 가면 성공한다고 그래요. 4대.
디모데후서 2:2 말씀입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자. 바울이 디모데에게, 디모데가 충성된 사람들에게,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1대, 2대, 3대, 4대, 제자훈련은 4대가 가면 성공한다고 그랬어요. 의도적으로 우리가 사람을 선택해서 delivery하려고 하지 않으면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찌 되었건, 지금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은 “나는 언약의 하나님이다. 약속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네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희 하나님이다.”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표현하실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삿 2:11-1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급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으나, 그들이 그 사사도 청종치 아니하고 돌이켜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 열조가 행한 길을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치 아니하였더라.”
이게 여호수아 다음 세대들의 특징입니다. 교육하지 않고, 전달하지 않고, 훈련하지 않은 그 다음 세대에 나타난 특징이에요. 그냥 안 믿었더라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들였어요. 저주를 자청하는 행동을 한 거예요.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이게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야기라니까요. 교육하지 않고, 훈련시키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되어버려요. “예수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고, 자기가 목사 아들로 태어났으면 자기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 철들면 예수 잘 믿겠지.” 그게 아니에요. 영적인 세계는 투쟁이기 때문에 사탄이 가만 놔두지 않아요. 이렇게 망가지게 만들어버리니까요. 여러분들이 열심히 목회해서 교회가 천 명, 이천 명 모였다고 가정을 합시다. 훈련하지 않으면 떠난 다음에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의도적으로 훈련해야 되요 의도적으로. 내 spirit이 그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적용질문
1) 이스라엘이 고난 중에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으며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출 2:23-25)
2)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어떤 준비를 시켰습니까?
가정교육
왕자교육
광야훈련(영성훈련) - 인내, 침묵, 겸손, 섬김, 묵상, 집중
3) 떨기나무 체험을 통하여 모세는 무엇을 알게 되었습니까?
80년 동안 하나님이 침묵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스라엘의 고난 중에도 함께하신 하나님, 신발을 벗게 하는 광야 훈련.
1) 이스라엘이 고난 중에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으며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출 2:23-25) “여러 해 후에 애급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뭘 할 수 있었어요? 탄식하며 부르짖었다는 거죠.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다는 거죠. 기억하셨다. 기억하셨다. 하나님을 기억되게 해야 되요. “너희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사람들아.” 이사야서 62장에서 그랬죠. “내가 예루살렘에 성벽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주야에 부르짖게 하리니라.”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사람. 하여튼 힘들고 어려우면 어떡해요? 부르짖고 기도하면 되요. 그러면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돌아보셔요. 교회는 항상 기도실이 열려 있어야 되요. 비싸게 돈 주고 잘 꾸며 놓았는데 문 딱 걸어놓고 주일만 쓰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입니다. 저희 교회에는 24시간 문을 개방해 놓아요. 도둑질 여러 번 당했어요. 자물통으로 다 채웠어요. 임대 교회 때의 일이에요. 어느 날 기도하는데 주님이 제 마음을 계속 괴롭히는 거예요. 왜 문에 자물통을 채웠느냐? 도둑들이 많아 가지고요. 마이크도 잃어버리고, 힌지사이드(?)도 잃어버리고요 여러 번 잃어버렸습니다. 그 도둑맞은 금액이 얼마쯤 되겠냐? 하나님 갚아줄 줄 알고 계산해 보니 약 천만 원 되더라고요. 천만 원 쯤 됩니다. 속으로 한 몇 억 원 주시려고 하시나? “너는 한 영혼이 천만 원보다 귀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예.” “기도하고 싶을 때 교회 문을 잠가놓으면 그 성도가 어디 가서 하나님을 만나겠느냐? 실족할 뻔한 사람이 교회에 와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만나면 그것이 천만 원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 자물통 뜯어버렸어요. 다 뜯고... 도둑맞는 것 걱정하지 말자. 그것보다 영혼이 귀하다니까. 교회 가면, 밤에 가면 행복해야죠. 그저 교인들 부르짖고 기도하고 바글바글, 새벽 1시, 2시까지 제가 교회에서 일할 때가 있어요. 작업하고 책 쓰고 그럴 때는 집에 못 가요. 새벽 1시, 2시에 들려오는 부르짖는 소리 들리면 목사로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야. 살아있는 교회구나.” 감사해야죠. 얼마나 비싼 자료를 주고 만든 이 홀인데, 딱 주일날만 열어놓고 나머지는 다 잠가 놓고 말입니다. 최 목사님! 열어놓습니까? 아 목성연 회원은 역시 달라요. 그냥. 그래도 하나님이 좋데요. 그런데 그건 있더라고요. 홈레스들이 와서 자고 가니까, 기도하는 사람이 여자들이 주로 많이 오는데 두려워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문은 안 잠그고 앞에다 경비를 한 사람 세우니까 그 다음부터 싹 없어지더라고요. 사실은 상징적 효과죠, 사실은, 하여튼 교회를 기도하는 분위기로 만들어 주어야 해요. 언제든지 가슴이 컬컬하고 답답할 때, 교회에 오면 문이 열려 있고 기도할 수 있고, 이런 거 또 교회 와서 기도할 때 누가 비난하고 그러면 안 되요. 하여튼 본당에서 기도할 때는 소리 내서 기도하고, 그런 거 싫은 사람은 따로 가서 자기 혼자 하라고 하고, 어찌 되었건 고난 받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고... 그러면 하나님이 응답하게 되어있거든요. 하나님은 그런 거 굉장히 좋아하셔요. 부르짖는 기도,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기억하셨다고 했어요.
2)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어떤 준비를 시켰습니까? 가정교육, 왕자교육, 광야훈련. 광야훈련은 영성훈련이죠. 인내, 침묵, 겸손, 섬김, 묵상, 집중. 하나님께로만 집중하는 거죠.
3) 떨기나무 체험을 통하여 모세는 무엇을 알게 되었습니까? 80년 동안 하나님이 침묵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이스라엘이 고난 중에도 함께하신 하나님, 신발을 벗게 하는 광야 훈련. 오늘 우리도 우리의 신발을 벗기기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오랜 시간 우리를 기다려주시는 줄 몰라요. 신발 벗고 쓰임 받는 종들이 되십시다.
4장: 하나님의 동행표지 - 리더의
1) 모세가 감당해야 할 사명
내려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데려가려 하노라.
2) 모세에게 주신 세 표적
① 뱀 - 애급의 들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
② 문둥병 - 자신의 , 육성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
③ 나일강 - 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
⋅ 말씀하신 대로 할 때 사탄을 이길 수 있다.
나일강
3) 당신은 내게 ‘피남편’이로다. (24-26)
자. 하나님께서 이제 모세를 불렀는데 모세가 자꾸 못하겠다고 그래요. 난 못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40년 동안 양 꽁무니만 따라다녔으니 말을 다 잊어버렸어요. 말도 잊어버리고, 자신감도 다 잃어버리고, 사도행전 7장에서는 말과 행사가 다 능했다고 했는데, 모세가 계속 못한다고 하니 할 수 없이 하나님이 대언자를 세우잖아요? “그럼 너의 어눌(語訥)한 것을 대신할 수 있도록 내가 아론을 세우겠다.”고 하시며 아론을 세우잖아요?
그러면서 “내가 너와 함께한다.”는 증거로써 세 가지 증거를 보여줘요. 리더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갖추어야 할 자질(資質)이 뭐냐? 지금 모세가 감당해야 할 사명은 “내려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데려가려 하노라.” 하나님이 하실 일을 지금 모세가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증거가 없으면 하나님의 일을 못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동행하고 계시다는 사인을 줘야 되요. 자. 세 가지였습니다. 모세에게 주셨던 표적은 세 가지.
① 뱀 잡는 능력이에요, 뱀. 뱀 잡아보셨어요? 뱀이 잘 잡혀요? 뱀을 잘 잡는 땅꾼들은 뱀의 어디를 잡던가요? 머리 뒤를 잡습니다. 뱀을 잘 못 잡는 사람은요? 꼬리를 잡아요. 그런데 뱀을 잡으라는데 어디를 잡으라고 했어요? 머리를 잡으라고 했어요, 꼬리를 잡으라고 했어요? 모세에게 꼬리를 잡으라고 했어요. 왜 모세보고 꼬리 잡으라고 하셨을까요? 모세가 땅꾼이 아니니까? 머리는 누구 부분이냐 하면 주님이 깨뜨릴 부분이에요. 여인의 후손인 예수님이 오셔서 머리를 깨뜨리는 거고, 우리는 잔당 소탕하는 남은 세력을 제압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꼬리를 잡으라는 거예요. 뱀은 애급의 모든 신들의 상징입니다. 캄보디아나 미얀마나 태국, 이런 나라에 가면 모든 건축물들에 전부 용과 뱀이 그려져 있어요. 용 머리 일곱 머리, 나는 성경에만 일곱 머리가 있는 줄 알았는데, 거기가 보니 일곱 머리 용이 있어요. 야, 성경의 사건과 일치하니까 등골이 오싹오싹한 거예요. 뱀은 뭘 상징해요? 사탄을 상징하죠. 뱀과 용(龍)은 같은 개념이죠. 이게. 첫째 뱀을 잡는 걸 보면서 너는 애급의 신들을 다스릴 수 있다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거예요.
② 둘째, 손을 가슴에 넣었더니 문둥병이 걸렸어요. 문둥병은 유전입니까? 전염입니까? 전염입니다. 접촉하면 전염되는 게 문둥병이에요. 그런데 손을 가슴에 넣기 전에는 손이 문둥병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가슴에 넣으니까 문둥병이 걸렸잖아요? 그러면 어디가 문둥병에 걸린 거예요? 가슴에 걸려 있어요. 손이 깨끗했는데 가슴에 넣었다가 뺏더니 손이 문둥병이 걸린 거예요. 가슴이 병들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다시 말씀에 순종해서 손을 집어넣었더니 손이 깨끗해졌어요. 둘째는 문둥병을 처리하는 능력이에요. 문둥병이 뭘 말하느냐? 속이 곪았다는 거예요. 자신의 내면, 자신의 육성, 이런 것들이 이미 오염되어 있어요. 이 사건을 통해서 너는 이미 너의 내면을 처리할 수 있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거예요.
③ 셋째, 나일강은 애급의 젖줄이라고 그래요. 일 년에 두 차례 홍수가 나는데 그때 객토(客土)를 해요. 땅을 다 뒤집어 버려요. 아주 풍요로운 땅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일강이 애급을 살려요. 애급은 90% 이상이 사막이에요. 그런 땅을 사람이 살 수 있는 비옥한 땅으로 만드는 원리가 나일강의 범람으로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급 사람들은 나일강을 자기들을 먹이는 젖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물을 떠다가 쏟았더니 피가 되었어요.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 세상 사람들이 세상적인 방법으로 사는 게 세상의 원리에요. 그들이 말하는 그들의 젖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이게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세 번 다, 세 번 다, 그가 종의 위치에 있을 때, 다시 말하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할 때, 사탄이 역사하는 세 방향, 사탄은 뱀으로 역사하고, 육성으로 역사하고, 세상으로 역사해요. 에베소서 2장 1절부터 3절에 보면 뱀이 세 가지로 역사해요. “지금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역사하는 영”이라고 표현했어요. 사탄이죠, 뱀입니다. 또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하고” 그랬어요. 그것은 문둥병이에요. 육성을 말하는 거예요. 또 사탄은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그랬어요. 사탄은 세 가지로 역사해요. 요한일서 2:17에 뭐라고 그랬어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이렇게 세 가지. 야고보서 3:15에도 “마귀적이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라” 그랬어요. 세 가지에요 세 가지. 적어도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선악과가 어떻다고 그랬어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창 3:6). 이 세 방면을 잡지 못하면 leader가 될 수 없어요.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하려고 그럴 때,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에 나가서 한 판 싸움을 합니다. 삼 round를 뛰는데 그 세 번의 싸움이 바로 아담이 넘어졌던 부분이요, 지금 모세가 장악해야 할 부분이에요. 세 부분이 뭐에요? 첫째 “돌이 떡이 되게 하라.” 둘째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천사들이 너를 받들어 사람들이 너를 추앙할 것이다.” 셋째는 “내게 경배하라. 천하만국의 영광을 주겠다.” 그 세 가지가 사탄이 유사 이래로 지금까지 아담에서부터 인간을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는 무기들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영적 지도자가 되고 leader가 되려면 이 세 부분에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되요. 간증을 할 수 있어야 되요. 뱀 잡는 능력, 사탄을 깨뜨리는 능력이죠, 문둥병, 자신의 내면의 육성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 세상을 control할 수 있는 능력. 종 되었을 때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의 인도함을 따랐을 때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24절에서 26절에 보면 참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나와요. 모세가 가겠다고 애급으로 가려고 그러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모세를 죽이려고 그래요. 그때에 십보라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므로 “이는 나의 피 남편이로다.” 얘기를 해요. 이건 뭘 말할까? 모세가 처가살이하면서 십보라에게 많이 당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러시아나 중국 같은 데서는 여권(女權)이 얼마나 센지, 여자들에게 덤볐다가는 큰일 나요. 러시아는 남자가 여자 집으로 장가를 갑니다. 우리나라의 고부간의 갈등보다도 러시아에서는 장모와 사위와의 관계는 더 무섭습니다. 설교할 때 절대 그런 말을 못하게 해요. 장모 얘기하면 아주 큰일 납니다. 마피아가 지나가는 행인을 괴롭힐 때 남자가 가서 말렸다가는 그날이 그 사람 죽는 날이에요. 그런데 할머니가 가서 말리면 KGB가 말을 들어요. 동네 통반장도 다 여자가 해요. 여권이 아주 굉장합니다. 남자들은 집에서 애보고 강아지 키우고 고양이 키우면서 뒷골목에 서가지고 서너 병씩 보드카(vodka) 마시면서 하루 종일 살아요. 남자들이 정말 불쌍해요. 여자들은 다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고, 처가살이하면 남자가 기를 펴요, 못 펴요? 못 펴지요. 모세가 그랬던 것 같아요. 애를 낳았어요. 얼마나 외로웠으면 ‘게르솜’ 그랬겠어요.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도다.” 처가살이하는데 행복하고 뿌듯했으면 절대 그런 아들 이름 안 지어요. 너무 괴롭고 외롭고 힘드니까 자기 아내도 자기를 이해 못해주고, 너무 외로우니까 자기가 나그네 되었고, 객이 되었다고 그런 이름을 지었어요. 그런데 이제 낳은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행해야 되요. 할례를 하려고 그랬더니, 십보라가 아주 그냥 화~를 내는 거예요. “어디에서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하냐? 어린아이에게...” 할례를 못 행한 거예요. 자.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자긍심(自矜心)이 할례에 있는데, 계속 그것 가지고 십보라와 싸우는 거예요. “아. 할례해야 되는데...” 하면, “이 인간이 어디서? 그냥 밥이라도 얻어먹으려면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면서 구박을 줬어요. 그래도 십보라의 마음속에 늘 눌림이 있었어요. 이것은 내가 문학을 좋아하기 때문에 탁월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만든 구조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얘기 아니에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늘 부부싸움을 하는 거예요. 모세는 조금만 영적인 시간이 되면 “할례를 행해야 되는데...” 하면, 십보라는 눈을 부릅뜨면서 “이 인간이?” 그러면 이제 아뭇소리를 못했어요. 그러나 십보라의 마음속에는 눌림이 있었겠죠.
어느 날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와서 가겠다고 그래요. 가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갑자기 모세를 죽이려고 해요. 사고가 나면 사람은 제일 먼저 뭘 생각해요? 자. 차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 사고가 났어요. 예수 믿는 사람은 무엇부터 생각해요? 야. 지난주에 예배 빼먹었더니, 십일조 빼먹었더니, 사업에 문제가 있으며... 십보라도 양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딱 여호와의 사자가 모세를 죽이려고... 그러니까 바로 바로, 아들 데려다가 딱 잘라 갖고, 그냥 피남편이라고 하면서 집어 던지는 거예요. 할렐루야. 사모님들 잘해야 되요.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 들어가도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내려오는 화살표가 아니라 올라가는 화살표. 우리가 하나님께 바칠 때, 그래야 쓰임 받는 거예요. “뭐 내 형편 모르시고...” 그게 아닙니다. 개척교회하면서 사례비를 못 받아가지고 끙끙댈 때라도 십일조 내야 되고, 이게 예배 정신이에요. 하나님께 바치는 거예요. 이방민족 가운데 살면서 문화가 달라도 아들에게 할례를 행해야 하는 그런 문제를 위해서 부부싸움이라도 해야 되요. 요즘 사람들은 적절한 거짓된 평안을 위해서 양보를 해버려요. 하나님은 절대로 처가살이하는 40년이라 할지라도 할례는 받아야 한다고 하는 원칙을 이 사건을 통하여 보여주는 거예요.
하나님의 기준이 중요하지요. 목사는 하나님의 기준을 교인들에게 가르쳐주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만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찾아오셨다는 사건만 자꾸 강조하는 게 아니라, 그 은혜 이후에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맞추어 가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얘기해줘야 되요. ‘미국제 복음주의’라는 게 있어요. 상당히 비꼬아서 하는 말인데, 저는 ‘한국제 복음주의’를 얘기합니다. 많은 사람이 은혜, 은혜 얘기하는데, 은혜 이후에 우리가 응답할 거에 대해서는 자꾸 간과(看過)하는 거예요. 절대로 안 됩니다. 40년을 은혜로 살았지만 하나님은 다시 그를 부르실 때 피의 계약을 요구하는 거예요. 이렇게 정확하신 하나님입니다. 헐렁헐렁 살면서 하나님이 복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요. 은혜를 받을 때는 완전히 나한테 맞춰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그 은혜에 응답할 때는 철저하게 하나님께 코드를 맞추어야 되요. 레위기를 공부해보면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만듭니다. 우리 시대의 예배는 사람이 거룩하게 못 만들어요. 왜요? 예배의 기준이 다 무너져버렸어요. 목사가 은혜 설교만 합니다. 교인들을 찾아온 얘기만 해요. 당신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이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타락한 자리까지 찾아오심은 절대 틀린 얘기 아니지요. 너무 좋은 얘기지요. 그 다음을 가르쳐줘야 할 게 아니에요? 은혜를 받았습니까? 하나님 만났습니까? 그 다음부터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100% 헌신해야 합니다. 이걸 해야 하는데 그 다음을 안 가르쳐줍니다. 이것이 한국제 복음주이에요. 피남편이다. 40년이 지났어도 당신은 피남편입니다. 이방 땅에 살았어도 이 남자는 피남편인데 내가 그 동안에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바로 항복하는 거예요. 이 이후로 부부싸움 있었을 것 같아요? 없었을 것 같아요? 없지요. 그전에 왜 부부 싸움했었을 것 같아요? 성경엔 없지만,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런 걸 픽션(fiction)이라 그래요. 그전에 뭐 때문에 신앙의 갈등 구조를 느꼈을 것 같아요? 이런 거예요. 이런 문제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을 십보라는 여기는 이방 땅이다. 미디안이다. “너. 무슨 말라빠진 신앙 가지고 나한테 얘기하나?” 이런 문제로 싸웠을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한 번 손보고 나니까 이 후로는 십보라 얘기 나올 필요도 없어요. 안 나오잖아요? 성경에.
자. 오른손 들고 우리 한번 2분만 기도합시다.
“하나님 내 목회가 철저하게 은혜 중심으로 가게 하시고 철저하게 말씀 중심으로 가게 해 주십시오. 내려오는 화살표 정확하게 말해 주게 하시고, 올라가는 화살표도 정확하게 선포해서 우리 교인 훈련 잘 시켜서 모두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게 해주시옵소서. 나를 그 일에 사용해 주십시오.” 우리 주님 이름 부른 다음에 한 2분만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하나님. 우리 멋대로 사람을 대하고 내 기준으로 사람을 만날까봐서 하나님의 말씀을 허락하시고 진리가 뭔가를 가르쳐 주심을 감사합니다. 내 왕국 세우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 건설하게 하시고 내 사람 챙기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종들을 키우는 저희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은혜만 강조하여, 방종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게 하여 주시고, 언약 백성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앞에 성실하게 응답하는 사람을 키운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목회 현장에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그 기준이 뭔가 알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게 하여 주셔서, 이후로 우리 목회 사역이 진리 중심이게 하시고, 말씀 중심이게 하시고, 성령 중심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 출애급기 강의 (5) >
5장: 내 백성을 내보내라.
1) 제사(희생)를 드리기 위하여
- 화목 3:18; 7:16; 8:1,8,20,25-29 (애급에서 - 준비된 양)
2) 섬김 (봉사, 예배) - 사흘의 구별됨
4:22-23 (장자로 부르심)
3) 절기 - 잔치, 누림 5:1; 10:9 (광야에서 - 나의 기업)
5장부터 11장은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백성을 내놓으라고 요청을 합니다. 세 가지 목적 때문에 백성들이 나가야 한다는 거지요.
1) 첫째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가야 한다.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과 화목하다는 거지요. 출애급기 3:18을 한번 봅시다.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급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지요. 제사, 희생을 드리기 위해서.
2) 둘째는 섬김을 위해서, serving이지요.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나의 장자를 내보내라. 4:22~23에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을 섬긴다. 예배지요, 예배.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하나님께 봉사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흘 길쯤 나가야 한다는 거지요.
3) 셋째 목적은 절기, 잔치입니다. 내가 누리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회복을 위한 것이고, 그러면 절친한 친밀한 관계가 됩니다.
② 둘째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높이고 봉사하고... “발 좀 내시지요, 제가 발 좀 주물러 드리겠습니다. 어깨를 제가 주물러 드릴까요?” 예배는 하나님을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높여 드리는 거죠.
③ 절기는 나를 위하는 거지요. 내가 그리스도를 누리는 겁니다. 왜 애급에서는 안 되느냐? 구원 받았다 할지라도 애급의 문화, 바로의 속박 하에 있으면 이게 안 됩니다. 반드시 사흘 길쯤 나가야 하나님과 관계되는 제사, 희생을 드리게 되고 하나님을 높일 수 있고 그 하나님을 통하여 내가 절기를 누리는 풍요를 경험할 수 있는 거죠. 애급에서는 준비시킨 양이 있었어요. 희생 제물이 드려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기 시작한 거지요. 하나님을 높이고 섬기는 자들을 장자(長子)를 부르셨다고요 장자로,
< 장자의 특권 세 가지 >
근본적으로 장자에게는 세 가지 특권이 있었어요. 성경에 보면 첫째는 왕권(王權), 둘째는 제사장권(祭司長權), 셋째는 두 배의 몫입니다.
(역대상 5:1~2)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야곱의 아들 르우벤이 장자인데 르우벤이 장자권을 잃었어요. 죄는 항상 우리에게서 권리를 빼앗아갑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죄 때문에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았다 할지라도 자꾸 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권리, 특권들이 자꾸 무너집니다. 르우벤의 죄가 르우벤의 장자권을 박탈 시켰어요.
① 그래서 여기 왕권은 누구한테 갔어요? 2절에 보니까 유다에게 갔지요.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나왔다” 그랬지요.
② 또 두 배의 몫은 누구에게 갔어요? 요셉에게 갔지요. 그래서 요셉 지파라 안 그러고 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지파로 몫을 두 배로 주지요. 두 배의 몫에 관한 얘기는 신명기 21:15~17 봅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 두 배의 몫을 주라는 것입니다.
③ 그럼 제사장권은 누구한테 갔어요? 레위에게 갔지요, 레위.
그래서 모든 장자들에게는 왕권이 있어요. 제사장권이 있어요. 또 두 배의 복을 받을 자격이 있어요. 하나님의 법적 보장이죠. 왕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특권이죠. 사람들을 세워주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겁니다. 제사장권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데려다가 하나님과 연결시켜드리고, 하나님의 코드를 맞추어 그 분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그 분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고, 이렇게... 제사장의 직분은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이죠. 두 배의 몫은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거지요.
이스라엘을 장자로 삼았다는 이것은 이스라엘이 이런 특권을 가지고 출발한다는 거지요. 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동일하게 이 장자권의 복을 줍니다. 우리에겐 왕권이 있어요, 제사장권이 있어요. 이것을 신약시대엔 뭐라고 표현했어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그래요. 그리고 충분히 섬길 수 있는 몫을 줍니다. 두 배의 몫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게 하나님의 기본 약속이에요. 이런 하나님의 법적 보장을 받는 사람들이 이제는 바로를 섬기거나 애급에 있지 않고 나와서 하나님을 제사하고, 하나님을 serving하고, 하나님이 주신 몫을 누리는 거예요.
구원은 있는 자리에서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데, 신분만 바꿔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나가라는 거예요 나가라... “사흘 길쯤 나가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은 애급 땅에서 받았어요. 유월절 양으로 인해서... 그러나 구원받은 즉시 나가라는 거예요, 떠나라는 거예요. 이전에 삶 노예로서 살아왔던 삶을 청산하고 이제는 아들로서 사는 거예요. 거기 있으면 종살이밖에 안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라도 훈련받지 않고 출발한 사람들은 교회만 나오지 여전히 세상의 노예, 죄의 노예입니다. 끌려 다닙니다. 변화가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훈련받고 옛 문화를 끊고 옛 친구들과 결별 선언을 하고 새롭게 교회 문화 쪽으로 떠나온 사람들은 거기서 누리는 몫이 훨씬 크지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뭔지 알아요? 성경공부예요. 진짜예요. 제가 책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밤 새워서 책을 많이 읽어요.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밤을 얼마나 많이 새웠는지... 그리고 다른 책은 제가 제일 많이 읽은 책은 한 10번 읽은 책이 있어요. 김용석 씨가 쓴 ⌜사랑과 영혼의 대화⌟라는 책이 있어요. 아주 처음 읽었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그 전집을 다 읽었어요. ⌜어린 왕자⌟ 같은 것도 열 몇 번 읽었어요. 박종화 ⌜삼국지⌟ 5권까지 다섯 번 읽었어요. 성경은 몇 번 읽었을 것 같아요? 셀 수 없이, 셀 수 없이... 읽어도, 읽어도 또 재미있고 ⋯, 이건 뭐 노루 친 막대기를 3년 고아먹는다고 하는데, 이거 뭐 3년 고아먹는 게 아니라, 30년 고아먹어도 또 나와요, 또. 듣는 사람 여러분들은 어떤지 몰라도 저는 처음 하는 것처럼 해요. 그렇게 보이지요?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출애급기... 출애급기만 그런 거 아니에요. 너무 새롭고... 표현이 좀 죄송합니다만 말씀에 마력(魔力)이 있어요, 마력... 막 사로잡아요. 그냥. 세를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마력이 있어요. 얼마나 재미있는지,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을 섬기는 이런 것들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몰라요.
우리 목사님들은 그런 엄청난 특권의 자리로 부르심을 받았어요. 그런데 재료가 준비 안 되어가지고 없는 것 가지고 짜 먹으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우리는 무궁무진해요. 66권이 있지요.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특권은 우리에게 주신 특권 가운데서 제일 큰 거예요. 제가 치유 사역도 해보고 능력 사역도 해보고 많이 해 보았어요. 다 오래 안 갑니다. 아픈 사람들 병 고침 받으면 처음에는 빤짝해요. 그러다가 별 볼일 없잖아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떠나가요. 환자 치료해서 교회 부흥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은사 사역, 처음에는 눈이 열리고 예언하고 환상 보고, 그러면 사람들이 뿅 가요. 그러나 그것도 오래 안 갑니다. 말씀사역하면 사람이 계속 붙어요. 이렇게.
세상에 제일 재미있는 게 뭐라고요? 성경공부예요, 해 보세요 진짜로... 이게 뭐 보이기 시작하면요, 사람이 정신이 하나도 없다니까요. “와~ 이게 그런 말씀인가? 우와~~” 목회하시면서 이런 재미도 모르고 하시면 참~ 행복하면서도 불행한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새 이름 계시, ‘여호와’라는 이름을 계시하셨습니다.
출애급기 6:1~8 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이제 애급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급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급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이상한 표현이 있죠?
6장: 하나님의 새 이름 계시 - 여호와
1) 구원하시는 하나님
⋅ “내 백성을 보내라.” (5:1; 7:16; 8:1,20; 9:1,13; 10:3) (7회)
⋅ (3:7-8) 보고, 듣고, 알고, 내려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이르려 하노라. (7회)
⋅ (6:6-8) 빼어내어, 건지며, 구속하여, 내 백성을 삼고, 하나님이 되고, 인도하여, 기업을 삼게 하리라. (7회)
2) 말씀하시는 하나님
⋅ ‘다바르’ - 언행일치, 사 55:11 (‘미드바르’ - 광야)
⋅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 1,2,6,10,13,28,29 (7회)
3) 언약하시는 하나님
⋅ 자연계의 언약, 도덕 언약, 계시 언약
⋅ (6:1-8) 새 이름을 계시하심 - ‘엘로힘’에서 ‘여호와’ 로
3절에 보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다.” 여호와라는 칭호는 창세기 2장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이 ‘엘솨다이(yD'v' lae)’ 전능하신 하나님. 현대 히브리어 학자들은 이것을 “엄마 젖가슴을 가진 하나님” 그런 표현을 씁니다. 출산한 엄마가 자기의 젖먹이는 아들을 품듯이 돌본다는 그런 개념으로 ‘엘솨다이’를 해석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는 내가 그들에게 계시했지만, 그들에게 여호와로는 알리지 않았다는 거지요. ‘엘로힘(!yhil|a>)’이라 그래요. ‘엘(lae)’이라는 말은 창조주 하나님을 표현할 때 쓰는데 그런 창조주 하나님, 사람과 의논하지 않고 우리가 깨닫지 못할 때 우리를 찾아와 복을 주신 하나님, 이게 ‘엘로힘’ 하나님의 개념인데 지금까지 ‘엘로힘’ ‘엘솨다이’로 계시했지만, 여호와로는 계시하지 않았으나, 지금부터 너희에게 여호와로 만나겠다. 여호와는 언약 관계의 하나님, 계약의 하나님이란 뜻이지요. 이스라엘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정의 구조로 본다면 유치원 정도 갈 때까지는 엄마가 전능하신 엄마로 아이가 요구하지 않아도 다 들어주는 엄마예요. 기저귀 준비해 놓고 아이가 입어야 할 옷, 뭐 예방접종, 다 아이와 의논하지 않고, 다 엄마가 준비를 해요.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표현하고 무조건적인 은혜, 이것이 ‘엘로힘’이에요. ‘엘로힘.’ 그런데 이제 유치원 졸업하고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엄마가 이상해졌어요. “너 학교 갔다 와서 숙제하지 않으면 엄마가 뭐 안 해주겠다.” “엄마! 나 인라인 스케이트(inline skates) 사 주세요.” “너 학교 갔다 와서 한 달 동안 엄마가 가란 말 안 해도 학원 열심히 나가면 내가 인라인 스케이트 사주겠다.”고 조건을 걸어요. 조건부 엄마가 되는 거예요. 조건부 하나님, 조건부 은혜.
‘엘로힘’ 하나님은 일방적 은혜로 일방적 관계, 나하고 의논하고 나에게 동의를 얻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100% 베풀어주시는 거예요. 여기는 쌍방적 관계예요. 내가 응답 안하면 하나님이 가만히 계셔요, 그냥. 엘로힘 하나님은 편무(偏務) 언약의 하나님이에요. 여호와 하나님은 쌍무(雙務) 언약의 하나님이에요. 또 ‘엘로힘’ 하나님은 아가페(ajjgavph) 사랑을 해요, 아가페. 끝없이 우리를 사랑해줘요. 끝없이 우리를 도와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에로스(e[rw") 하나님이에요. “네가 딴 우상에게로 가면 내가 질투해서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사무엘상 15:23에 보면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범죄를 했어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이것은 ‘아가페’예요 ‘에로스’예요? ‘에로스’죠. 그러면 이러면 이 구조를 볼 때, 하나님이 엘로힘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실 때는 언제예요? 연약할 때, 유치할 때, 우리가 무너졌을 때는 엘로힘 하나님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숙하게 되면 우리가 자라 인격적인 교제를 가지게 되면 하나님은 이제 아가페로 다가오시지 않으시고 ‘에로스’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나를 사랑하고, 너 눈 딴 데로 돌리면 내가 가만 안 놔둬.” 하나님이 조건을 제시하는 거예요. 어느 게 더 좋아요? 이런 질문을 우문(愚問)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느 게 더 성숙한 거예요? 그렇지요. 여호와지요. 결혼은 아가페예요, 에로스예요?
제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이 16년 차이가 나는 아가씨와 결혼했어요. 36살에 20살 아가씨하고... 서울농대 나오신 분인데 교생 실습 와가지고... 애가 예뻤어요, 애도 선생님을 좋아하고 애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어른 될 때까지 기다려 준 거예요. 이 선생님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다니까 근 10년 이상 기다렸겠죠? 그때까지는 선생님이에요. 하염없는 존경과 사랑의 대상인 선생님이에요, 선생님. 선생님이 제자하고 사귀다가 결혼했어요. 이제 선생님이에요, 아니에요? 지금까지 유치한 행동해도 다 봐주었어요. 그러나 이제 아내가 되었으니 유치한 행동하면 되요, 안 되요? 딴 남자 쳐다보면 큰일 나죠.
여러분 우리가 신앙이 성숙한다는 것은 이런 거예요. 아가페 하나님에서 에로스의 하나님을 만나는 거예요. 무조건적인 하나님에서 조건부 하나님으로 성숙해 나가는 거예요. 한국교회는 이런 것을 감당 못했어요. 계속 아가페만 얘기하는 거예요, 은혜만 얘기하는 거예요. 은혜야 광야 백성들이 얼마나 많이 받았습니까? 40년 간 받았는데... 그런데 왜 변화가 안 되어요? 그들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할 줄 모르는 거예요. 응답할 줄 모르는 거예요. 아니, 아이가 15살, 20살 되면 김치 담는 법도 배워야 하고 시집가서 남편 섬기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할 것 아니에요? 엄마가 못 됐어요. 시집가서 고생할 것인데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면서 아무것도 안 가르치고 시집을 보냈어요. 사람입니까?
신앙의 성숙이란 이런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내가 ‘엘솻다이’ 하나님으로 계시했지만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성숙했기 때문에 너희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여호와 하나님으로 너희를 만나고 싶다. 내가 사랑을 베풀면 사랑으로 응답해라. 내가 선물 주면 너희도 선물 준비하고, ‘발렌타인 데이’ 때 내가 초콜렛 주면 너희도 나한테 초콜렛 줘야 된다.” 이런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말해요. “아~이 하나님이 갑자기 율법주의자가 되셨나? 왜 그런 것을 요구해요? 하나님은 하염없이 주시는 분이신데 ⋯.”
하염없이 주는 것을 심리학적으로 뭐라고 하냐 하면 과보호(過保護)라고 그래요, 과보호는 사람을 망가뜨려요. 한국교회 교인들은 과보호 가운데 살았어요. 가만히 있으라고.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복음은 하나님이 다 해주는 거야.” 그러면서... 변화가 안 되는 거예요. 엄마가 애를 키울 때 엄마가 없어도 학교 갔다 오면 숙제하고, 자기 방 청소할 줄 알고, 시간 되면 학원 갈 줄 알고, 엄마가 다 챙겨주고 도와줘야가 아니라, 엄마 없어도 할 수 있어야 되요. 그러다가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안 계셔도 엄마가 계시는 것과 같이 똑같이 살 수 있도록 해줘야 되요. 그게 성숙(成熟)이에요. 은혜에 대한 개념을 우리가 잘못 이해하면 안 되요.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이 옆에 안 계시고 안 보여도 계신 것처럼 행동하는 거예요. 하나님 다 해 주는 것 아니에요. 하나님이 성숙하도록 요청하신 거지요. 엘로힘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
은 혜
무조건적
일방적
편무언약
아가페
엘로힘-창조, 전능
1-11장
유아기
진 리
조건적
쌍방적
쌍무언약
에로스
여호와-언약
12-40장
성장기
자. 그러면 하나님을 경험하는 단계를 봅시다.
첫째는 구원하시는 하나님, 찾아오셔서 일방적으로 도와주시지요.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도 기억하지 못할 때 400년 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바로가 하나님인 줄 알고 우상들이 하나님인 줄 알았던, 이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찾아오셔서 “내 백성을 내 보내라. 내 거다. 내 백성이다.” 그러시면서 5:1; 7:16; 8:1,20; 9:1,13; 10:3, 일곱 번씩이나 “내 백성이니까 내 보내라.” 그리고 또 3:7~8에서 “보고, 듣고, 알고, 내려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데려가려하노라.” 일곱 번씩, 6:6-8에서 “빼어내어, 건지며, 구속하여, 내 백성을 삼고, 하나님이 되고, 인도하여, 기업을 삼게 하노라.” 일곱 번, 구원의 완전성을 지금 얘기하는 거예요. 완벽하게 그들을 도와줍니다.
그러다가 이들이 성숙하니까 이제는 말씀하시는 하나님 일방적으로 도와주기만 했다가 그들이 이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선포하시고 응답할 것을 요청하시는 하나님. 말씀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할 때 그것을 ‘다바르(rib;D)’라고 해요 ‘다바르.’ 히브리적 ‘다바르’의 개념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면 반드시 응답이 나타나는 거예요. 언행이 일치하는 것을 말해요. 재미있는 것은 ‘다바르’는 ‘미드바르(rB;dm)’에서 왔는데 ‘미드바르’라는 말은 광야라는 말이에요. 언제 사람이 ‘다바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하느냐? 언제 하나님 말씀 앞에서 응답하느냐? 광야를 지난 사람들이죠. 본문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는 표현을 일곱 번 했어요. 1, 2, 6, 10, 13, 28, 29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구원하시는 하나님보다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더 성숙된 경험이에요.
그보다 더 큰 개념이 뭐냐 하면 언약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거예요. 언약(言約), 약속하고 지키시는 하나님, 피를 바르면 하나님이 봐주겠다는 것은 하나님 쪽에서의 약속이에요. 재앙이 왔을 때라도 십보라가 피를 바치니까 하나님이 보호해 주었어요. 하나님 쪽의 언약이죠. 우리 쪽의 언약은 세례 받을 때부터 “내 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겠습니다. 나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결단했어요. 처음에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경험했다가 그 다음에는 더 성숙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음성을 듣기 시작했다가, 성숙한 이후에는 이제는 관계지향적(關係指向的)으로, 언약의 하나님으로 만나는 거예요.
그래도 안 지키는 분들이 있어요. 안 지키면 성숙 안 하는 거예요. 지키면 그만큼 성숙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키우는 방법이에요 이게. 교인들도요 계속 받아먹기만 하라고 하면 안 되요. 처음에는 은혜, 어느 정도 지나면 봉사하라고 해야 되요. 헌금도 내라 하고, 시간도 내놓으라고 하고, 헌신도 하라고 하고, 목사만 헌신하면 안 됩니다. 교인도 헌신하라고 해야 되요. 물론 시대가 험악하니까 지혜롭게 해야 되겠죠. 건강한 교회는 뭐냐? 왜 목사만 헌신합니까? 똑 같이 해야죠. 나도 헌신했으니까, 장로님 당신도 헌신하십시오. 그렇게 해요. 무조건 섬겨준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가르쳐서 성숙시켜야 되요. 어려워요, 쉽지 않아요. 한번 받아먹으면 또 받아먹고 싶거든요. 똑같이 성숙시켜주어야 되요. 동역자가 되고 partnership이 되고... 하나님도 그런 것을 좋아해요. 계속 받아먹다가 어느 날 하나님 마음을 안 거예요. “하나님 제가 하겠습니다. 하나님 이 몫은 제가 좀 감당하겠습니다. 이 일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제가 섬기겠습니다.” 이런 걸 제일 잘하는 사람이 누구예요? 자녀들 가운데 누가 제일 잘해요? 부모의 마음을 제일 빨리 catch하는 사람, 장자(長子)들이예요. 장자. 하나님 나라를 책임지라고, 할렐루야.
★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성취
언약의 내용 (창 15:13-16)
언약의 성취
기 간
400년 간 괴롭게 하리니
430년 만에 출애급
상 황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
열 가지 재앙으로 징치하심
재 물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구하는 대로 주어
애급 사람의 물품을 취함
세 대
4대 만에 이 땅에 돌아오리니
(창)4대 :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
(출)4대 : 레위, 고핫, 아므람, 모세
야곱
인 구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창 46:3)
장정만 603,550명이
출애급함(38:26)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한 백성이 되어야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을 모세 대(代)에 와서 성취하시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창세기 15:13~16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의 내용입니다. “400년 간 괴롭게 할 것이다.” 언약의 성취는 430년 만에 출애급하게 되죠.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懲治)할 것이다.”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으로 그들을 징치하십니다.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구하는 대로 주어 애급 사람의 물품을 취하게 하셔서 그들이 나올 때 성막을 지을 수 있는 준비가 다 갖추어서 나옵니다.
“4대만에 이 땅에 돌아오리라.” 그랬죠? 물론 이것은 400년을 말씀하는 건데, 창세기에 4대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이 나오고, 바로 이어서 출애급기 역시 4대가 나오는데, 레위 지파의 족보죠. ‘레위-고라-모세-요셉’ 이렇게 진행이 되죠.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다.” 장정만 60만 3550명이 출애급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작게 잡아도 200백만 명이 될 거로 봅니다. 많이 보는 사람은 500만 명까지 봐요. 출애급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이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
(창 12:1-2)
1) 씨에 대한 약속
(행 3:25)
2) 땅에 대한 약속
(출 3:8)
창세기 12:1~2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자. 하나님이 약속하셨어요.
① 첫째는 씨에 대하여 약속을 줍니다. 씨. 내가 너에게 씨를 주어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때 하란에서 출발할 땐데 이때가 75세예요. 75세 때. 하나님이 아직 자식이 없는데 “내가 너에게 자식을 주겠다. 그 자식이 민족을 이루겠다.”라는 씨에 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3:25에 보니까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결국 이 씨, 육신적으로는 이삭이지만 구속사적으로 볼 때는 이 씨가 누구예요? 예수님이지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씨를 이 땅에 퍼뜨려서 민족이 되게 하고 나라가 되게 해야 되요. 씨에 대한 약속이지요.
② 또 땅에 대한 약속을 줘요. “내가 너에게 땅을 주겠다.” 땅에 대한 약속은 출애급기 3:8에 보니까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급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땅, 내가 너에게 땅을 주겠다는 거지요.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창 1:26-28)
1) 거룩한 형상 : 아들 (하나님의 거룩한 씨)
- 생육, 번식, 충만(씨의 확산) - sonship
2) 정복, 다스림(통치) : 왕 -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왕권을 가지고 그 나라를 위해 살아감 - kingship
하나님의 언약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씨에 대한 약속과 땅에 대한 약속이에요.
창세기 1:26~28에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얘기하는데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이것은 씨에 대한 얘기예요 씨. 하나님의 거룩한 씨. 이 씨가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것을 미국 신앙에서는 sonship이라고 해요. 아들의 씨죠.
둘째 하나님의 약속은 통치권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왕권을 가지고 그 나라를 위해서 살아감.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kingship을 가지고 있어요. 왕으로서 이 땅을 하나님 나라로 바꾸어야 되요. 세상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의 나라로 바꿔줘야 되요. 정복하고 다스리라 그랬죠? 왕에게 주신 약속이지요. 두 가지 sonship과 kingship입니다. 씨와 통치권. 이것을 다른 말로 구속사의 두 기둥이라고 그래요. 성경의 모든 역사는 이 두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성경의 맥(脈)입니다. 이게.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이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고,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했죠?
마태복음 16: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sonship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kingship이예요. 구약으로는 메시야인데 그 메시야는 이 땅에 메시야 왕국을 건설하려 오신 분이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나게 되면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주시고 성령세례를 주시고 우리가 이 땅에서 통치권을 가지고 사탄에게 빼앗겼던 나라를 다시 되찾는 운동을 일으켜요, 우리를 통해서 아담과 하와가 빼앗겼던 그 땅을 아담족 가운데서 다시 빼앗게 하는 거죠. 되찾게 하는 거죠. 이것을 kingship이라고 그래요. 우리는 통치권을 절대 놓치면 안 되요. 싸워서 이겨야 되고, 우리 교인들의 가정에 질병이 오고 경제적인 위기가 오고 부부간에 갈등이 오고 자녀들이 탈선하고 이런 것들을 교회 목사님이 왕권을 가지고 도와서 그들을 그런 사탄의 올무에 빠지지 않고 다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줘야 되요. 이게 목회(牧會)에요. kingship이 없으면 안 됩니다.
sonship은 뭐냐? 계속해서 씨를 확산하는 거예요. 전도하고, 선교하고, 사람들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집어넣고, 씨의 확산과 그들이 통치권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회예요. 이게 목회의 본질이에요. 숫자는 많이 느는데 교인들의 가정에 전혀 변화도 없고 능력도 없어요. 그러면 그것은 sonship만 갖고 있는 거예요. 다들 열심히 산다고 큰소리치는데 씨의 확산이 없어요. 그러면 그건 kingship, 이 두 가지가 같이 와야 되요. 목회의 성공은 뭐냐? 이 두 가지가 같이 가는 거예요. 우리 교회 교인 100명이 다 권능 받아서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녀 문제를 해결하고 자기가 있는 위치의 그 영역에서 kingship을 발휘해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고... 왜 자녀를 많이 안 낳으려고 그래요? 그게 kingship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아이들이 제 역할 잘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잘 해줘야 하는데 못해 줄 것 같으니 적게 낳는 거예요. 알고 보면 kingship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런데 목회는 숫자를 많이 갖기를 원해요. 애는 적게 낳으면서 그것은 왜 그래요? 이게 모순이에요 모순. 많이 낳아야 되요. 많이 낳아 그들을 다 무장시켜 kingship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직장에 가나 삶의 현장에서나 어디서든지 kingship의 영권(靈權),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고... 이것이 복음이라니까요? 씨의 확산, 그리고 그들이 내 가족들이 되면 그들을 다 무장시켜서 있는 곳에서 역할 감당하게 목회가 그런 개념이에요. 사람을 얻고 그들을 잘 무장하고 세워서 그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sonship과 kingship입니다. 이게.
이사야 60:22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사야 60:22) 작은 자가 천을 이루는 것은 sonship입니다. 씨에 대한 얘기지요?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것은 kingship이에요.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거예요. 속히 이루겠다는 거예요. 이 일을 누가 해요? 우리가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루시는데 그 손발이 누구냐? 우리가 한다는 거예요. sonship, kingship을 이루는 일을...
(마태복음 6:33) ‘그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예요. kingship을 말하지요.
‘그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예요. sonship입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이 뭐예요? 이 두 가지 때문이에요. 목회에 뭘 기대하십니까? 부흥이 뭐예요, 부흥이? sonship, kingship, 이 두 가지에요. 이렇게 군사로 훈련된 100명만 있으면 목회는 든든합니다. 이렇게 훈련된 10,000명만 있다고 생각만 해봐요. 한 시대를 역사를 뒤집어 버립니다. 그런데 숫자는 많이 모았는데 아무도 무장을 안 시켜주니까 별 도움이 안 되는 거예요.
★ 적용질문
1) 사명자에게 어떤 능력이 있어야 합니까?
2)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급을 떠나야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의 출애급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3) 모세가 이루었던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입니까? (3:7-10; 6:4-9)
오늘 우리가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입니까?
1) 사명자에게 어떤 능력이 있어야 합니까? -
① 뱀 잡는 능력 - 땅꾼 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사탄을 잡는 능력을 말하는 거지요.
② 육성, 우리 내면에 썩어있는 욕망들 옛 습관을 따라가는 육성을 제거하는 능력,
③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래야 사역을 할 수 있어요.
2-1)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급을 떠나야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 가지죠?
① 희생제물을 드리고 ②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드리고, serving하고, ③ 절기를 누리는 것. 희생제물은 서로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이고,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절기는 내가 누리는 거지요. 출애급하면 반드시 이런 결과를 얻게 되요.
2-2) 나의 출애급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하나님과 친해졌는지, 예배를 잘 드리고 있는지, 하나님을 잘 누리고 있는지, 출애급 사건이 바로 이런 풍요로움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거예요. 출애급 안하면 이런 풍요로움을 못 누려요. 하나님과 친해지기도 어렵고 하나님을 높여 드리지도 못하고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절기를 누리지도 못하고...
3-1) 모세가 이루었던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입니까?
출애급 언약이지요. (출 3:7-10; 6:4-9) 내려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데려가려 하노라.
3-2) 오늘 우리가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입니까?
① 복음전파 -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고 하나님이 원하는 땅까지 인도하는 것이 모세의 사명이었다고 하면, 우리는 sonship, kingship에 대한 사명을 감당해야 되요. 씨 확산하는 거죠.
② 세계선교전략 - 그들을 무장시키는 거예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그 말은 훈련시키고 무장 시키라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완성. 이 땅에 하나님 나라 완성을 위해서 교회가 만들어져 가는 거예요. sonship, kingship의 언약을 우리가 지켜야 되요. 땅에 충만해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씨를 계속 확산시키고, 전도 선교하는 일을 계속해야 되고 그 다음에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우리가 우리 교회 안에 들어오는 가정들은 다 회복이 되어야 해요. 또 우리 교회 안에 들어온 자녀들이 다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면 안 되요. 어디 가든지 leadership을 발휘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되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사람만 데려다 놓았다고 교회가 부흥되는 것 아니에요. sonship, kingship이 확실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받게 도와주고 그들을 무장시켜서, 삶의 현장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목회가 얼마나 신바람 나는 겁니까? 재미있지요, 아주...
③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완성(계 2-3장; 엡 1:20-23; 4:9-12)
7. 모세를 바로 앞에 신이 되게 하심
(요 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출애급 시대의 3대 이적과 목적
1) 가시적 기적 : 애급인들을 치셨던 10가지 재앙, 구름기둥, 불기둥, 만나, 메추라기, 반석에서 생수의 기적 - 영적(靈的) 충격 (신앙의 출발)
2) 내면적 변화 : 시내산에서 주셨던 십계명 - 그들의 이성에게 주신 말씀
(사고의 전환, 삶의 목적, 가치관의 변화)
3) DNA의 전수 :
성막의 훈련, 매일 동거,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spirit을 전수 받음.
하나님의 spirit, 하나님의 얼굴, 형상, 통치의 대행자로 보냄을 받음 - 왕 같은 제사장
출애급기 7:1~2 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神)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代言者)가 되리니 ⋯”
신이 되게 하셨다. 신같이 되게 하셨다. 요한복음 10:35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여기서 ‘엘’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엘’은 보통명사로 쓰일 때는 하나님의 대행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천사들의 이름이 뭐예요? “미가엘, 가브리엘, 이스라엘, 사무엘, 요엘”, 또 ‘엘’로 시작하는 이름이 있죠? “엘리야, 엘리사, 엘가나.” 엘로 시작했거나 엘로 끝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대행자라는 뜻이에요. “내가 바로 앞에 너를 신같이 되게 했다.” 그 말은, 바로가 벌벌 떠는 거예요, 하나님을 보듯이, 하나님의 대행자로 세워졌기 때문에... 그런데 요즘은 하나님의 대행자라고 말만 크게 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대행자처럼, 신처럼 사람들에게 보여야 되는데 그게 안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아주...
출애급 시대에 3대 이적과 목적. 자! 중요한 이적입니다.
1) 첫째는 가시적(可視的) 기적이에요. 애급인을 치셨던 10가지 재앙,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 메추라기, 반석에서 생수 기적, 소위 우리는 이런 것을 기적(奇蹟)이라고 해요, 기적. 신비체험 영적 충격을 가져오고 신앙을 출발케 합니다.
2) 둘째 기적은 더 깊은 것인데 내면적(內面的)인 변화예요. 시내산에서 주셨던 십계명, 그들의 이성(理性)에 주신 말씀 사고(思考)의 전환(轉換), 목적(目的) 가치관(價値觀)의 변화(變化). 아무리 기적이 일어나도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까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는 것은 사실 기적이 일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에요. 더 어려운 일입니다. 기적을 주신 목적 자체가 변화를 위한 거거든요. 만약에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다가 그런 체험을 갖지 못했으면 그는 하나님을 고백하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그런데 그 신비체험(神秘體驗)을 통해서 자기의 생각이 바꿔지는 거예요. “아! 나사렛 예수가 내가 기다리던 메시야구나.” 하면서 패러다임이 바꿔지는 것은 기적을 통해서 생각을 바꾸는 작업을 도와주는 거예요.
3) 셋째 더 중요한 기적은 뭐냐? DNA의 전수(傳受)입니다. 성막의 훈련,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스피릿(spirit)을 전수 받는 거예요. “하나님의 스피릿,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형상, 통치대행자로 보냄을 받음.” 그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대행하는 거죠. 타락한 인간, 사탄의 종노릇했고, 이 땅에 살면서 뱀처럼 살았던 인간들, 공격하고, 남을 비난하고, 헐뜯고... 그렇게 우리가 살았어요. 그런 사람들이 출애급 사건을 통해서 기적을 경험하고, 또 훈련을 받고, 하면서 그들의 사고가 하나님의 것으로 바꾸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을 세워주고 살려주고 왕이 되어서 만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도와주는 거예요. 이게 기적 중의 기적이에요.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사는 거지요. 왜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바로 앞에서 신처럼 보이게 하셨는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고 했느냐? 그들이 다 하나님이 하여야 할 일을 대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 목회 현장이 ‘엘’로 보여야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대행하니까.
8-11장. 바로의 타협안
1) (8:25) 이 땅에서 을 드려라.
2) (8:28) 너무 멀리는 가지 마라.
3) (10:11)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겨라.
4) (10:24) 양과 소는 남겨두고 만 가라.
5) (14:5-9) 특별병거 600승으로 바로가 추격함
바로가 그냥 내 보냅니까? 이 좋은 노동력을... 빵만 먹여주면 다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인데... 안 내 보내려고 합니다. 다섯 번씩이나 방해를 하고 타협하려고 합니다.
1) 첫째 8:25에 보면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왜 꼭 나가야 되느냐? 여기서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래요. 나가야 한다는 거예요, 떠나야 된다는 거예요.
2) 둘째는 8:28 “그래. 가려면 가라, 그러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마라.” 사탄이 우리를 그렇게 꼬드겨요. “그래. 믿는 것은 할 수 없다. 그러나 광신적으로는 믿지 마라. 제사도 좀 드리고 세상 즐거움도 좀 누리면서 그렇게 예수를 믿어야지, 꼭 그렇게 표 나게 예수를 믿어야 되느냐?” 그렇게 살짝 꼬드기는 거지요. 그래도 가겠다고 그러니까 계속 재앙이 떨어지고 하나님이 막 협박을 하니까
3) 10:11에서 “좋다. 그럼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겨라.” 그래요. 처자식은 집에 놔두고 남자들만 나가라고 그래요. 남자들은 하나도 힘이 없어요. 이렇게 해 놓으면 남자들은 다시 돌아와 버리거든요. 여자만 교회를 나오고 남편이 교회에 안 나오는 가정은 희망이 있어요. 그런데 남자만 나오고 여자가 안 나오면 그 가정은 희망이 반쪽밖에 안 되요. 남자가 여자를 끌어낼 능력이 없어요. 사탄이 이걸 알거든요. 그러니까 ‘장정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요즘 교회 안에 이런 가정들이 많아요. 자녀들은 교회에 안 다녀요. 부모는 봉사도 잘하는데... “자식들은 신앙은 자유야.” 그러면서 “애들이 크면 저희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러면서...
그러면 그 가정은 무너져요. 그래도 또 가겠다고 그러니까.
4) 10:24에 양과 소는 남겨두고 사람만 가라고 그래요. 한국교회 대부분 교회가 여기에 시험에 걸려 있어요. 제물이 없이 예배를 드리게 해요. 양과 소를 안 가지고 가면 제사를 못 드리잖아요? 제물이 없는 예배를 드리게 해요. 헌금 얘길 못해요 지금. 헌신하라고 그래야 되는데, 헌신을 강요 못해요 지금. 제물이 없는 제사를 드리고 있다니까요 지금.
5) 마지막 다섯째는 14:5~9 이제 협박하는 거예요 폭력으로... 무력으로 협박하는 거예요. 특별병거(特別兵車) 600승(乘)으로 바로가 추격해 옵니다.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처음에는 “조금, 살짝, 그냥, 여기서 드려라. 그대로 있으면서 교회만 가면 되지 않느냐? 하나도 바꾸지 말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해라.” 그렇게 말하죠. 이것이 첫째 유혹이죠. “할 수 없다. 집사도 하고 교사도 하고 해라. 그런데 집사도하고 교사도 하되 광신적으로 하지 마라.” 이것이 둘째 유혹이죠.
우리가 몇 번까지 극복해야 되요? 다섯 번까지 극복해야 되요. 대개 세 번, 네 번, 다섯 번에서 걸려요, 대개... 소문에 듣자하니 네 번에 제일 많이 걸린다고 그러더라고요. 울산은 안 그럽니까? 헌금이 차고 넘쳐요. 옛날에는요, 교회 건축하면요, 집 갖다 바치고 집 팔아서 전셋집으로 옮기고 헌금하고 그랬어요. 요새는 종자로 쓰려고 해도 그런 사람이 없어요. 이 시대가 그렇게 돼버렸어요. 그렇게... 아! 하나님이 개탄하시는 거예요.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그랬는데, 딴 데다 마음을 두고 사는 거예요.
재앙이 반복되었던 이유
1) 하나님의 을 나타내기 위해 (9:16; 7:5)
2) 이스라엘을 핍박한 바로와 애급인에 대한 하나님의 (10:16)
3) 애급의 신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 (18:8-11; 12:12; 민 33:4)
⋅ 하나님이 바로와 그의 땅을 때리실 때마다 자식을 잃고 위로 받기를 거절했던 어머니들의 이 풀렸다.
⋅ 공사 감독들과 현장 감독들의 줄 채찍에 맞아 찢어지고 터졌던 노예들의 깊은
가 아물었다.
1) 하나님의 전능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진짜 큰 분이다, 하나님이 진짜 왕이시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반복합니다.
① (9:16) 네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② (7:5) 내가 내 손을 애급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급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2) 이스라엘을 핍박한 바로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 하나님이 심판하는 거예요. 그 동안에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것, 하나님이 다 되갚음하십니다.
(10:16)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득죄하였으니
3) 애급의 신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 이게 아주 중요한 얘기입니다. 그냥 10가지 재앙이 아니라. 섬겼던 우상들이라는 거예요.
① (18:8~11) “모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급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의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그의 장인에게 고하매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모든 은혜를 베푸사 애급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급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급 사람의 손 밑에서 건지셨도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 애급의 모든 신들을 심판하신 사건, 교만한 그 신들을 이기신 사건이 열 가지 재앙이라는 거예요.
② (12:12) “내가 그 밤에 애급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애급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급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단순히 눈에 보이는 재앙이 아니라, 애급의 신들을 치는 사건이라는 거예요.
③ (민 33:4) “애급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
‘열 가지’ 재앙이라는 개념은 애급에 있는 ‘모든’ 신들, 모든 신들을 심판하시는 진짜 사람이 섬겨야 할 신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힘도 없고 가짜 흉내 내는 우상들을 깨뜨리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때리실 때마다 자식을 잃고 위로받기를 거절했던 어머니들의 한이 풀렸습니다. 공사 감독들과 현장 감독들의 줄채찍에 맞아 찢어지고 터졌던 너희들의 깊은 상처가 아물었다. 하나님이 그들의 아픔을 만져 주신 거지요.
11번이나 강팍해진 바로의 마음
1)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셨다. - 하나님의 섭리
⋅ 7회 - 4:21; 7:3; 9:12; 10:1,20,27; 11:10
2) 바로는 그의 마음을 스스로 강팍하게 하였다. - 인간의 자유의지의 발로
⋅ 4회 - 7:22; 8:15,19; 9:35
자. 출애급기를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있는데,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신 게 맞아요, 바로가 스스로 마음을 강팍하게 했어요? 둘 다예요.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셨다.” 일곱 번 나와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죠. 4:21; 7:3; 9:12; 10:1,20,27; 11:10, “바로는 그의 마음을 스스로 강팍하게 하였다.” 인간의 자유의지의 발로죠, 네 번 나옵니다. 7:22; 8:15,19; 9:35. 이쪽에서 볼 때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셨고, 저쪽에서 볼 때는 바로가 스스로 자기 마음을 강팍하게 한 거죠. 동전의 양면과 같은 거죠.
바로를 구속사에 사용하시는 하나님
1) 바로와 애급이 그들을 친절하게 대했다면?
2) 그들이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배려하였다면?
3) 그들이 착취하지 않았다면?
4) 그들이 추격해 오지 않았다면? (홍해, 광야 ⋯)
⋅ 400년이나 죽도록 충성하였는데, 우리를 그렇게 대할 수가 있는가?
⋅ 다른 사람은 다 배신한다 해도, 그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지!
- 주님의 구속사(救贖史)를 위한 배려 -
유월절 피, 떠남, 자기 부인을 경험케 하기 위하여 주님은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원수와 배신과 실패를 배열하셨다.
만약에 바로와 애급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출애급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안 했지요. 그들이, 이스라엘이 죽겠다고 ‘아이고. 한 번만 봐 달라’고 부르짖었을 때 배려했다면 이스라엘이 나와요, 안 나와요? 안 나오죠.
그들이 착취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추격해 오지 않았다면?
그들이 당했던 고난은 전부 출애급 사건을 돕고 있는 거예요. 제가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부분이 참 놀라웠어요. 400년이라고 하면 고향이 된 거거든요. 그런데 400년 된 땅을 떠나는데 물론 성경에 자세한 얘기는 없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전체적인 정황으로 볼 때, 나는 안 가겠다고 남아있었던 사람이 있었을 것 같아요, 없었을 것 같아요? 왜 없었을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그렇잖아요? 애들도 보면 부모가 이민 가는데 한국에 남아 있는 애들이 있어요. 나는 안 가겠다고 그러고.... 한 가족 몇 사람이 나라를 이동하고, 이사를 가는 데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난 안 가겠다, 난 여기가 좋다, 살 만큼 살았으니까 여기다 내 뼈를 묻겠다.”라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 법하거든요. 그런데 없었어요, 성경에. 왜 그랬을 것 같아요? 성경에. 지긋지긋하니까, ‘할렐루야’ 그거예요. 몸서리나요. 아주... “가다가 죽더라도 난 간다.” 이거예요. 이게 기적 중의 기적이에요. 하나님이 환경을 그렇게 배열하신다고요, 안 따라오면 못 배기도록... 여러분들이 목사가 안 되면, 안 될 사연이 많을 거예요. 안 물어봐도... 그 고약한 사연들, 우리를 몰아붙이고 힘들게 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환경, 하나님 앞에 두 팔, 두 다리 다 들고 올 수밖에 없도록 배열하셨던 그 환경들이 은총이라는 거예요. 400년이나 죽도록 충성했는데 우리를 그렇게 대할 수가 있는가? 그럴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은 다 배신한다 해도 그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지, 그렇게 했으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고 신앙생활 열심히 했고 기도생활 했단 말이에요.
목회하면서 가끔 가시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그런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에 대해서 절대 고까운 마음 갖지 마세요. 고맙구나 생각하세요. “저 분이 나의 훈련대장이시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세상에 마음 둘까봐서, 딴 데 허탄(虛誕)한 데 마음 둘까봐서, 저분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구나.” 하면서, “할렐루야” 하면서, 배나 열심히 사랑해버려요, 그냥. 이 심오한 말씀 알아들었는가 모르겠어요? 심오합니다, 아주. 하나님이 그렇게 배열하셨으니까요. 환경적으로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시 같은 집사 세워 가지고 계속 헷갈릴 때마다 한 번씩 받아 주는 거예요, 그냥... 그 때는 그 원수 같은 인간이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나서 보니 그 분이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겸손해질 수 있었을까? 할렐루야... 세상에 원수가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내가 잘못 생각한 거예요.
제가 상담학을 공부했는데, 상담학을 공부할 때 서로 그렇게 얘기해요. “오죽 했으면 상담학을 하냐?” 그랬어요. 부부치유를 또 공부해요, 거기서 부부 치유... 부부 치유하는 사람이 서로 쳐다보면서 웃어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부부 치유하냐?” 그래요. 그렇게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이 공부하고 나서 다 지금 여러 부부 살리고 있어요. 제가 유명한 상담가 한 사람 알고 있어요. 내가 만나보니까 성격이 개떡 같아요. 아~ 멀리서 볼 때의 명성하고, 가깝게 교제해 보니까 성질이 더러워요 더러워... 이 분은 그 더러운 성질 때문에 변화 받은 거예요. 그 성질 안 내려고 끙끙대면서 기도하고, 엎드리며 또 기도하고, 그러면서 성자(聖者)가 된 거예요 성자가... 그런데도 가까이 하면 냄새가 나요. 어찌 되었건 그 성질 때문에 상담학을 공부한 거예요. 그것 좀 고쳐 보려고 그러다가 수백 명, 수천 명 사람들 살리고 있는 거예요. 지금 그 분이 성질이 바뀐 건지 안 바뀐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가깝게 하기에는 너무나 불편한 당신이에요. 그 사람은... 멀리서 봐야지⋯ 내가 그 사람을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는 심오하다고 그랬어요. 저 양반은 개떡 같은 성격 때문에 성자 됐군요. 여러 사람 살려주는 거예요. 우리가 실수한 것까지도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결핍 요소까지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셔요. 놀라운 은혜입니다.
주님의 구속사를 위한 배려 - 유월절 피, 떠나게 한 사건. 자기부인을 경험케 하기 위해서 주님은 원수 앞에서 적재적소에 원수와 배신과 실패를 배열하셨어요. 혹시 교만할까 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족 가운데 나에게 원수로 세워 놓을 수도 있어요.
제가 이름만 대도 여러분 다 아니까, 이름은 말씀드리지 않겠어요. 아들이 있는데 잊어버릴 만하면 칼 가지고 와서 자기 배를 긁어대요. 아버지 앞에서... “돈 내놓을 거야, 안 내놓을 거야?” 아버지가 목사님인데 그걸 어떻게 견뎌요? 목사님이 무슨 돈이 있다고 자기가 뭐 일본 사무라이인가? 할복(割腹)을 하려고 해요. 면도칼로 배를 긁어대는 거예요. 아버지가 죽지요, 그냥. 아들 피해서 도망쳐서 선교사로 갔어요. 그 분 보면 항상 양미간에 찌푸린 것이 있어요. 그 분의 인격은 ⋯, 그 아들 때문에, 그 아들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어요?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 하나님이 사람 만드는 방법 참 여러 가지입니다. 아주. 좋게만 우리를 키운다고 좋은 것이 아니에요. 때로는 기가 막힌 수렁으로 우리를 인도하셔서 빠져나갈 수 없도록 우리를 옭아매 가지고 그냥 사람 만드는 거예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불평할 것도 없고, 원망할 것도 없고, 그래요, 하나님.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어요? 틀림없이 무슨 뜻이 있겠지요. 그러고 “할렐루야”하면 다 은혜가 되는 거예요. 기도가 절로 나오죠. 만약 바로가 친절하게 대했거나, 애급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했으면 절대 안 떠납니다. 떠날 게 뭐 있어요? 더군다나 나가면 광야인데, 뒤도 안 돌아보도록, 뒤도 못 돌아보도록, 하나님이 징글맞게, 몸서리나도록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단 한 사람도 못 남도록... 이게 기적 중의 기적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릴 목사로 만들기 위하여 배열하셨던 환경들 가만히 돌아보세요. 버릴 게 하나도 없어요.
환경도 하나님의 은혜, 원수 같은 인간을 내가 가는 길에 붙여놓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육체적으로 고통당하고 심지어 아들이 태어났는데 죽어야 하는 그런 슬픔과 아픔, 결국 우리가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리고 주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배열하신 큰 은혜였어요.
버릴 게 있다, 없다? 없어요. 심지어 목회를 하면서 거쳤던 시행착오들, 부흥되지 않고, 애를 쓰고 기도해도 결과가 나타나지 않은 아픈 사건들까지도 전부가 다 하나님의 은혜요, 은혜... 은혜 아닌 게 있어요, 없어요? 이제는 내가 그런 하나님의 인도 앞에 복종하고 엎드려서 하나님을 따라가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 목회를 성장 시켜주시고 재미있게 하시고 놀라운 결과를 얻게 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 출애급기 강의 (6) >
성경을 알고 인생을 사는 것하고 진리가 뭔지 모르고 여기도 헤매보고 저기도 방황해보고 살아보다가 “어. 이거 아니네, 그럼 다른 곳에 있는가 봐.” 하면서 다른 곳에 좇아다니며 이렇게 사는 인생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미리 정보를 알고 가면 훨씬 여행이 즐겁습니다. 울산에 제가 몇 차례 왔는데 그런 정보를 제가 아직 듣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냥 그 동네가 그 동네고,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만약에 관광을 위해서 여기에 왔다고 하면 먼저 안내를 받을 겁니다. 대략적인 지도를 그려 달라고 그러고 그럴 놓고 숙지한 다음에 돌아다니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니까 재미가 있겠지요.
교회의 구조가 교회 들어오면 이런 orientation을 좀 잘 해 주어야 되는데, 한국교회 orientation은 그동안 복 받는 것이었습니다. “복 받으려면 하나님 믿어야 된다.” 틀린 건 아니었지요. 맞았지요. 문제는 복을 받고 난 후에 어떻게 살지에 대해 몰랐던 거예요. 이것을 꿈 너머 꿈이라고 그럽니다. 예를 든다면 대학교 들어가는 것이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꿈이지요. 좋은 대학에 자기가 들어갔어요. 그 다음에 자기가 뭘 할 거예요? 그러니까 대학 들어가서 목표가 없어지니까 술 먹고 엉망인 생활을 살아버립니다. 출세해야 되겠다고 하여 고위직에 오르게 되고 또 어려운 시험에 pass하게 되고, 그것이 꿈이 되어버리면 안 되죠. 꿈 너머에 또 다른 꿈이 있어야 되지요. 그걸 보고 vision이라고 하고 사명(使命)이라고도 하지요. mission을 못 찾으면 안 되지요.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장자권의 복을 주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복의 통로가 되게 해서 나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살아납니다. 그런데 이런 복의 목적이 무엇인가? 결국 우리 인생은 왔다가 가는 인생인데 누리면 얼마나 누리겠어요? 짧은 인생이잖아요. 그 영광이 얼마나 됩니까? 그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면 안 되지요. 이 땅에서 아무리 영화롭게 살아봐야 다 두고 가잖아요? 이 땅에서 목적이 우리의 영원한 목적이 될 수가 없지요. 꿈 너머 꿈, 우리가 복음을 깨닫고 은혜를 받고 그 이후에 어떻게 살 것이냐?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수고해야 되고,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가 되고 이렇게 사는 것이 영원을 위해 사는 것이지요. 그래서 신앙생활할 때 이런 orientation을 처음부터 잘 가르쳐주면 교인들이 헷갈리지 않고 얼마가 걸리든지 간에 거기에 도달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복 받아야 된다.’ ‘이렇게 했더니 복을 받더라.’ 그런 간증을 세우고 해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 목표로 가서 복을 받았어요. 복을 받고 나니까, 돈 있고 시간 있으니까 이제 뭘 합니까? 교회 안 나오고, 세상으로 나가게 되고, 레저를 즐기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영적으로는 점점 더 타락하게 되지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지 말고, 성경의 원리를 따라서 차근차근 출애급기의 과정을 가지고, 창세기도 마찬가지예요. 성경이 너무너무 과학적으로 쓰여 있기 때문에 한 권씩 공부할 때마다 탄성을 지르는 거예요. “아! 대단하다. 이런 비밀이 성경 안에 숨어 있었다니!” 경영학 서적 100권 읽는 것보다도 성경 한 번 제대로 딱 읽고 이해하면 인생이 보이고, 역사가 보이고, 세상의 구조가 보이고, 안 되는 사람은 왜 안 되고, 되는 사람은 왜 되는지... 이런 것이 다 보여요. 보이면 인생이 재미있잖아요. 인생이... 의사도 좋은 의사 만나면 병의 원인도 알고 어떻게 치료하는지 알지요. 그런데 의사 잘못 만나면 나타난 현상만 가지고 자꾸 이야기하면 해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목자란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의 진리가 무엇인지, 생명의 진리가 무엇인지 전체의 그림을 그려주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본인이 선택하게 하는 거지요. 어떤 인생으로 살 것이냐에 대하여 목사가 개인 철학으로 말하면 안 됩니다. 성경을 가지고 얘기해 주어야 해요. “진리다, 말씀이다.” 이렇게 했을 때에 권위가 있고... 그 분들이 목사님을 떠날 시기가 있잖아요? 이사를 간다할지, 다른 나라로 간다 할지, 그래도 진리를 가르쳐 놓으면 어디 가든지 자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자기 사람 만들고, 목사님 충복(忠僕) 만들어 놓으면 목사님과 갈라지게 되면,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리는 거예요. 우리 개인의 충성스러운 사람을 키우는 것이 아니잖아요? 잘 키워서 동역자가 되게 하는 것은 좋지만, 과거 군사정권 문화를 지내온 사람은 탁 군림하려고 해요. “내 말 들어! 나 주의 종이야! 나 기도하는 사람이야!!!” 뭐 이러면서... 협박하는 거예요. 교회 떠나면 저주해 버리는 거예요. 그건 아주 잘못된 가르침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이고, 하나님의 종이지요. 우리가 군주가 되고, 왕이 되어서 사람을 끌고 다니는 것 아니에요. 나중에 반드시 심판 받습니다. 그대로 하나님 갚아줍니다. 그렇게 안하면 세상 질서가 엉망이 되어버리거든요. 그래서 좋은 mentor가 되고, 좋은 목자가 되어서 교인들이 진리를 따라 살게 해주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좋은 친구가 되고, 또 자녀가 되고, 더 나아가서 신부가 되고... 신부가 되면 같은 partnership이잖아요? 그리스도인 신부가 교회가 되어서 이 땅에 빼앗겼던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영역을 다 잃어버렸잖아요? 자연도, 사람도 잃어버렸고, 사람의 생각, 마음. 어느 구석에도 사탄이 다 자리 잡고 있잖아요? 우리가 마귀하고 싸우는 거고, 그 마귀가 지배했던 세상 나라를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 바꾸는 사역을 위해서 우리가 잠깐 이 땅에서 30년, 40년 준비하고, 한 30년 일하다가 가잖아요? 그 기간 동안에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가치가 달라지는 거지요.
제가 성경을 읽으면서 제일 궁금했던 것으로 신약성경을 읽으면 제일 첫 장에 예수님 족보가 나오는 거예요. 그 족보 안에 다섯 여자가 나와요. 그런데 이 여자들은 다 끼가 있는 여자들이에요. 거기에 나온 여자는 누구예요? 다말, 기생 라합, 룻, 밧세바, 마리아, 다섯 여자가 나오죠? 마태가 의도적으로 이 사람들을 집어넣었어요. 거기에 사라나 리브가나 이런 사람이 들어 있으면 평균화가 될 텐데, 끼 있는 여자들만 집어넣은 거예요.
① ‘다말’은 어떤 여자예요? ‘다 말’아 먹은 여자잖아요? 계대결혼(繼代結婚), 장자가 후사를 낳지 못하고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해서 후사를 낳아 주어야 되지요. ‘계대결혼’, 다른 말로는 ‘수혼제도(嫂婚制度)’라고 해요. 반드시 delivery를 해야 되요. 하나님은 역사 속에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 대에서 끝나면 이 집은 저주 받은 집안이에요. 그래서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씨를 남겨 놓아야 해요. 신명기 23:1-2에 보면 “신낭이 상한 자나 신을 베인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씨를 남기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지 못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형님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해 가지고 아이를 낳아 주어야 되요. 그런데 엘과 오난이 악행을 행하여 하나님이 씨를 낳기 전에 죽였어요. 셋째가 성장해서 형수 다말을 취해 주어야 되는데, 아버지 유다가 셋째까지 잃을까봐 겁이 나니까 안 준 거예요. 그래서 다말이 아이디어를 짜가지고 시아버지하고 관계를 해서 아이를 낳았잖아요? 당 시대에도 이것은 이해가 잘 안 되는 거예요. 있을 수 없었던 일이기에...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을 너무나 귀하게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다말을 이름에 올렸다는 거지요.
② 또 기생 라합, 우리는 기생하면 ‘황진이’ 멋있게 생각하는데, 여리고, 그 악한 사회에서 남자들을 홀려 돈벌이하면서 살았던 여자가 얼마나 가치 있는 여자였겠어요? 입에서 육두문자가 그냥 나오고 얼굴도 무섭게 생긴 그런 여자 아니겠어요? 그런 여자가 두 정탐꾼을 우대함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진격하는데 도왔단 말입니다. 정탐꾼 두 사람 가운데 살몬이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하고... 여러분. 살몬이 기생 라합하고 결혼할 이유가 있어요, 없어요? 40년 동안에 광야를 헤매다가 이제 드디어 여리고 성에 와 가지고, 성을 쳐들어가야 되어서 정탐꾼을 보내는데 비리비리한 사람을 보내겠어요, sharp하고 똑똑한 사람을 보내겠어요? 보통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거기서 그럴 리는 없겠지만 IQ test에서 150 이상 다 나와! 키 180 이상, 군대에서 장교출신 이상, 이런 식으로 하여튼 엄선해서 뽑고 뽑았던 사람이 두 사람일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elite 중에 elite란 말이에요. 그런 사람이 기생 출신하고 결혼할 이유가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여러분이 어머니라면 시키겠어요? 누가 시켰을 것 같아요? 하나님이에요, 하나님. 왜요? 그 여자의 씨를 받아놓아야 되거든요. 보통 여자가 아니거든요. 왜 보통 여자가 아니에요?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수고했기 때문에... 자기 목을 걸었거든요. 이거 들키면 자기만 아니라 자기 가족 다 몰살되는 거예요. 그런 위기 상황에서 진리를 선택한 거예요. 이런 것을 신약성경에서 자기부인이라고 해요. 그 행위가 너무 위대했기 때문에, 그 행위가 하나님 앞에 너무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생 라합을 넣었다고요. 그런데 라합 그 앞에 무얼 붙여요? ‘기생’을 붙였죠. 이게 참 재미있는 표현이에요.
③ 셋째 여자는 룻이에요, 룻. 십대까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저주 받은 민족, 모압 백성이죠?
④ 또 밧세바가 나와요, 밧세바는 여기에 들어와서는 안 될 여자예요. 밧세바가 훌륭한 부분이 있어요, 없어요? 다른 여자들이야 다 목이라도 걸었지만, 밧세바는 목욕 한 번 잘 했다가 왕의 눈에 띄어서... 어찌 되었던 남편 잘 만나 애 하나 잘 낳았어요. 솔로몬이에요. 여자는 남자 잘 만나면 큰 복이에요. 교인은 목사님 잘 만나면 그것보다 큰 복이 없어요. 그냥 따라가는 거예요. 난 그분이 누군지 모르고 도왔어요. 자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따라가서 애 낳아 주고 열심히 섬기고 보니, 그 분이 다윗 왕이라... 하나님의 종을 잘 섬기는 것도 대박이 터지는 거예요.
⑤ 마리아, 우리는 마리아를 멋있게 생각하지만, 당 시대에는 마리아가 멋있는 여자가 아니에요.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그때 조혼제도가 있었데요.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 일찍 죽고, 그러니까 빨리빨리 결혼을 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마리아의 나이를 12~15살로 추정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나이로는 여중생의 나이란 말이에요. 여중이 어느 날 배가 불럭불럭 불러와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해요. 믿을 사람 손들어보세요? 여러분 옆집에 어떤 여중생이, 울산 여중 2학년생이, 어느 날 배가 불러오는데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소문이 들렸어요. 여러분 믿겠어요? 나는 그 시대에 안 태어난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저는 그러면 100% 안 믿어요. 어떻게 믿겠어요?
우리나라도 그런 사건이 있었거든요. 옛날에 미남으로 생긴 교주 한 사람이 있었어요. ‘구인회’라고요. 자기가 데리고 있는 시녀가 12명이 있는데, 그 중에 한 시녀가 어느 날 임신을 했어요. 그걸 뭐라고 했냐 하면,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그랬어요. 아들을 낳았으면 참 좋았을 것인데, 딸을 낳았어요. 그래서 곤란한 문제가 생겼어요... 그런데 나중에 감옥에서 심장마비로 죽었어요.
마리아는 당 시대에는 손가락질 받는 여자였어요. 이게 역사적으로 검증이 되고 하나님이 인정해주고 그러니까 아름다운 여인으로, 하나님께 헌신한 여인으로 평가가 되었지만, 당 시대에는 문제 많은 여자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이 여자들의 이름을 쓴 거예요.
“다윗은 밧세바에게서…” 이렇게 하면 은혜롭잖아요. 아니면 “다윗은 솔로몬을 낳고…” 이렇게 하면 좋잖아요. 꼭 뭐라고 하냐하면,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잘 이해가 안 됩니까? “김 씨는 옆 집 박 씨의 아내에게서 돌쇠를 낳고,” 이제 알아들으시네. 그런 수준으로 지금 기록을 하고 있는 거예요. 뭘 얘기하냐 하면 우리는 도덕이나, 윤리나, 세상의 가치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가치를 뭘로 평가하냐 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했냐? 과거가 어떻든지, 그 사람의 수준이 어떻든지 간에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느냐에 따라서 평가를 합니다. 정부가 새로 바뀌고 그러잖아요. 정권이 바뀌고 그럴 때, 과거에 ‘가신(家臣)’이란 단어가 유행이었을 때가 있었잖아요? ‘가신’ 아주 옆에 따라 붙어서 집안사람처럼 아주 철저하게 king-maker 역할을 했던 사람을 끝까지 기용해 주었던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역사적으로 봅니다. 제가 제주도에서 세미나를 할 때 세미나 도중에 그런 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 이 여자들을 성경에서 존대(尊待)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새벽에 일어나서 묵상하면서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개국공신(開國功臣)’이라는 감동을 주었어요, ‘개국공신’ 새 나라를 열려는데, 새 나라를 이 땅에 펼치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하나님이 얼마나 우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성경에 기록하고 있다는 그런 감동을 주시더라고요. 개국공신...
우리가 목회를 잘해야 되잖아요? 성공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 나라와 어떤 관련이 있느냐를 보아야 되요. 자기왕국(自己王國) 만드는 사람 많다니까요. 자기 사람 챙기고... 영어로 in my pocket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그것은 역적입니다. 그것은... 새 정부가 들어서서 좀 역할을 할 줄 알고 요직을 주었더니, 전부 뒤로 자기 것 챙겨버리는 거예요. 자기 사람 챙기고, 자기 line 만들고, 자기 호주머니 챙기고... 요직을 주었더니 그런 짓 하고 있어요. 그러면 이 사람 쓸 수 있어요, 없어요? 바로 퇴출당하지요. 우리가 목회를 한다, 주의 일을 한다, 교회에서 충성한다, 그럴 때 이런 것에 대한 검증 없이, 분별없이 하게 되면, 결국은 주님이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하실 때가 온다 말이에요. 하나님 법도대로 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는 것들에 대해서 자기 사람 챙기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사람들 이용하고... 하나님 이름 팔아서 자기 것 챙기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이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엄격하신 분이신 줄 아십니까? 지난번 사도행전 세미나를 하면서 제가 아주 전율을 느꼈어요. 예루살렘 교회가 얼마나 대단한 교회입니까? 이 땅에 오순절을 오게 한 교회 아닙니까? 베드로가 설교할 때, 3~5천 명 회개하고 역사가 뒤집어졌잖아요. 감옥 문을 열어버리고, 그랬던 교회, 그랬던 베드로지만, 사도행전 15장 이후에 율법주의에 빠져가지고 예루살렘교회에서 유대인 가운데 율법에 열심한 자가 수 만 명이라고 그랬어요. 복음에 열심인 자가 아니라, 율법에 열심인 자가 수만 명.
그리고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가 바울에게 강론을 합니다. 네가 율법을 반대하고 할례를 금한다는 소문이 나 있는데. 네가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한 번 보여주라고 했어요. 그래서 바울이 결례를 행하면서 자기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다가 체포되어 가지고 결국 로마로 압송되지요. 그렇게 쓰임 받던 예루살렘교회가 15장 이후에는 종적을 감추어 버려요. 베드로도 그렇게 탁월하게 처음 유태인들에게 성령세례를 베풀었고 사마리아 지역과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성령세례를 베풀었던 그 탁월한 지도자가 사도행전 뒷부분에서는 아주 종적을 감추어 버려요. 갈라디아서 2장에 보니까 율법주의에 아주 미혹되어 있었어요. 이방인들과 식사하다가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보고 시험 들까 봐서 먹다가 위선 행위를 했어요. 안 그런 척했어요. 바울이 이걸 보고 엄히 책망을 하잖아요. 한 때 쓰임 받았던, 한 때 역사를 좌지우지 했던 그 베드로 같은 사람도 역사의 무대에서 간단하게 사라져 버렸어요. 하나님은 쓸모없으면 바로 찍어 버립니다. 왜요? 역사의 중심이 바로 구속사이기 때문입니다. 구속사에 반대되는 사람은 바로 퇴출시켜버립니다. 이해가 안 되는 얘기예요. 예루살렘교회와 베드로가 사도행전이 끝나기도 전에 없어진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바톤을 누가 받아요? 안디옥교회가 받고 바울이 받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 나라 구속사에 쓸모가 없으면 하나님은 바로 퇴출 시켜버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사람 한번 생각해보세요. 사울 왕 보세요. 여호와의 악신이 들어가 가지고 40년을 봉사했지만 버림받은 사람이에요. 왕관을 잃어버리고... ‘워런 유어스비’가 쓴 책 가운데 ⌜왕관을 잃어버린 사람⌟ 이라는 책이 있어요. 제목 보고 아주 내가 전율(戰慄)해서 읽어보았어요. ‘왕관을 잃어버린 사람.’ 오늘 우리 가운데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지만, 하나님 의도와 관계없이 살다가 버림받은 사람 얼마나 많습니까? 구약으로 말하면 장자로 태어났지만 장자권 잃어버렸던 사람들 르우벤이 잃어버리니까 누가 받아갔어요? 준비된 사람들이 받아갔지요. 왕권은 유다가 받아갔고, 제사장권은 레위가, 두 배의 몫은 요셉이 받아갔잖아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베푸실 때는 어머어마하게 은혜로 찾아오시지만, 은혜를 자꾸 배신하고, 은혜를 대항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은 바로 퇴출시켜 버립니다. 이스라엘이라도 버리는 거예요. 거기 로마서 9장부터 11장이잖아요. 참 감람나무도 찍혀버렸다는 거예요. 하물며 이방인인 우리가 헷갈리고, 자기 왕국 챙기고 있고, 자기 사욕 챙기고 있으면 하나님이 쓰실 수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6:7에서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런 말씀이 있지요. 하나님 모시고 장난치지 말라는 거지요. 역사 속에서 쓰임 받았던 이스라엘도 버리는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까불어대다가 하나님께서 한 번 훅 불어버리시면 날아가 버립니다. 정말 진리중심으로 살아야 되고, 말씀중심으로 살아야 되고, 매일 하나님 뜻 가운데 살고 있는지 점검하여야 되고... ‘풀루’라는 유행병이 돌았을 때 얼마나 긴장했어요? 손 씻고... 병원에 가보았더니 마스크 안 한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전부 다 마스크하고 있더군요.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어요. 물리치료 받으려고 병원에 갔는데, 기침 한 번 했더니 카운트에서 바로 등록해 가지고 검사 받으라고 했어요. 와~~~ 기침 한 번 했더니... 그것도 진짜 기침을 한 것도 아니고 헛기침을 했어요. 그 민감함 아닙니까? 민감함. 영적으로도 이렇게 민감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그냥 휩싸여 들어가 버려요. 언제 타락했는지 모르게 타락해 버립니다. 사탄이 눈을 벌겋게 뜨고 우리를 공격하려고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얼렁설렁 살아가지고는 안 됩니다. 긴장해야 되지요. 아침에 차를 타고 이곳으로 오는데, 운전하신 목사님이 별나게 교통법규를 잘 지켜요. 유턴을 하는 곳에서 노란선에서 정지하는 거예요. 그 건너편에 교통경찰이 서 있는 거예요. 만약 노란선을 넘어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교통경찰이 아침거리 생겼다하면서 ‘Come on, come on’ 그랬을 거예요. 왜 운전하시는 목사님이 긴장했을까요? 그 교통경찰이 보고 있으니까요. 그거예요 바로... 우리를 노리는 적들이 있는데 우리가 허투로 말하고 행동하면 바로 걸립니다. 바로... 우리가 늘 말씀으로 자신을 점검하고 좋은 교제권을 만들어서 서로 격려가 되고,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처럼 서로서로가 힘이 되어서 영적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하고... 이런 교제권이 교회입니다. 교제권... 좋은 network을 형성해서 서로 지켜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시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적. 마태복음 1장에 다섯 여자들이 우리가 볼 때에는 별것 아닌 여자들같이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볼 때에는 개국공신(開國功臣)들이라는 거지요. 결국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시느냐? 구원의 목표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어제 배웠던 것의 복습입니다. 1장부터 11장은 은혜라고 그랬어요, 은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사건이지요? 이것은 암기할 필요가 있지요. 어제 배웠던 것 한 번 암기해 볼 까요? 1~2장 보고 듣고 알고, 3~11장 내려와서, 12장 건져내고 13~24장 인도하여, 25~40장 데려가려 하노라.
자. 오늘 둘째 버전입니다. 1~11장은 은혜, 12~40장은 응답. 이렇게 외우세요. 은혜와 응답. 이게 교통이라는 말이에요. 주거니 받거니 그거 아니에요? 1~2장은 하나님이 상황을 준비해 주시지요. 역사적으로, 상황적으로, 시대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모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거예요. 하나님의 준비. 3~4장 하나님이 목자를 준비시켜줍니다.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때쯤 해서 준비된 목자가 어디 있었어요. 3장에서는 요즘으로 말하자면 성령 체험을 하지요. 4장에서는 이미 그가 어떻게 영적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장수로써 준비를 갖추느냐에 대해 세 가지 증거를 보여주죠. 뱀 잡는 능력, 육성을 다스리는 능력, 세상을 조종하는 능력.
1~2장은 상황을 준비함, 3~4장은 목자를 준비시킴, 5~11장은 두 진영의 대결인데,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진짜 신이라는 것을... 그들이 평생 믿어왔던 우상들이 아니라, 10가지 심판을 통해서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진짜 신이라는 것을 과시해주는 거예요. 쫙~~~보여주는 거예요. 12~40장까지는 응답이에요. 우리가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응답할 것이냐? 12장은 피의 언약, 네가 피 바르면 내가 이제까지 있었던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다 지워주겠다. 13~14장은 자기부인, 세례의 언약입니다. 이렇게 살겠습니다. 내 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겠습니다. 15~18장은 광야훈련이에요. 실제적으로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무얼 말하는 것인지 거슬렸던 것은 깨뜨리고, 그 깨뜨린 부분에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도록 그렇게 계속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해요. 19~24장까지는 시내산에서 말씀을 훈련하는 진리훈련, 하나님의 원칙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맞추는 거예요. 연애하신 분들, 연애결혼하신 분들 손들어 보세요? 연애할 때 내가 propose를 했어요, 누구한테 맞추어요? 상대에게 맞추지요. 연애를 잘 해보아야 예수님과 연애를 잘하는데, 중매로 결혼하신 분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거예요. 그렇다고 새로 할 수도 없고... 예수님하고 하세요. 100% 대상에게 맞춥니다. 왜요? 그래야 ‘꼬실라이제이션’할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꼬실라이제이션’하실 때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100% 우리에게 맞추었어요. 그러시고는 “이제는 네가 나에게 맞추어라.” 그게 12장 이후에요. 그래서 100% 그 분에게 맞추어야 되요. 이 부분을 우리가 놓쳐버려요. 하나님이 왜 부르셨는지, 어떤 코스로 우리를 인도하시는지? 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작업이라니까요? 옛날 ‘트랜지스터라디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튜닝(tuning)’한다고 그러지요? ‘찌지직 찌지직’하다가 사이클이 맞으면 어떻게 되요? 소리가 명쾌하게 나오죠. 그런 개념이에요. 광야에서 자꾸 안 풀리고, 잡음이 들리고, 헷갈리고, 힘들면 튜닝을 잘해야 되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느냐? 튜닝하다가 딱 맞으면 그때 오는 것이 평안이에요 평안.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평화가 오면 야 이거구나. 또 조금 가다가 삐거덕거려요. 그럴 때 또 튜닝하는 거예요. 이게 광야라니까요?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 초점 맞추는 훈련을 한 후에, 그 다음에 시내산에 가서 하나님의 철학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원칙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되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 하시는지, 다 가르쳐 주시지요. 저는 개고기를 안 먹습니다. 개를 무지무지하게 사랑해서요. 밖에다 두고 사랑하지, 안에 두고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매년 그런 것을 경험해요. 아주 난감합니다. 아주... 교인들이 얼마나 목사를 사랑하는지 “목사님의 몸은 홀몸이 아닙니다.” 내가 뭐 임신했나? 그러면서 오늘 거창하게 접대하겠다는 거예요. “어디로 가시려고 합니까?” 물으면 “아이. 목사님 묻지 말고 따라오세요. 묻지마 관광도 못 들었습니까?” 뭐 이러면서 3~4시간 데리고 가는 거예요. 가보았더니 보신탕(補身湯)집이에요. 보신탕집에 다른 음식 해요, 안 해요? 안 해요. 다른 음식 하는 것 있느냐고 물었더니 삼계탕(蔘鷄湯)이 있대요. 나는 삼계탕을 주문했는데, 자기들 다 먹고 이쑤시개 하는데 그 때 내 음식이 나오더라고요. 국물만 마시고 나왔어요. 그냥...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그때 그 영화의 제목이 생각나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 접대한다면서 “먹어요 먹어, 이거 영양가 좋아요.” 그러면서 막 윽박지르는 거예요. 그런 게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은 뭐냐? 상대방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는 거예요. 철저하게 그분에게 맞추는 거예요. 감사하게도 그분이 자신을 계시하셨어요. “나는 이런 것 싫어하고 이런 것은 좋아한다. 나하고 살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다 가르쳐 주셨어요. 그것이 성경 66권 아닙니까? 자세할수록 좋은 거예요. 이게... 결국 이렇게 해서 목표에 도달하게 해요. 그 목표는 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이자, 하나님의 대행자가 되는 거예요. 예배하고, 하나님과 주거니 받거니 교통을 하고 대행자가 되고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 펼치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우리가 살도록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란 그 말이에요. 그것을 성경은 가나안의 삶이라고 얘기해요. 나중에 가나안의 삶을 또 설명하겠습니다.
자. 여덟 단계, 암기하셔야 됩니다. 제가 장을 부르면 여러분이 내용을 말씀하십시오.
1~2장 (상황준비, 주변 준비), 3~4장 하나님이 누구를 준비해요? (목자를 준비해요). 5~11장 (모세가 하나님이 참 신임을 드러냄). 12장 (피의 언약), 13~14장 (세례의 언약), 15~18장 (광야 훈련), 19~24장 (말씀언약), 25~40장 (왕 같은 제사장으로 훈련시킴. 예배자로 세움).
그런 얘기입니다. 뒷부분은 어제 했던 거지요. 앞에만 조금 더 자세하게 구분했지요? 두 분씩 짝지어서 이 8단계를 한 번 확인해 보십시오. 1~2장 하나님이 상황을 준비하시지요. 예수님 믿도록 상황을 준비하시지요. 3~4장 목자를 준비시킴. 항상 구원 사건에는 목자가 미리 와 있어요. 현대 교인들에게 목자 잘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나한테 꼭 맞는 목자를 하나님께서 맞춤형으로 준비시켜 놓았거든요. 이런 것을 자기들이 마음대로 바꾸어버리면 이게 보통 곤란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닙니다. 5~11장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냄. 바로 앞에 과시를 하지요. 일부러 과시를 합니다. 쫙~~~보여주는 거예요. 한 방으로 해결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안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그건 우연히 되었겠지 뭐... 이렇게. 가끔 환자들에게 기도해주면요, ‘기도(祈禱)해서 나았다’가 아니라, 뭐 ‘자연식(自然食)을 해서 나았다.’는 이 따위 소리를 해요. 사람이 그런 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거 뭐 자연의, 우연의 일치다, 뭐 이것은 자연적인 사건이다. 이렇게 할까봐서 일부러 10번으로 늘리는 거예요. 이게... 한 사건 또 한 사건... 사람이 워낙 완악하니까요. 그래서 진짜 하나님의 일이라고 무릎을 딱 꿇을 때까지 10번을 하는 거예요.
12장 피의 언약, 피 바르면 누가 책임져 주어요? 하나님이, 무조건 우리는 피 바르면 되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살기가 힘들어서 죽겠다 하는 말은 그건 아주 나쁜 사람이에요. 뭐를 하면 되요? 피 바르면 되요. 피... 간단한 원리입니다. 피 바르면 하나님께서 피 값을 받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이건 보장되는 거예요. 피만 바르면 무조건 보장받는 거예요. 그런데 왜 피를 안 발라가지고 당하고 삽니까? 13~14장 세례, 피는 양을 죽이고,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고, 13~14장은 내가 죽은 거예요. 앞에 12장의 십자가는 십자가에 누가 죽어 있어요? 예수님이 돌아가셨고, 13~14장에는 누가 죽어 있어야 되요? 내가 죽어 있어야 되요. 그런데 이거 내가 안 죽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15~18장까지 광야를 준비해서 계속 반복학습을 시키는 거예요. “하나님을 선택할래, 너 자신을 선택할래?” “네가 죽어야겠냐, 저 사람이 죽어야겠냐?” 이런 훈련이에요. 광야의 해답은 간단해요. 조금 전에 12장에서 문제가 터질 때면 뭐하면 되어요? 피 바르면 되고, 광야 훈련을 빨리 끝내는 방법은 내가 포기하면 되요. 내가 양보해 버리면 되요. 그런데 그냥 자기를 주장하고, 내가 이겨야 되고, 내 목소리가 높아야 되고, 내가 우선권을 가져야 되고, 내 의견이 관철되어야 하고... 그러면 계속 꼬이는 거예요. 광야의 목표는 뭐라고? 누굴 잡는 거라고요? 나 잡는 거예요. 나... 자기 주장하면 광야가 길어져요. 나를 잡아야 그리스도가 내 속에서 살기 시작하거든요. 어차피 나를 선택한 목적이 주님의 얼굴이 되고, 주님의 표현이 되고, 주님의 편지가 되고, 주님의 대사가 되고, 주님의 향기가 되고... 이런 목적으로 나를 선택했는데, 계속 “나여! 나여! 나여!” 그러니까 쓸 수가 없는 거예요. 조금 더 훈련, 더 시켜야 되겠다. 또 광야에 집어넣어서 한 바퀴 돌리고, 아, 한 10년 더 돌려야겠다... 또 광야에 집어넣어 놓고... 이게 우리 광야 생활이에요. 광야에서 누굴 죽여요? 처음 십자가는 누가 죽으셨어요? 예수님. 둘째 십자가에는 누가 죽어야 되요? 내가 죽어야 되요.
♩♬ “예수님의 십자가 이제는 나도 지고 이 생명 다 바쳐서 주님을 따르오리.”♩♬
예수님의 십자가는 많이 이야기하는데 자기 십자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안 해요. 그저 내가 이겨야 한다고 하고, 나를 챙겨야 한다고 하고... 그러면 광야가 계속 연장되는 거예요. 19~24장 자기가 죽을 때 비로소 계시가 나타나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이고, 진리가 보이고,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며, 어떻게 하면 싫어하시고, 어떻게 하면 좋아하시는지, 그냥 알 수 있어요. 우리가 배워야 되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그랬잖아요. 성경말씀 많이 배워서 뭐하겠어요? 사람들은 그것을 관념적으로, 지식적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실제적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가지고 잘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하나님과 코드를 맞추고, 영원한 나라를 위해 기업을 준비하고 이런 실제적인 것을 도와주는데 아무 쓸모도 없는 뭐, 성경적인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역사 배워서 뭐하겠어요?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우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망한다. 이렇게 하면 다윗처럼 그의 후손까지 보장해 주신다.” 길이 보이잖아요? 그걸 공부하는 것이 계시라니까요? 무슨 눈만 감았다하면 ‘뭐가 보인다.’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성경공부예요. 성경공부... 그러니까 성경공부를 배운 그룹하고 배우지 않은 그룹하고는 수준 차이가 나는 거예요. 이번에 여러분이 출애급기 공부하고 나면요, 출애급기를 아는 사람하고 모르는 사람하고 대화가 안 되요. 성경공부는 그런 거예요. 그 만큼 하나님을 더 아는 거거든요.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 줄 알아요? 모르는 사람의 예배는 하나님이 안 받으셔요. 가인이 자기 멋대로 드린 제사 하나님이 안 받으셨잖아요? 아벨은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대로 제사를 드리니까,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서 그의 제물을 받으셨지요. 달라요. 구약은 눈에 보였어요. 신약은 안 보이니까 사람들이 겁이 없는 거예요. 신약에 예배를 받고 안 받고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지요, 신약성경에 여러 번 나오잖아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흠향하시는 예배... 이런 것이 다 하나님이 예배를 받고, 안 받으시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예요. 계시다, 성경공부라 하는 것은 지식을 몇 가지 더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거예요.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공부하는 거예요.
마지막 25~40장은 결국 예배훈련, 하나님 임재훈련, 하나님과 교통하는 훈련을 통해서 계속 반복하면서 내 속에 하나님의 사상, 인격,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모든 것이 그런 예배 생활을 통해서 내게 그대로 delivery 되어요. 그래서 이제 내가 나가서 가정생활하고, 직장생활하고, 내가 세상에서 관직에 오르고, 교사가 되고, 법조계에 나가고 그러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한단 말이에요. 하나님을 보여주고 하나님의 통치를 내가 대신하는 거예요. 우리나라에 신앙교육에 문제가 뭐냐?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법조계에 내보내고, 교사로 내보내고, 공사장에 내보내는데, 가서 전부 다 하나님을 내 보이는 것이 아니라, ‘in my pocket’하는 훈련을 얼마나 많이 받았던지, 대형 사건에 크리스천이 연루되어 있지 않는 사건이 없어요. 이게 우리 교육의 문제예요. 전혀 여기까지 못 올라간다는 이야기에요. 정상적으로 훈련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장관들 가운데 크리스천이 얼마나 많고, 국회의원들 가운데 얼마나 크리스천이 많습니까? 이런 좋은 기회를 왜 우리가 놓칩니까? 이건 교육이 잘못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출애급기를 통해서 구원이 무엇인지, 어디서 시작해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디까지 가는지를 전체 그림을 딱 잡아야 부분을 얘기할 때 혼란스럽지 않아요. 전체 그림을 모르면 계속 헷갈리는 거예요. 그러고 큰소리치는 거예요. 이게 맞다고 그러고... 끝까지 가보고서는 “어? 아니네...” 모세는 80에서 120세까지 살았으니까 다행이지만 80세에 가서 “어? 아니네.”하다가 죽으면 어떡할 거예요? 그래서 성경공부가 중요한 겁니다. 내가 먹는 대로, 먹는 것이 불실해요. 뭘 많이 먹었는데 아무 힘이 없는 것을 먹었어요. 힘이 와요, 안 와요? 세상 지식의 한계에요 이게. 필요하면 우리가 써야 되지만, 그러나 우리 인생을 바꾸고 죄를 이기고 흑암의 권세를 깨뜨리는 것은 말씀밖에 없거든요. 우리가 말하고 믿고 실천해야 되는데, 그렇게 말해 놓고 우리는 말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재료를 갖다가 쓰는 거예요. 영양가 없는 것을 먹어 헛배만 부르니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래서 우리가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해요. 근본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고 예수님도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우리를 찾아오신 사건이 성육신 사건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가르치고 성경을 교육하죠.
한번 해 보세요. 출애급기 공부를 하고 교인들에게 출애급기 구조를 딱 암기시키세요. 그리고 가르쳐보라고 해보세요. 그때부터 사람들이 powerful해 집니다. 사람들이... 완전히 달라져요. 강의 듣는 것만으로가 아니라, 교인들에게 이 무기를 주고 실제로 가르치라고 해 보세요.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런 좋은 것들을 하나님이 다 준비해 놓으셨는데, 20~21세기에 문명화되면서 사람들이 무식하게 성경공부를 거절하는 거예요. 현대 심리학을 얘기하고, 현대 과학을 얘기하고... 우리가 문화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정보나 지식은 줄 수 있지만, 생명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방법을 바꾸어야 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그리스도를 우리가 주어야 되고 말씀을 먹여야 되요. 성경을 공부하게 되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큰 결실을 얻게 됩니다. 우리 성경으로 돌아갑시다.
다시 한 번 점검합니다.
1~2장, 3~4장, 5~11장, 12장, 13~14장, 15~18장, 19~24장, 25~40장,
자. 이것을 조금 더 간단하게 정리를 한다고 하면, 큰 그림 그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만 만들어 놓으면 그 다음에 살 붙이는 것은 우리가 평생 해 왔잖아요. 이건. 그때는 주석을 보아도 되고 뭐 자료가 많잖아요. 그런데 어디 있는지 모르고 해매니까, 이건 시내산 얘기하다가, 기초편 얘기하다가... 왔다 갔다 정신이 없어요.
자, 첫째 단계는 은혜 단계요 은혜. 하나님이 해 주시는 거예요. 11장으로 끊어도 괜찮고 12장까지 끊어도 괜찮고, 어찌되었건 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배려해 주신 것이니까.
첫째는 은혜입니다. 은혜. 종이 장자가 되는 거예요. 당하고 살았던 사람, 빼앗기고 살았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법적보장을 받아요. 장자라고 하는 법적보장, 이게 굉장한 겁니다. 이게. 자녀 됨의 특권입니다. 이걸 은혜라고 그래요. 교회에 새 교인이 들어오면 먼저 해 주어야 할 일이 뭐라고요? 은혜 받도록 배려해야 되요. “하나님이 찾아오시니 걱정하지마세요.” 가르쳐주는 거예요. 이미 당신에게 은혜가 임했다. 지나 온 삶을 한 번 얘기해보아라. 어려웠다... 그 봐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신 사인이다. 당신이 엎드려 부르짖고 도와달라고 기도하면 바로 찾아오신다. 이미 당신 삶에 하나님께서 역사했다.‘라고 은혜를 설명해 주는 거예요.
13~18장은 뭐예요? 12장을 빼놓읍시다. 11장까지 하고, 12장 피를 여기다 집어넣어야 겠네. 십자가가 들어가야 되니까. 은혜, 피, 자기부인, 시내산, 성막. 이렇게 바꿉시다.
① 자. 1~11장은 은혜,
② 12장은 어린 양, 유월절, 피의 복음이지요. 예수님이 돌아가신 거지요.
③ 13~18장은 누가 죽는 거예요? 내가 죽는 거예요 내가. 12장은 누가 죽어요? 예수님이 죽어요. 13~18장은 누가 죽어요? 내가 죽어요. 그러면 그 십자가에서 사탄이 깨진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고 내 십자가가 없으니, “사탄아 물러가라”해도 사탄이 또 들어오고, “사탄아 물러가라”해도 사탄이 또 들어오는 거예요. 사탄이 들어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내가 마련해 놓고, 쓰레기통 안 치우고, 아무리 모기 잡고, 파리 잡고, 쥐 쫓아내봐야 또 들어옵니다. 서식처가 있으니... 예수님의 십자가와 내 십자가, 두 개가 딱 준비되면 그 다음에는 사탄은 바로 깨지는 거예요. 삶에 능력이 있는 거예요.
④ 19~24장 말씀훈련, 시내산, 생각을 바꾸는 거지요.
⑤ 25~40장 예배생활, 성막생활, 말씀을 습관화하고 체질화하고, 인격화하는 거지요. 은혜, 피, 세례, 말씀, 예배 생활. 다시요. 은혜, 피, 세례, 말씀, 예배 생활.
자. 전혀 초보자가 교회에 왔어요? 무엇부터 가르쳐요? 은혜가 뭔가, 하나님이 너를 사랑한다고 하는 은혜를 가르치는 거예요. 수고할 것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이미 너를 찾아오셨다. “엄마가 아이를 위해서 5~6년 동안에 그냥 무조건 베풀지 않느냐? 하나님은 그런 사랑을 주신다, 걱정하지마라.”고 하면서 “어떤 죄도 다 해결된다.”고 하며 “걱정하지 마라. 하나님은 네 편이다. 지금 나하고 만난 것도 하나님 은혜다.”
은혜를 알게 되면 그 다음에 뭘 가르쳐 주어야 되요? 피의 능력, 보혈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을 가르쳐 주어야 해요. 저희 교회 인터넷 홈페이지 사이트에 들어가면, 지금 사순절 기간에 십자가에 대하여 설교를 하고 있는데, 쭉 한 번 들어보세요. 십자가가 뭔지... 예수님의 십자가와 내 십자가, 사탄을 깨뜨리는 십자가, 쭉 나옵니다. 그래서 피의 복음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 심판, 가난, 질병. 이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친히 감당하셨다. 속지 마라, 이미 주님이 해결하셨다. 피의 복음, 피 바르면 해결된다.
그 다음 더 성숙한 것이 뭐예요? 내가 그 복음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내가 십자가에서 누구를 잡아 죽여야 된다. 나를 잡아 죽여야 된다. 여기서 반대는 뭐에요? 자기부인(自己否認)의 반대는 ‘남의 부인(婦人)’이 아니라 ‘자기주장’이지요. 자기 남편이 아니라 자기주장이지요. 거의 여기 다 걸리잖아요? 자기주장, 자기과시, 자기 대접받고... 거의 우리가 여기에 걸려 있잖아요. 이걸 빨리 내려놓아야 되요. 실제로 한 번 주변을 보세요. 섬기는 사람 손해 보는 사람은요, 나중에 지도자가 됩니다. 어디 가도 얄밉게 자기 것 챙기는 사람 있지요? 그런 사람 표 안 줘요. 그게 성경의 원리거든요. 자기 십자가 지면 가능해요. 이게 세례지요?
그 다음 뭐예요? 말씀훈련, 광야를 지나며 세례에 대한 학습을 한 다음에 구체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는 거예요. 체계적으로 창세기, 출애급기, 레위기... 하나님의 사상을 공부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 아 하나님이 이런 것을 싫어하시는 구나,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 점수 따는구나, 이렇게 하면, 에서처럼 장자권 잃어버리고, 사울 왕처럼 망하는구나... 다 답이 나와 있지요. 말씀을 세부적으로 공부하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거예요. 예배, 예배는 형식이 아닙니다. 개인예배, 공예배, 다 얘기하는 거예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께 맞는 제물을 드리고 또 용서받고 또 하나님 뵈러 가고 나중에 성막예배를 가르쳐 드릴 거예요. 성막예배를 매일 드리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상이 다 내게 와 버려요. 매일 예배 생활하는데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배해 버리죠.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이 되어 버려요. 하나님의 대행자가 되어요.
다섯 가지 과정, 사람을 도울 때, 다섯 가지 과정을 통하여 도와야 됩니다. 왕 같은 제사장은 이 다섯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은혜, 피, 세례, 말씀, 예배생활”
다시 한 번 시작. “은혜, 피, 세례, 말씀, 예배생활.”
이것만 알아도 여러분의 목회가 보이는 거예요. “아, 내가 저 부분을 놓쳐구나.” 맨날 기초부분만 얘기하니까 올라갔던 사람이 기초편으로 내려와 버리는 거예요.
“오. 내가 잘못 갔네.” 그러고. 기적은 어디서 힘이 있어요? 기적은 어느 단계에서 힘이 있어요? 은혜 단계입니다. 지금 말씀 수준에 가면요, 기적 얘기 안 해요. 이미 그건 해결되는 거예요. 선포하면 그대로 이루어져요. 오늘 저녁에 제가 실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한 번도 능력 사역 못하신 분들께 이 자리에서 실습 사역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건 이미 은혜 단계에서 해결된 거예요. 그런데 그런 기적을 가지고 자꾸 얘기하니까, 사람이 올라갔다가 그만 거꾸로 내려가 버려요. 눈에 보이는 것 가지고 얘기하고, 은혜는 밖에서 보여요. 기적이 막 나타나고 벼락이 떨어지고, 막 그런단 말이에요. 환상도 밖에서 보이잖아요? 안으로 들어올수록 내면화되는 거예요. 내 속에서 내 사상, 내 철학 속에서, 내 깊은 영혼 속에서 하나님을 뵙는 거예요. 우리는 기초편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까 성숙해 있어야 할 지도자들이 자꾸 보이는 것만 찾아다니는 거예요. 나중에 어떻게 되느냐? 종말의 때가 되면, 사탄,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거짓 선지자를 세워가지고 기적을 다 행해요. 그러면 그렇게 표적 좋아했던 사람들은 다 따라가 버립니다. 말씀훈련이 안 된 사람들은 다 따라가게 되어있어요. 우리가 체계적으로 질서대로 어떻게 교인들을 양육하는가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모델이 있어야 해요. 그림이 그려졌습니까?
출애급기를 알면 인생이 보여요. 출애급기를 알면 목회가 보인다. 자신이 있는 거예요. 오~ 이 사람은 2학년이네. 아~ 이 사람은 3학년이야. 아~ 이 사람 아직 광야가 해결이 안 되었네. 광야가 뭔지 쭉 설명을 해주는 거예요. 많이 힘드셨죠? 그래 맞아요, 목사님 그거예요. 이건 이렇게 극복하는 겁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전혀 반대예요.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안 풀립니다. 싸워서 이기고, 주장하고 이렇게 하면 절대 안 풀려요. 배 운전해 보셨어요, 배? 울산 사시면서 배 운전해 보신 적이 없었어요? 배 운전은 차 운전하고 반대예요. 오른쪽으로 가려면 어디로 돌려야 해요? 왼쪽으로 돌려야 되요. 왼쪽으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돌려야 되요. 이게 기독교의 진리거든요. 세상의 질서는 자기주장대로 가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자기를 내려놓는 방법이에요. 전혀 같지 않지요. 그런데 교회와 가지고도 계속 깨지는 거예요. 사업 깨지고, 애 깨지고, 부부간에 갈등 생기고, 교회 헌금 많이 하고, 전도 많이 하고 해서 복 받을 줄 알았는데, 뒤통수 다 깨지는 거예요. 이유가 뭐냐면? 반대로 가고 있거든요. 반대로... 핸들이 다르다니까요. 세상 질서는 뭐예요? 이 인간 때려잡아야 돼, 버르장머리 고쳐놔야 돼, 그러니까 한 마디 말대꾸하다가 부딪치고, 또 깨지는 거예요 그냥.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는 뭐예요? 누구 잡아야 되요? 그 십자가 남편 잡지 말고, 누구 잡아요? 나를 잡는 거예요, 자기를 잡아 딱 못박아 놓으면 저 쪽이 살기 시작해요.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나니...”
복음의 비밀이니까요. 이 원리 가정에서 가르치면 애들 다 살아납니다. 세상을 못 바꿀 것이 없다니까요. 이런 것은 안 가르쳐 주고 맨날 예수님만 잡아 죽이는 거예요, 그냥. 2000년 동안 또 예수님 돌아가셨다 하고, 예수님 돌아가시고 공짜로 은혜 받은 것은 여기서 지금 어떤 단계예요? 은혜 단계란 말이에요. 은혜 다음 단계로 올려주어야지요. 그 십자가가 나도 죽였다. 내가 죽으므로 내 아내가 살고, 내 아이들이 살고, 이걸 그 다음 편을 가르쳐주어야지... 이걸 안 가르쳐주고, 1절만 계속 하는 거예요 1절만... 노래까지 바꾸어 가면서 뭐,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멸시천대 십자가는 예수님이 지셨으니...”
또 그렇게 바꿔버렸어요. 사람들이 그냥... 자기는 안 죽으려고 그냥. 그러면 해답이 안 나오지요. 성경이 진리잖아요? 이게. 제가 한 얘기가 아니고... 목회가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모르면 어렵고, 알면 보이잖아요. 10분만 대화해 보면 몇 학년짜리로 딱 나오는 거예요. 의사한테 환자가 오면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딱 들어보고 “아. 그것은 복통의 문제가 아니고 음식습성의 문제입니다.” 벌써 진단이 나옵니다. 이제는 딱 진단을 하는 거예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면, 1~2장, 3~4장 어느 수준이다. 짝~~~ 출애급기 한 권 안에 이런 어마어마한 비밀이 있는데, 창세기 레위기 민수기..., 마태복음... 뭐 66권이나 우리에게 주었다니까요? 평소 다 못 써먹고 죽습니다. 성경에 능한 목자들이 되십시다.
다시 한 번 5학년 시작. 은혜, 피, 세례, 말씀, 예배생활. 이걸 더 자세하게 1~2장 하나님의 상황준비, 하나님 만날 수 있도록, 3~4장 목자 준비, 나는 당신을 위한 맞춤형 목자다. 딱 선언할 수 있어야 되요. 이 환자 내가 감당 못하겠네, 다른 교회로 보내야겠네, 그러지 말고, 딱 들어보고 내가 당신을 위해 준비된 목자입니다. 자신 있게 우리가 접근해야 되요. 목자준비. 5~11장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줌, 능력대결. 12장 피의 언약, 13~14장 세례언약, 15~18장 광야훈련, 무엇을 훈련하는 거예요? 나 잡는 훈련하는 거예요. 19~24장 말씀훈련, 말씀언약. 25~40장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움, 하나님의 사상을 얻기 위해서 예배생활 가운데 들어가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세상이 다 우리 것이에요. 하나님이 세상을 우리에게 맡기시고 네가 타락한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어라. 이 동네에 누구 책임이에요? 여러분 책임이에요. 천사가 와서 하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사람이 해야 되요.
보입니까? 자, 화살표 보세요? 1~11장은 내려오는 화살표고 12~40장까지는 올라가는 화살표거든요? 요한복음 3:13에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자,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했어요. 영국에 신약 신학자 가운데 ‘도날드 구드리’(Donald Guthrie)라는 분이 있어요, 이 분이 쓴 신약 신학 가운데, 그 분이 요한복음을 강해하면서 이 구절 안에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다 들어있다고 그랬어요. 자. 내려 오셨다는 것과 올라가셨다는 것, 내려오실 때는 하나님을 모시고 내려왔어요.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으니까, 하나님이 찾아오신 거예요. 예수님을 통해서, 그 다음에 올라가셨다는 말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이제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하나님을 모시고 내려온 사건이 성육신 사건이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수준으로 끄집어 올리기 위해서 주님이 올라가셨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우리 과정에 들어오시면 복음 12강이라는 과정이 있어요. 복음 12강.
복음 12강에 가면 이런 원리를 설명을 합니다. 예수님이 오셨던 사건, 성육신,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세례, 교회, 재림. 이게 우리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인데... 우리가 신앙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설명하는 강의입니다. 이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화살표 안에 모든 비밀이 여기에 다 들어있어요. 자, 볼까요?
에베소서 4:9~10 봅시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자, 오셨다가 가셨다는 거예요. “내리셨던 그가 하늘 위로 올라가셨다.” 목적은 만물을 충만케 하기 위함이다. 타락한 사람 때문에 만물이 피폐해져 버렸어요. 온 세계 자연계가 망가져 버렸는데, 오셨다 가신 이후로는 “만물까지 충만케 하기 위함이다.”라고 그랬어요.
로마서 10:5부터 봅니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왔다가 가신 것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뭘 얘기 하냐하면 우리가 무엇 무엇을 행하고, 율법을 지키고 함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고 하늘에 올라간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미 오셨다가 가신 사건 안에 모든 비밀이 다 들어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면 되느냐? 마음으로 믿고 그것을 입으로 고백만 하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사건, 이 안에 모든 비밀이 다 들어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출애급기를 보면, 출애급기 1~11장은 하나님이 찾아오신 사건이에요. 그것이 하나님이 역사적인 정황을 만들어 주셨고 사람을 통하여 찾아오셨잖아요. 목자를 통해서... 그 다음에 12~40장은 뭐예요 이제는? 이 사람들을 끄집어 올리는 거예요.
구약의 출애급기는 신약의 로마서와 같아요. 로마서가 같은 구원의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로마서로 말하면 1~4장은 찾아오신 하나님이에요.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정죄 아래 있는 세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한 의를 준비하시고 그 분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가 행하는 공로 있는 행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또 다른 의를 통하여 우리가 의로워지는 원리를 4장까지 설명합니다.
그리고 5~16장은 이 사람들을 끄집어 올리는 거예요. 5장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한다, 영광을 기대하게 했고, 5장 17절에서는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할 것이다. 왕권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고,
6장 죄 문제 해결하는 법, 7장 율법, 자아 문제 해결하는 법, 8장 육성 처리하는 법.
그 다음 이 원리를 무시하고 살다가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에 대하여 9~11장에 나오고,
12장부터는 크리스천들이 구체적으로 세상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의 얼굴을 가지고 살 것이냐? 우리가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이냐에 대한 문제가 12~16장까지의 얘기예요.
그러면 내려오는 화살표는 몇 장부터 몇 장까지예요? 1~4장까지예요. 올라가는 화살표는 5~16장이에요. 어느 것이 더 커요? 분량으로 볼 때... 자 출애급기는 어느 부분이 커요? 1~11장, 12~40장 어느 부분이 더 커요?
그런데 목사님들의 목회 비중을 어디에 포인트를 두어요? 내려오는데 더 두었잖아요. 그러니까 교인들의 수준이 더 안 올라가는 거예요. 교회가 지금 욕먹고 있잖아요? upgrade가 안 되었잖아요. 질이 달라져야 되는데, 교회를 나온다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어요. 그대로 유치하고, 천박하고, 욕심 많고, 이기적이고... 작년에 김수환(金壽煥) 추기경 돌아가시고, 금년에는 법정(法頂) 스님 돌아가시고, 교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잃었는지 몰라요. 그 분들은 무소유(無所有)지 않냐? 카톨릭은 가족이 없고, 스님들도 가족이 없으니까 욕심 낼 것도 없지요 뭐. 삶 자체가 무소유지요 뭐. 기독교인들은 너무 욕심이 많다고..., 그래가지고 교인들 다 이탈한다니까요...
기독교는 욕심의 종교가 아닙니다. 복 받아서 받은 복 가지고 섬기는 거예요. 우리가 희생하는 거예요 우리가... 욕심쟁이가 아니에요. 그런데 ‘복 받아라.’고..., 챙길 것은 잘 챙겼어요. 그 다음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하여 얘기를 안 해주니까, 이 사람들이 이 돈 가지고는 헷갈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복음을 가르쳐주어야 해요, 복음을... 내가 만든 복음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로마서가 말하는 복음, 출애급기가 말하는 복음이 뭔지, 우리 목회가 거기까지 거울을 잡아야 되요.
왜 12장 와서 딱 멈춰 버립니까?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믿음으로 구원 얻습니다.’ ‘인간은 의를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맞아요? 그걸로 끝나면 우리는 구원파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구원파가 얼마나 많아요? 삶을 얘기해주지 못하는 거예요. 윤리가 없고, 철학이 없고... 구원, 그 이후가 중요합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거든요. 이 땅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통해서 땅을 정복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 훈련시켜 가지고, 각 기관 법조계, 교육계, 경제계 등에 다 들어가서 그 사람들이 그곳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그러면 다 정화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파송했지만, 아무도 현장을 바꾸지 못한 거예요. 왜요? 능력이 없으니까요.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그것만 얘기하고 있으니까, 그것으로 사람 바꾸어집니까? ‘천당이야 내가 뭐 빼먹어도 문제가 없으니까’... 크리스천이 하나도 다른 것이 없는 거예요. 12장 앞부분으로 끝났기 때문에 그래요. 피 바르면 구원 받는다 그것만 얘기했지, 피 바르고 그 방 안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양고기를 먹어야 되고... 이런 것을 안 가르쳐준 거예요.
결국은 말씀으로 돌아가서 말씀이신 그리스도,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서 내게 역사하실 때, 혼자 조용히 있으면서도 눈물이 나오고 개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담대함과 자신감을 주시고, 그 힘을 가지고 남편을 섬기고, 아이들을 섬기는 그런 에너지가 있어야 되는데...,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밖에 교회에 안 나오는데, 그 한 시간 가지고 뭘 할 거예요? 큰일 났습니다. 이제. 밤 예배도, 금요철야예배도 없어지지요, 새벽기도 안 하는 사람 많지요, 뭘로 이 사람들을 도와줄 거예요? 천당 티켓이 아니고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이제 협박을 해야죠. 그렇게 하면 당신 천당 티켓에 문제가 생긴다고요. 협박하면 내가 율법주의자가 돼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큰일 나는 거지요. 우리가 지금 거기까지 와 있는 거예요. 지금 구조로 가면, 교회는 앞으로 점점 더 쇠퇴하게 되어있어요. 말씀운동 일으켜야 되고, 그들이 개인적으로 하나님 만나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그들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워서, 각 가정이 교회가 되고, 각 직장이 교회가 되고, 거기서 powerful한 역사가 나타나고... 미국 사람들은 이것을 ‘market place’라고 해요. 현장을 전도 현장으로 잡는 거예요. 자기 직장이 바로 현장이 되고, 거기서 내가 목회를 하는 거예요. 사업하면서 목회를 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 사람들을 훈련시켜야 되요. 파송하기 전에 제자훈련 시켜 가지고 작은 목사가 되게 해서 파송을 하는 거예요. 가서 네가 목회를 해라. 정말 하나님의 얼굴 가지고 네가 살아라. 그렇게 해서 세상을 정복하는 거예요. 우리가 사람을 많이 보내 주셨는데, 그동안에 교회가 숫자 헤아리는 것으로 끝나버렸어요. 이 좋은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고, 그냥 가둬만 놓고, 숫자는 1,200만까지 올라갔지만, 지금은 점점 떨어지고 있잖아요. 저 사람들은 무소유(無所有)라는 개념 하나만 가지고도 벌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습니까? 우린 이런 놀라운, 더 큰 복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힘없는 복음이 되어버렸어요.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하나님 이번 집회에 우리를 말씀 가운데 만나게 하셨는데 이 집회를 통하여 저희들이 말씀으로 돌아가게 해주시고, 성실한 진리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진리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내 교회 목회현장이 달라지고 내가 섬기는 교인들이 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워져서 가정을 변화시키고, 직장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워주시옵소서.
< 출애급기 강의 (7) >
12장: 유월절에 경험하는 새로운 출발
1) 새로운 신분 : 피 안에 있음으로 종, 노예가 아닌 가 됨.
건강한 정체성, 올바른 자화상이 필요함
2) 새로운 공급, 새로운 경영 : 바로의 녹을 먹고 살지 않고 하나님이 지정하시고 공급하시는 양식으로 삶. 피를 바름, 양고기를 먹음,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음
피, 양고기, 무교병, 쓴 나물 - 나의 기호, 윤리, 도덕, 철학, 세상의 흐름이 아닌 하나님의 의(義)이신 그리스도를 먹어야 산다.
3) 새로운 목적 : 바로를 섬기는 자가 아닌 하나님을 하는 자
바로의 국고성(國庫城) 건축을 돕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여호와의 의가 됨(아국폭격주의)
애급의 장자들은 심판을 받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가 되어
약속하신 기업을 얻기 위하여 가나안을 향하여 여호와의 군대로 출발함
이제 11장까지는 은혜의 장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맞추고 우리가 따라 올 수 있도록 우리에게 접근하시는 내려오는 화살표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얘기한다면, 12장부터는 우리가 어떻게 잃어버린 원래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광스런 모습으로 돌아갈 것인가?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의 코드에 맞추는 것입니다. 유월절을 경험한 새로운 출발,
1) 새로운 신분
피 안에 있으므로 종, 노예가 아닌 후사(後嗣)가 됨. 건강한 정체성, 올바른 자화상이 필요함. 신분이 달라졌는데도 우리 자신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접근하지 못하면, 아들이 되었어도 계속해서 종으로 살게 됩니다. 아들은 신분상으로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생각,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강화도령’이라고 그러지요? 철종(哲宗)이 신분을 감추고 어느 날 왕족이라는 신분이 드러나게 되고, 궁궐로 데려옵니다. 그러나 자기가 장차 나라의 대업을 이어갈 사람인데도 본인의 의식에는 불편하게만 느껴졌어요. 그래서 애들하고 물장구치고 개구멍으로 뛰어다니고, 뭐 이런 것만 자꾸 그리워한 거예요. 밤에 배고프니까 누룽지 훔쳐 먹다가 상궁한테 혼나고, “마마. 그렇게 뛰어 다니시면 아니 되시옵니다.” 뭐, 이러면서... 언제 행복해져요? 계속 stress 받고 힘들지요. 본인이 자기가 누구라고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질서에 순응할 때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옛날식으로 살면 계속 불편한 거예요. 성경을 보아도 하지 말라는 것만 보이잖아요? 자녀 됨의 특권도 잘 보이지 않고... 새로운 신분을 인지(認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라고 그러지요. “이전 것은 지나 같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에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창조물이 된 거지요.
2) 새로운 공급, 새로운 경영
바로의 ‘녹’으로 먹고 살지 않고, 하나님이 지정하시고 공급하신 양식으로 산다. 음식이 달라져요. 가끔 회심해서 얼마 안 된 분들은 농담으로도 “어이. 거하게 한 잔하지...” 뭐 이러면서, 예수님 믿고도 그런 옛날 문화를, “오늘 회의에 뭐가 딱하나 부족하다...” 뭐 이러면서 그런 것을 늘 아쉬워하잖아요. 그렇게 해야 뭐 위로가 되고... 그런 구조가 계속 됨은, 변화되었는데도 옛날 공급원으로 받고 사는 사람이에요. 교인들 볼 때 참으로 답답한 것이, 교회에서는 그렇게 얌전하게 있던 사람들이 관광버스만 타면 관광노래를 부르는 것... 저런 stress를 품고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그걸 억누르고 산 것이지요. 그게... 사실 크리스천 문화는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식으로 적극적인 표현 방법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알파’를 하면서 유행가, 대중가요를 불러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들이 분분한 적이 있었어요.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못 부르게 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우리도 대중가요 불렀어요. 불신자들이 좋아하잖아요. 얼마쯤 지나서, 하나님께서 못 부르게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 대중가요 부르는 것이 뭐가 잘못된 것입니까?”라고 말씀드렸더니, 노래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대개 예수님을 믿고 교회 안에 들어 온 사람들이 대중가요를 부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요? 이전에 그때 그 노래를 부르던 시절로 돌아간다는 거지요. 그러면 다시 옛 것으로 가는 거예요, 이게. 어떤 사람은 회개기도하면서 옛날 애인하고 즐기잖아요. 생각으로... 하나님께서는 옛날로 돌아가는 것을 싫어하시잖아요. 그 뒤로는 ‘알파’하면서 대중가요 못 부르게 했어요.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께서는 싫어하신다. 새로운 공급이 필요한 거예요. 바로의 ‘녹’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정하시고 공급하신 양식으로 살아야 한다. 피를 바르고, 양고기를 먹고,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고, 음식 자체가 달라지는 거예요. 예전에 김준곤 목사님의 ‘순(筍)’이라는 칼럼이 연재되었습니다. 거기에 그런 내용이 나왔어요. ‘변화 받으면, 취미도 달라지고, 기호도 달라지고, 심지어 음식의 성향도 달라진다.’ 당연한 얘기지요. ‘딱 한 잔 만 걸치면 좋겠다.’ 이런 음식 습성이 어떻게 바꾸어져요? 거룩한 음식, 몸에 유익되지 않는 음식은 거절하고... 음식 취향도 바꾸어지는 것이 당연하지요. 피, 양고기, 쓴 나물은 나의 기호, 윤리, 도덕, 사상의 흐름이 아닌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먹어야 산다. 그리스도를 먹는다는 말이 참으로 어려운 말입니다. 이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53에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양식이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양식이다. “나를 마셔라.” 그리스도가 나의 음료다. 이 말씀이 참 어려운 말씀이에요. 진짜로 복음 안에 들어와서 그리스도를 양식으로, 말씀을 먹을 때 배가 부르고, 힘이 생기고, 기도하면서 성령이 임하여 그것이 음료가 되어서 내 인생을 윤택하게 할 때 오는 그 에너지는, 과거의 삶, 죄 짓고 자기 멋대로 살 때 그런 즐거움하고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러니까 관광버스 타고 흔들어야 풀리는 사람은 보통 복잡한 사람이 아니에요.
적십자 병원에서 정신과 입원한 사람들을 통계를 내었어요. 70%가 크리스천들이에요. 불신자보다 크리스천들이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이중구조로 살거든요. 교회 오면 억압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안 해야 된다. 못한다. 그러다가 흔드는 기회가 주어지면 막 흔들어대는 거예요. 이게 불행한 구조입니다. 이게.
정말 그리스도가 나의 양식이 되어야 되고, 나의 음료가 되어야 해요. 정말 예수님 믿는 것이 즐겁고, 기도하는 시간이 행복하고, 찬양하면서 행복해지고, 주님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고... 이런 감격의 생활이, 이전에 내 멋대로 살고, 수다 떨고 살던 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거예요. 이런 크리스천 culture를 교회가 주질 못하는 거예요. 이거 참 큰 문제입니다. 이게... 못하게만 하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서 교인들로 하여금, 정말 교회 오는 시간이 정말 즐겁고 행복하고, 교인들 만나서 교제하고 서로 사역하고 말씀을 나누고 은혜 받은 것을 서로 나누는 것들이 우리들의 양식이 되어야 하는데, 이게 안 되는 거예요. 이게... 그러니까 교회 와서 예배 마친 후에 쇼핑하러 돌아다니고, 다른 방법으로 관광 다니면서 이런 것을 풀려고 하고...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리스도를 먹고 그리스도를 마신다는 개념이 무엇인지 알아야 되요. 정말 은혜를 즐겨야 되요.
사랑하면 몰입(沒入)합니다. 3일 동안 머리도 안 감고, 싸워도 1주일에 한 번 하던 녀석이, 어느 날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날마다 옷을 갈아입고, 이상한 행동을 해요, 지금 그러한 경험을 하는 가정들 있지요? 뭐가 달라졌어요? 애가 갑자기 멋을 부리고, 옷을 갈아입고 그래요. 왜 그래요? 연애가 시작 되었지요? 사랑하면 몰입합니다. ‘독서삼매경(讀書三昧境)’이라는 말이 있지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기의 어떤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대상이 ‘낚시질’, ‘수석 모으기’, ‘난초재배’, ‘바둑 두기’라면 문제가 있는 거지요. 정말 그리스도께 붙잡히고 그 말씀 안에, 그 사역 안에서 새로운 영적 세계의 문화를 가져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으니까, 세상 문화를 따라가는 거지요. 그리스도를 공급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요. 이게.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체질이 결정되는 것과 같지요. 육식(肉食)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드름이 많이 나고, 혈액 순환에 문제가 생기고, 성인병에 많이 걸리고... 채식(菜食)을 즐기는 사람은 성품도 유(柔)해지고, 오래 살고... 유기농(有機農) 채소를 먹는 사람은 더 건강해지고... 먹는 대로 가는 거예요. 먹는 대로... 우리가 정서적으로, 영적으로는 뭘 먹고 살고 있습니까? 무엇이 나에게 즐거움입니까? “너는 인생을 살 때 어떤 즐거움을 갖고 사느냐?”라고 했을 때, 정말 나는 그리스도를 먹고 주님을 마시고 성령에 취하고...
이런 우리의 culture가 있어야 한다 말이에요. 다윗은 뭐라고 표현했어요? 시편 19:10에 보니까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했어요. 돈 모으는 재미는 돈 안 벌어본 사람은 잘 모를 거예요. 저는 장사를 많이 해 보았는데요. 지폐 한 장 차이로 이익과 손해가 왔다 갔다 하는데, ‘오늘 이익 봤다.’하는 그 희열(喜悅), 한 건 했을 때 오는 즐거움. 그 상당히 쏠쏠합니다. 돈 버는 재미... “나는 정금보다 주의 말씀을 더 사모하며 송이꿀보다 더 달다.” 송이꿀이 뭐냐 하면, 나무에 벌집이 있잖아요? 그 벌집에 꿀을 많이 채워 놓으면 뚝뚝 떨어진단 말이에요. 떨어져 가지고 밑에 고여 있는 것이 햇볕을 받아서 증발을 해요. 그러면 그것이 딱딱해가지고, 그야말로 꿀 덩어리가 송이꿀이에요. 이게 얼마나 달겠어요? 이게... 물이 다 증발 되어버렸는데, 완전히 과자예요 과자... 과자도 꿀과자죠, 아주 그냥.
우리 시대에는 먹을 것이 많으니까 꿀이라는 개념이 그렇게 크게 와 닿지 않지만, 그 당시에 최고로 맛있다는 개념이 뭐예요? 꿀이란 말이에요. 꿀 중에서도 특별히 무슨 꿀이 맛있어요? 송이꿀이 맛있다는 거자요, 물이 다 증발해 버리니까 그야말로 엑기스만 남아 있잖아요. 다윗이 궁궐에 있으면서 왕으로써 내가 먹을 것이 많고 산해진미가 있는데, 그 중에 꿀이 제일 좋은 건데, “나는 송이꿀보다 주의 말씀이 더 달게 느낀다.” 이러니까 다윗이지요. 요즘 시편을 읽고 있는데, 시편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뭐냐 하면, 다윗은 정말 놀라운 분이에요. 시편에서 다윗이 쓴 글이라고 명시된 것이 70여 편 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필체다, 다윗이라는 저자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이것은 문체로 보았을 때 다윗의 시라고 밝힌 것이 한 30여 편이 되요. 그러니까 시편 150편 가운데 대략 100편 정도가 다윗의 썼다고 학자들이 보아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들은 지금 필기구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볼펜도 좋고 만년필도 좋고, 이제는 필기판 없어도 이런 것 들고 다니면서 메모하잖아요, 이렇게. 이게 다 메모하면서 쓸 수 있는 거예요. 이 안에 다 들어있어요. 저는 이것으로도 부족해 가지고... 이게 뭐냐 하면? 녹음기에요, 녹음기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놓칠 때는 쓰면 놓쳐요. 더구나 운전하면서 다닐 때 저는 성경을 많이 읽거든요, 이렇게. 1장, 2장 3장하면서 그러면 계속 하나님께서 아이디어를 줘요. 운전하면서 쓰는 것이 위험하기도 하고 불편해요, 이런 고민을 어느 모임에서 얘기하니까, 그 다음 날 어느 교인이 바로 사가지고 왔어요. “목사님! 눌러만 주세요. 바로 녹음됩니다.” 간단하게 녹음됩니다. 이렇게. 9시간까지 녹음할 수 있는 거예요. 운전하면서 주신 묵상, 살짝 눌러서 얼른 녹음해놓고, 집에 가서 메모하고 그러지요. 이렇게 필기구가 잘 되어 있는데도 글쓰기가 쉬워요, 어려워요?
여러분 일기 씁니까? 대답하지 마세요, 시험 드니까. 그 당시는 종이가 있었습니까? 펜이 얼마나 좋았습니까? 파피루스, 나무이파리를 납작하게 해 가지고 그런 것에다 먹물 갈아가지고 붓으로 쓰는데, 더군다나 서재에 앉아서 쓰는 것이 아니라, 도망 다니면서... 아둘람 굴에 가보았어요, 그냥 땅 속에 파인 음침한 굴이에요. 그냥 300~400명 거뜬히 들어가겠더라고요. 그런 데 앉아가지고, 늘 도망 다니면서, 쫓기는 생활 가운데, 전부 기록한 거예요. 자기의 마음의 안타까움, 외로움, 도망 다니면서 처량한 신세, 원수에 대한 분노의 마음, 전부 다 일기를 쓴 거예요. 사울도 출발이, 기가 막히게 출발이 멋있었고, 다윗도 멋진 출발을 했어요. 사울은 결국 끝에 가서 망했어요. 사울이 망한 이유가 무엇일까? 사울은 메모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이 분이 굉장히 은혜 받은 사람이에요. 하나님도 그를 지원해 주셨고, 백성들을 사울 편에 세워주시면서 사울을 팍팍, 사울을 밀어주셨잖아요? 다윗은 자기 심정을 전부 기록했어요. 일기를 썼어요. 목회하면서 어려웠던 것, 김 집사가 오늘 들이받았다, 그것을 쓰는 거예요. 사울은 그런 것 안 쓰고, 자기 기념비 세우고 다녔어요. 자기 이름 드러내려고, 다윗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자기 안에 내려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메모했어요. 사울은 자기의 공적을 잊어버릴까봐, 그것도 돌에다 새겼어요.
길이 달라요, 전혀... 하나님을 enjoy하는 것, “주의 말씀을 내가 사모 하는데,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는 것같이 내가 주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새들도 깃들일 곳이 있는데 주의 거처를 내가 사모하는 마음이 극심하나이다.” 이스라엘을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정오가 되면, 42~45도 그렇게 막 올라가요. 더운 정도가 아니라, 머리가 벗겨져요, 그냥.
우리 모임이 이스라엘에 있어요. 다음 4월 달에 우리 치유팀들이 가서 선교사님들을 치유해 주고 하는데, 여리고에서 모임을 갖는데, 다 중동지역에서 와서, 이슬람 문화권에서 선교를 하시는 분들의 얼굴은요, 아주 전투적이에요. 눈빛이 아주 달라요. 그냥 아주, 모임을 하는데, 모임 전체가 dry하더라고요. ‘오후 시간에는 족구하자’, 나가서 족구를 하는데 족구를 다 잘 하더라고요. 워낙 외로운 지역이라 모여서 운동들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 할 때는 몰랐어요. 시원하게 했는데, 구름이 쏵 걷혀버리니까 얼~마나 더운지, 기도가 절로 나와요. “하나님. 저쪽에 있는 구름 이쪽으로 돌려주세요.” 나는 구름기둥이 기둥처럼 선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고, 그 사람들은 구름이 뜬 것을 구름기둥이라고 하더라고요. 구름이 가리면 건조하기 때문에 시원해요. 구름 딱 벗겨지면, 머리가 벗겨지는 거예요. 더워서 운동을 못하겠어요. 숨이 막혀요, 42~45도인데 어떻게 운동을 합니까?
그런 지역에 있는 사슴이 정오가 되면 먹었던 것을 반추(反芻)하고, 쉬기 위해서 시냇가로 찾아갑니다. 너무 더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어요. 사냥꾼들이 이걸 알아요. 정오가 되면 사슴이 시냇가로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딱 기다리고 있어요. 사슴도 내가 가면 사냥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알지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그러고서 시냇가로 온다는 거예요.
그 마음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헐떡이면서 배고파하는 그 마음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말씀을 사모해 보셨어요? 그런 배고픔 가지고 살아보셨어요? 적어도 시인, 다윗의 마음이 거저 하나님 갈망하고, 그리워하고, 목말라하고, 배고파하면서... “그것이 주야로 나의 눈물이 되고 나의 음식이 되나이다.”
culture가 다르잖아요? 우리는 즐길 것도 있고, 시간 보낼 것도 있고 뭐... 우리는 너무 많잖아요. 그 중에 하나가 예수님이고, 사역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별 재미가 없어요.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복음이 아니고는, 말씀이 아니고는, 내가 채울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는 마지막 극한상황에 딱 도달하면, 정말 주님을 마시고 그리스도를 먹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우리가 몸으로 느끼는 거예요. 정말 밑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해갈함을 얻고 일어날 때 오는 그 감격과 기쁨들... 하나님은 유월절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양식을 바꾸어버렸어요.
이제는 애급이 주는 양식이 아니고, 바로가 주는 양식이 아니라, “내가 양식을 준다. 나를 봐라.” 계속 만나를 주시면서... 한 번에 많이 주시면 얼마나 좋아요. “양식은 내가 준다.”, “내가 너의 양식이다.” 아침마다 눈을 들어 하나님 보게 하고, 또 아침마다 눈을 들어 하나님 보게 하면서, 이 훈련 40년 시켜요. 우리 음식을 바꾸는 일을 위해서...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사람이 먹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나를 바라보고 살고, 내가 주는 약속으로 살고, 내가 주는 말씀으로 살아야 된다.”
이 훈련하여 이 paradigm shift를 하는 데, 체질개선하는 데 몇 년 걸린다고요? 40년 걸렸어요. 쉽지 않습니다. 이게 의무적으로 하는 그런 문화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아니면 내 갈증을 해갈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 아니고는 내 이 목마름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기까지 하나님이 모세를 80년 훈련시켜요, 80년. 이게 새로운 음식, 새로운 경영이에요. 그렇게 훈련을 시키니까 입을 벌리면 뭐가 나와요? 말씀이 나오고, 입을 벌리면, 복음이 나오는 거지요.
3) 새로운 목적 - 바로를 섬기는 자가 아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바로의 국고성 건축을 돕는 자가 아닌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여호와의 군대가 됨.
섬김의 대상이 달라요. 예배가 뭐냐?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는 거예요. 우리의 사역은 바로를 돕는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되요. 자기 왕국 세우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되요. 우리는 사람과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적들과 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걸프전 때 미군 포대가 잘못 계산해 가지고 아군에게 쏴 버렸어요. 그 때 유행했던 말 가운데 하나가, ‘Friendly Fire’라는 말이에요. 해석해 보세요. ‘아군폭격’ ‘아군폭격’이란 말이에요. 자기편끼리 쏴버린 거예요. 이쪽에서 저쪽으로 쏘니까, 저쪽에서도 이쪽으로 또 쏘는 거예요. 그래서 아군끼리 자폭해버리는 거예요. 오늘날 교회 안에 아군 폭격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L.A. 갔더니, 사모님이 목사님을 고발을 했어요. 그것을 ‘수(sue)’한다고 해요, 수~~. 사모님하고 목사님이 법정투쟁을 하고 있어요. 목사님 설교하시고 사모님 설교 듣고, 끝나고 나면 법적으로 싸우는 거예요. 교회가 딱 두 파로 갈라져 가지고, 적인지 아군인지 몰라요 그냥. 장로님하고 목사님하고 싸우고, 목사님하고 목사님하고 싸우고, 교인끼리 싸우고... 적인지 아군인지 모른다니까요.
우리는 삶의 목적이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고, 하나님의 사람을 챙겨야 되요. 나하고 마음에 안 맞고 마음에 안 들어도, 이 분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이므로 내가 섬겨 주어야 되요. 내 맘에 안 든다고 잘라버리면 그건 자기 왕국 세우는 거예요. 경영이 달라요. 이제는... 여호와의 군대가 된다는 거지요.
애급의 장자들은 심판을 받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가 되어 약속하신 기업을 얻기 위해 가나안을 향하여 여호와의 군대로 출발함 - 이 출발은 우리에게 장자권의 복을 주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업이라고 주시는, 하나님의 기업을 누리는 겁니다.
★ 열 가지 재앙의 의미
1) 나일강의 신 - Osiris
2) 개구리 여신 - Hekt
3) (흙의 신) - Seb
4) 파리 - Hat Kok
5) 황소 (가축질병) - Apis
6) 독종 - Typhon
7) 우박 (대기의 신) - Shu
8) - Seraphia
9) 태양 신 - Ra
10) 애급의 모든 신들 (출 12:12; 18:11; 민 33:4)
이렇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응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전에 손을 보셨던 것이 뭐냐 하면 10가지 재앙이에요. 그 10가지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과 애급 사람들이 섬겼던 우상들입니다.
첫째 나일강이 피의 강이 되어버렸어요. 나일강의 신 오시리스(Osiris)를 심판하는 거예요. 또 개구리가 밥상까지 올라오고, 침상에도 올라오고 그랬어요. 개구리의 신(Hekt)을 심판하는 거지요. 또 이의 신 Seb, 파리의 신 Hat Kok, 황소의 신 Apis, 가축이 질병으로 알게 되죠. 독종 Typhon, 우박 Shu, 메뚜기 Seraphia.
‘파라오’할 때 ‘라(Ra)’는 태양신을 말합니다. ‘파라오’라는 말은 ‘태양신의 아들’ 그런 뜻이지요. 태양이 사흘 동안 어둠을 막아버리고, 마지막에는 이 장자가 죽는데, 이 장자 죽음은 신들의 죽음의 마지막 결론이에요. 왜 사람들이 우상을 많이 섬겼느냐 하면, 결국 애급이나, 이스라엘이나, 우리나라나 이 문화가 비슷해요. ‘집안의 가업을 장자가 잇는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신들을 노엽게 하면 저주가 누구한테 오는가 하면, 장자한테 와요. 그래서 애급 사람들이 여러 신들을 섬긴 이유가 뭐냐 하면, 혹시 안 섬겼던 신 가운데 벌을 내릴까봐서 여러 신들을 섬겼어요. 애급 사람들의 모든 복의 개념은 장자예요. 하나님께서 장자를 쳐버린 거예요. 너희들이 여러 신들을 섬겼던 이유가 장자가 복 받기 위해서 그런 것인데, “너희 신들이 복을 주는 장자를 치겠다.” 그래가지고 하나님께서 장자를 심판하십니다. 그 대신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장자가 되어서 출발하는 거예요. 그들이 섬겼던 우상이 심판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깨지는 모습을 보면서 “아~아. 우리가 헛 믿었구나.” “아! 우리가 붙잡고 있었던 것이 가짜였구나.”라는 사실을 그들이 이제 직면하게 됩니다. 시인할 수밖에 없지요. 예수님을 믿는데 재산을 다 잃고 온 사람도 있고, 자녀가 죽어서 교회 온 사람도 있고 그런 경우를 우리가 많이 봐요. 그가 붙잡았던 신, 그가 붙잡고 있었던 신앙이 무너져야 됩니다. 가짜거든요. 그래서 그런 우상을 치고 부르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부부가 해로(偕老)하시려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돼요. 서방님이 하나님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이 우상을 쳐버리신다니까요. 좀 말이 끔찍한 얘기지만, 재산이 내 우상이 되면 재산을 하나님이 쳐버려요. 그래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니까. 우상을 꺾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요. 그런 경우가 많이 있어요.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빼앗아갔어요. 다곤의 신전에 언약궤를 모셨어요. 그랬더니 아침에 일어나니까 어떤 현상이 벌어졌어요? 목이 꺾였어요. 그 다음날은 팔 다리가 꺾여 나간 거예요.
당연한 거예요. 하나님 모시고 살아야할 사람이 다른 신 섬기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상을 치고 우리를 접수합니다. 이런 우상 깨지고 돌아온 사람 많잖아요.
★ 심판의 점진적 발전
1 그룹 - 피, 개구리, 이 - 귀찮게 함, 애급인들의 생활의 안락을 방해함 :
의 단절, 염려, 불안, 근심이 삶을 방해함(마음의 평화가 무너짐)
2 그룹 - 파리, 악질, 독종의 재앙 - 짐승들과 사람들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힘 :
그들의 에 문제가 생김 (마음으로 의지했던 것들이 무너짐)
3 그룹 - 우박, 메뚜기, 어둠의 재앙 - 환경을 파괴함 : 하나님의 손에 의해 황폐하게 됨 (삶의 이 무너짐)
4 그룹 - 세상의 생명, 소망을 끝장 냄 - 애급 땅의 모든 장자들이 죽음 (기대의 단절, 신앙의 붕괴, 복의 대물림이 단절 11:5)
장자권의 상실이냐, 후사로서의 삶이냐?
10가지 재앙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가만히 조사를 했더니, 이게 점진적이에요. 1그룹, 2그룹, 3그룹, 4그룹 들어갈수록 점점 더 우리 삶을 구체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거예요. 첫째 그룹은, 피, 개구리, 이의 출현입니다. 처음에는 마음에 평화가 무너지는 정도에요. 둘째 그룹, 파리, 악질, 독종의 재앙은 짐승들과 사람들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히는 거예요. 그들이 소유에 문제가 생김. 마음으로 의지했든 것이 무너짐. 처음에는 기쁨이 상실했다가 이제 는 의지 한 것이 무너지는 거예요. 그러다가 3그룹에 들어가면 더 깊어져요. 우박, 메뚜기, 어둠의 재앙. 환경을 파괴함, 하나님의 손에 의해 황폐케 됨. 삶의 기본 틀이 무너집니다.
마지막 4그룹은 세상의 생명, 소망을 끝장냄. 애급 땅의 모든 장자들이 죽음. 기대 단절, 신앙의 붕괴, 축복의 대물림의 단절. 희망이 끊어져 버리는 거예요. 장자권의 상실이냐? 후사로서의 삶이냐? 하나님께서 부르시는데 응답하지 않으면, 장자를 잃어버려요. 그러나 순종하고 따라오면, 장자를 안 잃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장자의 특권, 후사의 특권을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거예요.
★ 유월절 - 새로운 존재
1. (2) 이 달로 너희에게 해의 이 되게 하라.
2. (3-4) 가족대로 을 취하라.
3. (5) 흠 없고, 1년 된 수컷으로 하라. (힘, 향, 욕망)
4. (7)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라.
5. (8,10) 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고, 아침까지 남기지 말라.
6. (8-9,11) 쓴 나물, 허리에 띠, 신발, 지팡이, 급히
7. (14,17) 이날을 기념하여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켜라.
8. (15-20)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어라.
9. (43-49) 이방사람, 거류인, 타국 품꾼은 불가, 종은 할례 후 먹음
10. (41) 여호와의 가 됨
1) 유월절이 뭐냐? 유월절은 첫째 “이 달로 너희에게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 새로운 출발이 되요. 지금까지 삶은 하나님께서 계산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너희의 시간을 측정하겠다. 미국 사람들에게 “Are you a Christian?” 물어봐요. “너 크리스천이냐?” 그러면, 그 사람들은 뭐라고 되집어서 말하느냐 하면, “Are you born-again Christian?”이라고 물어봐요. 우리는 “예수 믿습니까? 교회 다니십니까?”라고 묻는 게 당연한데, 그 사람들은 교회 다녀도 가짜가 많다는 거지요. 그 사람들은 ‘거듭났느냐’고 물어봐요. 처음에는 잘 모르고 “나 목사다.” 그랬어요. 목사 그런 것 말고 “너 거듭 났느냐?” 그런 거예요. 얼마나 창피한지... SPA에서 만나가지고 호텔에 갔는데, 아랍에 가서 호텔에 SPA에 가 있는데, 빤히 마주보고 있는데 할 말도 없잖아요. 그래서 이제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요. 얼마나 창피했던지... 한국에서는 목사라고 하면 크리스천들은 ‘아. 그러시냐’고 바로 고개를 숙이는데, 이 사람은 얼굴 빤히 쳐다보면서, “너 목사라도 거듭났냐?” 그렇게 물어보더라고요.
거듭났느냐? 진짜 하나님께서 계수하시는 시간 안에 들어 왔느냐는 거예요. 시편 90편에 보면, 모세가 “인생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지나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모세가 80년을 살았어도 자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자기 구조로 살 때는요, 슬픔과 수고 많은 인생이었어요. 허망한 세월이었어요. 준비한 세월 80년, 나를 내려놓고, 내가 아니고 그리스도로 살아야 count 되는데. 모세는 그런 삶을 살지 못했어요. 그래서 80년의 세월이 너무 허망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내게 나의 날수를 계수하는 지혜를 주셔서 나의 남은 날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로운 인생이 되게 해달라.”고 시편 90편에서 기도를 해요. 그게 모세의 노래입니다. 80년 살았지만, 나를 내려놓지 못한 세월들은 허망한 세월들이였습니다. 수고와 슬픔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날 수를 계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어요. 하나님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자기 문제 해결되지 못해 끙끙대는 것은 계수되지 않는다는 거지요. 새로운 날의 시작, 새 역사의 시작.
2) 3~4절 “가족대로 어린 양을 취하라.” 한 마리의 어린 양을 잡으면 절대로 음식을 남기면 안 되니까, 만약에 가족 숫자가 부족하면 이웃집 사람까지 초청해서 이 양 한 마리를 먹게 했어요. 안식일을 지키는 원칙이 무엇입니까? 4계명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네 아내와 네 아들과 네 딸과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육축과 네 문안에 거하는 객이라도 안식일을 지키게 하라.” 신약에서 안식은 은혜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내가 은혜를 받으면, 나 한 사람에게 머물러버리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에 있어서 안식일 제도가 뭐냐 하면, 내가 안식하면, 내 아내도, 내 자녀들도, 심지어 우리 집에 종들도, 우리 집에 키우는 개도, 심지어 우리 집에 애들 때문에 찾아온 아이들까지도, 문안에 유하는 손님까지도 내 안식을 같이 누리는 거예요. 내가 은혜를 받으면 가족들이 같이 누리는 거예요. 얼마나 좋은지... 양을 잡는데, 개인별로 잡으라는 것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어린양을 취하라는 거예요. 복음의 최소 단위는 가정입니다. 한 가정에 한 사람만 은혜를 받으면 흘러가게 되어있어요. 같이 사니까.
오늘 아침에 저의 식사를 대접하신 집사님이 여기 현대 중공업에 다니시는 분이신데, 그의 아내 되신 분이 지난주일 낮예배 때에 간증을 했어요. 어떤 간증을 했는가 하면, 전혀 뜻밖의 은혜를 경험한 거예요. 공부하고 나서 숙소에 들어가서 자려고 하는데,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일찍 끝났는데, 그래서 둘이서 앉아가지고 두런두런 얘기하다가 상처가 치료되기 시작한 거예요. 이 분이 엄마가 셋이예요. 생모는 네 살 때 돌아가셨고, 그 뒤에 계모가 들어왔는데 들어와서, 14년인가 살면서 애 둘 낳고 살다가 바람나서 그냥 도망가 버렸어요. 그 계모한테 너무 시달렸어요. 애 둘 놔두고 도망가 버린 거예요. 그때 그 계모한테 당했고, 그 다음에 지금까지 살고 있는 엄마가 들어온 거예요. 그러니까 이 여자 분의 정서적인 구조가 편안한 구조예요, 힘들고 어려운 구조예요? 너무 힘든 구조예요.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자기 집 큰 아이에게 계속 분노가 일어나는 거예요. 무지무지하게 사랑하는데 이 아이가 조금만 잘못하면 분노가 일어나서 막 쏴 대 버리는 거예요. 무슨 얘기를 서로 앉아서 대화를 하다가 아들에게 그런 짓을 하는 것은 계모와의 상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면서요. 대화하신 분은 이 가정 구조에 대하여 조금 알았던 분인가 봐요. 대화를 시작하는데 그것에 대한 치유가 일어나는 거예요.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께서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그 계모를 용서하게 되고...
예상 밖의 부흥회가 일어난 거예요. 다른 조원들은 옆에서 자고 있는데, 둘이서 울고불고 하고 나중에는 상처가 드러나니까 이제 축사(逐邪)도 막 하고... 그래서 완전히 치료가 되었어요. 돌아가서 누가 제일 혜택을 받겠어요? 큰 아들이에요, 큰 아들. “우리 엄마가 나갔다 왔어도 어떻게 화도 안 낸다.”고 그러면서 애가 말하더래요. “엄마가 화를 안 내니까 너무 좋다.”고요. 중학교 몇 학년이지요, 그 애가? 중학교 3학년 되겠던데, 보니까. 그날 간증하는데 엄마를 붙잡고 우는 거예요. “엄마가 바꾸어지니까 너무 좋다.”고요. 한 사람이 은혜를 받으니까 가족들이 다 혜택을 누리는 거예요. 너무 좋은 거예요. 예수님 믿은 지 3개월밖에 안 되신 분인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며느리가 변화되니까요. 그래서 가정이 다 이렇게 혜택을 받아요. 어린 양을 먹는데, 혼자 먹지 말고 어떻게 먹으라고요? 가족대로 먹으라고요. 이것이 비밀입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랬습니다. 나는 이 비밀을 꼭 예수님 만나면 물어볼 거예요. 왜 이마에다 바르라고 말씀하시지, 문설주와 문 좌우 인방에다 바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꼭 물어볼 참이에요, 내가...
아버지가 예수 믿는다고 해서 아들이 자동적으로 구원받는 것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가정 단위로 말씀하셔요. 그건 뭘 말할까? 우리 복음기초원리12강 공부하면 나옵니다. 이게... 복음의 파장은 아무리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복음의 파장이 어디까지는 가야 한다? 가정, 가정. 사모님이 오늘 샤넬 넘버 화이브를 바르고 왔어요. 그러면 최소한 몇 사람이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어야 되요? 2~3평 반경 안에 계신 분들은, “어? 이상하다, 예수님의 향기인가? 향수 냄새인가?”하며 뭔가 냄새를 맡아야 되요. 그런데 자기는 오늘 샤넬 넘버 화이브를 30만원 주고 구입해서 바르고 나왔다는데, 옆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 그럼 이건 향수예요, 아니에요? 이런 것을 보고 “중국산 짝퉁”이라고 그래요. 그런 것도 있거든요. 우리의 복음의 최소 반경이 얼마라고요? 가정이라는 거예요, 이게 놀라운 얘기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 전도하기 어려운 사람이 누구에요? 가정이에요, 또 이게 기가 막힌 거예요, 이게... 그래서 복음은 능력이에요. 말이 아니라... 처음 길에서 만난 사람은 우리가 전도할 수 있어요. 그러나 부부간에는 “야! 너나 잘해.” “나는 안 믿어도 너보다 잘하잖아.” 이러면 할 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복음은 삶이고, 복음은 능력인 거예요.
가족들에게는 지식으로, 입으로 하는 전도는 소용이 없어요. 엄마가 달라지고 화를 안 내니까, 애가 우는 거예요. 엄마를 붙잡고 엉엉 우는 거예요. “엄마 너무 좋아졌어, 그런데 언제 바뀔 거야?, 나 긴장 안하게 해줘?” 이게 복음의 능력이에요. 복음의 최소 반경은 어디다? 가정, 가정, 같이 사는 사람. 물론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사무엘 같은 분도 그렇게 훌륭하신 분인데도 두 자식이 망가졌어요. 다윗이 참 훌륭한 분이였지만, 자식들 관리는 잘못했어요. 압살롬의 반역, 암논의 사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요.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복음의 능력은 최소한, 아무리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도 내 가정, 내 집, 내 문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영향력을 미친다는 거지요. 이거 성공 못하면, 우리가 참 어려움 많습니다. 이게 쉬운 이야기 아닙니다. 이게... 100%. “아버지가 신포도 먹으면, 자식이 다 이빨이 시냐?”하는 이런 속담도 있는데, 100%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너의 영향력은 최소한 가정에는 미쳐야 한다.”라고 하는 기본원칙을 세워주는 거지요. 내가 먹는 양고기가 내 자녀와 내 가족들이 같이 먹는 양고기가 되길 바랍니다.
3) 5절.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라...” 일 년 짜리 수컷 염소가 뭘까? 제가 어릴 때 젖염소를 많이 키웠어요. 젖염소를 사가지고 오면, 두 달쯤 되면 뿔이 나오기 시작해요. 아버지가 고무 밴드 있지요? 지금은 고무 밴드가 흔하지만 그때는 고무 밴드가 귀했어요. 고무 밴드를 구해다가 양쪽 뿔에다가 칭칭 감아줘요. 이렇게... 일주일 단위로 또 바꾸어줘요. 그러면 조금 있으면 이게 뚝 떨어져요. 희한한 것은 뿔이 떨어져버리면, 힘이 없어요. 뿔이 나오면 힘이 세 가지고, 내가 몇 번 죽을 뻔했어요. 염소는 귀에 물이 들어가면 죽는데요. 비가 오면 얘들이 발작을 해요. 막 들고 뛰거든요. 내가 감당을 못해요. 그런데 뿔을 잘라버리면 이게 말을 들어요. 뿔이 있으면 말을 안 들어요. 아~~그거 희한하더라고요.
그러면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라.”는 것은 무얼 말할까? ① 일 년이 되면 정상화 되어 힘을 마음껏 발휘해요. 일 년이 넘어가면, 일 년 전까지... 힘이 통제가 된다는 거예요. 힘. 막 힘 있다고 소리 지르는 이런 사람은 안 된다는 거예요. 힘이 조절이 되는 사람.
② 둘째 일 년이 넘어가면요, 냄새가 고약해져요. 암내, 발작하고 이런 것 있지요? 수컷은 발작하고... 일 년이 넘어가면 냄새가 고약해져요. 일 년 전이면 냄새가 아직 안 날 때에요.
③ 또 하나는 욕망, 욕망. 발정이 시작되어버리면 그런 정욕을 따라 살게 되요. 그래서 “일 년짜리 수컷으로 해야 할 이유가 뭘까?”하고 제가 오랫동안 고민을 했는데, 어느 책을 보니까 이런 내용이 나와요.
양에 대해서 공부하려면, “양과 목자”라는 책이 있어요. 이름이 누구죠? Phillip Taylor. 아주 좋은 책이에요. 여러분 그 책 꼭 한 번 읽어보세요. 이 내용이 나온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 내용은 다른 데서 얻었는데, 하여튼 꼭 한번 일독을 권합니다. “양과 목자”라는 책과 보이스사에서는 “시편 23편”이라고 또 나왔을 거예요. 같은 책인데...
하여튼, “일 년짜리 수컷으로 하라.” 제물이 될 수 있는 자격 조건입니다. 이게. 힘이 조절이 되어야 되고, 더러운 냄새를 안 풍겨야 되고, 정욕적이지 아니어야 된다는 거지요. 욕정을 따라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지요. 이런 조건이 “예수님이 흠 없는 양이었다.”는 개념. 또 우리가 주의 제단에 제물로 드려진다는 개념은 이런 것이 control된다는 거지요. 없는 것이 아니라, 조절이 된다는 거지요. “일 년짜리 수컷으로 했다.”
4) 7절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 역시 출입하는 문이죠, 이게. 문지방에 피를 바르라는 말은 없어요. 피는 짓밟으면 안 되죠? “문설주와 인방에다 바르라.” 들어가면서 눈에 보이지 않겠어요? 이렇게 “피가 발렸구나?” 안에서 피를 본 게 아니라, 밖에서 피를 봅니다. 누가 보는 거예요?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고, 죽음의 사자가 보는 거예요.
5) “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고, 아침까지 남기지 말라. 물에 삶거나 날 거로 먹지 말라.”고 그랬어요. 불은 뭘 의미할까요? 심판을 의미합니다. 심판 받으신 그리스도, 십자가 달리신 그리스도만 우리에게 구원을 줍니다. 다른 예수도 있어요? 병 고치시는 예수, 4대 성인 가운데 한 분이신 예수, 윤리 선생님 예수. 예를 들어서 간디 같은 경우는 매일 산상수훈을 읽었대요. 예수 안 믿는 분이거든요. 그래도 그 산상수훈의 도덕 윤리가 너무 고상하기 때문에 자기는 그걸 읽었다는 거예요. 다른 복음, 다른 예수는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해요.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에요? “내 죄를 대신 지시고 심판 받으신,” 그 말이에요. 불에 구워 먹는다는 말은. 불에 의해서 심판을 받아야만 대속의 자격이 있는 거예요. 불에 구워 먹어라.
6) “쓴 나물과 허리에 띠, 지팡이, 급히 먹어라.”
무얼 의미합니까? 안주(安住)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우리 떠나야 한다. 떠날 준비를 하는 거예요. 구원은 거기 있으면서 복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옛 생활을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Exodus하는 겁니다. 떠나지 않으면 구원이 의미가 없어요.
7) 14절, 17절 “이 날을 기념하여 절기로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켜라.”
절대로 이 날은 잊어버리면 안 돼. 매년 유월절은 반드시 지켜야 돼. “너는 피의 사람이다.” “피가 너를 구원했다.” 사모님! 꼬이십니까? 어떻게 해야 되요, 그러면? “피 발라라.” 그랬지요? 네, 이 사모님, 자식이 사고를 쳐요, 목사님 목회가 잘 안돼요? 그겁니다, 바로... 절대로 잊어버리지 마라. 너희들은 피에 의해서 구원받았고, 피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니까 헷갈리고 힘들고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것 같으면 바로 피를 적용하는 것. 피를 적용하는 것이 뭐예요? 십자가를 적용하고, 피를 적용하는 것이 뭐에요? 회개하는 거예요, 회개... 십자가 그늘 밑에 내가 들어가는 거예요. ♩♬ “십자가 그늘 밑에 나 쉬기 원하네...” ♩♬
십자가 그늘 밑에 들어가서 “나는 죄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아니고는 씻을 방법이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셔야 됩니다. 주님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라고 회개하고 그 질서 아래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장하시지요. 이것을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돼요, 절대로...
“해마다 지켜라.” 민수기에 보면, 유월절 기간에 여행을 갔다왔다 할지 혹은 불결해서 유월절을 못 지켰을 경우에, 그 사람들이 날짜는 지나갔지만, 보조적으로 유월절을 지킬 수 있도록 또 하나님이 배려를 해 주셨어요.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피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돌아왔어도, 구원받았다고 자기는 확신하고 있어도, 피 바르는 사건을 잊어버리면 자녀 됨의 혜택을 못 누린다니까요. 죽이라고 그랬어요. 유월절을 안 지키는 자를 어떻게 하라? 죽이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자녀지만, 한 번 하나님의 자녀는 지옥은 안 가지만, 하나님의 자녀지만 하나님이 쳐 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어떤 사람? 유월절이 없는 사람... 피 흘림의 복음을 모르는 사람... 죄 짓고도 그냥 회개도 안하고 사는 사람... 이걸 잊어버릴까봐서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대대로 지킬 규례니라.” 그랬어요. 피의 복음을 잊어버리지 맙시다. 우리의 복음은, 무슨 복음이지요? 피의 복음, 무슨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정치 신학적인 그런 복음이 아닙니다. “굳디엘이즈”는 그냥 예수님을 딱 그렸는데, 따발총을 뒤에다 메고 이마에다 두건 두르고 막... 그런 정치 신학적인 예수님, 그런 예수님도 있어요. 혁명가 예수님도 있지만, 구원자는 아니에요. 구원자는 유일하게 어떤 분? 피 흘리신 예수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나니, 천하에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
유일한 구원이 복음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에요. 불에 구워먹는 예수님, 심판 받으신 예수님. 카톨릭 수녀들 가운데 법정(法頂) 스님이 너무 멋있어서 개종해가지고 불제자가 된 수녀들이 많데요.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니까,
기독교는 멋있는 것이 아니에요. 무소유 이야기하는 것 아니에요. 기독교는 철학이 아닙니다. 복음이에요, 복음. 인간의 타락과 인간의 저주 심판을 대신 해결해줄 수 있는, 대속의 복음이에요, 딴 복음 얘기하면 안 돼요. 옛날에 설교시간에 스님들 이야기 자꾸 했어요. 멋있는 얘기는 인용할 수 있잖아요? 개방된 목사인데 이러면서... 어느 날 주님이 책망하시더라고요. “연약한 심령, 기독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네 말 듣고 가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 영혼을 네가 책임질 것이냐?”하시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 인용을 해도 절대 익명으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뭐 이러면서... 쓸 만한 말이 많습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더라고요. 우리는 어떤 복음? 피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이에요. 이게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불에 구워서 먹어라.” “절대로 이날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피의 복음,” “유월절복음.”
8) “7일 동안 무교병(無酵餠)을 먹어라.” 이게 중요합니다.
7일 동안. 하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서 다음 안식일까지 7일 동안을 먹는데, 무교병이 뭐냐 하면, 누룩 없는 떡이에요. 이스트를 넣지 않은 빵은 맛이 없어요. 무미(無味)합니다. 부풀이지도 않고 급히 만든 떡이에요. 우리는 세상을 즐기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시대적으로 워낙 문화가 enjoy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이게. 세상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먹고, 그리스도를 마시고, 그리스도로 사는 인생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생이에요. 무교병은 맛없는 떡을 먹을지라도 누룩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거예요. 죄와 더불어서 세상을 살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죄를 이길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어요. 그러나 죄를 내가 인정하고 죄를 품고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어쨌든 죄를 버리고 누룩 없는 떡이라도 먹으면서 내가 인생을 살아야 되요. 직장생활하시는 분은 이런 문제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뇌물 쓰지 않으면 승진이 어렵습니다. 최근에 교육 비리가 많이 드러나고 하는데... 교수 채용하는데, 얼마 줘야 되고, 고등학교 들어가는데 얼마 줘야 되고, 이건 뭐 묵계적인 관행으로 되어있어요. 그런 것들이 극히 일부분 드러나 가지고 뭐, 사회가 발칵 뒤집히고 그러는데, 사회가 발칵 뒤집힌 것이 아니라, 다 알고 있는데, 자기들만 몰랐지... 우리 다 알고 있었잖아요? 임용고시 pass하여 학교를 들어가려고 하는데, 학교에서 요구하는 거예요? “몇 천만 원 내놓아라.” 해야 되요, 안 해야 되요? 이런 게 우리 목사님들은 “당연히 안해야 한다.”고 그러지만, 저쪽은 목구멍이에요. 임용고시 pass하고 학교 들어가야 되고, 또 보조 교사로 있다가 내가 또 어떤 기관에 들어가려고 하면, 돈을 써야 먹고 사는 길이 열리는데, 목사님들이야 뭐 양심 지키고 살아도 전혀 어려움이 없잖아요? 워낙 직업이 좋아가지고... 저 사람들은 양심을 지키면 쫓겨나야 되고, 왕따를 당해야 되고.., 그런 구조란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에게 누룩 없는 떡을 가르쳐줘야 되요. 그래도 맛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도, 그래도 “구원받은 영생의 사람들은 누룩 없는 떡을 먹어야 합니다.”라고 교육을 시켜야 되요. 그럼, 맛없는 떡을 먹으면, 우리의 갈증은 어디서 해갈합니까? 그럴 때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거지요. “배고프다.” 그러면 불러가지고 출애급기 가르치는 거예요. 그냥. 며칠 밤 새워가면서...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래도 열을 못 받으면, “네가 가르치라.”고 교재를 만들어줘요. 그러면 같이 불붙기 시작해요. 해 보세요. 이건 제 경험입니다. 복음은요, 둘 중의 하나예요, 네가 회개하고 돌이키든지, 아니면 넌 가짜다. 이게 성경공부의 능력이에요. 여러분 성경공부만큼 능력 있는 것이 없어요. 하여튼 변화되든지, 죽든지, 둘 중에 하나에요. 왜? 말씀이 능력이 있으니까요. 특별히 복음 앞에 서면, 무교병 때문에 힘듭니다. 무교병...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되는데, 복음이 옛 생활을 거절하라고 그러고, 누룩을 거절하라고 그러고... 이게 문제란 말이에요. 이게.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절대로 세상과 타협하면서 적당히 부풀린 누룩이 썩은 음식을 먹으려고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것을, 처음부터 orientation 때부터 가르쳐주어야 되요. 이거 중간에 가르쳐주려면 참 힘듭니다.
제가 전도사 때 어느 교회에 부임해갔어요. 남선교회 구역모임한다고 다 모였어요. 멋있게 허리가 짤룩한 컵이 있잖아요. 다 놓았더라고요. 뭘 돌리려고 이런 것을 놔두었느냐 그랬더니, 딱 뭘 따라요, 포도주가 적색, 검은색 포도주만 있는 줄 알았는데, 흰색 포도주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딱 돌리는데, “마주앙”이라고 그러더라고요 “마주앙” 마주보면서 먹는 것이 마주앙인가? 그랬어요. 뭔 줄 모르고 그랬더니, “전도사님, 이건 포도주인데 한 잔씩 돌리고 기분 좋게 예배드립니다.” 그러더라고요. 심방전도사로, 남선교회 담당전도사 첫 부임했는데, 첫 모임에 금요일 날 구역예배예요, 이게 실상이에요. 그때 위기감이 오더라고요. “여기서 내가 잡히면 끝난다.” 딱 선언했지요. “이거 마시면, 난 일어나겠다. 어떻게 할 것이냐?” “아. 지금까지 그렇게 했어요~~~” 전도사가 쩍~ 이러더라고요. “목사도 했는데...” “난 옛날 사람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내 양심상 포도주 마시고 구역예배 드리는 것, 허용이 안 된다. 새 술에 취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마주앙 먹었다는 말은 못 들어 봤다.” 30분을 신경을 썼어요. 기어이 날 보고 양보를 하라는 거예요. “이거 하라는 얘기는 날 그만 두라는 얘기로 알고 난 일어나겠다.”고 하면서 진짜로 일어났어요. 그랬더니 딱 잡더라고요. “아이~~~ 전도사님 융통성도 없이 그러냐고요?” “이것은 허용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적당히 즐기기를 원해요. 술이 죄다, 아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예배 문화가 안 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게. 술이 죄입니까? 담배가 죄입니까? 나는 죄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어떤 분이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신부님이 로만 칼라를 딱 입고 담배를 피우는데, 영~~~ 거룩하게 보이지 않더라는 거예요. 안 믿는 사람 얘기예요.
“아~ 불신자들이 예수 믿는 사람이 담배 피우는 것 안 좋아하구나.” 그때 알았어요.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잔 딱 걸쳐 가지고, 뻘게 가지고 돌아다녀요. 불신자들이 그걸 보고 좋아하겠어요? 참 저분은 합리적이고, 융통성이 있는 사람으로 보겠어요? 싫어하지요? 우리 문화에서는 술 담배는 안 된다는 것을 제가 결론을 내린 거예요. “누룩 없는 떡을 먹어라.” 이게 중요합니다. 세상을 즐기지 마라. 우리는 하나님을 즐겨야 한다. 그런 의미죠?
9) 이방인이나, 거류인이나, 타국의 품꾼은 먹지 못하고, 종은 할례를 받으면 먹을 수 있다.
품꾼,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은 절대로 유월절 잔치를 먹을 수 없어요. 돈 때문에 일 하십니까? 사명 때문에 일하십니까? 만약에 돈 때문에 일하면, 품꾼은 먹어요? 못 먹어요? 못 먹어요. 우리는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품꾼은 안 된다고 그랬어요. 이방인들의 경우에는 안 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이방인이라는 말은, 종은 먹을 수 있는데, 할례를 받은 다음에 먹을 수 있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자기를 내려놓으면 먹을 수 있다는 말이죠. 할례라는 말은 신약에 와서는 세례와 같은 개념이지요?
그래서 유월절에 이런 의미 전체가 뭐냐 하면, “새로운 존재, 새로운 창조된 존재. 변화된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이전에 질서로 살면 안 됩니다. 이제. 오늘날 교회 안에 쉽게 5분짜리, 10분짜리 복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까지는 잘 했어요. 잘 했는데, 이제 당신은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절대로 이제 버림받지 않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0:28~29에 말씀하셨고, 또 요한복음 14:16에 보면 “성령을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떠나지 않는다.” 구원의 확신을 말하지요?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것만 가르쳐주었지, 그 다음에 구원받고 이런 새로운 질서 가운데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 믿고 난 후에도 불 가지고 사는 사람도 많고, 자시 냄새피우고, 욕망에 따라 살고, 피 없는 복음만 자꾸 얘기하고 있고, 누룩 있는 떡만 찾아다니면서 먹고, 돈 받고 일하고 이런 것들이 비일비재한 거예요. 그러니까, 출애급기 12장의 서론만 읽고 그냥 끝내버린 사람이에요. 본론, 결론을 못 본 거예요.
10) 마지막 열째는 40일째, 여호와의 군대가 됨.
이제는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누구를 위해 살아요? 하나님의 군대, 여호와의 군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고, 가치 자체가 바뀌는 거예요. 여호와의 군대가 된다. 구원받은 이후에는 유월절 질서를 가르쳐 주어야 하겠지요? 그래서 가짜와 진짜를 식별해 주어야 되요. orientation을 잘 해 주어야 해요. 선택은 그 사람들이 하는 거고,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얘기해 주어야 되요. 천당 간다는 얘기만 하니까,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 믿고도 변화가 안 되잖아요. 이걸 잘 가르쳐 주어야 되요. 이걸 여러분이 하면 목사가 치는 소리한다고 해요. 그냥 읽어가면서 “뭐라고 써놓았죠?” 하면서 그냥 읽게 해요 읽게...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하면서 자기가 대답하게 하면, 그러면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벼락같은 말씀으로 하시는 거예요. 그냥. 목사가 힘을 내버리면, 목사는 가능하면 소리를 조그맣게 해야 되요. 강조하지 말고, 조용~ 조용히, 이렇게. 부드럽게, soft하게 해야 되요. 하나님이 벽력같은 소리로 말씀하시게 해야 되요.
설교학 가르치셨던 정장복 교수님이 어느 날 설교 실습을 하는데, 이제 신대원 다니면서 실습을 하는데, 어떤 신학생이 나와 가지고 턱~ 성경을 읽는데, 이렇게 읽었어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목에 힘을 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읽음) 교수님이 듣다가, “야, 내려와! 네가 하나님이냐? 내려와. 목에 힘 빼!” 그 얘기가 저에게는 그냥 계시(啓示)의 음성으로 들렸어요. “그렇구나, 우리가 목에 너무 힘주면 안 되겠구나. 우리가 조용조용해야 그 분이 큰소리치시지...” 내가 큰소리치면, 그 분이 할 말이 없으시잖아요? 할렐루야.
< 출애급기 강의 (8) >
★ 적용 질문
1.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를 ‘신’(엘)이라 하였습니다.
원수, 적들이 보는 나는 어떤 모습일 것 같습니까?
2. 하나님의 심판, 진노를 피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2:23)
3. 유월절의식을 어떻게 후손들에게 가르치라 하셨습니까? (13:8-10)
1)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를 신이라 했습니다. 원수, 적들이 나를 보는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너는 우리 편 고맙다. 적진에 들어가서 우리 편 되었으니…” 이런 사람들도 있어요.
아군 폭격하는 사람들... 하나님은 우리를 원수 앞에 세울 때, 신으로 세웠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대행자,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심판, 진노를 피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2:23) “여호와께서 애급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 뭐를 보시고요? 피를 보시고요. 피... 자, 여기서 믿음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뭐냐 이렇게 한 번 예를 들어봅시다.
① 동물애호가가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은 양의 피를 바르라고 그러면 싫어할 겁니다. 나는 양의 피를 바르지 않고, 망고를 내가 갖다 바르겠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합시다.
② 둘째 사람은 애이~ 양이 뭐야 코끼리정도는 잡아야지, 양은 한 마리에 한 십만 원 한다면 코끼리는 한 오십 만원 한단 말입니다. 나는 큰 것으로 하겠다고 하고 코끼리를 잡아가지고 거기다가 피를 발랐어요.
③ 셋째 사람은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신데 무슨 동물의 피를 가지고... 그런 잔인한 하나님이 아니다. 안 바르고 그 밤을 지났어요.
④ 한 사람은 양을 잡아서 그대로 했는데, 너무 불안해 가지고 집안에서 바들바들 떨었어요. 그 밤에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요?
망고를 바른 사람, 코끼리 피를 바른 사람, 피를 안 바르고 평안하게 주무신 사람, 피를 발라놓고 그냥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던 사람, 결과를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요? 피를 바른 사람, 어떤 피요? 그런데 안 믿었잖아요? 떨었잖아요? 떨어서도 믿음이 있는 거예요? 피는 안 바르고, 우리 하나님 그런 하나님 아니야, 무슨 피를 바르라 그래, 난 우리 하나님 그런 하나님 아니야, 나는 하나님 신뢰해, 그러면서 방에서 주무셨던 사람 믿었잖아요. 그러면 장자가 살아난 집은 어떤 집이에요? 피 바르고 바들바들 떨었던 사람, 그럼 바들바들 떤 것은 뭐예요? 소화가 안 되었대요, 소화가... 너무 떨어가지고 그냥.., 긴장을 해가지고 죽을 까봐서... 믿음으로 피 바르고 쉬어버렸으면 간단한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지금 얘기하는 거예요. 지금 믿음이 뭔가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분 믿음이 뭐예요? 예~~~ 믿음은 느낌이 아닙니다, 그대로 순종하는 겁니다. 우리가 믿음 그러면, “믿싸오니... 믿싸오니... 믿싸오니...” 그래서 억지로 믿으려는 뭐 이런 것을 말하는 것 아니라, 느낌으로는 불안해도 이미 그 말씀을 받아들여서 행동하는 그 자체가 신뢰예요, 신뢰... 믿음이 뭐예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만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이란 거지, 느낌, 기분이 좋다, “오늘 은혜 받았다.”고 눈물 흘리는 것을 믿음이라 그러지 않아요. 그것이 구체적으로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게 될 때 그 것을 믿음이라 그래요. 그러면 교회 안에 믿음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가 알 수 있잖아요? 목사가 선포하면 그저 은혜가 되든 안 되든, 눈물이 나든 안 나든 관계없이 그대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고, 앞에서 은혜 받았다고 별나게 쓸레방 떨어대고, 그거 안 하는 사람은 장에다 죽어요, 안 죽어요? 죽더라 이거예요. 거기에는 복이 없어요. 우리가 믿음이란 개념을 말씀 순종으로 딱 연결 시켜주어야 되요. 그런데 한국교회가 그 동안 이걸 잃어버린 거예요. 그리고는 즐기는 거예요, 그냥... 설교에 즐기고, 오늘 은혜 너무 많이 받았다고 감동이나 올려놓고, 가서는 잊어버려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리셨나이다.” 말씀을 버리면 죽어요, 왕관을 잃어버려요. 피를 볼 때 내가 넘어가겠다고요(12:13), 피를 볼 때... 피를 바르는 게 중요합니다.
회개 기도할 때 눈물을 흘려야 되느냐, 얼마나 애통해야 되느냐,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그냥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그러면 되는 거예요... 눈물이 2cc 나오면 안 되고, 3cc 넘어야 되고 뭐, 흐느껴야 되고 뭐... 다시는 그런 행동하면 안 되고 뭐... 아이고! 그런 얘기하지 마요~~~. 자전거 배울 때 한두 번 깨어졌습니까? “믿음이 뭐냐?” 오늘 예수 믿고 바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깨끗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니에요. 애들 보세요, 천박하고 유치하고 헷갈리고, 심지어 들이받기도하고, 방황하고, 청소년기 때는 부모를 막 대항하잖아요. 그래도 집안에만 있으면 아이들이 다 변화되고 다 성숙해서, “아이구! 저게 시집가서 어떻게 살란가?” 했더니, 애들 2~3명 거느리고 오는 거 보면, 참 은혜예요, 은혜... “아! 은혜가 그거구나.” 엄마 아버지가 3~40년 기다리며 팍 밀어줄 때 천박함, 더러움, 대항했던 것, 반항했던 것, 다 해결되어요, 다... 한 번 그 분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므로 단 번에 우리를 온전케 하셨다는 말은 그런 말씀이에요.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 오늘 당장 달라진다는 얘기가 아니라, 아버지 말씀 순종하고 심지어 반항한다 할지라도, 바울 신학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이게 “in 그리스도(in Christ) 사상”이에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집 안에 있고, 교회 안에 있고, 목자와의 관계에서 질서 안에 있게 되면, 시간이 흐르면 해결이 되더라. 이거에요. 육신적인 아이를 키우는데, 3~40년 걸리는데, 영적으로 한 사람 변화 시키는 것 하루아침에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도 40년 기다려 주잖아요. 너무 성급하게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가르치다가 망가뜨리면 안 되고, 천천히... 그러나 말씀의 질서 앞에 있어야 되요. 불순종해도 따라오는 애들이 있어요. 이렇게... 질서 가운데 있는 애들이 있고, 말을 잘 듣는 것 같은데, 근본적으로 안 듣는 사람이 있어요.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우선 경청(傾聽)이 중요합니다. 자꾸 들어야 되요. 그래서 ”피 발라라.” 그러면서 어련히 알아서 그랬을까... 난 잘 안 믿어지는데도 바르겠다하고 바르는 것이 믿음이라니까요. 그냥 따라오는 거예요.
3) 유월절 예식을 어떻게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그랬습니까?
(13:8~10) “너는 그 날에 네 아들에게 보여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급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로 말미암음이라 하고,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해마다 절기가 되면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잊어버리지 말라는 거예요. 기호, 표, 입, 무슨 얘기냐 하면, 집에다가 문설주에도 붙여놓고, 화장실에도 붙여놓고, 또 애들 공부하는 방에도 붙여놓고... 요즘은 웃통 벗은 이상한 근육질만 그냥 붙여놓으니까... 그런 야시꾸리한 것 다 걷어내고, 거기다 뭘 붙여요? 하나님 말씀 붙여주는 거예요. 애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전달해 주고, 그저 부모가 입으로 “공부해라, 공부해라.” 그렇게 하지 말고,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된다.” 그렇게 해야 되요.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지 않게 하는 거예요. 우리 아이들 의식 속에 각인(刻印)이 되어야 되요. 그러면 그 아이의 인생은 하나님께 보장을 받는 거예요. 이런 delivery 안 하게 되면 나중에 심판받아요.
13장-24장 인도하여(1)
13장-18장 (자기와의 싸움)
13장 그리스도인 삶에 대한 orientation
1. 으뜸, 을 드려라. (시간, 주간, 물질, 건강, 첫 자녀)
2. 무교절을 지켜라. - 누룩 없는 떡을 취하라.
3.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아라.
12장에서 피를 통해서 하나님이 계약(契約)을 맺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子女)로 인 쳐 주신 다음에,
13~24장은 인도(引導)하였는데, 우선 13~18장까지가 성화(聖化)인데,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내면의 싸움입니다. 아까는 싸움이 밖에 있었잖아요? 우상과 싸웠고, 바로와 싸웠고, 사탄과 싸우는데, 그것이 나의 내면으로 들어와요,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이 됩니다.
13장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orientation이에요.
예수 믿는 것은 무얼 말하느냐? 12장에서 구원을 경험한 다음에 바로 구원이란 개념을 설명을 해 줘야 되요. 도대체 뭘 도움 받는 거냐? 어떤 걸 결단하는 거냐?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다.”하는 말은 대학교에 들어가면 첫 시간에 orientation을 하죠, 이 orientation을 잘 받아야 되요. 앞으로 어떻게 대학생활을 해야 되며, 학점은 몇 학점을 받아야 되고, 결석일수가 1/3이 되면 뭐 탈락이 되고... 이런 기본 원칙이 있어요. 그걸 무시하고 열심히 해봐야 소용이 없어요. orientation을 잘해야 되는데, 세 가지 orientation을 주셨어요.
① 첫째는 “으뜸을 드려라, 첫 것을 드려라.” 이거예요. 요즘은 십일조 설교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출애급기 가르치면 다 해결되는 거예요. 자. 구원 받은 다음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무조건 첫 것은 하나님 거예요. 하나님을 잘 모시는 방법은 첫 자리를 내드리는 거예요. 동양, 한국은 그런 질서가 참 잘 되어 있어요. 식탁에 쭉 앉아 있을 때, 누가 먼저 수저를 들어요. 제일 어르신이... 반찬도 미리 먹으면 안 되죠. 눈치를 좀 봐야 되죠, 어르신이 먼저 드신 후에... 자리에 일어날 때도 누가 먼저? 어르신 먼저, 이게 성경적인 문화와 연결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이 예수를 잘 믿게 되어 있어요. 너무 이스라엘과 풍속이 비슷한 게 많아요. 장남에 대한 선호 사상도 마찬가지. 첫 것을 드리는 게 왜 필요하냐? 하나님은 우리 장자를 탕감해 준 것이 아니라, 사셨어요. 값으로 사신 거예요. “내가 양을 주고 너희 장남을 샀다.”고 그랬어요. 구원받은 순간 첫 것은 누구 거예요? 하나님 거예요. “내가 드려야 한다.”가 아니라. 자동이 되어야 해요. 법적보장이에요. 그 대신 내가 첫 것을 드리면, 하나님이 나를 장자로 인정하시고 장자권의 복을 줘요. 내가 첫 것을 안 드리면, 내 첫 것을 가져가버려요. 신앙생활하며 첫째가 뭐냐 하면, 첫 것이에요 첫 것. 으뜸을, 너의 삶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냐는 거지요. 하나님께 있다. 그걸 고백하는 것이 십일조 사상이에요. 십일조에는 다섯 가지가 있어요.
a) 시간의 십일조 -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예요. 그동안 한국교회가 복 받았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 거예요. 이것도 이제 부도 나게 생겼어요. 사람들이 도시 문명이 자꾸 발달하다보니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습성화하여 새벽기도가 점점 밀려나기 시작해요. 미국에 갔더니 요즘 새벽기도 바람이 불었어요. 한인 사회에서 새벽기도를 안 하면 이단이라는 소문이 나가지고, 목사님들이 이단 안 되려고 새벽에 그냥, 새벽기도 안 하려고 미국 갔다가, 지금은 죽을 뚱, 살 뚱해요 지금은... ‘할렐루야!’ 그랬죠, 그냥... 본국에서 수출을 하니까, 그 쪽에서 수입을 해요, 그냥. 야~~~ 멋있더라고요 아주 그냥... 첫 시간 드리는 것, 새벽기도 나오면 좋지만 못 나와도,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첫 시간을 하나님 앞에 “주인님!” 그러고, 하루에 대해서 여쭙는 거예요. “오늘 내가 어떻게 할까요? 무엇을 해야 됩니까? 누구를 만나야 됩니까?” 이렇게... 종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주인에게 가서 하루의 일거리를 받듯이..
우리가 엎드려서, 반드시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예배의 마음을 가지고 어르신을 예우하는 거예요.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b) 둘째는 주간의 첫날이에요. 주일입니다. 주일. 이것은 안식일이 아닙니다. 일주일의 첫날입니다. 첫 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일은 구별시켜라. 주간의 첫 날.
c) 물질의 첫 것, 이걸 십일조라 그러지요.
d) 그 다음에 건강, 건강의 첫 것을 드려야 되는데. 이건 뭘 말하느냐 하면, 다른 스케줄 다 잡고 남은 시간 교회 봉사하는 게 아니라, 모든 스케줄 잡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내 건강을 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남은 시간 가정을 위해 쓰고, 남은 시간 자기를 위해 쓰는 거예요. 봉사. “집사님! 다음 주간에 시간을 내셔서 심방을 같이 좀 가십시다.” “목사님! 저는 다음 주간에 시간 없어요.” 벌써 스케줄을 다른 것부터 먼저 잡은 거예요. 이건 으뜸 사상이 아니에요. 먼저 목사님께 전화해 가지고 다음 주 안에 교회 중요한 일 없습니까? 먼저 물어봅니다. 하나님 것 먼저 하고, 남은 시간에 하는 거예요. 요새 엄마들은 너무 바빠요, 교회 일 안 하고 다 바빠서 못 한다고 그래요. cell장도 안 하겠다. 이런 원리(?) 가르쳐주면 제일 먼저 하려고 그래요. 왜 장자권의 복을 받는데, 이게... 저는 봤어요.
건강 바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건강 보호해 주시더라고요. 아버지가 건강 바치시고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 자식들이 복을 받더라고요. 하나님은 절대로 에누리 없는 장사를 하시지 않더라고요.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반드시... 아버지가 뿌린 것들을 자녀가 다 거두어요. 정확하게 자식이 거둡니다. 놀랍습니다. 수학이에요 수학. 신앙생활은... 거저가 없어요. 지금 나는 부지런히 심고 있어요. 누가 거두겠어요? 자녀들이 거두지요. 그대로 흘러가는 거예요, 그대로... 건강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강...
e) 첫 자녀를 드려야 되요, 첫 자녀. 민수기를 보니까, 레위지파 사람들이 대신 받고 첫 자녀를 대속하라 그랬어요, 그래서 장남, 첫 것과 레위지파 사람들을 묶었어요. 장남=레위지파 이렇게 묶었어요. 나중에 수효가 부족하니까 태어난 지 2개월짜리까지도 이렇게 묶었어요. 그래도 레위 지파 사람을 다 cover를 못해요. 그러니까 나중에는 속전(贖錢)을 내게 했어요, 속전... 돈 내게 했어요. 그래서 레위지파 사람들을 support하는 거예요. 자, 첫 자녀를 드린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내 장남이 귀하잖아요? 내 장남 바지 사줄 때 선교사님 바지사주는 거예요. 내 아들 뭐 챙겨줄 때 목사님 챙겨드리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이렇게 처음에 가르쳤더니 사람들 시험 들더라고요. 은혜 받았을 때는 아들하고 똑같이 목사님을 예우하고... 이걸 잘못 가르쳐놓으면 오해가 될까봐서, 담임목사를 섬기지 말고, 풀타임으로 일하시는 선교사님을 지원하라고 그랬어요. 이렇게 묶어주었어요. 이렇게...
처음에는 아들 예우할 때 같이 예우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아들 엄청 사랑하잖아요? 그러니까 비용이 많이 나가니까, 시험 들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살∼짝 “믿음의 size대로 하십시오.” 그랬더니 지금은 5천원, 만원, 10만원 막 이렇게 내요. 우리 교회에서는 이것을 “첫 열매 선교회”라고 그래가지고, 첫 자녀의 이름으로 무조건 선교하는 거예요. 5천원이라도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자녀가 장자로 “복 받게 하는 원리”라고 가르쳐 줘요. 전교인이 첫 열매 선교회에 다 들어와 있어요. 그것을 선교비 보내는 거예요. 제일 좋은 것은 아들 몫으로 이렇게 같이 묶어주는 거예요.
이렇게... 다섯 가지입니다. 다섯 가지, 첫 것을 드리는 것, 그러니까 첫 자녀를 살려주신 대신에 그 첫 자녀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구별 시켜버렸어요. 하나님이. 이게 법적 장치입니다. 이게... 이거 뭐 드려도 좋고, 안 드려도 좋은 것이 아니라, 드리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이 되어요. 그런데 얼마만큼 우리가 이익이냐면, 토미 테니가 쓴 책 가운데 그런 얘기가 나와요. “하나님이 지나가시면서 ‘팁’ 한 번만 주셔도 평생 먹고산다.”고 워낙 부자시라... 하나님께서 팁만 주셔도 그걸로 평생 먹고 사는데, 우리가 장자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자권의 복을 주시는데, 누가 이익이에요? 이런 거예요. 제가 억만장자라고 그럽시다. 수첩이 여기 있어요. 선교사님 것 내 놓아보아요. 지갑 내 놓아보아요. 둘이 바꾸기 하면 누가 이익이겠어요. 내용은 잘 모르지만, 누가 이익일 것 같아요. 자~ 거기서 장자권, 곧 으뜸만 드리는 거예요. 십분의 일만 드리는 거예요. 이렇게... 그러면 내가 뭐라고 그러냐 하면, “내 후사로 세우겠다.”고 그래요. 후사(後嗣)가 뭔지 알아요? 거기에는 내가 십분의 일을 드리고, 그 분이 내게 그분의 것을 통째로 넘겨주시는 거예요. 여기에는 재산문서까지 다 들어있어요. 여기에... 거래하면 누가 이익이겠어요? 계산할 필요가 없지요. 이런 계산을 사람들이 못한다니까요? 그러니까 미련 곰퉁이들이에요. 교인들한테 이걸 가르쳐 주어야 되요. 그래야 복을 받지요. 하나님을 통째로 얻는 것인데, 왜 그것을 안 합니까? 이런 “영적 dealing”을 모릅니까? 내가 만든 말이지만... 우리는 거룩한 거래를 하는 거예요. 그런 머리는 사람들이 안 돌아 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장을 해주시는데, 너 십분의 일, 첫 것만 드리면, “내가 너를 나의 후사로 나의 전 재산, 전 기업을 다 너에게 몫으로 주시겠다.”는 거예요. 이게 거래가 됩니까, 안 됩니까? 십일조 사상은 계산이 안 되는 것이니까요. 그걸 사람들이 못하는 거예요. “첫째, 으뜸을 드려라. 으뜸은 내 것이다.” 심지어 나귀나 부정한 짐승 같은 경우에는 죽이든지, 목을 치든지, 아예 목을 안 치려면, 속전을 내라고 그랬어요. 아니면 죽이라고 그랬어요. 못 내놓겠으면, 죽여라. “하나님을 으뜸으로 모시면, 지금부터 너는 나의 상속자가 된다.” 이게 기가 막힌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수지가 맞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겁니까? 아주 굉장한 거지요, 아주...
② 둘째는 무교절을 지키라고 그랬어요. “누룩 없는 떡을 취하라.”, “죄 없는 삶을 살라.”는 거예요. 우리가 죄를 피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죄 없는 삶을 살기위해 애쓰고, 기도하고, 이런 성별된 삶을 추구해야 되요.
③ 셋째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아라.” “지금부터는 내 의지, 내 경험, 내 지식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함으로 살아라.”라는 거예요.
이 세 가지가 13장의 내용이에요. 이 내용을 정리해 보면
첫째 으뜸을 드리는 것은 누구하고 연결된 것 같아요? 성부 하나님과 연관이 있어요. 하나님... “하나님 잘 섬긴다.” 그러면서 최고의 자리를 드리지 않는 것은 거짓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은 첫 것을 드리는 거예요.
둘째 죄 없는 삶은 어느 분과 연결된 것 같아요? 예수님, 예수님과...
셋째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는 것은요? 성령님과 연결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신앙생활은 뭐냐? 우리가 삼위일체적으로 하는 거예요.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 성자 예수님에 대해서, 성령님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단하는 거예요.
가까운 불레셋 길로 인도하지 않으심
‘하나님의 군대’라 하셨지만, 아직 전쟁할 준비가 되지 않음.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급으로 돌아갈까 하여 홍해길로 인도하심(13:17-18)
• 숙곳에서는‘해변길’과 병행하여 곧장 가데스바네아로 가는‘술길’이 있다.
•‘술 길’은 해변길에 비해 좋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이었다.
• 하나님께서는 이 길도 허락지 않으시고, 더 돌려 광야 끝, 에담 광야길로 인도 하신다. 이 길은 사람들이 거의 이용하지 않는 길이었다.
하나님이 13장에서 세 가지 orientation한 다음에 14장은 홍해를 건너게 하는데, 지금 여기 라암세스에서 숙곳으로 와서 이렇게 내려오는데, 이게 제일 가까운 길이에요. 이게. “해변길”이라고 해요. “왕의 길”이라고도 하고 “술 길”이라고도 해요. 지금도 이 길이 있더라고요. 둘째로 가까운 길, 셋째 길은 전혀 엉뚱한 길로 내려가 버리는 거예요. 이렇게... 이 쪽 블레셋 길로 가면 제일 가까워요. 그런데 이 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셨어요. 둘째로 가까운 길로도 인도하시지 않으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는데, 광야 길로 인도하셨어요. 가까운 블레셋 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군대라 하셨지만, “아직 전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급으로 돌아갈까 하여 홍해 길로 인도하셨다.”
숙곳에서는 해변 길과 병행하여 곧장 가데스바네아로 가는 술 길이 있다.
위엣 길과 가운데 길이지요.
술 길은 해변 길에 비해 좋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이였다. 하나님께서 이 길도 허락하시지 않으시고, 더 돌려서, 돌쳐서 광야 끝 에담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 이 길은 사람들이 거의 이용하지 않는 길이었다.
지도상으로 볼 때 이렇게 여기서 이렇게 가면 쉽잖아요? 그렇게 가지 않고 일부러 가다가 밑으로 이렇게 홍해를 건너게 해요. 안 건너도 될 지역인데 홍해를 건너게 밑의 길로 가게 해요.
14장 홍해를 건넘 ( )
14:1-2,31 하나님의 계획 (돌려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14:10-12 백성들의 반응
14:13-14 모세의 태도
14장은 홍해를 건너게 하는데, 이것을 “세례”라 합니다. 세례... 하나님께서 일부러 홍해를 건너게 해서 세례를 받게 해요.
1~2, 31절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급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돌려서 인도하셨다는 거지요.
10~12절 백성들의 반응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서 본즉 애급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급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급에서 이끌어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급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두라. 우리가 애급 사람을 섬길 것이라.’하지 아니하더냐? 애급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백성들이 불신했어요. 신뢰를 못했어요.
13~14절 모세의 태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하나님의 계획과 백성들의 반응과 이미 훈련이 끝난 지도자의 태도가 전혀 다릅니다. 자~ 지도자는, 이미 훈련이 끝난 사람은 “두려워하지 마라.”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구원을 보라.”
♩♬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되심을 알지어다.
열방과 세계 가운데 주가 높임을 받으리라.” ♩♬
모세가 “하나님 하시는 것을 좀 보자, 기다려 보자, 우리가 신뢰해 보자.”라고 이야기를 하지요. 이것은 찾아봐야만 은혜가 되니까 14장에 가 봅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백성들은 원망했고, 지도자 모세는 기도했어요. 자. 14장부터 봅니다. 광야 길로 인도하면 이런 반응들이 나타나기 시작해요.
14:10~12 홍해 앞에 선 백성들이 반응을 한 번 봅시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서 본즉 애급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급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급에서 이끌어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급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두라. 우리가 애급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급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급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원망하는 백성, 기도하는 모세
• 14:10-12, 13-16
• 15:24, 25
• 16:3, 4
• 17:3, 4
• (민 11:1) 백성이 …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
• (민 14:27)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 (민 21:5-6)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모세는 어떻게 했어요? 15절에 보니까, “내게 부르짖었다?” 그랬지요? “부르짖었다.”
11절에 보면 백성들도, 10절에 보면 맨 뒤에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했지요. 이스라엘도 부르짖었잖아요. 이 부르짖음은 기도의 부르짖음이 아니고 뭐예요? 원망, 불평, 대적하는 부르짖음이란 말이에요. 앙탈하는 거예요, 앙탈. 모세는 기도했죠?
자~ 15장, 위기가 또 옵니다.
(15: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에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백성은 뭐 했어요? 원망했고, 모세는? 기도했고...
16장 또 광야가 나오지요? 신 광야.,
(16:3) 백성이 어떻게 했는지 봅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급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자~ 2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 했는데, 모세는 그 때 어디 갔어요? 어디 있었어요? 4절에 모세가 있는 위치가 어디에요? 하나님 앞에 있었지요? 뭐 했어요? 기도했지요. 백성들이 문제 때문에 원망했을 때, 모세는 같은 문제를 보고 하나님 앞에 있었어요. 17:3-4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급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모세가 여호와에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백성은 원망했고, 지도자는 기도했고, 자! 그러면 중요한 결론을 제가 내립니다. 보세요. 모세는 광야 40년을 끝낸 사람, 광야 시험에서 합격한 사람, 훈련이 끝난 사람은, 백성들은 앞으로 40년을 훈련을 받아야할 사람, 저를 보세요. 목사님들의 광야가 앞에 있어야 합니까? 뒤에 있어야 합니까? 더 40년간 고생을 하셔야 되겠습니까? 40년을 더 고생하시렵니까? 뒤에 있어야겠지요? 권한이 뒤에 있는 사람의 특징이 뭐라고요? 문제가 오면, “이 놈의 인간들이 그러면서 원망하며 불평하는 자 누구야?” 이렇게 하는 사람은 다 고난이, 광야가 앞에 있다? 뒤에 있다? 아, 저것은 10년짜리, 아, 저것은 20년 짜리... 이미 고난이 끝난 사람의 특징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한다? 누구한테 간다? 사람 붙잡고 얘기하고, 누가 어떻고...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누구한테 간다? 하나님께 간다. 원리가 간단해요? 어려워요? 너무 쉽지요. 너무 간단하지요? 이런 것을 찾아내는 것이 성경공부라니까요? 그냥 기도하면 되요. 하나님 아시지요, 나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 감당 못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나님 도와주세요. 다윗이 훌륭했던 것이요. 이런 부분이 훌륭했어요. 그렇게 힘들고 어려워도요, 그 속에 있는 원망, 불평, 분노 이런 것들을 누구 앞에 가서 풀었나하면, 하나님 앞에서 풀었더라고요. 시편을 읽어보니까요, 가슴이 섬뜩섬뜩한 내용이 나와요. 이런 거예요. “하나님 그 집 아이를 고아가 되게 해주시고, 그 집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해 주시고, 그 집 재산은 고리 대금업자가 다 빼앗아가게 해주시고...” 이런 얘기가 막 나와요. 그 성군 다윗이, 훌륭한 그 분이, “하나님. 벼락은 어디에다 쓰시려고 아끼십니까? 자동차 사고 많이 나던데...” 이런 말을 사람한테 하면, 원망 불평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하면, 기도가 되는 거예요. 이런 간단한 원리인데, 너무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거예요. 어떻게 앞으로 광야를 40년 거니시렵니까? 광야를 내 뒤로 보내시렵니까? 예! 뒤로 보내셔야지요. 그러시려면 뭐 하셔야 되요? 기도해야지요. 기도 안하면, 사람 대적하고, 원망하고, 불평 나옵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니까? 그 인간이 나를 힘들게 했고, 저 원수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이렇게... 사람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 신앙을 아는 사람은 그래요. “하나님! 저 사람을 나에게 붙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60억 인구 가운데, 이런 고약한 인연도 있습니까? 하나님,.. 대형 컴퓨터로 계산해도 이건 안 나올 얘기인데, 하나님! 왜 이르셨습니까? 틀림없이 무슨 뜻이 있을 텐데... 태어나도, 태어나도, 저 아이가 왜 우리 집에 태어나야 합니까? 하나님 실수하신 것 아닙니까?” 이것을 아이한테 말하거나, 사람 앞에 말하면 그것은 죄가 되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 하면 기도가 되고, 치유가 되요. 나는 다윗이 굉장히 그릇이 커서 그런 줄 알았어요. 사울을 죽일 수 있는데 안 죽였잖아요. 시므이라는 사울 왕가의 말단(末端) 종이 와 가지고, 좇아오면서 다윗을 막 저주하며 욕을 하잖아요. 옆에 있던 장수들이 시므이를 죽이려고 하니까, “버려두어라. 하나님이 하시니까...” 그런 도량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몰랐어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셨어요. 바로 자기의 분노, 원망, 불평하는 마음이 해결 안 된 이런 감정들을 누구하고 해결해요? 하나님 앞에 실컷 털어놓고 나니까, 사람 만나면 용서가 되어요. 이해가 돼버리는 거예요.
“두어라!” 중요한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stress 많은 목회하면서, 하나님과 둘이 만나가지고, 내 감정을 토설하는 그런 시간이 없는 사람은 100% 입으로 범죄합니다. 사람에게 좋지 않은 말을 했다가 10~20일 지나서 그 말이 돌아온 경험을 한 적이 많지요? 나는 그 사람 믿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이 인간이 배신을 한 거예요. 이 인간이 배신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인생을 모른 거지요. 목사는 부정적인 얘기하면 되요, 안 돼요? 절대 안 되어요.
“집사님 이 얘기 하면 절대 안 돼~~~” 그 얘기까지 합쳐서 돌고 돌아다녀요. 딱 결단을 내리세요. “절대로 교인에 대해서는 내가 불편한 심정을 말하지 않겠다.” 결단을 내려 버리세요. 그럼 stress 받고 심기가 불편하면 어떻게 되느냐? 기도실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토설하고 기도해요. 방언기도가 좋은 것이 뭐냐? 방언으로 욕을 해버려요. “그 원쑤 같은 인간~~~.” 다윗이 그랬어요. 신학적으로 뭐라고 기록했냐 하면요, “저주시(詛呪詩)”라고 그랬더라고요. 이건 잘 모르고 한 것이고 저주시가 아니에요. 그게. 사람에 대해서 막 저주하는 거예요.
저주가 아니고, 현대 심리학에서 밝혀졌어요. ‘토설(吐說)’이라고 해요, ‘토설.’ 감성을 하나님 앞에 풀어놓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토설해 놓으니까, 마음이 녹아내려 버리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 원수를 만났을 때 어떻게 되요? 자비와 사랑으로 대할 수 있더라 이거예요. 현대 심리학에서 이걸 밝혀 준 거예요. 우리 교회에서는 이것을 이용해서 “therapy program”을 만들어 건강한 방법으로 감정을 토로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랬더니, therapy만 갔다가 오면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거예요. 완전히 변화되어 버려요. 다윗이 그런 것을 사용하였더라고요. 야~~ 놀랍다, 역시 이 분은 탁월하다. 우리가 목회하면서 stress를 얼마나 많이 받습니까? 그것을 털어놓는 방법이 없는 사람들은 고약한 문제가 생겨요. 물론 테니스나, 수석(壽石), 난(蘭) 채집으로도 풀 수 있지만, 그것은 임시방편 밖에 안돼요. 결국은 어디에 가서 해결해야 되요? 하나님 앞에 가서 해결해야 되요. 우리가 답을 다 알고 있잖아요? 안 해서 그렇지... 얼굴들 보니까 stress를 너무 많이 받고 있어요. 필요 없는 군살들이 많이 찐 것은 이게 stress 받은 거예요. 풀어야 되요, 풀어.
Joke 하나 할게요. 어떤 아내가 전화기를 잡으면 서너 시간은 풀어야 한대요. 그게 그 사람이 stress 푸는 방법이에요. 남편도 그것을 인정해 주는 거예요. 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30분 만에 끊더라고요. 남편이 너무 놀라가지고 “당신 거듭났네... 어떻게 30분만에 전화를 끊었어?” 그랬더니, 이 여자가 시~~~익 웃으면서 “잘못 걸려온 전화였어...”
우리는 무엇으로 풀어요? 이거 딱 보니까 대별이 되잖아요.
민수기 11:1에 보니까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그랬어요. 이 원망을 하나님 앞에서 했으면 문제가 안 돼요. 사람 앞에서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신데 가서 풀면 되요. 민수기 14:27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민수기 21:5-6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하여튼 원망, 불평,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싫어하시는 거예요. 너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나를 인정하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거예요. 그것을. 좋은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아뢰고, 궂은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토설하고... 이것이 신앙이란 말이에요.
구약에 나타난 세례의 상징들
고전 10:1-2 출애급 시 홍해 사건
벧전 3:20-21 노아 홍수
골 2:11-15 할례
신약에서의 세례의 중요성
막 16:16
행 2:38
행 22:16
1) 구약의 나타난 세례의 상징들, 찾아봅시다.
고린도전서 10:1-2 바울이 홍해를 건넌 사건을 세례라고 그랬어요.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구름은 광야를 말합니다. 광야 40년이 세례 받는 기간이라는 거예요. 자기를 내려놓는 기간, 어제 개념으로 말하면 신발 벗는 기간이에요. 여기서 바다는 뭘 말하겠어요? 홍해지요, 홍해를 걷는 것이 뭐라고요? 세례 때문이라는 거예요.
베드로전서 3:20-21 보통 우리가 기도할 때는 노아의 방주를 구원의 방주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 안에 들어오면 구원받고, 안에 못 들어오면 구원받지 못했다고 해서, 많은 신앙인들이 구원의 방주라고 그러는데, 베드로는 구원의 방주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물세례를 말하죠. 20절에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 여덟 명이라는 거지요.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이 피에 의해서 구원을 얻어요, 물에 의해서 구원을 얻어요? 피에 의해 구원을 얻지요. 그럼 여기서 말하는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라는 말은 무얼 말합니까? 세례예요, 세례.
우리는 피에 의해서 얻은 구원만 아니라, 물에 의해서 구원을 얻어야 되요. 피는 누구를 죽였어요? 예수님을 죽이고, 물은 누구를 죽여요? 나를 죽여요. 이 복음을 가져야 된다니까요. 안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내가 복음’을 써요. ‘내가 복음’...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다음으로 ‘내가 복음’이 나온대요. 자기가 챙겨버리고 자기 왕국 만들고...
물에 의한 구원, 자기를 내려놓는 거지요. 그래서 베드로는 노아홍수 사건을 구원의 사건으로 보지 않고, 세례 사건으로 봤어요.
골로새서 2:11-15 할례, 이것도 역시 세례에 대한 상징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세례에 대한 예표가 세 가지가 나오는데, 하나는 홍해를 건너는 사건, 또 하나는 노아 홍수 사건, 또 하나는 할례 사건이에요.
2) 신약시대에서도 세례는 굉장히 중요했어요.
마가복음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이렇게 표현하지 않고,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② 또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아라.”그랬어요.
사도행전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어라.”
초대교회 때에는 믿음과 세례를 동일시했어요. 지금은 믿고 일 년이 있어야 세례를 줍니다. 왜? 그동안 교회 역사를 통해 보니까, 가짜들이 많거든요. 초대교회 때는 가짜가 없었어요. 왜 가짜가 없었느냐? 고린도전서 12:3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당시에 로마시대 때 Christian인지, non-Christian인지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로마 병정들이 길 가다가 아무나 붙잡아서 나오라고 그래가지고, “너 예수를 저주해라.” 그래요. 그 다음에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 “예수님 성화 갖다놓고 침 뱉고, 발로 밟고 지나가라.” 그러지요. 이렇게 하여 가짜인지, 진짜인지 식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가이사가 주(主)다.”라고 고백하게 해요. “예수는 저주하고 가이사는 내 주님이다.”라고 고백하게 해요. 예수 믿는 사람은 그 두 가지를 못해요. 예수님을 저주하지도 못 하고, 가이사를 주(主)라고 고백도 못해요. 그러면 거기서 뭐하느냐? “예수님만 내 주님입니다.”라고 고백하다는 거예요. 그 죽음의 자리에서... 그러면 끌려가는 거예요. 사자 밥이 되고, 순교자가 되는 거예요. 검투사들이 막 죽이고 그랬잖아요? ‘벤허’ 이런 영화에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초대교회 10대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할 때는 가짜 신자가 없었어요. 거짓말로 고백할 수가 없거든요. 왜요? 신앙이 없는 사람이 “예수님만이 나의 주님입니다.”라고 고백하면 당장 어떻게 되요? 사자 밥이 되는데, 누가 거짓을 하겠어요. 가짜 고백이 없었기 때문에 믿는 거나, 세례 받는 거나, 나는 오늘 예수님 믿고 바로 내 인생을 포기합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을 드린다는 말을 다 정직하게 한다 말이에요. 그때는 가짜가 없었어요.
평화시대가 되니까, 가짜들이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왜? 자기 고백해보아도 손해 보는 것도 없고,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별도 잘 안 되고, 그러니까 다 저마다 ‘주여. 주여’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잘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가 얻은 지혜가 뭐냐 하면? “믿는다고 해도 일 년 동안 검증을 해보자. 그래서 진짜로 믿는 사람이면 세례주고, 입으로 믿는 사람은 세례주지 말자.” 해가지고, 교회가 역사적으로 일 년 동안의 interval을 둔 거예요.
원칙적으로는 예수님을 믿겠다고 고백하는 순간, 어떻게 해요? 세례를 주는 거예요. 빌립도 사도행전 8장에서 에디오피아 내시가 와서 이사야 말씀을 듣고 어린 양, 속죄양에 대한 교리를 듣고 나서 어떻게 “예수를 믿겠느냐?”고 그랬더니, 믿겠다고 하니 그 자리에서 바로 세례를 주었잖아요(행 8:26-39)? 또 간수도 역시 마찬가지, 바울이 바로 세례를 주었잖아요(행 16:25-34)? 이렇게... 현대사회로 들어오면서 우리가 지혜를 얻은 것이지, 원칙은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하나였다는 거지요. 지금은 믿고 세례를 안 받는 사람이 많아요. 세례의식은 행하는데, 자기를 안 내려놓는다는 거예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요, 부부 싸움할 때 당신이 양보하라고 하면, 쉽게 양보하던가요? 목사님 사모님도 양보 안하더라고요.
“세례 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받았으면, 목사님이 집사님 부부 싸움할 때, 잘했어도 그냥 잘못했다고 그래요. 그랬다면 그렇게 해야 되요, 안 해야 되요? 왜 해야 되요? 그렇지요. 세례 받을 때 약속했잖아요. 이것이 약속이라니까요. 그러면 이 분의 삶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셔요.
그런데 약속은, 세례 받아 놓고는 계속 자기 주장하는 거예요, 그냥. “저 인간이 나쁜 인간이라고...” 상담을 못해, 바쁜데... 다섯 시간씩 어떻게 상담을 합니까? 기도할 뿐이에요. 하나님 난 시간 없어요. 부부 상담 못해주니까. 보통 부부 상담하면 한 쪽에 세 시간, 이쪽에도 세 시간 주어야 되요. 또 뭐라고 그런 줄 알아요? 남편한테는 세 시간 주고, 왜 나한테는 한 시간 주느냐고 이런단 말이에요. 그것도 여자들이...
부부 상담은 이게... 목사는 시간으로 사는데... 해결만 하면 되잖아요? 꼭 굳이 다 들어봐야 할 필요 뭐 있어요? 들어봤자 뻔한 얘긴데... 그래서 교회 프로그램 만들어 놓고, 프로그램에 집어넣는 거예요.
특별히 세례교육을 이렇게 미리 시켜놓아요. 세례 받을 때 정확하게 가르쳐줘요. 출애급기 12장, 13장, 14장 가르쳐준 다음에 광야가 뭐냐? 세례교육 때 다 가르쳐줘요. 이것만 orientation 잘 되어 놓으면, 그 다음부터 교인들 시험들 이유가 없어요. 광야 공부해 보세요. 이제. 정확하게 답이 다 나오거든요. 모르니까 헷갈리는 짓하고, 하나님 대적하고, 목사 대적하고 그러지요. 원리를 딱 알고 나면 대적할 이유가 없어요. 죽을래, 살래? 그건데... 죽을 짓을 왜 합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안하지요. 그래서 세례교육이 중요합니다.
문제가 생겼어요. “집사님 세례 받았어요?” “예. 받았습니다.” “세례 받는 것이 뭐에요?” “자기를 내려놓는 겁니다.” “지금 내려놓을 수 있겠어요?” “몇 년 전에 세례 받으셨죠?” “10년 되었습니다.” “그러면 10년 동안 내공이 뛰어나겠네요? 훈련 많이 받으셨네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내가 내려놓아야지요.” “그럼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상담시간 많이 필요해요? 성경공부 해 놓으면 시간을 save해요. 복잡하게 설득할 필요 없어요. 진리대로 말하고 못 받아들이면 할 수 없는 거지요. 그래서 따로 무슨 개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공부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은혜 받고 나면 그 다음 어떻게 해야 되지요? 피 발라야지요. 피 바른 다음에 어떻게 해야 되지요? 세례 받아야지요. 세례가 뭐지요?
예, 첫 것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요, 둘째 죄 안 짓는 생활로 사는 것이고요.
셋째는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거예요. 아이고 공부 잘 하셨습니다. 세례 드릴게요. 세례 줘요. 그리고 광야가 왔어요. 시험 들어가지고 난리를 쳐요. 세례 받으셨습니까? 이 문제가 뭐 같아요? 성부 하나님과 연결된 것 같아요, 성자 예수님과 연결된 것 같아요, 성령님과 연결 된 것 같아요? 딱 답이 나와요. 광야가... 쉬워요, 어려워요? 우리가 어렵게 목회하는 이유가 뭐 같아요? 성경을 모르니까 그래요. 예수님도 안하신 일을 우리가 파고 들어가니까 얼마나 어려워요? 무기도 없이 손가락 가지고 땅굴 파는 것과 똑같지요. 인간의 강팍한 마음이 어떻게 녹습니까? 미리 말씀으로 기경(起耕)해 놓고, 그 다음에 손으로 살살살 헤비면서 여기 있잖느냐고... 여기, 여기, 세례 여기 있지요? 보세요, 그러고... 쉬워요. 말씀으로 했는데도 말을 안 듣는다. 그럼 나도 포기해야지요. 뭐. 말씀이 해결 못해주는데, 목사가 그걸 어떻게 해결합니까? 뭐 설득시키고 꼬실라이해봐야, 그것은 얼마 안 갑니다. 해결은 뭐가 해야 되요? 말씀이 해야 되요. 그래서 말씀교육이 중요한 거예요.
우리 주와 말씀께 여러분을 부탁합니다. 바울이 그랬어요. 말씀께 여러분을 부탁한다고. 우리가 목회를 할 때 말씀에게 교회를 부탁해야 합니다. 목사가 자기주장과 철학 가지고 하면 안 되요. 언제든지 나는 종으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되요.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내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라고 항상 종의 자세로 있는 거예요. 목회가 보람 있어요. 들이받는 사람이 없어서 보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칠고 힘들어도 가는 길이 보이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이 검증을 해 주시고, 말씀이 나를 증거해주고, 내가 진리로 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이 내게 보여주고 있고, 성령이 입증해 주시고, 하나님이 나의 사역에 대해서 뒷받침해 주시기 때문에 목회만큼 즐거운 것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장을 해 주시는데... 우리 좀 그런 즐거운 목회를 하십시다. 얼굴 좀 활짝 펴시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처럼, 이렇게 환희 웃으시면서... 한 번 따라해 봅시다.
“산다는 것은 황홀(恍惚)한 것입니다.”
세 분에게 한 번 얘기를 해보세요.
자, 목사님들께서 세례를 주실 때 어떻게 주십니까? 세례를 어떻게 주셔요? “이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물을 찍어서 이렇게... 침례하시는 분, 손을 높이 들어보세요. 침례교입니까? 오순절... 또 어디세요? 또 침례하시는 분들... 어디세요? 감리교, 감리교도 침례합니까? 자유입니까? 우리 장로교도 수련회 가서 한번 침례 연습하는 것 괜찮아요. 물속에 그냥 확 집어넣는 거예요. “입 다물어 코 잡아.” 그래가지고 푹 집어넣고 “죽었지?” 이렇게 한번 실습시키는 거예요. 장례식도 실습하는 거예요. 관 가지고... ‘알파 프로그램’같은 데는 그런 것 있지요? 그렇게 해도 괜찮고... 하여튼 ‘죽었다, 살았다.’ 하는 개념을 입증해주는 실습들이 좀 필요해요. 러시아에 ‘아나토리’라는 제 아우가 있어요. 어느 날 저한테 사진을 한 장 주었어요. 뭐냐 그랬더니, 영화 30도에서 얼음을 깨고 침례를 주는 장면이에요.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형님! 세례는 이렇게 주어야 됩니다.” 그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얼음물 속에서 세례를 받는다는 거예요. 얼음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되니까... 그리고 또 목사가 그걸 보여주니까요. 이게 권위가 있다는 거예요. “야 ~~~ 부럽다.”
내가 그때 느낀 것이 있었어요. 이렇게 침례를 받고 나면 느낌이 새롭겠구나...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라는 개념이 훨씬 더... 그 성부 성자 성령이 뭐예요? 뭘 결단한다는 거예요?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는 내가 뭘 드린다는 것입니까? 으뜸을 드리는 것, 성자 예수님에 대해서는 죄를 내려놓는 것, 성령님에 대해서는 “지금부터는 내가 인도하심을 복종하겠습니다.” 이 약속만 성실하게 지키면, 그 다음부터는 인생의 문제가 다 풀립니다. 이것은 세례언약이니까...
13-18장 성화의 진행
1) 유월절 : 의 변화
- 심판의 해결 - 어린양이 저주를 받음으로 신분적으로 아들이 됨
2) 애급을 떠남 : 생활의 변화
- 옛 생활과의 결별, 죄와의 결별 - 자유, 권리의 누림
3) 홍해 : 의 변화
- 과거 - 바로를 의존하고 예배하고 두려워했다.
- 홍해 이후 -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예배함
4) 광야 :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 새로운 양식
• 세례 - 옛 사람과 새 사람의 경계선
• 광야 - 새 사람의 생활훈련 - 시내산, 성막으로 이끔
• 성막 - 하나님과 하며 하나님의 정신, 하나님의 철학, 하나님의 영으로 적셔짐
자! 13~18장 성화의 진행인데, 우리가 어떻게 변화를 경험하느냐? 구원은 결국은 sanctification, 성화의 여정(旅程)인데,
1) 유월절 때에는 신분이 변화되어요. 우리가 신분적으로 아들이 됨. 애급에서 유월절을 경험하잖아요? 종에서 아들이 되었다는 이 신분의 변화만으로는 하나님이 만족하지 않아요. 문화생활을 바꾸기를 원해요.
2) 그것은 애급을 떠나는 거예요. 살았던 삶의 방식을 내려놓는 거예요. 문화생활의 변화입니다. 옛 생활과의 결별, 죄와 결별 - 자유, 권리의 누림.
문제가 있는 표현이지만, 그래도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감옥에서 회심한 사람들이 나와 가지고 얼마나 견디던가요? 감옥에서 나와 회심하고 나와 가지고 "이제 내가 조폭 다 내려놓고 새로운 삶이 되었다.”고 간증하고 다니는데. 일 년짜리가 없어요. 일 년 후면 다시 다 돌아가 버려요. 문제가 뭐예요? 왜 감옥에서 회심한 것이 나오면 쓸모가 없게 될까요? 가짜 고백을 했어요? 왜 그래요? 감옥에서는 죄를 지으려고 해도 지을 것이 없어요. 그런데 죄가 득실거리는 현장에 나오니까 다시 물들어버린다는 거예요. 문화에 대한 죄, 문화... 그 사람 죄 안 짓게 하기 위해서 어디에 보내야 해요? 다시 감옥에 보내야 되지요. 그러면 10년 동안 도둑질 한 번도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삶의 ground가 중요한 거예요. 예수님 믿고 나서 옛날 친구 만나고, 옛날 즐겼던 문화 좇아가고 그러면 100% 돌아갑니다. 100%...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굉장히 의미로운 거예요. 그게... 하나님은 떠나라는 거예요. “네가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는 이 땅, 이 문화권을 떠나라.”는 거예요. 롯이 망한 이유는 문화 때문에 망한 거예요. 타락한 문화에 들어가니까... 목사가 성경은 안 보고 맨 날 텔레비전 1번부터 150번 채널 있는 것 사다 놓고 월 회비까지 주면서, 토요일 밤에 설교 준비 stress 받아가지고 채널 왔다가 하면서 국제 프로까지 다 보고 그냥... 그래서 은혜로운 말씀이 나와요?
어떤 분이 텔레비를 끊어라 그랬더니 그 다음 날 집에서 난리가 났어요. 도끼 가져와서 줄을 끊어버린 거예요. 목사님만 끊으면 되지, 왜 애들까지 못 보게 해요? 끊으세요. 필요한 것 봐야죠? 그러나 무작위로 그냥, 그것은 텔레비전은 세상의 문화가 그냥 물밀듯 들어오는 거거든요. 텔레비전 앞에서 구별된 생활을 못하는 사람은 문화생활을 정리하지 못한 사람이에요. 문화생활을 정리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게... 어떻게 우리의 문화를 구별됨이 있게 하느냐? 하나님은 exodus하라, 나가라는 거예요, “나가라...” 문화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보고 듣는 것으로 심령이 상합니다. 망가져요.
3) 첫째는 신분의 변화고, 둘째는 문화생활의 변화고, 셋째는 주권의 변화가 옵니다. 홍해를 건널 때 주인이 바꿔져요. 홍해를 건널 때 하나님이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너희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선포하셨어요. 그러고는 지금까지 주인 노릇했던 바로는 그 홍해에 수장(水葬)되고,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고 따랐던 백성들은 살아나게 되요.
그래서 홍해를 건너면서, 홍해가 뭐라고요? 세례지요. 세례. 세례를 받으면서, 홍해를 건너면서 바로가 죽고 이제 비로소 “하나님이 나의 주인입니다.”라는 고백이 사실적인 고백이 되는 거예요. 홍해를 건너기 전까지는 여전히 바로가 그들의 왕이에요. 홍해를 건넜을 때 비로소 바로가 수장(水葬)되고 하나님이 나의 왕이라는 것이 확인된 거예요.
과거에는 바로를 의존하고 예배하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홍해 이후에는 바로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예배한다.
4) 넷째 변화는 광야입니다. 이제는 옛 구조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새로운 삶, 새로운 양식. 그래서 광야 생활은 예배생활... 하나님께 계속 집중하는 훈련하는 거예요. 때문에 옛 사람과 새 사람의 경계선입니다.
① 세례 받지 않으면 구원 받았다 해도 옛 생활 가운데 있습니다. 세례 받으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지지요?
② 광야는 뭐냐? 새롭게 변화된 사람이 생활 훈련하는 거예요. 몸에 익을 때까지 계속... 시내산 성막으로 이끄시면서 하나님으로 계속 적셔질 수 있도록 하나님으로 교육되어지고, 의식화 되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계속 인도하셔요.
③ 성막, 하나님과 동거하며, 하나님의 정신, 하나님의 철학, 하나님의 영으로 적셔짐.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따르기만 해도 되는데, 계속 따라가면서 딴 주머니 찬 거예요. “그 때가 좋았는데 …” 그러고 헷갈리는 소리하고 있고, 그래서 몸뚱아리는 따라가는데 영적 변화가 없는 거예요.
※ 14장 : 홍해를 건너는 영적 전략
1) 자기 자리에 서라. - (13a)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차브’(bXeyָ) : 자리를 잡다. 위치를 잡다. 서다. stand still (KJV), stand firm (NIV)
자기 자리에 서라. 감정에 요동하지 말라. 자신의 진리를 지켜라. 그 자리에 꿋꿋이 서 있어라.
• 자기 자리를 이탈하고 저질렀던 이적행위들 (11-12)
- 하나님을 대적함. 지도자를 대적함. 적을 두려워함.
과거로 회귀하려 함.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마음이 흔들리게 함
2) 보라. - (13b)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라아’(האָרָ) : 바라보다. 주목하여 보다. 분별하다.
< 문제가 오면 우리는 … >
① 적에게 집중함 - 바로의 군대
② 환경에 집중함 - 넘실대는 홍해의 물결
③ 원망 대상 찾음 - 지도자, 주변의 사람
④ 자신에게 집중 - 문제 앞에 떨고 있는 연약한 자신
- 힘을 빼는 것이 세례
- 말씀과 기도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훈련 (감사 조건을 찾아라.)
- 모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기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 예수님은 저들이 궤계로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의논함을 아셨으나(마 26:4),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도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눅 22:46) 하셨다.
3) 입을 다물어라. - (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수 6:10)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라쉬’ (vyrIj) - 가만히 있다, hold your peace (KJV), only to be still (NIV)
4) 찬양, 선포하라. - (15:1)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 출애급기 강의 (9) >
광야를 통과하는 비결
1. (15장) 기대가 무너져 일이 꼬일 때
- 십자가를 적용하라. 하나님의 기대를 맞춰라.
2. (16장) 경제문제가 괴롭힐 때
- 하늘 양식,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라.
3. (17장a) 목마를 때
- 반석으로 가서 생수를 경험하라.
4. (17장b) 내가 가는 길을 사람이 방해할 때
- 사람을 얻어 함께 기도하라.
5. (18장) 지도자의 한계가 드러날 때
- 몸을 세우기 위하여 지도자를 조력하라.
자. 이제 광야에 들어왔어요. 첫째 광야는 수르 광야, 마라의 쓴 물이죠? 이것이 신 광야에요. 여기에 와서 양식이 떨어졌어요. 지금 여기 있는 나무들이 있죠? 이것이 싯딤나무예요. 아카시아나무라고 그러죠? 조그만 잡목같이 생겼지요? 자. 광야가 뭐냐?
(1) 15장. 수르광야에 들어갔는데 사흘 길쯤 물이 없었고 마라의 물을 만났을 때 마시려고 했더니, 쓴물이었고, 기대가 무너져 일이 꼬일 때, “물이다.” 했는데, 내가 기대하는 물이 아니었어요. 그럴 때는 나무를 넣으라고 했어요. 워런 위어스비는 이것을 십자가라고 했어요. 십자가를 적용하라. 회개하라. 예수님 앞에 가서 “잘못했습니다.” 십자가. 내 죄를 내려놓는 것이에요.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네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급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
결국 원칙 중심의 사람으로 가는 것이에요.
십자가 앞에 가서 내 죄를 자백하고 원칙 중심으로 가려고 애쓰는 마음.
(2) 16장은 양식이 떨어져버렸어요. 경제문제가 괴롭히는 거예요. 경제는 기본이죠?
그러고는 그 다음부터 하나님이 양식을 주시겠데요. 하늘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라. “빵은 내가 준다. 내가 너의 양식이다. 내가 너의 음료다.” 바로가 주었던 빵이 아니라, 애급에서 가지고 나온 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빵, 우리는 이것을 뭐라고 해요? 말씀. 언약, 약속이라고 하죠. 우리는 광야를 살면서 약속을 붙잡고 사는 것이에요. 현장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희한한 것은 소망이라는 것은 바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항상 소망은 기다려야 되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라고 했잖아요? 소망이 성취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려요.
이 세상에 항상 있어야 할 것 세 가지는 뭐라고 했어요?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했지요? 간단한 거예요. 신뢰하는 거예요. 그게 믿음이잖아요? 두 남녀가 만났어요. 신뢰해야 해요. 믿음이 필요하죠? 소망은 뭐에요? 그에 대한 기대에요. 희망을 붙잡는 거예요.
셋째가 뭐에요? 사랑. 이 세 가지만 있으면 그를 신뢰하고, 그에 대한 기대가 있고, 그를 뜨겁게 사랑하면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사랑하는 그대만 보입니다.” 그래요.
그러면 지하실에서 라면 끓여먹고 살아도 행복해요. 그런데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산해진미를 먹고, 대궐 같은 집에서 살아도 둘이 이혼해요. 맞지요?
항상 있어야 할 것 세 가지가 뭐에요? 신뢰, 소망 곧 그를 향한 기대, 그에 대한 뜨거운 애정, 사랑. 하나님께 대한 것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을 기다려야 해요. 광야를 지날 때도 기다려야 되고, 빨리 응답이 안 될 때도 기다려야 되고, 그때 이 믿음과 소망을 강화시켜주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사랑이에요. 그분을 뜨겁게 사랑하면 한없는 세월을 기다릴 수 있어요. 한없는 세월을 기다리는 거예요. 복음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본을 무너뜨리면서 너의 인생의 기본이 말씀이 되어야 하고 나의 철학이 되어야 하고, 나의 약속이 되어야 한다. 돈이 너의 인생의 기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40년 동안 훈련시켰어요. 만나를 40년 동안 주셨잖아요? 보통 어려운 게 아닌 것 같아요.
진짜 돈 욕심 없는 목사가 되어야 하고. 돈이 없어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고백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얼굴을 보면 돈 떨어진 게 보인다니까요. 너무 막 힘들어하니까. 돈 떨어졌구나, 쌀 떨어졌구나. 그냥 알아버려요, 그냥. 그러면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무얼 믿고 살아요? 쌀을 믿고 살더라 이거예요. 그거를 하나님이 그것을 지금 real하게 보여주신 거예요. “너희가 날 믿고 살았냐? 빵 믿고 살았지.” 하나님을 믿고 살면 그날분만 주어도 전혀 문제가 없어요. 왜? 하나님이 살아 계시잖아요? 내일 아침 줄 것 같아요, 안 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인간들 못 믿어. 그것을. “아니 한꺼번에 일 년 분 주세요.” 현대 교인들이 지금 그러고 있어요.
10년분, 내 대에서만이 아니라, 내 후손 대에도 먹을 것을 쌓아놓고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祝福)이라고 그래요. 언제 쌓아놓고 살 만큼 주시느냐? 가나안에 들어간 다음이고, 광야에서는 그날 분만 주세요. 왜요? 그러면 그걸 의존해버리니까.
목사님들 가운데 경제 문제가 너무 어려운 분들은 “아직 광야가 안 끝났나 보네.”라고 하면 되요. 내가 그 문제 때문에 좌지우지 안하고 정말 하나님의 약속으로 살면 경제 문제 가지고 힘들게 하시지 않아요. 훈련이 이미 이수되어 버렸는데, 그것 가지고 또 시험 봐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pass해 버렸는데... 여러분 경제문제 다 pass하셨어요?
야! 이게 말은 쉽게 16장 지나가지, 이거 정말 40년 걸리는 거예요. 정말. 피눈물이 난다? 피가 마른다. 피가 마른다. 야! 말이 쉽지 이게.... 진짜로 돈이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붙잡기까지에는 “야! 그렇구나. 이게 원리구나.” 결국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사는 것인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가 뭘로 산다고 했어요? 사랑으로 산다고 했지요. 우리 크리스천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약속, 말씀으로 산다. 너 하나님 신뢰하지? 예 하나님 신뢰합니다. 너 하나님 기대하지? 예 기대합니다. 너 하나님 사랑하지? 사랑합니다. O.K. 그러면 됐어.
믿음, 소망, 사랑, 다 되었잖아? 뭘 걱정해? O.K. 갑니다. 돈 없어도 갈 수 있어요. 그런데 말은 하나님 신뢰하고 나는 말씀 의지한다고 하면서, 돈 떨어지면 가슴이 철렁하고...
그것을 극복하기까지는 오래 걸린다니까요. 돈 가진 사람이 오면 이렇게 고개가 숙여지고.. 그거 아니잖아요? 가난한 사람이건, 여유 있는 사람이건 똑 같은 영혼으로 대할 수 있는... 진짜로 목사가 돈에 휘둘리지 않고... 조지 뮬러(George Müller, 1805-1898)가 5만 번 기도응답 받았지요? 그건 다 아시지요? 그건 별로 훌륭한 것 아니에요. 더 훌륭한 건 뭔지 알아요? 고아원 사업하면서 단 한 번도 사람에게 구걸하지 않았어요. 단 한 번도 사람에게 돈 떨어졌다고, 애들에게 양식 먹여야 하니까 돈 달라고 해보지 않았어요.
“진짜로 돈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라고 고백하면요, 나보다 누가 더 성가셔요. 그렇게 해야 되요. 우리 애가 용돈을 달라고 하지 않아요. 그러면 내가 걱정이 되요. “너 용돈 안 떨어졌냐?” “나 돈 필요 없어요. 아빠가 돈 있잖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너는 돈을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기초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너는 신뢰하고 있구나.”라고 하나님이 감동 받으실 때까지는 40년 계속 광야가 있어요.
목사가 돈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 않잖아요? 내가 지금 너무 어려운 일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양식은 하나님이 공급하신다. 하나님의 약속 말씀이 내 음식이다. 나는 그 말씀을 먹으면 힘이 됩니다. 우리기 맛있는 음식 먹을 때 힘을 얻잖아요? 그런 것처럼 정말 말씀으로 힘을 얻어야 해요. 이번 세미나 끝나고 갈 때에는 여러분들은 배가 불러 가지고 가야 해요. 무슨 방법론, 무슨 도구 같은 것 말고, “진짜로 나는 배가 부르다. 나는 부자다. 나는 자신 있다.” 이런 풍요로움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니까요.
“하나님이 나의 양식이다.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런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세상을 정복할 수 있어요.
모세처럼 탁월한 지도자도 이 훈련을 몇 년 시키셨어요? 40년 시키셨어요.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훈련시켰어도, 이 훈련이 결코 쉬운 훈련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 부분에 대하여는 깊이 묵상하세요. 정말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으로 살겠다. 어디 가서 사례 받지 않고 일할 수 있고, 사례 때문에 교회 옮겨가지 않고, 부흥회 인도하고 내가 사례 받은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이런 것들, 정말 우리가 초월해야 해요.
품꾼은 여호와의 유월절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셨어요. 돈 받고 일하는 사람, 돈 때문에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유월절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셨어요, 장사꾼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성직을 가지고 거래해요. 이런 것을 너무 real하게 말하면 우리가 너무 깊이 상처가 되니까 더는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것 때문에 얼마나 개탄했는지 몰라요. 목사 장사꾼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 경제를 빼앗아가 버려요. 양식 떨어지게 만드세요. 그리고는 그날분의 양식만 주세요. 그날 분의 양식만. 처음엔 돈을 보다가 나중엔 하나님을 보기 시작해요. 어차피 양식은 하늘로부터 오잖아요? 훈련시키시는 거예요. “양식은 내가 공급한다.” 그러시다가 “내가 양식이다. 너는 내 약속으로만 살 수 있느냐?” “예. 주님의 말씀은 나의 양식입니다. 내가 주님의 말씀을 정금보다도 더 사모하고, 주님의 말씀을 송이꿀보다도 더 달게 음식으로 취하고 있습니다.” “O.K. 내가 너를 쉬게 한다.” 그러고는 맡기시는 거예요. 나라를 맡기시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를 빙자해서 착복하는 사람도 있어요.
(3) 17장(a). 목이 마를 때.
르비딤에 갔을 때에 목이 말랐어요. 목이 마를 때 반석에게 가서 반석을 치라고 하셨어요. 생수가 터졌어요. 반석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고난당하심으로 성령이 오셨어요.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이 오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인생이 목이 마르면 반석인 그리스도께 가서 knock해야 해요. “내가 목이 마릅니다.” knock하면 생수를 주셔요. 기도하면, 구하면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어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에요? 성령.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기도하는 자에게!
인생의 목이 마르고, 목회에 목이 마를 때엔 기도합시다. 생수를 경험합시다. “생수의 강이 네 배에서 흐르리라.” 그냥 입에서 갈증을 해갈시키는 그런 정도의 물이 아니라, 내 입으로 마셔서 내 배를 적시고 온몸을 채우고 흘러넘치는, 그것이 엔게디의 사해까지 흘러서 죽음의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바꾸어버리는 놀라운 능력의 물, 생수의 강이에요. 거기에 열두 나무가 과실을 맺고, 어부들이 와서 고기를 잡고, 각종 물고기가 찾아와서 죽음의 바다가 생명의 바다로 바뀌는 놀라운 역사가 한 사람이 경험하는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목마르게 하세요. 하나님은 광야를 지나게 하시면서 목마르게 하십니다. 인생의 진정한 갈증은 성령이다. 경험하게 하십니다.
(4) 넷째 광야는 아말렉입니다(출 17장b). 내가 가는 길을 원수가 막아요. 사람이 내가 가는 길을 막아요. 자기하고 나하고 무슨 빚진 것도 없는데 그렇게 나를 막아요. 나를 힘들게 해요. 목회할 때도 가까운 사람, 먼 사람이 우리를 힘들게 할 때가 많이 있어요. 그럴 때 그 사람하고 맞장 뜨려고 하지 말고, 목사는 어디로 가야 해요? 모세는 어디로 올라갔어요? 산으로 올라갔어요. 산으로 올라가서 뭐했어요? 기도했어요. 기도의 동역자를 찾아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 전에는 아론과 훌의 이름이 성경에 없었어요. 모세가 사역을 시작했지만 그들이 큰 조력자가 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아말렉 사건 때 종일토록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못하게 하는 일은 아론과 훌이 했어요. 기도의 조력자! 사람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는 사람과 같이 세워가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얻지 못하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없어요.
사람 원수가 나타나 우리를 힘들게 할 때. 산에 가서 기도해야 할 사람과, 그것을 옆에서 받쳐줘야 할 사람과 현장에 나가서 직접 아말렉과 싸워야 할 사람이 있어요. 교회 안에 이런 영적 질서가 있어야 해요. 지도자는 현장에서 뛰는 사람이 아니라 배후를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개척교회 할 때는 목사가 현장에서 뛰어야 하고, 봉고 차량 운전해야 하고 새벽기도 때 차량 운행해야 하고, 금요 철야 끝나면 교인들 다 데려다 주어야 하고...
그러나 교회가 성숙하게 되면 얼른 역할을 나누어야 해요. 빨리.
어떤 교회를 갔더니 지금도 사모님이 교회 재정 장부를 갖고 있더라고요. 큰일 날 행동하지 말라고... 빨리 회계장부 넘겨주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다고요. 없으면 키워서라도 해야지요. 통장 따로, 장부 따로, 도장 따로 할지라도 맡기라고 했어요.
그거 목사가 쥐고 있으면 언젠가 시험에 듭니다. 사탄이 돈 갖고 얼마나 장난을 치는데..., 지금도 그것을 가지고, 시험거리를 가지고 있어요? 빨리 내놓으라고 했어요. 안 됩니다. 역할을 나누는 거예요. 기도해야죠. 목사는 기도해야 해요. 기도의 조력자를 찾아서 기도해야죠. 현장에서 뛸 사람에게 역할 나누어주고... 그것이 교회에요.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요. 목회는 사람하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만, 하나님과만 하는 것은 목회가 아니에요. 그것은 신앙생활이고, 목회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누구하고 해야 해요? 장로님하고 해야 하고, 권사님하고 해야 하고, 집사님하고 해야 하고... 헷갈리는 이 집사하고 해야 되요. 그러려면 그 사람을 얻어야 해요.
사람이 소중한지 모르는 사람은 목회를 못해요. 하나님만 중요한 게 아니고, 사람도 중요해요. 이 땅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끼리의 연합이거든요. 사람 소중한 걸 알아야 해요.
마지막 시험은, 광야훈련은, 18장에 가면 모세의 leadership에 한계가 드러났어요.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계속해서 일어나는 송사 문제를 해결을 못하는 거예요. 일단 하나님께서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세워서 네 역할을 나누어주라 하셨어요. 비로소 교회의 조직이 생기고, 행정 시스템이 생기고 하나님 나라의 build up, 건축이 시작되었어요.
잘 보세요. 광야를 쉽게 통과하는 비결입니다. 일이 꼬여요. 뭘 붙잡아야 되요? 십자가죠.
경제, 경제라고 하는 것은 기본이에요. foundation. 경제가 있지만, 또 여기에 가족이랄지, 인간관계랄지, 저 같은 경우에는 건강이 무너지면 아주 힘이 듭니다. 이런 것들이 인간 삶의 기본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것이 무너질 때가 와요.
정말 희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위기가 오는 거예요. 그때에는 누구에게 집중해야 해요? 하나님께.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이 양식으로 주신 말씀, 계속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해요. 보니까 나는 모세보다는 조금 부드럽더라고요. 모세는 40년, 나는 30년. 대개 센 사람은 오래 걸려요. 야곱은 진짜 센 사람이니까 120년, 130년 걸렸어요. 그래서 십자가가 중심이 되고,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성령님이 중심이 되고, 그 다음에 사람이어요, 사람, 다음에 몸, 몸, 하나님의 나라, 교회.
예수님, 하나님, 성령님, 사람, 교회, 하나님 나라.
가만히 광야를 연구해 보았더니, “아∼! 광야를 지나면서 우리가 구속사를 위해서 준비된 일꾼이 되는구나.” 모세가 80년 지나고 나서 이스라엘 앞에 탁 세웠을 때에는 이미 준비된 일꾼이었거든요. 준비된 일꾼이 뭘까를 보니까 광야를 생각해 보니까 알겠어요.
십자가 중심, 말씀 중심, 성령 중심, 사람 중심, 교회 중심.
결국 광야를 통과한 사람들은 이런 내면세계의 프레임을 딱 갖추더라고요. 이게 훈련의 목적이에요. 이리로 가더라고요, 보니까. 그러고 나서 교인들을 보니까 광야가 다 보여요. 자 봅시다. 자꾸 계획했던 일이 무너지고, 이 장사해도 안 되고, 저 장사해도 안 되고... 한 번씩 간판 올렸다 내릴 때마다 몇 천만 원, 몇 억 원씩 날아가잖아요? 그냥.
어떻게 상담해 주어야 해요? 자. 그런 분이 왔어요. “나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기도해도 응답도 없고, 나는 지금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상담을 요청해 왔을 때 어떻게 상담해줘야 해요? 그때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해요? 15장이에요. 15장.
기대가 무너져 꼬일 때, 어떻게 하라고 했어요? 15장이에요. 십자가를 적용하라고 하면 그분이 알아듣겠어요? 어떻게 해야 되요? 구체적으로 뭐라고 해야 되요?
회개를 어떻게 해야 해요? 노트 펴놓고 다 적으라고 했어요. 다 적어라. 샅샅이 찾아내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 이만큼이라도 있으면 다 찾아내서 다 적어라. 다 적게 한 다음에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소각(燒却)시켜라. “하나님. 내가 이 죄로부터 자유하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의 보혈(寶血)로 씻고 소각시켜라. 일주일 금식기도하면서 회개시키면 다 풀려버려요. 진짜로 풀립니다.
어떤 교인이 있었어요. 부도가 나 가지고 애들 친척집에 맡기고 다섯 식구가 동반 자살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아내가 성령 받은 사람이라 “그럴 수는 없다. 우리가 예수님 믿는 사람이고, 성령 체험한 사람인데 어떻게 자살할 수 있느냐?” 남편은 죽자는 거예요. 이거 창피해서 못 살겠고, 자식들을 어떻게 먹여 살리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아내가 “우리가 죽으려고 생각했으면 뭘 못하겠느냐? 우리가 죽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께 가서 부르짖기라도 하자.” 그리고는 자식들 친척집에 맡기고 기도원에 올라갔어요. 그때만 해도 ‘금식기도!’하면 오산리로 가잖아요? 오산리로 가서 21일, 다니엘의 세 이레 작정기도를 생각하고 21일 기도하기로 했어요.
올라갈 때 주문을 했죠. 기도를 하는데 발가벗겨진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 다 고백해라. 다. 떼굴떼굴 구르면서... 한 삼일은 힘들더래요. 4일째부터 회개의 영이 온다고 하잖아요? 성령께서 회개를 도와주시면은요. 술술술술 풀리기 시작해요. 진짜로 죄가 더러운 게 보이고, 자기가 너무 혐오스럽고, 진짜로 죄에 대한 아픈 마음이 와요. 떼굴떼굴 구르면서...
7일째 지나고 나니까 눈이 밝아지더래요. 죄를 고백하고 나면 영적인 세계가 밝아져요. 철저히 고백하고 나면... 앉아서 하면 안 돼요.
일주일이 넘었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사람이 찾아왔어요. 30년 전에 그때 돈 300만원을 친구에게 빌려주었어요. 서류도 안 받고. 워낙 가까운 친구였으니까. 그런데 돈만 먹고 미국으로 도망쳐버렸어요. “츳. 돈 잃고, 사람 잃고... 참 슬프다.” 그러면서 다 잊어버렸어요. 이 친구가 미국으로 가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어요. 회개하고,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기업을 일구었어요.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었어요. 큰복을 받고나니까 자기 친구가 생각나는 거예요. 자기를 믿고 문서 한 장 안 받고 돈을 빌려주었는데 간다는 말 한 마디도 않고 떠나왔는데, 회개 기도할 때 어찌 생각이 안 났겠어요? 하나님 앞에 “하나님. 죄송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찾아가라.”
와서 수소문했는데 없어져버린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이 금식기도 갔다는 얘기를 해준 거예요. 그때만 해도 금식기도 하면 어디로 가야 해요? 그때는 강남금식기도원도 없었어요. 오산리 금식기도원에 간 거예요. 거기 가서 찾으면 뻔한 거예요. 본당 가서 없으면, 기도굴 다 뒤지면 되요. 그래서 이분이 와서 아예 일삼고, 기도굴마다 앞에 가서 두 부부가 어디 있는가 찾은 거예요. 그때가 7일 금식기도 끝났을 때에요. 21일 작정하고 기도하는데... 철저하게 회개하고 떼굴떼굴 구르면서....
그분들 이야기에요. 금식기도하고 7일 지나면 눈이 밝아지기 시작하더래요. 자기가 보이고, 하나님이 보이고, 영적인 세계가 보이더래요. 왜 자기들이 부도가 났는지, 왜 실패했는지 깨달아지더래요. 그래서 “정말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면서 싹싹 빌면서 기도를 한 거예요.
그런데 30년 만에 자기 돈 떼어먹고 도망친 친구가 찾아온 거예요. 와 가지고 금식하는 중에 죽~ 이야기를 들으니까 기가 막힌 게 아닙니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수퍼를 사주었어요. “이 돈 30년 복리로 쳐서 다 계산하고, 네가 나를 신뢰해주었고, 내 사업자금을 대주었기 때문에 나도 네 사업자금을 대주겠다.” 수퍼를 사 주었어요. 수퍼.. 수퍼마켓. 잘 살았어요. 뭐가 해결된 거예요? 뭐가 이걸 만든 거예요? 누가 움직인 거예요?
죄가 들어오면 기분 나빠요, 불편해져요. 관계가. 죄가 들어오면...
“내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함도 아니요, 내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함도 아니라” 너희와 나 사이에 뭐가 있다? “죄가 있다”(사 59:1-2). 죄가 있는 거예요.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열심히 신앙생활해도 하나님을 불편하게 하는 죄가 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도와주실 수 있겠어요? 싹싹 씻어내는 거예요. “어차피 죽을 건데,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하자.”하면서 두 부부가 난리법석을 친 거예요. 노트에다 막 쓰고, 눈물 콧물 흘려가면서... 완전히 청소를 했더니 누가 감동하셔요? 하나님이... 저 멀리 미국 가서 30년 전에 기억도 못하는 친구의 마음을 움직여 가지고, “가라. 빨리 가라. 내 아들이 지금 힘들어하고 있다. 빨리 가서 네가 친구 사업 밑천 대줘라.” 사람이 계획할 수 있어요? 누가 해요? 이런 영적 원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이에요. 십자가만 들어가면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요. intimate, 친밀한 관계가 된다니까요. 내가 염려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염려해 주시는 놀라운 인생을 살게 되요.
기대가 무너질 때, 일이 꼬일 때, 어떻게 하라? 십자가를 적용하라.
근본이 무너질 때, 나의 foundation, 내 기초가 무너질 때 어떻게 하라? 하나님께 집중하라.
인생이 목마르고, 목회가 목마르고, 뭐를 해도 만족이 없을 때, 성령님께 집중하라. 반석이신 그리스도께 집중하라.
자꾸 사람이 와서 나를 힘들게 하고, 아말렉 같은 사람이 나를 공격할 때에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동역자를 찾아라. partnership을 가지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라.
leadership에 문제가 있다고 교인들이 계속 이야기하고, 목사님이 이렇다, 우리 교회에 문제가 있다고 할 때에는 빨리 leadership을 역할을 나누어서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을 찾아서 그들과 같이 교회를 build up하라.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가는 거예요. 광야만 정직하게 통과해도, 멋∼있는 모세 같은 지도자가 나옵니다.
목사님만 멋있는 지도자가 아니라, 이런 광야의 의미를 알고 교인들을 훈련시키면 그 교인들이 다 모세와 똑같은 leadership을 가지고 백성들을 책임지면서 같이 가는 거예요. 우리가 같이 이루어나가는 하나님의 나라!
그러나 이런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왕국 짓다가 모래성 무너지듯이 또 무너지고, 또 자기 성, 자기 왕국 짓다가 또 무너지고, 슬픈 인생을 살다가 인생을 마친 사람들, 하나님이 왕권 다 빼앗아가 버리고, 말을 해도 능력도 없고,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목사가 말을 해도 권세가 없는 거예요. 말에. 기도해도 응답도 없고...이미 왕권이 사라져버렸거든요. 제사장권을 하나님이 가져가 버렸어요.
엘리가 타락하니까 ‘이가봇!’ 그랬어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거예요(삼상 4:21).
오늘 주의 종들 가운데, 크리스천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예배를 드려도 감동이 없고, 말씀을 들어도 뜨겁지 않고, 기도를 해도 응답 받을 자신감도 없고, 찬양을 해도 눈물도 없고... 그런 dry한 예배생활을 하면서 “나는 구원받은 백성이다.” 구원은 받았지요. 예수 믿기 때문에, 그러나 이미 성령도 떠나버리고 하나님의 영광도 떠나버리고, dry한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경험하는 광야만 정직하게 우리가 몸으로 안아도 하나님께서 왜 이 고난을 내게 주셨을까? 정직하게 우리가 그 고난 앞에 서기만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리더로 세우셔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셔서 이 땅을 변화시키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를 통로로 삼아주시려고 우리를 선택하셨어요.
왜 목회가 어렵습니까? 왜 인생이 안 풀립니까? 저는 30년을 헤맸어요. 30년.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가지고 ...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되는지. 남들은 금식기도하면 다 풀린다는데, 나는 금식기도해도 안 풀려요.
목사님들하고 상담하면 “성경 많이 읽어라.” 성경 부지런히 읽었어요. 부지런히... 안 풀려요, 안 풀려. 배 아프면 아스피린 먹는 것과 똑 같은 거예요. “머리 아프면 머큐롬 머리에다 발라라.” 또 어떤 목사님은 그래요. “네가 봉사를 안 해서 그렇다. 봉사를 많이 해라.” 봉사 많이 했어요. 얼마나 봉사했느냐? 12명 받아가지고 6개월 동안에 140명 만들었어요. 애들. 그만 하면 잘했지요, 뭐. 그래도 문제가 풀려요, 안 풀려요? 안 풀려요. 왜 안 풀리느냐? 중풍이 걸리면 손주 다리를 막 긁어, 자기 다리 가렵다고... “남의 다리 긁지 마”라는 말이 거기서 나온 거예요. 딴 데를 헤매고 다니니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해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해답이.
뭘 봐야 되요? 뭘 봐야 되요? 기계를 다루다가 고장이 나거나 작동이 잘 안 되면 뭘 봐야 해요? manual을 보아야지요. manual이 어디 있어요? 크리스천의 manual이 어디 있어요? 성경을 봐야지요. 어디를 헤매고 다녀요? 정신과 찾아가고, 상담소 찾아간다고 답이 나옵니까? 헷갈리는 얘기밖에 안하지요.
목사가 어디 가서 해답을 찾아요? 목회가 안 되는 부분을 어디 가서 찾아요? manual을 봐야지. 워낙 본 지가 오래 돼서 읽어도 잘 모르겠어요.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격조(格調)했습니다.” 그러죠?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 너무 멀리 계시네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특권을 주셨어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나를 대신하여 내가 너를 세웠노라. 했는데 우리가 딴 짓 하느라고..그 동안에 하나님을 놓쳐버렸어요. 그때부터 삶이 곤고해지고, dry해지고, 원수가 와서 나를 들이받고, leadership에 대하여 나를 공격하고... 이럴 때는 뭐예요? calling, calling. “야. 와라. 와. 본질로 돌아와 너 어디 딴 데 가냐? 너 목회가 자꾸 꼬이지? 회개해. 회개해. 너 근본이 무너지잖아? 힘이 안 되잖아. 그게. 그럼 너 약속 붙잡아. 해도 해도 dry하지? 그럼 성령님을 의존해 봐. 본질로 우리를 부르고 있잖아요?
사람이 소중한 것 알고, 목회를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leadership을 나누어서 같이 하고. 그러면서 광야, 고난의 환경들, 힘든 세월들을 살아가면서 나는 몰랐지만 하나님은 차근차근 나를 흔들어서 이렇게 보내주시는데, 나중에 그 긴 세월, 모르고 살았으니까 긴 세월. 그러고 보니까 이 안에 다 들어있는 거예요. 내가 수백 번을 읽었었는데도 아무도 안 가르쳐주더라고요. 내 눈도 가려져 있어서 안 보였지만. 그러고 보니까 이렇게 간단한 문젠데 ... 그걸 모르고 수십 년을, 아까운 세월을 보낸 거예요. 아까운 세월은 아니죠? 그것을 깨달았으니까 여러분들에게... 쉽게 앉아서 여러분들은 터득하잖아요? 너무 부럽네요. 여러분이. 진짜로요. 알기만 했어도 나 이렇게까지 고생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몰랐으니까 엉뚱한 데서 헤매고 다닌 거지요.
인생이 좀 보입니까? 목회가 보입니까? 보여야 되요. 이게. 말씀이 하나님이고, 말씀 안에 진리가 있고, 말씀 안에 인생의 길이 있고, 말씀 안에 해답이 있고, 말씀 안에 문제를 푸는 키가 들어 있고, 말씀 안에 사탄을 깨뜨릴 수 있는 권세가 들어 있고... 말씀 안에 해답이 들어 있는데, 말씀 아닌 다른 자료들을 가지고 수없는 세월을 보내 봐도, 실력은 안 늘고, 땜빵은 되는데... 사람들은 변화가 안 되고, 나도 변화가 안 되고, 그런 목마른 목회 얼마나 지치고 피곤합니까? 주일날 돌아오는 것이 천근만근... 토요일 밤에 잠을 못 자요. 설교준비가 안 되니까. 탁 터져야 하는데 안 터지니까... 그냥. 너무너무 힘든 거예요. 토요일 밤이면... 꼬빡꼬빡 새우는 거예요. 그냥. 해답이 없으니까. 그러나 길을 알고,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나니까, 설교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즐겁고, 시간이 자꾸 늘어나요. 그냥. 설교 시간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가지고, 이번 주에 다 못하면 다음 주에 시리즈로 2탄, 3탄. 4탄. 막 가는 거예요. 계속...
★ 적용질문
1. 지난 세월 동안 고난의 삶을 통하여 내게 나타난 변화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 내가 광야생활을 통해 경험한 하나님의 모습
(공급하시는 하나님, 회개하면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
2. 출애급의 와중에 요셉의 유골을 취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13:19) - 언약하신 일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줌
3. 광야의 삶은 결국 어디로 나를 인도합니까?
- 하나님을 알고 깨닫도록 말씀(시내산)으로 인도하심
(1) 지난 세월 동안 고난의 삶을 통하여 내게 나타난 변화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가 당하는 고난들은 전부가 의미가 있거든요. 이런 거 알지요?
산모가 어느 날 갑자기 막 멸치가 먹고 싶어요. 그게 뭐에요? 우리 엄마들만 얘기해 보세요. 아기에게 뭐가 필요한 거예요? 아기에게 칼슘이 필요한 거예요. 엄마가 느끼는 결핍이나 어떤 need는 전부 아기의 생명과 연결된 거예요. 이것을 광야에 적용해 보세요. 지금 내가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내 편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데, 뭔가 자꾸 꼬이고 안 되는 게 있어요. 그러면 이게 뭔가 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sign을 준 거예요. “지금은 이런 게 필요하다, 지금은 이런 걸 찾아라.”라고 하나님이 나에게 무언가 sign을 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고난은 반드시 결과가 있어요. 하나님을 찾도록, 내게 필요한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공급하시는 하나님, 회개하면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 내가 기도하면 성령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 사람을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건설하는지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그때는 우리가 이론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배우고 경험으로 배우고, 환경을 통해서 배운단 말이에요. 그래서 광야는 너무 중요한 거예요. 성도가 구원받고 난 이후에 환경은 너무너무 중요한 거예요. 그때의 해답은 뭐내 하면 무조건 하나님이에요. 어떤 하나님을 요청하는 걸까? 도대체 지금 이런 문제로 꼬이는데 뭐를 채워야, 뭐를 넣어야 될 건가?
우리 청년 가운데 한 애가 겨울 수련회를 가면서 라디에타에 물을 넣으라고 했더니 오일 넣는 데다 물을 집어넣은 거예요. 그러고는 시동을 걸려고 하는 것을 잡았어요. 시동을 걸었으면 어떻게 될 뻔 했어요? 기계가 다 망가지는 것 아니에요? 그것을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이 녀석이 라디에타 통하고는 다른 곳에 집어넣은 거예요. 그래서 towing차 불러서 car center에 가서 다 청소해 가지고 겨우 차 하나 살렸어요. 딴 것 집어넣으면 어떻게 되요? 휘발유 차는 뭘 집어넣어야 해요? 경유차는? 개스차는? 아이고! 우리가 진리를 다 알고 있네.
“구원받은 성도들은 무얼 먹고 살아요?”
“에이! 돈 갖고도 살죠? 뭐. 명예가 있어야 하잖아요? 무얼로 살아요?” “말씀이요.”
“진짜로요? 그런데 말씀 안 주고 무얼 주었어요? 진짜로 말씀 주었어요?”
성경 가르쳤어요? 그러면서도 건강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죠. 삐거덕거릴 수밖에 없죠. 엔진에 파열음(破裂音)이 나오고, 요란하죠. 아유. 음식 잘못 먹어봐요. 배탈 나고 난리 나죠. 화장실 몇 번 가고... signal 준다니까요. 사고가 나야 해결을 하죠. 환경. 삶에 문제가 생기고.. 하나님의 백성인데 잘 돼야 하는데, 꼬이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의 message가 있어요. 빨리 엔진 검사를 해봐야 해요. 뭐가 잘못 되었는지 조사해 가지고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반드시 잘 가야 하는데. 왜 차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지? 뭐 이래야 되요.
아주 오래 전에 어떤 목사님이, 약수를 뜨러 가재요. 그래서 집에 있는 물통 다 뒤져서 큰 통 5개를 가지고 갔어요. 가다가 세곡동 미군 부대 비행장 앞을 지나가는데 차에서 갑자기 빨간 불이 번쩍번쩍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분이 딱 때리는 거예요. 자고로 사람이나 기계나 말을 안 들을 때에는 때려야 해요. “자고로 사람이나 기계나 때려야 해”라고 그러면서. 그러니까 불이 딱 꺼지는 거예요. 그래서 “야. 이렇게 하는 수도 있구나” 그랬지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뒤에서 택시가 따라오면서 계속 크락션을 울리면서 야단이 난 거예요. 뒤를 보았더니, 연기가 막 나는데 난리가 난 거예요. 보니까 라디에타에 물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까딱했으면 불고기 될 뻔 했어요. 그래서 먹으려고 떠오던 식수통의 물을 부었는데, 물통 두 통이 다 들어가는 거예요. 들어가면 다 증발되는 거예요. 와! 세 통 남은 건 그분께 가지고 가라고 했어요. 나는 안 먹겠다고...
그때에 깨달은 중요한 진리! “signal에 불이 들어오면 차를 멈춰야 한다.” 야! 간단한 건데, 그걸 주먹으로 때려버린 거예요. 억지로 막 끌고 가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요? 불고기 된다. 할렐루야. 인생의 진리가 멀리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보니까. 야! 그렇구나. 주먹으로 때리는 데에 문제가 있고... 때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구나.
왜 목회자들이 사는데 인생에 고난이 옵니까? 목사님들인데... 헌신하겠다고 결단하였는데... 하나님이 시그널을 주신 거예요. “너 그렇게 살면 안 돼. 목회 그렇게 하는 것 아니야.”
그러면 우리는 주먹으로 때려버려요. 어느 집사가 들이받으면 발로 걷어차 버려요. 그러면 사고가 나는데, 물 2리터면 해결될 것을, 두통이 다 들어가도 해결이 안 되더라니까요.
그렇게 걷어찼다가 자기 발목 부러진 사람 얼마나 많아요? 그래서 쫓겨나잖아요? 아이고! 이거 남의 얘기니까 쉽게 하지만 심각한 이야깁니다. 이거.
동의하시면 고개 끄덕끄덕 해보세요. 맞습니까? 아이고. 산전수전 다 겪으셨네.
고난은 signal이다. 하나님을 찾도록. 인생의 진정한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도록 하나님이 환경을 통해서... 경제문제, 자녀문제 부부간의 갈등, 사람과의 관계, leadership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셔요. 그렇게 살면 안 된다. 하나님을 찾는 게 목적이죠? 광야의 목적은 하나님입니다. 애급이 채워져 있고, 바로가 채워져 있고, 자기가 채워져 있던 그 공간에 하나님으로 채우기 위해서 고난을 주십니다.
(2) 출애급의 와중(渦中)에 요셉의 유골(遺骨)을 취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13:19에 요셉의 미라를 취하게 하셔요. 세상에.., 하나님도 잊어버렸던 백성 아닙니까? 그런데 이사할 때는 짐을 많이 가지고 가요, 있는 짐도 버리고 가요? 그런데 이미 송장이 되어서 400년이 넘은 그 미라... 미라 보셨어요? 끔찍합니다. 아주. 오징어포 보는 것 같아요. 뼈에 살이 딱 붙었는데, 누~레 가지고, 아주 징그러워요, 아주. 그런 미라를, 400년 지난 요셉의 유골(遺骨)을, 미라를 가지고 가게 해요. 광야 40년 돌아다니다가 ...
이사 여러 번 다니면 어때요? 있는 것도 다 버리죠? 다 버려요.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요. 제가 계산해 보니까 스물 몇 번 이사했더라고요. 우리 아버지 일기장, 내 일기장 다 없어졌어요. 다 놔둬야 하는데... 제가 옛날 것을 좀 좋아합니다. 초등학교 교과서, 중고등학교 학습지... 다 없어졌어요. 제가 책이 많아 가지고 어찌나 구박을 많이 받았던지 그냥... 다니면서 몇 박스씩 다 흘려버렸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까워요. 그런데 이 인간들, 송장을 끌고 40년간을 다닌 거예요. 이해가 됩니까? 일기장도 다 버리는 판인데... 이해가 됩니까, 안 됩니까?
뭘 말하는 거예요? 400년 전에 약속하신 것은 400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잊어버렸어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지키신다. “야. 신실하시구나. 하나님은 진짜로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을 때에 여호수아가 말하기를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長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季子)를 잃으리라.”(수 6:26) 하였지요? 그때로부터 400년이 지난 어느 날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성 쌓다가 큰아들이 죽고, 그 문을 세우다가 막내아들이 죽었어요(왕상 16:34). 400년, 500년이 지나도 하나님은 다 지켜주세요.
여호수아 9장에 보면 기브온 사람들이 와서 속이고 여호수아와 화친을 맺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속였어요. 그러나 속아서 한 약속도 약속은 중요한 거다. 여호수아가 “너희가 속였으니까 나무패며 물 긷는 자가 되라. 그러나 우리가 너희를 보호하겠다.”고 했어요(수 9:21-27).
그 후 400년이 지나고, 사울 왕이 기분 나쁘다고 기브온 사람 몇을 죽였어요. 하나님이 그것을 기억하시고, 3년 동안 이스라엘에 비가 안 오게 하신 거예요. 이스라엘은 비가 안 오면 죽어요. 일 년에 우기가 두 번 있는데, 그때만 파란 빛이 있고, 나머지는 다 타버려요. 그런 땅에서 3년이나 비가 안 오니 다들 죽을 뚱 살 뚱한 거예요.
다시 기도했더니, 사울이 약조를 어겼다는 거예요. 400년 전에, 그것도 속아서 한 약속을 안 지켰다고 3년 동안이나 비가 안 오게 하셨어요.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에게 물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사울 왕의 자손 일곱을 내주십시오. 우리가 저희를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그래서 사울 왕의 자손 7명을 주었어요. 그들을 죽였을 때에 비로소 다시 비가 내렸어요.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로 변경이 없습니다. 신실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서 인격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도 점점 어떻게 해야 되요? 자기가 한 말에 대하여, 속아서 한 약속이라고 해도 지켜야 해요. 신앙인의 언어는 그렇게 중요합니다. 내가 잘 모르고 농담으로 약속을 했어요. 그래도 지켜야 해요. 나는 기억이 없어요. 10년이나 지나서 기억이 없지만, 400년이 지나고, 500년이 지났어도 하나님이 지키라고 하시면 지켜야 해요. 하나님이 언약의 하나님이신 것처럼, 인간도 언약의 사람이 되어야 해요. 이것이 인격적인 만남이어요.
크리스천도, 지도자도 목사도, 언어에 대한 책임을 안 져요. 말을 함부로 하고,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아요. 그래서 영적 권위를 자꾸 잃어버려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처럼 우리도 세례언약 반드시 지켜야 해요. “하나님. 나를 내려놓겠습니다.”하면 내려놓을 때까지 하나님은 억지로 무릎을 꿇려요. 그렇지 않으면 어차피 무릎 꿇을 건데, 왜 얻어터지고 무릎을 꿇습니까? 내가 미리 무릎을 꿇어야지. 어차피 무릎 꿇을 건데. 약속이잖아요? 신실하신 하나님을 얘기합니다.
(3) 광야의 삶은 결국 어디로 나를 인도합니까?
하나님을 알고 깨닫도록 말씀으로, 시내산으로 인도하시죠? 광야가 지나고 나면, 어떤 몸으로, 환경으로 경험하는 게 아니라, clear하게 이제는 논리로, 이치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해요. 그러면 이 진도가 훨씬 빨라지죠. 이런 걸 몸으로 깨달을 때에는 30-40년 걸려요. 그러나 말씀 안에서 깨닫고 순종해 버리면 이것을 3-4년으로 줄일 수 있어요.
40년을 살고 깨닫겠습니까? 3,4년 만에 해결하겠습니까? 성경을 모르면 모르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까운 세월 다 보내고, 엉뚱한 곳에 가서 헤매게 되요. 빨리 말씀의 산으로 가야 합니다. 몸으로 체득한 것들이 이론화하여 체계화하고, 논리화 되어 내 삶속에 철학으로, 내 삶의 가치관으로 딱 정렬될 수 있도록 빨리 시내산으로 가야 해요.
자. 멋있는 질문 하나 하고 통성기도하고 마칩시다. 옆엣 분에게
“평생을 광야에서 보내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세요.
“일생을 광야에서 마치겠습니까?”라고 물어보세요.
“여러분 교인들을 광야에서 헤매다가 광야 백성으로 그냥 끝나게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가나안으로, 성막으로 인도하시겠습니까?” 물어보세요.
10분 동안 하나님. 내가 이제 진리의 말씀 앞에서 결단합니다. 성경책에 손을 얹으세요.
“하나님. 내가 다른 것은 다 못하더라도 말씀의 전문가가 되겠습니다.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길을 찾고, 교인들을 어디로 인도해야 할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분별하겠습니다. 이 말씀 앞에 내가 정직하게 해 주시고, 이 말씀의 스승이 되게 해 주시고,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게 해 주시고, 말씀을 통하여 성도의 삶을 바르게 인도하는 선한 목자가 되게 해 주세요.”
< 출애급기 강의 (10) >
다섯 개의 case를 제가 말씀드리고 이런 문제를 가지고 성도들이 목사님을 찾아왔을 때에, 어떻게 상담해야 하는지 토의해보는 겁니다. 세 분씩 짝을 지어보세요. 제가 예제(例題)를 읽어가는 동안에 우리 조는 저것을 하면 좋겠다고 정해서 상의하는 것입니다.
< 상담 1 >
경제문제가 너무 어렵습니다. 이제는 아주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막막합니다. 있는 것 다 까먹고도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인 생활은 돼야 하는데 생계마저 염려가 되는 상황까지 와있습니다. 가족도 있고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필요한데 아예 바닥을 치고 있으니 나오는 것은 한숨과 원망뿐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건강마저도 힘들어 낙심이 됩니다. 무언가 희망이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복을 받아 경제문제가 풀리겠습니까?
< 상담 2 >
인생이 무의미해졌습니다. 돈도 만져봤고, 명예도 얻어 봤고, 성공도 해 봤지만 모든 게 다 헛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가족이 내 삶에 중요한 목표이지만 배우자도 자식도 내 기대와는 관계없이 자기 길을 갑니다. 인생이 이렇게 dry한 것인 줄 몰랐습니다. 신앙생활을 계속해 왔는데도 내 안의 갈증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전에 기쁨을 주었던 일마저도 이제는 희미합니다. 성경도 안 들어오고, 기도해도 답답하고, 봉사를 해도 기쁨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내 안의 열정과 의미를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 상담 3 >
난 요즈음 너무나 큰 허탈감에 빠져 있습니다. 기도하고 계획하고 시도한 일인데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전에는 기도하지 않고 마음만 먹어도 응답을 주신 하나님이신데, 이제는 기도하고 또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을 따라 순종하는 데도 너무나 실망스러운 일들이 반복됩니다. 무언가 될 듯 하다가 안 되고, 뚜껑을 열어보면 전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별 유익이 없는 결과만 얻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꼬인 문제를 풀어갈 수 있겠습니까?
< 상담 4 >
나는 목사님이 싫어졌습니다. 전에는 목사님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설레는 마음이 들었는데 이제는 목사님을 보고 있노라면 단점들만 보이고 너무나 많은 약점들이 눈에 보입니다. 하나님처럼 대할 수 있었던 그런 영적 권위를 이제는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설교도 귀에 안 들어오고, 매사가 뒤틀려져 교회에 나가는 일마저도 내게는 짐이 됩니다. 평생을 모시고 선교 다니면서 헌신하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목사님을 뵈면 짜증부터 납니다. 어떻게 해야 잃어버린 열정을 회복하고 다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겠습니까?
< 상담 5 >
그 원수 같은 인간 때문에 신앙생활을 못하겠습니다. 나와 특별한 이해관계도 없는데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지 도대체 믿음생활을 할 수 없도록 방해하고 고통을 줍니다. 차라리 내가 교회를 떠나든지 그 인간 꼴 보기 싫어서 아예 도망을 쳐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신앙대로 살아보려 하고, 무언가 바르게 살아보려고 시도하는 것마다 시비를 걸고 내 가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그 인간이 안 보이는 곳이 내게 천국입니다. 내게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만들어내어 이야기하고 다닙니다. 하나님은 왜 그런 인간을 심판하지 않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조별 토의 및 발표 >
한 조가 번호 하나씩 선택해서 의논하는 거예요. 어떻게 상담을 해 줘야 할지...
광야를 통과하는 비결
1. 15장 - 기대가 무너져 일이 꼬일 때
- 십자가를 적용하라. 하나님의 기대를 맞추라.
2. 16장 - 경제문제가 괴롭힐 때
- 하늘 양식,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라.
3. 17장a - 목마를 때
- 반석으로 가서 생수를 경험하라.
4. 17장b - 사람이 내가 가는 길을 방해할 때
- 을 얻어 함께 기도하라.
5. 18장 - 지도자의 한계가 드러날 때
- 몸을 세우기 위하여 지도자를 조력하라.
지금 뭐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결국 광야거든요. 광야.
광야의 문제는 결국 뭐를 요구하는 것이라고요? 내 속에 과거의 나를 비우고, 거기에 누구를 채우라고요? 거기에 하나님을 채워라. 그런데 문제는 어떤 쪽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1) 경제문제는 몇 장이에요? 16장. 신 광야죠. 목적은 뭐에요? 경제를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집중하고 그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라. 그거였죠?
(2) 2번 문제가 무엇이었어요? 인생이 dry합니다. 이것은 몇 장이에요? 17장의 르비딤 사건이죠. 목적이 뭐에요, 거기는? 반석이신 그리스도께 가서 기도함으로 뭘 경험해야 한다? 성령세례 받도록, 성령이 충만할 수 있도록, 그러니까 그런 쪽으로 유도를 해 주는 거예요. “그러면 뭐를 하면 인생에 만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했던 일 가운데 제일 기분이 좋았고 의미 있었던 일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서 그의 설명을 들은 다음에 상담자가 “인생이 dry한 이유는 성령님을 받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요청이다”라고 해줘야 하죠.
(3) 3번 문제는 기대치가 무너졌을 때, 기도하고 계획했는데도 기대가 다 무너졌을 때, 몇 장이지요? 15장. 15장의 목적이 뭐에요? 십자가. 회개하고 돌이키는 거죠.
(4) 4번은 목사님이 싫어졌습니다. 몇 장이에요? 18장, 문제가 뭐에요? 지도력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답이 뭐예요? “네가 목사님을 도와라.” 네가 동역자가 되어서 목사님의 약한 부분을 도와라. 밥만 쏘지 말고... (청중) “식사를 대접하고 기분 좋을 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목회자의 한계는 누가 cover해야 하나? 그 문제를 본 사람이 cover해 줘야 한다. 거기까지 가면 되는 거죠.
(5) 그 다음 마지막 문제가 뭐예요? 아말렉, 5번. 몇 장이에요? 원수 같은 인간. 어떻게 해야 해요? 기도 partner를 찾아서 서로 기도하고, 기도로 승리해야 하죠. 하나님은 사람을 얻게 하기 위하여 사람으로부터 힘들게 한다는 거죠.
아!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상담입니다. 공감을 해야 되고, 경청을 해야 되고, 또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 뭔지 알아야 되는데... 우리가 상담학을 공부하려면 최소한 4-5년을 해야 상담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素養)을 쌓습니다. 상담이 쉽지가 않아요. 목사님들이 또 상담목회를 한다는 것이 사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리는 상담목회보다는 말씀목회를 해야 되요. 그러니까 사고가 난 이후에 이것을 도와주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사전에 미리 광야에 대한 어려움을 설명해주고, 또 우리가 광야를 지나면서 이런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될 터인데,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내가 아닌, 바로나 애급이나, 살았던 방식이 아닌, 거기에 누구를 채워야 한다? 하나님을 채워야 한다. 그래서 이미 피의 언약을 맺었고, 세례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제는 문제가 생기면 나를 내려놓고, 누구를 붙잡는다? 하나님을 붙잡는다. 이런 것들을 미리 신앙의 어떤 기본 구조로 설명해주고 훈련을 시키면 사고가 나도 큰 어려움 없이 잘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의 process가 성도들에게 세워져 있지 않을 때에는 계속 자기 욕망만 이야기해요. 자기 불편한 것, 자기의 감정 상한 것만 이야기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거절하면 해답이 없거든요. 목사가 마음을 만져서 어떻게 하겠어요? 그 사람이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 있어요? 어디까지 들어줘야 해요? 우리는 마음을 들어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진리 되신 그리스도를 소개해 주는 데에 상담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상담이 어렵습니다. 진리의 틀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도울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바로 데리고 가시지 않고, 홍해로 데리고 가셔서, 세례를 받게 하고, 다시 광야로 데리고 들어오셨습니다. 똑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바로 복을 주시면 다 썩고 말아요.
선인장을 옮겨 심을 때 그냥 옮겨 심으면 선인장이 절대 살지 못합니다. 죽어요.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선인장을 꽃꽂이하거나 옮겨 심은 때. 어떻게 합니까? 물에 담가놓아요? 응달에다가 일주일 정도 말려요. 그러면 수분이 다 빠져나가서 거의 죽을 지경이 되요. “아이고. 나 죽겠네. 나 물 좀 주세요.” 그러고는 일주일쯤 후에 심고 물을 주면 100% 물을 흡수하면서 쫙~ 생명력이 살아납니다. 그런데 건강한 선인장을 그냥 옮겨 심어놓고 물을 주면, 이미 자기 안에 물이 있기 때문에 물이 고여 가지고 뿌리가 썩어버려요. 죽습니다.
성도를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에 왜 광야로 데리고 가셨는가? 그 원리에요. 적절한 고난을 통해서 우리 속의 생명력이 살아납니다. “아! 돈도, 사람도 나에게 의미가 없구나. 정말 하나님이 아니면 내가 못 살겠구나.”라는 진정한 갈증을 갖게 되요. 그러면 그 고난 이후에 주신 복은 그냥 생명의 부요함을 갖게 되죠. 그런데 이런 갈증이 없이, 곤고함이 없이, 복을 받게 되면 뿌리가 썩어버리고 인생을 상실하게 되죠. 하나님이 성도를 인도하시는 이 구원의 과정을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고난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그 고난을 통하여 누구를 붙잡는 거예요? 하나님을 붙잡는 거예요. 이게 핵심이에요.
자. 광야에서 이렇게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또 나와 함께 동역해야 할 사람들, 또 교회, 하나님 나라를 얻도록, 찾아가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어디로 데리고 갑니까? 시내산.
여기가 시내광야에요. 시내광야에서 모세가 시내산 올라갑니다.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받게 되죠.
19-24장 성화(聖化) (하나님의 자기 계시)
19장 : 시내산 앞에서 제사장 나라로 세우심(약속) 4-6
1. 은혜 :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다.
2. 조건 :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말을 지키면
3. 목적 :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 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 세계가 나에게 속하였나니
20장 : 십계명
십계명 정신 - 하나님께 예배, 이웃 존대(마 22:37-40)
21-23장 : 하나님의 원칙들 (paradigm shift)
24장 : 언약 백성으로 세움
약속에 응답할 줄 아는 신실한 언약 백성으로 세우시기를 원함
19-24장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시내산 앞에서 제사장 나라로 세우심.
19:4-6 봅니다. 이스라엘을 부르신 목적이죠.
“(4) 내가 애급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나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내가 너희를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인도하였다.” 은혜입니다. 은혜.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우리를, 환경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왔던 삶의 여러 가지 아픔과 상처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는 말이죠. 여기서 말하는 독수리 날개는 아주 평안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아주 맹훈련을 하는 거지요.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시킬 때 높은 벼랑이나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뜨립니다. 독수리 새끼가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다가 땅에 추락하기 직전에 어미가 날개로 받아서, 또 높은 곳에 올라가서는 또 떨어뜨리고... 이런 걸 독수리 훈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업어서 인도했다고 하십니다.
조건 -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코드를 맞춰야 해요. 출애급기로 말하면 은혜는 어디까지예요? 은혜는 11장까지에요. 조건은 12장부터
목적 - “내가 너희를 제사장 나라로 세우겠다.” 세계를 내게 속하게 하기 위하여 제사장 나라를 세우겠다. 25장부터 40장까지죠. 은혜를 받는 거나 훈련을 받는 거나 전부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고, 제사장 되게 하기 위한 것이고, 다 하나님께 속하도록...
하나님의 속마음을 지금 알려주는 거예요. “내 소원이 뭔 줄 아느냐? 네가 빨리 성장해서, 장남이니까, 우리 집안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다. 내 나라를 빨리 회복시켜라. 내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20장은 십계명이죠. 십계명은 돌비가 두 개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 또 하나는 이웃을 존대하는 법이죠. 21-23장은 하나님의 원칙들
19-24장 계시(啓示) -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채움
1. 도덕법(Moral Law) - 대자기(對自己)관계
2. 시민법(Civil Law) - 대인(對人)관계
3. 의식법(Ritual Law) - 대신(對神)관계
24장은 이제 언약백성으로 세우십니다. 약속에 응답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시 계시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세 가지로 볼 수 있어요. 도덕법, 시민법, 의식법 Moral Law, civil Law, Ritual Law.
도덕법은 나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내 양심과의 관계. 시민법은 대인관계입니다. 이웃과의 관계죠. 의식법은 하나님과의 관계, 대신관계입니다. 그래서 이 계시의 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나 자신 앞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당한 길, 진리의 길을 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당한 길을 걸어라.”
하나님은 이런 원칙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지요. 멋대로 자기 충동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원칙대로 살기를 원하신다. 우리 안에 하나님에 대한 법. 이웃에게 대한 법, 자기 자신에게 대한 원칙이 있어야 해요.
시내산 : 말씀은 하나님의 사상, 하나님의 철학이다.
★ 말씀은 인격이다.
★ 말씀으로 인격 속에 찾아오신 주님, 우리 안에 거하심
★ 첫 창조 : 혼돈⇒질서로, 공허⇒생명으로, 흑암⇒빛으로 채워짐
1. 사명선언문 “뜻을 정한 인생은 아름답다.”
2. 나의 매일의 십계명 - 체크리스트로 매일 점검하기
3. 복음 선포문 만들기
시내산은 하나님의 사상, 하나님의 철학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곧 인격입니다. 하나님의 인격. 말은 곧 인격이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인격입니다. 말씀으로 인격 속에 찾아오신 주님. 우리 속에 말씀이 들어오면 그 말씀이 사상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게 됩니다.
처음 창조 때,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가라사대”할 때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했어요. 여기에 말씀이 선포되니까 혼돈은 뭘로 바꿔져요? 질서로 바꿔집니다. 윗물과 아랫물로, 또 물과 뭍으로, 낮과 밤으로, 이렇게 separate, 구분됩니다.
둘째, 말씀이 선포되니까 비어 있던 공허(空虛), empty가 contents, 생명으로 꽉 채워집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 흑암은 무얼로 바꿔져요? 빛으로 바꿔집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역시 우리 안에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실 때 무얼로 찾아오세요?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도 무얼로? 언어입니다. 언어.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격과 하나님의 갈망을 알게 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선포되어지고, 교육되어지고 훈련되어졌을 때, 그 하나님 말씀이 나의 사상이 되고, 나의 가치관이 되고, 나의 목표가 됩니다. 그것들이 다시 우리 언어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선포됩니다.
그렇다면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체화(體化) 되고 나의 사상이 되고, 나의 인격이 되게 하기 위하여 어떤 작업을 하는 것이 좋으냐?
① 첫째 사명선언문(使命宣言文), mission statement라고 하죠. 사명선언문을 만들어야 해요. 어떤 목적으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기 사명선언문이 있어야 해요. 따라합시다.
“뜻을 정한 인생이 아름답다.”
저희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자유게시판에 가면 사명선언문, 또 나의 매일의 십계명, 복음 선포문, 이런 예제들이 있어요. 이런 것을 만들고 사는 사람과 만들지 않고 사는 사람은 전혀 격이 다른 인생을 삽니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어요.
② 둘째, 십계명을 주셨는데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이 정하신 사명에 도달하기 위하여 내가 매일매일 지켜야 할 십계명을 만들어보면 참 좋습니다. 나는 성경을 얼마를 읽겠다, 기도를 어떻게 하겠다 등,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열 가지 원칙을 정해야 합니다. 나의 매일의 십계명.
③ 셋째는 복음선포문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 하나님께서 내게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는 것을 적어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자. 이 사람 것을 한 번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이분은 우울증으로 굉장히 오랫동안 고통당한 분이어요. 그런데 치료하는 방법으로 제가 복음선포문을 쓰라고 하였어요. 당신이 원하는 소원들을 쓰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해 주시기를 원하는 것을 써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매일 선포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우울증 약을 끊었어요.
< 복음선포문 >
1) 나의 하나님 앞에서
• 나는 하나님에게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나의 진홍같이 붉은 죄는 눈과 같이 희어졌다.
• 사망이나 생명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 내 삶의 주인은 주님이시며 내 인생의 주관자가 되신다.
• 내가 겪는 모든 아픔은 훗날 많은 영혼들을 섬기기 위함이다.
• 주님의 뜻을 믿기에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다.
2) 나 자신 앞에서
•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 나는 리더십이 있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섬세한 사람이다.
• 나는 용기가 있고 유머러스하며 솔직하다.
• 나는 밝고 유쾌한 사람이다.
• 나는 이제 사탄이 참소하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며 나의 약점을 이용하는 악한 영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만 더욱 바라볼 것이다.
• 나는 빛의 자녀다. 어둠의 영이 나를 더 이상 해치지 못할 것이며 두려움과 불안 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바뀔 것이다.
• 나는 사랑받는 아내이며 남편의 좋은 친구이자 믿음의 동역자이다.
• 나는 사랑받는 딸이자 며느리며 부모님과 웃어른을 공경하는 사람이다.
3) 나의 가정 앞에서
• 주님은 우리 집의 주인이시며 식사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님이시며 모든 대화에 말없이 듣는 이시다.
• 주 1회의 가정예배로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고백한다.
• 남편과 나의 셀(cell)원들은 우리의 섬김과 가르침을 통해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고 영적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 남편과 나는 교회의 2012 비전에 합당한 600명의 리더 중 하나로 세워질 것이며 이를 위해 모든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고 비전과 영적인 고민을 함께 나누는 진정한 동역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4) 나의 건강 앞에서
• 나의 몸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다.
• 건강에 해로운 음식과 습관을 피하고 운동과 호탕한 웃음으로 심신의 건강을 관리할 것이다.
• 우울증, 불안장애로 오는 호흡 곤란과 가슴 두근거림, 손 저림은 예수의 보혈의 피로 없어지고 깨끗하게 치료될 것이다.
• 2010년 7월까지 현재 복용중인 약(불안장애, 우울)을 끊고, 둘째를 가질 것이다.
• 우울증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내 몸과 마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나는 계속해서 우울증 약을 복용하지 않을 것이며 맑은 정신으로 주님을 묵상하고 기도할 것이다.
< 소감을 썼는데 >
사명선언문, 나의 십계명, 복음선포문은 현재 저희 집 냉장고 문에 붙여져 있습니다. 매일 큰소리로 읽으며 선포하지는 못해도 그냥 언제나 볼 수 있는 곳에 걸려 있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더군요. 마음으로 항상 생각하고 선포하게 되고, 저희 집을 방문하는 셀원들이 보게 되면 긴장하게 되고, 제 자신을 다짐하는 효과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2010년 3월 지금은 복음선포문의 문구대로 2010년 7월까지 현재 복용 중인 약(불안장애와 우울)을 끊고 둘째를 가질 것이라고 했는데 2009년 3월부터 먹던 우울증 약을 일 년 만에 끊게 되었습니다. 선포의 힘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박승호) 우울증 약은 의사의 동의 없이 끊으면 절대로 큰일 납니다. 이거. 의사가 “이제는 안 먹어도 됩니다.”라고 할 때까지는 먹어야 해요. 의사가 처방을 내리는 거예요. 이젠 괜찮다고.... 그 동안에 복음선포문을 통하여 자기 언어로 자기 문제 해결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빠른 속도로 일련의 사건들을 진행시키시며 약을 끊을 수 있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약을 끊은 지 2주 정도 되었을 때에 3일 연속 저를 불안하게 하는 사건들이 일어났고, 순간 약을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저는 바로 이것이 사탄의 전략임을 눈치 챘으며, 더욱 마음을 강하게 하고 선포함으로 그 순간을 이겨냈습니다.
요즘은 셀 모임을 인도할 때 예전과 다른 자신감과 은혜가 있고, 모임도 더 풍성해짐을 느낍니다. 지난 영성수련회 때도, 주일예배 때도, 성령께서 제 마음을 만지고 계심을 느끼며 집중해서 그분께 나갈 수 있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셀 차원에서 정 모 성도(류마티스 관절염, 불임)와, 송 모 자매(불임)를 위하여 릴레이 금식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기 엄마들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동참하고 열심을 내주어 너무 감사하고 은혜가 됩니다. 이렇게 저는 지금 과정의 한가운데 서 있고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갈망이 머릿속에 있을 때에는 그게 갈망이지만 문장으로 끄집어내어 선포할 때에는 또 하나의 영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이번 기회를 통하여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포문의 갈망을 응답으로 채워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잃어버렸던 것들을 되찾게 하시고, 슬펐던 어제를 기쁨의 오늘로 변화시키시고, excellent한 내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이게 이제 이런 문장, 언어를 통하여 빼앗겼던 영역들을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을 선포하심으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이기셨던 것처럼, 우리의 창조적인 언어를 통하여 잃어버렸던 영역들을 우리가 되찾는 것입니다. 언어, 생각, 마음이 아주 중요합니다. 사탄이 지배했던 영역들, 우리 건강을 빼앗겼고, 또 대인관계를 빼앗겨 버렸고, 부부 간의 갈등, 자녀문제, 이런 것들을 다 빼앗겼거든요.
복음은 뭐냐 하면, 사탄이 왕노릇하고, 사탄이 역사하는 그 현장을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극복해서 그 영역들을 전부 다 하나님께 되돌려드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제일 안 되는 영역이 어디냐 하면 생각과 마음과 언어입니다. 밖의 것은 오히려 쉬워요. 환자를 치료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해결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를 속여요. 그래서 우리 안에 견고한 진을 두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생각이에요. 생각이 바꿔지기 어려워요. 그 생각이 부정적인 생각, 공격하는 생각, 남을 정죄하는 생각, 원망하는 생각, 이런 생각들이 무얼로 바꿔져야 해요? 찬양 감사 은혜 하나님을 묵상하는 걸로 바꿔져야 해요. 시내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뭐냐 하면 바로 우리 안에 채워야 할 하나님에 대한 문장들을, 광야에서는 생활을 통하여 깨달았고, 시내산에서, 말씀을 공부하는 데에는 그런 문장들, 내 안에 가득 찼던 부정적인 문장들이 긍정적인 문장으로 바꾸어지는 작업을 하는 것이에요. 기왕에 그렇게 할 것 같으면 의도적으로, 먼저 내 훈련의 방법을 내가 미리 선점하는 거예요. 저절로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선포하면서 찾아가는 거예요.
자. 보세요.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자동차들이 가기 힘들도록 도로를 막 파놓았어요.
생각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불편하니까, 출근하는데 한 차선만 허용하기 때문에 한 차선은 기다려야 되고 그래서 차가 밀린단 말이에요. 기다리면서 한 사람이 생각하는 거에요. “우리나라는 맨날 이래. 덮어놓고 열고, 덮어놓고 열고, 이건 뭐 국가적인 낭비고, 이거 어떻게 하라는 거야? 맨날 열었다 덮었다, 열었다 덮었다. 이거, 참. 정치하는 인간들 정말 정신이 썩었어.” 이렇게 화를 내는 생각이 있고, 또 하나의 생각은 “야. 겨울에 얼었다가 봄이 되어 해빙되니까 사고 날까봐서, 야! 공무원들 수준이 높아졌어. 사고 나기 전에 미연에 방비하느라고 국민들이 사고날까봐서, 위험한 곳을 다 뜯네. 야. 공무원들 수준이 옛날하고 달라.”
어때요? 앞의 생각으로 출근을 했어요. 어땠을까요? 하루 종일 기분 나쁘고, “이 놈의 인간들. 다 썩었고, 세금 아깝고, 말이야” 이렇게 계속 나가는 거예요.
후자는요. “야. 공무원들 수준 높아졌어. 이렇게 국민들 사고날까봐 미리 작업하고 옛날하고 너무 달라졌어.” 이 사람은 오늘 기분이 어때요?
그러면 앞의 생각은 부정적인 생각, 누가 좋아하는 생각? 사탄이 좋아하는 생각. 뒤의 생각은 긍정적인 생각, 생산적인 생각. 누가 좋아하는 생각? 그러면 나는 어디를 선택해야 해요? 긍정적인 생각을 선택해야 되죠.
그런데 이런 것을 작업하지 않고 그냥 놔두면 긍정적인 생각이 잘 떠오르던가요? 부정적인 생각이 잘 떠오르던가요? 훈련하지 않아도 부정적인 생각, 그냥 그리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의도적으로 복음선포문을 만들고,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사명선언문을 만들고, 내가 매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나의 매일의 십계명을 만들어가지고 자기 생활을 자기가 control해주는 거예요. 어차피 얻어맞고, 깨지고 하면서 광야 40년을 살고서 그리로 가야 할 것인데, 40년까지 걸릴 것이 뭐 있어요? 빨리 깨닫고 내가 미리 만들어 가지고 가버리면 되지. 여러분 이게 어차피 매를 맞고 가나, 몸으로 때우고 가나, 어차피 그길로 가야 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되요? 얼른 가버리죠. 뭐. 성경을 모를 때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니까..., 뛰어도 알고 뛰어야지, 아무 데나 뛰면 됩니까?
성경을 알고 나니까 아! 광야가 뭐고, 고난의 의미가 뭐고... 안단 말이에요. 하나님 붙잡는 거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거고, 헌신하는 거고, 제사장 만나는 거고...
그렇다면 내가 알고 미리 가는 거예요. 이런 걸 작성하기 전에는 계속 몸으로 얻어맞아야 되고, 깨닫고 그것을 순종하게 될 때까지 5년, 10년 걸렸어요. 그런데 가는 길을 알고 나니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요. 성경을 공부해 보니까요. 광야 40년을 지나도 못 깨닫는 인간은 못 깨달아요. 결국 200만 명 가운데, 199만 9998명은 광야에서 평생을 마쳤어요. 두 사람만 들어갔어요. 그 두 사람이 누구예요? 여호수아와 갈렙이죠? 어떻게 해서 그들이 들어갔대요?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의 말씀을 온전히 붙좇았다”고 했어요. 말씀을 붙잡고 사니까 같은 광야를 지나가는데 들어간 사람과 못 들어간 사람의 차이가 결국 말씀이더라고요.
그럴 바에는 왜 40년씩 기다려요? 어차피 말씀을 잡아야 할 것 같으면 처음부터 “하나님 말로 합시다. 제가 말씀하실 때 듣겠습니다.” 따라 합시다.
“말로 합시다. 하나님. 말로 합시다.”
그게 광야를 단축시키는 비결이라니까요. 우리 교인들에게 광야를 단축시켜주는 비결이 무엇이에요? 말로 할 때에 듣게 해 주는 거예요. 말의, 언어의 채널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설교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그 말씀을 들었을 때에는, 반드시 그 말씀을 씹지 말고,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도다.” 그것을 교인들에게 미리 가르쳐주는 거예요.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 것은 사신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점치는 것, 복술(卜術)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어요.
하나님이 무지무지하게 싫어하는 것이 뭐냐?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것이에요.
그런데 대부분의 교인들은 목사님이 설교하면 그대로 살던가요, 안 살던가요? 대부분의 교인들은 앉아서 즐기고, 문 나가면서 다 잊어버려요. 그러면 그게 뭐냐? 사울 왕이 걸었던 길이거든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리셨나이다.”
그럼 우리가 교인들을 그대로 놔두면 어떻게 되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가 됩니다. 어떻게 해야 되요? 설교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서 결단하게 해야 되요. 자기 행할 바를 적게 하고 점검해서 실천하게 도와줘야 해요. 안 그러면 목사님 설교가 교인들을 오히려 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요. 왜?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데도 안 지키잖아요? 즐기기만 하지...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하고서는 안 지켜요.
우리 교회만 그런가? 여러분들 교회는 안 그럽니까? 주일날 설교 말씀하면 100% 다 지키던가요? 기억이라도 하던가요? 우리 교회는 프린트까지 해줘요. 설교 요약까지 해주고.
“그래도 대부분의 교인들이 --- 지켜요.” 내가 말 잘못하면, 전달 잘못하면 큰일 나요.
어찌 되었건 성도들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사명선언문을 만들게 해주고, 매일 자기가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을 지킬 수 있도록 check-list를 만들어서 점검하게 해주고, 그 말씀들이 자기 삶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복음선포문을 만들어서 벽에다 붙여놓고 읽게 하고 적용하게 하는 거예요.
임산부인데 불면증에 걸려서 밤에 잠을 못 자요. 밤에 전화가 왔어요. “목사님.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임산부니까 수면제를 먹지 못하잖아요?
임신한 상태에서 잠까지 못 자니까 얼마나 힘들어요? 목사님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내가 기도해주고 내가 과제를 내주었어요.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셨으면 좋겠느냐? 그것을 당신이 문장으로 써봐라.” 썼어요. 첫날 저녁에는 조금밖에 효과를 보지 못했대요. 이튿날부터는 잠을 잘 잤어요. 지금 임신 중이에요.
언어가 우리 삶 가운데 들어와서 우리의 정신세계, 사상세계 속에 들어와서 나의 문장이 되고 나의 사상이 되고, 나의 철학이 될 때까지는 광야가 계속되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서 왕노릇할 때까지는 광야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받아들이니까. 광야를 지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기보다는 더 빨리 광야를 지나가게 하는 방법은, 그렇게 광야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문장을 내가 미리 만들어서 매일 선포하면서 가도록 만들어주면 된다, 이거죠. 이해가 됩니까? 이런 구체적인 작업을 도와주어야 해요.
사명선언문을 만들어서 사는 사람과 만들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주 수준이 달라요.
다행히 요즘 이런 사명선언문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 아주 많이 나와 있어요.
이런 책들을 여러분들이 보시면서 우선 목회자 자신이 사명선언문을 만들고, 또 자기 십계명 만들고,.. 우리 목성연(牧聖硏) 내에서는 Dream School이라고 해서 원하는 사람들은 이런 신앙 관리, 목적 관리, 인생 관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만들어서 다 도와드립니다. 그래서 시간을 단축시켜 줘야죠.
어차피 매를 맞아서라도 가야 할 길이라면, 매를 안 맞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죠. 그 문장 하나,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를 얻게 하기 위하여 몇 년 걸렸어요? 40년. 그것을 미리 선포해 주는 거예요. "당신이 그것을 쓰시오."해서. 그것을 매일 선언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40년까지 안 가고, 4년이면 해결되는 거예요. 그렇죠? 언어구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들어오고, 그 언어가 내 사상이 되고, 생각이 되고, 또 그 언어, 그 언어가 내 입을 통해 선언되고, 증거되고, 전파되고...
엄마가 아이를 가르칠 때 뭘로 가르쳐요? 말로.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 뭘로 가르쳐요? 그 말이 그 아이의 사상이 된 거예요. 그 사상이 된 언어가 그의 입술을 통하여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언어를 들으면 그 사람의 사상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언어가 안 바꿔지면 뭐가 안 바꿔진 거예요? 사상이 안 바꿔진 거예요. 성도의 말이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 출애급기 강의 (11) >
성막론은 이 주제 하나만 가지고도 한 주간을 공부해야 할 만큼 많은 분량인데, 이미 우리나라의 여러 목사님들이 성막에 관해 많은 세미나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자세하게는 안 해도 구속사적으로 성막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어떤 방향만 잡으면 될 것 같습니다.
1장-2장, 출애급기를 하고 나면 이게 탁 나와야 됩니다. 켜면, 온(ON)하면 불이 탁 들어와야 됩니다. 1-2장, 3장-11장, 12장, 13-24장, 25-40장. 자 이제 자세하게 합니다.
1-2장 하나님께서 상황을 준비하심,
3-4장 목자를 준비시킴, 성령체험하게 하셨고, 세 가지 자격 조건을 준비시켰지요?
5-11장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냄. 12장, 13장, 13장만 하면 신앙의 orientation,
14장 세례, 15장-18장 광야훈련, 19장-24장 시내산 훈련, 말씀훈련,
25장-40장 예배훈련, 성막 훈련이죠.
자. 그 다음 크게 다섯으로 분류합니다.
1장-11장 은혜, 12장 피의 언약, 13장-18장 세례언약, 19장-24장 말씀언약,
25장-40장.
자. 전체적으로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봤던 구조하고, 상세하게 본 구조하고, 크게 다섯 구조로 보는 세 가지입니다.
옆엣 분하고 한번 묻고 대답하고... 이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져야 그 다음 자기식으로 살 붙이고 적용할 수가 있어요. 이 구조가 안 잡히면 공부를 많이 해도 자꾸 지엽적인 것만 다루게 됩니다. 세 가지 가운데 하나씩 가지고 한 번 서로 설명해 보십시오.
25-40장 이르려 하노라
1. 25장-31장 성막설계
(25:8-9,40) “내가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해 지어라.”
(26:30)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세울지니라.”
2. 32장-34장 우상숭배 - 계약의 파기
3. 35장-40장 성막건축
(출 39-40장) “명하신 대로 되니라.”
(레 9:5-6) “명하신 대로 하면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리라.”
(레 9:22-24)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결국 출애급기의 마지막 목표는 25장부터 40장입니다. 성막으로 데리고 가서 예배 훈련시키고 하나님의 임재, 교통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게 한 다음에, 그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하나님의 영향력,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향취(香臭)를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을 제사장이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연결시켜주고 용서받게 하고 또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것. 이제 하나님은 신약시대에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다고 그랬죠.
자. 마지막 25장부터 40장을 보면 “이루려 하노라. 데려가려 하노라.”
25장부터 30장까지는 성막설계입니다. 25장 8,9절, 40절에 보니까 “내가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서 나를 위하여 지어라.” 자 이걸 잘 보셔야 됩니다. “누가 거하신다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이 거할 성소, “누가 짓습니까?” 사람이 짓죠, 그런데 누구를 위해 짓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짓습니다. 우리 시대에 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표현할 수 있죠. 누구를 위하여 하나님의 거처가 되지요. 누가? 우리가, 목사가 짓는 것이 아니고 같이 짓는 거예요. 협력해서 같이. 누구를 위해서요? 하나님을 위하여 이런 원칙들을 우리가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26:30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설계도 건축의 원칙을 우리가 “멋있게 지어 드리겠습니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지어야 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건축을 해보신 분들은 알지만 법대로 안 지으면 아무리 잘 지었어도 ‘준공필(竣工畢)’이 나오지 않습니다. 만약에 허락 받지 않고 사용하면 불법사용이 되죠. 우리는 우리 쪽에서 멋있게 지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이번에도 보니까 동계 올림픽 때 1등을 했지만 1등이 몰수된 사람들이 있었죠. 우리나라 선수도 그랬고 또 우리가 득도 봤고... 왜 1등을 했지만 몰수 되었어요? 예~ 법대로 하지 않았죠. 잘하는 것,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시~작
“속도(速度)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方向)입니다.” 열심히 일을 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이것을 모르면 사울 왕처럼 평생, 다윗도 40년, 사울도 40년이거든요. 봉사기간은 똑 같지만 사울은 왕관을 잃어버렸고 그의 집안은 몰락을 했고, 다윗은 흥왕했고 후손들까지 복을 받았어요. 오래 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많이 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법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죠.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세울지라.” 모세는 식양을 받아온 분이고 우리는 식양대로 하면 되죠. 우리는 따로 계시를 받을 필요가 없죠. 어디에 있습니까? 기록된 말씀이 있잖아요. 이 말씀을 우리가 잘 분별하고... 그러나 기록된 말씀대로 하면, 잘못하면 문자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항상 두 가지죠. written words ‘기록된 말씀’과 speaking words ‘지금 선포하시는 말씀’ 또 우리 옛날 어르신들은 로고스(lovgo")와 레마(rJhvma)로 표현을 했죠. 로고스와 레마의 말씀이다. 또 어떤 분들은 Word of God ‘하나님의 말씀이다,’ Word of Holy Spirit ‘성령의 말씀이다.’ 여러 가지로 말을 합니다만 어찌되었건 지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듣는 것, 또 기록된 말씀을 듣는 것, 두 가지가 같이 가야 합니다. 만약에 따로 가버리게 되면, 현상에만 치중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 버립니다. 항상 두 관계가 같이 가야 됩니다. 기록된 말씀에 위배됨도 없고 또 치우치지 않고 지금 임재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지금 내가 어떻게 접근, 해석해야 할지... 항상 현장에서 묻고 기도하고... 이런 영적 긴장을 놓치면 안 됩니다.
모세를 통해서 이미 주셨던 말씀, 성경의 기자들을 통하여 주셨던 말씀과 현대적 해석, 현대적 상황 우리의 문화적인 정황 속에서, 이 시대에 이 말씀을 어떻게 선포할 것인가 하는 성령님과의 교통이죠. 이게... 수시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감동받기를 기다리고... 이런 것들이 같이 갈 수 있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하는 거죠.
32~34장은 잠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는 동안에 아론과 함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시내산 계약이 깨지죠. 하나님과의 언약이 망가집니다. “내 백성을 다 쓸어버리겠다.”고 하나님이 아주 진노하시지요. 이걸 모세가 중보하면서 “하나님 그리하시면 안 됩니다.” 모세가 중보해서 다시 살리는 그런 romantic한 역사가 기록이 되고,
35~40장은 구체적으로 이미 주셨던 말씀을 가지고 성막을 건축하는 내용이 나오죠.
39장과 40장에 우리가 시간이 있으면 하면 좋은데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직접 한 번 해보게 하세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이 말씀이 39장에는 몇 번이 나오고 40장에는 몇 번이 나오는지? 서로 찾아보게 해 보세요. 그러면서 얼마나 건축을 말씀대로 했는가?
total 두 장에 18번이 나옵니다. 그 말은 출애급기의 마감은 결국은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데 focus를 두지요. 우리 목회가 잘 했다, 성공했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성취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다.”로 목회의 결론이 나와야 합니다. 큰 목회, 작은 목회는 우리끼리 얘기이고, 하나님이 보실 때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었나를 먼저 따집니다.
레위기 9:5~6 한 번 찾아봅시다.
어제 간증하신 목사님도 말씀하셨습니다만, 목사님들이 교회에서 출애급기의 성막론(聖幕論) 또 레위기 5대 제사와 7대 절기, 이런 내용들은 잘 숙지해서 교회에서 하게 되면 교인들이 예배 생활이 달라져버립니다. 예배가 신약시대에는 다 똑같다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레위기에 보면 제사도 다섯 가지가 있고 절기도 7대 절기가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공부하게 되면 교인들이 헌금 하나를 해도 이것은 화목제물이다, 이것은 번제물이다, 이것은 속죄제다, 개념들이 달라지게 됩니다.
캄보디아에 저희 목성연 지회(支會)가 있는데 우리 모임에서 레위기를 잘 아시는 목사님이 한 번 다녀오셨어요. 그 다음에 갔을 때, 어떤 얘기를 들었는가 하면 선교사회가 상당이 어려움이 많습니다. 다들 고국을 떠나서 타 문화권에 와 있는데 선교에 대한 어떤 부담도 크지만, 동료들끼리 보이지 않는 그~ 내면의 갈등이 상당히 심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오픈하기도 힘들고 또 치우칠 수 없고, 해서 굉장히 긴장이 되어 있는데, 제사법에 대해 공부를 하고 난 뒤에 화목제에 대한 분위기가 딱 떴다는 거예요. 친교하고 화목하고...
그 다음에 제가 갔더니 완전히 분위가 달라졌어요. 서로 그 동안 앙금 졌던 것 화해하고 마음도 풀게 되었다고요... 제사를 모를 때는 그런 마음의 갈등이나 막혀있는 것들이 있었지만 제사를 알고 난 뒤에는 “아이쿠. 그것 안 하면 큰일 나겠구나...” 마태복음에 보면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와 화목하지 않는 것이 생각나거든 먼저 예물을 제단에 두고 형제와 화목하고 나서 예물을 드려라.”라고 그랬지요? 그럼 이에 대해 누가 설명을 한 번 해 보세요. “예배가 먼저입니까? 화해하는 것이 먼저입니까?” 화해가 먼저입니까?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입니까? 사람과의 관계가 먼저입니까?” 레위기를 안 배운 사람은 이렇게 말을 해요... 레위기를 배우면 어떻게 되느냐? 제물과 예물이 달라요. 자. 제물을 설명해보세요. 거기서 말한 것은 “예물을 드리다가” 그랬지요? “제물을 드리다가”가 아니라 “예물을 드리다가”예요. 제물과 예물이 어떻게 달라요? 제물을 드리지 않으면 예물을 드릴 수가 없어요. 제물은 의무제(義務祭)라 그러고, 예물은 자원제(自願祭)라고 그럽니다. 기쁨으로 하는 거예요. 이건 안 드려도 되지만 내가 받은 바 은혜가 너무 커서 감사해서 드리는 것을 자원제라 그래요.
자원제는 반드시 의무제를 드린 이후에 드릴 수 있는 거예요. 의무제는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이건 안 드리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나 ‘화목제, 소제, 번제’는 예물(禮物)이에요 예물. 이게 자원제입니다.
성경에서 ‘흠향(歆饗)하시는 제물’이라는 개념은 제물을 말하겠어요, 예물을 말하겠어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다. 향기로운 예배다. 흠향하시는 예배다. 제물이에요, 예물이에요? 예물입니다. 그러니까 예물을 드리려다가 보니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된 거예요. 그러면 제물인 경우에는 뭐냐?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해결하라는 거지요. 이런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성경대로 살면 변화되지 않을 사람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습니다. 해결 안 될 문제가 없어요. 모르니까 우리가 그냥 의식하지 못하고 간 거지... 예배를 드려도 받으시는지, 안 받으시는지.. 이런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기뻐하시지 않는지, 도통 그건 관심이 없어요... 내가 열심히 드리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 “산에서 본 식양대로, 내가 너희에게 명한 대로,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이런 개념들이 없다는 거지요. 성경을 모르니까. 일차적으로 누구에게 책임이 있겠어요? 지도자의 책임이에요. 안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멋진 목회, 잘하는 목회, 성공하는 목회보다는 정석대로 하는 목회, 말씀대로 하는 목회, 이런 것이 일 순위가 되어야 됩니다.
다시 한 번 더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방향설정이 중요합니다.
열심히 달리다 “어? 아닌가?” 하면 벌써 10년 지나가 버린 거예요. 또 ‘이거다.’하며 누가 성공했다고 하면 그 방법 가지고 열심히 했는데... 머리가 희끗희끗 되어 중년 그룹에 들었는데... 이것도 아닌 것 같아... 그래서 처음부터 신학교에서부터 성경에 대하여 잘 배울 수 있어야 되는데... 신학에 공부할 것이 많아 가지고 사실은 본문은 관심 밖이에요. 본문 공부는 우리 자신에게 넘어온 거예요. 신학교에서는 울타리 만들어주고, 이 울타리 밖에 안 나가도록 공부했으니까, 울타리 안에서 성경 공부는 스스로 해라... 그런 분위기지요. 그래서 이런 목사님들의 재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 시켜가지고 노회별로나 또는 그룹들이 형성되어서 이런 본문 공부를 성실히 꾸준히 하게 되면 우리가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데, 그의 교육에 대한 책임을 신학교에만 둬 버렸기 때문에, 짧게 공부하면 3년 길게 공부하면 6~7년 하는 것인데... 사실 성경 66권을 공부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 부족한 거지요. 그래서 좋은 것은 선배 목사님들의 일생을, 목회헌신하고 성경공부 했던 분들이 헌신을 해서 후배를 키워주는 이런 모임이 많이 활성화 되어야 합니다.
어제 제가 몇 분을 만났는데, 신학교 졸업 후 20~25년 지난 후에도 매주 만나는 모임도 있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모임도 있고... 참 귀한 모임이라고 생각이 되더라고요. 그거 쉽지 않거든요. 목사님들이 꾸준히 만난다는 것이... 만나서 성경본문 연구하고, 식사하고, 목욕하고, 운동하고 그런다고 해서 ‘참 부러운 모임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자꾸 우리가 그런 만남을 가지면서 서로 도와주고, 또 그런 그룹이 형성되면 또 후배들에게 전해주어, 그럼 우리가 고생했던 만큼 그 분들이 고생하지 않고 그 외에 또 다른 세계를 개척할 수가 있잖아요?
그 동안 한국교회가 외적으로 성장하는데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이런 내면적인 문제를 미처 돌아볼 여유가 없었죠. 이제는 한 세대가 지나갔잖아요? 1세대 선교 초기에 또 개척 1세대가 지나가고 이제는 조금 안정되었다고 생각이 되요.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옛날처럼 부흥도 되지 않고, 한꺼번에 한 주에 2~30명, 50명씩 등록한다면 언제 밖을 돌아볼 시간이 있겠어요? 지금은 여유를 가질 수 있잖아요? 이젠 그런 시절은 지났어요.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자기 자신도 좀 돌아보고 서로 좀 돕고 하는 이런 것들이 전체적인 목사님들 그룹 속에서 분위기 속에 나아가야 된다 하는 그런 필요를 느낍니다.
선교지에 가보면요. 뜨거운 열정으로 선교지에 왔어요. 그런데 줄 게 없어요. 2, 3~4년 지나고 나면 탈진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죽을 지경이라는 거예요. 한국에 와서 좀 공급 받으러 왔는데 다 강단에 세우잖아요? 선교 보고하라고, 보고하고 나면 몇 개월 지나가 버리고 쉬어야 되고 공급을 받아야 되는데 ⋯ 그럴 만한 여건이 안 되고... 아주 선교사들 지쳐 있어요. 지금 보니까. 뜨거운 열심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레위기 9:5~6 봅시다. 레위기 9장은 성막 건축이 마친 후에 내가 이 성막에 와서 살겠다하는 그런, 요즘 말로하면 봉헌식(奉獻式)이라고 할까요? 하나님이 성막에 내려오시는 과정에 대한 기록인데 8장에서 제사장 위임식을 마치고 위임 받은 아론이 첫 제사를 드리는 기록이 9장이죠. 5~6절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모세의 명한 모든 것을 회막 앞으로 가져오고 온 회중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선지라, 모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자. 가만 보세요.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하신 것이니”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인데 그대로 하면 어떤 결과가 온다고요?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그랬어요. 이런 부분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잘 섬기고 성장시켜서 하나님 말씀하신대로 순종을 했더니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거예요. 분위기가 달라지고 심령들이 움직이고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어이샤, 어이샤”해서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에 의한 부흥이 아니라, 정말 뜻밖에 하나님이 우리 예배 가운데 찾아오시는 거예요. 그리면서 예배 분위가 달라지면서 교인들의 얼굴빛이 달라지고 언어가 달라지고 삶이 달라지는 거예요. 변화가 되는 거예요.
사도행전 2장에서 아주 극적인 상황이 벌어졌잖아요?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셨고, 빌라도의 군병들과 유태인들이 짜가지고 제자들을 체포하려고 하고,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120명이 모여 가지고, 정말 목을 거는 그런 위험한 모임이거든요. 지금도 120명이 한 곳에 모였다 하면 금방 드러납니다. 그런데 120명이 한 장소에 모였다는 것은 목을 내놓은 극적인 상황에서 정말 약속을 기다리면서 오늘입니까? 내일입니까? 피를 말리는 시간이 아니겠어요? 첫 우두머리를 잡아 죽였는데, 그 밑의 졸개들을 잡아 죽이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지요. 그런 상황 하에서 전혀 기도에 힘을 썼을 때에, 어느 순간이 지나니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는 그 때에 느꼈을 전율을 생각해 보세요. 자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굉장한 겁니다. 아주.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에 3기 부흥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처음 개척해서 얼마동안 임대교회로 분당에 있을 때를 1기로 보고, 교회를 건축하고 나와 가지고 급성장을 했어요. 교회 건축 되니까 사람들이 몰려온 그때를 교회 부흥 2기라 한다면, 이제 내가 3기 부흥을 주겠다고 몇 년 전에 주셨어요. “교인들 중에 10%가 매일 한 시간 이상씩 기도하게 해라.”라고 말씀하셔서, 그래서 기도하자 해서 기도운동을 일으키고 있는데,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에요.
기도로 준비하고 있는데, 어느 틈엔가 교회 분위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람들의 언어가 달라지고 표정이 달라지고, 자세들이 달라지고... 그전에는 서로 비난하고... 하는 분위가 팽배했는데 어느 순간에 부정적인 이야기가 없어지고 분위기가 업(up)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느낌은 목사의 전율하는 그 감격... 어? 하나님이 오셨네. 와! 임재가 나타나네.
모세가 뭐라고 했는가 하면 우리가 지은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했는데 말씀대로 해서 합격하면 뭐가 온다? 하나님 영광이 나타난다는 거예요. 이런 말을 할 때에 그 지도자인 모세의 마음과 그 기다리고 있다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을 때에 그 백성들이 느꼈을 것이 아니겠어요?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런 것이 목회의 재미에요. 그저 자연발생적인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께 성실하게 순종했을 때에 오는 그 결과 이게 언약과 성취란 거예요. 하나님은 언약하시고 우리가 순종하므로 그 언약이 성취되는 것들, 그래서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그랬죠? 22절 봅니다.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필하고 내려오니라.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다 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한번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 현장을 한번 가보세요. 어떤 분위기였겠는가? 아주 기가 막힌 분위기죠. 우리가 목회의 승부를 어디에 걸어야 합니까? 사람입니까? 현장입니까?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말씀대로 백성을 지도하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고, 그리고 그 약속하신 것을 우리가 이루어드렸을 때, 약속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광이 찾아오는... 이걸 진정한 부흥이라고 합니다. 전도의 방법론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고, 성경공부 방법론으로 어떤 것으로 할 것인가? 제자훈련 교재를 어떤 것으로 쓸 것인가? 이런 것들이 다 중요하지만,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방법론에 모든 energy 쏟고 정작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있어요.
1.4 후퇴 때 한강 다리를 폭파해 버리니까 피난하는 사람들이 한강을 도강을 해야 했어요. 얕은 곳을 찾아 가지고 넘어오는데, 북에서 남하한 한 엄마가 비단 장사를 하는 사람인데 남편도 이제 잃어버리고 애 하나 등에 업고 비단을 머리에 이고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단은 물에 젖어버리면 쓸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비단이 물에 젖지 않게 하려고 조심조심 해서 한강을 건넜어요. “야. 비단 잘 보관해서 잘 팔아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고 그러면서 아주 신중하게 한강을 건넜는데, 다 건너고 나서 “야. 비단 잘 건넜다.”하고 비단을 내려놓고 보니 등 뒤의 포대기가 아래로 축 처져 있는 거예요. 비단은 살리고 아이는 죽었어요.
우리 목회가 그럴 때가 많이 있어요. 본질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그 다음이 사람과의 관계인데, 목회의 1순위를 사람에게 두거나 상황에 두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넘어가버립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났다.” 얼마나 기가 막힌 상황입니까? 기도한 대로 응답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그대로 성취되고 이때 느끼는 희열과 감격! 이럴 때 “산다는 것은 황홀한 것입니다.”라고 이렇게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시작 “산다는 것은 황홀한 것입니다.”
목회가 황홀한 겁니다. 그 어르신이 나를 인정해주었다. 그럼 다 된 것 아닙니까?
성막을 세우고 여호와의 군대를 계수함
⋅ 2년 1월 1일, 성막을 완성하여 세움(출 40:2,17; 민 1:1)
⋅ 20세 이상 남자로서 싸움에 나갈 만한 사람의 명수를 계수함
(603,550명, 민 1:2-4:33)
- 가족과 종족을 따라 세움
- 진용을 짜고 깃발 밑에 세워 여호와의 군대로 출발케 함
⋅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를 대신하여 레위인 22,000명을 구별시킴
⋅ 이스라엘의 진 배치와 행진의 순서를 알려주심 (민 2:1-34)
⋅ 여호와의 군대로서의 출발
⋅ 2년 1월 1일 성막을 완성하여 세웠다. 그리고 민수기에 가면 20세 이상 남자로서 싸움에 나갈 만한 사람의 명수를 계수하여 여호와의 군대를 세우게 되지요. 가족과 종족에 따라 세우고 진영을 짜고 깃발 밑에 세워 여호와의 군대로 출발케 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내려왔고 그 영광을 호위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 군대를 만들어 하나님 나라, 여호와의 영광을 우리가 지키자. 언약궤를 앞세우고 여호와의 군대가 이제 진격을 하게 되죠.
⋅ 이스라엘의 처음 난자를 대신하여 레위인 2만 2천명을 구별시킴.
장자들을 대신해서 처음난 사람을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데 처음난 사람 대신에 레위 사람을 택했어요. 이렇게 묶어주셨지요. 내 집에 장자와 레위 사람을 묶어가지고 그 레위 지파 사람들을 지원해 주는 거예요. 이렇게 내 아들 몫으로 주의 종으로 섬기는 것이지요. 구약시대에는 십일조를 다 제사장들에게 갖다 드렸어요. 레위지파가 관리하고 그 중에 다시 십일조를 제사장에게 드렸지요.
⋅ 이스라엘의 진 배치와 행군의 순서를 알려주심.
이제는 그냥 백성들이 이동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군대로 진용을 짜서 이동하게 합니다. 여호와의 군대로써 출발하지요.
하나님의 거처
1. 출애급 시대의 하나님의 거처
(출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2. 신약 시대의 하나님의 거처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3. 완성된 하나님의 거처
(계 21:3)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1) 하나님의 거처로서 성막을 보면 출애급시대의 하나님이 계신 장소는 성막이었습니다.
출애급기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우리가 가끔 기도할 때 이런 기도를 합니다. “높고 높은 보좌에 앉아 계셔서 낮고 천한 죄인들을 돌보시는...” 이런 기도를 하는데 그것은 성경적으로 조금 문제가 있어요. 하나님은 하늘에만 거하시는 것이 아니고 여기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광야에서 성막을 주셨고,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것도 임마누엘하시기 위해서... 하늘에만 계시고 땅에서 너희들끼리 살아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2) 요한복음 1:14 신약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구약시대에는 성막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가 있었어요. 성막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이렇게 올라와 있잖아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지성소 위에 떴어요. “하나님이 여기 와 계시구나.” 알았죠. 그 영광을 신약시대에 누구를 통해 봤어요?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것이 성령시대,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성령이 오셨어요. 성도들의 몸이 성전이 됩니다. “너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린도전서 3:16에 말씀했죠. 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고린도전서 6:20. 우리의 몸, 존재가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이 몸들이 연합하고 함께 build up 되면서, 지어져 가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거처가 됩니다. 에베소서가 이것을 말하고 있죠.
에베소서 2:21~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개인 성전, 개인 건물이 연결되어서 성전이 되어 간다는 거지요. 또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제 우리가 완성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사탄은 계속해서 우리가 연결되지 못하도록 분열 작업을 합니다. 계속. 부부간에도 갈라지게 해 버리잖아요. 서로 마음을 달리하게 하고, 서로 반목질시하게 하고... 성령님은 자꾸 연합을 시켜요, 이렇게. 서로 연결해서 협력하게 하고 서로 연합되게 하는...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어서 성전이 되어간다.”
(3) 마지막 완성은 계시록 21:3에 보니까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이 상태가 바로 에덴동산의 상태였거든요. 타락하기 전의 상태, 아담과 하와와 함께 살았던 상황이 에덴동산이었죠. 그것이 타락했을 때 깨져버려요.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고 하나님과 동거하는 것을 잃어버렸지요. 구약에서는 그림자로 신약에서는 실제로 이제 예수님이 오셔서, 성령님이 오셔서 그러나 아직은 제한적이죠. 재림 이후에 완성이 되는데 재림하시고 완성이 되었을 때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장막이 같이 있고, 함께 거하시고...
지금 제일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지금부터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을 훈련하는 거예요. 요즘 젊은 부부들은 결혼하고도 너무 개성이 강해 가지고, 요즘 토요일에 결혼식 주례를 많이 하는데, 저는 주례할 때마다 가슴이 선뜻선뜻해요. “이것들이 얼마나 가려나?” 얼마나 개성들이 강한지 양보를 안 합니다. 내가 뭐 아쉽다고 너한테 양보하느냐는 겁니다. 결혼예비학교 4주를 하는데, 마지막에 제가 꼭 물어봐요. “헤어지자는 말 할 거냐, 안할 거냐? 이혼한다는 말 할 거냐?” 안 한다고 말할 때 주례해 준다고 다짐을 받아요. 둘이만 있는 데서 한 약속이 부족한 것 같아, 증인을 세워 또 물어봐요. 주례하면서, 그런 거 물어보면 주책이잖아요. 요즘 개성이 워낙 강해 가지고 바로 독립 선언을 하잖아요? 신혼여행 갔다 오면서 벌써 깨져버리는 거예요. 분열의 영이 너무 강하는 거예요. 연합이 안 돼요. 연합을 하려면 누군가 한 쪽이 손해보고 져 주어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거예요,,. 요즘 애들은... 하도 엄마들이 기를 세워가지고.. “너 어디 가서 기죽지 마, 기죽지 마.”해서 키워 가지고... 이제 기가 너무 안 죽어서 큰일이에요. 소금을 뿌렸을 때 배추가 기가 죽어야 김치를 담아 먹지요. 얼마나 항생제를 쳐 놓았는지, 소금을 뿌려도 기가 안 죽어요. 쓸모가 없어요, 쓸모가. 어디를 가도 기가 안 죽는 이것이 문제예요. 문제... 섬기고 사랑하고 양보해야 되는데... 연합의 영이 없는 거예요. 전부 “나요. 나요.” 그러지 남을 배려해주려는 마음들이 없어요. 하나님의 집은 서로 연합되는 거지요, 연합. 부부도, 부모와 자식, 또 나와 개성이 다르고 성향이 다른 사람끼리 만나가지고, 누군가 십자가 지는 사람이 있으면 되거든요. 예수님 십자가만 이야기하지, 자기 십자가는 얘기 안 하니까 연합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 32장 : 우상숭배 - ‘종교의 영’
(32:4-6)
(24:4-5)
(24:11)
자. 32장에서 하나님이 아주 싫어하시는, 무서운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교회를 비난하면서 종교의 영이 강하다고 그래요. 그리고 이세벨의 영이 강하다고 그래요.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얼 이야기하는가 했는데, 뭐냐 하면 뒤에서 조종하는 거예요. 사모님들이 뒤에서 목사님을 리모콘 가지고 조종해요. 권사님들이 뒤에서 장로님들을 조종해요. 이세벨이 아합을 조종했죠. 이세벨의 영이 한국에 강하대요. 그 양반들이 보고서 하는 얘기니까 난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그런 게 많아요. 배후 조종...
또 하나 종교의 영은 뭐냐 그랬더니, 내용은 없고 껍데기만 흉내 내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우상숭배인데, 어떻게 우상숭배했는지 한번 봐요.
(출애급기 32:4~6)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급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이 부분만 빼면 그 뒷부분은 똑같아요.
(24:4~5) 시내산 언약을 맺을 때를 보면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뛰놀더라.” 같아요, 달라요? 똑 같습니다. 번제와 화목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도 똑 같고, 제단 쌓는 것도 똑 같고.
(24:11)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먹고 마시는 거예요.
종교의 영은 뭐냐? 그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만든 신이라는 거예요. 오늘 우리 시대에 내가 만든 신이 많아요, 교회 안에도. 교인들이 오면 목사님한테 자기가 만든 신을 위해 달라고 “이렇게 해 주세요, 저렇게 해 주세요.”라고 요구하는 것이 많아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설교로 전하고 목회를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것이 힘을 얻게 되어 당회가 되면 심각하죠.
또 목사님의 입장에서도 정말 진리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게 될 때에는, 내가 생각할 때 이것이 바르다고 생각한 자기 철학을 가지고 밀어붙여요. 그러면 방법은 똑 같아요.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제단을 쌓고 즐기라고 하고 화목제와 번제를 드리고, 먹고 마시고, 뛰어 놀고, 똑 같잖아요? 제단 쌓고, 12기둥 세우고, 번제와 화목제 드리고, 뛰어놀고, 먹고 마시고, 똑 같아요. 다만 형식도 같고, 모양도 같고, 자세도 같지만 대상이 하나님이냐, 내가 만든 신이냐에 따라 다르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를 계시의 종교라고 그래요. 종교학적인 면에서 종교의 개념은 사람들이 의식주가 해결이 되면 즐거움을 찾습니다. 생존의 문제, 즐거움에 문제가 해결이 되면 그 다음은 방종하며 타락으로 가는데 그 사이에 뭐가 있냐 하면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큰 힘을 만나게 되요. 절대 힘을 만나게 되면, 지진, 쓰나미 자연 재해... 그러면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만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종교를 만든 거예요. 종교. 이런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더 큰 신을 찾아보자 해 가지고, 산을 신으로 모시기도 하고, 바다를 신을 보시기도 하고, 이러다간 다른 신이 노엽게 될 것 같다고 하여 나중에는 다 신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빗자루 신, 고무신 신... 혹시 그 신을 노엽게 해서 벌 받을 줄 모른다고 해서... 재앙이나 어떤 해(害)의 두려움 때문에 만들어 낸 것이 종교예요. 이게 종교학적인 정의입니다.
기독교는 그렇게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사건으로 시작을 하지요. 계시, 은혜, 전혀 다르지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 형식이 똑 같다고 해서 본질도 같다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단이 왜 이단입니까? 끝(端)에가 다르다(異)고 해서 이단이라고 그러잖아요? 본질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잘 봐야 되요. 아프리카 흑인들은 방언을 아주 많이 한답니다. 황홀경에 들어가면 이상한 언어가 나온다는 거지요. 방언하는 현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영역에 연결 되었느냐가 중요하지요. 우리만 예언하는 게 아니라, 중들도 예언을 합니다. 미래에 대해서...
또 금세기에 예언자를 많이 봤잖아요? 2012년에 세상 끝난다고 난리 났어요. 2012년 영화가 나오고, 과학적으로 2012년이 문제가 많데요. 크게 말하면 안 되는 얘기인데, 어떤 행성(行星) 하나가 지구로 오고 있데요. 그걸 해결할 방법이 없데요. 우리 지구에서... 그런 것이 2012년에 연결되어 있어요. 그런데다가 또 마야문명, 잉카문명, 옛날 고적에 무슨 카렌다가 있는데, 그 카렌다에서 2012년을 겨냥했다네요. 92년도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했던 것이 어디서 연유된 줄 알아요? 노스트라다무스가 99년에 끝난다고 하니까, 세대주의 휴거론자들이 7년 환난이 있기 전에 휴거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성경적 상식 ⇒ 92년⌟ 그렇게 나온 거예요. 머리 좋은 사람들이 작품을 만들어 보려고 그랬는데 그게 불발이 되어 버렸어요.
그 92년 설이 어디서 나왔어요? 종교가 강한 한국에서 나왔어요. 한국은 하나님도 많고, 성령님도 많고, 감람나무도 있고, 아버지 하나님도 있고, 어머니 하나님도 있고, 조심해야 되요. 똑 같은 형식이에요.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이것이 너희를 애급에서 이끌어낸 하나님이란다.” 그 내용도 똑 같아요, 똑 같아. 똑같이 복사하잖아요.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고 현상에 집중하면 나도 모르게 우리가 만든 종교 속에서 뛰어놀고 잔치하고 박수치는 거예요. 같이 뛰는 거예요. 같이. 혹여 군중심리나 문화적인 요구에 의해서 늘 긴장해야 되요. 성막을 건축할 때 보면 이런 긴장을 우리가 어떻게 focusing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 35장 : 성막 건축 - ‘마음, ’
(35:1)
(35:4,5)
(35:21-22)
(35:26,29)
(36:1)
(35:1) “모세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사 행하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35: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일이 이러하니라. 이르시기를”
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사 행하게 하신 일이 이렇다.” 또 “여호와께서 명령하심이 이러하니라.” 놓쳐서는 안 될 메시지 핵심이 뭐예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설교할 때 설교학에서 “그렇게 사료됩니다,”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선포는 그런 게 아니잖아요.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하라고 하지요. 자기 생각이나 유추에 의해서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런 모세에 calling에 대해서 백성들이 어떻게 응답했는냐 하면 5절에 보니까 “마음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우선 마음에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21절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22절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26절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들이,” 29절 “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누구나”
성령께서 이렇게 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동하는 마음의 갈망을 주신다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감동(感動)이라고 그러지요. 감동.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행하고자 하는 감동. 신약시대에 성령을 어디에다 부어주신다고 그랬어요?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다고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시대적인 차이가 있다면 구약시대는 주로 기름 부음을 밖에다 두었어요. 신약시대에는 그것을 마음에 둡니다. 고린도후서 1:21~22 봅시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마음을 움직인다는 거예요. 억지로 하는 순종이 아니라, 마음에 감동을 주고 자원하는 마음을 주어서 기쁨으로 할 수 있도록...
우리가 처음 부르심을 받을 때, 신학교를 가려고 할 때, 목사 안수를 받았을 때, 우리 마음이 얼마나 뜨거웠습니까? “내가 주님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내가 주의 제단에 제물 되겠습니다.” 마음을 드렸어요. 그런데 격무(激務)에 시달리고, 순한 양만 있는 것이 아니라 들이받는 염소 떼 속에서 시달리다 보니까, 이제 마음은 떠나버리고, 껍데기만 남아 가지고 억지로 할 때가 많이 있지요. 프로그램에 의해서 하고, 또 해야 된다는 당위성 때문에 하고, 그것도 필요하지요... 그러나 마음을 잃어버렸어요. 마음의 감동, 기쁨으로 섬기는 마음, 자원하면 열정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러나 억지로 하면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다보니까 stress가 간으로 와 버리고, 피곤이 누적되어 가지고 사람 만나기도 귀찮고... 우리 마음을 회복해야 되요. 이런 집회를 통해서 깊은 기도 가운데 들어가서 우리가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 마음에 다시 하나님의 성령께서 오신 touching을 경험해야 되요. 성령께서 나를 만져주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sensitive한 감성으로 돌아가야 되요. 그것을 영성이라고 하지 않아요? 하나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요구하시는 것을 듣고. 이번 주에 어떤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하고 이 메시지를 어떻게 증거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저는 공개강좌를 할 때에는 항상 출애급기를 먼저 합니다. 하나님. 이번에는 어떤 issue를 가지고 제가 접근을 할까요? 울산 지역이라고 하는 context가 다르잖아요? 울산 지역의 목회자들의 문화적인 context가 다르잖아요? 난 잘 모르지요. 이것을.
하나님 이번 주에 어느 부분에 강조점을 두어야 합니까? 늘 기도하면서 기다리죠. 이렇게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으려고 하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을 순종했을 때는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는 거지요. 어떻게 이번에 처음에는 억지로 오셨다는 분들이 많으셨다는데, 극동방송에서 다섯 번, 열 번 연락이 와서 할 수 없이 와서 인사하고 도망치려고 했는데, 잡혔다고요. 잡혔다는 말은 무슨 말이에요? 그게 감동을 받았다는 거지요 그게. 성령께서 마음을 휙 휘저어주니까 감동이 일어나는 거예요. 갈망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아. 내가 헌신해야 되겠구나.” 우리가 목회하면서도 늘 프로그램 따라가고, 스케줄에 따라가잖아요. 그러다 보면 마음을 잃어버려요. 늘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마음을 만져주시고 하나님을 만나는 여유를 가져야 되요. 그걸 못 가지면 점점 사울 왕처럼 되어 버립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출발 안했는데 나중에 유명해지고, 일이 많아지고,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은 간 곳 없고 프로그램만, 스케줄만 남아 있는 거예요. 그럼 이제 하나님은 간 곳 없고 내가 만든 프로그램, 내가 만든 목표에 충성하기 시작하는 거지요. 출발할 때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그랬는데 어느 새 내가 사업가가 된 거예요. 내 사역에 반대하는 사람은 걷어차 버려야 되요. “저 사람이 나를 반대해” 그러면 불편한 거예요. 그런데 출발할 때는 안 그랬거든요. 진짜 한 영혼이 소중하게 느껴졌고 그 영혼들을 섬기기 위해서 기도했고 한 사람의 실족자를 위해 금식도 했고 그런 민감한 마음을 가지고 성령님에 의해서 움직였던 사람이, 이제는 일이 너무 많아지니까 귀찮아지는 거예요. 설교도 길게 하는 사람 안 쳐다보고 싶어요. 솔직하게... 상담을 몇 번이나 해야 되나 이러면서...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만지신다는 것을... 이 마음이 딴 데 사로잡혀 있으면 답이 안 나옵니다.
< 출애급기 강의 (12) >
지금 이 화면을 보십시오. 이 자매, 이 키 큰 자매 있지요? 공을 몇 번 받고 pass하는지를 세어보는 겁니다. 제가 여러 군데에서 했는데 정확하게 맞추는 사람들이 없더라고요. 울산은 과연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맞추는지... 자. 이 자매를 잘 보십시오.
< 영상 >
고릴라를 못 본 이유는 여러분들이 집중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보란 말도 안 했는데 본 사람은 둘 중의 하나예요. 아주 주의력이 산만하거나 타고난 천재성이 있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왜 이 그림을 보여드리느냐 하면,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차례 찾아오셨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셨지만, 우리가 어느 것 하나에 집중 되어있으면 다른 것을 못 봅니다. 이게 문제예요. 우리 인간의 한계거든요.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관심사가 되어야 하고, 구속사가 관심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것을 이것보다 더 집중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는 고릴라가 나와서 춤을 추고 지나가도 못 보는 거예요. 이제 보니까 보이잖아요? 그리고 저렇게 큰 action을 못 보다니 우습잖아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고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는 자세로 볼 때 하고 다른 목적을 가지고 볼 때하고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신앙생활이 자기 야망, 자기 욕망, 자기 갈증을 실현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복은 받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게 광야 백성이거든요.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겁니다. 더 좋은 빵을 먹어야 되고, 바로보다 더 나아야 되고, 애급에 살 때보다 더 나아야 된다는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을 때는 하나님의 영광도 미래에 대한 약속도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집중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데 그 집중의 대상이 누구냐? 진리의 하나님이에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복음. 그럴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지만, 자기 야망, 인기.., 사울이 나중에 인기에 편승하잖아요. 하나님은 너를 버렸다고 그러는데도 사무엘에게 사정을 해요.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 해도 당신이 나를 비행기를 좀 태워 달라고 장로들이 나갈 때 따라오라고, 내 입지를 좀 세워달라고... 이미 사울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어져 버린 거예요. 사울이 하나님을 버렸으니 하나님이 사울을 버릴 수밖에 없잖아요? 이것이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격무에 시달리고 여유 없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우리가 나도 모르게 자칫 흘러갈 수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진리에 서 있는지를 늘 확인해야 되고 검증해야 되고 그것들을 도와줄 수 있는 network을 형성해야 되고, 서로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되고, 도움을 줄 수가 있어야 되요. 그래서 목사들의 모임이 필요합니다. 교인들 앞에 가면 항상 위엄을 가져야 되고, 위치를 지켜야 되고, 하고 싶은 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긴장 속에 살잖아요. 그런 차원에서의 삶만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놓고 나눌 수 있는 이런 지기(知己)가 있어야 합니다. 교제권이 아주 중요합니다.
★ 성막의 구조적 의미 - 생명의 성숙
(1) 출입문 - 구원
(2) 뜰 - 번제단, 물두멍
(3) 성소 - 떡상, 금등잔대, 향단
(4) 지성소 - 속죄판, 그룹, 언약궤
성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서 내가 너희를 만나겠다고 말씀하셨고,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또는 우리와 함께 하심을 거기서 확인할 수 있고... 성막은 이 땅에서 천국을 사는 중요한 공급과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이게. 그래서 우리가 성막에 나아갈 때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신선한 공급을 받고, 또 정결케 되는 경험을 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영광, 후광을 입고, 돌아서 나올 때는 우리 몸에서 그 분의 향기, 그 분의 후광이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고린도후서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 뵙고 산 아래로 내려왔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너무 커서 수건으로 자기의 얼굴을 가렸어요. 율법에서의 영광도 이렇게 큰데, 하물며 신약시대 새 언약을 통한 영광은 얼마나 크겠느냐? 우리가 주의 형상을 보매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러 주의 형상으로 변화된다고 말씀하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집중하고, 또 하나님을 목표로 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경영, 하나님과의 관계를 내가 늘 돌볼 때, 작은 영광에서 큰 영광, 이젠 우리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막은 구약에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으로 주셨지만 신약에 나타날 완성에 대한 예표고, 성령님이 오셔서 교회를 인도하시고 또 마지막 구속사의 완성을 도모하시는 이 마지막 때에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에 대한 좋은 모델이 됩니다.
(1) 우선 출입문은 구원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10:9-10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그랬습니다. 구원만 얻는 것이 아니라 꼴, 양식 공급을 받는다는 거지요.
(2) 뜰은 씻음의 장소지요. 거기 번제단이 있고 물두멍이 있습니다. 번제단은 피로 씻는 곳이고, 물두멍은 물로 씻는 것이지요.
(3) 성소는 공급의 장소지요. 떡상, 금등잔대, 향단,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령한 양식들을 공급받는 곳입니다.
(4) 마지막 지성소는 하나님을 배알하는 곳인데, 거기에 속죄판이 있고, 그 언약궤 위에 그룹이 있고, 그 밑에 언약궤가 있습니다.
성소가 네 부분으로 되어있다고 하는 것. 들어가는 문, 씻음 받는 장소, 공급받는 장소, 하나님의 영광을 배알하는 장소로, 네 부분의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염두에 두고 이제부터 진행을 합니다.
★ 생명의 성숙 - 뜰 (벗고 씻음)
(1) 번제단 - 피로 씻음 (히 9:22)
(2) 물두멍 - 물로 씻음
⋅ (벧전 3:20-21)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 (마 28:18-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막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 (행 2: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어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 (행 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우선 번제단은 피로 씻는 장소입니다. 히브리서 9:22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대속의 제물이 있어야 되요. 내가 내 문제로, 내 죄 문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지은 죄를 대신 심판 받고 나를 위해서 대속할 제물이 필요합니다. 그 피가 나를 씻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구원받은 사람들도 항상 피의 씻음을 의식해야 합니다.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나아갈 때 반드시 먼저 피로 씻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피의 제사가 없으면 하나님께 열납 될 수가 없습니다.
둘째는 물두멍입니다. 여기는 물로 씻는 장소지요? 성경적인 개념으로 말씀드리면 여기가 세례의 장소입니다. 피를 만졌기 때문에 제사장의 손의 피를 물두멍에 씻고 성소로 들어갑니다. 요한복음 3:5에 물과 성령으로 할 때 그 물을 학자들이 ‘말씀이다.’라고 해석 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러나 성경 전후의 상황을 보면 그 물은 세례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더 성경적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물은 내 쪽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내가 나를 내려놓겠다는 나의 자기부인이고, 성령은 위로부터 나를 도와주시는 것이지요.
★ 생명의 성숙 - 성소 (공급)
(1) 떡상 - 말씀 (요 6:47-51)
(2) 금 등잔대 - (요 16:7-13)
(3) 금 향단 - 찬양, 기도, 예배 (계 5:8;8:3-5)
성소에 들어가면 떡상이 있고 금 등잔대가 있고 금 향단이 있습니다.
① 떡상은 말씀입니다. 열두 개의 떡을 진설해놓고 한 주간이 지나면 새 떡을 갖다 진설하고 묵은 떡은 제사장이 먹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 “내가 떡이니 나를 먹어라, 내가 음료니 나를 마셔라.”할 때 떡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② 그 건너편에 금 등잔대, 옛날에는 금 촛대라고 번역을 했죠. 금 등잔대가 있습니다. 촛대는 초가 타는 것인데, 이것은 기름을 공급하기 때문에 촛대라고 번역하기 보다는 등잔대라고 해야 한다. 이것이 학자들의 견해죠.
요한복음 16:8에 보면 “성령이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은 오시면 우리를 비춰줘요. 성령이 오시면 어두움 가운데 있는 것을 드러냅니다. 내가 잘못 살았던 것들 ... 성령이 오시면 이렇게 자꾸 드러내줘요. 성령의 조명(照明) 혹은 성령의 조망(眺望)이라고 하지요. 자꾸 우리를 빛 가운데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죠. 성령이 자꾸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잖아요? 내가 누군가 미워하고 있다 할지, 또한 내가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다고 할 때, 우리 마음에 성령께서 불편함을 줘요.
③ 금향단은 하나님께로 드려 올려지는 찬양, 기도, 예배입니다. 계시록 5:8에 보니까 천사들이 와서 금대접에 향과 기도를 받아 갑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향은 사람이 맡거나, 사람의 향수를 위해서 만들면 하나님 앞에서 끊쳐지리라고 그랬어요.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예배 찬양은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죠.
우리 총회에서 이런 예식을 할 때에 용어를 바꾸라고 그랬잖아요? 결혼예배가 아니고 결혼예식, 회갑기념 예식입니까, 예배입니까? 심지어는 출판기념예배, 이런 것도 하잖아요? 박사학위취득기념 예식이에요, 예배예요? 예배라는 개념을 쓰지 못하게 한 이유가 무엇이에요? 예배는 누구한테만? 사람한테 돌리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이런 것은 아주 성경적으로 잘 규명한 것 같아요. 전적으로 이 향은 하나님을 향해서만... 사람이 맡기 위해서나, 자기 몸에 향품으로 쓰기 위해서 하면 끊어진다는 거예요.
★ 생명의 성숙 - 지성소 : 교통의 삶
- 지성소 : 속죄판(시은좌), 그룹, 언약궤
나를 이끌고 가는 나의 언약궤
① 감추어진 만나 - 공급원
② 아론의 싹 난 지팡이 - 영적 권위
③ 돌비 - 삶의
⋅ 하나님을 섬기는 삶 : 예배
⋅ 사람들을 섬기는 삶 : 사랑, 존대
자.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세 가지가 있어요.
1) 지성소 안에 속죄판(贖罪板), 시은좌(施恩座)라고도 하지요. 속죄판이 있고, 그 위에 그룹이 있고, 언약궤가 있지요. 지성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에요. 하나님을 배알하는 장소지요. 그래서 가지고 들어온 피를 속죄판에 뿌려요. 그러면 백성들의 죄를 사함 받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내가 너희를 만나겠다.”할 때 두 군데를 얘기하셨지요. 하나는 여기 ‘시은좌’이고 또 하나는 ‘번제단’입니다. 피가 있어야 하나님 만난다는 거죠. 번제단에 뿌려진 피는 개인들의 죄를 속죄 받기 위해 뿌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리고 일 년에 한 번만 백성을 위해서 피를 뿌리고, 일 년에 한 차례만 속죄판에 와서 백성을 위해서 피를 뿌리죠. 그러면 백성들의 죄가 사함 받습니다. 이것을 ‘은혜의 보좌’라고 그러지요. 히브리서 4:16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할 때의 바로 ‘시은좌’가 ‘은혜의 보좌’입니다. 이것은 언약궤 위에 있는 속죄판을 말합니다. 지성소에 들어갈 때 ‘내가 죄인입니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야 됩니다.
2) 둘째, 그룹(Cherubim)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그룹이죠. 그 영광을 우리가 뵙게 되고,
3) 언약궤에 가면, 언약궤 안에 세 가지가 있어요. 감추인 만나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돌비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이런 언약의 마음으로 나아가는 내용입니다. 자, 언약궤 안에 있는 세 가지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① 첫째 감추인 만나 - 언약궤에까지 들어왔다가 나가는 사람이 누구예요? 구약으로 말하면 대제사장이지요. 구약에서는 유일하게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만 들어왔어요. 그것도 얼마나 엄격하게 제한을 했는지 몰라요. 그 대제사장의 복장을 보면 에봇 끝에 석류모양의 종을 달았어요. 우리로 말하자면 레이스(lace) 다는 자리지요. 이 종은 소리가 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지성소 안에 들어갔는데 대제사장이 들어가서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가지고 죽어요. 그러면 시체 꺼내려고 들어갔다가는 또 죽어요. 그렇게 지성소는 무서웠어요. 그래서 에봇 허리끈에다가 리본 같은 것을 길게 달아요. 이렇게. 성소에서 일반 제사장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방울소리가 안 들리면 죽은 줄 알고 뒤에서 당기는 거예요. 그러면 “어~ 나 살아있다. 가만히 있어라.”라고 하면, 가만히 계속해서 방울 소리만 듣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지성소는 무서웠어요. 뭘 의미하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출발은 은혜로 출발합니다. 그 다음은 우리가 하나님과 코드를 맞추는 거예요. 사람을 창조할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거든요.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우리를 창조했거든요. 타락을 해가지고 우리가 무너지니까 할 수 없이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거예요. 그래서 자격을 부여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거지, 너희들이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고 봐 주는 게 아니에요. 이게. 그래서 복음은 뭐냐? “예수님이 내려오셨다가 예수님이 올라가셨다.”고 하는, 하늘로 올라간 자는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 “내리셨던 그가 곧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라.” 어제 우리가 배웠죠? 내려오실 때는 누구를 모시고 내려왔어요? 하나님, 구원, 영생을 갖고 왔단 말이에요. 이렇게. 그 영광을 모시고 왔어요. 그리고 올라가실 때는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아 데리고 올라가셨다는 거예요. 우리를 구원받고 하나님의 종자를 받은 사람들을 훈련시켜서 다시 지성소 수준으로 끄집어 올리는 거예요. 신약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하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왕 같은 제사장은 ‘어랏차차’하면서 휠체어 (탄 사람) 일으키고, 죽은 사람 살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수준이 무슨 수준? 대제사장의 수준이 된다는 거예요.
제사장은 반드시 레위기를 공부해야 되요. 레위기를 모르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을 모르는데... 제사 법도를 알아야 되요. 성경에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출애급기에도 성막 만들 때도 그랬고, 민수기에도 그런 부분이 많이 나오고, 레위기에도 고가 몇 규빗, 광이 몇 규빗, 뭐 판자는 어떻게 하고... 이것을 왜 자세하게 써 놓았어요?
쉬운 질문을 합니다. “평신도를 위한 겁니까? 제사장을 위한 겁니까?” 제사장을 위한 거예요. ‘예수 믿고 구원받읍시다.’하는 사람들은 이걸 보면 잘 안 보여요. 자기 얘기가 아니잖아요? 양복점에 가니까 이렇게 두꺼운 책이 있어요. 재단은 어떻게 하고... 이 책을 주면 관심이 있어요, 없어요? 줘도 봐요, 안 봐요? 왜 그래요? 그 책은 재단사를 위한 거지요. 왜 성경이 재미가 없느냐? 교인들, 일반 평신도들, 제사장 mind가 없는 사람들은 너무 어려워요,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제사장들은 이게 너무너무 귀한 자료예요. 이게. 이거 보고 연구하는 거거든요. 이것은 비전이예요. 비전... 하나님의 성령께서 신약시대에 제사장들이 많아질 것을 아시고 자세하게 이런 놀라운 기록을 남겨 놓았어요. 지도자의 수준이 평신도 수준이면 볼 필요도 없어요. 요한복음 3:16 가지고 평생 우려먹고 사는 거예요 그냥.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하면서 시사 이야기도 좀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좀하고... 이렇게 하면 재미있잖아요? 그러면서 슬슬 웃어가면서 한 세월 살다가 죽은 다음에 좋은 데 가면 좋지요 뭐. 그것이 복음입니까? 이 사람들은 지성소로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러면... 수준이 마당에서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이지요. 맨 날 죄 사함 받고 구원 받는데 감사해야죠, 뭐... 이건 제사장이 아닙니다.
제사장은 뭐냐? 제사장은 씻음을 받는데, 죄만 씻어서는 안 되고, 물로 내면(內面), 자아를 씻어야 되요, 자아를... 자기 왕국 세우면 큰일 나는 거예요. 부부가 싸웠어요. 그 중에 한 사람만 제사장이 있으면, 제사장은 자기를 내려놓는 거예요, 너 세례 받았잖아? 너 자기 부인(否認)하겠다고 결단했지? 그럼 네가 양보해... 제사장은 죽었다 깨어나도 싸우지 못해요. 왜요? 세례 받을 때 약속을 해 버렸거든요. 내가 아닌 그리스도를 위해 살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자기가 손해보고 양보하는 거예요. 그냥. 떡상 위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등잔대 위에서 하나님의 비침을 받고 향단에 가서 하나님을 배알할 수 있도록 온전히 하나님께 코드를 맞추고 “O.K. 들어와라” 하면 들어가서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거예요. 속죄판에서 죄를 씻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자기를 비쳐보고 언약궤 앞에서 세 가지를 확인하는 거예요.
지금 내가 누구 얘기하고 있어요? 제사장 얘기예요, 평신도 얘기예요? 사실은 신약시대에는 평신도라는 개념이 모호한 개념입니다. 우리를 다,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그 육체가 찢어질 때에, 휘장이 찢어지면서 우리가 다 지성소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평신도란 말은 사실은 모호한 개념입니다. 그러나 굳이 사용해야 된다면 제사장 권위를 빼앗긴 사람들, 구약의 엘리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잃었죠? 제사장이면서 제사장의 권위를 잃어버렸던 사람, 홉니와 비느하스 같은 사람, 왕관을 잃어버린 사람, 장자권을 잃어버린 사람, 그런 사람들은 부를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평신도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원래는 다 우리가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어요. 그러니까 성경의 수준이 낮은 수준이에요, 깊은 수준이에요? 깊은 수준이죠.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책입니다. 회사에서도 leader급으로, 중역으로 올라갈수록 회사의 기밀 사항을 많이 알고 있어요. 아랫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어요. 군대도 마찬가지죠. 장교들은, 더 높은 장교들은 더 깊은 비밀을 알고 있어요. 성경은 open시켜 놓았어요. 예수님도 비유로 말씀하셨잖아요.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귀가 있어도 다 듣지 못한다. 눈이 있어도 다 보지 못한다.” 깨닫는 귀가 있고 보는 눈이 있다는 거예요. 왜 비유로 말씀하셨는가 하면 너희가 다 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내가 비유로 얘기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감추어진 비밀이라는 거예요. 교회론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말씀이 뭔지 몰라요. 그냥 교훈서로 생각해요. 그저 논어 한 구절 얘기하고, 사서삼경 한 구절 얘기하고, 성경 한 구절 얘기하는 그런 수준으로 생각하는 지도자들 많이 있어요. 이건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이건. 그 분이 4대 성인 가운데 한 분입니까? 그 분이... 그런 차원에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이 비밀을 못 보는 거예요. 어떤 분이 저 보고 그러더라고요. 박 목사는 죽으면 뇌를 좀 분석해 보아야 된다고요. 예수 믿고 천당 가고 요한복음 3:16만 알면 되었지, 창세기 출애급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배워서 뭐할 거냐고요? 교인들 그렇게 가르쳐서, 머리 아프게 할 거 뭐냐고요. 박 목사 뇌를 연구를 좀 해봐야 할 사람이라고 그러더라고요. 내가 대답은 안 하고 웃었지만, 내가 속으로 당신 뇌를 조사해보아야 되겠다. 아니, 하나님이 어련히, 무슨 성서공회 돈 보태주려고 이렇게 두껍게 했어요? 안 닳아지게 가죽까지 입혀 가지고 말이에요. 이것은 평생, 평생 연구해야 할 책이에요. 하나님은 지구에 있는 모든 공간과... 찬송가에 얼마나 멋있는 가사가 있어요? “바다를 먹물 삼고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도 그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데... 겨우 몇 년, 2~3년 공부해가지고 하나님 안다고 떠들어대는... 그것 아닙니다. 깊이 연구하고 더 묵상하고, 더 기도하고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먼저 “성숙한 선배들과 어르신들이 평생 목회하면서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목사님께는 어떤 은총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까? 그걸 제게 전수해 주십시오.” 이런 영적 질서가 우리 교회 안에 딱 잡혀야 되요. 요즘 춘추전국시대예요. 어른도 없고, 애도 없고, 질서도 없고, 처음 목사 안수 받을 때 노회 가면 참 재미있었어요. 어르신들이 계셔가지고, ‘어흠’하면 다 조용했어요. 요새는 뭐 앤지 어른인지 그냥 나와 발언한다고 마이크 잡고 떠들어대고...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질서도 없고, 위아래도 없고, 그냥. 우리 시대가 그래요. 우리 시대가. 옛날에 대가족제도 시절에는 어르신들이 가르쳐주신 것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 것이 우리 목회자 세계에도 있거든요. 한 세상을 사신 분들이 30~40년 목회하면서 얻어진 그 지혜가 얼마나 크겠어요? 나이 70인데, 아직 정정한데 ‘물러나라’ 그러고, 그 어른들 할 일이 없어 그냥 낚시나 하러 다니고, 그냥. 참 안타까워요, 그런 것들이... 노회에 그런 컨설팅회사를 만들어 가지고 은퇴한 노인들 다 모셔가지고 후학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구원의 문 들어가서 씻는 정도로, 피로 씻는 정도로 일생을 마치는 사람이 있고, 그 안에 들어가서 세례를 받고, 자기를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성소의 공급을 받고, 돌아 나와서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고, 더 깊은 데 지성소까지 들어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배알(拜謁)하고 그 분의 대행자가 되어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고, 질이 다릅니다. 하늘의 원본을 가져다가 그대로 땅에 ‘모델 하우스’ 만들어 놓은 것이 성막이잖아요. 안 가 봐도 저는 어려서부터 제 주변에는 그런 분들이 많았어요. 갔다 왔다. 뭐 보고 왔다 그래요. 그래서 제가 그런데 관심이 있어 계속 연구를 했어요. 성경을 보는데 보고오기는 왔는데, 어디 귀퉁이 보고 와서, “뭐 금이 많더라, 꽃나무가 많더라.”라고 말한 사람들도 있고... 모세 어르신보다 더 많이 본 사람이 없어요. 정확하게 봤어요. 안 가 봐도 나는 그 동네를 훤히 봐요, 훤히. 성막이 그거거든요. 그곳에 가서 저 뜰에 있을 사람이 있고, 아버지 가까이에 가서 겸상해서 나의 잔치에, 나의 식탁에 참여하라고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의 대우를 받는 사람이 있다니까요.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와서 나의 잔치에 참여해라.” 아버지의 식탁 제일 가까운 데 가서 식사할 사람들이 있어요. 같지 않아요, 우리가... 입학이야 똑 같이 했지만 졸업할 때는 다르잖아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에요.
언약궤 안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감추인 만나, 둘째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셋째는 돌비입니다. 감추인 만나는 “40년 동안에 내가 너희를 어떻게 먹였느냐?” 양식은 내가 준다. 내가 너의 양식이고, 내가 너의 공급원이고, 내가 너에 보장이다. 적어도 네가 나를 대행해서 제사장으로 살려면 빵 문제에는 얽매이지 마라. 그것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누가 어디서 얼마 받고 그런 것 헤아리지 말고 내가 너의 공급원이 될 터이니까. 너 이거 확인하는 거예요. 빵 문제 해결 되었습니까? 우리는 많이 받아도 섬기고, 베풀고, 살리는 데 쓰기에, 탐욕을 위해서 물질을 버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는 지성소에 들어가서 감추인 만나를 보면서 “나의 공급원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만족은 하나님입니다.” 이거 고백할 수 있어야 제사장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안 받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받아도 이번에 어느 어르신이 80억 내놓았잖아요. 장학금하라고, 야! 원래도 훌륭한 어른이지만 달리보이더라고요. 우리가 모이는 이유가 뭐예요? 우리가 복을 받고 능력을 받고 우리가 잘되고 하는 것은 나의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뭐예요? 섬기기 위해서 살리기 위해서... 우리는 무소유(無所有)가 아닙니다. 유소유(有所有)입니다. 그 대신 이 땅을 우리가 책임진다. 우리가 왕이고 제사장이거든요. 베풀어야 되거든요.
② 둘째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이것은 영적 권위입니다. 민수기 17장에 보면 고라 자손들이 반역을 일으키잖아요? “너희만 기름 부음 받았느냐? 우리도 레위지파고, 우리도 기름부음 받았다. 왜 너희들만 잘 난 체 하느냐?”하며 반란을 일으켰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12지파의 지팡이를 가져와라 해서 지팡이를 다 세우고 레위 지파의 지팡이는 아론의 지팡이를 대신해서 지팡이를 세웠지요. 자고 났더니 잎이 나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가 맺힌 지팡이는 아론의 지팡이였어요. 그러나 나머지 11지파의 지팡이에서는 아무런 표가 나타나지 않았어요. 이때 나온 유명한 말이 있어요. “죽은 나무에는 봄이 없다.” 그런 유명한 명언이 거기서 나왔어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제일 화를 내신 때가 언제냐? 이때였어요. 우리 한국 아버지 같았으면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하시면서 된 발음이 많이 나왔을 것이에요. 삼중심판(三重審判)이 내렸어요. 염병(染病)이 와서 싹 죽였어요. 그것도 부족해서 위에서 불이 내려와서 싹 태웠어요. 그것도 부족해서 땅을 싹 갈아가지고 싹 묻어 버렸어요.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렇게 했겠어요? 소돔성을 심판하실 때도 그렇게 안 하셨어요. 노아 홍수 심판 때도 그렇게 안 하셨어요. 이건 뭘 의미하느냐? 정-말 중요한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천사가 와서 하거나 예수님이 또 오셔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진행이 되는데, 사람 지도자를 인정하지 않으면, 사람 가운데 세운 리더를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속사를 펼쳐 나갈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교회 가운데 leadership을 목사님께 주셨으면 목사님의 영적 권위에 다 복종해줘야 합니다. 장로님이 박사학위 더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 영적 권위에 대해 복종해줘야 그 교회 영적 질서가 세워집니다. 우리 시대는 실용주의 시대가 되어서 쓸모 있으면 쓰지만, 쓸모없으면 잘라버려요. 이것은 하나님의 영적 권위하고 전혀 다른 거예요. 자 목사님들이 20명이 모였어요. 그곳에서 만약 대표를 뽑았으면 19사람은 의견 개진을 하다가 결론이 나오면 한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민주주의 훈련이 잘 안 되어 있어요. 회의 결론을 난 후도 또 뒷소리를 해요. 이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leadership은 한 사람에게 줘요. 가정에 가장은 누구예요?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지면 가정은 다 무너져요. 엄마가 대신할 수가 있지 않나? 천만의 말씀, 아버지가 안 계시면 모르지만 아버지가 계시는데 엄마가 leadership을 가지면 가정이 무너져요. 애들이 다 정신적으로 혼란을 느껴요. 무능해도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해 주어야 해요. 아주 어려운 얘기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누구에게 이 공동체의 leadership을 주었느냐? 모세만 똑똑했겠어요? 250명 족장들 가운데 모세보다 더 잘난 사람이 없었겠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leadership을 모세에게 주었으면 모두가 모세의 leadership에 복종을 해 주어야 되요. 의견 개진은 하지만 마지막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어요? 모세에게 있는 거지요. 모세는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께 묻고 백성들에게 물어야 할 것은 백성들에게 물으면서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사역을 해야 되기 때문에...
얼마 전에 네팔에 우리 신학교를 세우기 위해서 교회 대표 몇 분하고 저희 교회 영어예배에 사역하시는 세슨 목사님이란 분과 가족들하고 네팔을 가게 되었어요. 현지답사를 하고 상황 조사를 하는데 우리 가시는 분들이 네팔에 가서 선교하신 지 10년이 넘은 분하고 연결이 되었어요. ‘네팔에 오면 제가 좀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듣던 세슨 목사님의 얼굴이 하얗게 변한 거예요. 자기는 못 가겠다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하니까? 그럼 그 사람이 다 알아서 할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너 무슨 얘기하냐?” 그랬더니. 그 분이 이런 이야기 하는 거예요. “leadership은 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네팔에 10년 살았다고 ‘이리 가자 저리 가자.’ 하고, 내가 호텔 예약 다 해놓았는데, ‘이 호텔이 좋습니다’ 하면 자기가 어떻게 되냐”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걱정하지 마라. 내가 교육시켜서 보낼 테니까 염려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고서는, 그리고 같이 가신 실무진에게 명확하게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는 이 팀에 팀장은 이 세슨 목사님이십니다. 그곳에서 선교사님이 마중을 나와서 삼일 동안에 동행을 해도 이 분의 leadership에 도전을 하거나 다른 얘기하면 절대 안 됩니다. 철저하게 그 분이 이 세슨 목사님의 질서 하에 들어오겠다고 하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 분이 안 간다고 그럽니다.”라고 하니, 아, 염려하지 말라고 하며 그대로 지키겠다고... 그러고 그 선교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절대 무리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전화를 받고 갔다 왔습니다. 다녀와서 제가 물어 봤습니다. 어떻게 leadership에 문제가 생겼는지 물어봤더니, 같이 가신 분들이 너무 훈련이 잘 되어 가지고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제가 무슨 얘기하는지 이해가 되지요? 그러니까 누가 높으냐, 낮으냐의 문제가 아니고 이 팀의 leadership을 하나님이 누구한테 주었느냐에 따라 내가 더 어른이어도 하나님이 저 분을 세웠다 하면 나는 그 밑에 들어가야 되요. 이것을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이거든요. 그런데 교회 안에 이런 질서가 지금 다 무너져 버렸어요. 개척 1세대 때는 문제가 없었어요. 목사님이 개척을 했기 때문에 권위가 있잖아요. 그 개척하셨던 목사님이 물러나가시고 당회가 목사님을 청빙하게 되었어요. 결정할 권한이 당회에 있다 보니까 이제는 거꾸로 되어 버렸어요. leadership이 거꾸로 되어버렸어요. 당회가 키를 잡고 있고, 목사는 고용인이 되는 거예요. “월급 줄게, 너 우리 말 들어주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 “말 안 들으면 사례비 주지 않겠다. 청빙하지 않겠다.” 이러다 보니까 leadership에 혼란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서 이 공동체에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야 할 일에 신경을 써야 되는데, 이 사람들의 비위 맞추는데, 그것도 또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요. 그런데 파워 게임을 하는 거예요. 이것이 현실이 되어 버렸어요. 하나님은 아주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당회의 기능은 목회자가 일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종으로서 일할 수 있도록 모든 주변 여건을 정리해주고 지원해주는 역할을 해야지, 위에서 조종하거나 control하는 일을 하면 leadership에 큰 혼란이 와 버립니다. 이런 것들이 이 시대에 가치관과 혼합이 되어가지고는 이게 하나님의 공동체인지, 무슨 파워게임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에요.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가운데 주기철(蘇羊 朱基徹, 1897-1944) 목사님의 스승이 조만식(古堂 曺晩植, 1883-1950) 장로님 아닙니까? 오산학교 출신인데, 어느 날 조만식 장로님이 예배 시간에 늦었어요. “장로님 거기 서세요.” 예배 끝날 때까지 그곳에 세웠다고 하잖아요. 요새 이런 일 생기면 어떻게 됩니까? 몸이 근질근질하죠. 수(首) 장로님인데... 존경받는 어르신이데, 그런데 그 조 장로님이 무릎을 꿇고 “목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라고 사과를 했다고 그러잖아요. 이게 하나님 나라의 질서라는 거지요. 나이도 많고 자기 제자지만, 하나님이 주신 영적 권위를 인정하고, 그 말씀하심 앞에 무릎을 꿇는 그 자세. 그러니까 조만식 장로님은 역사에 빛나는 위인이에요. 지금은 우리가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또 목사님들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대표로 뽑았든 간에 어느 공동체에 한 분을 대표로 세웠으면 나머지 분은 그 분을 지원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쟤, 쟤, 내가 키웠는데...아. 저.” 이러면서 눌러버리는 거예요.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어른 되었다고 큰소리치느냐?” 이러면서... 또 한 쪽에서 “야야. 모여, 모여.” 해 가지고 갈라서 나가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가 없는 거예요.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뭐냐? “너 제사장인데 땅에 세운 영적 질서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예요.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앞에, 이 권위 앞에 복종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거예요. 자 아들이 목사고, 아버지가 장로님이에요. 교회가 가정의 질서를 따라가야 됩니까, 교회 질서를 따라가야 됩니까? 그겁니다. 바로. 그런 것들을 복종할 수 있는 사람이 제사장이라니까요. 너 하나님 앞에 결단할 수 있겠느냐는 거예요. 이걸 뭐하러 집어넣었겠어요. 계속 가지고 다녔잖아요.
③ 셋째 돌비에요. 두 쪽으로 되어 있지요. 하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하나님은 예배의 대상입니다. 이용의 대상이거나 무슨 수단이나 방법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은 존경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면 큰일 나죠. 둘째는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겠다. 이게 목회 철학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을 늘 존중하며 높이며 경배하는 것과 사람을 소중이 여기는 이 철학을 가지고 내가 제사장 역할을 감당하겠습니다. 이런 다짐입니다. 이게. 보통 우리가 지성소에 산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산다는 것은 “내가 지성소의 삶의 원칙들을 accept하고 그대로 하기로 동의합니다.”라고 도장을 찍는 것을 뭐라고 말하냐 하면 지성소의 삶을 산다고 해요. 기도하면 자기는 뭘 본다, 그건 현상이에요 현상. 그 내용을 들어가서 철학을 보면 “이런 것이 내 사상이고 내 삶이고 내 원칙이다.”라고 선언하는 사람이 지성소의 삶을 사는 사람이에요. 그때 하나님의 형상과 왕권을 가지고 나온다는 거지요.
★ 예수 그리스도를 누림의 차이 - 공간적 의미의 차이
(1) 뜰 -
(2) 성소 - 공급 받음
(3) 지성소 - 그의 영을 좇음 ( )
자. 백성과 제사장과 대제사장의 차이가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누림의 차이.
공간적인 의미를 볼 때 뜰은 씻는 곳입니다. 피로 씻는 거예요. 죄에 문제만 해결하고 끝나는 거예요. 뜰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그러나 성소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님의 의로 채움 받은 사람이에요. 말씀으로, 성령으로, 하나님의 의로 채워진 사람이에요. 그것은 세례, 자기가 부인되어졌을 때,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거예요.
그러나 지성소를 사는 사람은 더 깊어요. 하나님의 영을 좇습니다. 요새말로 하면 코드를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코드가 맞다.
★ 예수 그리스도를 누림의 차이 - 음식의 차이
(1) 뜰 - 만나
(2) 성소 - 진설병, 제물
(3) 지성소 - 감추인 만나 (계 2:17)
음식에 차이가 있어요. 광야를 살면서 음식이 박하다고 늘 불평했는데, 그 사람들이 누군가 하면 뜰만 왔다 갔다 하던 사람으로, 그 사람들은 만나밖에 못 먹었거든요. 그런데 성소 안에 들어간 사람은 음식이 달라요. 진설병을 먹었죠, 하나님이 잡수시던 떡을 먹을 뿐만 아니라 제물을 먹어요, 제물. 그것도 좋은 부위. 기름은 다 잘라서 하나님께 드리고 그 옆에 붙은 제일 좋은 부위를 제사장들이 먹었어요. 지성소에 들어간 사람은 더 깊은 음식이 있어요. 감추인 만나. 하나님을 공급원으로 사는 사람, 하나님이 나의 양식인 사람들,
★ 예수 그리스도를 누림의 차이 - 빛의 차이
(1) 뜰 - 자연 빛
(2) 성소 - 성령의 빛
(3) 지성소 - 하나님의 영광의 빛
그들이 경험했던 빛에 차이가 있었어요. 백성들은 자연 빛, 태양 빛만 가지고 살았어요. 그러니까 밤이 있고, 낮이 있고, 저물어가고, 동이 트고 그랬어요. 낮과 밤이 늘 있었어요. 명암이 엇갈렸죠. 그러나 성소에 들어간 사람들은 밤이 와도 걱정이 없어요. 거기에는 등잔대의 불빛이 있기 때문에. 성령께서 마음을 비추면 어두움이 와도 어두움이 먹히지 않습니다. 성령의 조명이 있기 때문에. 그러나 더 깊은 데 들어간 사람들은 그룹에서 비춰 나오는 영광의 빛이 있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어둠이 없어요. 하나님의 빛으로 살지요. “우울하다, 슬프다, 죽고 싶다.” 이게 너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백성입니까, 제사장입니까, 대제사장입니까? 백성입니다. 어두운 밤이 오고, 시련이 와도, 밝게 기쁘게 희망을 붙잡고 사는 사람은 누구에요? 제사장이나 왕 같은 제사장이에요. 달라요. 내면에 빛이 있기 때문에. 밖에서, 환경에서 오는 위로가 아니라, 교인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든, 사람들이 나를 평가할 때 뭐라고 하든 간에 나는 내면의 빛, 내 주님으로부터 오는 빛, 하나님의 영광, 약속으로부터 오는 빛 때문에 사는 사람은 제사장들이에요. 옷은 제사장 가운 입었는데 속은 평신도가 많아요, 백성이 많아요.
★ 예수 그리스도를 누림의 차이 - 섬김의 차이
(1) 뜰 - 자기 자신을 돌봄(피동적)
(2) 성소 - 하나님과 사람을 섬김
(3) 지성소 - 하나님의 가슴(교회와 열방)을 섬김
섬김의 차이죠. 뜰을 왕래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돌볼 뿐입니다. 자기문제, 천당 가는 문제, 용서 받는 문제뿐이에요. 그건 자기 혼자 못하고 도움을 받아야 해요. 피동적이지요. 그러나 성소에 들어간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알할 뿐 아니라 사람을 섬겨요. 남을 도울 수 있죠. 또 이 사람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씻음을 받아요. 지성소까지 들어간 사람은 하나님의 가슴을 알아요. 하나님의 가슴은 뭔지 알아요. 그의 나라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염려를 해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늘 고민합니다. 이 시대의 하나님 나라는 교회입니다. 교회. 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키우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 사람들을 돌봐주고, 그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갈망을 가진 사람들은 깊은 곳에 들어간 사람들이에요. 하나님과 코드를 맞추는 것이지요.
★ 적용질문
(1) 나의 매일의 관심사는 어디에 있는가? - (유월절, 세례- 시내산, 성막)
(2) 나는 어디에 속한 삶을 살고 있는가? - (뜰, 성소, 지성소)
(3) 나는 매일 성막예배를 드리는가?
(1) 나의 매일의 관심사는 어디에 있는가?
피, 피에 있는 사람이 있어요, 피. 또 물, 자기 부인에 있는 사람, 또 공급받는 데 있는 사람, 더 나아가 하나님의 가슴에 있는 사람. 차이가 있죠. 출애급기 전체의 구조를 보면 이렇게 되어있어요. 유월절, 피죠. 세례, 광야는 뭐예요? 물이죠. 그 다음 시내산 성막은 뭐예요? 하나님의 영. 요한일서 5장에 보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세 가지라고 했어요. 세 가지 증거를 가진 자가 세상을 이긴다고 그랬어요. 뭐예요. 피와 물과 성령의 증거를 가진 자라고 그랬어요. 출애급기 구조도 피, 물, 성령으로 되어있고, 성막의 구조도 피, 물, 성령으로 되어있어요. 요한일서에서도 피와 물과 성령. 요한복음 3장에서 말하는 “물과 성령으로” 그 말은 이미 구원 받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데,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사람. 이 사람이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갈망입니다. 이게. 역사의 진행은 지금 하나님 나라로 가고 있어요. 구속사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 볼 수 있다. 살 수 있다.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천당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2) 나는 어디에 속한 삶을 살고 있는가?
, 그저 양심, 죄. 이런 문제에 급급한 사람들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야 죽건 말건 교회가 어떻게 되건 말건, 하나님께서 자존심 상하심에 대하여 관심이 없어요. 오직 자기 천당 가고 자기 복 받고에만 관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뜰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소(聖所)는 하나님으로부터 공급을 받고 하나님의 것으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애쓰는 사람, 복의 근원, 복의 유통자(流通者). 생명의 부양자(扶養者), 다 이게 제사장(祭司長)들이에요. 성소에 들어간 사람들이예요.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간 사람들은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알아요. 시대의 흐름을 알고, 다니엘서를 제가 공부하면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몰라요. 예수님 오시기전 6~700년 전 사람이 초림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장차 종말에 일어날 수천 년 이후에 일어날 일까지 다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준 거예요. 하나님이 다니엘을 얼마나 신뢰했으면, 당신이 펼칠 구속사의 비밀들을 그에게 보여 주셨겠어요? 야! 사람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구나. 자식이 여러 명이 있는데, 아버지나 어머니가 성장한 자식들 가운데 살아왔던 가정의 역사를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줘요? 그것은 신뢰 받은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펼쳐나갈 구속사의 비밀을 이 땅의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셨다. 굉장한 사람 아닙니까?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만진 사람이 다니엘이었고, 바울 사도였고, 사도 요한이었죠. 비밀을 알잖아요? 모세도 마찬가지. 이런 구속사적인 사람들이 있어요. 그저 자기 밥 그릇 챙기느라고 자기 명예, 자기 이름... 그런 사람이 있고, 큰 걸 보는 사람이 있어요. 이게 그릇이 다르죠. 이게.
(3) 나는 매일 성막 예배를 드리는가? 성막 예배는 어떻게 드리느냐?
좀 있다 설명하겠습니다.
나의 구속사 점검하기
하나님이 준비시킨 나의 과거
1. 구속사를 위해 하나님이 배열해 주신 환경은? (1-2)
1) 나의 가정교육 2) 학교교육 3) 광야훈련
2. 구속사를 위해 나이 준비과정들 (3-4)
1) 나의 성령체험, 소명
2) 주권포기 (자기 부인의 출발)
3)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세 가지 표지는?
3. 나의 영적 전쟁의 역사는? (5-11)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목자로서 싸웠던 영적 전쟁의 역사는?
(1) 1장 2장을 볼 때 구속사를 위해서 하나님이 배열하신 환경은 어떠했는지? 자기 문제를 보는 거예요. 하나님은 내 가정을 통해서 나에게 가정교육을 어떻게 하셨는지, 또 학교 교육을 어떻게 받게 했는지, 또한 광야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서 어떤 광야 훈련을 받았는지를 지도자인 저와 여러분이 다 자기를 점검해 보아야 해요. 하나님이 사역할 수 있도록 적합하도록 준비시켜 주신 거예요.
(2) 3장 4장 구속사를 위한 나의 준비과정들.
나의 성령체험, 소명은 어떠했는지? 또 신발 벗는 작업. 언제부터 자기부인, 자기포기를 했었는지,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세 가지 표지가 있는지. 뱀 잡는 능력, 육성을 처리하고 세상을 조종하는 능력이 내게 있는지, 점검해 보는 거죠.
(3) 5~11장 나의 영적 전쟁의 역사, 하나님이 나의 목자로서 싸웠던 어떤 영적 전쟁의 역사. 우리가 이력서를 쓸 때, 자기 이력을 쓰잖아요.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디서 목회했고 이렇게 쭈욱 나오잖아요. 영적인 프로파일은 뭐냐 하면 내가 목자로써 영혼들을 세우기 위해서 어떤 투쟁을 해서 어떻게 승리했는지 이걸 내 놓아야 되요. 세상의 프로파일은 잘 만들면서 영적 프로파일이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교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어떻게 했으며... 이혼할 가정들을 어떻게 살렸으며, 탈선한 자녀들을 어떻게 상담해서 돌보아 돌이켰고, 교인들을 어떻게 훈련시켜서 군대로 세웠으며 이런 영적 프로파일이 있어야 되요.
나의 목자로서의 성실한 사역
4. 유월절 (12)
1) 내가 전도한 사람은(나의 피 자녀)?
2) 나의 사역의 현장에 유월절이 있는가?
3)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성실하게 양육하며 돌봤던 사람은?
4) 유월절은 새로운 시작이다.
유월절에 경험하는 네 가지 변화 중 어떤 항목들이 그대에게 나타나는가?
(새로운 신분, 새로운 경영, 새로운 목적, 새로운 삶)
5. 세례 (13-14)
13장 - 신앙의 orientation을 제대로 심어주었는가?
14장 - 하나님이 경험시킨 세례, 내가 선택한 세례
자. 12장 이후는 내가 이제 목자로써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유월절을 경험하게 해주어야 되요. 내가 전도한 사람에 피 자녀가 있는가? 사역의 현장이 유월절에 있는지 우리 교회에 들어오면 다 구원받고, 피에 의해 씻음 받은 사건을 다 경험하게 해 주는 거죠?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성실하게 양육하며 돌봤던 사람은 누구인가?
유월절은 새로운 시작이다. 유월절을 경험하는 네 가지 변화 중 어떤 항목들이 그들에게 나타났는가? 새로운 신분, 새로운 경영, 새로운 목적, 새로운 삶. 어제 우리 공부 다 했죠? 이런 것들을 교인들이 다 경험하고 있는지? 그런 출발을 갖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거죠?
13~14장은 세례입니다. 13장 신앙의 orientation을 제대로 심어주었는가? 구원 받고 나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님에 대해서 어떤 결단을 하는 건지? 어떤 것을 드리는지? 죄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 자기 고집이나 편견을 따라가는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가? 그것을 잘 가르쳐 주어야 되요. “이제부터는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이렇게 사는 게 신앙의 생활입니다.” 점검을 해주는 거예요. 가르쳐주는데도, 못 살면 본인 책임이고. 안 가르쳐 주면 지도자 책임이죠.
14장 하나님이 경험시킨 세례, 내가 선택한 세례.
다 보면요. 다 신발을 벗고 하나님에게 항복할 수 있는 꺼리가 있어요. 보면. 그런데 죽었다 살아난 경험이 내겐 참 중요한 경험이에요. 자동차 사고, 뭐 병원에 실려간 사건. 이어령 씨가 최근에 좋은 책을 하나 썼는데 ⌜지성에서 영성으로⌟, 딸의 위기를 통해서 딸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온 이런 것을 써 놓은 거예요. 이 사람이 그때 자기를 내려놓는 거예요. 그 지성인. 이대 교수로 있으면서 “그대는 아는가?” 그 분 에세이가 아주 그냥 제목이 야시야시해요 그냥. 책 제목 다 잊어버렸네. 그냥. 그 때는 다 탐독했었는데. 하여튼 그 에세이가 참 재밌어요. “무슨 재미로 사나?” 뭐 그런 것도 있고, 하여튼 그 문장 표현력이요. 여대에 있는 교수 같아요. 꼭 그냥 야시야시하게 지나가는데 아주 그냥 간지러워요. 그냥. 아주 그 때 안병욱 교수, 김영욱 교수, 이어령 교수, 다 에세이(essay)들이 hit치고 그랬잖아요? 그 때, 그런 사람이 하나님 만나고 나서 어떻게 자기가 변화되어가는 자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에게 항복(降伏)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다시 펼쳐가는 그게 세례 사건이란 말이에요. 다 그 교만했던 사람이 결국 꺾인 것은 그 사건 때문이었어. 하나님이 누구에게 이런 것을 준다니까요. 목회가 안 되는 것도 세례의 경험으로 올 수 있어요. 열심히 했는데 배신을 당했다. 그것도 세례 사건일 수 있어요. 하여튼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홍해 앞에 나를 세워 놓고 어떡할 거니? 물어보셔요.
“하나님이. 하나님 나 도와주세요. 나 이렇게 살 수 없어요.”
무릎 딱 꿇고 항복하면 그 다음부터 이제 새로운 인생이 출발 되잖아요? 그래서 피에 의해서 거듭난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목사가 되려면 지도자가 되고 제사장으로 살려면 또 무슨 것이 중요해요? 물에 의해서 새롭게 거듭난 경험도 있어야 되요. 그거 없으면 ‘자기 복음’ 가지고 산다니까요. ‘자기 철학’ 가지고. 예수님 이름 파는 사람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목사가 그런 것을 경험하면 교인들도 마찬가지 어떤 위기가 왔을 때 이건 세례사건이다. 당신 내려놓으라는 하나님의 calling이다. 빨랑 내려 놓으셔야 됩니다.
신발 벗으십시오. 이거 자기 죽여야 됩니다. 포기(抛棄)해야 됩니다. 이거 극복(克服)하셔야지 새롭게 거듭납니다. 이것을 guide해 줘야 되는데, 목사가 거듭나지 못했으면 어떻게 이걸 도와주겠어요?
6. 광야훈련 (15-18)
15장 수르광야 - 좌절, 실망스러운 삶
16장 신광야 - 경제적 어려움, 근본이 무너질 때
17장A 르비딤광야 - 삶의 의미가 무너질 때
17장B 아말렉 경험 - 방해하는 사람, 원수를 만났을 때
18장 모세의 leadership, mentorship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런 훈련의 삶을 통하여 자신이 갖고 있던 철학을 내려놓고
어떤 하나님을 만나게 했는가?
15장 수르 광야 - 좌절 실망스러운 삶,
16장 신 광야 경제적인 어려움 근본이 무너질 때
17장 내 믿음 광야 삶의 의미가 무너질 때,
17장 후반부 아말렉 경험 방해하는 사람 원수를 만났을 때,
18장 모세의 leadership, mentorship에 문제가 생겼을 때.
교인들은 이런 광야를 다 경험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미 광야를 통과한 지도자라고 하면, 이런 훈련의 삶을 통하여 자신의 철학을 내려놓고 어떤 하나님을 만나게 했는가?
이 광야가 다 누구를 찾기 위한 통로라고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통로.
그러니까 목사는 답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저렇게 혼란스럽고 저렇게 꼬이고 저렇게 dry해지고, 또 leadership에도 이렇게 도전을 하고 이것들이 다 무슨 의미인지, 다 알잖아요. 이제 그거를 잘 guide를 해줘야 되요.
7. 말씀훈련 (19-24) - 진리(원칙) 훈련
1) 말씀을 체계적으로 양육한 사례가 있는가?
2) 그들에게 성전으로 세워지기 위한 10가지 약속을 정하게 했는가?
(사명선언문, 거룩한 삶을 건축하기 위한 10계명, 복음 선포문 만들기)
3) 그는 종교적인 사람인가, 바른 신앙인인가?
19~24장 말씀 훈련입니다. 진리로 말씀을 가르치는 거죠.
1) 말씀을 체계적으로 양육한 사례가 있는가?
반드시 시내산 데리고 가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해요.
2) 그들에게 성전으로 세워지기 위한 10가지 약속을 정하게 했는가? 사명선언문, 거룩한 삶을 살게 한 10계명, 복음 선포문 만들기, 이런 사상이나 표현을 할 수 있는 문장으로 삶의 목표를 설정하게 해줘야 되요. 생각만 하는 것은 금방 지나가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10계명을 돌판에 새겨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써서 기록해야 되요. 중요한 건 기록하라고 그랬잖아요. 아말렉 죽인 사건도 기록하라 그랬고, 또 여호수아서 5장에서 요단강 건너고 나서 돌비석에 세우고 기록하라고 했잖아요. 또 영원히 잊어버리지 말 것에 대해서 얘기했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 삶에 절대로 잊어버려서 안 될 원칙들을 문장으로 기록하게 해줘야 되요. 그리고 그것을 써 붙여놔야 되요, 저는 현수막으로 만들어서, 나에 사명선언문. 그래가지고 현수막 만들어서 붙여놨어요. 이런 구체적인 작업이 필요한 거예요.
3) 그는 종교적인 사람인가, 바른 신앙인인가? 자기를 성취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처럼. 그들을 우리가 도와줘야 되요.
8. 성막훈련 (25-40)
1) 거룩한 처소로 세워져가고 있는가?
① 뜰 - 씻음 ② 성소 - 공급 ③ 지성소 - 교통
2) 지성소 ① 시은좌 ② 그룹 ③ 언약궤
1) 거룩한 처소로 세워져 가고 있는가? 그 사람이 씻고 있는지 하나님으로부터 공급을 받는지, 지성소로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는지를 봐줘야 되고, 또 지성소에 들어갔으면 보좌에 늘 나아가는지, 하나님께 나아가는지 영광의 그 중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예배 가운데, 찬양 가운데,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지.
제일 중요한 것은 언약궤입니다. 그가 정말. 거기서 나올 때 세 가지 언약을 하나님께 다짐하고 나오는지? 그 세 가지가 뭐예요? 만나와 싹 난 지팡이와 돌비를 가지고 나오는지. 그 앞에서 결단하고 나오는지를 목사가 점검을 해줘야 되요.
9.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
나를 이끌고 가는 나의 언약궤 - 사역자로서의 원칙
① 감추인 만나 ② 아론의 싹 난 지팡이 ③ 돌비
자.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 나의 어깨에 지고 가는 언약궤 사역자로서의 원칙을 가지고 있는가?
① 정말 돈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하나님 이용하지 않고,
② 아론의 싹 난 지팡이 - 세우신 영적 지도자의 권위에 내가 복종할 수 있고,
③ 돌비 -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과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역할 것인가? 이것 사역자를 세울 때, 장로님을 세울 때, 이것을 결단시켜야 되요. 정말 이것에 대해서 당신 언약하겠느냐? 이 언약궤 앞에서 정직하게 당신 서약할 수 있겠느냐? O.K. 그러면 Pass. No, 그러면 더 훈련. 그렇게 해야 되요. 이것도 안 해놓고 선거해서 뽑아가지고 이제 들이받는다, 그럽니까?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인데 이게 내 일이 아니고 내가 영광을 얻기 위해 하는 것 아니잖아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나도 하나님의 종이고 당신도 하나님의 종인데 우리 이런 서약 확실하게 말씀 앞에서 하자. 출애급기를 공부하면 이게 보인다니까요. 그도 망하지 않게 해줘야 될 것 아니에요? 죽어라 훈련시켜 놓고는 왜 망하게 하는 일을 시켜요. 안 가르치면 망하는 일을 하고 있죠. 나와 내 가정 내 교인들을 위해서 이거 가르쳐야 됩니다.
10. 왕 같은 제사장으로 나아가라.
1) 승리의 삶을 살도록 점검표를 만들어 매일의 삶을 경영토록 점검표를 만들어 매일의 삶을 경영토록 하라.
2) 모일 때는 제물, 간증, 찬양을 가지고 오도록 하라.
3) 사도행전적인 사역일지를 쓰게 하라.
4) 그들의 사역, 섬김의 결과에 성과가 있도록 도와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나아가라. - 승리의 삶을 살도록 점검표를 만들어 매일의 삶을 경영토록 check-list를 만들어가지고 경영하도록 해줘야 됩니다.
모일 때는 제물, 간증, 찬양을 가지고 오도록 하라. 영적 전쟁터가 삶이거든요. 삶에서 모일 땐 항상 승리의 간증, 찬양을 가지고 오게 해야 되요.
여호와의 군대니까 사도행전적인 사역일지를 쓰게 하라. 사도행전 29장을 다 쓴다고 그러잖아요? 말은 그렇게 하는데 성도들의 삶을 그렇게 살도록 도와주지 못하고 있어요. 그럼 안 되죠. 그들의 사역, 섬김의 결과에 성과가 있도록 도와라. 왜요?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고 있으니까. 성과가 있어야 되요.
재생산의 원리만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
12 제자의 원리 3 제자의 원리
1년 → 12명 1년 → 3명
9년차 → 51억 6천 21년 → 100억의 제자
(10년차 → 619억)
유명한 부흥사
매일 → 1000명에게 복음을 전함
100억의 인구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 27,397년 3개월
자. 우리 시대의 세상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어야 되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는 영화가 있는데 ⌜Pay It Forward⌟라는 영화지요. 그 영화를 보면서 제가 큰 감동을 받았어요. 세상을 정복할 원리가 있구나. 유명한 부흥사가 날마다 1000명에게 복음을 전했어요. 빌리 그래함 목사님도 이렇게는 못했어요. 그런데 날마다 천 명을 만나요. 매일. 오늘 천 명, 내일 천 명, 해서 전 세계 100억으로 잡고, 100억 명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몇 년이 걸리느냐면 27,397년이 걸려요. 27,397년이 얼마나 긴 줄 알아요? 70년을 400일로 잡으면 몇 년이에요? 몇 날이에요? 4x7=28. 28,000년 이 숫자의 개념 아시겠어요? 워낙 억(億)으로만 사니깐 이런 만(萬) 정도는 보이지도 않죠? 우리가 오래 살아봐도 우리가 30,000날을 못 살아요, 우리가. 그런데 하루에 천 명에게 복음을 전해도 한 번씩만 듣게 하는 데도 28,000년이 걸려요. 28,000날이 아니고. 그런데 만약에 12명의 제자가, 예수님의 제자원리의 시스템을 가지고 내가 목회를 해서 내가 1년에 12명씩 번식을 시키면 9년차가 되면 51억 명이 되고, 10년차가 되면 610억 명이 되요. 12명은 너무 과하다 내가 3명만 해보겠다. 내가 일 년에 3명 돌보고, 내년에는 자기 밑에 3명씩을 돌보고 해서 3명씩 번식을, 1년에 3명씩 번식을 시키면 21년이 되면 100억 명의 제자를 만들 수 있어요. 100억 명에게 복음을 전한 게 아니라, 100억 명의 제자를 만들어요.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그랬죠? 제자는 그대로 따라오게 하는 거예요. 세 명으로 시작하는 거 쉬워요, 어려워요? ‘세 명’ 쉽습니다. ‘세 명’ 그거 못하겠어요? 목숨을 걸고 ‘세 명’ 한번 해봐야겠다. 내가 그러고 계속 세 명만 돌봐주는 거예요. 금년에도 세 명, 내년에도 그 사람 ‘세 명’ 하는 거예요. 그 대신 세 명을 키운 다음에는 너희들이 또 세 명을 거느려라. 번식을 하게 하는 거죠. 그렇게 우리가 목적을 가지고 목회를 했으면 20년이면 세계를 뒤집는다니까요. 우리가 철학이 없고 경영 전략이 없었어요. 열심히 목회를 했지만 방법이 부족했기 때문에 세계를 뒤집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목성연(牧聖硏)’의 철학은 뭐냐? 반드시 하나의 책을 읽으면 세 사람에게 전수해라 그거에요. 이게 처음 들어올 때 입회원서의 자격입니다 이게. 트레보의 세 사람만 가지면 21년 후면 전 세계에 하나님 말씀이 높여질 수 있어요. 100억 명을 제자로 만들 수 있어요. 100억 명. 이게 간단한 것 같지만 어마어마한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왜 우리가 사탄에게 세상을 내주고 꼼짝도 못합니까? 전략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어떻게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자존심을 세워드려야지요? 사람한테 맡겨놓았는데 사람들이 비리비리해가지고 딴 생각하고 있고, 딴 주머니 차고 있고, 그러니깐 100년이 지나도 안 되잖아요. 21년이면 끝날 문제를. 저는 이런 것에 대한 비전을, 하나님이 제게 주셨어요. 간단하다는 거죠. 제가 섬겨 드릴게요. 이미 시작됐던 우리 목성연 회원들이 여러분을 섬겨드릴 겁니다. 목적은 하나님 나라. 딴 주머니 차지 말고, 진짜로 돈도 명예도, 무슨 정치적인 목적도 갖지 말고, 정말 복음만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만나보자. 이게 우리 목성연의 철학입니다.
출애급기를 통해 배운 구속사 정리
1. 준비된 목자 만나기 (1-11)
2.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효능 경험하기 (12)
3. 신앙 교육, 세례 교육 (13-14)
4. 나의 십자가 지기 -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15-18)
5. 하나님의 말씀 배우기 (하나님의 생각, 사상, 철학) (19-24)
6. 하나님의 영 안으로 들어가기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25-40
7. 가나안을 누리기, 제사장으로 살기 - 그는 나와 더불어 먹고, 나는 그와 더불어 먹으리라. (신명기 풍요의 개념, 성전의 문제)
총 복습이죠.
첫째 1~11장 은혜죠. 준비된 목자 만나기. 하나님이 목자를 준비하시죠.
12장 예수님 십자가 피의 효능 경험하기. 13~14장 신앙교육, 세례교육
15~18장 나의 십자가 지기.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내가 죽고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야 되죠? 19~24장 그것을 문장화 시키고 논리화 시키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 배우기, 하나님의 생각 사상 철학 25~40장은 하나님의 영 안으로 들어가기.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교통하는 거죠? 가나안을 누리기, 제사장으로 살기.
“나는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신명기에 가면 이런 풍요의 개념, 성전의 개념이 있습니다. “네가 짓지 아니한 성읍을 얻을 것이며, 네가 수고하지 않은 물건으로 가득한 성읍을 가지게 될 것이다.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신다는 거죠.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책임지는 거죠. 이것이 교통입니다.
광야 개념
1. 첫째 광야 - 문제가 꼬임
2. 둘째 광야 - 근본이 흔들림
3. 셋째 광야 - 삶이 무의미해짐
4. 넷째 광야 - 사람의 공격을 받음
5. 다섯째 광야 -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짐
우리 교인들이 시험 들 때 주로 어디에 많이 흔들립니까? 거의 보면 4~5번에서 흔들리죠? “어느 집사 꼴 보기 싫어 교회 나간다. 목사님 은혜가 안 됩니다.” 그러고 나가고.
광야를 미리 공부시켜 놓으면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지성소 개념
1) 속죄판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피의 예배가 있는가?
⋅보혈의 공로 의지하여 문제가 있을 때마다 기도하는가?
2) 영광의 임재
⋅매일 그 거룩한 임재 앞에 자신을 돌아보는가?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대화하며 교제하는가?
3) 언약궤
⋅인격적 만남. 그분과의 살아있는 언약이 있는가?
⋅하나님의 원칙으로 사역하는가? -
우리가 늘 지성소까지 들어갔다 와야 됩니다.
언약궤 앞에서 드리는 나의 제사장 약조
1) 감추인 만나
⋅ 나의 공급자는 하나님이십니다. - 아멘
⋅ 하나님이 주신 만나 말씀으로 힘을 얻겠습니다. - 아멘
⋅ 거룩한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 영리를 목적으로 살지 않겠습니다. - 아멘
2) 아론의 싹 난 지팡이
⋅ 구속사를 위해 세우신 지팡이에 순종하겠습니다. - 아멘
⋅ 목자를 통해 공급받고 돕는 배필 역할을 감당하겠습니다. - 아멘
⋅ 내 목자와 내 양의 인생에 VIP로 섬기겠습니다. - 아멘
3) 돌 비
⋅ 하나님을 예배하며 높이는 일은 내 생애 최고의 사명입니다. - 아멘
⋅ 주께 하듯 이웃을 존대하며 이웃을 살리는 성령의 사역을 감당하겠습니다. - 아멘
⋅ 이 원칙들이 나의 사역의 철학이며 spirit입니다. - 아멘
우리 총회 헌법은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서약하십니까? 그러면, “예. 서약합니다.” 그렇게 해야 되요. “서약하십니까?” “예. 서약합니다.”
여러분 중직자들 훈련시킬 때, 장로님들 훈련시킬 때, 출애급기의 지성소 가지고 훈련시키면. 서약했는데 안 지키면 누구 책임이에요? 본인 책임이고. 서약했는데 서약하도록 안 가르치면 누구 책임이에요? 지도자 책임이죠. 우리가 우리 일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지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돕는 거예요. 아군 폭격하지 않도록 잘 우리가 섬겨야 합니다.
성막예배를 드려라.
1) 구원에 대한 감사 - 문
2) 죄를 씻음 - 번제단
3) 자기부인 - 물두멍
4) 말씀 - 떡상
5) 성령의 조명 - 등잔대
마지막 성막예배 드리는 법, 가르쳐 드립니다.
제가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목사들이 자기 예배를 안 드린다고 해요. 목사들이. 이거 설명하겠습니다. 주일학교 교사가 애들만 가르치고 갑니다. 그 정당한 거예요? 교사들이 뭐라고 그러냐면. “나 예배드렸어요. 애들하고 같이.” 그거 허용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되요? 그건 다른 사람 예배를 돕는 것이지, 자기 예배가 아니에요. 예배의 봉사자지, 예배자가 아니에요. “맞습니까?” “예.” “목사가 예배자입니까, 예배를 돕는 사람입니까? 예배를 드리고 있어요? 예배를 돕고 있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목사님이 예배 인도하는 것은 예배입니까? 예배를 돕는 것입니까?” 잘 대답하세요. 아까 주일학교 교사는 대답 잘하더니, 왜 대답 안 합니까? 예배를 돕는 사람입니까? 예배자입니까? 예배자입니까? 여러분 심각하게 대답하세요. 이거.
어느 날 기도하는데 주님이 이런 감동을 주셨어요. 목사에게 감동이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예배를 돕는 것과 예배드리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 이것을 어떻게 증명해야 합니까? 그러니까 성막을 보라는 거예요. 예배를 돕는 사람들이,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돌보기 전에 먼저 자기 예배를 드립니다. 번제단에 가서 자기 죄 씻고, 물두멍에서 손 씻고, 성막 들어가서 진설병, 등대, 향단 향 지피고, 그리고 나와서 백성들의 예배를 돕습니다. 맞습니까?
목회자의 영성이 시간이 갈수록 죽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예배가 없어요. 하나님을 대면해서 내 죄를 씻고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으로부터 공급 받는, 나와 하나님과의 예배가 없으면, 남 예배 도와준 걸로 내가 채워지지 않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들, 애들 봉사하고 가는 애들요. 나중에 날라리 다 됩니다. 뭘 가지고 가르칠 거예요? 자기가 은혜 못 받고 자기가 하나님 경험을 못하고 있는데 뭘 가르칩니까? 우리 교회에서는 못하게 합니다. 그만두게 해요. 목사가 자기 예배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구약에 봐라, 제사장들이 자기 예배 먼저 드리지 않았느냐? 일주일에 단 한 시간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임재를 기다리면서 드리는 예배, 자기 나름대로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목자가 될 자격이 상실되어 갑니다. 점점 능력이 빠져나가버려요. 처음에는 모르죠. 그것을 나중에는 교인들은 은혜를 받는데 자기는 성경을 읽어도 은혜를 못 받아요. 나중에는 찬양해도 교인들은 눈물을 흘리는데, 목사는 눈물을 안 흘려요. 몇 절을 하고 있는지 그것도 모르고 불러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거. 그래서 고민하다가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다가. 매일 성막 예배, 한 5분도 안 걸려요. 잠깐 돌아보지만, 그러나 가능하면 일주일에 어느 시간, 월요일이 됐건, 토요일이 됐건, 어느 시간에는 신성불가침의 시간을 놔두세요. 특별한 게 아니면 전화기도 끄고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시간을 갖고 있어야 되요. 저 같은 경우에는 매일 자기 전에 성막 예배를 드립니다. 한 5분, 10분 동안 이래도 잠깐 자기를 돌아보는데 이게 1년 2년 되니까요, 엄청난 발전이 되요. 자 어떻게 하느냐?
(1) 문으로 들어가요. 성막문으로 들어가요. 감사합니다. 구원에 대한 감사, 오늘 내게 주신 감사, 나를 살려주시고 오늘도 함께하신 주님 안에서 내가 살게 한 구원에 대한 감사, 시편 51편에 보면 구원에 그 감격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다윗이 노래하잖아요?
(2) 둘째는 번제단에 가서 혹시 내가 하나님께 불법을 행한 게 있는지, 죄를 지은 게 있는지 돌아봅니다. 회개하죠?
(3) 그 다음이 어려워요. 세례는 뭐냐 하면. 오늘도 나를 주장하고 나를 내세웠는가? 내가 영광 받으려 했는가? 이거 많이 걸립니다. 이거 아주 누구와 대화를 하다가 화를 냈어, 내가 그럼 뭐가 걸린 거예요? 내가 감정 조절을 못했어요. 죄는 아니지만 내가 나를 너무 주장했구나. 내가 그 사람이 말한 것 때문에 감정이 상한 것이 자기주장 때문에 그런 거예요. 세례. 이 물두멍에 와서 자기를 내려와서 자기를 내려놓았는지 점검하는 거예요.
(4) 떡상에서 오늘 말씀, 하나님이 뭘 주셨는지, 어떤 메시지를 내게 주셨는지, 말씀 점검하는 거예요. 만약에 아침에 드린다면, 하나님 오늘 말씀 내게 주십시오.
(5) 그 다음에 성령의 조명, 등잔대 앞에 가서 어둡고 부정적이고 공격적이고 이런 사탄적인 삶을 살지 않았나, 어둠의 삶을 살지 않았나 점검하는 거예요. 오늘 정말 밝게 살았는지 빛을 내가 선포했는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는지 점검하는 거예요.
성막예배를 드려라.
6) 예배 - 분향단
7) 지성소
① 속죄판 - 존재의 열납, 은혜의 보좌, 후사권
② 그 룹 - 영광의 임재
③ 언약궤 - 언약으로 사는 제사장
그 다음에 분향단은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거예요.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기도, 찬양. 하나님을 존중해 드리는 거,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거죠. 내가 오늘 그런 삶을 살았는지?
지성소에 들어갔어요.
① 첫째 속죄판 - 존재의 열납, 은혜의 보좌, 하나님의 자녀로써 오늘도 하나님께 열납된 존재로 세워졌는지.
② 그룹 -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임재를 높여드렸는지. 그 임재를 내가 느끼고 살았는지.
③ 이제 언약궤에 가서, 하나님께 앞에 언약을 내가 오늘도 성실하게 지켰는지,
a) 첫째는 만나 힘의 근원, 공급의 근원, 행복의 근원, 말씀, 약속으로 살았는지, 나 자신에 대한(對自身) 문제죠?
b) 둘째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 - 보이는 영적 질서에 대한 나의 자세, 대인(對人)관계, 내가 선배 어르신 또 내 아랫사람에 대해 영적 질서를 가지고 살았는지.
c) 셋째는 돌비 - 사역의 철학, 삶의 원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사람을 존대하는가? 대신(對神)관계, 사역자로 살았는지 점검해보는 거죠.
자. 하나님은 우리를 선한 목자로 부르셨습니다. 이 그림은 카자흐스탄에 갔는데 그 카자흐스탄의 목동의 그림입니다. 아주 좋죠? 양들이 이 목자를 잘 만나게 되면 아주 푸른 초장으로 눈이 와도, 겨울이어도, 푸른 초장으로 가서 인도를 받게 됩니다.
목자에 관한 영상을 하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 목자 영상 >
세상에서 제일 큰 복은 만남입니다. 좋은 부모님 만나고 존경할 만한 스승 만나고, 더 큰 복은 좋은 목자 만나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진리를 하는 것보다 큰 복이 없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하고 소중한 직분이 있다면 우리가 목사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애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찾아서 도와달라고 하는 우리는 특권의 위치에 있습니다. 잘 가르쳐서 수고하면 지금 퍼주는 유의태의 작품이죠? 마지막에는 자기 몸을 내주고 해부하라고 하죠. 좋은 제자가 좋은 스승에서 나옵니다. 오늘 교회의 위기, 시대적인 위기를 우리가 말하는데. 사실 일차적인 책임은 목자들에게 있습니다. 잘 가르치고 잘 섬겼다면 이렇게 혼란상태가 오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 나는 어떤 목자입니까? 하나님 앞에 참된 목자 선한 목자입니까? 아니면 돈이나 요구하는 목자는 아닙니까? 아니면 아예 그들을 온전히 이용하려는 이리(狸)는 혹시 아닙니까? 스스로 돌아보면서 이 출애급기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결단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 갖겠습니다.
하나님! 선한 목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달하고 잘 키워서 시대를 책임지고, 민족을 책임지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책임질 수 있는 그런 교회, 그런 교인들로 만드는 선한 목자이고 싶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결단합니다. 우리 잠깐 기도하는 시간 가집시다.
“하나님! 가르치기 전에 먼저 행하는 목자가 되고 싶습니다. 군림하고 명령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섬기는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말하기 전에 먼저 진리가 무엇인지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내가 먼저 고민하고 연구하고 예비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에게 특별한 시간과 공간을 주시어서 출애급기 말씀을 통하여 모세의 영성, 광야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는가를 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씀이 나에게 철학이 되게 하시고 목회의 원칙이 되게 하시고, 이 후로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번 집회를 위하여 극동방송에서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한OO 교회가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수고한 종들에게 함께하시고 이후로 울산지역에 좋은 목사님들의 모임이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견본 >
☆ 생명샘교회 웹사이트(http://www.lifesam.net)에 소개되어 있는 몇 개의 예문을 소개합니다.
1. 나의 사명 선언문
오 동 철 장로
나의 사명은 생명샘교회와 담임목사님이 목성연과 세계에 흩어져 있는 선교사들에게 말씀과 성령의 사역을 펼쳐 나갈 수 있도록 동역하는 일이다.
나는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2012년까지 교회 내에 600명의 지도자를 세우는데 헌신할 것이며 그들과 동역하여 생명샘교회를 부흥케 할 것이며 2020년까지 1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성전을 건축할 것이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루 1시간 이상 기도로 준비할 것이다.
2. 나의 매일의 십계명
내 삶의 철학은 로마서 14장8절 말씀이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나는 장로로써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산다.
1. 교인들의 아픔을 아비의 마음으로 품고 하루 1시간씩 기도한다.
2. 주일 1.2.3부 예배 20분 전에 예배부원과 헌금 봉사자와 기도한다.
3. 1년 300일 이상 새벽기도를 하여 영성을 키운다.
4. 매일 성경 5장씩 읽는다.
5. 교회 질서와 규례를 지키기 각 부서장들과 월1회 정기모임을 한다.
6. 매일 3명의남성교구 셀원에게 전화하며 1년 100회 직장 심방을 한다. (월 8~10회)
7. 어머니와 일주일에 한 시간씩 TV 보며 이야기한다.
8. 아내가 건강에 무리되지 않도록 일주일에 2회 이상 청소를 해 준다.
9. 윤미가 훌륭한 사회복지사가 될 수 있도록 매주 1시간씩 함께 대화한다.
10. 1년에 1회 3일 금식기도하며 초심의 마음을 지킨다.
~~~~~~~~~~~~~~~~~~~~~~~~~~~~~~~~~~~~~~~~~~~~~~~~~~~~~~
1. 나의 사명 선언문
최초작성일: 2007년 2월 6일~9일 정 광 훈 장로
나의 사명은
1)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선한 목자와 교우들을 섬기고, 말씀을 배우고, 마음에 새기며, 실천하는 장로가 될 것이다.
2) 말씀을 자손들에게 가르쳐 천 대까지 축복을 이어 가게 할 것이다.
3) 전 세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도와주어 꿈을 이루도록 도울 것이다.
나는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 2020년까지 JM그룹을 매출 5조원의 IT기업으로 성장 발전시키고, ‘JM그룹과 금계문화재단과 전인치유센터와 글로벌드림스쿨을 통하여 2030년까지 세계 천만 명의 사람들이 꿈을 이루도록 도울 것이다.(나는 2030년까지 천만 명의 사람들이 꿈을 이루도록 도울 것이다)
2. 나의 매일의 십계명
1. 나는 앞으로 30년 동안 2모작, 3모작의 인생을 살기 위하여 매일 1시간 걷기를 통해 육신의 건강을 도모한다.
2. 나의 영적 건강을 위해 매일 성경읽기 5장 이상, 기도 한 시간 이상을 계획한다.
3. 하나님 사역을 위해 말씀공부와 자기계발을 성실히 한다.
* 2012년까지 성경 10권 이상을 가르칠 수 있도록 준비한다.
* 상담학, 치유공부 - 사이버 대학 수강
* 코칭, NLP, 리더십 공부 - 세미나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공부
4. 가족구원과 화해를 위하여 매월 1회 정기모임을 갖는다.
5. 나눔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금계문화재단과 실업인선교회를 통하여 년 간 정기적으로 장학사업, 구휼사업, 선교 사업, 식량 지원 사업 등을 펼침으로 요셉처럼 생명의 부양자의 인생을 산다.
6. 년 4회 이상 테라피 프로그램을 진행함으로 감정적인 상처와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치유하며 치유 사역자들을 육성한다.
7. 매년 해외 선교사들을 위한 테라피, MK(Missionary kids)들을 위한 드림 스쿨을 개설하여 해외에서 수고하는 사역자들을 섬긴다.
8. ‘트레버의 세 사람’의 스피릿을 실현할 수 있는 전인치유센터를 건립하여, 2030년까지 1,000만 명의 사람들이 꿈을 이루도록 ‘JM그룹, 금계문화재단, 전인치유센터, 글로벌드림스쿨, 실업선교회를 통하여 도울 것이다.
9. 감성 치유를 위해 전문 연주가가 되기까지 매주 1회 하늘소리 선교단과 함께 색소폰 악기 연습을 한다.
10. 해외 선교사역을 위해 매일 1시간 이상 영어 공부를 한다.
~~~~~~~~~~~~~~~~~~~~~~~~~~~~~~~~~~~~~~~~~~~~~~~~~~~~~
나의 정체성 : 나는 신앙인(信仰人)이며, 가장(家長)이며, 교사(敎師)이다.
권순화 장로
1) 나의 사명 선언문
나는 가정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되며,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학생들에게 꿈을 이루도록 도울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전달하는 일을 일생의 업으로 삼는다.
이를 위하여
1. 나는 2012년까지 남성 교구의 셀을 120개 셀로 확장한다.
2. 나는 2016년까지 1,000명의 학생에게 꿈과 지식과 복음을 전달한다.
3. 나는 2020년까지 성경 20권을 배우고 연구하여 1,000명에게 전달한다.
2) 나의 십계명
1. 나는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에 최선을 다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2.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산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와 함께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마 22:37-39).
3. 나는 긍정적 생각으로 정직과 겸손의 삶을 산다.
4. 나는 생명샘 교회의 장로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
5. 나는 성경 말씀을 1년에 두 권씩 가르칠 수 있도록 준비한다.
6. 나는 한 달에 교회 서적(1권), 전공서적(1권)을 읽는다.
7. 나는 하루에 세 사람 이상에게 칭찬과 격려를 한다.
8. 나는 두 자녀(준학, 준영)에게 신앙의 삶, 성공의 삶을 위한 뒷받침을 다한다.
9. 나는 월 2회 부모님을 찾아뵙고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10.나는 심신을 단련하기 위하여 여행과 등산(주 1회)과 조깅(주 2회)을 생활화한다.
~~~~~~~~~~~~~~~~~~~~~~~~~~~~~~~~~~~~~~~~~~~~~~~~~~~~~~
1) 나의 사명 선언문
고 진 수 권사
나의 사명은 성경 말씀을 바르게 알아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알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참 진리를 알도록 돕는 일’이다.
나는 이 사명 감당을 위해
1. 2014년까지 성경 전반에 대한 이해를 위한 공부에 모든 노력을 집중할 것이며,
2. 성경의 배경 역사를 공부하고 현장에 다녀올 것이며,
3. 성경 20권을 가르치기 위해 필요한 교안을 준비할 것이다.
4. 또한 이 사역을 함께 감당하기 위해 같은 꿈을 품은 나의 가족에 대해 잘 협력할 것이며,
5. 나의 가장 소중한 동역자인 가족들을 위하여 나의 건강유지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2) 나의 매일의 십계명
1. 하루의 첫 시간을 드린다 : 새벽기도회 주 5회 이상
2. 성경 안에 있는 중요한 언약의 말씀을 외운다 : 1일 1구절
3. 하루 1시간 이상 기도, 1시간 이상 말씀을 읽는다,
4. 매일 주님의 가슴으로 중보한다 : 교회, 셀, 환우..등.
5. 책별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며 사역을 준비한다.
6. 월 경건 서적을 2권 이상 읽는다.
7. 성경의 배경이 된 역사를 공부한다. : 로마,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서적을 월 1권 이상.
8. 컴퓨터를 잘하도록 배운다 : 주 1회 문화 강좌 참여.
9. 영어 공부를 다시 한다 : 주 2회 1시간 이상.
10. 주 3회 1시간 이상 걷는다.
~~~~~~~~~~~~~~~~~~~~~~~~~~~~~~~~~~~~~~~~~~~~~~~~~~~~~~
복음 선포문 2009. 10. 18
나 윤 정 집사
1) 하나님 앞에서
• 나는 하나님에게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나의 진홍같이 붉은 죄는 눈과 같이 희어졌다.
• 사망이나 생명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 내 삶의 주인은 주님이시며 내 인생의 주관자 되신다.
• 주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의 아픔을 모두 이해하시는 분이다.
• 주님은 나와 교제하기를 원하시고, 기다리시며, 비밀을 나누기를 기뻐하시는 분이다.
• 하나님은 내 삶을 통해 당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시며 영광 받으실 것이다.
• 하나님은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시고 내가 웃으면 함께 웃으신다.
•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 나라의 충성된 일꾼으로 세우실 것이다.
• 주님은 영원히 나와 함께 계시며 나를 절대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신다.
• 내가 겪는 모든 아픔은 훗날 많은 영혼들을 섬기기 위함이다.
• 주님의 뜻을 믿기에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다.
• 나의 하나님이 내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다. 그가 나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나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
• 나는 지금 그 분의 섭리 안에 있고, 앞으로의 삶도 그 분의 계획 안에서 신실하게 인도하실 것이다.
• 나는 세상이 나를 통해 예수님을 보는 창문이며 축복의 통로이다.
2) 나 자신 앞에서
•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 나는 리더십이 있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섬세한 사람이다.
• 나는 용기가 있고 유머러스하며 솔직하다. • 나는 밝고 유쾌한 사람이다.
• 나는 이제 사단의 참소하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며 나의 약점을 이용하는 악한 영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만 더욱 바라볼 것이다.
• 나는 빛의 자녀다. 어둠의 영이 나를 더 이상 해치지 못할 것이며 두려움과 불안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바뀔 것이다.
•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회복하고 대학교 때의 열정과 헌신을 회복할 것이다.
• 주님을 신뢰함으로 얻었던 자신감과 영적 리더십을 회복할 것이다.
• 시간, 물질 등 자기관리에 성공할 것이다.
• 문학적 감수성, 창의적 사고력, 영적 민감성이 회복될 것이다.
• 영혼에 대한 긍휼과 민망히 여김, 거룩한 부담감이 회복될 것이다.
• 내게 주신 은사로 하나님과 사람을 섬길 것이다.
• 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언제나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 부르심에 대한 초심과 자신감을 회복하여 직업적으로 능력 있고, 신앙적으로 영향력 있는 교사로 교단에 설 것이다.
• 나는 사랑받는 아내이며 남편의 좋은 친구이자 믿음의 동역자이다.
• 나는 사랑받는 딸이자 며느리며 부모님과 웃어른을 공경하는 사람이다.
• 나는 매일 살리는 언어를 사용할 것이며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힘을 얻고 도전을 받을 것이다.
3) 나의 가정 앞에서
• 주님은 우리 집의 주인이시며 식사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님이시며 모든 대화에 말없이 듣는 이시다.
• 원진이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우리는 원진이를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묵상한다.
• 주 1회의 가정예배로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고백한다.
• 남편과 나의 셀원들은 우리의 섬김과 가르침을 통해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고 영적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 남편과 나는 교회의 2012 비전에 합당한 600명의 리더 중 하나로 세워질 것이며 이를 위해 모든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고 비전과 영적인 고민을 함께 나누는 진정한 동역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 우리 가정은 항상 열려 있으며 모든 이들이 우리의 섬김을 통해 쉼을 얻고 기쁨을 얻을 것이다.
• 우리 가정은 믿지 않는 자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가정이다.
4) 나의 건강 앞에서
• 나의 몸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다.
• 하나님은 나를 지으셨으므로 나의 몸을 가장 잘 알고 계신다.
• 나에게 가장 좋은 약은 신약과 구약이다.
• 건강에 해로운 음식과 습관을 피하고 운동과 호탕한 웃음으로 심신의 건강을 관리할 것이다.
•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음으로 다리의 피로와 왼쪽 고관절의 통증은 사라질 것이다.
• 주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으로 인해 경직된 근육들이 부드럽게 이완될 것이다.
• 차가운 손발이 따뜻해질 것이다.
• 우울증, 불안장애로 오는 호흡 곤란과 가슴 두근거림, 손 저림은 예수 보혈로 없어지고 깨끗하게 치료될 것이다.
• 2010년 7월까지 현재 복용중인 약(불안장애, 우울)을 끊고 둘째를 가질 것이다.
• 우울증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내 몸과 마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나는 계속해서 우울증 약을 복용하지 않을 것이며 맑은 정신으로 주님을 묵상하고 기도할 것이다.
• 나는 우울증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상담자와 mentor가 되어 빛 가운데로 인도하고 묶인 것들로부터 자유케 되도록 그들을 도울 것이다.
정오표(正誤表) (2011. 4. 20. 日字 책)
(↓ 위에서부터; ↑ 아래에서부터)
page
오자(誤字)
교정(較正)
표지
↓ 3
2월
3월
머리말
↓ 24
2월
3월
7
↓ 1
가로 막는
가로막는
19
↑ 1
타드벤틀이라는
타드 벤틀리라는
21
box 4
그비딤
르비딤
21
↑ 10
스루광야
수르광야
30
box 11
9공급
(공급
37
↓ 22
죠.”물론
죠.” 물론
49
↓ 6
음악을
음악
56
↓ 19
이것을
이것은
64
↓ 7
사람이
사람을
64
↓ 12
복음주이에요
복음주의예요
65
box 2
제사 (희생)을
제사(희생)를
78
↓ 15
되버렸어요
돼버렸어요
83
↑ 9
다말아 먹은
다 말아먹은
84
↑ 11
왕에 눈에
왕의 눈에
85
↓ 9
밧세바에서
밧세바에게서
95
↓ 32
주셨고는
주셨다는
98
↑ 13
우리자신의
우리 자신의
105
각주3&4
일찌기
일찍이
105
각주5-6
몸둥이
몸뚱이
112
↑ 9
먹어야 한다
먹을 수 있다
113
↑ 2
큰 소리
큰소리
124
↑ 12
걷는
건넌
142
↓ 32
헤메다가
헤매다가
146
box ↓ 5
내제사장
내 제사장
169
2box 4
계 5:8;8:3-5
계 5:8; 8:3-5
175
↑ 7-8
나왔어. “삼일
나와서 삼일
176
↓ 11
비유
비위
184
box 8
목음
복음
187
2box 11
일을
일은
“”
‘’
< 박승호 목사의 >
출애급기 강의
(2010년 3월 21-23일, 울산)
(2011. 5. 10)
타 코 마 연 합 장 로 교 회
KOREAN UNITED PRESBYTERIAN CHURCH
720 121st St. E. Tacoma, WA 98445
☎ (253) 537-2246; 535-3341 (fax) 537-8130
나 균 용 목사 (Rev. Kyun Yong Nah)
< 박승호 목사의 >
출애급기 강의
녹취 - (1-2강) 김삼중
(3-8강) 이필은
(9-10강) 나균용
(11-12강) 이필은
각주 및 해설 - 나균용
출애급 사건이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역사
출애급기를 알면 인생이 보인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행 17:11-12)
“주여.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시 119:18,3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7-10).
머 리 말
생명샘 교회의 박승호 목사님은 이 시대의 별과 같이 귀한 분입니다. 성경공부를 통하여 교회를 부흥시키고 수많은 목사님들에게 성경을 새롭게 보는 눈을 열어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을 한 권, 한 권 이렇게 강의해 나가면서 평신도들도 훌륭한 교사가 되도록 만드는 일은 장차 세계 선교를 맡을 우리 민족에게 주신 놀라운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그의 강의는 강의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전도하도록 권장하면서 실질적으로 돕고 있음은 뛰어난 장점입니다.
이분의 강의는 복습을 통해서 반복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적절한 예화와 우리 생활 주변에서 그냥 스쳐 지나갔던 일들 속에 놀라운 비밀이 있음을 잘 지적해 줍니다.
특히 강의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명선언문, 개인의 십계명, 복음선포문 등을 소개하고 각자가 이를 행함으로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함은 놀라운 복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성실히 실천하여 더욱 큰 복을 받고 은혜의 깊은 세계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2010년 9월 13-15일에 타코마에서도 이 분을 모시고 서북미지역 목회자 100여 명이 모여서 출애급기 강의를 들으며 큰 은혜와 도전을 받은 바 있습니다.
저도 오래 목회를 하였지만, 누구의 설교나 강의를 일일이 녹취(錄取)해 본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분의 강의는 녹취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되어 이렇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말씀, 말씀 속에 놀라운 은혜가 있고, 그에게 주신 지혜가 번쩍입니다.
그러나 박 목사님과 나와는 성경해석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는 칼빈주의 교리에 따라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의 비판적인 사견을 넣었습니다. 그의 이 강의는 교파를 초월하여 듣는 것이기에 다른 견해를 덧붙인 것도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성경을 좀 더 깊이 있게 연구하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타코마지역 목성연(목회자성경연구원)에서 박 목사님이 작년 3월 21-23일에 울산에서 목회자들을 상대로 행한 출애급기 강의를 녹취하여 발표하기로 했는데, 발표를 맡았던 사람들이 녹취한 것을 사장(死藏)시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도 읽고 좀 더 깊이 공부하며,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기를 원해서 이렇게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강의를 한 번 듣고 끝나버리면 일주일도 못 되어 95% 이상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강의를 들을 당시에도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미처 알아듣지 못하고 흘려버리는 경우도 많고, 정말 중요한 말씀들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책으로 만들어서 읽게 되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되지 않고 이 말씀들을 접할 수 있고, 들을 때보다 훨씬 더 깊이 깨달으면서 은혜를 받을 수도 있고, 나아가 책에 기록된 것보다 더 발전시켜서 자세히 공부할 수도 있으니까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정결한 짐승의 첫째 조건은 되새김질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김질해야 함을 뜻하지 않습니까? 좋은 말씀은 반복하여 읽어야 할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중국에 선교하러 갔을 때에, 영어를 잘하시는 장로님 한 분과 함께 갔었는데, 신학생들에게 강의를 하시라고 시간을 드렸더니, 통역을 하는 학생이 즉시즉시 통역을 못하고 쩔쩔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할 때는 그렇게도 잘하던 학생이 웬 일인가 했더니, 이분이 영어를 너무 많이 섞어서 쓰니까, 그가 잘 알아듣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요즘에 우리나라에 영어교육 열풍이 불어서 이젠 그 말이 우리말인지, 영어인지 분별이 잘 안될 정도로 되어가고 있고, 우리말의 훼손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목사님들을 상대로 한 강의니까 그 정도의 영어야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강의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을 고려하여 되도록 우리말로만 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혹시 영어를 써야 할 경우라면 우리말로도 번역이나 해설을 붙여야 옳을 것입니다.
박 목사님의 경우에는 영어가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영어로 한 경우도 있어서 영어로 한 단어들은 가급적 영문으로 기록했습니다.
이 강의는 내용을 요약해 놓은 교재(작은 책)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재를 보면서 강의를 듣도록 하였는데, 이 책에서는 교재의 내용을 네모상자 안에 넣어서 수록하였습니다.
이 강의를 녹취하느라 수고해 주신 목사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김삼중 목사님은 1, 2강을 하셨고, 제가 9, 10강을 했습니다. 나머지 8개의 강의는 이필은 목사님이 많은 수고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강의 테이프를 다시 들으면서 그 녹취한 것들과 일일이 대조하면서 교정하고 각주(脚註)와 해설을 더 붙여서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하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만들기 전에 박 목사님께 양해를 구했어야 하는데, 자기의 자료는 자유롭게 사용하라는 그분의 취지에 따라서 프린트물이기는 하지만, 우선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그냥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전달 강의를 위해서는 테이프보다 프린트물이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강의 내용 중에 오류가 있는 것은 바로잡았고, 신학적이거나 성경 해석상에 견해가 다른 것들도 각주에 해설을 넣었습니다.
읽으시는 분들은 지혜롭게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 4월 20일 고난주간에
타코마에서 나 균 용 목사
목 차
강의 (1) 의미로 본 전체 개요 ………………………………………………… 5
강의 (2) 1과 : 언약의 하나님 …………………………………………………16
2과 : 피의 구원
3과 : 신앙의 원칙과 세례
4과 : 광야에서의 내려놓음
5과 : 광야에서의 수업 목표 : 직면
강의 (3) 6과 : 구원, 하나님 나라 ……………………………………………29
7과 : 제사장 나라로의 변화, 성장
8과 : 구원의 process
9과 : 사람을 통한 구속사
강의 (4) 본문 연구 …………………………………………………………… 44
1-2장 : 보고, 듣고, 알고
1장 : 구원의 준비
2장 : 80년 전부터 사람을 준비시키심
3장 : 호렙산의 영적 경험
4장 : 하나님의 동행 표지 - 리더의 자질
강의 (5) 5장 : 내 백성을 내보내라. …………………………………………66
6장 : 하나님의 새 이름 계시 - 여호와
7장 : 모세를 바로 앞에 신이 되게 하심
8-11장 : 바로의 타협안
강의 (6) 바로를 구속사에서 사용하시는 하나님 ……………………………84
강의 (7) 12장 : 유월절에 경험하는 새로운 출발 …………………………101
열 가지 재앙의 의미
유월절 - 새로운 존재
강의 (8) 13-24장 인도하여 (1) - 가까운 길로 인도하지 않으심 ……117
14장 : 홍해를 건넘 (세례)
13-18장 : 성화(聖化)의 진행
강의 (9) 15-18장 : 광야를 통과하는 비결 (1) ………………………… 134
강의 (10) 15-18장 : 광야를 통과하는 비결 (2) ………………………… 147
19-24장 : 성화 - 하나님의 자기 계시
계시 -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채움
시내산
강의 (11) 25-40장 : 이르려 하노라. ……………………………………… 158
성막 - 하나님의 거처
32장 : 우상숭배 - 종교의 영
35장 : 성막 건축 - 마음, 순종
강의 (12) 성막의 구조적 의미 - 생명의 성숙 …………………………… 171
예수 그리스도를 누림
나의 구속사 점검하기
1) 구속사를 위해 하나님이 배열해 주신 환경은? (1-2장)
2) 구속사를 위한 나의 준비과정들은? (3-4장)
3) 나의 영적 전쟁의 역사는? (5-11장)
4) 유월절 경험은 확실한가? (12장)
5) 세례는 받았는가? (13-14장)
6) 광야훈련을 마쳤는가? (15-18장)
7) 말씀훈련이 끝났는가? (19-24장)
8) 성막훈련이 잘 되고 있는가? (25-40장)
9)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는가?
10) 왕 같은 제사장으로 나아가라.
재생산의 원리만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
성막예배를 드려라.
부록 : 견본들 ……………………………………………………………………196
1) 나의 사명선언문
2) 나의 매일의 십계명
3) 복음선포문
< 제 1 강 > 의미로 본 전체 개요
** 출애굽기를 공부하고 난 다음에 그 공부한 사람들이 “아. 출애급기를 알고 나니까 인생이 보이구나.”해서 이 말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출애급기를 공부하면서 은혜를 받아 인생이 보였으면 합니다. 이것이 출애급기를 배운 목표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도 함께 따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출애급기를 알면 인생이 보인다.”
인생을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시 한 번 더 해 보시기 바랍니다. “출애급기를 알면 인생이 보인다!”
우리가 여행을 해 보면, 아는 길을 가면, 그 길을 가는데 신바람도 나고 즐겁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길을 가면 두려움도 있고 너무도 답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출애급기를 알면, 우리가 지금 어느 위치에 와 있는지, 그리고 내가 도착해야 위치를 알게 되기 때문에 인생이 즐거운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우리들의 가는 길을 잘 모르지만 이 출애급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navigation’이 되어 우리들의 인생을 목표에 도달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핵심 성구 (출 3:7-8)
(3: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급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급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 여기에서 동사를 찾아보도록 합니다.
“보고, 듣고, 알고, 내려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데려가려 하노라.”
* 이것을 외우셔야 합니다. 외우시면 전체가 정리가 됩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다시 한 번 더 해보시겠습니다. 보고, 듣고, 알고, 내려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데려가려 하노라.
보고, 듣고, 알고 1장 - 2장
내려가서 3장 -11장
12장
인도하여 13장 - 24장
하노라 25장 - 40장
1) 보고, 듣고, 알고는 1장, 2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의 탄압 속에서 고통당하고 힘들어 하는 상황을 보고,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그들의 우고(憂苦)를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과 부르짖는 소리를 보고, 듣고. 아셨습니다.
2) 내려가서 (3장-11장)
그들을 구원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오실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 아담과 하와, 그들을 통하여, 창세기 3:15에서 사탄이 사람을 꼬드겨 사람을 접수해 버렸어요. 그 때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너를 깨트릴 것이다.” 이때부터 이 세상에 대한 구원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지 않고 반드시 대행자를 통하여 사람을 통하여 구속자를 세워서 그들이 그 땅을 구원합니다.
이 울산 지역은 천사나 와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오시어 구원을 하신 것이 아니라, 울산에 부름을 받은 여러분들이 여전히 부족하여 한계가 있고 연약할지라도 그러나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담의 후손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모세를 통하여 내려오십니다. 이것이 구속사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람을 통하여 구원한다는 것을 놓쳐버리면, 사람들이 자기의 맘에 들면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쳐버리는데, 이것이 구속사에 얼마나 많은 장애 요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존중히 여겨야 되고, 사람을 키워야 되고, 사람을 세우는 것이 교회의 1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천사가 동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일은 사람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사람으로 만들게 하시고 그 문제를 사람으로 풀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하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사의 방법입니다.
** 모세가 태어날 즈음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애급 생활을 참으로 참혹하였습니다.
① 아이들의 출산을 억제하기 위하여 남자들에게 중노동을 시켰던 것입니다. 피곤하면 부부생활을 안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나 더욱 자녀들의 생산이 많아진 것입니다.
② 그래서 둘째 정책이 산파들에게 명하여 “남자 아이들이 낳으면 죽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것도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③ 셋째 정책을 쓰는데 무엇인가 하면 모든 남자 아이들이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절대절명의 위기 가운데 있었단 말입니다. 얼마나 급합니까? 지금. 그런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하여 아이가 태어나게 하시고, 그때부터 몇 년입니까? 80년 동안 준비를 시키십니다. 구속사는 이렇게 진지한 것입니다. 급하다고 아무나 데려다 놓고 쓰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행자로 세우기까지, 그 급한 상황인데도, 가정마다 아들을 낳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위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때부터 80년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80년을 준비시켜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비극은 지도자를 세워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긴 세월을 통하여 사람을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신 분이신데 이렇게 세운 하나님의 종을 사람들을 폄하(貶下)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대행자로 보지 않고 자기 입맛에 맞으면 좋아하고 하나님의 칼 같은 말씀 앞에서 명령을 하면 싫어하며 대적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데 부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자를 세우는데, 선거만 해줄 뿐이지 그 분들을 기관의 장으로 인정하고 따르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서서 일하는 분들에게 일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지도자가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서로 격려하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칭찬해 주고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셔야 할 자리에 모세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이스라엘을 구출하는 사건이 3장부터 11장입니다.
3) 건져내고 (12 장)
12장은 애급 사람들만 하나님의 반대 입장에 서 있는 게 아니라, 400년 동안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고, 그들의 잘못된 문화 가운데 있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1차적으로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피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건짐을 받습니다. 이것이 유월절사건입니다.
그러므로 12장은 요즘으로 말하면 영접기도를 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전환점”입니다. 구원사건이지요. 그런데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구원’ 이후에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구원 이후에 우리를 이끌고 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박영선 목사님이 쓴 책 가운데, 그 시절에는 모든 신학생과 목회자들이 읽었던 책 가운데 하나가 “구원 그 이후”라는 것입니다. 벌써 한 30년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약점은 구원을 받은 이후의 목표를 잘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2장은 소위 천당(天堂) 가는 문제는 해결이 되었어요.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천당이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가 천당 가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라고 한다면 12장까지만 알면 됩니다. 로마서 3:21-31의 말씀으로 해결이 된 것입니다.
(롬 3:24-27)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看過)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로마서 4장에서는 이 구원에 대한 원리를 믿음이라고 하는 단어로 설명을 하신 다음에 로마서 5장 이후에는 구원 받은 백성이 그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을 말하고 있습니다.
4) 인도하여 (13장 -24장)
12장 이후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12장까지는 우리의 갈망이고, 13장부터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3장-24장은 하나님의 어떤 목적을 향하여 우리들을 인도하십니다. 어디로 인도하십니까?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가고가도 또 광야, 가고가도 또 광야로 이어집니다. “Go, Go, Mountain”의 원조가 거기에 있습니다.
수르 광야, 신 광야, 르비딤 광야로 계속 광야로 갑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안 받아서 광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곳이 바로 광야였다는 것입니다.
이때 모세가 할 일은 이 광야를 미리 경험하고, 광야에서 그 백성들이 어려움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찾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출애급기 18장까지 광야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계속 만나고, 19-24장까지는 시내산으로 데리고 가셔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13장-24장은 ‘인도하여’입니다.
5) 데려가려 하노라 (25장-40장)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막으로, 매일 매시간 죄를 지을 때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절기마다 제사를 드려야 할 상황마다 성막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고, 거기에 계신 하나님께 내가 코드를 맞추고 살게 하십니다.
레위기에 보면 알지만, 제사는 참으로 엄격합니다. 내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원칙,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받아주십니다. 그래서 성막에서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 생각, 가치관, 인생의 목표가 다 바꾸어집니다. 계속 그분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문제가 있을 때 찾아가고 하면서 1년, 2년, 3년이 지난 다음에 요즘 말하는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가 이루어집니다. 곧 사고의 구조가 전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성막에서 훈련을 받고 난 다음에는 그들의 얼굴이, 그들의 사상이, 그들의 언어가, 그들의 가치관이, 하나님을 대행할 수 있도록, 요즘 말로 하면 ‘spirit’이 바꾸어진다는 것입니다. 피카소의 spirit, 김홍도의 spirit, 사상, 정신, 혼... 하나님의 인격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사상으로 우리들이 바꾸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12장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계속해서 우리들을 광야로, 시내산으로, 성막으로 인도하시어 매일 예배하는 생활, 하나님께 코드를 맞추는 생활, 하나님의 영광을 기대하는 생활을 향하여 우리들에게 계속 코드를 바꾸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인간처럼 “너는 우리들의 형상이다. 너희는 우리들의 모양이다.”라고 한 그 형상을 회복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둘째 구원, 또는 재창조라고 합니다. 처음 인간은 실패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형상을 회복하신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담과 하와에게 “하늘과 땅과 모든 것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주셨는데” 성막생활, 즉 예배 생활을 통하여 우리들의 생각과 사상이 바뀌면 이제부터 우리가 사람을 대하거나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하나님의 통치권을 가지고 살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격려하고, 세워주고,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품고, 제사장의 가슴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것을 하나님과 연결을 시켜드리고, 또 그것을 회복하기 위하여 기도드리는 제사장 mind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40장까지의 출애급 사건을 통하여, 타락한 죄인, 바로를 섬겼고, 10가지 우상을 섬겼던, 잘못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하나님 중심의 사람,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하는 것이 출애급기의 목적입니다.
가나안의 삶은 뭐냐? 가나안은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야 할 땅입니다. 내가 이런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을 대행할 수 있는 통치권을 가진 자로 세워지게 되면, 문제가 있는 내 가정, 문제가 있는 내 교회, 타락한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 동행하면, 광야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잖아요? 하나님의 성막이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잖아요? 여기에 술집 많은 동네도 있더군요. 그러나 타락한 광야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은 바로 이 울산 지역에, 교회가 있고, 또 주의 형상으로 준비되어 있는 주의 종들이 있으면, 바로 울산 지역이 가나안 땅이며, 하나님의 나라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런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구원 역사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 믿어서 천당 보내는 것이 구원 역사가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소원이고, 하나님의 소원은 아담족들이 결자해지(結者解之), 사고 친 그 여자보고 “너와 네 자손을 통하여 이 세상을 원상복귀 시킬 것이다.” 하나님이 호언장담하신 거예요. 자신이 있으셨으니까. 사실은 2,000년 전에 예수님으로 끝내실 수도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지신 거죠. 애들 싸움에 어른이 개입하신 거잖아요? 사탄도 피조물이고, 사람도 피조물인데, 피조물끼리 싸웠는데,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너무 깊이 개입하시면 자존심이 상하시는 거죠. 애들끼리 싸웠는데, 내가 너희들끼리 해결하도록 하겠다.
오래 전에 저희 교회에 고급장교가 계셨습니다. 딸이 셋이었어요. 여자 애들 셋이 날마다 맞고 오는 거예요. 화가 난 거예요. 애들 셋을 앉혀놓고 “아버지는 그렇게 안 살았는데, 너희들은 왜 그러느냐? 자. 누가 태권도를 배울래?”큰딸이 배웠어요. 유단자가 되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해결된 거예요. 이해가 되십니까? 애들 싸움에 어른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거죠. “너희들끼리 해결해라. 그 대신에 나는 너를 키우겠다.”그렇게 하고는 큰딸에게 집중적으로 운동을 가르치고, 계속 그 아이를 키운 거예요. 때가 되니까 셋이 나타나면 싹쓸이하는 거예요. 모든 사건 다 해결하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천사를 통하여 울산 지역 접수 못하시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고, 연약한 우리, 과거에 싸움에서 졌고, 여전히 문제가 있는 우리지만, 잘 훈련시켜서 이 땅을 접수하게 하신다. 이것이 출애급 사건입니다.
“출애급기를 알면 인생이 보인다.” 따라서 해 봅시다.
고난이 보이고, 가야 할 목표가 보이고, 목회의 비밀이 보이고, 아주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전체 구조를 머릿속에 입력해 놓으면, 울산 지도를 머릿속에 입력해 놓은 것처럼, 어디를 가든지 헤매지 않습니다. 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급기를 알면 인생이 보입니다. ** 제가 내용을 말하면 여러분들은‘장’을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보고, 듣고, 알고 ( 장); 내려가서 ( 장); 건져내고 ( 장); 인도하여 ( 장); 데려가려 하노라 ( 장)
** 이번에는 제가 장을 말하면 여러분이 해당되는 내용을 말씀하십니다.
1-2장 ( ), 3-11장 ( ), 12장 ( ), 13-24장 ( ), 25장-40장 ( )
책 보지 마시고 두 분씩 짝을 지어서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미로 본 전체 개요
1장 - 11장 준비하신 은혜, 준비시킨 목자
아브라함 의 성취
12장 어린양의 로 구원 받음
13장 - 14장 오리엔테이션, 세례
15장 - 18장
19장 - 24장 시내산
25장 - 40장 성막
1) 1장-11장을 한마디로 말하면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뭘 준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계획을 가지셨고, 사람 지도자를 준비시키셨고, 또 그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기억하신 거예요.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전혀 내 의도나 계획이 없는데 어느 날 주님이 나를 찾아오십니다.
그것이 고난을 통하여, 자식을 잃은 아픔이랄지, 경제적인 큰 손실을 입었다할지,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할지, 인생의 의미를 잃었다할지, 이러한 감당할 수 없는 벅찬 위기를 경험할 때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은 “아이고”하면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배를 타고 여행을 하는데 그 안에는 여러 종교, 여러 문화에 살고 있는 분들이 함께 탔습니다. 그 안에 한 스님이 타고 있었는데 물이 잔잔할 때에는 ‘나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하더니만 배가 풍랑을 받아 뒤집힐 것 같으니까 “아이고 하나님!” 하더랍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는 다 하나님을 찾는구나.”라고 깨달았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여건을 다 준비하신 것입니다. 심지어 성도들에게 “내가 어떤 목사님을 만날 것인가?”하는 것도 다 하나님께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1장-11장은 ‘은혜’입니다.
2) 그런가 하면 12장은 어린양의 피로 구원을 받습니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 법으로부터 우리가 자유롭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대속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대신해서 죄 값을 치러주는 죄 값의 대속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미성년자가 죄를 지으면 부모가 책임을 집니다. 부모가 책임을 지어 주면 그 아이는 그 죄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같은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책임지셨다.”는 것입니다. 좁은 의미에서 구원을 경험한 것입니다. 구원 받았습니다.
3) 13장-14장은 이렇게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자녀들)이 구원받은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삶의 가치관을 가르쳐 줍니다. 마태복음 5장-7장까지를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고도 하고, ‘하나님 나라의 Magna Carta, 대헌장’이라고도 합니다. 구원 받은 자녀들의 새로운 질서를 가르쳐 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13장과 14장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앞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야 할 것에 대한 orientation과 그 첫 번째 하나님과 사람과의 계약으로서 ‘세례계약(洗禮契約)’을 맺습니다.
‘피의 계약’ - 12장에서의 계약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어떻게 하시겠다는 계약입니다. “이 피가 있으면 내가 심판하지 않고 넘어갈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서약을 하는 것이고, 14장에서 나오는 세례는 우리 쪽에서 하나님께 서약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는 이렇게 살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가 신앙 안에서 성숙하게 되면 세례를 받게 합니다. 이 세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심판은 ‘피’ 때문에 하나님께 우리를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피의 구원은 하나님께 우리들에게 지켜야 할 약속입니다.
‘물세례’ - 물에 의한 계약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켜야 할 계약입니다. 쌍방 간에 인격적인 계약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쪽에서만 계약을 하고 지키면 안 됩니다.
4) 15-18장은 이렇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겠다고, 세례를 받았는데 진정으로 나를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도록 훈련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반복하여 훈련을 하면서 “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아니라 성령님이십니다.”라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실 수 있도록 삶의 현장에서 사건을 통해서 exercise해 주시는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가 금년에 우리를 참 즐겁게 해주지 않았어요? 박태환 선수가 수고를 많이 했고, 박지성 선수가 했는데, 어떤 분이 박지성 선수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만약에 박지성 선수의 발바닥에다가 붉은 페인트를 칠해 놓고, 한 게임이 끝나면 온 그라운드가 다 빨간색으로 도배가 될 것이다.” 그만큼 많이 뛰어다닌다는 거지요. 그런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고 우승을 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exercise가 있었겠습니까? 한 번에 우승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수없는 훈련을 통해서, 그들이 결국은 최강자가 되고 우승자가 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어느 날 불 받아가지고 확 바꿔지고, 그렇게 하면 인생이 얼마나 쉽겠습니까? 세월이 급한 때에, 모세를 데리고 80년 동안 그렇게 하실 이유가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인격 구석구석, 우리의 성품, 언어, 행동, 사람을 대하는 태도, 부분부분, 구석구석까지 하나님으로 채워지도록 기다리십니다.
혹시 서해안 기름띠 사건이 있었을 때에 가셔서 기름띠 제거하는 작업에 참여해 보셨어요? 그냥 가서 쓱 쓸고 온 것 아니지요? towel 가지고 가고, 숟가락, 젓가락 동원해 가지고 가서, 바위틈 사이사이에... 제가 보니까 하루 종일 했는데, 한 평도 못했어요. 한 평도. 그 바위틈에 기름이 끼어 있는데요, 그것은 100년이 가도 안 없어진대요. 그래서 거기에 젓가락을 집어넣어 가지고 일일이 다 벗겨낸 거예요. 수건 한 장 분의 기름을 닦고 왔는데, 그때 제가 닦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 우리 인격 속에 죄가 묻어 있었는데, 그 죄를 닦아내는 작업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구나.”
용서 받은 것은 12장에서 이루어졌지만 인격이 바꿔지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거칠고 투박하기만 했던 사람의 언어가 그리스도로 사람을 살리는 언어로 바꾸어지고, 사람을 볼 때마다 공격하고 비난하고 소문내서 전달하는 이런 이적행위, 마귀를 도왔던 사람이 사람을 살리고, 문제 있는 사람을 품고 기도해 주는 제사장으로 바꾸어지기까지는 너무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exercise를 광야에서 한 것입니다. 어려움을 겪고, 위기를 만나고 하면서...
제가 이제 senior group에 속해 있어요. 제 동기들이 노회장도 하고, 총회에 진출하는 그런 수준에 와 있는데, 목회가 처음에는 그냥 벼락같이, 어느 교회는 몇 년 만에 몇 명 모였다 그러는 것을 무척 부러워하였어요. 그래서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주로 보았던 책이 Billy Graham, 한경직 목사님, 조용기 목사님 같은 거물들의 책만 많이 보았거든요. “나도 목회를 하면 거목(巨牧)을 하리라.” 그러면서.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뒤를 돌아보니까 나를 그렇게 인도하시지 않은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목회를 기초부터, 정말 차근차근, 정말 어렵게 해 오게 하신 것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사람의 인격이 변화되는 것인 하루아침의 사건으로 바꿔지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저도 71년도에 성령을 체험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경험했지만, 그 때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이 아니라, 계속 어려움을 겪으면서 광야, 또 광야, 이제 끝났는가 하면 또 광야, 끝났는가 하면 또 광야... 끝없는 세월의 광야를 지나오면서, 지금 되돌아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사건 하나하나마다, 기름 때 벗겨내듯이 내 인격 속에 묻어 있는 오염된 것들, 잘못된 것들을 닦아내시느라고 얼마나 수고하셨는지 이제 보이는 거예요. “아! 목회가 이런 거구나. 사람을 돌본다는 게 이런 거구나.”
우리 한국교회가 그 동안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급성장하기도 했었고, 또한 간판만 걸면 사람들이 몰려오는 그런 때를 우리가 목회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었고, 사실은 지금이 진짜로 목회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안 오잖아요? 왔다가 조금 있으면 가버리고... 이런 때에 한 사람을 인격자로 맞아들여서, 정말 그 분의 모든 것들을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또한 그를 양육하는 목자의 마음으로 가지고 일일이 돌보고, 섬세하게 살피는 이것이 진짜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목회 힘드시죠? 그런데 이제 우리가 제대로 목회를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몇 십 명씩 몰려올 때에는 사실은 잘 모르거든요.
하나님께 모세를 키우는 방법도 그랬었고, 그 탁월한 지도자 모세를 통해서 목회를 하셨던 광야교회의 상황도 똑 같습니다. 한꺼번에 확 해결한 것이 아니라, 사건들을 통하여 차근차근 한 가지 해결하고, 또 한 가지를 해결하고, 이렇게...
혹시 진주조개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세요? 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으면 이물질이 하나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 이물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액체를 끄집어내요. 우리 몸으로 말하면 백혈구가 나와서 적과 싸우는 것입니다. 모래가 들어와서 이제 움직일 때마다 살이 막 패이고 아프니까, 계속해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진액을 뽑아가지고 이 모래가 더 이상 자기를 해치지 못하도록 싸우는 작업을 계속하는 거예요. 그 때 나왔던 그 진액들이 모이고 모여서 진주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성도의 인격이라는 것이 “어느 날 성령이 오셔서 확 뒤집어져서 360도 바꾸어졌다.” 이런 개념이 아니고, 사건 사건을 경험하면서 그때마다 그것을 견디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또 겸손하게 엎드리고, 또 회개하고, 이런 사건,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의 인격 속의, 우리의 품성 속의 거짓된 것들은 씻겨 나가고, 하나님의 인격으로 차근차근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년, 20년이 지난 다음에 진주가 되어 하나님께 멋지게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용광로(鎔鑛爐)에 금광석(金鑛石)을 집어넣어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연단의 과정을 통하여 비로소 정금이 되어 나온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이 광야는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영적인 신학교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목회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습니까? 목회를 그만 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요? 그런데 그런 사건들이 내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목회의 방법을 가르쳐주시는 정석이라는 거예요.
5) 이렇게 광야를 지나면서 삶으로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이제 하나님의 principle, 하나님의 spirit, 하나님의 사상과 생각, 하나님의 가치관, 하나님의 철학,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는 것이 19장부터 24장, 시내산입니다.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십니다. “나는 이런 것은 싫어하고 이런 것은 좋아한다.” “이제 네가 나와 연합하고, 내 사람이 되려면 이런 것은 피해야 되고, 이런 것은 순종해야 한다.”라고 detail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광야를 경험하지 않고 ‘시내산’을 경험하게 되면 사변적(思辨的)이 됩니다. ‘관념적(觀念的)’이 되고‘지식지향적(知識指向的)’이 됩니다. 머리만 돌아간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이미 삶속에서 하나님을 몸의 필요로, 삶의 필요로 경험한 사람들은 배운 말씀들이 사변적인 사상이 아니라, 철학이 되고, 삶이 되고, 자기 원칙이 됩니다.
6) 25-40장은 광야에서는 삶으로, 시내산에서는 그들의 사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한 다음에, 매일의 삶속에서 습관적으로 몸에 배게, 익숙하게 하기 위하여 매일 성막(聖幕)을 보고 일어나고, 성막이 진 중앙에 있기 때문에 사방으로 진을 쳤는데 그들의 진문을 성막 쪽으로 향하게 했잖아요? 그러므로 눈을 뜨면서 성막을 보고, 눈을 감으면서 성막을 보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몸에 배게 한 것입니다.
한때 모태(母胎)신앙은 뭐든지 ‘못해. 못해.’라고 하는 신앙이라고 하여서, 그때 목회자 자녀들이나 모태부터 믿음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열등한 의식을 가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목회자 가정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나 모태부터 믿음을 가진 부모님 밑에서 살았던 사람들보다 더 복된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믿으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어요. 이미 믿어졌으니까요. 성경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려고 하면 복잡합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한두 가지입니까? 그런데 모태신앙인들은 믿어야 한다는 것, 교회에 가야 한다는 것,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 기도해야 한다는 것, 어찌 되었건 하나님을 믿어야 잘 산다는 것은 이미 기본으로 주어진 복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믿을 것인가를 우리는 고민하잖아요? 모태신앙을 자꾸 평가절하(平價切下)하지 마세요. 몸에 배어 있잖아요? 최고의 복입니다. 성막생활이 그런 거였어요. 복음서에도 보면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다”(눅 22:39). “습관을 좇아 회당에 가셨다,” “습관을 좇아 성경을 읽으셨다.”는 말씀이 많이 나오잖아요? 이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몸에 배어 있지 않은 것은 다 무너집니다.
** 결국은 이 성막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격으로, 하나님의 사상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의 삶으로 매일 반복적인 생활을 통하여 이것이 생각만이 아니라 행동이 되고, 습관이 되고, 자신의 가치관이 되고 인격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작업을 하십니다. 그들이 성막에서 나올 때 모세의 얼굴에 하나님의 광채가 빛났고 심지어 모세의 얼굴이 너무도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마만큼 하나님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 고린도후서 3:18에 보면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형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작은 영광이었는데 그 이후에 매일 성막에 나아가 예배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다 보니 작은 영광에서 큰 영광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형상으로 나아가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가면 2-3시간씩 예배를 드려요. 일주일에 한번밖에 안 보이니까요. 우리 한국교회는 새벽기도하고,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등 일주일에 10번도 더 모여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이 반복적인 예배생활이 인격화하고 삶이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은 우리를 보고 비난해요. “너희들 그래봐야 안 바꿔진다.”고 하는데, 그래서 한국교회도 미국교회를 따라가서 새벽기도회도 없애버리고, 밤 예배도 없애버리는데, 이거 참 큰일입니다. 교회에 안 모이면 가정에서라도 계속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훈련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문화가 너무 세속화문화고, 교회가 자꾸 따라가고 있어요. 이제 남은 시간에 뭐해요? 금요일 오후에 일과가 끝나면 시간이 많으니까 둘이 놀러 다닌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부부가 언제 놀아본 기억이 있어야지요? 차 타고 가다가 운전 험하게 한다고 “왜 그따위로 운전하느냐?”고 욕하고, 다투다가 “차에서 내려라.” 그러고, 돌아와서는 이혼하는 거예요. 이것이 현실이에요. 언제 부부가 대화하는 법을 배워보았습니까? 명절날 모여 앉아서 고스톱이나 칠 줄 알지, 삼겹살 가지고 나가서 쌈 싸먹고 자다가 오는 것이 우리의 놀이문화인데, 시간을 주니까 사고가 생기는 거예요. 표현이 좀 죄송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시간들을 많이 활용해서 훈련시키고, 거룩한 문화로 바꾸어주어야 합니다. 큰일입니다. leisure를 즐길 줄 아는 실력이 없는 사람들이 돈 있고, 시간 있으니까 다 사고 치잖아요? 지금. 문제가 심각합니다. 교회만이 살 길인 줄로 믿습니다.
< 제 2 강 >
한번 복습하십시다. 1-2장 ( ), 3-11장 ( ), 12장 ( ), 13-24장 ( ), 25-40장 ( ), 이제 여러분들은 몇 장인가를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보고, 듣고, 알고 ( 장) 내려가서 ( 장) 건져내어 ( 장), 인도하여 ( 장), 데려가려 하노라( 장). 이제는 전체를 쉽게 파악이 된 줄 압니다. 이렇게 대략적인 약도를 가지면 전체를 파악하는 데 아주 쉽습니다.
1. 언약의 하나님 “은혜”
1 - 11 준비하신 , 준비시킨 목자
- 조상들과의 언약을 기억하심
- 배열
- 돕는 사람 준비
- 신비 체험, 체험
- 우상의 무력함을 드러냄
- 수많은 간증들
우선 ‘은혜’를 알아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는 것을 ‘은혜’라고 하지요
‘언약의 하나님’ 1장-11장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은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목자를 우리들에게 보여 주십니다.
1)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네가 4대만에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라는 언약을 기억하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찾도록 환경을 배열하십니다. 주로 사람들은 위기 상황을 만나야 하나님을 찾습니다. 살 만하면 하나님을 떠납니다. 제가 선교지를 다녀 보니까요. 선교의 적절한 시기는 문명화하기 전입니다. 경제적으로 부강해지고, 지적 수준이 높아져 버리면 하나님을 거절합니다. 유럽 같은 곳은 정말 선교하기 힘이 듭니다. 사실 선교사들조차도 많이 오염이 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독일 쪽을 가보니 너무도 자유주의 신학이 만연하여 “왜 성경을 공부하여야 합니까?”라고 합니다. 일본 가서 선교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문명화한 나라들은 선교하기가 아주 어렵고, 그 대신에 경제가 어렵고 빈도가 낮은 데는 그냥 가서 “우리 믿고 복 받읍시다.”라고 말을 하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한국 역시 70, 80년대에 그렇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환경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 불편한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환경을 배열하십니다. 거기에 바로 왕들이 쓰임을 받아서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어려운 고통을 주고, 힘들게 합니다. 우리나라도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군사 정권이 오랫동안 백성들을 억압하고 어렵게 하고 착취하여서 오히려 영적으로는 훨씬 더 살아나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중국 같은 경우에서도 공산화하였을 때 세계가 다 걱정을 했습니다. “신앙인들이 다 사라질 것이 아닌가?”했는데 나중에 문화혁명이 일어 난 이후에 열어봤더니 10배 이상 부흥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핍박이나 어려운 환경이 우리들을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3) 또 하나님은 돕는 사람들을 준비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위기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전혀 외면하지 않고 산파들을 통하여 그런 위기의 현장에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지만 부분부분 우리들을 도울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위로를 주고 격려하도록 돕는 사람을 배열해 주십니다.
개척교회를 하면서 정말 힘들고 희망이 없다고 할 때 어떤 분이 만 원을 탁 보내준다. 이럴 때 위로와 기쁨이라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우리가 어렵게 목회를 하고 교인들이 어려운 환경에 있을 때, 어떤 까마귀 한 마리가 와서 한 되의 쌀을 갖다 주고 갔다. 이것 굉장한 위로가 되지 않아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현장에서 돕는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들을 격려하십니다.
4) 또 이때는 하나님께서 신비와 기적을 많이 체험하게 하십니다. 모세가 80년이 지난 다음에 하나님을 인정하기까지 호렙산의 떨기나무 불꽃의 경험이 참으로 중요한 경험이 됩니다. 바울 사도가 다메섹으로 갈 때 얼마나 剛愎한 사람이었습니까? 열심도 보통이 아니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눈이 멀고, 말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고, 주님을 환상 가운데 만나게 되고, 이런 사건들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삶을 돌릴 수 있는 turning point를 주님이 제공해 주시는 것입니다.
5) 또 우상의 무력함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10가지 재앙은 애급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들입니다. 그들은 그 우상들이 자기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더 큰 신 더 powerful한 신이 나타나서 박살을 내는 것입니다. “와. 더 큰 분이 계시는구나.”라고 경외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6) 그래서 1장에서 11장까지는 간증이 많습니다. 믿지도 않는데 계속 믿도록 간증을 주는 것입니다. 사건마다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믿겠다고 결심을 하면 간증이 없어져 버립니다. 기적도 없어져 버립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부분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에 성도들에게 배열을 잘해 주어야 합니다.
1장에서 11장까지의 은혜가 13장 이후에도 똑 같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나타납니다. 1장에서 11장까지는 기도 안 해도 다 나타나잖아요? 내가 떡이 먹고 싶다 하면 그 다음날 누가 떡을 가져다줍니다. 아, 요즘에 먹을 게 부실해서 영양실조가 생긴 것 아닌가 하면 그 다음날 누가 쇠고기를 사다가 줍니다. 사실 기도도 안하고 생각만 했는데 그렇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고 나면 그렇게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할지라도 한 달이 지나도 고기를 사오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렇게 전혀 다른 환경을 주십니다.
우리가 유치원 다니는 아이를 대하는 태도하고, 중학교를 다니는 아이를 대하는 태도하고 대하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까? 아이가 옹알이 하면 예쁘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중학교 다니는 아들이 옹알이를 하면 부모가 어떻게 생각할까요? 예쁘다고 할까요? 쥐어박힙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대하는 태도가 똑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런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런 간증자를 계속해서 강단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교인들의 수준이 내려가 버리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출애급기를 공부하다 보면 그런 것들이 분별이 되는 것입니다.
“아. 이럴 때는 어떤 간증자가 필요하고 부흥회를 해도 어떤 강사가 와야 된다.”하는 것이 분별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해 보니까 3:7 정도, 담임목사가 70%를 감당하고 못하는 부분은 외부강사를 의존하는 것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1장-11장에는 우리가 전혀 준비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구원을 위하여 수많은 기적을 준비하시고 간증을 예비하시고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우리들을 계속 그것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2. 피의 구원
12장. 어린양의 피로 하심
- 새로운 을 주심
- 정하신 에 근거하여 양을 선택함
- 양을 잡음
-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름
- 집 안에 있어 양고기, 무교병, 쓴나물,
- 나그네 복장으로 그 밤을 지냄
1) 어린 양의 피로 구원함을 받는다는 새로운 시작을 주십니다. 달력도 다시 쓰게 합니다. B.C.(Before Christ) 그리스도 이전 시간과 A.D.(Anno Domini) 주님으로부터 출발하는 주님의 시간들, History를 His Story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 분의 이야기”입니다. 역사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역사와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후의 역사가 BC와 AD로 갈라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역사와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후의 역사가 확실하게 다릅니다.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변화가 없다는 것은 잘못만난 것입니다.
2) 정하신 기준에 의하여 양을 선택한다. 자. 여기서부터는 이렇습니다.
1장에서 11장까지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맞추는 것입니다. 화살표로 말하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내가 도망을 치면 그 도망을 치는 자리까지 좇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12장에서 40장까지는 누가 누구에게 맞추는가요? 내가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 그러면 너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맞추어 주시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죽을 때가지 이것만 붙잡고 살려고 그럽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반드시 ‘responding’이 있어야 합니다. ‘응답(應答)’이 있어야 합니다. 순종해야 성숙이 일어납니다.
12장부터는 하나님이 엄격한 기준을 가르쳐 주십니다. 목적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잃어버린 하나님의 통치권 하나님의 대행자로 세우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사람이 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고 사람을 버리고,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나에게 맞춰라.
7-80년대에 복음이 아직 가리어져 있을 때입니다. 당시 극동방송에서 권신찬 계열의 구원파가 복음을 가르치면서 한국교회에 복음이 소개되었습니다. 구원파가 복음을 소개하는 일에는 탁월합니다. 값없이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받는 것에 대하여서는 너무도 잘 가르칩니다. 구원파가 왜 이단이 되었는가 하면 ‘구원 받은 이후에 사람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또 목표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문제가 되었는데 구원파가 많은 교인들에게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언제 거듭났습니까? 거듭날 때 어떠하셨습니까?”하면서 사람들을 빼앗아가니까, 한국 교회가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이단들이 우리를 많이 도와준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인지, 영접기도가 무엇인지, 그 때에 사영리(四靈理)가 나와서 CCC에서 예수님 영접하는 것을 가르치면서 CCC가 한국 교회에 굉장한 호응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해야 되고 구원받은 구체적인 날짜, 또 성격의 약속들을 확인시키면서 구원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가르쳐주는 것은 참으로 좋았는데, 그 후로 제임스 케네디가 만든 개인 전도와 전도 폭발이 한국에 들어와 가지고 “오늘밤 죽어도 당신은 하나님 나라에 갈 준비가 되셨습니까?”하는, 이런 것들이 교회 가운데 큰 유익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았는가 확인하고, 못 받았다고 하면 복음을 제시해 주고 예수님 영접하게 하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그것이 복음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천당 갈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대로 살아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하면서 지금 교회가 그리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이후에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나 천당 가게 되었다.” “나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천당 간다.”는 구원의 확신! 그러고는 그 다음의 삶이 없는 것입니다.
3) 출애급기로 말하면 딱 한 가지만 가르친 것입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를 구원한다.”지금 이 12장을 보면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에 의하여 양을 선택하고, 양을 잡는 방법, 피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 밤에 그것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어떤 복장을 해야 하는지, 그 다음에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가 아주 detail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5분짜리 10분짜리 복음은 우리가 제시했지만 10년, 20년 이후의 복음을 우리들은 안 가르쳐 준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임종을 앞둔 환자나 한번 만나고 다시 안 만날 사람이나 긴박한 상황에 놓일 때 30분짜리, 한 시간짜리 복음 제시가 너무 유익합니다. ‘글 없는 책’ ‘사영리’ ‘부릿지 예화’ 요즘에는 글 없는 책을 다섯 가지 색깔의 팔찌로 만들어서 “그것을 줄 테니 이 말씀을 암송하라.”하면 그것을 받기 위하여 열심히 암송하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복음의 출발은 잘 되었는데, 이것을 가지고 전도하고 복음을 제시하는 것은 좋았는데, 유감스럽게도 이것이 목회의 text가 돼 버린 것입니다. 목회가 이것만 가지고 됩니까? 목회란 12장 이후의 삶을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데 계속 구원 받은 것만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온 메시지가 “열심히 잘 살면 상급을 받는다.”라고 기준도 없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12장 이후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내게 맞춘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이후에는 내가 하나님께 맞추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이후의 삶은 목회자가 해 주어야 합니다. 부흥사들은 이것을 못합니다.
4) 구원이라는 개념이 12장에서 피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곳을 출발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고 하나님의 동역자의 수준에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양을 잡고,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집안에 있어서 양고기를 먹고, 무교병을 먹고, 쓴 나물을 먹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집 밖으로 나가면 도움을 못 받지요? 여호수아 2장에서 기생 라합에게 여리고를 정복했을 때 모든 집안 식구들을 붉은 줄이 매여 있는 집 안에 있도록 했습니다. 만약에 집 밖으로 나가면 책임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피 안에 있는 복음’입니다. 이것이 기준입니다.
1장에서 11장까지는 기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는데도 막 들이받고, 말도 안 되는 억지도 부립니다. 그것을 하나님 쪽에서 꼬실라이제이션하려고 얼마나 propose를 합니까? 한 번도 아니고 열 번씩 다가섭니다. 그 때 “10번 찍어 안 넘어간 나무 없다.”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설득하신 것입니다. 강력한 방법으로 “이래도 안 믿을래?”하고 또 기적을 베풀고, “이렇게 해도 안 믿을래?”하고 또 기적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10번씩이나 기적을 베풀어도 사람들은 강팍하여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계속 찾아오신 것입니다. 언제까지? ‘꼬실라이즈드’될 때까지입니다.
그리고 12장에서 “아. 하나님 참으로 놀랍습니다. 진짜십니다.”라고 고백을 하면 “아. 이제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하시면서 구조를 바꾸십니다. 내려오는 화살표에서 올라가는 화살표로 바꾸십니다. 여기서부터 목회자가 하는 일입니다. 선교 단체에서도 여기까지 잘해 줍니다. 예수님을 믿게 해 줍니다. 영접기도도 해 줍니다.
목회는 12장부터 진짜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훈련받지 않은 사람은 못하는 것입니다.
11장까지는 어느 날 불 받아가지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 미국에 ‘타드 벤틀리(Todd Bentley)’라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 분을 보면 온 몸에 문신이 가득합니다. 그런데도 그 분을 통하여 어마어마한 일들이 나타나가지고 56명이나 죽은 사람이 살아났잖아요? 그 분의 비디오를 봤는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합니다. 그런 일은 불 받아서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예수님을 믿고 영접기도한 사람들에게 삶 속에서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고 주님이 대접받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목회자가 아니면 못 도와줍니다. 그러므로 목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양육은 아버지가 가정에서 하고, 교회가 하고, 영적인 아버지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2장 이후에 하나하나 이 필요한 요소들을 교육시키고 훈련시키는 것이 좋은 목회자입니다.
우리들도 자녀를 키우는데 30, 40년 걸리지 않습니까? 결혼한 이후에도 부모들은 자녀들을 care를 해 줍니다. 그렇게 한 사람을 키운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 5년 동안 고아원에 가서 돈을 확 풀고 돌아오는 것을 목회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5) 나그네 복장으로 그 밤을 지냅니다.
3. 신앙의 원칙과 세례
13-14장 : 홍해 길로 인도하심
- 신앙의 기본 원칙 세 가지를 가르쳐주심
- 로 돌려서 인도하심
- 배수진을 치게 하심 - 절망케 하심
- 바로와 그의 군대를 수장(水葬)시키심
- 모세(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게 하심
13-14장은 앞서서 피에 의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신앙이 뭔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한 ‘orientation’ 즉 원칙(原則)을 가르쳐 줍니다.
1) 13장은 신앙의 ‘orientation’입니다. 세 가지를 가르쳐 주지요.
2) 14장은 홍해 길로 돌려서 인도하십니다. 일부러 가까운 길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일부러 돌리십니다. 그래서 바다를 건너가게 하시고, 어려움을 겪게 합니다.
출애급 경로를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라암셋과 숙곳을 보십시오. 여기에 라암셋이고, 여기가 숙곳이지요? 라암셋에서 숙곳에 머무르게 되고, 이렇게 돌려서, 사실은 윗길, 가까운 길이 있지요? 여기서 이렇게 올라가면 가까운 길이 있는데 그길로 안 가고 이렇게 돌려서 밑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비하이롯’에서 홍해를 만나게 되고, ‘마라’에 들어가게 하고 그 다음에 르비딤광야, 그리고 아말렉과 여기서 싸우고, 시내산에 들러서 금송아지 숭배하고 여기서, 이렇게 홍해의 해변 길을 따라 가데스 바네아로 갑니다. 여기까지 가는 데 2년이 걸립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12 정탐꾼을 파송하여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는데 부정적인 결과를 얻게 되자 돌려서 38년을 더 광야에서 헤매게 합니다. 이렇게 바란 광야에서 돌다가 에시온게벨, 룻바다로 해서 동쪽으로 들어갑니다. 사실은 정탐하는 사람들이 정탐하는 코스가 아닙니다. 이렇게 우측으로 들어가서... 여리고는 가나안 가운데 있습니다.
3) “홍해 길로 돌려서 인도하셨다.”- 배수진을 치게 하시어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도록 다른 것을 전혀 의지할 수 없도록 절체절명의 위기의 자리로 몰아넣어 버립니다. 다른 길이 보이면 도망을 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홍해로 배수진을 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위기상황까지 데리고 가십니다. 거기서 “아이고 하나님. 나 살려 주세요.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결단을 하게 합니다.
4) 이스라엘은 구원하지만 바로와 그의 군대는 홍해에서 수장을 시킵니다.
5) 그리고 모세의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요한계시록 15장에 보면 이 모세의 노래가 신약시대에는 어린양의 노래로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광야에서의 내려놓음
15-18 광야 길로 인도하심
15: 수르광야, 마라의 쓴물 - 기대가 무너져 실망함
16: 신광야, 양식이 떨어짐 - 경제문제(건강, 관계...)
17A: 르비딤, 목마름을 경험함 - 를 잃음
17B: 아말렉을 만나게 하심 - 원수가 괴롭힘
18: leadership의 한계를 경험함 - 에 대해 실망함
13, 14장에서 신앙의 orientation과 세례를 경험하게 한 다음에 15장에서 18장까지는 광야의 길을 걷게 합니다. 수르광야, 신 광야, 르비딤, 아말렉을 만나고 모세의 leadership에 한계를 경험하는, 이 다섯 가지 일련의 경험은 굉장히 중요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중심의 사고’에서 ‘하나님 중심의 사고’로, 애급의 문화중심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 culture로 바꾸어지게 하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옵니다.
1) 수르광야에서 사흘 동안 물을 먹지 못할 때 마라에 가서 쓴물을 만나게 됩니다.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고 기대가 무너져 실망하게 합니다.
2) 신 광야에 갔을 때에는 양식이 떨어집니다. 경제의 문제가 온다는 것은 근본이 흔들린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마음을 먹고 예수님 잘 믿겠다고 하는데 건강에 위기가 오거나 그렇게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면 근본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근본이 흔들렸다는 것은 근본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근본 삼아야 할 텐데 왜 다른 것을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에 그 의지하는 것을 놓게 하십니다.
3) 17장에 가면 르비딤 광야로 갑니다. 목이 마릅니다. 인생이 dry하게 된 것입니다. dry할 때 어떻게 하느냐? 사추기(思秋期)라는 개념이 유행하는데 애들 다 키워 놓고 남편도 직장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고 “내가 지금 뭐냐? 이것이 인생이란 말이냐?”하면서 여자들이 그 기간에서 위기를 느끼는 것을 사추기라고 그러는데 그 동안 해 왔던 일들이 의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dry할 때 반석이신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라.” 그리스도에게 나아갔더니 생수가 터져 나온 것입니다. 성령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목마르고 배고플 때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성령을 체험하게 됩니다.
4) 그 다음에 그곳에서 아말렉을 만납니다. 내가 가는 길에서 사람 원수를 만나게 됩니다. 반드시 교회 안에 사람 원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모세가 기도의 짝을 찾습니다. 그전에는 아론과 훌이 중요한 일을 하지 않았지만 이 사건 이후로는 모세의 중요한 동역자가 됩니다.
5) 또 18장에 가면 이 200만을 감당하기에 모세에게 한계가 옵니다. 백성들도 지치고 모세도 지칠 때 이드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리더십의 원리를 가르쳐줍니다. 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동역자를 세워라 그 때에 하나님 나라의 구조가 출발하게 됩니다.
5. 광야에서의 수업목표 : 직면
15: 중심의 신앙 - 문제가 꼬이면 십자가를 적용하라.
⋅기대에 어긋났을 때 하나님의 원칙으로 돌이키라.
16: 하나님 중심 - 바로가 아닌 께 집중하라.
⋅사람이나 환경이 아닌 하나님, 그 말씀에 집중하라.
17A: 성령님 중심 - 목마르면 반석을 찾아라.
⋅메마른 광야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리라.
17B: 사람 중심 - 영적 전쟁을 위한 를 만들라.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할 때 의 조력자를 찾아라.
18: 하나님 나라 중심 - 를 이루어가라.
⋅목자를 돕는 하나님 나라 드림팀을 이루라.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이런 광야 길로 의도적으로 인도를 하셨는가?
1) 자. 15장에서 마라의 쓴물에, 물은 있지만 마실 수가 없기 때문에, 나무를 집어넣으라고 하십니다. 이 한 나무를 워렌 유어스비는 ‘십자가’로 해석을 합니다. “문제가 꼬이면 십자가를 집어넣어라.” 십자가를 적용한다는 것은 회개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나의 잘못을 고백하고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피의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는 하나님의 심판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피를 붙잡으면 항상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거든요
“피 바르면 내가 무조건 살려 준다.” 하나님이 약속했거든요. 그러니까 문제가 생기면 “아이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데...” 하면서 얼른 갖다가 피를 바른 것입니다.
한번 따라서 합시다. “꼬이고 안 풀리면 얼른 피 발라라.”
피를 바르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니까 우리가 피를 바르면 하나님은 꼼짝없이 도와주게 돼있어요. 약속이니까 얼마나 놀라운 복음입니까?
회개기도 해서 안 풀리는 문제가 거의 없습니다. 90%는 풀립니다. 철저하게 회개기도 하면 다 풀립니다. 회개는 내 중심에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돌아가는 거지요
그래서 이런 문제를 경험하면서, 이런 광야를 지나면서 사람들이 십자가 중심의 신앙을 붙잡게 됩니다. 피의 복음, 보혈의 능력, 십자가의 원리 등 신앙생활의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2) 16장에 가면 양식이 떨어져 버렸어요. 경제는 사람생활의 근본인데 경제가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가지고 갔던 양식이 다 고갈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리기 시작해요. 지금까지는 양식을 누가 줬어요? 바로가 줬어요. 그러니까 바로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 만나기 전에는 세상에 아부해야 되고, 또 상사에게 뇌물 바쳐야 되고, 그렇게 공급을 받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주인이에요. 그래서 더 이상 뒤를 보지 말고, 바로를 기대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16장이 바로 이런 말입니다.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네가 밥이 없고, 돈이 없어도 약속 믿고 말씀 붙잡고 살 수 있겠느냐?” 이것이 목사들에게 제일 real한 필요입니다. 개척교회하면서 정말 쌀이 떨어지고 목사가 사례비도 못 받고 교회관리비도 못 낼 상황에 갔을 때 정말 약속을 붙잡고 몸부림치는 시간들...
말씀으로 살아야 되고 떡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바로가 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애급에 충성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떡을 주신다, 하나님이 내 양식이 되신다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양식되고 힘이 되고 그 말씀을 먹었을 때에 내게 힘이 된다는 것을 경험하기 전에는 돈이 힘이었습니다.
돈이 떨어지니까 힘이 쪽 빠지더라고요. 그런데 돈이 아닌 말씀을 붙잡고 그 힘든 시간들을 지나면서 “아! 인생이 돈이 아니라 떡이 아니라 말씀이구나.”하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 다 경험해 보셨지요?” 개척교회를 하신 분들은 다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척교회를 하지 않으신 분들은 가정에서 경험하시도록 하더라고요. 어찌 되었던 돈이 아니라, 빵이 아니라, 말씀이라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들을 돌리십니다. 이것 해결 안 되면 목사가 먹사가 되는 거예요. 맨날 연말이 되면 돈 얼마나 올려줄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고, 더 많이 준다고 하면 직장을 옮기려고 하고, 목회자가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작업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바꿔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들어보니까 다 대동소이하더라고요. 이럴 때 사람 찾아다니면서 구걸하면 이것이 자꾸 늘어납니다. 기간이 연장이 됩니다. 그러니까 절대 이런 위기가 오면 사람 찾아다니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딱 하나님께 맡기도 말씀 붙잡고 매달립니다. 그리고 몇 달 살아갑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 말씀 주세요.”하고 매달리면 말씀으로 사는 구조로 바꾸어집니다. 지금 아멘 하신 분들은 다 경험이 있는 분들이지요? 바로가 아닌 하나님이, 애급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는 말씀 안에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이 신광야가 극복되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성도가 말씀중심인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예수님께서 시험을 당하실 때 하신 말씀의 믿음으로 사는데 이것이 보통고백이 아닙니다. “진짜 나는 돈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산다.”고 양심적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되는데 사실 우리가 그렇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계셔야 할 자리에 돈이 딱 앉아가지고 ‘맘몬신’이 나를 지배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워낙 목회가 어려우니까 “야. 나한테 저런 풍성한 시대가 올까?” 하면서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량적인 것을 기대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의 제목입니다.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돈을 좇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실체를 보게 됩니다. “아 내가 돈을 의지하고 살고 있네.” 돈이 나의 위로가 되고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가 아니라, “나의 힘이 되신 돈이여! 그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그러면서 내가 돈을 좇는 삶을 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3) 17장에 가면 dry해집니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고 합니다. 목마르면 어떻게 하느냐? 반석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반석이 생수를 낸다.” 거기 갔더니 생수가 터진 것입니다. “메마른 광야에서 생수가 터지리라.” 세상은 목이 마릅니다.
교인 100명 되면, 200명 되면 숨 좀 쉴 것 같습니다. 한 300명 되면 “아 교회가 너무 작으니까 시끄럽다 한 500명은 넘어야 하지 않을까?”한 500명 되니까 “그래도 1,000명은 돼야 그래도 교회가 폼을 잡지.”라고 하십니다. 목회의 목마름이 해갈이 되요, 안 되요? 한 만 명 되는 교회 목사님께 물어보세요. 그러면 “만 명은 아직 작아. 그래도 오만 명은 되야 선교도 하고 그렇지.”목마름이 해갈이 안 됩니다. 결국은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반석이신 그리스도에게 가서 그 분으로부터 성령을 체험하고 그분으로부터 뜨거운 불이 우리를 지배하면 그때부터 목회가 재미가 있고, 성도 한 사람을 보면 속에서 의욕이 일어나고, 기도하는 시간이 즐겁고, 설교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사람 때문에 즐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다른 기쁨이 아니라 성령께서 내 인생에 적셔 주시는 그 목회의 감격, 신앙생활에 어떤 감격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사모님은 길을 가면서 계속 전봇대를 붙잡고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왜 전봇대를 붙잡고 기도를 했느냐?”고 물으니까 “전봇대 끝에 십자가가 달려 있지 않아요?”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교회당 건물만 보아도 가슴이 찌릿찌릿하고 목사님 뒷모습만 봐도 울렁울렁한 것은 성령 받으면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목회의 dry함이 언제 해결 됩니까? 수효가 늘어나고 누가 예우를 잘해 주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인 성령께서 내 마음을 채워 주시고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 날 만져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아들아. 수고했다. 내가 너의 수고를 알고 있다. 하늘에서 해같이 빛나리.” 하면 눈물이 쭉 흐르는 것입니다.
주일날 피곤해서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교회를 떠나기 전에 강단에 엎드리어 “하나님!”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아들아 수고했다.”라고 만져주십니다.
그렇게 한번 만져주시는 touching에 한 달은 그냥 가요. 무슨 재미로 목회를 하십니까? 우리 목회가 dry할 때 누가 어떻게 많이 모였다. 라고 방법론을 찾지 말고 성령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위로부터 오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위로부터 공급되어진 위로와 그 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입니다. 목마르면 반석을 찾아서 주님께 호소하고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처한 목회의 상황, 장로님들과의 갈등구조, 교회가 자꾸 어려움을 겪고 교회가 갈수록 숫자가 줄어듭니다. 그리고 분열을 합니다. 이러한 메마른 광야와 같은 상황에서 내가 만난 그리스도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생수의 공급이 우리 목회를 기름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오고 고통이 온다고 할지라고 강단이 꿋꿋하게 서 있으면 교회가 흔들림이 없습니다. 지금 광야가 십자가 중심,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성령님 중심, 우리들을 하나님 만나도록 유도해 주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사건은 하나님을 만나도록 우리들을 끌고 갑니다. 이런 표현이 있지요? “신구약 66권 어디를 찔러봐도 피가 나온다.”
창세기에도 예수님의 피가 있고, 레위기에도 예수님의 피가 있고, 요한계시록에도 예수님의 피가 있는 구속사적인 성경 해석의 틀이 있어요.
“성경 어디를 열어봐도 그리스도의 철철 흘러넘치는 십자가의 피가 있다.”
마찬가지입니다. 광야 어느 사건도 하나님을 만나도록 도와주지 않는 사건이 없습니다. 이것을 로마서 8:28에는 뭐라고 했어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뭘 말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고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고 성령님을 체험하도록 우리들을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방법론을 찾으면 하나님을 못 만나게 됩니다. 방법론은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 key가 되지만 그것이 원칙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광야를 지날 때,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이 이 사건을 왜 배열하셨을까를 생각하면서 이 사건 속에서 그리스도를 예수님을 성령님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로 focus를 바꾸어 버리면 쉽게 해결이 됩니다.
4) 아말렉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주 호전적이고 싸움을 잘하는 아말렉이 그들을 막았을 때 하나님은 영적인 전투를 위한 partner를 찾게 했어요. 아론과 훌을 좌우에 세우고 모세의 약점을 보완하게 한 다음에, 현장에는 여호수아를 보내서 싸우게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시는가 하면 “이 전쟁은 혼자 하는 싸움이 아니라 단체로 하는 싸움이다.” 하면서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목사가 계속 부흥하고 그러면 사람이 귀한 줄을 모릅니다. 사람들이 하도 왔다 갔다 하니까 “저것 저러다가 또 가겠지. 그리고 더 좋은 사람 보내 주겠지”하면서 사람 소중한지를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사람에게 괴로움을 당할 때, 옆에서 돕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동역자, 나에게 격려와 지지를 해줄 한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을 얻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할 때 기도의 조력자를 찾아라!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사람은 목자가 될 수 없고 지도자가 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내가 이놈들을 다 쓸어버리겠다고 하실 때 모세가 뭐라고 말을 합니까? “절대로 안 됩니다.”우리 한국식으로 말하면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됩니다.”라고 사람을 붙잡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근본 mind거든요. 자기 누이와 형이 배신을 할 때도 모세가 중보해 주었던 것입니다. “가족들이 되어서 나를 배신해?”라고 화를 낼 수 있었지만, 끝까지 그들을 중보했습니다. 사람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회의 성숙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드디어 교회의 틀을 얻기 시작합니다. 교회는 사람과 사람의 연대거든요.
5) 그 다음에 18장에 가면 모세의 leadership에 한계가 생겼어요. 그럴 때 모세의 장인 이드로를 통하여 지혜를 주시는데 “이 나라는 모세의 탁월한 지도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영력을 가진 사람, 능력을 가진 사람,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을 세워서” 모세가 하는 일을 동역하도록 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 나라의 틀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완전한 틀이지요. 교회 안에 이렇게 목자를 도와서 어느 part를 책임져 줄 수 있는 dream-team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아론과 훌의 역할을 감당해 주고 기도의 동역자가 되어 주고 한 part를 맡아서 “이 부분은 제가 책임져 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목사님께서는 전적으로 목회에 전념하십시오. 제가 다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dream-team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이거든요. 이 dream-team을 못 만들면 계속해서 leadership의 한계가 드러나거든요. 희한한 것은 목사가 해결 못하는 것을 교인들이 해결을 합니다. 목사 말은 안 듣는데 같은 평신도 말은 잘 듣거든요.
그래서 이 광야가 뭐냐 하면 어떤 사건을 통해서 기대가 무너지면서 십자가를 알게 하시고, 양식이 떨어지면서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게 집중하는 훈련을 시켜주시고, 목이 마르고 해갈이 안 될 때 반석이신 주님께 찾아가서 기도함으로 성령을 경험하게 하시고, 사람이 소중한 것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목자와 함께 dream-team이 이루어져서 같이 만들어 간다는 이 놀라운 하나님 나라 비밀을 광야가 그대로 우리 몸에 익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냥 이유 없는 고난 “하나님은 나만 미워해.” 하는 고난이 아니라, 너무도 정확하게 하나님이 의도하는 쪽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정확한 방법들의 고난을 배열하셨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인도하는 광야교회가 그랬다면 오늘 이 시대를 사는 21세기의 교회, 오늘의 우리 목회 현장, 교인들의 삶의 현장에도 결국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날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은 광야를 배열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광야를 정확하게 분별해야 해요.
지금 하나님이 뭘 주시려고 이 사건을 배열하셨는가? 한번 따라서 합시다.
“틀림없이 무슨 뜻이 있을 텐데...” 시작!
‘틀’에다가 발음을 쎄게 해서 이빨이 빠질 정도로 해야 뭐가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광야를 보지만 하나님은 광야 너머에 하나님의 의도를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나를 네 속에 집어넣기 위하여, 네가 다른 것을 가질까봐서, 본질이 아닌 다른 것을 가질까봐서, 네가 붙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게 하고 본질인 하나님을 붙잡게 하려고 너를 광야로 인도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13장- 24장까지가 뭐예요? “인도하여”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서 인도하신 것입니다. 홍해도 하나님의 의도였고, 광야도 하나님의 의도였고, 돈 떨어진 것도, 사람 원수 만난 것도, 목사님 혼자서 다 할 것 같았는데 목사님의 문제가 사방에서 터지는 것입니다.
“이럴 수가 있느냐? 옛날 목사님이 아니다. 변질되었다. 부흥하니까 목사님이 돈 많은 여자들만 좋아한다. 우리 목사님은 대학 나온 사람들만 좋아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문제가 터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 다 경험해 보셨지요? 그럴 때는 “목사가 다 하는 것 아니야. 누구 도와줄 사람 없습니까?” 하면 교인들이 다 가서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역자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오해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교회에 동역자가 구석구석 세워지면서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져가는 것입니다. 드디어 networking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교회는 절대로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 지체들이 연합하여 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 12장 보세요. 다 지체가 몸을 이루어간다고 그랬어요. 그러나 똑똑한 목사님들을 그것을 못해요. 시원치 않거든요. 누구에게 맡기지 못해요. 자기가 다 해야 하고 부목이 하는 꼴을 못 봐요. 그러면 하나님이 박살을 내 버리는 것입니다. 담임목사 하는 것마다 교인들이 시비를 걸게 합니다. 심지어 설교하면 설교하는 것마다 꼬투리를 잡고 “누가 고자질했습니까? 오늘 설교 왜 그렇게 하십니까?”하고 바로 전화가 옵니다. 설교 준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리저리 피하다 보면 설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하고 내려와야 합니다.
그렇게 leadership의 위기를 느끼면서 “아. 돕는 사람이 필요하구나.”하면서 부교역자를 인정하게 되고 장로님들을 인정하게 되고, “이제는 남선교회 회장, 여선교회 회장님들이 나 와서 이 일을 좀 해 주십시오.” 하면서 목사의 영역들을 양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동의하시면 ‘아멘’ 합시다.
“출애급기를 통하여 인생이 보이게 하시고, 목회가 보이게 하소서.”
< 출애급기 강의 (3) >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신분만 변화되었지 본질은 아직 안 바꾸어졌습니다. 여전히 생각이나 삶의 목표나 삶의 패턴, 문화생활이 다 애급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씨,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후사. 이런 새로운 신분, 새로운 삶으로 우리들 초대해 주셨는데 사람이 바꾸어진다는 것이 천지가 개벽하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어떤 문화생활을 30년, 40년 해버리면 새로운 문화권에 변화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선교사로 나가시는 분들을 보니까 선교사로 나가려면 30대 이전에 나가야 합니다. 40대 이후에 나가신 분들은 고생을 엄청 해요. 생각도 잘 안 바뀌고, 특별히 언어가 잘 안 되고 문화가 안 바꾸어집니다. 가서 매일 김치 생각하고, 된장찌개 생각하고, 이러면 안 되는 것이거든요. 향수병 걸려 가지고 아내들은 다 우울증에 걸려 있고, 그러나 일찍 20대, 30대에 가신 분들은 그래도 적응이 빠릅니다. 덜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400년이란 세월 동안에 애급에서 애급 사람으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 날 모세가 나타나서 ‘우르릉 쾅쾅’하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알지? 날 따라오면 돼.” 하면서 데리고 나왔는데, 몸뚱이는 데리고 나왔는데 전혀 생각이 안 바뀌는 것이에요. 40년 다 끝날 때까지도 하는 얘기가 뭐냐 하면 “그때가 좋았는데 ⋯, 바로에게서 우리가 끓는 가마에 고기가 좋았고 부추, 파, 마늘이 좋았고 ⋯” 이런 헷갈리는 얘기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을 100번, 200번, 매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잖아요?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떴고 만나, 메추라기, 생수 터지고 그 이집트 광야를 가보신 분들은 알아요. 물을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거기서 매일, 고린도전서 10장에 보니까, 저희들을 따르는 반석으로부터 매일 생수를 공급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매일 물이 200만 명 이상이 먹으려면 강이 흘러야 되잖아요? 그런 기적을 경험해도 사람이 안 바뀌는 것이에요. “사람이 변하는 것이 참 어렵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광야를 준비하셨고, 시내산을 준비하셨고, 성막을 준비하셨어요. 이 과정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교인들을 환경으로 자꾸 다루셔요. 목사님은 바로 시내산의 메시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상을 가르칠 뿐 아니라 광야에서 그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들을 어떻게 영적으로 인도할 것인가? 이걸 우리가 잘 배워야 되요. 모세의 경우를 보니까, 미리 가서 그 동네에서 40년을 살게 하셨어요. 목회할 때도 그의 우리 패턴이, 저는 평생에 건강이 약해서 늘 몸이 아팠어요. 그래서 치유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어요. “환자를 돌보고⋯, 또 정신적으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외롭고” 하는, 혼자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그런 내면세계의 아픔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학을 공부하고 계속 치유에 대한 관심을 가진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은 사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살아왔던 삶의 과정들이 내 mission하고 연결이 되어 있어요. ⌜위치크래프트(witchcraft)⌟라는 좋은 책이 있어요. 그 책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와요. 초등학교 5-6학년 때까지 제일 좋아했던 것이 무엇인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냥 밥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픈 일들이 있어요. 초등학교 때까지 그 12세 이전에 경험했던 자기 삶의 열정과 관심과, 또 자기가 소일했던 시간들을 조사해보면 우리 인생의 mission과 연결이 된다는 거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지 사명이 무언가를 찾아낼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광야가 사역하고 연결이 되더라고요. 또 제가 이 말씀 너무 궁금했어요. 성경이 알고 싶고 진리가 뭔지 도대체 인생이 뭔지 역사가 뭔지 이런 것이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런데 속 시원하게 가르쳐주는 데가 없잖아요. 책을 봐도 그렇고..., 그러니까 그런 자기가 살아왔던 갈증, 배고팠던 시절 내가 경험했던 아픔들이 결국은 내가 앞으로 해야 할 mission, 사명과 연결이 되어서 쫘악 펼쳐지는 거예요. 하나님은 모세를 미리 그 광야에 보내서 광야 생활 경험하게 함으로 40년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을 도와줬다 말이요 이렇게. 이런 게 하나님이 아주아주 정확한 인도하심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목회의 어려움들 개인을 통하여 push를 받고 고통을 당하고 이런 것들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어요. 그게 다 mission과 연결이 되어 있어요. 그것이 내 운이 나빠서 하나님이 날 미워해서 이런 것이 아니에요. “이 사건이 내게 의미를 줄까? 하나님의 구속사역에서 틀림없이 무슨 뜻이 있을 텐데⋯.” 자꾸 메시지에 대하여 물어보아야 합니다. 물어보면 해답이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 왜 마라에 쓴 물을 경험하게 했습니까?” 물어 봤더니 그게 구속사의 한 비밀을 얘기한다는 말입니다. 왜 돈이 떨어지게 하고 어려움을 당하게 하십니까? 저의 동기 가운데 부산에서 보건소 소장을 하다가 늦게 부르심을 받아가지고 약사 출신인데 신학교에 왔어요. 신대원(神大院) 다니면서 돈이 많으니까 부자였어요. 그 때 돈으로 8,000만 원이라면 어마어마한 큰돈인데, 8,000만원을 들여서 2층 넓은 평수 임대해 가지고 개업예배가 아니고, 그것 뭐라 그래요? 오픈 예배, 첫 예배를 드리는데 얼마나 치장을... 샹들리에(chandelier) 쫘악 달아놓고, 교회인데, 그 때 베스타가 처음 나왔을 때 베스타 턱~ 빼가지고 이름 쭉 써가지고 다니고 금방 교회 부흥할 줄 알았어요. 교회 부흥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돈 다 떨어질 때까지 하나님이 부흥 안 시켜 주시더라고요. 전부 돈으로 하더라고요. 교인이 헌금해야 할 이유가 없어요. 목사님이 돈 많으니까. 목회했던 자리가 송파였는데, 사모님은 매일 영동 돌아다니면서 (그 때 아직 강남이 번성하지 않을 때), 돌아다니면서 그 때 돈으로 1,500만 원짜리 자개농 보러 다니고, “내가 약사한테 시집왔지, 내가 목사한테 시집왔나?” 그러면서 ⋯, 돈 다 떨어질 때까지. 하나님께서 목회에 어려움을 주시더라고요. 그 때 그걸 제가 옆에서 보면서 “돈이 하나님이 아니다,” 목회하면서 자기 자신 있는 것 있잖아요? 그걸 다 하나님이 접수하시는 거예요. 돈 접수, 사람 접수, 의지하는 것 접수하면서 “내가 아니며 하나님입니다.” “바로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살아왔던 방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고백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paradigm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계시는 거지요. 모세는 80년 동안 훈련 마치고 왔고, 우리는 하나님이 불렀는지, 내가 불렀는지 일찍 왔기 때문에 목회하면서 훈련을 받는 거예요. 좀 어렵지요? 훈련 받고 왔으면 쉬운데 그러나 어찌되었든 우리가 경험한 아픔들 뜻대로 안 되었던 것들이 전부가 무위가 아니고 헛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들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사실을 광야 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이해할 수 있어요.
자. 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가르쳐주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가르쳐 주는데 구원은 우리가 천당 가는, 구원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에요. 그러나 구원 받은 이후에 이제는 내가 하나님의 필요를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필요는 뭐냐? 하나님의 나라에요. 나라가 망가졌거든요. 하나님이 왕으로서 통치하셔야 되는데 대접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셔야 되는데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이 왕권을 사탄에게 넘겨줘 그 때부터 이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사탄의 나라가 되어 버린 거예요. 음부의 권세가 세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6. 구원, 하나님의 나라 6:5-8
1) 백성 - 나는 누구인가? (소속, 신분) 5
⋅ 씨(seed)와 소속 - 신분이 바뀐 사람
⋅ 장자를 잃은 자와 장자권자(후사)
2) 주권 - 누구를 섬기느냐? (예배) 6-7
⋅ 누가 나의 구원자냐?
⋅ 나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느냐?
⋅ 누가 나를 끌고 가느냐?
3) 영토 -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문화, 가치관) 8
⋅ 애급을 사느냐? 가나안을 사느냐?
⋅ 나의 기업은 무엇이냐? (공급, 위로, 상급, 기업)
⋅ 나의 영은 누구와 교통하는가? - 영의 생각을 좇음
그래서 6장 5절부터 8절을 보면 구원이 바로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줘요. “(5) 이제 애급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급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7)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급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
1) 백성 - 나는 누구인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해요. 무엇 무엇입니까? 초등학교 3학년 사회생활에 나오는 얘기인데, 국가를 이루기 위한 세 가지 조건, 영토(領土), 백성(百姓), 주권(主權).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에요? 영토, 주권, 백성, 다수결로 정할까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해에 있었어요. 국민도 없고, 또 땅도 잃어버렸지만. 나라가 있었어요, 없었어요? 있었죠. 같은 땅, 같은 민족이지만 왕건(王建)이 다스리던 나라를 고려(高麗)라 하고, 이성계(李成桂)가 다스리던 나라는 조선(朝鮮)이라고 그럽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뭐에요? 주권입니다. 주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어요? 하나님께 있습니다. 마귀가 주권을 장악해 가지고 있으면 지옥입니다. 사탄의 왕국이에요. 내 인생의 주권을 하나님이 쥐고 계시면 나는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 거고, 내가 쥐고 있으면 내 왕국 살고 있는 거고, 사탄에게 주권을 내주면 사탄의 왕국에 사는 거예요. 누가 주권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자. 세 가지 중 첫째, 5절에 보니까 백성, 나는 누구인가? 소속(所屬) 신분(身分)
5절 봅니다. “이제 애급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지금까지 이 백성은 애급 사람이 종으로 삼았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들을 다시 calling한 거예요. 씨와 소속, 전에는 애급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에요. 애급 사람들은 장자를 잃었어요. 출애급 사건 때에 장자를 죽었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장자권의 복을 갖고 출발합니다. “이스라엘은 나의 장자(長子)라” 그랬지요? 예수님을 믿게 되면 구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장자권(長子權)을 가져요. 장남들 한번 손들어 보세요. 예. 고맙습니다. 옛날 우리나라 문화와 이스라엘 문화가 비슷한데, 왜 장남들이 유산을 많이 받아요? 예, 부모님 모셔야 되고, 또요, 부모님 일찍 돌아가시면 가족들 다 돌봐야 되지요. 이스라엘이 장자라는 말은 무슨 말이겠어요?
< 장자의 특권과 책임 >
“내가 이스라엘을 장자로 삼는다.” 뭘 말하겠어요. 유산을 많이 받는다는 개념만이 아니에요. 권리가 크지만 뭐가 커요? 책임이에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나라가 전 세계를 책임져야 되요. “세계가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내가 너희를 제사장 나라로 삼아서 세계를 네게 속하게 하겠다.” 출애급기 19:6에 나오는 말씀인데 세계를 하나님께로 되돌리기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장자로 세워서 그들이 제사장 사명을 감당함으로 세계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본으로 장자권의 복을 받아요. 이유가 뭐냐 하면 우리가 복을 먼저 받아서 지금 안 돌아온 저 세계 만민들, 내 곁에 있는 불신자들을, 그들을 주께로 돌이키게 하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먼저 나에게 복을 준다는 거죠. 돈도 더 많이 주시고, 특권도 더 주시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도 받게 하셔서 이것 가지고 저들을 구원하라고. 이걸 가지고 빨리 사회로 보내서 선교하고 구제하고 하면서, 저 사람들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들이는 게 장자권의 특징입니다.
2) 둘째로 누구를 섬기느냐? 예배의 대상이죠. 6-7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급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급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나는 너희 하나님의 되고 싶다. 너희를 내 백성 삼는 것은 너희 하나님 되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내가 구원자인 걸 너희가 알고 너희가 예배를 드리고 섬겨야 할 여호와 하나님인 줄 알게 하기 위해서 내가 너희를 구원했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 나의 구원자냐? 나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느냐, 누가 나를 끌고 가느냐? 이것은 주권자가 누구냐를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 되기 위해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3) 셋째는 영토(領土)입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으로 삼게 하고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영토!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단지 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문화권을 말하는 거예요. 문화, 가치관 애급을 사느냐 가나안을 사느냐? 나의 기업은 무엇이냐? 나를 위로하고 나의 공급이 되고 나의 상급이 되고 나의 기업이 되는 게 무엇이냐?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기쁨을 얻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살 때 하나님이 직접 먹이셨어요. 만나를 주셨어요.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니까 그 땅에 소산을 먹게 해요. 우리가 은혜에 단계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도우심을 받고 하나님이 일일이 도와주셔요. 그러나 성숙하게 되면 우리가 사역하고 일하는 현장에서 우리가 기쁨을 누립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 믿고 성경공부하고 교회 생활하는 게 이것 잊고 따로 자기 문화를 가진 건 그건 이중문화로 안 되는 거예요. 이중적입니다. 그것이 광야 백성이거든요. 몸뚱어리는 나왔는데 옛날을 그리워하는 거예요. 그때가 좋았는데, 그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세 가지가 필요한데 순서적으로 보면 제일 먼저가 뭐에요? 주권입니다. 예배의 대상이 누구냐? 누구를 섬기며, 누구를 따르느냐? 누가 너희의 예배 대상이냐?
① 주권의 문제가 첫째로 결정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② 둘째로 주권의 문제가 결정되면, 백성이 바꿔져야 합니다. 점점 우리의 가치관, 사고나, 우리의 문화 우리의 생각들 백성의 수준이 바꿔지기 시작해요.
③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 땅이에요. 영토입니다. 즐기고 또 relax하고 이런 것들 굉장히 중요합니다. 나의 영은 누구와 교통하는가? 나는 무얼 좇아 사는가? 이것도 문화생활(文化生活)이죠, 생각이 아주 중요해요. 그래서 구원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불행하게 살았던 사람,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 살았던 사람들이 죽은 다음 내세에 가서 위로를 받고 보상을 받는다는 그런 차원이 아니고, 바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하나님이 다시 예배를 받으시고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고, 그리고 그 문화적 삶의 영역들이 다 하나님의 냄새를 풍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공급하신 것들로 즐기며 사는 그런 삶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구원의 목적입니다.
7. 제사장 나라로의 변화, 성장
1-12 은혜 : 피동적
⋅ 바로의 종, 노예 ⇒ 하나님의 장자
13-18 결단 : 자기부인, 능동적
⋅ 바로를 따름(종, 타율) ⇒ 모세를 따름(백성, 자율)
⋅ 자기 기대치 ⇒ 인도하심을 따름, 예배자가 됨
19-24 시내산 : 의도적 결단
⋅ 사상, 생각, 가치관의 변화
25-40 성막 : 습관화, 체질화
⋅ 하나님의 스피릿으로 삶
⋅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대행자로 나아감
1) 자. 제사장 나라, 하나님이 제사장 나라로 그들을 부르셨는데,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1장-11장, 12장까지도 보면 은혜입니다. 피동적이에요.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것, 심지어 유월절 양 마저도 우리가 결정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지정해 놓은 거예요. 양을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만약 하나님이 “코끼리를 잡아라.” 하셨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코끼리를 잡아야 되죠, “돼지를 잡아라.” 했으면 돼지를 잡아야 되죠,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거예요. 피동적입니다. 바로의 종 된 상태에서 노예 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장자가 되는 은혜의 단계라고 합니다. 은혜. 율법의 행위 공로로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개념은 우리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셨다는 개념이죠.
2) 13-18장은 이제 내가 action을 취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calling에 대해서 내가 응답을 하는 겁니다. 결단을 하는 거죠. 내 식, 내 방법, 내 스타일 내가 살아왔던 방식을 내가 버리겠습니다. 자기 부인하겠습니다. 전에는 피동적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능동적으로 대처를 합니다. 바로를 따랐던 때는 종으로 타율적으로 남에 의해서 끌려갔죠. 그러나 모세를 따를 때부터는 하나님이 백성들을 타율에 의한 사람이 아닌 자율적인 사람으로 바꿨어요. 이런 개념입니다. 말을 안 들어요. 백성들이 그러면 한 삼 일만 물을 안 줘 봐요. 영 헷갈리는 소리를 해요. 그러면. 만나를 한 일주일 안 줘 봐요. 그러면 말 듣겠어요, 안 듣겠어요? 잘 듣지요. 200만 명 가운데 그렇게 했으면 몇 사람쯤 들어갔을까요? 그렇게 했으면, 아마 두 사람은 빠지고 199만 9998명은 다 들어갔을 거예요. 그 뭐 옛날에 우리 부모들이 어떻게 했어요. 말 안 들으면 “어엇” 그러면 다 해결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종밖에 안 되요. 노예입니다. 매가 무서워서 주먹이 무서워서 불이익이 무서워서 끌려오는 것은 종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 받은 이후에 그렇게 타율에 의하여 끌려 다니는 인생을 살기를 원하지 않으셔요. 본인이 선택하게 하는 거예요. 땅 다 주고 물 다 주고 필요한 것 다 주면서 그래도 네가 네 의지 속에서 나를 선택하겠느냐? 기회를 주는 거예요. 선택할 기회가 있는 사람은 자율적인 사람이에요. 그런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기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른다고 하는 것, “나는 저리 가고 싶은데요,” “아니야, 이리 따라와. 여기가 더 좋아.” “난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닌데요.” 이렇게 나와 하나님의 세계가 자꾸 부딪쳐요. 그럴 때에 내 기대치를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를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왕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 이걸 훈련하는 것이 광야입니다. 가끔 어떤 분들이 그렇게 표현을 해요. 또 우리가 교회에서 그러한 간증들을 할 때가 있지요. 대구에서 어떤 분이 목사님을 대적 했대요. 그랬더니 문둥병이 걸려 버렸대요. 얼마 전에 저희 지역에서 일어난 일인데, 교회 수 장로님이 주일날 중국으로 골프를 치러 갔다가 심장마비로 죽어버렸어요. 주일날 오후에, 큰 교회 대표 장로님인데, 주일날 테니스를 치러 갔다가 자동차가 뒤집혀 가지고 회개했대요. 하나님이 이런 방법을 가끔 쓰셔요. 아주 희귀하게. 그런 방법을 계속 쓰시면 사람들이 종이에요, 자유인에요? 종이 되어 버립니다.
한 번 물어볼게요. 교회에서 목사님 대적하면 문둥병이 막 와 버려요. 솔직하게 한번 말해보세요. 하나님이 바로 손을 보시면, 한 번만 손보면 내 목회가 편할 텐데. 손보시던가요, 안 보시던가요? 솔직하게 얘기해 봅시다. 손보시던가요, 안 보시던가요? 한 10년에 한 번 있을 희귀한 것을 간증하면 안 되요. 그러면 사람들이 뭐가 되요? 종이 되면, 구원의 개념이 완전히 희석되어 버려요.
주먹으로 다스리는 거요. 엄마 아빠 안 계시면 당장에 원상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어떤 집 아버지가 우리 집 애들은 텔레비전도 안 보고 공부 열심히 하고 내가 가면 다 공부하고 있다고요, 어느 날 친구하고 같이 술을 마시다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큰소리치지 말라고 하자, “아~ 우리 집 아이들은 안 그렇다고⋯” “그러면 내가 오늘 요령을 하나 가르쳐 줄 테니까 전화하지 말고 집에 바로 가라”고 했어요. 그날 집에 도착하여 초인종을 딱 눌렸어요. 그날 진짜로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것이에요. 가르쳐준 대로 예전에 LCD 나오기 전입니다. 뒤에 가서 불 안구(眼球)를 잡아봤대요. 뜨끈뜨끈해요. 애들이 공부를 잘하고 있는 거예요? 쇼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것이 주먹의 결과입니다. 아버지가 계시면서 “공부해!” 소리 지르면서 했던 공부는 아버지가 안 계시면 다 무너져 버립니다. 아버지가 계시거나 안 계시거나 스스로 좀 더디지만 스스로 선택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놔둬야 해요. 우리 한국의 부모들은 그걸 못해요. 그러니까 미국 가면 다 망가지는 거예요.
제가 워싱턴 가까이에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사는 동네가 있어요. 교회에 가서 인사를 하는데, “저 분은 무슨 국회의원 사모님, 저 분은 무슨 장관님 사모님, three-star 사모님...” 전부 한국의 기라성 같은 분들의 부인들이 거기에 다 와 있어요. 뭐하느냐? 하루 종일 그 짓하고 있는 거예요. 참~ 애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기회를 부모들이 안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혼하고 나면 마마보이가 되어가지고 선택을 못하는 거예요. 전화기 들고 “엄마. 냉장고를 대우 사야 되요? 삼성 사야 되요?” 그러고 있어요. 교회 와서도 목사님들이 주먹으로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심판한다고 협박하고, 10년에 한 번도 안 나오는 그런 간증 막 얘기하고...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으로 만드는 거예요. 하나님은 40년 동안 문제 해결을 그렇게 안 했어요. 죄를 지어도 그 다음날 어김없이 만나를 내리고, 모세를 대적하고, 돌로 때려죽이려고 그럴 때도 그 다음 날, 물 주시고, 애급에서 광야로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고 해서 하나님 백성 되는 것 아니에요. 사고의 구조가 바꾸어져야 됩니다. 타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선택해서 불이익을 당해도 나는 기쁨으로 헌신하겠다.” 이것이 진짜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광야에서 주먹으로 해결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스스로 일어나서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거예요. 목회가 잘 될 때 순종 잘하는 거야 쉽지요. 그러나 진짜 목회를 안 하고 싶을 때, 교인들이 말 잘 안 듣고 헷갈리고 들이받고, 모세는 아말렉을 한 번밖에 안 만났는데 나는 세 번이나 만나야 되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을, 나는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나는 주께서 부르신 calling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그 때 우리가 드리는 찬양, 눈물 흘리며 “그래도 하나님 하나님은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예배는 살아있는 예배에요. 우리 교인들 그렇게 만들어야 되요. 부자가 되어서도 변질되지 않고 부도가 나서 완전히 거지가 되어 손을 다 터는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 어떤 조건 때문에 따라오면 복을 많이 주고 안 따라오면 매를 때리는 이런 조건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중심 속에서 하나님을 나의 인생의 구주로 고백할 수 있는 그걸 만드느라고 몇 년 걸렸어요? 40년 걸렸어요. 40년. 주먹으로 해결했으면 40년까지 걸릴 것 어디 있어요? 몇 번만 손봐주면 깨끗하게 말 잘 듣는 사람 되지요. 기계처럼 그냥. 때로는 광야가 답답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거기 있습니다. 능동적으로 하나님 앞에 응답하기 위해서 이렇게 광야에서 하나님을 예배자로 또 하나님을 나를 인도하시는 분으로 나의 목자로 인정하도록 반복, 반복하시더니.
3) 19-24장은 시내산으로 데리고 갑니다. 의도적인 결단을 하게 하시죠. 선택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상 하나님의 가치관 하나님의 생각들 하나님의 principle을 보여주신 다음에 이걸 따르겠느냐고 선택하라는 거예요. 십계명(十誡命) 또 시민법(市民法), 하나님의 원하는 어떤 요구 조건을 죽∼ 설명하면서 우리의 사고 생각을 바꾸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4) 25-40장은 이것이 체질화하도록 습관화 시킵니다. 하나님의 spirit으로 살고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대행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매일 반복시키는 거예요.
자 그러면 출애급기를 크게 네 가지 구도로 한번 나누어 봅시다.
첫째 은혜(恩惠)에요, 은혜.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것이지요.
둘째 결단(決斷)이에요 결단, 뭘 결단하느냐 하면 자기 길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겠다는 결단을 해요. 세례(洗禮)가 중요합니다. 여기서는 은혜, 첫째 부분은 은혜, 둘째 부분은 자기를 내려놓겠다는 세례,
셋째가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교인들에게 말씀이 들어온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목사가 설교했는데 그 말씀을 그냥 100%로 순종하고 따라온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과정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사람이 쉽게 따라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넷째가 예배생활(禮拜生活)이에요. 하나님으로 완전히 적셔지는 것입니다.
자. 보세요. 사람을 이렇게 구도화 시킨다고 하면, 은혜라는 하는 것은 조금 들어오신 거예요, 조금. 하나님이 내 안으로 조금하시는 것이에요. 세례는 내가 더 많이 열어드리는 거예요. 좀 더 들어오십시오. 내가 좀 하나님이 들어오시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거절하겠습니다. 자기가 결단해 조금 더 들어오신 거예요. 말씀은 이것을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신 구체적으로, 체계적으로, 세심하게 더 나를 열어주는 거예요. 예배 생활은 뭐냐? 완전히 내가 적셔지는 거예요. 신약적 개념으로 말하면 이것을 성령 세례라고 말할 수 있어요.
자. 보세요. 토레이(R.A. Torrey) 신부님이 쓴 책 가운데 ⌜산골짜기에서 외치는 소리⌟라는 책이 있어요. 오래된 책이라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분이 성령론을 얘기하면서 성령의 외적 역사와 성령의 내적 역사를 얘기했어요. 자 성령님이 먼저 역사하실 때에 내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조금 들어오셔요. 그래서 ‘충만(充滿)’이라는 말은 두 가지인데 이것은 ‘플레레스’라는 단어를 쓰고 여기는 ‘플레로마’라는 단어를 써요. 둘 다 우리말로는 ‘충만’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자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했다 할 때, 성령 충만은 안에 있는 것들이 가득 채워진 겁니다. 주로 요한복음은 성령의 내적 역사를 얘기합니다.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너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실 것이고, 내가 너희들에게 했던 말을 기억나게 할 것이고, 성령이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너희를 책망하실 것이다.” 이런 것들은 다 성령이 우리 내면에 역사하는 거예요. 그러나 바울 서신에 특별히 교회론을 얘기할 때에 성령의 역사는 외적 역사가 많습니다. 충만하다는 ‘플레로마’ 사도행전의 역사도 역시 성령의 외적 역사입니다. 밖에서 이렇게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출애급기에서 40장까지, 우리가 처음에는 은혜로 시작해서 둘째 자기를 내려놓고, 계속 accept하는 거예요, 받아들이는 거예요. 자기부인(自己否認), 세례.
셋째로 말씀으로 우리를 체계화 시켜서 우리의 내면의 세계를 정리시켜 주시고,
마지막 예배 생활을 통해서 아예 적셔지도록 우리가 하나님의 사상, 하나님의 철학, 하나님의 원칙들을 가지고 나와서 말하면 하나님의 말인 거예요. 워낙 적셔졌기 때문에 출애급기 40장까지에 우리에게 요청하는 수준이 뭐냐 하면 바로 위에 그림으로 말하면 안으로도 꽉차버렸고 밖으로도 침례교회나 오순절 교회에서 오신 분들은 침례통이 있지요? 이렇게 성령 세례가 뭐냐 하면 밥티죠(baptivzw)이거든요. 사람이 통 속에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이렇게. 기름통이에요. 기름통. 성령통인데 성령침례, 성령세례라는 말은 뭐냐 하면 내가 풍덩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성령의 내적역사는 내 속에 성령이 꽉 찬 것이고 성령의 외적 역사로서의 성령 충만은 내가 성령 통속에 들어가 버리는 것이에요. 안팎으로 안에도 성령이 꽉 차 있고 밖에도 성령으로 적셔져 있고 이런 개념이 출애급기 40장까지의 이 개념은 안팎으로 내안에도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차고 내 밖으로 보이는 것도 사역을 할 때 은사를 행할 때 능력을 행할 때, 사람을 대할 때, 이런 외적으로 보이는 것들도 성령으로 묻어 있는 거예요. 그냥. 사상이 완전히 바뀐 거예요.
우리 대학 다닐 때에 김교신(金敎臣)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에 취했던 신학생이 있어요. 함석헌(咸錫憲), 이런 분들 그가 추종하면 나중에 그 사상으로 완전히 적셔지죠. 또 운동권, 한 6개월만 운동권에 들어가서 독서하고 막 따라다니면 말이 투쟁적이에요. 그냥 공격적이잖아요? 때려 엎어야 한다고 하고 프로레타리아 이러면서 부르조아를 어쩌고... 벌써 언어가 달라지는 거예요, 언어가, 신학교 다닐 때에 후배가 하나가 있었어요. “형, 형” 그러면서 제 전도사할 때에 따라다니면서... 교사하고 졸업하고 얼마쯤에 만났는데 나를 보는 눈빛이 벌써 다른 거예요. 언어가 달라졌더라고요. “목사 냄새가 나는구먼.” 이러면서, “형. 설교하지 마...,” 언어가 바꿔진 거예요. 그래서 내가 너무 당황이 되어 “야! 너 어떻게 된 거야?” 그랬는데,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신학교 졸업하고 목사 안 되고 산업현장에 가서 노동운동했던 거예요. 가서. 한 10년 살고 나니까 완전히 개조가 되어 버린 거예요. 사람이 적셔지는 거예요, 이게. 사상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령 충만하다는 개념은 무슨 펄쩍펄쩍 뛰면서 방언하고, 무슨 환상 보고, 그런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하나의 현상이고, 안팎으로 우리가 하나님으로 적셔져야 된다니까요. 말을 하나, 생각을 하나, 행동을 하나 전부 하나님 냄새밖에 안 나, 적셔져 가지고..., 그게 예배 생활이라니까요.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나님처럼 행동하고, 목회를 해도 하나님처럼 하고, 사람을 대할 때도 자기 왕국 만들기 위해 자기 사람 챙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는 이런 마음을 갖게 되고, 하나님이 지금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은혜로 내게 찾아오시고, 내 안에 침투해 들어오시고, 나의 결단과 나의 선택을 통해서 자기 부인을 통해서 더 내 깊이에 들어오셔 가지고, 내가 가지고 있었던 불편한 부분들, 광야적인 요소들 깨뜨려야 할 부분들을 사건을 통해서 계속 깨뜨리고 하나님으로 채우고 걸러내고, 또 하나님으로 걸러내고 씻어내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이 광야(曠野)입니다. 그것을 교통정리 시키고 이론화시키고 체계화시킨 게 시내산 교육이에요. 말씀으로 딱 정리를 해 준다는 거예요. 그리고 습관화 체질화하도록 계속 반복 학습시키는 거예요. 같이 살고, 매일 바라보고, 생각하고, 기대하게 하고, 그래서 적셔지게 하는 거예요. 신약적 개념으로는 “성령 충만해가지고 나가라, 이제 너희는 내 증인이 되어야 한다. 나가라.” 보냈더니, 빌립 집사도 가서 내시(內侍)를 바꿔버리고, 지역을 장악해 버리지요. 또 바울이 성령 충만해 갔더니 역사의 지도가 바뀌어 버리잖아요? 이것이 구원의 process에요.
이게. 크게 네 가지로 본다면, 은혜(恩惠), 자기부인(自己否認), 광야기간(曠野期間) 있지요? 내가 안 되니 하나님이 환경을 통하여 해 주는 거예요. 광야, 말씀교육 예배생활. 우리가 봉사를 하고 섬긴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거예요? 여기 예배생활에 나와서 하나님 얼굴을 섬기는 거예요. 이게 제사장이에요. 몇 가지 테크닉 배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훈련하셔도 모세가 80년이에요. 신학교 하나 나왔다고 해서 우리가 쓰임 받는 그런 거 아닙니다. 테크닉 몇 가지 배운 거죠. 원칙만 배울 뿐이지, 아직 언어도 사상도 몸도 따라 가려면 한 참 멀었죠.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 제사장 나라로 세우신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보일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을 대행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 백성들을 돌볼 수 있도록 우리의 수준을 출애급기 전체의 과정을 통해서 성숙을 시킨 겁니다.
자, 네 부분으로 출애급기를 한 번 정리해보세요. 은혜, 자기부인. 자기부인은 세례와 광야를 통해서, 그 다음에 말씀 교육, 마지막이 예배생활. 딱 정리가.
그러니까 한 사람이 교회 안에 들어왔다 하면 맨 먼저 무얼 경험하게 해 줘야 해요? 은혜 받게 해야지요. 은혜. 본인은 ‘가만 있어라.’ 그래요. 모세 혼자 다 한 거예요. 불 내리는 것도 벼락 때리는 것도 모세가 하는 거고 그 때는 목사님이 다하는 거예요. 넌 은혜만 받으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 놔두고 계속 하나님 경험할 수 있도록... 이 사람이 드디어 하나님 은혜가 자기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적셔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조금 성장하면, 자! 어떻게 자기 길 내려놓겠습니까? 살아왔던 방식 내려놓고 세례 받으시겠습니까? 세례 교육을 잘해야 되요. 그래서 “100프로 순종하시겠습니까?” “예, 하겠습니다. 세례 받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광야를 도와줘야 되요. 그 사람이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는 곁에 가셔서 이 광야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섯 가지 조금 있다가 배웁니다. 그걸 가르쳐주는 거예요. 그럼 본인이 그걸 풀어가는 거예요. 그걸. 그러면서 성경공부를 시키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교회는 이런 것이고, 우리가 이 땅에서 돈을 벌게 하고 출세하게 하고 우리 자녀를 외국 유학시키고 박사학위 받게 하는 목적이 뭐다. 하나님의 사상 하나님의 원칙을 가르쳐 주는 거예요. 의식 교육을 시켜주는 거예요.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살도록 예배생활, 하나님과 교제하고 교통하고 하나님으로 적셔지는 예배생활, 계∼속...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계속 Benchmarking하는 거예요. 그대로 카피(copy)하는 거예요. 좋아하고 따라가면 그대로 닮잖아요? 하나님의 spirit으로 살도록 도와주는 거지요.
다시 한 번. 네 구도(構圖) - 은혜, 자기부인, 말씀공부, 예배생활.
그러니까. 목사님이 한 사람을 대할 때 “아! 이 사람은 은혜의 단계다, 이 사람은 자기부인의 단계다. 이 사람은 지금 말씀교육의 단계다. 이 사람은 예배 생활의 단계다. 제사장 훈련이죠.” 물론 이것이 단계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한꺼번에 네 가지가 다 나타날 수도 있죠. 어쨌거나 그 사람의 영적 수준은 한 단계에 이른 거예요.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디에 걸려있어요? 둘째를 못 넘어가고 끝납니다. 200만 명 가운데 199만 9998명은 여기에 걸렸어요. 자기부인을 못하는 거예요. 자기 생각만 얘기하는 거예요. “그 때가 좋았는데 왜 이렇게 안 해줍니까? 나 싫어요. 저런 거. 나 이런 거 좋아해요.” 또 교회 바꿉니다. 또 “이 목사님 내 편이구나.” 좋아했다가 아니거든요. 또 바꿔버려요. 거기 광야에요. 우리 시대가 지금 그런 시대에요. 그래서 이런 훈련을 받은 사람은 다 제사장으로 출발하는 거예요.
8. 구원의 프로세스(process)
1)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구원 역사
① 하나님의 준비 - 언약 성취를 위한 상황 준비 1-2
② 준비된 사람 - 하나님이 준비시키시는 목자의 영적자질 3-4
③ 두 진영의 대결 - 모세 vs 바로의 싸움 5-11
2) 하나님의 대행자를 통해 진행되는 구원 역사
④ 피의 효력 12 - 피의 언약
⑤ 훈련(1) 13-18 자기부인(옛 문화, 옛 생활) - 세례 언약
⑥ 훈련(2) 19-24 진리(원칙)훈련, 하나님 집중 - 말씀 언약
⑦ 구원의 목표 25-40 임재, 교통, 대행, 통치 - 스피릿
⋅ 인격, DNA의 전수 ⇒ 하나님의 대행자 (왕 같은 제사장)
하나님의 얼굴로 하나님의 대행자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구원 역사와 하나님의 대행자를 통해 진행되는 구원 역사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 1-2장. 하나님이 언약성취를 위한 환경을 준비해 주십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시대적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1-2장은 애급의 왕조를 바꾸어 주시고 바로에게 이스라엘을 핍박하게 하시고 하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십니다.
2) 3-4장에서는 한 사람을 선택하셔서 목자로써 훈련을 시켜줍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 80년 동안 그를 훈련시켜요.
3) 그리고 5-11장은 두 진영의 대결인데 모세와 바로가 싸워요. 교인들이 싸우는 것이 아니고, 모세와 바로가 싸워요. 선교지에 가보면 이런 건 아주 real하게 나타나요. 전도 대상자들은 아무것도 못해요. 그리고 그 지역의 제사장격인 마녀(魔女)가 있어요. 무당(巫堂)들이 있어요. 그 무당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짜가지고 백성들을 억압하고 있어요. 선교는 뭐냐 하면 먼저 무당부터 때려잡아야 되요. 누가 더 왕권이 큰지 가서 보여주는 거예요. 가서, 능력대결을 하는 거예요. 그 witchcraft를 딱 때려잡으면 나머지 백성은 다 따라오게 되어있어요. 이게 선교에요. 목회도 마찬가지거든요. 너무 문명화하여 있기 때문에 real하게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로는 1장부터 11장에 왕권 대결은 모세가 하는 거예요.
4) 12장부터는 이제 영적 지도자를 통해서 그들이 결정하는 거예요. “피 발라라.” 12장의 피 언약을 지키게 되고, 13장부터 18장은 자기부인. 옛 문화의 생활, 이걸 버리도록 세례 언약을 하게 해요. 피의 언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켜주신 언약이고, 세례 언약, 물의 언약은 누가 누구한테 지키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께 지키는 거예요.
19장부터 24장은 진리의 훈련, 하나님의 원칙을 가르쳐줘요. 말씀 언약이라고 그래요, 하나님 말씀 앞에 내가 어떻게 응답할 것이냐? 25장부터 40장 구원의 목표, 하나님 임재 가운데 교통하고 하나님을 대행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펼치는 거예요. spirit, 인격, DNA의 전수,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대행자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9. 사람을 통한 구속사
① (창 3:15)
② (출 19:5)
③ (벧전 2:5)
④ (벧전 2:9)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의 구체적인 핵심은 사람입니다. 사람.
1)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자와 여인의 후손, 여자는 전 인류를 말합니다. 하와와 아담에 속한 모든 사람을 여자, 여인의 후손은 예수님이 먼저 씨로 오셨어요. 그리고 모든 아담족들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여인의 후손과 같은 사역을 하는 거예요. 둘이 연합해가지고, 결국은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사람으로 (하여금) 찾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구원의 원칙을 설명해주는 거예요.
제가 러시아를 갔을 때에 러시아의 대표적인 지도자가 ‘사마르’라는 지역에 가서 연합집회를 하는데 열 개 교회 이상의 목사들이 모여가지고 저녁에는 전체적으로 집회를 하고 낮에는 목회자들을 불러가지고 그쪽에 한 30명되는 목사들을 다 불러 가지고 세미나를 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는데, 이 Boss되는 사람이 첫 질문을 던지는데 아주 현기증 나는 질문을 했어요.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로 끝장을 내셨으면 우리가 고생을 안 해도 되는데, 왜 그때 해결을 다 안 해 가지고 우리를 이렇게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고...”
이 사람은 침례교 목사님이신데 14대째 목사, 14대째, 그런데 자기 아버지가 KGB에 의해서 순교를 당했고 자기가 또 목사가 되었는데 자기 딸이 어렸을 때, 말(馬)로 자기 딸을 끌고 가는데 딸이 쓰러지니까, 그냥 맨 땅에 끌고 가니까 배가 다 찢어지는 거예요. 피투성이가 된 거예요. 그걸 보면서 이제 제안을 하는 거예요. “네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공산주의로 들어오면 이 딸 살려주겠다.”라고, 그때 그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절규합니다.
“하나님 살아계십니까? 이게 뭡니까? 십자가가 능력이 부족해서 여기까지 와야 됩니까? 이 공산주의 언제 무너집니까?” 절규를 합니다.
자기 안에 해결되지 못한 이 문제를 가지고 강사가 오니까 첫 질문을 하는 거예요. “십자가의 능력이 부족해서 사탄을 완전히 박멸하지 못했습니까? 이유가 뭡니까?” 묻는 겁니다. 이거 대답 못하면 세미나 끝. 아이고. 이거 얼마나 중요한 질문입니까. “십자가의 능력이 그때 부족해서 끝장 못 낸 거예요? 왜 초림 때 해결 못하고 재림 때까지 연장을 시키고 했어요? 이유가 뭐예요?” 이겁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원칙이요. 창세기 3:15에서 하나님이 선언을 하신 거예요. “너 여자 정복했다고 까불지 마. 이 여자와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통을 깰 거야.” 하나님이 선언하셨어요.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사람이에요, 헷갈리는 사람, 타락한 사람, 비틀거리는 사람, 실패한 사람, 그를 회복시켜서 다시 머리통을 깨겠다는 거예요.
2) (출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나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여기서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이 뭘 말하느냐는 거예요.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이 세계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데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게 아니라, 이 나라를 세워서 이 나라에 먼저 복을 주시고 이 나라를 키워서 이스라엘 나라가 세계를 주께로 돌이키는 일에 쓰임 받도록 한다는 거예요. 목사님들이 목회하실 때에 혼자 다 하시려고 하지 마시고 사람 몇을 뽑아가지고 그들을 잘 키워서 그들로 하여금 목회를 돕도록 해야 되요. 이게 요즘 나오는 cell 목회의 원리입니다. 혼자 다 하시면 안 돼요. 그러면 나라가 안 이루어져요. 그래서 아무리 교회가 작아도 절대 혼자 하려고 마시고 하나님의 목회 원칙을 우리가 따라가야 되요. 그들로 하여금 사람을 세워서 그들이 섬길 수 있도록 또 그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delivery해서 그가 섬길 수 있도록, 제가 우리 목성연(牧聖硏)을 이끌어가는, 이게 principle입니다.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저는 여러분을 도와드리고 여러분이 현장에 가서 delivery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거예요. 자료를 드리고, 격려해 드리고, 또 못하겠다고 하면 가르쳐 드리고, 얼마든지 도와드리는 거예요. 이게 성경적인 하나님의 목회방법이에요. 사람을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절대 목사님들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마시고 사람을 세우세요.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잔나가 자식이 열여섯 명이었대요. 그 16명 가운데 4명이나 탁월한 지도자가 나왔잖아요? 우리 찬송가에 요한 웨슬레(John Wesley) 말고 또 누구? 찰스 웨슬레(Charles Wesley) 찬송이 많아요. 그 분이 같은 형제거든요. 수잔나가 아주 탁월한 리더였어요. 큰애를 잘 키워놓으면 큰애가 둘째 애 키우고, 첫째 둘째가 셋째 넷째를 키우고, 이런 식으로⋯. 그래서 요한 웨슬레가 그 어머니에게서 배워 가지고 밴드목회(Band Ministry)를 했어요. 이게 셀(Cell)의 효시(嚆矢)가 됩니다. 요한 웨슬레의 목회철학 가운데, band가 class가 되고, society가 되는 거예요. 이게 소그룹 원리입니다. 그래서 몇몇 사람을 키워서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care하게 하고 다시 전달될 수 있도록 delivery하는 거죠.
3) (벧전 2:5)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우리를 거룩한 제사장으로 불러주신 거예요. 우리를 통해서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를 통로 삼으신다는 거지요. 우리가 성전이라는 거예요. 산돌이신 예수님이 성전인데, 우리도 신령한 집 성전이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서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4)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족속, 하나님을 대행하는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가 된 백성. 이유가 뭐냐 하면 먼저 우리가 경험을 해서 어둠에서 불러내어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으니 이게 뭐라고 하냐 하면 은혜라 해요 은혜.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우리로 경험하게 하고 그의 은혜가 결국 나를 계속 성숙시켜서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채워져서 예배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spirit이 하나님의 사상과 인격이 내게 전달되어서 이렇게 훈련 받은 사람들이 이 분,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 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하면 너무 쉽잖아요. 그렇게 안하고 어두운 가운데 있던 우리들을 불러내서 우리를 통해서 그 분의 아름다운 덕 , 그 분의 사랑 자비, 그 분을 전달하도록 계획하셨다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주요 관심사는 사람입니다, 사람. 목사님의 주요 관심사도 자리가 아니고 돈이 아니고 보상이 아니라 뭐가 되어야 해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사람.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키우는 목회에 7할 8할을 두어야 해요.
< 출애급기 강의 (4) >
또 한 번 복습할까요? 1-2장, 3-12장, 13-24장, 25-40장, 조금 더 자세하게 합니다.
1-2장 하나님이 환경을 준비하심, 3-4장 하나님이 일꾼을 준비하심,
5-11장 두 진영의 대결: 바로와 모세의 싸움, 12장 피의 언약.
13장 신앙의 orientation. 14장 세례.
15-18장 광야. 19-24장 시내산. 25-40장 성막, 예배생활.
본 문 연 구
1. 1장-2장 보고 듣고 알고
때가 찬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절망의 환경(環境)을 예비하심
⋅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급 왕이 통치케 함
⋅ 애급 사람들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심
⋅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로 노역함
⋅ 사내아이를 낳으면 모두 나일강에 던짐
⋅ 인간의 무능함을 깨닫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됨
⋅ 하나님의 때가 찼을 때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게 됨
때가 찬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절망의 환경을 예비하심. 깨닫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이 환경을 통하여 말씀하심. 성도의 삶의 환경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1) 요셉이 알지 못하는 애급 왕이 통치케 함. 함족이 애급을 다스리다가 셈족이 들어와서 얼마 동안 다스렸어요. 요셉이 셈족이기 때문에 노예출신이지만 쉽게 총리로 기용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셈족이 쫓겨나고 함족이 일어났어요. 그러니까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통치했다는 것은 바 로 셈족의 역사가 무너지고 다시 함족이 다스렸다는 것이지요. 그 사람들은 요셉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기분이 나쁜 거예요. 그 왕조 자체를, 그래서 셈족인 유대인들 이스라엘 사람들을 싫어한 겁니다.
2) 애급사람들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심. 이스라엘인에 대한 부담을 갖게 하고 미워하게 하고,
3)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로 노역함. - 살기가 좋으면 하나님 찾겠어요? 살기가 힘드니까 노예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거지요. 미국에 가면 백인교회가 있고 흑인교회가 있는데 상상을 해보세요. 백인교회가 뜨겁겠어요, 흑인교회가 뜨겁겠어요? 흑인교회가 훨씬 뜨겁습니다. 펄쩍펄쩍 뛰어요. 다섯 시간씩 예배드리고 해요. 왜 그럴까요? 그들이 살아왔던 환경이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반 실성한 사람 같아요, 흑인교회 예배드리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뛰어도 그냥 뛰는 것이 아니에요. 얼마나 흑인영가(黑人靈歌)가 전부가 내세 지향적이잖아요? “가고 싶다. 이 땅에 살고 싶지 않다.” 환경이 어려우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들의 신앙이 돈독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달라스에 가면 외곽지대에 포러스하우스(Potter's House)라는 교회가 있어요. 교인이 한 4-5만 명이 될 거예요. 흑인교회인데 목사님에게 세계에서 제일 고급승용차 여덟 대가 있어요. 롤스로이스가 두 대, 난 차 이름을 잘 모르니까 그것밖에 모르니까, 벤츠 및 그냥 싼 차가 아니고, 수제차(手製車) 여덟 대가 있어요. 꼭 그 분을 만나 뵙고 싶어서 갔는데 만나기는커녕 교회 구경도 안 시켜줘요. 시간 딱 정해가지고 안내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아주 대단한 교회에요. 물어봤어요. “도대체 목사님이 왜 그렇게 고급 승용차 여덟 대를 사느냐?” 과시효과라는 거예요. 흑인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것은 풋볼선수들이에요. 풋볼 선수들 어마어마하잖아요? 풋볼선수들. 둘째로 흑인들이 동경하는 사람들이 목사님이에요 목사님. 왜 그러냐? 흑인 목사님들 가운데 세상적으로 이렇게 아주 화려하게도 해야 된대요. 안 그러면 그 다음 신앙이 없는 아이들이 누구를 좋아하는가 하면, 마약 밀매자들, 조폭들, 그러니까 흑인들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안 된다는 거예요. 정말 잘 살고 싶으면 풋볼 선수가 되든지 ⋯, 그 교회에 미국의 유명한 풋볼 선수가 열두 명인가 된대요. 그 사람들은 보통 한 번 헌금하면 우리로 말하면 몇 억 원씩 그냥, “목사님 차 바꾸시죠.” 롤스로이스, 12억짜리 딱 갖다 주고 이렇게. “와! 그런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그 흑인 아이들에게 우상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자기를 부러워하면서 애들이 마약으로 가지 않고 목사를 흠모한다는 거지요. 상당히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이 되요. 희망이 없으니까 흑인들은. 물론 이제 대통령까지 되었으니까 희망은 더 많아졌겠지만 ⋯, 그래도 밑바닥에 가면, 흑인들은 아주 어려움을 당합니다. 어찌되었건 하나님께서 환경적으로 어렵게 하셔서 그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게 하고,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바로 서게 하고 이런 작업들을 역사 속에서 많이 하셨어요. 하나님이 환경적으로 손을 보시니까 우리가 본질을 찾아가는 거예요.
4)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노역을 했고, 사내아이가 나면 모두 나일강에 던졌다.”
참. 내가 고등학교 때에 이 말씀을 읽으면서요. 진짜 미련 곰퉁이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사탄의 지혜는 너무 한계가 있어요. “여러분. 인구를 줄이려면 남자를 죽여야 되요, 여자를 죽여야 되요? 남자를 죽여야 인구가 줄어들 것 같아요?” 아이구, 몰라도 한참 모르시네, 여자를 죽여야 되요. 여자를.... 한 번 물어볼까요? 남자가 100명에 여자가 1명으로 일 년에 몇 명 낳을 수 있어요? 좀 문제가 있어도, 남자 한 명에 여자 백 명 있어요. 일 년에 몇 명 낳을 것 같아요? 인구를 줄이려면 여자를 죽여야 하는데 남자를 죽였으니... 그러니 미련한 거지, 이게... 사탄의 지혜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아무리 큰 시험이 와도 여러분 정신 똑바로 차리면 그런 빈틈이 보여요. 야! 진짜 하나님 멋있다. 여자를 죽여야 한다니까. 그런데 눈을 멀게 해가지고 남자를 죽이는 거예요, 남자. 남자는 하나만 살리면 되요.
5) 인간의 무능함을 깨닫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됨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구나, 도저히 안 되겠구나. 그리고 이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그들이 잊어버리고 살았던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는 거예요. 부르짖는 것이 중요합니다. 1장과 2장에서 보면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그랬어요. 교회 안에서 통성 기도가 참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자기에 울분과 한과 아픔들을 쫙 품어낼 수 있도록 교회 구조를 그렇게 만들어야 해요. 요즘 문명사회에서 교회가 너무 gentle해요. 그저 조용하게 그러면 변화가 없어요. 자기 한계를 뛰어 넘어서 떼굴떼굴 구르면서...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고 그럴 때에 역사가 나타나요. 부르짖는 기도가 중요합니다.
6) 하나님의 때가 찼을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때라는 말은 약속의 때에요. 하나님의 약속의 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때를 정하셨는데 때가 되었을 때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는 거예요.
1장: 구원의 준비
1) 그들이 당한 상황을 보심 - 보고
2) 위기 앞에 설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심 - 듣고
3) 조상들과의 언약을 기억하심 - 알고
4) 최악의 경우에서도 번성케 하심 (언약의 성취)
① 그들이 당한 상황을 하나님이 보셨어요. - 보고,
② 위기 앞에 설 때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심 - 듣고
③ 조상과 맺은 언약을 하나님이 기억하셨어요. - 알고, 알고.
보고 듣고 알고, 우리 상황을 주님이 보고 계시고 우리가 부르짖는 소리를 주님이 듣고 계시고. 제가 오산리 기도원에 가서 여의도 교회 남선교회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어요. 강사한테 설교하도록 시간은 30분밖에 안 주면서 자기들이 통성 기도하는데 나는 그렇게 기도하는 것 처음 봤어요, 와 기도를 하는데 나와 봐요, 이름 붙였어요. 레슬링 기도라고. 딱 팔을 어긋맞겨 봐요. 이렇게 그렇죠. 팔 깍지 끼어요. 그리고는 둘이서 하는데 기도하다가 눈 뜨고 봤다니까요. 막 “주여! 아버지여!” 약 500명이 하는데요. 와! 볼 만해요 볼 만해..., 하늘에서 불이 안 내려오면 땅에서 불이 일어날 것 같아... 얼마나 뜨거운지 강사가 은혜를 끼치러 간 게 아니라 그걸 눈 뜨고 구경하는 거예요. 와! 불이 번쩍번쩍하는 것 같아요. 그냥. 그렇게 한 30분 땀을 흘리고 기도하고 나니까 사람들이 완전히 바꿔지는 거예요. 완전히..., 여러분 항복이 뭐예요? 항복이..., 정신적인 항복이 아니에요. 왜 부르짖는 기도를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같아요? 어른은요, 급한 일 생겨도 안 뛰어요. 소리도 안 질러요. 자기 체면이 있기 때문에..., 애들은 ‘엄마!’ 소리 지르잖아요? 그게 애예요. 애, 애. 하나님이 우리가 어른이 되길 원해요, 아이가 되길 원해요? 아이가 되길 원해요. 어려운 일 생긴대도 하나님 알아서 하십시오. 이게 믿음이 좋은 게 아니에요. 정말 떼굴떼굴 구르면서 “하나님. 하나님, 아니면 안 됩니다.” 사실은 우리가 떼굴떼굴 구른다고 하나님 들어주시는 것은 아니거든요. 몰라서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gentle해 진 거예요. 우리가 너무 점잖아 우리가 너무 체면을 차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 너무 어른이 되어버린 거예요. 까짓것 내가 해결할 거예요 하나님 건드리지 마세요,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그런 만남을 하나님이 원하는데 사람들은 머리가 커지면 급하지도 않고 통성기도도 하지 않고 작정기도 금식기도 그런 거 이제 안 합니다. 이제..., 예전에는 휴일 오고 명절이 되고 그러면 기도원이 꽉꽉 찼어요. 발 디딜 틈도 없어요. 제가 오산리 기도원을 아주 많이 갔는데, 사람 많을 때에 굴 하나 차지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에요. 그래가지고 문 걸어 잠그고 예배도 안 갔어요. 굴 뺏길까 봐서..., 한 번 뺏기면 못 차지하잖아요. 이건 숨은 비밀인데 절대 어디 공개하지 마세요.
둘째는 신발을 두 개 갖고 가요. 이건 말하면 안 되는데..., 이젠 그 이상 얘기 안 할게요. 그렇게 굴 하나 차지하려고 투쟁을 합니다. 투쟁을 그냥, 안 되면 나중에 공동묘지 올라가야 되니까, 저 뒤쪽에... 지금 가면요 명절에 가도 사람 없어요. 사람들 먹고 살 만한데 무슨 금식을 합니까? 안 해요 지금. 기도원도 손님 다 떨어져가지고 운영이 안 되어 파는 기도원도 많지 않아요? 교인들 문제 생겨도 교회 안 옵니다. 옛날에는 그저 울고 부르짖고 밤새도록 기도하고 작정하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기도하는데 이제는 그렇게 안 해요. 왜 먹고 살 만하거든요.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내가 의지할 것이 있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어린아이처럼 떼굴떼굴 구르면서 하나님 살려주세요. 이런 것을 너무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래 네가 이제 제자리를 찾아가는구나, 주권은 나한테 있지 네가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네가 왜 어른 노릇하냐? 그래서 통성 기도가 중요한 거예요. 교인들 통성기도 시키면 잘 안하지요. 그래도 그것을 깨뜨리세요. 그래서 떼굴떼굴 구를 수 있도록, 우리 교회 수준을 내가 레슬링 기도를 시키려고 하는데 아직은 좀 덜 된 것 같아요. 레슬링기도 둘씩 묶어가지고 30분간 등에서 땀 안 나오는 사람 같으면 등짝을 때리는 거예요. 땀 좀 흘리라고 ⋯, 그렇게 하면 교회가 불바다가 되요. 기도의 권능이 나타나거든요.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그래서요, 부르짖는 소리, 속으로 기도소리를 들었다가 아니라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했어요. 부르짖는 기도. 아주 중요한 거예요.
④ 최악의 경우에서도 하나님은 번성케 하셨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이거든요. 너희가 중다한 민족이 되어서 나온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은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계속 진행이 되고 있는 거예요. 하여튼 많이 낳았어요. 야곱 자손 기본이 12명이잖아요. 12명. 요즘은 목사님들도 애를 안 낳아요. 많이 낳아야 되요. 전도가 안 되니까. 자연 증가라도 해야 되요.
적용질문
1) 고난 중에라도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성취는 무엇입니까?
(1: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생육 번성 충만이죠.
(1: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급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 내 씨가 나라를 이루고 민족을 이룰 것이다. 반드시 번성해야 되요. 이것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면 이걸 뭐라고 하냐 하면 전도요 선교입니다.
2) 사탄은 어떤 일을 했습니까? 22절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강에 던지고”
사탄은 사람 죽이는 일을 해요. 번성을 못하게 막습니다. 씨를 말리려고 그래요. 교회가 살아있을 때에는 막 번성해요.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교회가 영적으로 능력을 상실해 버리면 그때부터 자꾸 사람을 죽여요, 있는 교인들도 쫓아내잖아요?
3) 구속사를 도왔던 산파들의 신앙과 보상은 어떠합니까?
(1: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급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 어디를 가든지 돕는 사람들이 있어요.
(1: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 애급 왕들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았으나..., ‘바로’는 대명사죠? ‘파라오’라는 이름은 “태양신의 아들이다.”라는 그런 개념이지 ‘바로’가 이름은 아닙니다.
(애급 왕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두 산파의 이름을 기록한 성경의 강조점은 무엇인지 유의해 보자.) 1:15에 십브라와 부아라는 두 산파의 이름이 나오죠. 하나님은 일국의 제왕이 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작은 거라도 기여하는 사람이 훨씬 더 귀하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2장: 80년 전부터 (사람)을 준비시킴
1) 가정교육(5세) - 신앙교육, , 사상교육, 신앙의 생활화, 습관화
(2: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 신앙의 배경, 기도의 배경들 - 요게벳(모세), 한나(사무엘), 엘리사벳(세례 요한), 유니게와 로이스(디모데)
2) 왕자수업 - (행 7:22). 공동체의식
3) 광야훈련 - 신발을 벗은 사람, 하나님께만 집중함
반드시 세 가지 교육을 시켜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교육을 시켜요.
하나는 가정교육, 하나는 공교육. 사회를 알고 문화를 알아야 되기 때문에 공교육을 시켜요. 그리고 셋째가 광야훈련입니다.
1) 가정교육 - 신앙교육, 정체성, 사상교육, 신앙의 생활화와 습관화, 이것은 6세 이전에 우리 정신세계의 윤곽이 거의 결정이 되는데, 가정의 영향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심리학자들은 5세까지 거의 결정이 된다고 합니다. 5세, 6세.
2장 1절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가슴이 절절해 지더라고요. 지금 상황이 어떤 때입니까? 남자들이 중노동에 시달리고 너무 어려워하는데, 장가를 가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거기서 레위 사람이 또 다른 레위 여자를 찾아서 장가들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얘깁니까? 어저껜가 신문을 보니까 캄보디아 정부가 당분간 한국에 있는 남자들과 캄보디아 여자들이 결혼하는 것을 금한다는 법을 발표해버렸어요. 한국의 남자들이 짝꿍이 없으니까 외제를 선호합니다. 지금. 필리핀 여자들, 베트남 여자들, 캄보디아 여자들 ⋯ 이렇게 해서, 그것을 이제 브로커들이 중간 역할해서 한국으로 일 년에 몇 만 명씩 결혼을 시킨대요. 왜 외국 여자한테 말도 안 통하는데 결혼을 합니까? 장가를 못 가니까요. 농촌에 있는 청년들은 장가를 못 갑니다. 그러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는 고난의 상황은 생존 자체가 위기를 당하는 때인데 아무런 여자가 있으면 결혼하면 되지요. 그렇게 안하고 그 어려운 때라도 레위 여자를 찾아서 결혼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우리 부모들 의식 속에 이런 신앙의 의식이 있어야 되요. 절대로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신앙 좋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사명이 같은 사람을 찾아 결혼 시키는 이런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이게. 하나님은 결혼을 전도의 수단으로 삼길 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전도하기 위해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사랑은 사상이 같아야 되고, 영이 같아야 되고 한 정신으로 가야 되는데, 신앙적으로 보면 역사 속에서 큰일을 했던 사람들의 배경은 전부 신앙부모가 계셨던 거예요. 모세 뒤에는 믿음의 사람 요게벳이 있었어요. 목숨을 내걸고 궁궐까지 들어와서 신앙교육을 시켰지요. 히브리서 11:24-25에 보면 모세가 어렸을 때부터 이미 자기 고난 받는 동족에 대한 관심과,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난 가운데 동참하는 것을 본인이 선택했다는 내용이 나오잖아요? 누가 그걸 가르쳤을 것 같아요? 엄마가, 엄마가..., 말귀를 알아듣기 전부터 가슴의 젖을 먹이면서 “너는 유태인이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너는 약속의 백성이다. 돈 보다도 소중한 것은 사명이다.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 mission을 따라 사는 것이다.” 이걸 계속 주입시키는 것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에 탁 박혀 있는 거예요.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심어주고 바른 사상, 바른 가치관, 바른 철학을 심어주는 거예요. 그게 제일 안 된 사람들이 장로님들의 자녀, 목사님들의 자녀에요. 사무엘은 한나의 기도가 있었어요. 또 세례 요한에게는 엘리사벳의 기도가 있었고, 디모데에게는 유니게와 로이스의 신앙의 배경이 있었어요. 거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배후에서 기도하고, 신앙으로 양육하고, 영적으로 계속 신앙으로 지원할 때 훌륭한 자녀가 나오는 거지요. 가정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짝꿍 만들 때부터 잘해야 되는 거예요.
2) 둘째는 공교육(公敎育)입니다. 그 시대를 알고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공교육, 어찌되었던 일반화 된 교육을 받게 해줘야 되요. 그렇게 해서 세상을 알고, 시대를 알고, 문화를 알고..., 알아야 우리가 목회를 하지요. 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배경 자체가 세상이니까. 이런 공교육을 통해서 모세는 왕자 수업을 받았고 최고의 leadership 훈련을 받았어요. 사도행전 7:22에 보니까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그랬어요. 좋은 교육을 받았어요. 수사학, 변론, 변증학, 다 공부한 거예요. 목사님들도 돈이 좀 들어도 재교육을 좀 받으세요. 재교육(再敎育)! 혼자 막 독불장군처럼 하지 마시고 돈 비싸도 기도하고 공부하셔야 되요. 요즘 지식 구조가 3년이 안 넘어요. 3년이 뭐에요? 3개월마다 막 바뀌기 때문에 시대를 못 따라가면 우리가 헷갈리는 소리해요. 제가 우리나라에 몇 분 존경하는 분이 계시는데 다른 분들은 다 케케묵은 이야기하는데 그 분들은 신선한 이야기를 해요. 차이가 뭔가 하면 공부하는 분들이에요. 나이가 들어도 공부하면 생각하는 게 다르고, 시대의 필요를 알고, 사람들의 need를 알고, 그들의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목사가 최고 첨단 leader 아닙니까? 옆의 분에게 “공부합시다.” 좀 해 봐요.
예수님 만나면 눈이 벗겨져요. 눈이 싸악 비늘이 벗겨지면서 세상이 보이고 사람의 영혼이 보이고 시대가 보이고… 전병욱 목사님 책을 읽었더니 이런 얘기가 나와요. 자기는 지금 중학생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100개를 전화기에 받아 가지고 계속 듣는대요. 그 알아듣겠던가요? “야! 이 사람 참 탁월한 사람이다.” 시대를 알기 위해서 자기는 지금 나이가 들어가는데 청소년을 이해하지 못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중학생들이 듣고 다니는 음악을 계속 듣고 다닌다는 거예요. 적어도 목사라면 그런 정도의 앞서가는 의식이 있어야 되요. 하나님이 왜 모세를 궁궐에 집어넣었을까? 그 때 당시에 최고의 학교 아닙니까? Royal Academy, 거기 가서 그 시대에 최고의 첨단 과학, 행정, 경영, 교육, 수학, 이런 것들을 다 공부하게 한 거예요. 특별히 ‘나라’라고 하는 것을 그 때 배웠어요. 나라! 왕자 수업이니까. 나라를 배웠을 것 아니에요?
3) 이 교육, 가정교육과 왕자 수업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은 광야 훈련을 또 시켰어요. 하나님과의 관계, 영성훈련이죠. 이게. 신발을 벗은 사람, 신발이란 개념은 자기주권(自己主權)을 말합니다. 종이나 노예들은 신발이 없었어요. 탕자가 돌아왔을 때에 신발을 신기고 가락지를 끼웠어요. “가락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겨라.” 가락지도 역시 주권을 말합니다. “주권이 하나님께 있고 내게 있지 않다.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하겠다.”
이 신발 벗기기 위해서 80년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셨어요. 40년, 또 추가의 시간을 하나님이 요구하십니다. 그렇게 주권이란 개념은 중요합니다. 자기야망, 자기왕국 세우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도록, 광야 훈련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훈련이에요. 우리가 목회하면서 계속 자기 것 챙겨 버리면 광야가 계속 길어집니다. 내 왕국 챙기는 것 아니에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부름을 받았지요.
3장: 호렙산의 영적 경험 (召命)
⋅ 초월적, 초이성적, 초자연적 세계의 인정
⋅ 신비주의와 성령체험의 다른 점 - 누가 을 가지고 있느냐?
⋅ 현상이냐, 본질이냐?
- 종점이 아닌 출발점
- 누구에게로의 calling이냐? 무엇에로의 calling이냐?
1) 하나님 살아계셨습니까?
2) 우리를 버리지 않았습니까?
3) 그렇다면 왜 400년을 기다려야 했습니까?
자. 80년의 훈련이 다 끝났어요. 하나님이 이제 너 해야 되겠다고 calling하는 부분이죠.
⋅ 초월적, 초이성적, 초자연적 세계의 인정.
이런 영적체험이 참 중요합니다. 이성으로 살고 논리로 살고 과학과 경험으로 사는 이런 시대에,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 내 이성과 사고로 용납되지 않는 또 다른 초월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새로운 존재가 되는 거예요. 이게.
저는 고1 때 하나님 만나고 그 때 방언을 경험했어요. 석 달 동안 말을 못하고 학교에 가서 대답을 못하고, “널럴럴럴” 학교 끝나고 나서 “널럴럴럴” 석 달을 그랬어요. 석 달을... 그 때에 생각이 바꿔지는 거예요. 사람이 마음대로 안 되는 새로운 세계가 있구나, 영적 세계가 있다는 것이 깨달아지면서 인생의 방향이 바꿔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인생의 고난이 쭈욱 그때부터 30년 동안에 죽을 뚱 살 뚱 하면서 살았는데, 그때 경험했던 초월적인 세계, 이성이 아니고 논리가 아닌, 내가 찾아가는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인생 속에 개입한 이것을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in-breaking이라고 그래요. in-breaking. 큰 바위 덩어리를 깨뜨리는데 해머로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구멍을 뚫어 가지고 여기다 다이너마이트를 넣어 폭발하면 바위가 다 깨져버리는 거예요. 얼음송곳 하나 가지고 큰 얼음을 깨듯이 이것을 in-breaking이라고 해요. 하나님이 내 인생 속에 뚫고 들어오신 거예요. 작은 사건이지만. 방언을 하는 작은 것, 아주 작은 현상이었지만 제 생애가 그때 완전히 바뀌는 거예요. 지금 모세에게 있어서 떨기나무 불꽃의 현상은 그런 것이었어요. 하나님이 이 인생 속에 개입한 거예요. 가까이 가서 봤더니 불길을 타오르데 나무는 타지 않는 거예요. 이것이 도대체 무얼까?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이 초월적인 사건, 신비적인 사건 앞에 모세가 무릎을 꿇지요. 현상, 현상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신비주의(神秘主義)와 성령체험(聖靈體驗)의 다른 점이 무얼까?
신비주의는 자기가 경험했다는 것을 강조해요. 나는 뭘 경험했다, 뭘 봤다, 자기가 주권을 갖고 있을 때 신비주의입니다. 그러나 성령체험은 하나님 체험이에요. 신비주의는 계속 신비현상만 강조를 해요. “나는 눈만 감으면 음성이 들린다. 나는 기도하면 계시를 받는다.” 그러나 성령체험은 이 신비사건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 구속사가 진행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본질적인 것이냐 현상적인 것이냐에서, 이것이 종점이 되어버리면, 봤다는 것으로 끝나버리면 그것은 현상이에요. 그러나 이 본 사건, 이 경험한 사건을 통해서 그 다음 후속 사건을 이어지는 것은 이것은 본질이에요. 모세가 이 사건을 경험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 계속해서 이 부르심 앞에 응답하지요. 바울은 눈 감았다가 눈을 떴어요. 그러면서 그가 무얼 깨달았느냐? 사도행전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눈 감았다가 떴어요.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너도 이렇게 눈감은 사람들, 너도 그 동안 눈 감아서 사람들 많이 죽였지, 너 크리스천들 얼마나 박해했니? 너 사람들 눈 뜨게 하고,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을 위해서 눈 뜨게 하는 작업을 네가 해라.” 그 현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본질을 본 거예요. 이건 현상이 아니고 본질입니다.
- 누구에게로의 calling이냐, 무엇에로의 calling이냐? 현상은 현상으로 끝나버리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것이 누구누구에게로, 어떠어떠한 사건으로 우리를 불러 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저는 방언이라고 하는 간단한 현상을 경험했지만, 그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날 부르고 계심을 알게 되었고, 또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냥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성령을 받아야 산다는 것을 그때 깨달은 거예요. 신앙생활은 이성으로도 하지만 이런 영의 인도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 때 깨달은 거예요. 그러니까 다음 단계로 계속 성숙해 가는 거예요. calling은 목적이 있다는 거지요.
자. 그러면 이 현상, 떨기나무에 불꽃이 붙었는데, 나무는 타지지 않고 불꽃만 타오르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세 분씩 떨기나무 환상이 무얼 의미하는지 의논해 보세요.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다. 나무는 안 타고 불이 계속 타오른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되느냐?
< ‘떨기나무의 불꽃’ 이해를 위한 설명. 예화 >
저희 교회에 독립군 딸이 있었어요. 이 딸은 아버지 얼굴을 한 번도 못 봤어요. 북간도(北間島)로 상해(上海)로 막 도망 다니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소식이 끊겨버린 거예요. 그래서 이제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고 제사를 지낸 거예요. 이 딸이 스무 살 될 때까지, 딸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안 계신 줄 알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한 거예요. 20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가 나타난 거예요. 자! 우리 사모님들이 한 번 이야기해 보세요. 20년 만에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랐던 남편이 나타났어요. 어떤 반응을 보이겠어요? 말씀해 보세요. 첫째 “놀란다,” “이 원수가 나타났다.” 목사님이 말씀하시네요. 어떻게 여자 심정을 그렇게 잘 아십니까?
처음에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보더래요. 지금 딸이 하는 얘기에요. 똥그랗게 뜨고 보고, 가만히 있다가 남편이 확인이 되니 소리를 질러대면서 “나가! 야, 이 웬쑤야!” 그러더래요. 있는 물건을 집어 던지고 난리가 난 거에요. 어머니가 완전히 뒤집어지더래요. 남편이 석고대죄를 한 거예요. 무릎을 꿇고 삼 일 동안을 석고대죄를 하더랍니다. 여자도 독하고 남자도 독하지요? 그러니까 독립투사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독립투사의 아내도 아무나 합니까?
“네가 사람이냐?” 그러더랍니다. “못 오더라도 네가 살아있으면 소식이라도 줘야 할 거 아니냐? 네가 살아있었다면 사람을 통하여 통지를 해서 이런 서러움을 안 당하게 해야지, 네가 사람이냐?” 그러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딸은 이제 스무 살인데 엄마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엄마가..., 돌아왔으면 감사한 거지, 딸은 이해를 못 했대요. 20년 만에 첫 대면했던 느낌을 한 번 살려보세요....,
모세 앞에 하나님이 80년 만에 탁 나타났어요. 그것도 40년 전에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자기가 애급의 궁궐의 보좌를 버리고 쫓겨났는데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거예요. 쫓겨나게 한 거예요. 그러다가 침묵하시다가 40년 만에 나타나셨어요. 모세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겠어요? 지금 그 여자의 마음과 똑 같은 거예요. 사십 년 만에 모습을 보였는데 어떤 분노가 있어요?
1) 하나님 살아계셨습니까? 이럴 수 있는 겁니까?
2) 하나님이 살아계셨다면 나를 이렇게 놔둔 것, 이거 이상한 것 아닙니까? 내가 40년 동안에 광야에서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이 말을 더 확대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400년 만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어요. 400년 만에... 좋은 상황도 아니고 남자들은 중노동에 시달려야 하고,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집어 던져야 하고, 그런 기가 막힌 상황인데도 하나님은 외면하신 거예요. 살아계셨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한 바로에게 벼락을 때려서 죽이든지 무슨 조치를 하셔야지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하나님 살아계신 것 맞습니까? 나는 살아 있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를 버렸습니까?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니면 요셉을 모르는 왕조가 나타난 날부터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데 하나님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이 미리 그림을 보여준 거예요. “아니다, 나는 살아 있었고 너희와 함께 있었다.” “뭘로 증명합니까?” “봐라. 떨기나무, 잡초 같고 잡목 같은 아무 쓸모없는 떨기나무같이 너희가 애급 땅에서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취급받았는데, 고난 받는 민족이었는데, 너희를 태웠더냐? 고난의 불꽃이 너희를 재로 만들었더냐? 아니잖느냐? 고난의 불꽃이 타오르면 타오를수록 나무는 더 견고하게 서 있었지 않았느냐? 나는 너희를 버리지 않았다.”
지금 그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질문에 답변을 그림으로 주신 거예요. 모세가 가지고 있던 질문의 답을 그림으로 준 거지요. 우리 목회하면서 이런 질문 많이 하잖아요? “하나님. 이래도 되시는 겁니까? 나를 목사로 불렀으면 기본은 해결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저런 사람 하나님이 손 보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 더 잘 되요. 그 사람이. 하나님 이래도 되는 겁니까?”
3) 그렇다면 왜 400년을 기다려야 했습니까? 왜 좀 진작 나타나시지 내가 나이 80이 되기까지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시지 않으셨다가 이제야 나타난 이유가 뭡니까? 그 때에 하나님이 “네 발에 신을 벗어라.” “네 발에 신을 벗어라.” 모세의 발에 신발 벗기기 위하여, 40년을 또 하나님이 기다리신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종 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우리가 주권 가지고 우리의 왕국 만들고, 그런 거 원하지 않아요. 내 맘에 맞는 사람, 내가 원하는 교회... 교인들도 요즘은요 자기왕국이에요. 목사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해요. 참 이런 게 앞으로 심각합니다. 개척을 한 사람은 개척한 공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은퇴할 때까지는 그래도 특별한 실수가 없는 한 보장을 받아요. 그런데 이제 2대 목사님을 청빙할 때부터는 문제가 심각해지는 거예요. 장로님들이 이제 청빙을 하는데 당신들이 심사를 하니까 고용주와 고용인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선택하니까. 입맛 안 맞으면 “당신 나가시오.” 우리 통합측 같은 경우는 3년마다 청빙을 해야 되요. 뭐라고 하지요? 연임청원(連任請願)이라고 합니까? 임시목사 연임청원. 그걸 가지고 장난을 치는 거예요. 3년 후에 청원 안하면 자연으로 더 이상 목회를 못하는 거예요. 하나님. 이런 게 너무 싫은 거예요.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목회를 해야지... 모세는 그럴 만한 기질이 너무 탁월한 분이에요. 이 사람이 너무 똑똑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계속 독기(毒氣)가 빠질 때까지 기다리신 거예요. 이제 나이도 들고, 이제 인생에 파란만장한 세월도 보내고, 더더군다나 처가살이를 했잖아요.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면 어떻게 되요? 독기가 쏙 빠져버려요 아주. 야곱은 처가살이했어도 챙길 것 다 챙겼잖아요? 독기를 더 빼려고 고생이 또 있는 거예요. 모세는 나올 때 하나도 안 가지고 나왔어요. 왜요? 갖고 나올 것이 없어요. 그 만큼 죽어 살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세는 더 이상 광야가 필요 없는 거예요. 야곱은 그러고 나서도 광야가 끔찍하게 남아있었어요. 라헬 죽고, 디나 추행당하고, 또 요셉 팔려가고, 나중엔 베냐민까지도, 나중엔 어떤 비명을 지릅니까? 내 머리가 백발이 되어 음부에 내려간다고 그랬잖아요?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그 인간이 그래도 독기를 안 빼요. 또 딴 주머니 차고 있고⋯ 이렇게 하면 또 얍복강에서 그렇게 기도해 놓고 그 다음, 사람 짠 것 보세요. 제일 미운 아내와 종들은 저 앞에 세워놓고 제일 예쁜 여자는 뒤로 세우고, “야. 앞에 침략하면 뒤로 도망가.”하며 ⋯. 참 잔머리 굴리는 데는 천재라, 아주 그냥. 그러니 하나님이 아직 손을 더 봐야지요. 손을 보는데 주로 중요한 거만 보잖아요? 제일 중요하게 붙잡고 있는 거, 하나님이 다 때려버려요. 너무 아프잖아요?
모세는 나올 때 지팡이 하나 들고 나온 거예요. “인생이 다 그런 거지요, 뭐.” 그러면서 나온 거예요. 하나님이 이렇게 자기 주권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에 100% 순종할 수 있는 사람, 신발 벗은 사람 만들기 위해서 80세까지 기다리신 거예요. 기가 막힌 얘기 아닙니까?
목회는 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에요. 부흥하고, 뭐 어마어마한 일을 하고..,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code에 맞는 일을 해야 되요.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나를 떠나가라.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 “주여, 주여” 한다고, 말로만 주라고 고백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그 자가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사람 같다.” 여러분. 주의 음성 듣습니까? 하나님이 이 목회를 통해서 뭘 원하시는지, 들으십니까? 아침마다 주인 앞에 가서 오늘 내가 하루를 내가 어떻게 보내야 합니까? 어떤 일을 해야 됩니까? 사건이 생겼을 때 하나님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누군가 들이받는 사람 있을 때, “하나님. 이 사람에게 내가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까?”
주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에요. 주권을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 자기 마음대로 해 버리는 거예요. 선교비도 자기 마음대로.., 선교비는 내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까? 그러면 선교사 지원할 때 물어야 합니까, 내 마음대로 해야 되요? 물어야죠. 내 마음대로 해 버리면 공금 횡령입니다. 내 마음에 안 들어도 하나님이 보내라면 보내야 되요.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보내지 말라고 하시면 안 보내야 해요. 하나님 것은 누구한테 허락 받고 해야 되요?
우리 목회자들이 그런 부문에 굉장히 조심해야 되요. 교회 돈 쓰면서 자기 것처럼 써 버리는 것 너무 많아요. 그러고 나면 반드시 그 신발을 벗기려고 하나님이 작업을 하셔요. “네가 주인이냐?” 그래서 광야가 길어요. 그런데 지도자가 되고 난 다음에 겪는 고난은 아주 끔찍합니다. 아주. 파장이 아주 커요 아주. 모세 같은 사람이 딴 주머니 차버리면 나라가 휘청휘청해 버리는 거예요. 한 국가가 좌우되잖아요? 지금. 그래서 하나님이 차~근 차근하게 확실하게 신발 벗도록 기다리는 거예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목회가 아니라 하나님 목회입니다. 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목회를 하는데 헷갈리는 사람이 있어요. 30%만 도움이 되고 70%는 나를 힘들게 해요. 이 사람 써야 되요, 말아야 되요? 자기 양심으로 말하지 말고 그냥 상식으로 얘기합시다. 써야 되요, 말아야 되요? 30%는 도와주고 70%는 나를 힘들게 해요. 써야 되요, 말아야 되요? 묻는 거예요. 계속해서,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대답 없으면 안 해야 되요. 아니, 어른을 무시하고 내가 마음대로 해요? 이게 하나님 나라예요.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우리는 종이 되어야 한다. 이게 쉽지 않더라고요. 정말 쉽지 않아요.
목사님들이 여행사를 통해서 관광을 하잖아요? 우리 교회 여행사하시는 집사님들이 몇 분 계시는데 저한테 한 번 애로를 이야기하더라고요.
“guide할 때 힘든 분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누구누구예요?”
“선생님들, 그리고 목사님들, 장로님들이랍니다.”
왜 힘들 것 같아요? 말 안 들어요. 다 선생님이잖아요. 교회생활 오래 하게 되면 이런 것들이 몸에 익어버려요. 남 가르치려고 하고, 지시하려고 하고, 명령하려고 하고, 리모콘으로 조종하려고 하고, 몸에 배어 있어요. 그래서 잘 듣지 않고, 주권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따라가려고 하지 않고, 자기 소리만 계속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토록 오랫동안 모세를 다루셔야 했던 이유, 신발 때문에 신발!
우리 신발 벗는 목회합시다. 교회가 크건 작건 목회가 오래 되었든 짧든 간에 관계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인도해야 되요. 그러나 이렇게 출발했지만, 출발할 때는 우리가 종 의식 가지고 출발했지만 어느 틈엔가 내가 주인 자리에 서서 내가 칼자루 쥐고, 이런 게 목회에 굉장한 문제가 됩니다.
‘네 조상의 하나님’- 백성
신앙의 역사성, 스피릿의 대물림
언약의 흐름, 언약백성의 계보
(출 3:6)
(출 3:15-16)
(출 2:24-25)
(삿 2:7-10)
(삿 2:11-17)
(출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이 ‘네 조상에게 나타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지금 모세가 쓰임을 받아야 되는데 모세를 부르실 때 어떤 일을 위해 부르고 계시는지 하나님이 그에게 일깨워주십니다. 지금. 네 조상의 하나님. 신약성경에도 이 표현이 많이 나오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신앙의 역사성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을 만나셨던 하나님은 동일하게 이삭에게도 만나셔야 됩니다. 그 하나님은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spirit의 대(代)물림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출 3:15-16)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급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역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이건 뭘 의미하냐 하면 우리나라의 이조백자, 고려청자의 기술이 전수가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안됐죠. 됐습니까? 안 됐죠. 너무 아까운 일이에요. 왜 안 되었을까요? 안 된 이유가 뭐에요? 제자를 안 키운 겁니다. 그 아까운 기술을 전수시키지 않고 죽었어요. 내가 만난 하나님을 내 아들에게 전수시키지 않으면 이렇게 이 하나님을 고백할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백되었던 하나님은 이삭에게도 동일하게 고백되어집니다. 그 하나님은 손자 야곱에게도 그대로 똑같이 전수되는 거예요. 이게 신앙의 역사성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한 하나님인데 아브라함에게도 동일하게 이삭에게도 동일하게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고백되어져야 하는데, 하나님은 이것을 나의 이름이라고 표현했어요, 나의 이름이다. 나는 네가 만난 하나님, 네가 경험했던 영적 유산을 네 자손에게 물려줘서 네 아들도 똑같이 고백하도록 하라. 이것이 신앙교육이라는 거예요. 신앙교육. 하나님은 내 이름이라고 말해요. 그게 내 이름 언약의 하나님 내 조상의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고, 내가 고백하는 방법으로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을 고백하는데 내 자식이, 또 내가 도와주고 있는 내 제자들이 똑 같이 그것이 전수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출 2:24-25)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역사 속에 한 번 약속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지키시기를 원하는데, 그 하나님이 나에게만이 아니라 내 아들代에 가서도 내 손자代에 가서도 그대로 고백되어지기를 원하시고, 나하고 계약 맺었던 것은 내 아들도 똑같이 동일한 선상에 있고 내 손자도 그런 계약관계에서 만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죠. 이게 도대체 왜 이렇게 중요한 거냐?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소개할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런 하나님을 만났어요. 그렇게 사역을 했는데 여호수아 대에 가서 문제가 생겼어요.
(삿 2:7-10)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수아가 110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게 심각한 겁니다. 뭘 안한 거예요? 신앙교육을 안 시킨 거예요. 전수하지 않은 거예요. 여러분, 여호수아가 얼마나 탁월한 분입니까? 제자훈련을 안한 거예요. 한 목사님이 긴 세월 동안 환경적인 어려움과 여러 가지 시련, 광야의 훈련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고 탁월하게 목회를 했어요. 그 어른이 가셨어요. 그 어른은 가셨지만 뭐가 남아있어야 되요? 그 spirit을 받은 제자가 남아있어야 되요. 그게 목회예요. 모세는 성공했어요. 하나님이 이런 분이신 줄 알고 그대로 누구에게 전수(傳授)해 주었어요? 누구에게 그대로? 여호수아에게 그대로 전수해 주었어요. 그대로. 여호수아는 너무 탁월한 분이에요. 그런데 이걸 안했어요. 자기하고 같은 세대에 사람들이 다 살아있을 때에는 백성들이 다 하나님을 믿었어요. 그러나 그 세대가 끝나고 다음 세대가 시작되었을 때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이후로,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로 근 400년 동안 사사시대가, 혼돈 속에서 사사시대가 진행된 거예요. 사사시대 특징이 뭔 줄 알아요? 한 사람이 일어났다가 사라져버리는 거예요. 이걸 delivery 해주지 못하고 한 번 쓰임 받고 그대로 끝나버리는 거예요. 또 다른 사람 누군가 또 해야 되고, 하나님이 무지무지하게 피곤해졌어요.
오늘 여러분 교회 안에 여러분의 spirit을 전수할 누군가가 있어요? 이것을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의도적으로 키워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유산을 물려주지 않는 것, 그건 죄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거든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너는 이 언약의 하나님을 믿고 사느냐?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은 기가 막힌 실패입니다. 아무리 당 세대에 큰일을 했어도 delivery 못하고 죽으면 하나님 앞에 문책 받아요. 어찌되었든, 내가 만났던 하나님, 나를, 나의 인생을 붙잡았던 하나님, 내 인생을 헌신케 했던 그 하나님을 내가 섬기고 예배할 뿐만 아니라, 누군가 한 사람 두 사람을 세워서 그들로 똑같이 하나님을 섬기게 해 줘야 되요. 목사가 그 mind를 가지고 교인들을 훈련시켜야 되요. 주님 잘 모십시다. 예배정신, 헌신의 spirit, 종의 의식들을 그대로 delivery해 줘야 되요. 그 분은 떠나갔지만 그 분의 사상과 철학을 받은 사람들이 똑 같이 하나님 섬기는 거예요.
창세기 50장까지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창조에 대한 기록은 두 장밖에 없어요. 그렇죠, 창조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창조를 자세히 써놓았으면 진화론자들이 까불지 않지요. 그렇게 간단하게 싹 요약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12장부터 50장까지, 그것도 좋은 이야기가 아니에요. 지저분한, 마누라 두 번씩 팔아먹고... 야곱 같은 경우는 그 잔머리 굴리는 거, 그렇게 자세히 안 써도 되잖아요? “야곱이 잔머리를 너무 많이 돌려서 고생을 많이 하다가 나중에 요셉 자식 덕분에 잘 되었다,” 그래도 되요. 야곱은. 그런데도 그걸 그냥... 그걸 많이 썼다고 내가 시비 거는 것은 아니고, 앞의 두 장에 쏟은 것에 비하면 너무하다는 거예요. 이쪽이 배열이 너무 그렇잖아요? 제가 주일학교 때부터 이 창세기를 하도 많이 들어가지고, 안 보고도 1장부터 50장까지 다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실은 두 장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그 두 장을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이 직접 하신 일에 대해서는 너무너무 인색하게 두 장밖에 할애를 안 하게 하고, 이 헷갈리는 인간들 잔머리 굴리고 부전자전으로 아버지가 아내 팔아먹으니까 아들놈도 똑같이 아내 팔아먹고 이런 얘기, 야곱이 머리 쓰면서 그냥 여자들끼리 싸워가지고 마누라가 둘 더 생겨가지고, 넷이나 다 거느리느라고 고생이나 하고... 합환채(合歡菜), 합환채가 요즘 뭔지 알아요? 요즘 비아그라에요. 비아그라, 이런 얘기를 성경에 써놓고 그냥... 신풍나무 벗겨놓고 새끼 낳을 때 어떻게 하고... 그런 말 안 썼으면 좋겠어요. 뺐으면 좋겠어요. 유다가 다말하고 어떻게 해서... 그런 얘기. 아니.. 하나님의 성경인데 두 장이 중요하지, 이런 얘기가 뭐 중요합니까?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냐 하면, “아니다, 두 장도 중요하지만 마흔여덟 장이 더 중요하다 하시는 거예요. 이 타락한 세상에서 그래도 delivery하고 있는 그 사람들의 정신이 중요하다.” 하시는 거예요. 내가 기다리는 것은 이렇게 헷갈리고 잔머리 굴리고 문제 있는 사람들이 돌아와서 하나님을 고백하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그 순간 나는 보람이 있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목회를 하는데 두 장이 많이 나타나면 우리는 어마어마하다고 그래요. 하나님이 불을 내리셨고 뭐 기적이 나타나가지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하면 우린 멋있다 그래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건 두 장만 써라 두 장만. 내가 한 것은 두 장만 쓰고 너희들끼리 헷갈리고 싸우고 장로들과 목사가 당회에서 막 싸우고 헷갈리고, 김 장로가 나갔고, 막 이상한 짓 하고 그런 걸 많이 써라. 그런 걸.” 그렇게 헷갈리었던 인간들이 돌아와서 “우리 목사님이 고백한 하나님이 내가 고백한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 이것이 인간 승리라는 거예요. 그걸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멋있는 목회하는 거 너무 기대하지 말고, 그런 헷갈리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도 내가 만난 하나님을 그들도 동일하게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이고,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목회 현장, 그런 선교지, 이게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거예요.
“내가 한 일은 두 장만 써도 괜찮다. 그러나 너희들이 하는 수고, 말귀도 못 알아듣고 10년, 20년 헷갈리며 방황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내 사상과 내 철학 내 spirit을 전달하기 위해 수고한 너희들에 대해 많~이 기록해라.” 이게 창세기 메시지에요.
성경에 한 번 봅시다. 3대, 4대가 간 경우가 얼마나 있어요? 성경에서, 창세기 말고 3대 4대가 간 사람들이 있어요? 한 번 얘기해 봐요. 모세, 여호수아로 끝나고... 또 얘기해 봐요, 다윗, 솔로몬, 르호보암 시대에 가서 깨졌어요. 나라가 박살났지요. 3-4대 못 가요. 또 훌륭한 사람 얘기해 봐요. 사무엘, 두 아들 타락했어요. 또 누구 있어요? 바울, 디모데, 디모데 제자가 누군지 모르지요. 저도 잘 몰라요. 있긴 있었을 거예요. 사도 요한, 폴리갑, 이레니우스, 거기는 내가 공부를 좀 했기 때문에 좀 알아요. 한 3-4대 가지요. 성경에 3-4대가 간 경우가 많지 않아요. 많지 않은 게 아니고, 누가 애써서 찾아보세요. 거의 없어요. 신앙전수가 쉽다? 어렵다? 너무 어렵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훈련이 얼마나 탁월한가를 우리가 알 수 있는 거예요. 그게 지금 2,000년 동안 이어져 온 거예요. 굉장한 겁니다. 이것은... 그것이 뭐 삐까뻔쩍하고 멋있는 사람이 나와 가지고... 그런 게 아니라, 야곱처럼 헷갈리는 사람, 이삭처럼 우유부단한 사람, 아브라함처럼 따라가기는 따라가는데 가는 건지 마는 건지... 그런 사람들이 창세기에 4대가 나와요. 4대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탁월한 것 아닙니까? 제자훈련은 4대가 가면 성공한다고 그래요. 4대.
디모데후서 2:2 말씀입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자. 바울이 디모데에게, 디모데가 충성된 사람들에게,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1대, 2대, 3대, 4대, 제자훈련은 4대가 가면 성공한다고 그랬어요. 의도적으로 우리가 사람을 선택해서 delivery하려고 하지 않으면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찌 되었건, 지금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은 “나는 언약의 하나님이다. 약속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네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희 하나님이다.”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표현하실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삿 2:11-1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급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으나, 그들이 그 사사도 청종치 아니하고 돌이켜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 열조가 행한 길을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치 아니하였더라.”
이게 여호수아 다음 세대들의 특징입니다. 교육하지 않고, 전달하지 않고, 훈련하지 않은 그 다음 세대에 나타난 특징이에요. 그냥 안 믿었더라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들였어요. 저주를 자청하는 행동을 한 거예요.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이게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야기라니까요. 교육하지 않고, 훈련시키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되어버려요. “예수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고, 자기가 목사 아들로 태어났으면 자기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 철들면 예수 잘 믿겠지.” 그게 아니에요. 영적인 세계는 투쟁이기 때문에 사탄이 가만 놔두지 않아요. 이렇게 망가지게 만들어버리니까요. 여러분들이 열심히 목회해서 교회가 천 명, 이천 명 모였다고 가정을 합시다. 훈련하지 않으면 떠난 다음에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의도적으로 훈련해야 되요 의도적으로. 내 spirit이 그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적용질문
1) 이스라엘이 고난 중에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으며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출 2:23-25)
2)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어떤 준비를 시켰습니까?
가정교육
왕자교육
광야훈련(영성훈련) - 인내, 침묵, 겸손, 섬김, 묵상, 집중
3) 떨기나무 체험을 통하여 모세는 무엇을 알게 되었습니까?
80년 동안 하나님이 침묵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스라엘의 고난 중에도 함께하신 하나님, 신발을 벗게 하는 광야 훈련.
1) 이스라엘이 고난 중에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으며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출 2:23-25) “여러 해 후에 애급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뭘 할 수 있었어요? 탄식하며 부르짖었다는 거죠.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다는 거죠. 기억하셨다. 기억하셨다. 하나님을 기억되게 해야 되요. “너희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사람들아.” 이사야서 62장에서 그랬죠. “내가 예루살렘에 성벽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주야에 부르짖게 하리니라.”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사람. 하여튼 힘들고 어려우면 어떡해요? 부르짖고 기도하면 되요. 그러면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돌아보셔요. 교회는 항상 기도실이 열려 있어야 되요. 비싸게 돈 주고 잘 꾸며 놓았는데 문 딱 걸어놓고 주일만 쓰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입니다. 저희 교회에는 24시간 문을 개방해 놓아요. 도둑질 여러 번 당했어요. 자물통으로 다 채웠어요. 임대 교회 때의 일이에요. 어느 날 기도하는데 주님이 제 마음을 계속 괴롭히는 거예요. 왜 문에 자물통을 채웠느냐? 도둑들이 많아 가지고요. 마이크도 잃어버리고, 힌지사이드(?)도 잃어버리고요 여러 번 잃어버렸습니다. 그 도둑맞은 금액이 얼마쯤 되겠냐? 하나님 갚아줄 줄 알고 계산해 보니 약 천만 원 되더라고요. 천만 원 쯤 됩니다. 속으로 한 몇 억 원 주시려고 하시나? “너는 한 영혼이 천만 원보다 귀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예.” “기도하고 싶을 때 교회 문을 잠가놓으면 그 성도가 어디 가서 하나님을 만나겠느냐? 실족할 뻔한 사람이 교회에 와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만나면 그것이 천만 원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 자물통 뜯어버렸어요. 다 뜯고... 도둑맞는 것 걱정하지 말자. 그것보다 영혼이 귀하다니까. 교회 가면, 밤에 가면 행복해야죠. 그저 교인들 부르짖고 기도하고 바글바글, 새벽 1시, 2시까지 제가 교회에서 일할 때가 있어요. 작업하고 책 쓰고 그럴 때는 집에 못 가요. 새벽 1시, 2시에 들려오는 부르짖는 소리 들리면 목사로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야. 살아있는 교회구나.” 감사해야죠. 얼마나 비싼 자료를 주고 만든 이 홀인데, 딱 주일날만 열어놓고 나머지는 다 잠가 놓고 말입니다. 최 목사님! 열어놓습니까? 아 목성연 회원은 역시 달라요. 그냥. 그래도 하나님이 좋데요. 그런데 그건 있더라고요. 홈레스들이 와서 자고 가니까, 기도하는 사람이 여자들이 주로 많이 오는데 두려워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문은 안 잠그고 앞에다 경비를 한 사람 세우니까 그 다음부터 싹 없어지더라고요. 사실은 상징적 효과죠, 사실은, 하여튼 교회를 기도하는 분위기로 만들어 주어야 해요. 언제든지 가슴이 컬컬하고 답답할 때, 교회에 오면 문이 열려 있고 기도할 수 있고, 이런 거 또 교회 와서 기도할 때 누가 비난하고 그러면 안 되요. 하여튼 본당에서 기도할 때는 소리 내서 기도하고, 그런 거 싫은 사람은 따로 가서 자기 혼자 하라고 하고, 어찌 되었건 고난 받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고... 그러면 하나님이 응답하게 되어있거든요. 하나님은 그런 거 굉장히 좋아하셔요. 부르짖는 기도,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기억하셨다고 했어요.
2)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어떤 준비를 시켰습니까? 가정교육, 왕자교육, 광야훈련. 광야훈련은 영성훈련이죠. 인내, 침묵, 겸손, 섬김, 묵상, 집중. 하나님께로만 집중하는 거죠.
3) 떨기나무 체험을 통하여 모세는 무엇을 알게 되었습니까? 80년 동안 하나님이 침묵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이스라엘이 고난 중에도 함께하신 하나님, 신발을 벗게 하는 광야 훈련. 오늘 우리도 우리의 신발을 벗기기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오랜 시간 우리를 기다려주시는 줄 몰라요. 신발 벗고 쓰임 받는 종들이 되십시다.
4장: 하나님의 동행표지 - 리더의
1) 모세가 감당해야 할 사명
내려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데려가려 하노라.
2) 모세에게 주신 세 표적
① 뱀 - 애급의 들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
② 문둥병 - 자신의 , 육성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
③ 나일강 - 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
⋅ 말씀하신 대로 할 때 사탄을 이길 수 있다.
나일강
3) 당신은 내게 ‘피남편’이로다. (24-26)
자. 하나님께서 이제 모세를 불렀는데 모세가 자꾸 못하겠다고 그래요. 난 못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40년 동안 양 꽁무니만 따라다녔으니 말을 다 잊어버렸어요. 말도 잊어버리고, 자신감도 다 잃어버리고, 사도행전 7장에서는 말과 행사가 다 능했다고 했는데, 모세가 계속 못한다고 하니 할 수 없이 하나님이 대언자를 세우잖아요? “그럼 너의 어눌(語訥)한 것을 대신할 수 있도록 내가 아론을 세우겠다.”고 하시며 아론을 세우잖아요?
그러면서 “내가 너와 함께한다.”는 증거로써 세 가지 증거를 보여줘요. 리더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갖추어야 할 자질(資質)이 뭐냐? 지금 모세가 감당해야 할 사명은 “내려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데려가려 하노라.” 하나님이 하실 일을 지금 모세가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증거가 없으면 하나님의 일을 못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동행하고 계시다는 사인을 줘야 되요. 자. 세 가지였습니다. 모세에게 주셨던 표적은 세 가지.
① 뱀 잡는 능력이에요, 뱀. 뱀 잡아보셨어요? 뱀이 잘 잡혀요? 뱀을 잘 잡는 땅꾼들은 뱀의 어디를 잡던가요? 머리 뒤를 잡습니다. 뱀을 잘 못 잡는 사람은요? 꼬리를 잡아요. 그런데 뱀을 잡으라는데 어디를 잡으라고 했어요? 머리를 잡으라고 했어요, 꼬리를 잡으라고 했어요? 모세에게 꼬리를 잡으라고 했어요. 왜 모세보고 꼬리 잡으라고 하셨을까요? 모세가 땅꾼이 아니니까? 머리는 누구 부분이냐 하면 주님이 깨뜨릴 부분이에요. 여인의 후손인 예수님이 오셔서 머리를 깨뜨리는 거고, 우리는 잔당 소탕하는 남은 세력을 제압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꼬리를 잡으라는 거예요. 뱀은 애급의 모든 신들의 상징입니다. 캄보디아나 미얀마나 태국, 이런 나라에 가면 모든 건축물들에 전부 용과 뱀이 그려져 있어요. 용 머리 일곱 머리, 나는 성경에만 일곱 머리가 있는 줄 알았는데, 거기가 보니 일곱 머리 용이 있어요. 야, 성경의 사건과 일치하니까 등골이 오싹오싹한 거예요. 뱀은 뭘 상징해요? 사탄을 상징하죠. 뱀과 용(龍)은 같은 개념이죠. 이게. 첫째 뱀을 잡는 걸 보면서 너는 애급의 신들을 다스릴 수 있다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거예요.
② 둘째, 손을 가슴에 넣었더니 문둥병이 걸렸어요. 문둥병은 유전입니까? 전염입니까? 전염입니다. 접촉하면 전염되는 게 문둥병이에요. 그런데 손을 가슴에 넣기 전에는 손이 문둥병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가슴에 넣으니까 문둥병이 걸렸잖아요? 그러면 어디가 문둥병에 걸린 거예요? 가슴에 걸려 있어요. 손이 깨끗했는데 가슴에 넣었다가 뺏더니 손이 문둥병이 걸린 거예요. 가슴이 병들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다시 말씀에 순종해서 손을 집어넣었더니 손이 깨끗해졌어요. 둘째는 문둥병을 처리하는 능력이에요. 문둥병이 뭘 말하느냐? 속이 곪았다는 거예요. 자신의 내면, 자신의 육성, 이런 것들이 이미 오염되어 있어요. 이 사건을 통해서 너는 이미 너의 내면을 처리할 수 있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거예요.
③ 셋째, 나일강은 애급의 젖줄이라고 그래요. 일 년에 두 차례 홍수가 나는데 그때 객토(客土)를 해요. 땅을 다 뒤집어 버려요. 아주 풍요로운 땅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일강이 애급을 살려요. 애급은 90% 이상이 사막이에요. 그런 땅을 사람이 살 수 있는 비옥한 땅으로 만드는 원리가 나일강의 범람으로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급 사람들은 나일강을 자기들을 먹이는 젖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물을 떠다가 쏟았더니 피가 되었어요.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 세상 사람들이 세상적인 방법으로 사는 게 세상의 원리에요. 그들이 말하는 그들의 젖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이게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세 번 다, 세 번 다, 그가 종의 위치에 있을 때, 다시 말하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할 때, 사탄이 역사하는 세 방향, 사탄은 뱀으로 역사하고, 육성으로 역사하고, 세상으로 역사해요. 에베소서 2장 1절부터 3절에 보면 뱀이 세 가지로 역사해요. “지금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역사하는 영”이라고 표현했어요. 사탄이죠, 뱀입니다. 또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하고” 그랬어요. 그것은 문둥병이에요. 육성을 말하는 거예요. 또 사탄은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그랬어요. 사탄은 세 가지로 역사해요. 요한일서 2:17에 뭐라고 그랬어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이렇게 세 가지. 야고보서 3:15에도 “마귀적이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라” 그랬어요. 세 가지에요 세 가지. 적어도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선악과가 어떻다고 그랬어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창 3:6). 이 세 방면을 잡지 못하면 leader가 될 수 없어요.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하려고 그럴 때,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에 나가서 한 판 싸움을 합니다. 삼 round를 뛰는데 그 세 번의 싸움이 바로 아담이 넘어졌던 부분이요, 지금 모세가 장악해야 할 부분이에요. 세 부분이 뭐에요? 첫째 “돌이 떡이 되게 하라.” 둘째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천사들이 너를 받들어 사람들이 너를 추앙할 것이다.” 셋째는 “내게 경배하라. 천하만국의 영광을 주겠다.” 그 세 가지가 사탄이 유사 이래로 지금까지 아담에서부터 인간을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는 무기들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영적 지도자가 되고 leader가 되려면 이 세 부분에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되요. 간증을 할 수 있어야 되요. 뱀 잡는 능력, 사탄을 깨뜨리는 능력이죠, 문둥병, 자신의 내면의 육성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 세상을 control할 수 있는 능력. 종 되었을 때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의 인도함을 따랐을 때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24절에서 26절에 보면 참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나와요. 모세가 가겠다고 애급으로 가려고 그러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모세를 죽이려고 그래요. 그때에 십보라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므로 “이는 나의 피 남편이로다.” 얘기를 해요. 이건 뭘 말할까? 모세가 처가살이하면서 십보라에게 많이 당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러시아나 중국 같은 데서는 여권(女權)이 얼마나 센지, 여자들에게 덤볐다가는 큰일 나요. 러시아는 남자가 여자 집으로 장가를 갑니다. 우리나라의 고부간의 갈등보다도 러시아에서는 장모와 사위와의 관계는 더 무섭습니다. 설교할 때 절대 그런 말을 못하게 해요. 장모 얘기하면 아주 큰일 납니다. 마피아가 지나가는 행인을 괴롭힐 때 남자가 가서 말렸다가는 그날이 그 사람 죽는 날이에요. 그런데 할머니가 가서 말리면 KGB가 말을 들어요. 동네 통반장도 다 여자가 해요. 여권이 아주 굉장합니다. 남자들은 집에서 애보고 강아지 키우고 고양이 키우면서 뒷골목에 서가지고 서너 병씩 보드카(vodka) 마시면서 하루 종일 살아요. 남자들이 정말 불쌍해요. 여자들은 다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고, 처가살이하면 남자가 기를 펴요, 못 펴요? 못 펴지요. 모세가 그랬던 것 같아요. 애를 낳았어요. 얼마나 외로웠으면 ‘게르솜’ 그랬겠어요.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도다.” 처가살이하는데 행복하고 뿌듯했으면 절대 그런 아들 이름 안 지어요. 너무 괴롭고 외롭고 힘드니까 자기 아내도 자기를 이해 못해주고, 너무 외로우니까 자기가 나그네 되었고, 객이 되었다고 그런 이름을 지었어요. 그런데 이제 낳은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행해야 되요. 할례를 하려고 그랬더니, 십보라가 아주 그냥 화~를 내는 거예요. “어디에서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하냐? 어린아이에게...” 할례를 못 행한 거예요. 자.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자긍심(自矜心)이 할례에 있는데, 계속 그것 가지고 십보라와 싸우는 거예요. “아. 할례해야 되는데...” 하면, “이 인간이 어디서? 그냥 밥이라도 얻어먹으려면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면서 구박을 줬어요. 그래도 십보라의 마음속에 늘 눌림이 있었어요. 이것은 내가 문학을 좋아하기 때문에 탁월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만든 구조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얘기 아니에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늘 부부싸움을 하는 거예요. 모세는 조금만 영적인 시간이 되면 “할례를 행해야 되는데...” 하면, 십보라는 눈을 부릅뜨면서 “이 인간이?” 그러면 이제 아뭇소리를 못했어요. 그러나 십보라의 마음속에는 눌림이 있었겠죠.
어느 날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와서 가겠다고 그래요. 가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갑자기 모세를 죽이려고 해요. 사고가 나면 사람은 제일 먼저 뭘 생각해요? 자. 차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 사고가 났어요. 예수 믿는 사람은 무엇부터 생각해요? 야. 지난주에 예배 빼먹었더니, 십일조 빼먹었더니, 사업에 문제가 있으며... 십보라도 양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딱 여호와의 사자가 모세를 죽이려고... 그러니까 바로 바로, 아들 데려다가 딱 잘라 갖고, 그냥 피남편이라고 하면서 집어 던지는 거예요. 할렐루야. 사모님들 잘해야 되요.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 들어가도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내려오는 화살표가 아니라 올라가는 화살표. 우리가 하나님께 바칠 때, 그래야 쓰임 받는 거예요. “뭐 내 형편 모르시고...” 그게 아닙니다. 개척교회하면서 사례비를 못 받아가지고 끙끙댈 때라도 십일조 내야 되고, 이게 예배 정신이에요. 하나님께 바치는 거예요. 이방민족 가운데 살면서 문화가 달라도 아들에게 할례를 행해야 하는 그런 문제를 위해서 부부싸움이라도 해야 되요. 요즘 사람들은 적절한 거짓된 평안을 위해서 양보를 해버려요. 하나님은 절대로 처가살이하는 40년이라 할지라도 할례는 받아야 한다고 하는 원칙을 이 사건을 통하여 보여주는 거예요.
하나님의 기준이 중요하지요. 목사는 하나님의 기준을 교인들에게 가르쳐주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만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찾아오셨다는 사건만 자꾸 강조하는 게 아니라, 그 은혜 이후에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맞추어 가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얘기해줘야 되요. ‘미국제 복음주의’라는 게 있어요. 상당히 비꼬아서 하는 말인데, 저는 ‘한국제 복음주의’를 얘기합니다. 많은 사람이 은혜, 은혜 얘기하는데, 은혜 이후에 우리가 응답할 거에 대해서는 자꾸 간과(看過)하는 거예요. 절대로 안 됩니다. 40년을 은혜로 살았지만 하나님은 다시 그를 부르실 때 피의 계약을 요구하는 거예요. 이렇게 정확하신 하나님입니다. 헐렁헐렁 살면서 하나님이 복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요. 은혜를 받을 때는 완전히 나한테 맞춰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그 은혜에 응답할 때는 철저하게 하나님께 코드를 맞추어야 되요. 레위기를 공부해보면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만듭니다. 우리 시대의 예배는 사람이 거룩하게 못 만들어요. 왜요? 예배의 기준이 다 무너져버렸어요. 목사가 은혜 설교만 합니다. 교인들을 찾아온 얘기만 해요. 당신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이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타락한 자리까지 찾아오심은 절대 틀린 얘기 아니지요. 너무 좋은 얘기지요. 그 다음을 가르쳐줘야 할 게 아니에요? 은혜를 받았습니까? 하나님 만났습니까? 그 다음부터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100% 헌신해야 합니다. 이걸 해야 하는데 그 다음을 안 가르쳐줍니다. 이것이 한국제 복음주이에요. 피남편이다. 40년이 지났어도 당신은 피남편입니다. 이방 땅에 살았어도 이 남자는 피남편인데 내가 그 동안에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바로 항복하는 거예요. 이 이후로 부부싸움 있었을 것 같아요? 없었을 것 같아요? 없지요. 그전에 왜 부부 싸움했었을 것 같아요? 성경엔 없지만,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런 걸 픽션(fiction)이라 그래요. 그전에 뭐 때문에 신앙의 갈등 구조를 느꼈을 것 같아요? 이런 거예요. 이런 문제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을 십보라는 여기는 이방 땅이다. 미디안이다. “너. 무슨 말라빠진 신앙 가지고 나한테 얘기하나?” 이런 문제로 싸웠을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한 번 손보고 나니까 이 후로는 십보라 얘기 나올 필요도 없어요. 안 나오잖아요? 성경에.
자. 오른손 들고 우리 한번 2분만 기도합시다.
“하나님 내 목회가 철저하게 은혜 중심으로 가게 하시고 철저하게 말씀 중심으로 가게 해 주십시오. 내려오는 화살표 정확하게 말해 주게 하시고, 올라가는 화살표도 정확하게 선포해서 우리 교인 훈련 잘 시켜서 모두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게 해주시옵소서. 나를 그 일에 사용해 주십시오.” 우리 주님 이름 부른 다음에 한 2분만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하나님. 우리 멋대로 사람을 대하고 내 기준으로 사람을 만날까봐서 하나님의 말씀을 허락하시고 진리가 뭔가를 가르쳐 주심을 감사합니다. 내 왕국 세우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 건설하게 하시고 내 사람 챙기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종들을 키우는 저희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은혜만 강조하여, 방종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게 하여 주시고, 언약 백성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앞에 성실하게 응답하는 사람을 키운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목회 현장에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그 기준이 뭔가 알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게 하여 주셔서, 이후로 우리 목회 사역이 진리 중심이게 하시고, 말씀 중심이게 하시고, 성령 중심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 출애급기 강의 (5) >
5장: 내 백성을 내보내라.
1) 제사(희생)를 드리기 위하여
- 화목 3:18; 7:16; 8:1,8,20,25-29 (애급에서 - 준비된 양)
2) 섬김 (봉사, 예배) - 사흘의 구별됨
4:22-23 (장자로 부르심)
3) 절기 - 잔치, 누림 5:1; 10:9 (광야에서 - 나의 기업)
5장부터 11장은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백성을 내놓으라고 요청을 합니다. 세 가지 목적 때문에 백성들이 나가야 한다는 거지요.
1) 첫째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가야 한다.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과 화목하다는 거지요. 출애급기 3:18을 한번 봅시다.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급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지요. 제사, 희생을 드리기 위해서.
2) 둘째는 섬김을 위해서, serving이지요.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나의 장자를 내보내라. 4:22~23에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을 섬긴다. 예배지요, 예배.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하나님께 봉사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흘 길쯤 나가야 한다는 거지요.
3) 셋째 목적은 절기, 잔치입니다. 내가 누리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회복을 위한 것이고, 그러면 절친한 친밀한 관계가 됩니다.
② 둘째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높이고 봉사하고... “발 좀 내시지요, 제가 발 좀 주물러 드리겠습니다. 어깨를 제가 주물러 드릴까요?” 예배는 하나님을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높여 드리는 거죠.
③ 절기는 나를 위하는 거지요. 내가 그리스도를 누리는 겁니다. 왜 애급에서는 안 되느냐? 구원 받았다 할지라도 애급의 문화, 바로의 속박 하에 있으면 이게 안 됩니다. 반드시 사흘 길쯤 나가야 하나님과 관계되는 제사, 희생을 드리게 되고 하나님을 높일 수 있고 그 하나님을 통하여 내가 절기를 누리는 풍요를 경험할 수 있는 거죠. 애급에서는 준비시킨 양이 있었어요. 희생 제물이 드려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기 시작한 거지요. 하나님을 높이고 섬기는 자들을 장자(長子)를 부르셨다고요 장자로,
< 장자의 특권 세 가지 >
근본적으로 장자에게는 세 가지 특권이 있었어요. 성경에 보면 첫째는 왕권(王權), 둘째는 제사장권(祭司長權), 셋째는 두 배의 몫입니다.
(역대상 5:1~2)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야곱의 아들 르우벤이 장자인데 르우벤이 장자권을 잃었어요. 죄는 항상 우리에게서 권리를 빼앗아갑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죄 때문에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았다 할지라도 자꾸 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권리, 특권들이 자꾸 무너집니다. 르우벤의 죄가 르우벤의 장자권을 박탈 시켰어요.
① 그래서 여기 왕권은 누구한테 갔어요? 2절에 보니까 유다에게 갔지요.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나왔다” 그랬지요.
② 또 두 배의 몫은 누구에게 갔어요? 요셉에게 갔지요. 그래서 요셉 지파라 안 그러고 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지파로 몫을 두 배로 주지요. 두 배의 몫에 관한 얘기는 신명기 21:15~17 봅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 두 배의 몫을 주라는 것입니다.
③ 그럼 제사장권은 누구한테 갔어요? 레위에게 갔지요, 레위.
그래서 모든 장자들에게는 왕권이 있어요. 제사장권이 있어요. 또 두 배의 복을 받을 자격이 있어요. 하나님의 법적 보장이죠. 왕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특권이죠. 사람들을 세워주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겁니다. 제사장권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데려다가 하나님과 연결시켜드리고, 하나님의 코드를 맞추어 그 분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그 분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고, 이렇게... 제사장의 직분은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이죠. 두 배의 몫은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거지요.
이스라엘을 장자로 삼았다는 이것은 이스라엘이 이런 특권을 가지고 출발한다는 거지요. 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동일하게 이 장자권의 복을 줍니다. 우리에겐 왕권이 있어요, 제사장권이 있어요. 이것을 신약시대엔 뭐라고 표현했어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그래요. 그리고 충분히 섬길 수 있는 몫을 줍니다. 두 배의 몫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게 하나님의 기본 약속이에요. 이런 하나님의 법적 보장을 받는 사람들이 이제는 바로를 섬기거나 애급에 있지 않고 나와서 하나님을 제사하고, 하나님을 serving하고, 하나님이 주신 몫을 누리는 거예요.
구원은 있는 자리에서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데, 신분만 바꿔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나가라는 거예요 나가라... “사흘 길쯤 나가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은 애급 땅에서 받았어요. 유월절 양으로 인해서... 그러나 구원받은 즉시 나가라는 거예요, 떠나라는 거예요. 이전에 삶 노예로서 살아왔던 삶을 청산하고 이제는 아들로서 사는 거예요. 거기 있으면 종살이밖에 안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라도 훈련받지 않고 출발한 사람들은 교회만 나오지 여전히 세상의 노예, 죄의 노예입니다. 끌려 다닙니다. 변화가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훈련받고 옛 문화를 끊고 옛 친구들과 결별 선언을 하고 새롭게 교회 문화 쪽으로 떠나온 사람들은 거기서 누리는 몫이 훨씬 크지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뭔지 알아요? 성경공부예요. 진짜예요. 제가 책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밤 새워서 책을 많이 읽어요.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밤을 얼마나 많이 새웠는지... 그리고 다른 책은 제가 제일 많이 읽은 책은 한 10번 읽은 책이 있어요. 김용석 씨가 쓴 ⌜사랑과 영혼의 대화⌟라는 책이 있어요. 아주 처음 읽었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그 전집을 다 읽었어요. ⌜어린 왕자⌟ 같은 것도 열 몇 번 읽었어요. 박종화 ⌜삼국지⌟ 5권까지 다섯 번 읽었어요. 성경은 몇 번 읽었을 것 같아요? 셀 수 없이, 셀 수 없이... 읽어도, 읽어도 또 재미있고 ⋯, 이건 뭐 노루 친 막대기를 3년 고아먹는다고 하는데, 이거 뭐 3년 고아먹는 게 아니라, 30년 고아먹어도 또 나와요, 또. 듣는 사람 여러분들은 어떤지 몰라도 저는 처음 하는 것처럼 해요. 그렇게 보이지요?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출애급기... 출애급기만 그런 거 아니에요. 너무 새롭고... 표현이 좀 죄송합니다만 말씀에 마력(魔力)이 있어요, 마력... 막 사로잡아요. 그냥. 세를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마력이 있어요. 얼마나 재미있는지,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을 섬기는 이런 것들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몰라요.
우리 목사님들은 그런 엄청난 특권의 자리로 부르심을 받았어요. 그런데 재료가 준비 안 되어가지고 없는 것 가지고 짜 먹으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우리는 무궁무진해요. 66권이 있지요.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특권은 우리에게 주신 특권 가운데서 제일 큰 거예요. 제가 치유 사역도 해보고 능력 사역도 해보고 많이 해 보았어요. 다 오래 안 갑니다. 아픈 사람들 병 고침 받으면 처음에는 빤짝해요. 그러다가 별 볼일 없잖아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떠나가요. 환자 치료해서 교회 부흥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은사 사역, 처음에는 눈이 열리고 예언하고 환상 보고, 그러면 사람들이 뿅 가요. 그러나 그것도 오래 안 갑니다. 말씀사역하면 사람이 계속 붙어요. 이렇게.
세상에 제일 재미있는 게 뭐라고요? 성경공부예요, 해 보세요 진짜로... 이게 뭐 보이기 시작하면요, 사람이 정신이 하나도 없다니까요. “와~ 이게 그런 말씀인가? 우와~~” 목회하시면서 이런 재미도 모르고 하시면 참~ 행복하면서도 불행한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새 이름 계시, ‘여호와’라는 이름을 계시하셨습니다.
출애급기 6:1~8 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이제 애급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급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급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이상한 표현이 있죠?
6장: 하나님의 새 이름 계시 - 여호와
1) 구원하시는 하나님
⋅ “내 백성을 보내라.” (5:1; 7:16; 8:1,20; 9:1,13; 10:3) (7회)
⋅ (3:7-8) 보고, 듣고, 알고, 내려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이르려 하노라. (7회)
⋅ (6:6-8) 빼어내어, 건지며, 구속하여, 내 백성을 삼고, 하나님이 되고, 인도하여, 기업을 삼게 하리라. (7회)
2) 말씀하시는 하나님
⋅ ‘다바르’ - 언행일치, 사 55:11 (‘미드바르’ - 광야)
⋅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 1,2,6,10,13,28,29 (7회)
3) 언약하시는 하나님
⋅ 자연계의 언약, 도덕 언약, 계시 언약
⋅ (6:1-8) 새 이름을 계시하심 - ‘엘로힘’에서 ‘여호와’ 로
3절에 보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다.” 여호와라는 칭호는 창세기 2장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이 ‘엘솨다이(yD'v' lae)’ 전능하신 하나님. 현대 히브리어 학자들은 이것을 “엄마 젖가슴을 가진 하나님” 그런 표현을 씁니다. 출산한 엄마가 자기의 젖먹이는 아들을 품듯이 돌본다는 그런 개념으로 ‘엘솨다이’를 해석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는 내가 그들에게 계시했지만, 그들에게 여호와로는 알리지 않았다는 거지요. ‘엘로힘(!yhil|a>)’이라 그래요. ‘엘(lae)’이라는 말은 창조주 하나님을 표현할 때 쓰는데 그런 창조주 하나님, 사람과 의논하지 않고 우리가 깨닫지 못할 때 우리를 찾아와 복을 주신 하나님, 이게 ‘엘로힘’ 하나님의 개념인데 지금까지 ‘엘로힘’ ‘엘솨다이’로 계시했지만, 여호와로는 계시하지 않았으나, 지금부터 너희에게 여호와로 만나겠다. 여호와는 언약 관계의 하나님, 계약의 하나님이란 뜻이지요. 이스라엘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정의 구조로 본다면 유치원 정도 갈 때까지는 엄마가 전능하신 엄마로 아이가 요구하지 않아도 다 들어주는 엄마예요. 기저귀 준비해 놓고 아이가 입어야 할 옷, 뭐 예방접종, 다 아이와 의논하지 않고, 다 엄마가 준비를 해요.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표현하고 무조건적인 은혜, 이것이 ‘엘로힘’이에요. ‘엘로힘.’ 그런데 이제 유치원 졸업하고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엄마가 이상해졌어요. “너 학교 갔다 와서 숙제하지 않으면 엄마가 뭐 안 해주겠다.” “엄마! 나 인라인 스케이트(inline skates) 사 주세요.” “너 학교 갔다 와서 한 달 동안 엄마가 가란 말 안 해도 학원 열심히 나가면 내가 인라인 스케이트 사주겠다.”고 조건을 걸어요. 조건부 엄마가 되는 거예요. 조건부 하나님, 조건부 은혜.
‘엘로힘’ 하나님은 일방적 은혜로 일방적 관계, 나하고 의논하고 나에게 동의를 얻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100% 베풀어주시는 거예요. 여기는 쌍방적 관계예요. 내가 응답 안하면 하나님이 가만히 계셔요, 그냥. 엘로힘 하나님은 편무(偏務) 언약의 하나님이에요. 여호와 하나님은 쌍무(雙務) 언약의 하나님이에요. 또 ‘엘로힘’ 하나님은 아가페(ajjgavph) 사랑을 해요, 아가페. 끝없이 우리를 사랑해줘요. 끝없이 우리를 도와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에로스(e[rw") 하나님이에요. “네가 딴 우상에게로 가면 내가 질투해서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사무엘상 15:23에 보면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범죄를 했어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이것은 ‘아가페’예요 ‘에로스’예요? ‘에로스’죠. 그러면 이러면 이 구조를 볼 때, 하나님이 엘로힘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실 때는 언제예요? 연약할 때, 유치할 때, 우리가 무너졌을 때는 엘로힘 하나님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숙하게 되면 우리가 자라 인격적인 교제를 가지게 되면 하나님은 이제 아가페로 다가오시지 않으시고 ‘에로스’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나를 사랑하고, 너 눈 딴 데로 돌리면 내가 가만 안 놔둬.” 하나님이 조건을 제시하는 거예요. 어느 게 더 좋아요? 이런 질문을 우문(愚問)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느 게 더 성숙한 거예요? 그렇지요. 여호와지요. 결혼은 아가페예요, 에로스예요?
제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이 16년 차이가 나는 아가씨와 결혼했어요. 36살에 20살 아가씨하고... 서울농대 나오신 분인데 교생 실습 와가지고... 애가 예뻤어요, 애도 선생님을 좋아하고 애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어른 될 때까지 기다려 준 거예요. 이 선생님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다니까 근 10년 이상 기다렸겠죠? 그때까지는 선생님이에요. 하염없는 존경과 사랑의 대상인 선생님이에요, 선생님. 선생님이 제자하고 사귀다가 결혼했어요. 이제 선생님이에요, 아니에요? 지금까지 유치한 행동해도 다 봐주었어요. 그러나 이제 아내가 되었으니 유치한 행동하면 되요, 안 되요? 딴 남자 쳐다보면 큰일 나죠.
여러분 우리가 신앙이 성숙한다는 것은 이런 거예요. 아가페 하나님에서 에로스의 하나님을 만나는 거예요. 무조건적인 하나님에서 조건부 하나님으로 성숙해 나가는 거예요. 한국교회는 이런 것을 감당 못했어요. 계속 아가페만 얘기하는 거예요, 은혜만 얘기하는 거예요. 은혜야 광야 백성들이 얼마나 많이 받았습니까? 40년 간 받았는데... 그런데 왜 변화가 안 되어요? 그들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할 줄 모르는 거예요. 응답할 줄 모르는 거예요. 아니, 아이가 15살, 20살 되면 김치 담는 법도 배워야 하고 시집가서 남편 섬기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할 것 아니에요? 엄마가 못 됐어요. 시집가서 고생할 것인데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면서 아무것도 안 가르치고 시집을 보냈어요. 사람입니까?
신앙의 성숙이란 이런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내가 ‘엘솻다이’ 하나님으로 계시했지만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성숙했기 때문에 너희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여호와 하나님으로 너희를 만나고 싶다. 내가 사랑을 베풀면 사랑으로 응답해라. 내가 선물 주면 너희도 선물 준비하고, ‘발렌타인 데이’ 때 내가 초콜렛 주면 너희도 나한테 초콜렛 줘야 된다.” 이런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말해요. “아~이 하나님이 갑자기 율법주의자가 되셨나? 왜 그런 것을 요구해요? 하나님은 하염없이 주시는 분이신데 ⋯.”
하염없이 주는 것을 심리학적으로 뭐라고 하냐 하면 과보호(過保護)라고 그래요, 과보호는 사람을 망가뜨려요. 한국교회 교인들은 과보호 가운데 살았어요. 가만히 있으라고.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복음은 하나님이 다 해주는 거야.” 그러면서... 변화가 안 되는 거예요. 엄마가 애를 키울 때 엄마가 없어도 학교 갔다 오면 숙제하고, 자기 방 청소할 줄 알고, 시간 되면 학원 갈 줄 알고, 엄마가 다 챙겨주고 도와줘야가 아니라, 엄마 없어도 할 수 있어야 되요. 그러다가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안 계셔도 엄마가 계시는 것과 같이 똑같이 살 수 있도록 해줘야 되요. 그게 성숙(成熟)이에요. 은혜에 대한 개념을 우리가 잘못 이해하면 안 되요.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이 옆에 안 계시고 안 보여도 계신 것처럼 행동하는 거예요. 하나님 다 해 주는 것 아니에요. 하나님이 성숙하도록 요청하신 거지요. 엘로힘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
은 혜
무조건적
일방적
편무언약
아가페
엘로힘-창조, 전능
1-11장
유아기
진 리
조건적
쌍방적
쌍무언약
에로스
여호와-언약
12-40장
성장기
자. 그러면 하나님을 경험하는 단계를 봅시다.
첫째는 구원하시는 하나님, 찾아오셔서 일방적으로 도와주시지요.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도 기억하지 못할 때 400년 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바로가 하나님인 줄 알고 우상들이 하나님인 줄 알았던, 이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찾아오셔서 “내 백성을 내 보내라. 내 거다. 내 백성이다.” 그러시면서 5:1; 7:16; 8:1,20; 9:1,13; 10:3, 일곱 번씩이나 “내 백성이니까 내 보내라.” 그리고 또 3:7~8에서 “보고, 듣고, 알고, 내려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데려가려하노라.” 일곱 번씩, 6:6-8에서 “빼어내어, 건지며, 구속하여, 내 백성을 삼고, 하나님이 되고, 인도하여, 기업을 삼게 하노라.” 일곱 번, 구원의 완전성을 지금 얘기하는 거예요. 완벽하게 그들을 도와줍니다.
그러다가 이들이 성숙하니까 이제는 말씀하시는 하나님 일방적으로 도와주기만 했다가 그들이 이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선포하시고 응답할 것을 요청하시는 하나님. 말씀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할 때 그것을 ‘다바르(rib;D)’라고 해요 ‘다바르.’ 히브리적 ‘다바르’의 개념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면 반드시 응답이 나타나는 거예요. 언행이 일치하는 것을 말해요. 재미있는 것은 ‘다바르’는 ‘미드바르(rB;dm)’에서 왔는데 ‘미드바르’라는 말은 광야라는 말이에요. 언제 사람이 ‘다바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하느냐? 언제 하나님 말씀 앞에서 응답하느냐? 광야를 지난 사람들이죠. 본문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는 표현을 일곱 번 했어요. 1, 2, 6, 10, 13, 28, 29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구원하시는 하나님보다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더 성숙된 경험이에요.
그보다 더 큰 개념이 뭐냐 하면 언약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거예요. 언약(言約), 약속하고 지키시는 하나님, 피를 바르면 하나님이 봐주겠다는 것은 하나님 쪽에서의 약속이에요. 재앙이 왔을 때라도 십보라가 피를 바치니까 하나님이 보호해 주었어요. 하나님 쪽의 언약이죠. 우리 쪽의 언약은 세례 받을 때부터 “내 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겠습니다. 나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결단했어요. 처음에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경험했다가 그 다음에는 더 성숙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음성을 듣기 시작했다가, 성숙한 이후에는 이제는 관계지향적(關係指向的)으로, 언약의 하나님으로 만나는 거예요.
그래도 안 지키는 분들이 있어요. 안 지키면 성숙 안 하는 거예요. 지키면 그만큼 성숙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키우는 방법이에요 이게. 교인들도요 계속 받아먹기만 하라고 하면 안 되요. 처음에는 은혜, 어느 정도 지나면 봉사하라고 해야 되요. 헌금도 내라 하고, 시간도 내놓으라고 하고, 헌신도 하라고 하고, 목사만 헌신하면 안 됩니다. 교인도 헌신하라고 해야 되요. 물론 시대가 험악하니까 지혜롭게 해야 되겠죠. 건강한 교회는 뭐냐? 왜 목사만 헌신합니까? 똑 같이 해야죠. 나도 헌신했으니까, 장로님 당신도 헌신하십시오. 그렇게 해요. 무조건 섬겨준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가르쳐서 성숙시켜야 되요. 어려워요, 쉽지 않아요. 한번 받아먹으면 또 받아먹고 싶거든요. 똑같이 성숙시켜주어야 되요. 동역자가 되고 partnership이 되고... 하나님도 그런 것을 좋아해요. 계속 받아먹다가 어느 날 하나님 마음을 안 거예요. “하나님 제가 하겠습니다. 하나님 이 몫은 제가 좀 감당하겠습니다. 이 일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제가 섬기겠습니다.” 이런 걸 제일 잘하는 사람이 누구예요? 자녀들 가운데 누가 제일 잘해요? 부모의 마음을 제일 빨리 catch하는 사람, 장자(長子)들이예요. 장자. 하나님 나라를 책임지라고, 할렐루야.
★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성취
언약의 내용 (창 15:13-16)
언약의 성취
기 간
400년 간 괴롭게 하리니
430년 만에 출애급
상 황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
열 가지 재앙으로 징치하심
재 물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구하는 대로 주어
애급 사람의 물품을 취함
세 대
4대 만에 이 땅에 돌아오리니
(창)4대 :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
(출)4대 : 레위, 고핫, 아므람, 모세
야곱
인 구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창 46:3)
장정만 603,550명이
출애급함(38:26)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한 백성이 되어야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을 모세 대(代)에 와서 성취하시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창세기 15:13~16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의 내용입니다. “400년 간 괴롭게 할 것이다.” 언약의 성취는 430년 만에 출애급하게 되죠.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懲治)할 것이다.”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으로 그들을 징치하십니다.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구하는 대로 주어 애급 사람의 물품을 취하게 하셔서 그들이 나올 때 성막을 지을 수 있는 준비가 다 갖추어서 나옵니다.
“4대만에 이 땅에 돌아오리라.” 그랬죠? 물론 이것은 400년을 말씀하는 건데, 창세기에 4대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이 나오고, 바로 이어서 출애급기 역시 4대가 나오는데, 레위 지파의 족보죠. ‘레위-고라-모세-요셉’ 이렇게 진행이 되죠.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다.” 장정만 60만 3550명이 출애급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작게 잡아도 200백만 명이 될 거로 봅니다. 많이 보는 사람은 500만 명까지 봐요. 출애급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이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
(창 12:1-2)
1) 씨에 대한 약속
(행 3:25)
2) 땅에 대한 약속
(출 3:8)
창세기 12:1~2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자. 하나님이 약속하셨어요.
① 첫째는 씨에 대하여 약속을 줍니다. 씨. 내가 너에게 씨를 주어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때 하란에서 출발할 땐데 이때가 75세예요. 75세 때. 하나님이 아직 자식이 없는데 “내가 너에게 자식을 주겠다. 그 자식이 민족을 이루겠다.”라는 씨에 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3:25에 보니까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결국 이 씨, 육신적으로는 이삭이지만 구속사적으로 볼 때는 이 씨가 누구예요? 예수님이지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씨를 이 땅에 퍼뜨려서 민족이 되게 하고 나라가 되게 해야 되요. 씨에 대한 약속이지요.
② 또 땅에 대한 약속을 줘요. “내가 너에게 땅을 주겠다.” 땅에 대한 약속은 출애급기 3:8에 보니까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급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땅, 내가 너에게 땅을 주겠다는 거지요.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창 1:26-28)
1) 거룩한 형상 : 아들 (하나님의 거룩한 씨)
- 생육, 번식, 충만(씨의 확산) - sonship
2) 정복, 다스림(통치) : 왕 -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왕권을 가지고 그 나라를 위해 살아감 - kingship
하나님의 언약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씨에 대한 약속과 땅에 대한 약속이에요.
창세기 1:26~28에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얘기하는데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이것은 씨에 대한 얘기예요 씨. 하나님의 거룩한 씨. 이 씨가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것을 미국 신앙에서는 sonship이라고 해요. 아들의 씨죠.
둘째 하나님의 약속은 통치권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왕권을 가지고 그 나라를 위해서 살아감.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kingship을 가지고 있어요. 왕으로서 이 땅을 하나님 나라로 바꾸어야 되요. 세상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의 나라로 바꿔줘야 되요. 정복하고 다스리라 그랬죠? 왕에게 주신 약속이지요. 두 가지 sonship과 kingship입니다. 씨와 통치권. 이것을 다른 말로 구속사의 두 기둥이라고 그래요. 성경의 모든 역사는 이 두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성경의 맥(脈)입니다. 이게.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이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고,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했죠?
마태복음 16: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sonship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kingship이예요. 구약으로는 메시야인데 그 메시야는 이 땅에 메시야 왕국을 건설하려 오신 분이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나게 되면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주시고 성령세례를 주시고 우리가 이 땅에서 통치권을 가지고 사탄에게 빼앗겼던 나라를 다시 되찾는 운동을 일으켜요, 우리를 통해서 아담과 하와가 빼앗겼던 그 땅을 아담족 가운데서 다시 빼앗게 하는 거죠. 되찾게 하는 거죠. 이것을 kingship이라고 그래요. 우리는 통치권을 절대 놓치면 안 되요. 싸워서 이겨야 되고, 우리 교인들의 가정에 질병이 오고 경제적인 위기가 오고 부부간에 갈등이 오고 자녀들이 탈선하고 이런 것들을 교회 목사님이 왕권을 가지고 도와서 그들을 그런 사탄의 올무에 빠지지 않고 다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줘야 되요. 이게 목회(牧會)에요. kingship이 없으면 안 됩니다.
sonship은 뭐냐? 계속해서 씨를 확산하는 거예요. 전도하고, 선교하고, 사람들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집어넣고, 씨의 확산과 그들이 통치권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회예요. 이게 목회의 본질이에요. 숫자는 많이 느는데 교인들의 가정에 전혀 변화도 없고 능력도 없어요. 그러면 그것은 sonship만 갖고 있는 거예요. 다들 열심히 산다고 큰소리치는데 씨의 확산이 없어요. 그러면 그건 kingship, 이 두 가지가 같이 와야 되요. 목회의 성공은 뭐냐? 이 두 가지가 같이 가는 거예요. 우리 교회 교인 100명이 다 권능 받아서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녀 문제를 해결하고 자기가 있는 위치의 그 영역에서 kingship을 발휘해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고... 왜 자녀를 많이 안 낳으려고 그래요? 그게 kingship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아이들이 제 역할 잘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잘 해줘야 하는데 못해 줄 것 같으니 적게 낳는 거예요. 알고 보면 kingship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런데 목회는 숫자를 많이 갖기를 원해요. 애는 적게 낳으면서 그것은 왜 그래요? 이게 모순이에요 모순. 많이 낳아야 되요. 많이 낳아 그들을 다 무장시켜 kingship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직장에 가나 삶의 현장에서나 어디서든지 kingship의 영권(靈權),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고... 이것이 복음이라니까요? 씨의 확산, 그리고 그들이 내 가족들이 되면 그들을 다 무장시켜서 있는 곳에서 역할 감당하게 목회가 그런 개념이에요. 사람을 얻고 그들을 잘 무장하고 세워서 그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sonship과 kingship입니다. 이게.
이사야 60:22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사야 60:22) 작은 자가 천을 이루는 것은 sonship입니다. 씨에 대한 얘기지요?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것은 kingship이에요.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거예요. 속히 이루겠다는 거예요. 이 일을 누가 해요? 우리가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루시는데 그 손발이 누구냐? 우리가 한다는 거예요. sonship, kingship을 이루는 일을...
(마태복음 6:33) ‘그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예요. kingship을 말하지요.
‘그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예요. sonship입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이 뭐예요? 이 두 가지 때문이에요. 목회에 뭘 기대하십니까? 부흥이 뭐예요, 부흥이? sonship, kingship, 이 두 가지에요. 이렇게 군사로 훈련된 100명만 있으면 목회는 든든합니다. 이렇게 훈련된 10,000명만 있다고 생각만 해봐요. 한 시대를 역사를 뒤집어 버립니다. 그런데 숫자는 많이 모았는데 아무도 무장을 안 시켜주니까 별 도움이 안 되는 거예요.
★ 적용질문
1) 사명자에게 어떤 능력이 있어야 합니까?
2)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급을 떠나야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의 출애급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3) 모세가 이루었던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입니까? (3:7-10; 6:4-9)
오늘 우리가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입니까?
1) 사명자에게 어떤 능력이 있어야 합니까? -
① 뱀 잡는 능력 - 땅꾼 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사탄을 잡는 능력을 말하는 거지요.
② 육성, 우리 내면에 썩어있는 욕망들 옛 습관을 따라가는 육성을 제거하는 능력,
③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래야 사역을 할 수 있어요.
2-1)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급을 떠나야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 가지죠?
① 희생제물을 드리고 ②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드리고, serving하고, ③ 절기를 누리는 것. 희생제물은 서로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이고,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절기는 내가 누리는 거지요. 출애급하면 반드시 이런 결과를 얻게 되요.
2-2) 나의 출애급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하나님과 친해졌는지, 예배를 잘 드리고 있는지, 하나님을 잘 누리고 있는지, 출애급 사건이 바로 이런 풍요로움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거예요. 출애급 안하면 이런 풍요로움을 못 누려요. 하나님과 친해지기도 어렵고 하나님을 높여 드리지도 못하고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절기를 누리지도 못하고...
3-1) 모세가 이루었던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입니까?
출애급 언약이지요. (출 3:7-10; 6:4-9) 내려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데려가려 하노라.
3-2) 오늘 우리가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입니까?
① 복음전파 -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고 하나님이 원하는 땅까지 인도하는 것이 모세의 사명이었다고 하면, 우리는 sonship, kingship에 대한 사명을 감당해야 되요. 씨 확산하는 거죠.
② 세계선교전략 - 그들을 무장시키는 거예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그 말은 훈련시키고 무장 시키라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완성. 이 땅에 하나님 나라 완성을 위해서 교회가 만들어져 가는 거예요. sonship, kingship의 언약을 우리가 지켜야 되요. 땅에 충만해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씨를 계속 확산시키고, 전도 선교하는 일을 계속해야 되고 그 다음에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우리가 우리 교회 안에 들어오는 가정들은 다 회복이 되어야 해요. 또 우리 교회 안에 들어온 자녀들이 다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면 안 되요. 어디 가든지 leadership을 발휘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되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사람만 데려다 놓았다고 교회가 부흥되는 것 아니에요. sonship, kingship이 확실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받게 도와주고 그들을 무장시켜서, 삶의 현장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목회가 얼마나 신바람 나는 겁니까? 재미있지요, 아주...
③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완성(계 2-3장; 엡 1:20-23; 4:9-12)
7. 모세를 바로 앞에 신이 되게 하심
(요 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출애급 시대의 3대 이적과 목적
1) 가시적 기적 : 애급인들을 치셨던 10가지 재앙, 구름기둥, 불기둥, 만나, 메추라기, 반석에서 생수의 기적 - 영적(靈的) 충격 (신앙의 출발)
2) 내면적 변화 : 시내산에서 주셨던 십계명 - 그들의 이성에게 주신 말씀
(사고의 전환, 삶의 목적, 가치관의 변화)
3) DNA의 전수 :
성막의 훈련, 매일 동거,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spirit을 전수 받음.
하나님의 spirit, 하나님의 얼굴, 형상, 통치의 대행자로 보냄을 받음 - 왕 같은 제사장
출애급기 7:1~2 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神)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代言者)가 되리니 ⋯”
신이 되게 하셨다. 신같이 되게 하셨다. 요한복음 10:35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여기서 ‘엘’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엘’은 보통명사로 쓰일 때는 하나님의 대행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천사들의 이름이 뭐예요? “미가엘, 가브리엘, 이스라엘, 사무엘, 요엘”, 또 ‘엘’로 시작하는 이름이 있죠? “엘리야, 엘리사, 엘가나.” 엘로 시작했거나 엘로 끝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대행자라는 뜻이에요. “내가 바로 앞에 너를 신같이 되게 했다.” 그 말은, 바로가 벌벌 떠는 거예요, 하나님을 보듯이, 하나님의 대행자로 세워졌기 때문에... 그런데 요즘은 하나님의 대행자라고 말만 크게 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대행자처럼, 신처럼 사람들에게 보여야 되는데 그게 안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아주...
출애급 시대에 3대 이적과 목적. 자! 중요한 이적입니다.
1) 첫째는 가시적(可視的) 기적이에요. 애급인을 치셨던 10가지 재앙,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 메추라기, 반석에서 생수 기적, 소위 우리는 이런 것을 기적(奇蹟)이라고 해요, 기적. 신비체험 영적 충격을 가져오고 신앙을 출발케 합니다.
2) 둘째 기적은 더 깊은 것인데 내면적(內面的)인 변화예요. 시내산에서 주셨던 십계명, 그들의 이성(理性)에 주신 말씀 사고(思考)의 전환(轉換), 목적(目的) 가치관(價値觀)의 변화(變化). 아무리 기적이 일어나도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까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는 것은 사실 기적이 일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에요. 더 어려운 일입니다. 기적을 주신 목적 자체가 변화를 위한 거거든요. 만약에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다가 그런 체험을 갖지 못했으면 그는 하나님을 고백하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그런데 그 신비체험(神秘體驗)을 통해서 자기의 생각이 바꿔지는 거예요. “아! 나사렛 예수가 내가 기다리던 메시야구나.” 하면서 패러다임이 바꿔지는 것은 기적을 통해서 생각을 바꾸는 작업을 도와주는 거예요.
3) 셋째 더 중요한 기적은 뭐냐? DNA의 전수(傳受)입니다. 성막의 훈련,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스피릿(spirit)을 전수 받는 거예요. “하나님의 스피릿,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형상, 통치대행자로 보냄을 받음.” 그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대행하는 거죠. 타락한 인간, 사탄의 종노릇했고, 이 땅에 살면서 뱀처럼 살았던 인간들, 공격하고, 남을 비난하고, 헐뜯고... 그렇게 우리가 살았어요. 그런 사람들이 출애급 사건을 통해서 기적을 경험하고, 또 훈련을 받고, 하면서 그들의 사고가 하나님의 것으로 바꾸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을 세워주고 살려주고 왕이 되어서 만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도와주는 거예요. 이게 기적 중의 기적이에요.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사는 거지요. 왜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바로 앞에서 신처럼 보이게 하셨는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고 했느냐? 그들이 다 하나님이 하여야 할 일을 대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 목회 현장이 ‘엘’로 보여야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대행하니까.
8-11장. 바로의 타협안
1) (8:25) 이 땅에서 을 드려라.
2) (8:28) 너무 멀리는 가지 마라.
3) (10:11)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겨라.
4) (10:24) 양과 소는 남겨두고 만 가라.
5) (14:5-9) 특별병거 600승으로 바로가 추격함
바로가 그냥 내 보냅니까? 이 좋은 노동력을... 빵만 먹여주면 다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인데... 안 내 보내려고 합니다. 다섯 번씩이나 방해를 하고 타협하려고 합니다.
1) 첫째 8:25에 보면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왜 꼭 나가야 되느냐? 여기서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래요. 나가야 한다는 거예요, 떠나야 된다는 거예요.
2) 둘째는 8:28 “그래. 가려면 가라, 그러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마라.” 사탄이 우리를 그렇게 꼬드겨요. “그래. 믿는 것은 할 수 없다. 그러나 광신적으로는 믿지 마라. 제사도 좀 드리고 세상 즐거움도 좀 누리면서 그렇게 예수를 믿어야지, 꼭 그렇게 표 나게 예수를 믿어야 되느냐?” 그렇게 살짝 꼬드기는 거지요. 그래도 가겠다고 그러니까 계속 재앙이 떨어지고 하나님이 막 협박을 하니까
3) 10:11에서 “좋다. 그럼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겨라.” 그래요. 처자식은 집에 놔두고 남자들만 나가라고 그래요. 남자들은 하나도 힘이 없어요. 이렇게 해 놓으면 남자들은 다시 돌아와 버리거든요. 여자만 교회를 나오고 남편이 교회에 안 나오는 가정은 희망이 있어요. 그런데 남자만 나오고 여자가 안 나오면 그 가정은 희망이 반쪽밖에 안 되요. 남자가 여자를 끌어낼 능력이 없어요. 사탄이 이걸 알거든요. 그러니까 ‘장정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요즘 교회 안에 이런 가정들이 많아요. 자녀들은 교회에 안 다녀요. 부모는 봉사도 잘하는데... “자식들은 신앙은 자유야.” 그러면서 “애들이 크면 저희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러면서...
그러면 그 가정은 무너져요. 그래도 또 가겠다고 그러니까.
4) 10:24에 양과 소는 남겨두고 사람만 가라고 그래요. 한국교회 대부분 교회가 여기에 시험에 걸려 있어요. 제물이 없이 예배를 드리게 해요. 양과 소를 안 가지고 가면 제사를 못 드리잖아요? 제물이 없는 예배를 드리게 해요. 헌금 얘길 못해요 지금. 헌신하라고 그래야 되는데, 헌신을 강요 못해요 지금. 제물이 없는 제사를 드리고 있다니까요 지금.
5) 마지막 다섯째는 14:5~9 이제 협박하는 거예요 폭력으로... 무력으로 협박하는 거예요. 특별병거(特別兵車) 600승(乘)으로 바로가 추격해 옵니다.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처음에는 “조금, 살짝, 그냥, 여기서 드려라. 그대로 있으면서 교회만 가면 되지 않느냐? 하나도 바꾸지 말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해라.” 그렇게 말하죠. 이것이 첫째 유혹이죠. “할 수 없다. 집사도 하고 교사도 하고 해라. 그런데 집사도하고 교사도 하되 광신적으로 하지 마라.” 이것이 둘째 유혹이죠.
우리가 몇 번까지 극복해야 되요? 다섯 번까지 극복해야 되요. 대개 세 번, 네 번, 다섯 번에서 걸려요, 대개... 소문에 듣자하니 네 번에 제일 많이 걸린다고 그러더라고요. 울산은 안 그럽니까? 헌금이 차고 넘쳐요. 옛날에는요, 교회 건축하면요, 집 갖다 바치고 집 팔아서 전셋집으로 옮기고 헌금하고 그랬어요. 요새는 종자로 쓰려고 해도 그런 사람이 없어요. 이 시대가 그렇게 돼버렸어요. 그렇게... 아! 하나님이 개탄하시는 거예요.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그랬는데, 딴 데다 마음을 두고 사는 거예요.
재앙이 반복되었던 이유
1) 하나님의 을 나타내기 위해 (9:16; 7:5)
2) 이스라엘을 핍박한 바로와 애급인에 대한 하나님의 (10:16)
3) 애급의 신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 (18:8-11; 12:12; 민 33:4)
⋅ 하나님이 바로와 그의 땅을 때리실 때마다 자식을 잃고 위로 받기를 거절했던 어머니들의 이 풀렸다.
⋅ 공사 감독들과 현장 감독들의 줄 채찍에 맞아 찢어지고 터졌던 노예들의 깊은
가 아물었다.
1) 하나님의 전능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진짜 큰 분이다, 하나님이 진짜 왕이시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반복합니다.
① (9:16) 네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② (7:5) 내가 내 손을 애급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급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2) 이스라엘을 핍박한 바로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 하나님이 심판하는 거예요. 그 동안에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것, 하나님이 다 되갚음하십니다.
(10:16)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득죄하였으니
3) 애급의 신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 이게 아주 중요한 얘기입니다. 그냥 10가지 재앙이 아니라. 섬겼던 우상들이라는 거예요.
① (18:8~11) “모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급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의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그의 장인에게 고하매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모든 은혜를 베푸사 애급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급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급 사람의 손 밑에서 건지셨도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 애급의 모든 신들을 심판하신 사건, 교만한 그 신들을 이기신 사건이 열 가지 재앙이라는 거예요.
② (12:12) “내가 그 밤에 애급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애급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급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단순히 눈에 보이는 재앙이 아니라, 애급의 신들을 치는 사건이라는 거예요.
③ (민 33:4) “애급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
‘열 가지’ 재앙이라는 개념은 애급에 있는 ‘모든’ 신들, 모든 신들을 심판하시는 진짜 사람이 섬겨야 할 신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힘도 없고 가짜 흉내 내는 우상들을 깨뜨리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때리실 때마다 자식을 잃고 위로받기를 거절했던 어머니들의 한이 풀렸습니다. 공사 감독들과 현장 감독들의 줄채찍에 맞아 찢어지고 터졌던 너희들의 깊은 상처가 아물었다. 하나님이 그들의 아픔을 만져 주신 거지요.
11번이나 강팍해진 바로의 마음
1)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셨다. - 하나님의 섭리
⋅ 7회 - 4:21; 7:3; 9:12; 10:1,20,27; 11:10
2) 바로는 그의 마음을 스스로 강팍하게 하였다. - 인간의 자유의지의 발로
⋅ 4회 - 7:22; 8:15,19; 9:35
자. 출애급기를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있는데,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신 게 맞아요, 바로가 스스로 마음을 강팍하게 했어요? 둘 다예요.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셨다.” 일곱 번 나와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죠. 4:21; 7:3; 9:12; 10:1,20,27; 11:10, “바로는 그의 마음을 스스로 강팍하게 하였다.” 인간의 자유의지의 발로죠, 네 번 나옵니다. 7:22; 8:15,19; 9:35. 이쪽에서 볼 때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셨고, 저쪽에서 볼 때는 바로가 스스로 자기 마음을 강팍하게 한 거죠. 동전의 양면과 같은 거죠.
바로를 구속사에 사용하시는 하나님
1) 바로와 애급이 그들을 친절하게 대했다면?
2) 그들이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배려하였다면?
3) 그들이 착취하지 않았다면?
4) 그들이 추격해 오지 않았다면? (홍해, 광야 ⋯)
⋅ 400년이나 죽도록 충성하였는데, 우리를 그렇게 대할 수가 있는가?
⋅ 다른 사람은 다 배신한다 해도, 그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지!
- 주님의 구속사(救贖史)를 위한 배려 -
유월절 피, 떠남, 자기 부인을 경험케 하기 위하여 주님은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원수와 배신과 실패를 배열하셨다.
만약에 바로와 애급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출애급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안 했지요. 그들이, 이스라엘이 죽겠다고 ‘아이고. 한 번만 봐 달라’고 부르짖었을 때 배려했다면 이스라엘이 나와요, 안 나와요? 안 나오죠.
그들이 착취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추격해 오지 않았다면?
그들이 당했던 고난은 전부 출애급 사건을 돕고 있는 거예요. 제가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부분이 참 놀라웠어요. 400년이라고 하면 고향이 된 거거든요. 그런데 400년 된 땅을 떠나는데 물론 성경에 자세한 얘기는 없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전체적인 정황으로 볼 때, 나는 안 가겠다고 남아있었던 사람이 있었을 것 같아요, 없었을 것 같아요? 왜 없었을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그렇잖아요? 애들도 보면 부모가 이민 가는데 한국에 남아 있는 애들이 있어요. 나는 안 가겠다고 그러고.... 한 가족 몇 사람이 나라를 이동하고, 이사를 가는 데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난 안 가겠다, 난 여기가 좋다, 살 만큼 살았으니까 여기다 내 뼈를 묻겠다.”라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 법하거든요. 그런데 없었어요, 성경에. 왜 그랬을 것 같아요? 성경에. 지긋지긋하니까, ‘할렐루야’ 그거예요. 몸서리나요. 아주... “가다가 죽더라도 난 간다.” 이거예요. 이게 기적 중의 기적이에요. 하나님이 환경을 그렇게 배열하신다고요, 안 따라오면 못 배기도록... 여러분들이 목사가 안 되면, 안 될 사연이 많을 거예요. 안 물어봐도... 그 고약한 사연들, 우리를 몰아붙이고 힘들게 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환경, 하나님 앞에 두 팔, 두 다리 다 들고 올 수밖에 없도록 배열하셨던 그 환경들이 은총이라는 거예요. 400년이나 죽도록 충성했는데 우리를 그렇게 대할 수가 있는가? 그럴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은 다 배신한다 해도 그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지, 그렇게 했으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고 신앙생활 열심히 했고 기도생활 했단 말이에요.
목회하면서 가끔 가시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그런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에 대해서 절대 고까운 마음 갖지 마세요. 고맙구나 생각하세요. “저 분이 나의 훈련대장이시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세상에 마음 둘까봐서, 딴 데 허탄(虛誕)한 데 마음 둘까봐서, 저분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구나.” 하면서, “할렐루야” 하면서, 배나 열심히 사랑해버려요, 그냥. 이 심오한 말씀 알아들었는가 모르겠어요? 심오합니다, 아주. 하나님이 그렇게 배열하셨으니까요. 환경적으로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시 같은 집사 세워 가지고 계속 헷갈릴 때마다 한 번씩 받아 주는 거예요, 그냥... 그 때는 그 원수 같은 인간이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나서 보니 그 분이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겸손해질 수 있었을까? 할렐루야... 세상에 원수가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내가 잘못 생각한 거예요.
제가 상담학을 공부했는데, 상담학을 공부할 때 서로 그렇게 얘기해요. “오죽 했으면 상담학을 하냐?” 그랬어요. 부부치유를 또 공부해요, 거기서 부부 치유... 부부 치유하는 사람이 서로 쳐다보면서 웃어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부부 치유하냐?” 그래요. 그렇게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이 공부하고 나서 다 지금 여러 부부 살리고 있어요. 제가 유명한 상담가 한 사람 알고 있어요. 내가 만나보니까 성격이 개떡 같아요. 아~ 멀리서 볼 때의 명성하고, 가깝게 교제해 보니까 성질이 더러워요 더러워... 이 분은 그 더러운 성질 때문에 변화 받은 거예요. 그 성질 안 내려고 끙끙대면서 기도하고, 엎드리며 또 기도하고, 그러면서 성자(聖者)가 된 거예요 성자가... 그런데도 가까이 하면 냄새가 나요. 어찌 되었건 그 성질 때문에 상담학을 공부한 거예요. 그것 좀 고쳐 보려고 그러다가 수백 명, 수천 명 사람들 살리고 있는 거예요. 지금 그 분이 성질이 바뀐 건지 안 바뀐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가깝게 하기에는 너무나 불편한 당신이에요. 그 사람은... 멀리서 봐야지⋯ 내가 그 사람을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는 심오하다고 그랬어요. 저 양반은 개떡 같은 성격 때문에 성자 됐군요. 여러 사람 살려주는 거예요. 우리가 실수한 것까지도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결핍 요소까지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셔요. 놀라운 은혜입니다.
주님의 구속사를 위한 배려 - 유월절 피, 떠나게 한 사건. 자기부인을 경험케 하기 위해서 주님은 원수 앞에서 적재적소에 원수와 배신과 실패를 배열하셨어요. 혹시 교만할까 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족 가운데 나에게 원수로 세워 놓을 수도 있어요.
제가 이름만 대도 여러분 다 아니까, 이름은 말씀드리지 않겠어요. 아들이 있는데 잊어버릴 만하면 칼 가지고 와서 자기 배를 긁어대요. 아버지 앞에서... “돈 내놓을 거야, 안 내놓을 거야?” 아버지가 목사님인데 그걸 어떻게 견뎌요? 목사님이 무슨 돈이 있다고 자기가 뭐 일본 사무라이인가? 할복(割腹)을 하려고 해요. 면도칼로 배를 긁어대는 거예요. 아버지가 죽지요, 그냥. 아들 피해서 도망쳐서 선교사로 갔어요. 그 분 보면 항상 양미간에 찌푸린 것이 있어요. 그 분의 인격은 ⋯, 그 아들 때문에, 그 아들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어요?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 하나님이 사람 만드는 방법 참 여러 가지입니다. 아주. 좋게만 우리를 키운다고 좋은 것이 아니에요. 때로는 기가 막힌 수렁으로 우리를 인도하셔서 빠져나갈 수 없도록 우리를 옭아매 가지고 그냥 사람 만드는 거예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불평할 것도 없고, 원망할 것도 없고, 그래요, 하나님.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어요? 틀림없이 무슨 뜻이 있겠지요. 그러고 “할렐루야”하면 다 은혜가 되는 거예요. 기도가 절로 나오죠. 만약 바로가 친절하게 대했거나, 애급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했으면 절대 안 떠납니다. 떠날 게 뭐 있어요? 더군다나 나가면 광야인데, 뒤도 안 돌아보도록, 뒤도 못 돌아보도록, 하나님이 징글맞게, 몸서리나도록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단 한 사람도 못 남도록... 이게 기적 중의 기적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릴 목사로 만들기 위하여 배열하셨던 환경들 가만히 돌아보세요. 버릴 게 하나도 없어요.
환경도 하나님의 은혜, 원수 같은 인간을 내가 가는 길에 붙여놓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육체적으로 고통당하고 심지어 아들이 태어났는데 죽어야 하는 그런 슬픔과 아픔, 결국 우리가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리고 주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배열하신 큰 은혜였어요.
버릴 게 있다, 없다? 없어요. 심지어 목회를 하면서 거쳤던 시행착오들, 부흥되지 않고, 애를 쓰고 기도해도 결과가 나타나지 않은 아픈 사건들까지도 전부가 다 하나님의 은혜요, 은혜... 은혜 아닌 게 있어요, 없어요? 이제는 내가 그런 하나님의 인도 앞에 복종하고 엎드려서 하나님을 따라가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 목회를 성장 시켜주시고 재미있게 하시고 놀라운 결과를 얻게 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 출애급기 강의 (6) >
성경을 알고 인생을 사는 것하고 진리가 뭔지 모르고 여기도 헤매보고 저기도 방황해보고 살아보다가 “어. 이거 아니네, 그럼 다른 곳에 있는가 봐.” 하면서 다른 곳에 좇아다니며 이렇게 사는 인생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미리 정보를 알고 가면 훨씬 여행이 즐겁습니다. 울산에 제가 몇 차례 왔는데 그런 정보를 제가 아직 듣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냥 그 동네가 그 동네고,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만약에 관광을 위해서 여기에 왔다고 하면 먼저 안내를 받을 겁니다. 대략적인 지도를 그려 달라고 그러고 그럴 놓고 숙지한 다음에 돌아다니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니까 재미가 있겠지요.
교회의 구조가 교회 들어오면 이런 orientation을 좀 잘 해 주어야 되는데, 한국교회 orientation은 그동안 복 받는 것이었습니다. “복 받으려면 하나님 믿어야 된다.” 틀린 건 아니었지요. 맞았지요. 문제는 복을 받고 난 후에 어떻게 살지에 대해 몰랐던 거예요. 이것을 꿈 너머 꿈이라고 그럽니다. 예를 든다면 대학교 들어가는 것이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꿈이지요. 좋은 대학에 자기가 들어갔어요. 그 다음에 자기가 뭘 할 거예요? 그러니까 대학 들어가서 목표가 없어지니까 술 먹고 엉망인 생활을 살아버립니다. 출세해야 되겠다고 하여 고위직에 오르게 되고 또 어려운 시험에 pass하게 되고, 그것이 꿈이 되어버리면 안 되죠. 꿈 너머에 또 다른 꿈이 있어야 되지요. 그걸 보고 vision이라고 하고 사명(使命)이라고도 하지요. mission을 못 찾으면 안 되지요.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장자권의 복을 주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복의 통로가 되게 해서 나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살아납니다. 그런데 이런 복의 목적이 무엇인가? 결국 우리 인생은 왔다가 가는 인생인데 누리면 얼마나 누리겠어요? 짧은 인생이잖아요. 그 영광이 얼마나 됩니까? 그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면 안 되지요. 이 땅에서 아무리 영화롭게 살아봐야 다 두고 가잖아요? 이 땅에서 목적이 우리의 영원한 목적이 될 수가 없지요. 꿈 너머 꿈, 우리가 복음을 깨닫고 은혜를 받고 그 이후에 어떻게 살 것이냐?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수고해야 되고,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가 되고 이렇게 사는 것이 영원을 위해 사는 것이지요. 그래서 신앙생활할 때 이런 orientation을 처음부터 잘 가르쳐주면 교인들이 헷갈리지 않고 얼마가 걸리든지 간에 거기에 도달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복 받아야 된다.’ ‘이렇게 했더니 복을 받더라.’ 그런 간증을 세우고 해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 목표로 가서 복을 받았어요. 복을 받고 나니까, 돈 있고 시간 있으니까 이제 뭘 합니까? 교회 안 나오고, 세상으로 나가게 되고, 레저를 즐기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영적으로는 점점 더 타락하게 되지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지 말고, 성경의 원리를 따라서 차근차근 출애급기의 과정을 가지고, 창세기도 마찬가지예요. 성경이 너무너무 과학적으로 쓰여 있기 때문에 한 권씩 공부할 때마다 탄성을 지르는 거예요. “아! 대단하다. 이런 비밀이 성경 안에 숨어 있었다니!” 경영학 서적 100권 읽는 것보다도 성경 한 번 제대로 딱 읽고 이해하면 인생이 보이고, 역사가 보이고, 세상의 구조가 보이고, 안 되는 사람은 왜 안 되고, 되는 사람은 왜 되는지... 이런 것이 다 보여요. 보이면 인생이 재미있잖아요. 인생이... 의사도 좋은 의사 만나면 병의 원인도 알고 어떻게 치료하는지 알지요. 그런데 의사 잘못 만나면 나타난 현상만 가지고 자꾸 이야기하면 해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목자란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의 진리가 무엇인지, 생명의 진리가 무엇인지 전체의 그림을 그려주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본인이 선택하게 하는 거지요. 어떤 인생으로 살 것이냐에 대하여 목사가 개인 철학으로 말하면 안 됩니다. 성경을 가지고 얘기해 주어야 해요. “진리다, 말씀이다.” 이렇게 했을 때에 권위가 있고... 그 분들이 목사님을 떠날 시기가 있잖아요? 이사를 간다할지, 다른 나라로 간다 할지, 그래도 진리를 가르쳐 놓으면 어디 가든지 자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자기 사람 만들고, 목사님 충복(忠僕) 만들어 놓으면 목사님과 갈라지게 되면,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리는 거예요. 우리 개인의 충성스러운 사람을 키우는 것이 아니잖아요? 잘 키워서 동역자가 되게 하는 것은 좋지만, 과거 군사정권 문화를 지내온 사람은 탁 군림하려고 해요. “내 말 들어! 나 주의 종이야! 나 기도하는 사람이야!!!” 뭐 이러면서... 협박하는 거예요. 교회 떠나면 저주해 버리는 거예요. 그건 아주 잘못된 가르침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이고, 하나님의 종이지요. 우리가 군주가 되고, 왕이 되어서 사람을 끌고 다니는 것 아니에요. 나중에 반드시 심판 받습니다. 그대로 하나님 갚아줍니다. 그렇게 안하면 세상 질서가 엉망이 되어버리거든요. 그래서 좋은 mentor가 되고, 좋은 목자가 되어서 교인들이 진리를 따라 살게 해주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좋은 친구가 되고, 또 자녀가 되고, 더 나아가서 신부가 되고... 신부가 되면 같은 partnership이잖아요? 그리스도인 신부가 교회가 되어서 이 땅에 빼앗겼던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영역을 다 잃어버렸잖아요? 자연도, 사람도 잃어버렸고, 사람의 생각, 마음. 어느 구석에도 사탄이 다 자리 잡고 있잖아요? 우리가 마귀하고 싸우는 거고, 그 마귀가 지배했던 세상 나라를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 바꾸는 사역을 위해서 우리가 잠깐 이 땅에서 30년, 40년 준비하고, 한 30년 일하다가 가잖아요? 그 기간 동안에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가치가 달라지는 거지요.
제가 성경을 읽으면서 제일 궁금했던 것으로 신약성경을 읽으면 제일 첫 장에 예수님 족보가 나오는 거예요. 그 족보 안에 다섯 여자가 나와요. 그런데 이 여자들은 다 끼가 있는 여자들이에요. 거기에 나온 여자는 누구예요? 다말, 기생 라합, 룻, 밧세바, 마리아, 다섯 여자가 나오죠? 마태가 의도적으로 이 사람들을 집어넣었어요. 거기에 사라나 리브가나 이런 사람이 들어 있으면 평균화가 될 텐데, 끼 있는 여자들만 집어넣은 거예요.
① ‘다말’은 어떤 여자예요? ‘다 말’아 먹은 여자잖아요? 계대결혼(繼代結婚), 장자가 후사를 낳지 못하고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해서 후사를 낳아 주어야 되지요. ‘계대결혼’, 다른 말로는 ‘수혼제도(嫂婚制度)’라고 해요. 반드시 delivery를 해야 되요. 하나님은 역사 속에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 대에서 끝나면 이 집은 저주 받은 집안이에요. 그래서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씨를 남겨 놓아야 해요. 신명기 23:1-2에 보면 “신낭이 상한 자나 신을 베인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씨를 남기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지 못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형님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해 가지고 아이를 낳아 주어야 되요. 그런데 엘과 오난이 악행을 행하여 하나님이 씨를 낳기 전에 죽였어요. 셋째가 성장해서 형수 다말을 취해 주어야 되는데, 아버지 유다가 셋째까지 잃을까봐 겁이 나니까 안 준 거예요. 그래서 다말이 아이디어를 짜가지고 시아버지하고 관계를 해서 아이를 낳았잖아요? 당 시대에도 이것은 이해가 잘 안 되는 거예요. 있을 수 없었던 일이기에...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을 너무나 귀하게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다말을 이름에 올렸다는 거지요.
② 또 기생 라합, 우리는 기생하면 ‘황진이’ 멋있게 생각하는데, 여리고, 그 악한 사회에서 남자들을 홀려 돈벌이하면서 살았던 여자가 얼마나 가치 있는 여자였겠어요? 입에서 육두문자가 그냥 나오고 얼굴도 무섭게 생긴 그런 여자 아니겠어요? 그런 여자가 두 정탐꾼을 우대함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진격하는데 도왔단 말입니다. 정탐꾼 두 사람 가운데 살몬이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하고... 여러분. 살몬이 기생 라합하고 결혼할 이유가 있어요, 없어요? 40년 동안에 광야를 헤매다가 이제 드디어 여리고 성에 와 가지고, 성을 쳐들어가야 되어서 정탐꾼을 보내는데 비리비리한 사람을 보내겠어요, sharp하고 똑똑한 사람을 보내겠어요? 보통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거기서 그럴 리는 없겠지만 IQ test에서 150 이상 다 나와! 키 180 이상, 군대에서 장교출신 이상, 이런 식으로 하여튼 엄선해서 뽑고 뽑았던 사람이 두 사람일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elite 중에 elite란 말이에요. 그런 사람이 기생 출신하고 결혼할 이유가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여러분이 어머니라면 시키겠어요? 누가 시켰을 것 같아요? 하나님이에요, 하나님. 왜요? 그 여자의 씨를 받아놓아야 되거든요. 보통 여자가 아니거든요. 왜 보통 여자가 아니에요?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수고했기 때문에... 자기 목을 걸었거든요. 이거 들키면 자기만 아니라 자기 가족 다 몰살되는 거예요. 그런 위기 상황에서 진리를 선택한 거예요. 이런 것을 신약성경에서 자기부인이라고 해요. 그 행위가 너무 위대했기 때문에, 그 행위가 하나님 앞에 너무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생 라합을 넣었다고요. 그런데 라합 그 앞에 무얼 붙여요? ‘기생’을 붙였죠. 이게 참 재미있는 표현이에요.
③ 셋째 여자는 룻이에요, 룻. 십대까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저주 받은 민족, 모압 백성이죠?
④ 또 밧세바가 나와요, 밧세바는 여기에 들어와서는 안 될 여자예요. 밧세바가 훌륭한 부분이 있어요, 없어요? 다른 여자들이야 다 목이라도 걸었지만, 밧세바는 목욕 한 번 잘 했다가 왕의 눈에 띄어서... 어찌 되었던 남편 잘 만나 애 하나 잘 낳았어요. 솔로몬이에요. 여자는 남자 잘 만나면 큰 복이에요. 교인은 목사님 잘 만나면 그것보다 큰 복이 없어요. 그냥 따라가는 거예요. 난 그분이 누군지 모르고 도왔어요. 자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따라가서 애 낳아 주고 열심히 섬기고 보니, 그 분이 다윗 왕이라... 하나님의 종을 잘 섬기는 것도 대박이 터지는 거예요.
⑤ 마리아, 우리는 마리아를 멋있게 생각하지만, 당 시대에는 마리아가 멋있는 여자가 아니에요.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그때 조혼제도가 있었데요.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 일찍 죽고, 그러니까 빨리빨리 결혼을 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마리아의 나이를 12~15살로 추정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나이로는 여중생의 나이란 말이에요. 여중이 어느 날 배가 불럭불럭 불러와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해요. 믿을 사람 손들어보세요? 여러분 옆집에 어떤 여중생이, 울산 여중 2학년생이, 어느 날 배가 불러오는데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소문이 들렸어요. 여러분 믿겠어요? 나는 그 시대에 안 태어난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저는 그러면 100% 안 믿어요. 어떻게 믿겠어요?
우리나라도 그런 사건이 있었거든요. 옛날에 미남으로 생긴 교주 한 사람이 있었어요. ‘구인회’라고요. 자기가 데리고 있는 시녀가 12명이 있는데, 그 중에 한 시녀가 어느 날 임신을 했어요. 그걸 뭐라고 했냐 하면,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그랬어요. 아들을 낳았으면 참 좋았을 것인데, 딸을 낳았어요. 그래서 곤란한 문제가 생겼어요... 그런데 나중에 감옥에서 심장마비로 죽었어요.
마리아는 당 시대에는 손가락질 받는 여자였어요. 이게 역사적으로 검증이 되고 하나님이 인정해주고 그러니까 아름다운 여인으로, 하나님께 헌신한 여인으로 평가가 되었지만, 당 시대에는 문제 많은 여자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이 여자들의 이름을 쓴 거예요.
“다윗은 밧세바에게서…” 이렇게 하면 은혜롭잖아요. 아니면 “다윗은 솔로몬을 낳고…” 이렇게 하면 좋잖아요. 꼭 뭐라고 하냐하면,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잘 이해가 안 됩니까? “김 씨는 옆 집 박 씨의 아내에게서 돌쇠를 낳고,” 이제 알아들으시네. 그런 수준으로 지금 기록을 하고 있는 거예요. 뭘 얘기하냐 하면 우리는 도덕이나, 윤리나, 세상의 가치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가치를 뭘로 평가하냐 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했냐? 과거가 어떻든지, 그 사람의 수준이 어떻든지 간에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느냐에 따라서 평가를 합니다. 정부가 새로 바뀌고 그러잖아요. 정권이 바뀌고 그럴 때, 과거에 ‘가신(家臣)’이란 단어가 유행이었을 때가 있었잖아요? ‘가신’ 아주 옆에 따라 붙어서 집안사람처럼 아주 철저하게 king-maker 역할을 했던 사람을 끝까지 기용해 주었던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역사적으로 봅니다. 제가 제주도에서 세미나를 할 때 세미나 도중에 그런 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 이 여자들을 성경에서 존대(尊待)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새벽에 일어나서 묵상하면서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개국공신(開國功臣)’이라는 감동을 주었어요, ‘개국공신’ 새 나라를 열려는데, 새 나라를 이 땅에 펼치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하나님이 얼마나 우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성경에 기록하고 있다는 그런 감동을 주시더라고요. 개국공신...
우리가 목회를 잘해야 되잖아요? 성공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 나라와 어떤 관련이 있느냐를 보아야 되요. 자기왕국(自己王國) 만드는 사람 많다니까요. 자기 사람 챙기고... 영어로 in my pocket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그것은 역적입니다. 그것은... 새 정부가 들어서서 좀 역할을 할 줄 알고 요직을 주었더니, 전부 뒤로 자기 것 챙겨버리는 거예요. 자기 사람 챙기고, 자기 line 만들고, 자기 호주머니 챙기고... 요직을 주었더니 그런 짓 하고 있어요. 그러면 이 사람 쓸 수 있어요, 없어요? 바로 퇴출당하지요. 우리가 목회를 한다, 주의 일을 한다, 교회에서 충성한다, 그럴 때 이런 것에 대한 검증 없이, 분별없이 하게 되면, 결국은 주님이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하실 때가 온다 말이에요. 하나님 법도대로 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는 것들에 대해서 자기 사람 챙기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사람들 이용하고... 하나님 이름 팔아서 자기 것 챙기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이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엄격하신 분이신 줄 아십니까? 지난번 사도행전 세미나를 하면서 제가 아주 전율을 느꼈어요. 예루살렘 교회가 얼마나 대단한 교회입니까? 이 땅에 오순절을 오게 한 교회 아닙니까? 베드로가 설교할 때, 3~5천 명 회개하고 역사가 뒤집어졌잖아요. 감옥 문을 열어버리고, 그랬던 교회, 그랬던 베드로지만, 사도행전 15장 이후에 율법주의에 빠져가지고 예루살렘교회에서 유대인 가운데 율법에 열심한 자가 수 만 명이라고 그랬어요. 복음에 열심인 자가 아니라, 율법에 열심인 자가 수만 명.
그리고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가 바울에게 강론을 합니다. 네가 율법을 반대하고 할례를 금한다는 소문이 나 있는데. 네가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한 번 보여주라고 했어요. 그래서 바울이 결례를 행하면서 자기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다가 체포되어 가지고 결국 로마로 압송되지요. 그렇게 쓰임 받던 예루살렘교회가 15장 이후에는 종적을 감추어 버려요. 베드로도 그렇게 탁월하게 처음 유태인들에게 성령세례를 베풀었고 사마리아 지역과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성령세례를 베풀었던 그 탁월한 지도자가 사도행전 뒷부분에서는 아주 종적을 감추어 버려요. 갈라디아서 2장에 보니까 율법주의에 아주 미혹되어 있었어요. 이방인들과 식사하다가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보고 시험 들까 봐서 먹다가 위선 행위를 했어요. 안 그런 척했어요. 바울이 이걸 보고 엄히 책망을 하잖아요. 한 때 쓰임 받았던, 한 때 역사를 좌지우지 했던 그 베드로 같은 사람도 역사의 무대에서 간단하게 사라져 버렸어요. 하나님은 쓸모없으면 바로 찍어 버립니다. 왜요? 역사의 중심이 바로 구속사이기 때문입니다. 구속사에 반대되는 사람은 바로 퇴출시켜버립니다. 이해가 안 되는 얘기예요. 예루살렘교회와 베드로가 사도행전이 끝나기도 전에 없어진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바톤을 누가 받아요? 안디옥교회가 받고 바울이 받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 나라 구속사에 쓸모가 없으면 하나님은 바로 퇴출 시켜버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사람 한번 생각해보세요. 사울 왕 보세요. 여호와의 악신이 들어가 가지고 40년을 봉사했지만 버림받은 사람이에요. 왕관을 잃어버리고... ‘워런 유어스비’가 쓴 책 가운데 ⌜왕관을 잃어버린 사람⌟ 이라는 책이 있어요. 제목 보고 아주 내가 전율(戰慄)해서 읽어보았어요. ‘왕관을 잃어버린 사람.’ 오늘 우리 가운데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지만, 하나님 의도와 관계없이 살다가 버림받은 사람 얼마나 많습니까? 구약으로 말하면 장자로 태어났지만 장자권 잃어버렸던 사람들 르우벤이 잃어버리니까 누가 받아갔어요? 준비된 사람들이 받아갔지요. 왕권은 유다가 받아갔고, 제사장권은 레위가, 두 배의 몫은 요셉이 받아갔잖아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베푸실 때는 어머어마하게 은혜로 찾아오시지만, 은혜를 자꾸 배신하고, 은혜를 대항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은 바로 퇴출시켜 버립니다. 이스라엘이라도 버리는 거예요. 거기 로마서 9장부터 11장이잖아요. 참 감람나무도 찍혀버렸다는 거예요. 하물며 이방인인 우리가 헷갈리고, 자기 왕국 챙기고 있고, 자기 사욕 챙기고 있으면 하나님이 쓰실 수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6:7에서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런 말씀이 있지요. 하나님 모시고 장난치지 말라는 거지요. 역사 속에서 쓰임 받았던 이스라엘도 버리는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까불어대다가 하나님께서 한 번 훅 불어버리시면 날아가 버립니다. 정말 진리중심으로 살아야 되고, 말씀중심으로 살아야 되고, 매일 하나님 뜻 가운데 살고 있는지 점검하여야 되고... ‘풀루’라는 유행병이 돌았을 때 얼마나 긴장했어요? 손 씻고... 병원에 가보았더니 마스크 안 한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전부 다 마스크하고 있더군요.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어요. 물리치료 받으려고 병원에 갔는데, 기침 한 번 했더니 카운트에서 바로 등록해 가지고 검사 받으라고 했어요. 와~~~ 기침 한 번 했더니... 그것도 진짜 기침을 한 것도 아니고 헛기침을 했어요. 그 민감함 아닙니까? 민감함. 영적으로도 이렇게 민감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그냥 휩싸여 들어가 버려요. 언제 타락했는지 모르게 타락해 버립니다. 사탄이 눈을 벌겋게 뜨고 우리를 공격하려고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얼렁설렁 살아가지고는 안 됩니다. 긴장해야 되지요. 아침에 차를 타고 이곳으로 오는데, 운전하신 목사님이 별나게 교통법규를 잘 지켜요. 유턴을 하는 곳에서 노란선에서 정지하는 거예요. 그 건너편에 교통경찰이 서 있는 거예요. 만약 노란선을 넘어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교통경찰이 아침거리 생겼다하면서 ‘Come on, come on’ 그랬을 거예요. 왜 운전하시는 목사님이 긴장했을까요? 그 교통경찰이 보고 있으니까요. 그거예요 바로... 우리를 노리는 적들이 있는데 우리가 허투로 말하고 행동하면 바로 걸립니다. 바로... 우리가 늘 말씀으로 자신을 점검하고 좋은 교제권을 만들어서 서로 격려가 되고,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처럼 서로서로가 힘이 되어서 영적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하고... 이런 교제권이 교회입니다. 교제권... 좋은 network을 형성해서 서로 지켜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시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적. 마태복음 1장에 다섯 여자들이 우리가 볼 때에는 별것 아닌 여자들같이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볼 때에는 개국공신(開國功臣)들이라는 거지요. 결국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시느냐? 구원의 목표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어제 배웠던 것의 복습입니다. 1장부터 11장은 은혜라고 그랬어요, 은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사건이지요? 이것은 암기할 필요가 있지요. 어제 배웠던 것 한 번 암기해 볼 까요? 1~2장 보고 듣고 알고, 3~11장 내려와서, 12장 건져내고 13~24장 인도하여, 25~40장 데려가려 하노라.
자. 오늘 둘째 버전입니다. 1~11장은 은혜, 12~40장은 응답. 이렇게 외우세요. 은혜와 응답. 이게 교통이라는 말이에요. 주거니 받거니 그거 아니에요? 1~2장은 하나님이 상황을 준비해 주시지요. 역사적으로, 상황적으로, 시대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모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거예요. 하나님의 준비. 3~4장 하나님이 목자를 준비시켜줍니다.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때쯤 해서 준비된 목자가 어디 있었어요. 3장에서는 요즘으로 말하자면 성령 체험을 하지요. 4장에서는 이미 그가 어떻게 영적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장수로써 준비를 갖추느냐에 대해 세 가지 증거를 보여주죠. 뱀 잡는 능력, 육성을 다스리는 능력, 세상을 조종하는 능력.
1~2장은 상황을 준비함, 3~4장은 목자를 준비시킴, 5~11장은 두 진영의 대결인데,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진짜 신이라는 것을... 그들이 평생 믿어왔던 우상들이 아니라, 10가지 심판을 통해서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진짜 신이라는 것을 과시해주는 거예요. 쫙~~~보여주는 거예요. 12~40장까지는 응답이에요. 우리가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응답할 것이냐? 12장은 피의 언약, 네가 피 바르면 내가 이제까지 있었던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다 지워주겠다. 13~14장은 자기부인, 세례의 언약입니다. 이렇게 살겠습니다. 내 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겠습니다. 15~18장은 광야훈련이에요. 실제적으로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무얼 말하는 것인지 거슬렸던 것은 깨뜨리고, 그 깨뜨린 부분에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도록 그렇게 계속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해요. 19~24장까지는 시내산에서 말씀을 훈련하는 진리훈련, 하나님의 원칙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맞추는 거예요. 연애하신 분들, 연애결혼하신 분들 손들어 보세요? 연애할 때 내가 propose를 했어요, 누구한테 맞추어요? 상대에게 맞추지요. 연애를 잘 해보아야 예수님과 연애를 잘하는데, 중매로 결혼하신 분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거예요. 그렇다고 새로 할 수도 없고... 예수님하고 하세요. 100% 대상에게 맞춥니다. 왜요? 그래야 ‘꼬실라이제이션’할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꼬실라이제이션’하실 때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100% 우리에게 맞추었어요. 그러시고는 “이제는 네가 나에게 맞추어라.” 그게 12장 이후에요. 그래서 100% 그 분에게 맞추어야 되요. 이 부분을 우리가 놓쳐버려요. 하나님이 왜 부르셨는지, 어떤 코스로 우리를 인도하시는지? 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작업이라니까요? 옛날 ‘트랜지스터라디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튜닝(tuning)’한다고 그러지요? ‘찌지직 찌지직’하다가 사이클이 맞으면 어떻게 되요? 소리가 명쾌하게 나오죠. 그런 개념이에요. 광야에서 자꾸 안 풀리고, 잡음이 들리고, 헷갈리고, 힘들면 튜닝을 잘해야 되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느냐? 튜닝하다가 딱 맞으면 그때 오는 것이 평안이에요 평안.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평화가 오면 야 이거구나. 또 조금 가다가 삐거덕거려요. 그럴 때 또 튜닝하는 거예요. 이게 광야라니까요?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 초점 맞추는 훈련을 한 후에, 그 다음에 시내산에 가서 하나님의 철학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원칙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되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 하시는지, 다 가르쳐 주시지요. 저는 개고기를 안 먹습니다. 개를 무지무지하게 사랑해서요. 밖에다 두고 사랑하지, 안에 두고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매년 그런 것을 경험해요. 아주 난감합니다. 아주... 교인들이 얼마나 목사를 사랑하는지 “목사님의 몸은 홀몸이 아닙니다.” 내가 뭐 임신했나? 그러면서 오늘 거창하게 접대하겠다는 거예요. “어디로 가시려고 합니까?” 물으면 “아이. 목사님 묻지 말고 따라오세요. 묻지마 관광도 못 들었습니까?” 뭐 이러면서 3~4시간 데리고 가는 거예요. 가보았더니 보신탕(補身湯)집이에요. 보신탕집에 다른 음식 해요, 안 해요? 안 해요. 다른 음식 하는 것 있느냐고 물었더니 삼계탕(蔘鷄湯)이 있대요. 나는 삼계탕을 주문했는데, 자기들 다 먹고 이쑤시개 하는데 그 때 내 음식이 나오더라고요. 국물만 마시고 나왔어요. 그냥...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그때 그 영화의 제목이 생각나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 접대한다면서 “먹어요 먹어, 이거 영양가 좋아요.” 그러면서 막 윽박지르는 거예요. 그런 게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은 뭐냐? 상대방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는 거예요. 철저하게 그분에게 맞추는 거예요. 감사하게도 그분이 자신을 계시하셨어요. “나는 이런 것 싫어하고 이런 것은 좋아한다. 나하고 살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다 가르쳐 주셨어요. 그것이 성경 66권 아닙니까? 자세할수록 좋은 거예요. 이게... 결국 이렇게 해서 목표에 도달하게 해요. 그 목표는 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이자, 하나님의 대행자가 되는 거예요. 예배하고, 하나님과 주거니 받거니 교통을 하고 대행자가 되고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 펼치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우리가 살도록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란 그 말이에요. 그것을 성경은 가나안의 삶이라고 얘기해요. 나중에 가나안의 삶을 또 설명하겠습니다.
자. 여덟 단계, 암기하셔야 됩니다. 제가 장을 부르면 여러분이 내용을 말씀하십시오.
1~2장 (상황준비, 주변 준비), 3~4장 하나님이 누구를 준비해요? (목자를 준비해요). 5~11장 (모세가 하나님이 참 신임을 드러냄). 12장 (피의 언약), 13~14장 (세례의 언약), 15~18장 (광야 훈련), 19~24장 (말씀언약), 25~40장 (왕 같은 제사장으로 훈련시킴. 예배자로 세움).
그런 얘기입니다. 뒷부분은 어제 했던 거지요. 앞에만 조금 더 자세하게 구분했지요? 두 분씩 짝지어서 이 8단계를 한 번 확인해 보십시오. 1~2장 하나님이 상황을 준비하시지요. 예수님 믿도록 상황을 준비하시지요. 3~4장 목자를 준비시킴. 항상 구원 사건에는 목자가 미리 와 있어요. 현대 교인들에게 목자 잘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나한테 꼭 맞는 목자를 하나님께서 맞춤형으로 준비시켜 놓았거든요. 이런 것을 자기들이 마음대로 바꾸어버리면 이게 보통 곤란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닙니다. 5~11장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냄. 바로 앞에 과시를 하지요. 일부러 과시를 합니다. 쫙~~~보여주는 거예요. 한 방으로 해결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안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그건 우연히 되었겠지 뭐... 이렇게. 가끔 환자들에게 기도해주면요, ‘기도(祈禱)해서 나았다’가 아니라, 뭐 ‘자연식(自然食)을 해서 나았다.’는 이 따위 소리를 해요. 사람이 그런 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거 뭐 자연의, 우연의 일치다, 뭐 이것은 자연적인 사건이다. 이렇게 할까봐서 일부러 10번으로 늘리는 거예요. 이게... 한 사건 또 한 사건... 사람이 워낙 완악하니까요. 그래서 진짜 하나님의 일이라고 무릎을 딱 꿇을 때까지 10번을 하는 거예요.
12장 피의 언약, 피 바르면 누가 책임져 주어요? 하나님이, 무조건 우리는 피 바르면 되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살기가 힘들어서 죽겠다 하는 말은 그건 아주 나쁜 사람이에요. 뭐를 하면 되요? 피 바르면 되요. 피... 간단한 원리입니다. 피 바르면 하나님께서 피 값을 받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이건 보장되는 거예요. 피만 바르면 무조건 보장받는 거예요. 그런데 왜 피를 안 발라가지고 당하고 삽니까? 13~14장 세례, 피는 양을 죽이고,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고, 13~14장은 내가 죽은 거예요. 앞에 12장의 십자가는 십자가에 누가 죽어 있어요? 예수님이 돌아가셨고, 13~14장에는 누가 죽어 있어야 되요? 내가 죽어 있어야 되요. 그런데 이거 내가 안 죽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15~18장까지 광야를 준비해서 계속 반복학습을 시키는 거예요. “하나님을 선택할래, 너 자신을 선택할래?” “네가 죽어야겠냐, 저 사람이 죽어야겠냐?” 이런 훈련이에요. 광야의 해답은 간단해요. 조금 전에 12장에서 문제가 터질 때면 뭐하면 되어요? 피 바르면 되고, 광야 훈련을 빨리 끝내는 방법은 내가 포기하면 되요. 내가 양보해 버리면 되요. 그런데 그냥 자기를 주장하고, 내가 이겨야 되고, 내 목소리가 높아야 되고, 내가 우선권을 가져야 되고, 내 의견이 관철되어야 하고... 그러면 계속 꼬이는 거예요. 광야의 목표는 뭐라고? 누굴 잡는 거라고요? 나 잡는 거예요. 나... 자기 주장하면 광야가 길어져요. 나를 잡아야 그리스도가 내 속에서 살기 시작하거든요. 어차피 나를 선택한 목적이 주님의 얼굴이 되고, 주님의 표현이 되고, 주님의 편지가 되고, 주님의 대사가 되고, 주님의 향기가 되고... 이런 목적으로 나를 선택했는데, 계속 “나여! 나여! 나여!” 그러니까 쓸 수가 없는 거예요. 조금 더 훈련, 더 시켜야 되겠다. 또 광야에 집어넣어서 한 바퀴 돌리고, 아, 한 10년 더 돌려야겠다... 또 광야에 집어넣어 놓고... 이게 우리 광야 생활이에요. 광야에서 누굴 죽여요? 처음 십자가는 누가 죽으셨어요? 예수님. 둘째 십자가에는 누가 죽어야 되요? 내가 죽어야 되요.
♩♬ “예수님의 십자가 이제는 나도 지고 이 생명 다 바쳐서 주님을 따르오리.”♩♬
예수님의 십자가는 많이 이야기하는데 자기 십자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안 해요. 그저 내가 이겨야 한다고 하고, 나를 챙겨야 한다고 하고... 그러면 광야가 계속 연장되는 거예요. 19~24장 자기가 죽을 때 비로소 계시가 나타나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이고, 진리가 보이고,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며, 어떻게 하면 싫어하시고, 어떻게 하면 좋아하시는지, 그냥 알 수 있어요. 우리가 배워야 되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그랬잖아요. 성경말씀 많이 배워서 뭐하겠어요? 사람들은 그것을 관념적으로, 지식적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실제적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가지고 잘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하나님과 코드를 맞추고, 영원한 나라를 위해 기업을 준비하고 이런 실제적인 것을 도와주는데 아무 쓸모도 없는 뭐, 성경적인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역사 배워서 뭐하겠어요?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우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망한다. 이렇게 하면 다윗처럼 그의 후손까지 보장해 주신다.” 길이 보이잖아요? 그걸 공부하는 것이 계시라니까요? 무슨 눈만 감았다하면 ‘뭐가 보인다.’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성경공부예요. 성경공부... 그러니까 성경공부를 배운 그룹하고 배우지 않은 그룹하고는 수준 차이가 나는 거예요. 이번에 여러분이 출애급기 공부하고 나면요, 출애급기를 아는 사람하고 모르는 사람하고 대화가 안 되요. 성경공부는 그런 거예요. 그 만큼 하나님을 더 아는 거거든요.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 줄 알아요? 모르는 사람의 예배는 하나님이 안 받으셔요. 가인이 자기 멋대로 드린 제사 하나님이 안 받으셨잖아요? 아벨은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대로 제사를 드리니까,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서 그의 제물을 받으셨지요. 달라요. 구약은 눈에 보였어요. 신약은 안 보이니까 사람들이 겁이 없는 거예요. 신약에 예배를 받고 안 받고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지요, 신약성경에 여러 번 나오잖아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흠향하시는 예배... 이런 것이 다 하나님이 예배를 받고, 안 받으시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예요. 계시다, 성경공부라 하는 것은 지식을 몇 가지 더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거예요.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공부하는 거예요.
마지막 25~40장은 결국 예배훈련, 하나님 임재훈련, 하나님과 교통하는 훈련을 통해서 계속 반복하면서 내 속에 하나님의 사상, 인격,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모든 것이 그런 예배 생활을 통해서 내게 그대로 delivery 되어요. 그래서 이제 내가 나가서 가정생활하고, 직장생활하고, 내가 세상에서 관직에 오르고, 교사가 되고, 법조계에 나가고 그러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한단 말이에요. 하나님을 보여주고 하나님의 통치를 내가 대신하는 거예요. 우리나라에 신앙교육에 문제가 뭐냐?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법조계에 내보내고, 교사로 내보내고, 공사장에 내보내는데, 가서 전부 다 하나님을 내 보이는 것이 아니라, ‘in my pocket’하는 훈련을 얼마나 많이 받았던지, 대형 사건에 크리스천이 연루되어 있지 않는 사건이 없어요. 이게 우리 교육의 문제예요. 전혀 여기까지 못 올라간다는 이야기에요. 정상적으로 훈련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장관들 가운데 크리스천이 얼마나 많고, 국회의원들 가운데 얼마나 크리스천이 많습니까? 이런 좋은 기회를 왜 우리가 놓칩니까? 이건 교육이 잘못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출애급기를 통해서 구원이 무엇인지, 어디서 시작해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디까지 가는지를 전체 그림을 딱 잡아야 부분을 얘기할 때 혼란스럽지 않아요. 전체 그림을 모르면 계속 헷갈리는 거예요. 그러고 큰소리치는 거예요. 이게 맞다고 그러고... 끝까지 가보고서는 “어? 아니네...” 모세는 80에서 120세까지 살았으니까 다행이지만 80세에 가서 “어? 아니네.”하다가 죽으면 어떡할 거예요? 그래서 성경공부가 중요한 겁니다. 내가 먹는 대로, 먹는 것이 불실해요. 뭘 많이 먹었는데 아무 힘이 없는 것을 먹었어요. 힘이 와요, 안 와요? 세상 지식의 한계에요 이게. 필요하면 우리가 써야 되지만, 그러나 우리 인생을 바꾸고 죄를 이기고 흑암의 권세를 깨뜨리는 것은 말씀밖에 없거든요. 우리가 말하고 믿고 실천해야 되는데, 그렇게 말해 놓고 우리는 말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재료를 갖다가 쓰는 거예요. 영양가 없는 것을 먹어 헛배만 부르니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래서 우리가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해요. 근본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고 예수님도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우리를 찾아오신 사건이 성육신 사건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가르치고 성경을 교육하죠.
한번 해 보세요. 출애급기 공부를 하고 교인들에게 출애급기 구조를 딱 암기시키세요. 그리고 가르쳐보라고 해보세요. 그때부터 사람들이 powerful해 집니다. 사람들이... 완전히 달라져요. 강의 듣는 것만으로가 아니라, 교인들에게 이 무기를 주고 실제로 가르치라고 해 보세요.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런 좋은 것들을 하나님이 다 준비해 놓으셨는데, 20~21세기에 문명화되면서 사람들이 무식하게 성경공부를 거절하는 거예요. 현대 심리학을 얘기하고, 현대 과학을 얘기하고... 우리가 문화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정보나 지식은 줄 수 있지만, 생명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방법을 바꾸어야 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그리스도를 우리가 주어야 되고 말씀을 먹여야 되요. 성경을 공부하게 되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큰 결실을 얻게 됩니다. 우리 성경으로 돌아갑시다.
다시 한 번 점검합니다.
1~2장, 3~4장, 5~11장, 12장, 13~14장, 15~18장, 19~24장, 25~40장,
자. 이것을 조금 더 간단하게 정리를 한다고 하면, 큰 그림 그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만 만들어 놓으면 그 다음에 살 붙이는 것은 우리가 평생 해 왔잖아요. 이건. 그때는 주석을 보아도 되고 뭐 자료가 많잖아요. 그런데 어디 있는지 모르고 해매니까, 이건 시내산 얘기하다가, 기초편 얘기하다가... 왔다 갔다 정신이 없어요.
자, 첫째 단계는 은혜 단계요 은혜. 하나님이 해 주시는 거예요. 11장으로 끊어도 괜찮고 12장까지 끊어도 괜찮고, 어찌되었건 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배려해 주신 것이니까.
첫째는 은혜입니다. 은혜. 종이 장자가 되는 거예요. 당하고 살았던 사람, 빼앗기고 살았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법적보장을 받아요. 장자라고 하는 법적보장, 이게 굉장한 겁니다. 이게. 자녀 됨의 특권입니다. 이걸 은혜라고 그래요. 교회에 새 교인이 들어오면 먼저 해 주어야 할 일이 뭐라고요? 은혜 받도록 배려해야 되요. “하나님이 찾아오시니 걱정하지마세요.” 가르쳐주는 거예요. 이미 당신에게 은혜가 임했다. 지나 온 삶을 한 번 얘기해보아라. 어려웠다... 그 봐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신 사인이다. 당신이 엎드려 부르짖고 도와달라고 기도하면 바로 찾아오신다. 이미 당신 삶에 하나님께서 역사했다.‘라고 은혜를 설명해 주는 거예요.
13~18장은 뭐예요? 12장을 빼놓읍시다. 11장까지 하고, 12장 피를 여기다 집어넣어야 겠네. 십자가가 들어가야 되니까. 은혜, 피, 자기부인, 시내산, 성막. 이렇게 바꿉시다.
① 자. 1~11장은 은혜,
② 12장은 어린 양, 유월절, 피의 복음이지요. 예수님이 돌아가신 거지요.
③ 13~18장은 누가 죽는 거예요? 내가 죽는 거예요 내가. 12장은 누가 죽어요? 예수님이 죽어요. 13~18장은 누가 죽어요? 내가 죽어요. 그러면 그 십자가에서 사탄이 깨진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고 내 십자가가 없으니, “사탄아 물러가라”해도 사탄이 또 들어오고, “사탄아 물러가라”해도 사탄이 또 들어오는 거예요. 사탄이 들어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내가 마련해 놓고, 쓰레기통 안 치우고, 아무리 모기 잡고, 파리 잡고, 쥐 쫓아내봐야 또 들어옵니다. 서식처가 있으니... 예수님의 십자가와 내 십자가, 두 개가 딱 준비되면 그 다음에는 사탄은 바로 깨지는 거예요. 삶에 능력이 있는 거예요.
④ 19~24장 말씀훈련, 시내산, 생각을 바꾸는 거지요.
⑤ 25~40장 예배생활, 성막생활, 말씀을 습관화하고 체질화하고, 인격화하는 거지요. 은혜, 피, 세례, 말씀, 예배 생활. 다시요. 은혜, 피, 세례, 말씀, 예배 생활.
자. 전혀 초보자가 교회에 왔어요? 무엇부터 가르쳐요? 은혜가 뭔가, 하나님이 너를 사랑한다고 하는 은혜를 가르치는 거예요. 수고할 것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이미 너를 찾아오셨다. “엄마가 아이를 위해서 5~6년 동안에 그냥 무조건 베풀지 않느냐? 하나님은 그런 사랑을 주신다, 걱정하지마라.”고 하면서 “어떤 죄도 다 해결된다.”고 하며 “걱정하지 마라. 하나님은 네 편이다. 지금 나하고 만난 것도 하나님 은혜다.”
은혜를 알게 되면 그 다음에 뭘 가르쳐 주어야 되요? 피의 능력, 보혈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을 가르쳐 주어야 해요. 저희 교회 인터넷 홈페이지 사이트에 들어가면, 지금 사순절 기간에 십자가에 대하여 설교를 하고 있는데, 쭉 한 번 들어보세요. 십자가가 뭔지... 예수님의 십자가와 내 십자가, 사탄을 깨뜨리는 십자가, 쭉 나옵니다. 그래서 피의 복음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 심판, 가난, 질병. 이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친히 감당하셨다. 속지 마라, 이미 주님이 해결하셨다. 피의 복음, 피 바르면 해결된다.
그 다음 더 성숙한 것이 뭐예요? 내가 그 복음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내가 십자가에서 누구를 잡아 죽여야 된다. 나를 잡아 죽여야 된다. 여기서 반대는 뭐에요? 자기부인(自己否認)의 반대는 ‘남의 부인(婦人)’이 아니라 ‘자기주장’이지요. 자기 남편이 아니라 자기주장이지요. 거의 여기 다 걸리잖아요? 자기주장, 자기과시, 자기 대접받고... 거의 우리가 여기에 걸려 있잖아요. 이걸 빨리 내려놓아야 되요. 실제로 한 번 주변을 보세요. 섬기는 사람 손해 보는 사람은요, 나중에 지도자가 됩니다. 어디 가도 얄밉게 자기 것 챙기는 사람 있지요? 그런 사람 표 안 줘요. 그게 성경의 원리거든요. 자기 십자가 지면 가능해요. 이게 세례지요?
그 다음 뭐예요? 말씀훈련, 광야를 지나며 세례에 대한 학습을 한 다음에 구체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는 거예요. 체계적으로 창세기, 출애급기, 레위기... 하나님의 사상을 공부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 아 하나님이 이런 것을 싫어하시는 구나,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 점수 따는구나, 이렇게 하면, 에서처럼 장자권 잃어버리고, 사울 왕처럼 망하는구나... 다 답이 나와 있지요. 말씀을 세부적으로 공부하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거예요. 예배, 예배는 형식이 아닙니다. 개인예배, 공예배, 다 얘기하는 거예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께 맞는 제물을 드리고 또 용서받고 또 하나님 뵈러 가고 나중에 성막예배를 가르쳐 드릴 거예요. 성막예배를 매일 드리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상이 다 내게 와 버려요. 매일 예배 생활하는데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배해 버리죠.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이 되어 버려요. 하나님의 대행자가 되어요.
다섯 가지 과정, 사람을 도울 때, 다섯 가지 과정을 통하여 도와야 됩니다. 왕 같은 제사장은 이 다섯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은혜, 피, 세례, 말씀, 예배생활”
다시 한 번 시작. “은혜, 피, 세례, 말씀, 예배생활.”
이것만 알아도 여러분의 목회가 보이는 거예요. “아, 내가 저 부분을 놓쳐구나.” 맨날 기초부분만 얘기하니까 올라갔던 사람이 기초편으로 내려와 버리는 거예요.
“오. 내가 잘못 갔네.” 그러고. 기적은 어디서 힘이 있어요? 기적은 어느 단계에서 힘이 있어요? 은혜 단계입니다. 지금 말씀 수준에 가면요, 기적 얘기 안 해요. 이미 그건 해결되는 거예요. 선포하면 그대로 이루어져요. 오늘 저녁에 제가 실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한 번도 능력 사역 못하신 분들께 이 자리에서 실습 사역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건 이미 은혜 단계에서 해결된 거예요. 그런데 그런 기적을 가지고 자꾸 얘기하니까, 사람이 올라갔다가 그만 거꾸로 내려가 버려요. 눈에 보이는 것 가지고 얘기하고, 은혜는 밖에서 보여요. 기적이 막 나타나고 벼락이 떨어지고, 막 그런단 말이에요. 환상도 밖에서 보이잖아요? 안으로 들어올수록 내면화되는 거예요. 내 속에서 내 사상, 내 철학 속에서, 내 깊은 영혼 속에서 하나님을 뵙는 거예요. 우리는 기초편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까 성숙해 있어야 할 지도자들이 자꾸 보이는 것만 찾아다니는 거예요. 나중에 어떻게 되느냐? 종말의 때가 되면, 사탄,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거짓 선지자를 세워가지고 기적을 다 행해요. 그러면 그렇게 표적 좋아했던 사람들은 다 따라가 버립니다. 말씀훈련이 안 된 사람들은 다 따라가게 되어있어요. 우리가 체계적으로 질서대로 어떻게 교인들을 양육하는가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모델이 있어야 해요. 그림이 그려졌습니까?
출애급기를 알면 인생이 보여요. 출애급기를 알면 목회가 보인다. 자신이 있는 거예요. 오~ 이 사람은 2학년이네. 아~ 이 사람은 3학년이야. 아~ 이 사람 아직 광야가 해결이 안 되었네. 광야가 뭔지 쭉 설명을 해주는 거예요. 많이 힘드셨죠? 그래 맞아요, 목사님 그거예요. 이건 이렇게 극복하는 겁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전혀 반대예요.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안 풀립니다. 싸워서 이기고, 주장하고 이렇게 하면 절대 안 풀려요. 배 운전해 보셨어요, 배? 울산 사시면서 배 운전해 보신 적이 없었어요? 배 운전은 차 운전하고 반대예요. 오른쪽으로 가려면 어디로 돌려야 해요? 왼쪽으로 돌려야 되요. 왼쪽으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돌려야 되요. 이게 기독교의 진리거든요. 세상의 질서는 자기주장대로 가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자기를 내려놓는 방법이에요. 전혀 같지 않지요. 그런데 교회와 가지고도 계속 깨지는 거예요. 사업 깨지고, 애 깨지고, 부부간에 갈등 생기고, 교회 헌금 많이 하고, 전도 많이 하고 해서 복 받을 줄 알았는데, 뒤통수 다 깨지는 거예요. 이유가 뭐냐면? 반대로 가고 있거든요. 반대로... 핸들이 다르다니까요. 세상 질서는 뭐예요? 이 인간 때려잡아야 돼, 버르장머리 고쳐놔야 돼, 그러니까 한 마디 말대꾸하다가 부딪치고, 또 깨지는 거예요 그냥.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는 뭐예요? 누구 잡아야 되요? 그 십자가 남편 잡지 말고, 누구 잡아요? 나를 잡는 거예요, 자기를 잡아 딱 못박아 놓으면 저 쪽이 살기 시작해요.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나니...”
복음의 비밀이니까요. 이 원리 가정에서 가르치면 애들 다 살아납니다. 세상을 못 바꿀 것이 없다니까요. 이런 것은 안 가르쳐 주고 맨날 예수님만 잡아 죽이는 거예요, 그냥. 2000년 동안 또 예수님 돌아가셨다 하고, 예수님 돌아가시고 공짜로 은혜 받은 것은 여기서 지금 어떤 단계예요? 은혜 단계란 말이에요. 은혜 다음 단계로 올려주어야지요. 그 십자가가 나도 죽였다. 내가 죽으므로 내 아내가 살고, 내 아이들이 살고, 이걸 그 다음 편을 가르쳐주어야지... 이걸 안 가르쳐주고, 1절만 계속 하는 거예요 1절만... 노래까지 바꾸어 가면서 뭐,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멸시천대 십자가는 예수님이 지셨으니...”
또 그렇게 바꿔버렸어요. 사람들이 그냥... 자기는 안 죽으려고 그냥. 그러면 해답이 안 나오지요. 성경이 진리잖아요? 이게. 제가 한 얘기가 아니고... 목회가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모르면 어렵고, 알면 보이잖아요. 10분만 대화해 보면 몇 학년짜리로 딱 나오는 거예요. 의사한테 환자가 오면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딱 들어보고 “아. 그것은 복통의 문제가 아니고 음식습성의 문제입니다.” 벌써 진단이 나옵니다. 이제는 딱 진단을 하는 거예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면, 1~2장, 3~4장 어느 수준이다. 짝~~~ 출애급기 한 권 안에 이런 어마어마한 비밀이 있는데, 창세기 레위기 민수기..., 마태복음... 뭐 66권이나 우리에게 주었다니까요? 평소 다 못 써먹고 죽습니다. 성경에 능한 목자들이 되십시다.
다시 한 번 5학년 시작. 은혜, 피, 세례, 말씀, 예배생활. 이걸 더 자세하게 1~2장 하나님의 상황준비, 하나님 만날 수 있도록, 3~4장 목자 준비, 나는 당신을 위한 맞춤형 목자다. 딱 선언할 수 있어야 되요. 이 환자 내가 감당 못하겠네, 다른 교회로 보내야겠네, 그러지 말고, 딱 들어보고 내가 당신을 위해 준비된 목자입니다. 자신 있게 우리가 접근해야 되요. 목자준비. 5~11장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줌, 능력대결. 12장 피의 언약, 13~14장 세례언약, 15~18장 광야훈련, 무엇을 훈련하는 거예요? 나 잡는 훈련하는 거예요. 19~24장 말씀훈련, 말씀언약. 25~40장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움, 하나님의 사상을 얻기 위해서 예배생활 가운데 들어가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세상이 다 우리 것이에요. 하나님이 세상을 우리에게 맡기시고 네가 타락한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어라. 이 동네에 누구 책임이에요? 여러분 책임이에요. 천사가 와서 하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사람이 해야 되요.
보입니까? 자, 화살표 보세요? 1~11장은 내려오는 화살표고 12~40장까지는 올라가는 화살표거든요? 요한복음 3:13에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자,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했어요. 영국에 신약 신학자 가운데 ‘도날드 구드리’(Donald Guthrie)라는 분이 있어요, 이 분이 쓴 신약 신학 가운데, 그 분이 요한복음을 강해하면서 이 구절 안에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다 들어있다고 그랬어요. 자. 내려 오셨다는 것과 올라가셨다는 것, 내려오실 때는 하나님을 모시고 내려왔어요.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으니까, 하나님이 찾아오신 거예요. 예수님을 통해서, 그 다음에 올라가셨다는 말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이제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하나님을 모시고 내려온 사건이 성육신 사건이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수준으로 끄집어 올리기 위해서 주님이 올라가셨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우리 과정에 들어오시면 복음 12강이라는 과정이 있어요. 복음 12강.
복음 12강에 가면 이런 원리를 설명을 합니다. 예수님이 오셨던 사건, 성육신,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세례, 교회, 재림. 이게 우리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인데... 우리가 신앙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설명하는 강의입니다. 이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화살표 안에 모든 비밀이 여기에 다 들어있어요. 자, 볼까요?
에베소서 4:9~10 봅시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자, 오셨다가 가셨다는 거예요. “내리셨던 그가 하늘 위로 올라가셨다.” 목적은 만물을 충만케 하기 위함이다. 타락한 사람 때문에 만물이 피폐해져 버렸어요. 온 세계 자연계가 망가져 버렸는데, 오셨다 가신 이후로는 “만물까지 충만케 하기 위함이다.”라고 그랬어요.
로마서 10:5부터 봅니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왔다가 가신 것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뭘 얘기 하냐하면 우리가 무엇 무엇을 행하고, 율법을 지키고 함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고 하늘에 올라간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미 오셨다가 가신 사건 안에 모든 비밀이 다 들어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면 되느냐? 마음으로 믿고 그것을 입으로 고백만 하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사건, 이 안에 모든 비밀이 다 들어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출애급기를 보면, 출애급기 1~11장은 하나님이 찾아오신 사건이에요. 그것이 하나님이 역사적인 정황을 만들어 주셨고 사람을 통하여 찾아오셨잖아요. 목자를 통해서... 그 다음에 12~40장은 뭐예요 이제는? 이 사람들을 끄집어 올리는 거예요.
구약의 출애급기는 신약의 로마서와 같아요. 로마서가 같은 구원의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로마서로 말하면 1~4장은 찾아오신 하나님이에요.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정죄 아래 있는 세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한 의를 준비하시고 그 분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가 행하는 공로 있는 행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또 다른 의를 통하여 우리가 의로워지는 원리를 4장까지 설명합니다.
그리고 5~16장은 이 사람들을 끄집어 올리는 거예요. 5장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한다, 영광을 기대하게 했고, 5장 17절에서는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할 것이다. 왕권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고,
6장 죄 문제 해결하는 법, 7장 율법, 자아 문제 해결하는 법, 8장 육성 처리하는 법.
그 다음 이 원리를 무시하고 살다가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에 대하여 9~11장에 나오고,
12장부터는 크리스천들이 구체적으로 세상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의 얼굴을 가지고 살 것이냐? 우리가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이냐에 대한 문제가 12~16장까지의 얘기예요.
그러면 내려오는 화살표는 몇 장부터 몇 장까지예요? 1~4장까지예요. 올라가는 화살표는 5~16장이에요. 어느 것이 더 커요? 분량으로 볼 때... 자 출애급기는 어느 부분이 커요? 1~11장, 12~40장 어느 부분이 더 커요?
그런데 목사님들의 목회 비중을 어디에 포인트를 두어요? 내려오는데 더 두었잖아요. 그러니까 교인들의 수준이 더 안 올라가는 거예요. 교회가 지금 욕먹고 있잖아요? upgrade가 안 되었잖아요. 질이 달라져야 되는데, 교회를 나온다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어요. 그대로 유치하고, 천박하고, 욕심 많고, 이기적이고... 작년에 김수환(金壽煥) 추기경 돌아가시고, 금년에는 법정(法頂) 스님 돌아가시고, 교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잃었는지 몰라요. 그 분들은 무소유(無所有)지 않냐? 카톨릭은 가족이 없고, 스님들도 가족이 없으니까 욕심 낼 것도 없지요 뭐. 삶 자체가 무소유지요 뭐. 기독교인들은 너무 욕심이 많다고..., 그래가지고 교인들 다 이탈한다니까요...
기독교는 욕심의 종교가 아닙니다. 복 받아서 받은 복 가지고 섬기는 거예요. 우리가 희생하는 거예요 우리가... 욕심쟁이가 아니에요. 그런데 ‘복 받아라.’고..., 챙길 것은 잘 챙겼어요. 그 다음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하여 얘기를 안 해주니까, 이 사람들이 이 돈 가지고는 헷갈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복음을 가르쳐주어야 해요, 복음을... 내가 만든 복음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로마서가 말하는 복음, 출애급기가 말하는 복음이 뭔지, 우리 목회가 거기까지 거울을 잡아야 되요.
왜 12장 와서 딱 멈춰 버립니까?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믿음으로 구원 얻습니다.’ ‘인간은 의를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맞아요? 그걸로 끝나면 우리는 구원파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구원파가 얼마나 많아요? 삶을 얘기해주지 못하는 거예요. 윤리가 없고, 철학이 없고... 구원, 그 이후가 중요합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거든요. 이 땅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통해서 땅을 정복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 훈련시켜 가지고, 각 기관 법조계, 교육계, 경제계 등에 다 들어가서 그 사람들이 그곳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그러면 다 정화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파송했지만, 아무도 현장을 바꾸지 못한 거예요. 왜요? 능력이 없으니까요.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그것만 얘기하고 있으니까, 그것으로 사람 바꾸어집니까? ‘천당이야 내가 뭐 빼먹어도 문제가 없으니까’... 크리스천이 하나도 다른 것이 없는 거예요. 12장 앞부분으로 끝났기 때문에 그래요. 피 바르면 구원 받는다 그것만 얘기했지, 피 바르고 그 방 안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양고기를 먹어야 되고... 이런 것을 안 가르쳐준 거예요.
결국은 말씀으로 돌아가서 말씀이신 그리스도,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서 내게 역사하실 때, 혼자 조용히 있으면서도 눈물이 나오고 개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담대함과 자신감을 주시고, 그 힘을 가지고 남편을 섬기고, 아이들을 섬기는 그런 에너지가 있어야 되는데...,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밖에 교회에 안 나오는데, 그 한 시간 가지고 뭘 할 거예요? 큰일 났습니다. 이제. 밤 예배도, 금요철야예배도 없어지지요, 새벽기도 안 하는 사람 많지요, 뭘로 이 사람들을 도와줄 거예요? 천당 티켓이 아니고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이제 협박을 해야죠. 그렇게 하면 당신 천당 티켓에 문제가 생긴다고요. 협박하면 내가 율법주의자가 돼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큰일 나는 거지요. 우리가 지금 거기까지 와 있는 거예요. 지금 구조로 가면, 교회는 앞으로 점점 더 쇠퇴하게 되어있어요. 말씀운동 일으켜야 되고, 그들이 개인적으로 하나님 만나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그들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워서, 각 가정이 교회가 되고, 각 직장이 교회가 되고, 거기서 powerful한 역사가 나타나고... 미국 사람들은 이것을 ‘market place’라고 해요. 현장을 전도 현장으로 잡는 거예요. 자기 직장이 바로 현장이 되고, 거기서 내가 목회를 하는 거예요. 사업하면서 목회를 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 사람들을 훈련시켜야 되요. 파송하기 전에 제자훈련 시켜 가지고 작은 목사가 되게 해서 파송을 하는 거예요. 가서 네가 목회를 해라. 정말 하나님의 얼굴 가지고 네가 살아라. 그렇게 해서 세상을 정복하는 거예요. 우리가 사람을 많이 보내 주셨는데, 그동안에 교회가 숫자 헤아리는 것으로 끝나버렸어요. 이 좋은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고, 그냥 가둬만 놓고, 숫자는 1,200만까지 올라갔지만, 지금은 점점 떨어지고 있잖아요. 저 사람들은 무소유(無所有)라는 개념 하나만 가지고도 벌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습니까? 우린 이런 놀라운, 더 큰 복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힘없는 복음이 되어버렸어요.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하나님 이번 집회에 우리를 말씀 가운데 만나게 하셨는데 이 집회를 통하여 저희들이 말씀으로 돌아가게 해주시고, 성실한 진리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진리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내 교회 목회현장이 달라지고 내가 섬기는 교인들이 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워져서 가정을 변화시키고, 직장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워주시옵소서.
< 출애급기 강의 (7) >
12장: 유월절에 경험하는 새로운 출발
1) 새로운 신분 : 피 안에 있음으로 종, 노예가 아닌 가 됨.
건강한 정체성, 올바른 자화상이 필요함
2) 새로운 공급, 새로운 경영 : 바로의 녹을 먹고 살지 않고 하나님이 지정하시고 공급하시는 양식으로 삶. 피를 바름, 양고기를 먹음,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음
피, 양고기, 무교병, 쓴 나물 - 나의 기호, 윤리, 도덕, 철학, 세상의 흐름이 아닌 하나님의 의(義)이신 그리스도를 먹어야 산다.
3) 새로운 목적 : 바로를 섬기는 자가 아닌 하나님을 하는 자
바로의 국고성(國庫城) 건축을 돕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여호와의 의가 됨(아국폭격주의)
애급의 장자들은 심판을 받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가 되어
약속하신 기업을 얻기 위하여 가나안을 향하여 여호와의 군대로 출발함
이제 11장까지는 은혜의 장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맞추고 우리가 따라 올 수 있도록 우리에게 접근하시는 내려오는 화살표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얘기한다면, 12장부터는 우리가 어떻게 잃어버린 원래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광스런 모습으로 돌아갈 것인가?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의 코드에 맞추는 것입니다. 유월절을 경험한 새로운 출발,
1) 새로운 신분
피 안에 있으므로 종, 노예가 아닌 후사(後嗣)가 됨. 건강한 정체성, 올바른 자화상이 필요함. 신분이 달라졌는데도 우리 자신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접근하지 못하면, 아들이 되었어도 계속해서 종으로 살게 됩니다. 아들은 신분상으로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생각,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강화도령’이라고 그러지요? 철종(哲宗)이 신분을 감추고 어느 날 왕족이라는 신분이 드러나게 되고, 궁궐로 데려옵니다. 그러나 자기가 장차 나라의 대업을 이어갈 사람인데도 본인의 의식에는 불편하게만 느껴졌어요. 그래서 애들하고 물장구치고 개구멍으로 뛰어다니고, 뭐 이런 것만 자꾸 그리워한 거예요. 밤에 배고프니까 누룽지 훔쳐 먹다가 상궁한테 혼나고, “마마. 그렇게 뛰어 다니시면 아니 되시옵니다.” 뭐, 이러면서... 언제 행복해져요? 계속 stress 받고 힘들지요. 본인이 자기가 누구라고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질서에 순응할 때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옛날식으로 살면 계속 불편한 거예요. 성경을 보아도 하지 말라는 것만 보이잖아요? 자녀 됨의 특권도 잘 보이지 않고... 새로운 신분을 인지(認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라고 그러지요. “이전 것은 지나 같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에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창조물이 된 거지요.
2) 새로운 공급, 새로운 경영
바로의 ‘녹’으로 먹고 살지 않고, 하나님이 지정하시고 공급하신 양식으로 산다. 음식이 달라져요. 가끔 회심해서 얼마 안 된 분들은 농담으로도 “어이. 거하게 한 잔하지...” 뭐 이러면서, 예수님 믿고도 그런 옛날 문화를, “오늘 회의에 뭐가 딱하나 부족하다...” 뭐 이러면서 그런 것을 늘 아쉬워하잖아요. 그렇게 해야 뭐 위로가 되고... 그런 구조가 계속 됨은, 변화되었는데도 옛날 공급원으로 받고 사는 사람이에요. 교인들 볼 때 참으로 답답한 것이, 교회에서는 그렇게 얌전하게 있던 사람들이 관광버스만 타면 관광노래를 부르는 것... 저런 stress를 품고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그걸 억누르고 산 것이지요. 그게... 사실 크리스천 문화는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식으로 적극적인 표현 방법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알파’를 하면서 유행가, 대중가요를 불러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들이 분분한 적이 있었어요.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못 부르게 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우리도 대중가요 불렀어요. 불신자들이 좋아하잖아요. 얼마쯤 지나서, 하나님께서 못 부르게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 대중가요 부르는 것이 뭐가 잘못된 것입니까?”라고 말씀드렸더니, 노래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대개 예수님을 믿고 교회 안에 들어 온 사람들이 대중가요를 부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요? 이전에 그때 그 노래를 부르던 시절로 돌아간다는 거지요. 그러면 다시 옛 것으로 가는 거예요, 이게. 어떤 사람은 회개기도하면서 옛날 애인하고 즐기잖아요. 생각으로... 하나님께서는 옛날로 돌아가는 것을 싫어하시잖아요. 그 뒤로는 ‘알파’하면서 대중가요 못 부르게 했어요.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께서는 싫어하신다. 새로운 공급이 필요한 거예요. 바로의 ‘녹’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정하시고 공급하신 양식으로 살아야 한다. 피를 바르고, 양고기를 먹고,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고, 음식 자체가 달라지는 거예요. 예전에 김준곤 목사님의 ‘순(筍)’이라는 칼럼이 연재되었습니다. 거기에 그런 내용이 나왔어요. ‘변화 받으면, 취미도 달라지고, 기호도 달라지고, 심지어 음식의 성향도 달라진다.’ 당연한 얘기지요. ‘딱 한 잔 만 걸치면 좋겠다.’ 이런 음식 습성이 어떻게 바꾸어져요? 거룩한 음식, 몸에 유익되지 않는 음식은 거절하고... 음식 취향도 바꾸어지는 것이 당연하지요. 피, 양고기, 쓴 나물은 나의 기호, 윤리, 도덕, 사상의 흐름이 아닌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먹어야 산다. 그리스도를 먹는다는 말이 참으로 어려운 말입니다. 이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53에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양식이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양식이다. “나를 마셔라.” 그리스도가 나의 음료다. 이 말씀이 참 어려운 말씀이에요. 진짜로 복음 안에 들어와서 그리스도를 양식으로, 말씀을 먹을 때 배가 부르고, 힘이 생기고, 기도하면서 성령이 임하여 그것이 음료가 되어서 내 인생을 윤택하게 할 때 오는 그 에너지는, 과거의 삶, 죄 짓고 자기 멋대로 살 때 그런 즐거움하고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러니까 관광버스 타고 흔들어야 풀리는 사람은 보통 복잡한 사람이 아니에요.
적십자 병원에서 정신과 입원한 사람들을 통계를 내었어요. 70%가 크리스천들이에요. 불신자보다 크리스천들이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이중구조로 살거든요. 교회 오면 억압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안 해야 된다. 못한다. 그러다가 흔드는 기회가 주어지면 막 흔들어대는 거예요. 이게 불행한 구조입니다. 이게.
정말 그리스도가 나의 양식이 되어야 되고, 나의 음료가 되어야 해요. 정말 예수님 믿는 것이 즐겁고, 기도하는 시간이 행복하고, 찬양하면서 행복해지고, 주님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고... 이런 감격의 생활이, 이전에 내 멋대로 살고, 수다 떨고 살던 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거예요. 이런 크리스천 culture를 교회가 주질 못하는 거예요. 이거 참 큰 문제입니다. 이게... 못하게만 하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서 교인들로 하여금, 정말 교회 오는 시간이 정말 즐겁고 행복하고, 교인들 만나서 교제하고 서로 사역하고 말씀을 나누고 은혜 받은 것을 서로 나누는 것들이 우리들의 양식이 되어야 하는데, 이게 안 되는 거예요. 이게... 그러니까 교회 와서 예배 마친 후에 쇼핑하러 돌아다니고, 다른 방법으로 관광 다니면서 이런 것을 풀려고 하고...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리스도를 먹고 그리스도를 마신다는 개념이 무엇인지 알아야 되요. 정말 은혜를 즐겨야 되요.
사랑하면 몰입(沒入)합니다. 3일 동안 머리도 안 감고, 싸워도 1주일에 한 번 하던 녀석이, 어느 날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날마다 옷을 갈아입고, 이상한 행동을 해요, 지금 그러한 경험을 하는 가정들 있지요? 뭐가 달라졌어요? 애가 갑자기 멋을 부리고, 옷을 갈아입고 그래요. 왜 그래요? 연애가 시작 되었지요? 사랑하면 몰입합니다. ‘독서삼매경(讀書三昧境)’이라는 말이 있지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기의 어떤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대상이 ‘낚시질’, ‘수석 모으기’, ‘난초재배’, ‘바둑 두기’라면 문제가 있는 거지요. 정말 그리스도께 붙잡히고 그 말씀 안에, 그 사역 안에서 새로운 영적 세계의 문화를 가져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으니까, 세상 문화를 따라가는 거지요. 그리스도를 공급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요. 이게.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체질이 결정되는 것과 같지요. 육식(肉食)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드름이 많이 나고, 혈액 순환에 문제가 생기고, 성인병에 많이 걸리고... 채식(菜食)을 즐기는 사람은 성품도 유(柔)해지고, 오래 살고... 유기농(有機農) 채소를 먹는 사람은 더 건강해지고... 먹는 대로 가는 거예요. 먹는 대로... 우리가 정서적으로, 영적으로는 뭘 먹고 살고 있습니까? 무엇이 나에게 즐거움입니까? “너는 인생을 살 때 어떤 즐거움을 갖고 사느냐?”라고 했을 때, 정말 나는 그리스도를 먹고 주님을 마시고 성령에 취하고...
이런 우리의 culture가 있어야 한다 말이에요. 다윗은 뭐라고 표현했어요? 시편 19:10에 보니까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했어요. 돈 모으는 재미는 돈 안 벌어본 사람은 잘 모를 거예요. 저는 장사를 많이 해 보았는데요. 지폐 한 장 차이로 이익과 손해가 왔다 갔다 하는데, ‘오늘 이익 봤다.’하는 그 희열(喜悅), 한 건 했을 때 오는 즐거움. 그 상당히 쏠쏠합니다. 돈 버는 재미... “나는 정금보다 주의 말씀을 더 사모하며 송이꿀보다 더 달다.” 송이꿀이 뭐냐 하면, 나무에 벌집이 있잖아요? 그 벌집에 꿀을 많이 채워 놓으면 뚝뚝 떨어진단 말이에요. 떨어져 가지고 밑에 고여 있는 것이 햇볕을 받아서 증발을 해요. 그러면 그것이 딱딱해가지고, 그야말로 꿀 덩어리가 송이꿀이에요. 이게 얼마나 달겠어요? 이게... 물이 다 증발 되어버렸는데, 완전히 과자예요 과자... 과자도 꿀과자죠, 아주 그냥.
우리 시대에는 먹을 것이 많으니까 꿀이라는 개념이 그렇게 크게 와 닿지 않지만, 그 당시에 최고로 맛있다는 개념이 뭐예요? 꿀이란 말이에요. 꿀 중에서도 특별히 무슨 꿀이 맛있어요? 송이꿀이 맛있다는 거자요, 물이 다 증발해 버리니까 그야말로 엑기스만 남아 있잖아요. 다윗이 궁궐에 있으면서 왕으로써 내가 먹을 것이 많고 산해진미가 있는데, 그 중에 꿀이 제일 좋은 건데, “나는 송이꿀보다 주의 말씀이 더 달게 느낀다.” 이러니까 다윗이지요. 요즘 시편을 읽고 있는데, 시편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뭐냐 하면, 다윗은 정말 놀라운 분이에요. 시편에서 다윗이 쓴 글이라고 명시된 것이 70여 편 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필체다, 다윗이라는 저자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이것은 문체로 보았을 때 다윗의 시라고 밝힌 것이 한 30여 편이 되요. 그러니까 시편 150편 가운데 대략 100편 정도가 다윗의 썼다고 학자들이 보아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들은 지금 필기구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볼펜도 좋고 만년필도 좋고, 이제는 필기판 없어도 이런 것 들고 다니면서 메모하잖아요, 이렇게. 이게 다 메모하면서 쓸 수 있는 거예요. 이 안에 다 들어있어요. 저는 이것으로도 부족해 가지고... 이게 뭐냐 하면? 녹음기에요, 녹음기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놓칠 때는 쓰면 놓쳐요. 더구나 운전하면서 다닐 때 저는 성경을 많이 읽거든요, 이렇게. 1장, 2장 3장하면서 그러면 계속 하나님께서 아이디어를 줘요. 운전하면서 쓰는 것이 위험하기도 하고 불편해요, 이런 고민을 어느 모임에서 얘기하니까, 그 다음 날 어느 교인이 바로 사가지고 왔어요. “목사님! 눌러만 주세요. 바로 녹음됩니다.” 간단하게 녹음됩니다. 이렇게. 9시간까지 녹음할 수 있는 거예요. 운전하면서 주신 묵상, 살짝 눌러서 얼른 녹음해놓고, 집에 가서 메모하고 그러지요. 이렇게 필기구가 잘 되어 있는데도 글쓰기가 쉬워요, 어려워요?
여러분 일기 씁니까? 대답하지 마세요, 시험 드니까. 그 당시는 종이가 있었습니까? 펜이 얼마나 좋았습니까? 파피루스, 나무이파리를 납작하게 해 가지고 그런 것에다 먹물 갈아가지고 붓으로 쓰는데, 더군다나 서재에 앉아서 쓰는 것이 아니라, 도망 다니면서... 아둘람 굴에 가보았어요, 그냥 땅 속에 파인 음침한 굴이에요. 그냥 300~400명 거뜬히 들어가겠더라고요. 그런 데 앉아가지고, 늘 도망 다니면서, 쫓기는 생활 가운데, 전부 기록한 거예요. 자기의 마음의 안타까움, 외로움, 도망 다니면서 처량한 신세, 원수에 대한 분노의 마음, 전부 다 일기를 쓴 거예요. 사울도 출발이, 기가 막히게 출발이 멋있었고, 다윗도 멋진 출발을 했어요. 사울은 결국 끝에 가서 망했어요. 사울이 망한 이유가 무엇일까? 사울은 메모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이 분이 굉장히 은혜 받은 사람이에요. 하나님도 그를 지원해 주셨고, 백성들을 사울 편에 세워주시면서 사울을 팍팍, 사울을 밀어주셨잖아요? 다윗은 자기 심정을 전부 기록했어요. 일기를 썼어요. 목회하면서 어려웠던 것, 김 집사가 오늘 들이받았다, 그것을 쓰는 거예요. 사울은 그런 것 안 쓰고, 자기 기념비 세우고 다녔어요. 자기 이름 드러내려고, 다윗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자기 안에 내려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메모했어요. 사울은 자기의 공적을 잊어버릴까봐, 그것도 돌에다 새겼어요.
길이 달라요, 전혀... 하나님을 enjoy하는 것, “주의 말씀을 내가 사모 하는데,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는 것같이 내가 주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새들도 깃들일 곳이 있는데 주의 거처를 내가 사모하는 마음이 극심하나이다.” 이스라엘을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정오가 되면, 42~45도 그렇게 막 올라가요. 더운 정도가 아니라, 머리가 벗겨져요, 그냥.
우리 모임이 이스라엘에 있어요. 다음 4월 달에 우리 치유팀들이 가서 선교사님들을 치유해 주고 하는데, 여리고에서 모임을 갖는데, 다 중동지역에서 와서, 이슬람 문화권에서 선교를 하시는 분들의 얼굴은요, 아주 전투적이에요. 눈빛이 아주 달라요. 그냥 아주, 모임을 하는데, 모임 전체가 dry하더라고요. ‘오후 시간에는 족구하자’, 나가서 족구를 하는데 족구를 다 잘 하더라고요. 워낙 외로운 지역이라 모여서 운동들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 할 때는 몰랐어요. 시원하게 했는데, 구름이 쏵 걷혀버리니까 얼~마나 더운지, 기도가 절로 나와요. “하나님. 저쪽에 있는 구름 이쪽으로 돌려주세요.” 나는 구름기둥이 기둥처럼 선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고, 그 사람들은 구름이 뜬 것을 구름기둥이라고 하더라고요. 구름이 가리면 건조하기 때문에 시원해요. 구름 딱 벗겨지면, 머리가 벗겨지는 거예요. 더워서 운동을 못하겠어요. 숨이 막혀요, 42~45도인데 어떻게 운동을 합니까?
그런 지역에 있는 사슴이 정오가 되면 먹었던 것을 반추(反芻)하고, 쉬기 위해서 시냇가로 찾아갑니다. 너무 더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어요. 사냥꾼들이 이걸 알아요. 정오가 되면 사슴이 시냇가로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딱 기다리고 있어요. 사슴도 내가 가면 사냥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알지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그러고서 시냇가로 온다는 거예요.
그 마음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헐떡이면서 배고파하는 그 마음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말씀을 사모해 보셨어요? 그런 배고픔 가지고 살아보셨어요? 적어도 시인, 다윗의 마음이 거저 하나님 갈망하고, 그리워하고, 목말라하고, 배고파하면서... “그것이 주야로 나의 눈물이 되고 나의 음식이 되나이다.”
culture가 다르잖아요? 우리는 즐길 것도 있고, 시간 보낼 것도 있고 뭐... 우리는 너무 많잖아요. 그 중에 하나가 예수님이고, 사역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별 재미가 없어요.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복음이 아니고는, 말씀이 아니고는, 내가 채울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는 마지막 극한상황에 딱 도달하면, 정말 주님을 마시고 그리스도를 먹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우리가 몸으로 느끼는 거예요. 정말 밑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해갈함을 얻고 일어날 때 오는 그 감격과 기쁨들... 하나님은 유월절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양식을 바꾸어버렸어요.
이제는 애급이 주는 양식이 아니고, 바로가 주는 양식이 아니라, “내가 양식을 준다. 나를 봐라.” 계속 만나를 주시면서... 한 번에 많이 주시면 얼마나 좋아요. “양식은 내가 준다.”, “내가 너의 양식이다.” 아침마다 눈을 들어 하나님 보게 하고, 또 아침마다 눈을 들어 하나님 보게 하면서, 이 훈련 40년 시켜요. 우리 음식을 바꾸는 일을 위해서...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사람이 먹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나를 바라보고 살고, 내가 주는 약속으로 살고, 내가 주는 말씀으로 살아야 된다.”
이 훈련하여 이 paradigm shift를 하는 데, 체질개선하는 데 몇 년 걸린다고요? 40년 걸렸어요. 쉽지 않습니다. 이게 의무적으로 하는 그런 문화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아니면 내 갈증을 해갈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 아니고는 내 이 목마름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기까지 하나님이 모세를 80년 훈련시켜요, 80년. 이게 새로운 음식, 새로운 경영이에요. 그렇게 훈련을 시키니까 입을 벌리면 뭐가 나와요? 말씀이 나오고, 입을 벌리면, 복음이 나오는 거지요.
3) 새로운 목적 - 바로를 섬기는 자가 아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바로의 국고성 건축을 돕는 자가 아닌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여호와의 군대가 됨.
섬김의 대상이 달라요. 예배가 뭐냐?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는 거예요. 우리의 사역은 바로를 돕는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되요. 자기 왕국 세우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되요. 우리는 사람과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적들과 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걸프전 때 미군 포대가 잘못 계산해 가지고 아군에게 쏴 버렸어요. 그 때 유행했던 말 가운데 하나가, ‘Friendly Fire’라는 말이에요. 해석해 보세요. ‘아군폭격’ ‘아군폭격’이란 말이에요. 자기편끼리 쏴버린 거예요. 이쪽에서 저쪽으로 쏘니까, 저쪽에서도 이쪽으로 또 쏘는 거예요. 그래서 아군끼리 자폭해버리는 거예요. 오늘날 교회 안에 아군 폭격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L.A. 갔더니, 사모님이 목사님을 고발을 했어요. 그것을 ‘수(sue)’한다고 해요, 수~~. 사모님하고 목사님이 법정투쟁을 하고 있어요. 목사님 설교하시고 사모님 설교 듣고, 끝나고 나면 법적으로 싸우는 거예요. 교회가 딱 두 파로 갈라져 가지고, 적인지 아군인지 몰라요 그냥. 장로님하고 목사님하고 싸우고, 목사님하고 목사님하고 싸우고, 교인끼리 싸우고... 적인지 아군인지 모른다니까요.
우리는 삶의 목적이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고, 하나님의 사람을 챙겨야 되요. 나하고 마음에 안 맞고 마음에 안 들어도, 이 분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이므로 내가 섬겨 주어야 되요. 내 맘에 안 든다고 잘라버리면 그건 자기 왕국 세우는 거예요. 경영이 달라요. 이제는... 여호와의 군대가 된다는 거지요.
애급의 장자들은 심판을 받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가 되어 약속하신 기업을 얻기 위해 가나안을 향하여 여호와의 군대로 출발함 - 이 출발은 우리에게 장자권의 복을 주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업이라고 주시는, 하나님의 기업을 누리는 겁니다.
★ 열 가지 재앙의 의미
1) 나일강의 신 - Osiris
2) 개구리 여신 - Hekt
3) (흙의 신) - Seb
4) 파리 - Hat Kok
5) 황소 (가축질병) - Apis
6) 독종 - Typhon
7) 우박 (대기의 신) - Shu
8) - Seraphia
9) 태양 신 - Ra
10) 애급의 모든 신들 (출 12:12; 18:11; 민 33:4)
이렇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응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전에 손을 보셨던 것이 뭐냐 하면 10가지 재앙이에요. 그 10가지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과 애급 사람들이 섬겼던 우상들입니다.
첫째 나일강이 피의 강이 되어버렸어요. 나일강의 신 오시리스(Osiris)를 심판하는 거예요. 또 개구리가 밥상까지 올라오고, 침상에도 올라오고 그랬어요. 개구리의 신(Hekt)을 심판하는 거지요. 또 이의 신 Seb, 파리의 신 Hat Kok, 황소의 신 Apis, 가축이 질병으로 알게 되죠. 독종 Typhon, 우박 Shu, 메뚜기 Seraphia.
‘파라오’할 때 ‘라(Ra)’는 태양신을 말합니다. ‘파라오’라는 말은 ‘태양신의 아들’ 그런 뜻이지요. 태양이 사흘 동안 어둠을 막아버리고, 마지막에는 이 장자가 죽는데, 이 장자 죽음은 신들의 죽음의 마지막 결론이에요. 왜 사람들이 우상을 많이 섬겼느냐 하면, 결국 애급이나, 이스라엘이나, 우리나라나 이 문화가 비슷해요. ‘집안의 가업을 장자가 잇는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신들을 노엽게 하면 저주가 누구한테 오는가 하면, 장자한테 와요. 그래서 애급 사람들이 여러 신들을 섬긴 이유가 뭐냐 하면, 혹시 안 섬겼던 신 가운데 벌을 내릴까봐서 여러 신들을 섬겼어요. 애급 사람들의 모든 복의 개념은 장자예요. 하나님께서 장자를 쳐버린 거예요. 너희들이 여러 신들을 섬겼던 이유가 장자가 복 받기 위해서 그런 것인데, “너희 신들이 복을 주는 장자를 치겠다.” 그래가지고 하나님께서 장자를 심판하십니다. 그 대신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장자가 되어서 출발하는 거예요. 그들이 섬겼던 우상이 심판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깨지는 모습을 보면서 “아~아. 우리가 헛 믿었구나.” “아! 우리가 붙잡고 있었던 것이 가짜였구나.”라는 사실을 그들이 이제 직면하게 됩니다. 시인할 수밖에 없지요. 예수님을 믿는데 재산을 다 잃고 온 사람도 있고, 자녀가 죽어서 교회 온 사람도 있고 그런 경우를 우리가 많이 봐요. 그가 붙잡았던 신, 그가 붙잡고 있었던 신앙이 무너져야 됩니다. 가짜거든요. 그래서 그런 우상을 치고 부르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부부가 해로(偕老)하시려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돼요. 서방님이 하나님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이 우상을 쳐버리신다니까요. 좀 말이 끔찍한 얘기지만, 재산이 내 우상이 되면 재산을 하나님이 쳐버려요. 그래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니까. 우상을 꺾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요. 그런 경우가 많이 있어요.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빼앗아갔어요. 다곤의 신전에 언약궤를 모셨어요. 그랬더니 아침에 일어나니까 어떤 현상이 벌어졌어요? 목이 꺾였어요. 그 다음날은 팔 다리가 꺾여 나간 거예요.
당연한 거예요. 하나님 모시고 살아야할 사람이 다른 신 섬기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상을 치고 우리를 접수합니다. 이런 우상 깨지고 돌아온 사람 많잖아요.
★ 심판의 점진적 발전
1 그룹 - 피, 개구리, 이 - 귀찮게 함, 애급인들의 생활의 안락을 방해함 :
의 단절, 염려, 불안, 근심이 삶을 방해함(마음의 평화가 무너짐)
2 그룹 - 파리, 악질, 독종의 재앙 - 짐승들과 사람들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힘 :
그들의 에 문제가 생김 (마음으로 의지했던 것들이 무너짐)
3 그룹 - 우박, 메뚜기, 어둠의 재앙 - 환경을 파괴함 : 하나님의 손에 의해 황폐하게 됨 (삶의 이 무너짐)
4 그룹 - 세상의 생명, 소망을 끝장 냄 - 애급 땅의 모든 장자들이 죽음 (기대의 단절, 신앙의 붕괴, 복의 대물림이 단절 11:5)
장자권의 상실이냐, 후사로서의 삶이냐?
10가지 재앙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가만히 조사를 했더니, 이게 점진적이에요. 1그룹, 2그룹, 3그룹, 4그룹 들어갈수록 점점 더 우리 삶을 구체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거예요. 첫째 그룹은, 피, 개구리, 이의 출현입니다. 처음에는 마음에 평화가 무너지는 정도에요. 둘째 그룹, 파리, 악질, 독종의 재앙은 짐승들과 사람들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히는 거예요. 그들이 소유에 문제가 생김. 마음으로 의지했든 것이 무너짐. 처음에는 기쁨이 상실했다가 이제 는 의지 한 것이 무너지는 거예요. 그러다가 3그룹에 들어가면 더 깊어져요. 우박, 메뚜기, 어둠의 재앙. 환경을 파괴함, 하나님의 손에 의해 황폐케 됨. 삶의 기본 틀이 무너집니다.
마지막 4그룹은 세상의 생명, 소망을 끝장냄. 애급 땅의 모든 장자들이 죽음. 기대 단절, 신앙의 붕괴, 축복의 대물림의 단절. 희망이 끊어져 버리는 거예요. 장자권의 상실이냐? 후사로서의 삶이냐? 하나님께서 부르시는데 응답하지 않으면, 장자를 잃어버려요. 그러나 순종하고 따라오면, 장자를 안 잃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장자의 특권, 후사의 특권을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거예요.
★ 유월절 - 새로운 존재
1. (2) 이 달로 너희에게 해의 이 되게 하라.
2. (3-4) 가족대로 을 취하라.
3. (5) 흠 없고, 1년 된 수컷으로 하라. (힘, 향, 욕망)
4. (7)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라.
5. (8,10) 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고, 아침까지 남기지 말라.
6. (8-9,11) 쓴 나물, 허리에 띠, 신발, 지팡이, 급히
7. (14,17) 이날을 기념하여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켜라.
8. (15-20)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어라.
9. (43-49) 이방사람, 거류인, 타국 품꾼은 불가, 종은 할례 후 먹음
10. (41) 여호와의 가 됨
1) 유월절이 뭐냐? 유월절은 첫째 “이 달로 너희에게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 새로운 출발이 되요. 지금까지 삶은 하나님께서 계산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너희의 시간을 측정하겠다. 미국 사람들에게 “Are you a Christian?” 물어봐요. “너 크리스천이냐?” 그러면, 그 사람들은 뭐라고 되집어서 말하느냐 하면, “Are you born-again Christian?”이라고 물어봐요. 우리는 “예수 믿습니까? 교회 다니십니까?”라고 묻는 게 당연한데, 그 사람들은 교회 다녀도 가짜가 많다는 거지요. 그 사람들은 ‘거듭났느냐’고 물어봐요. 처음에는 잘 모르고 “나 목사다.” 그랬어요. 목사 그런 것 말고 “너 거듭 났느냐?” 그런 거예요. 얼마나 창피한지... SPA에서 만나가지고 호텔에 갔는데, 아랍에 가서 호텔에 SPA에 가 있는데, 빤히 마주보고 있는데 할 말도 없잖아요. 그래서 이제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요. 얼마나 창피했던지... 한국에서는 목사라고 하면 크리스천들은 ‘아. 그러시냐’고 바로 고개를 숙이는데, 이 사람은 얼굴 빤히 쳐다보면서, “너 목사라도 거듭났냐?” 그렇게 물어보더라고요.
거듭났느냐? 진짜 하나님께서 계수하시는 시간 안에 들어 왔느냐는 거예요. 시편 90편에 보면, 모세가 “인생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지나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모세가 80년을 살았어도 자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자기 구조로 살 때는요, 슬픔과 수고 많은 인생이었어요. 허망한 세월이었어요. 준비한 세월 80년, 나를 내려놓고, 내가 아니고 그리스도로 살아야 count 되는데. 모세는 그런 삶을 살지 못했어요. 그래서 80년의 세월이 너무 허망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내게 나의 날수를 계수하는 지혜를 주셔서 나의 남은 날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로운 인생이 되게 해달라.”고 시편 90편에서 기도를 해요. 그게 모세의 노래입니다. 80년 살았지만, 나를 내려놓지 못한 세월들은 허망한 세월들이였습니다. 수고와 슬픔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날 수를 계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어요. 하나님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자기 문제 해결되지 못해 끙끙대는 것은 계수되지 않는다는 거지요. 새로운 날의 시작, 새 역사의 시작.
2) 3~4절 “가족대로 어린 양을 취하라.” 한 마리의 어린 양을 잡으면 절대로 음식을 남기면 안 되니까, 만약에 가족 숫자가 부족하면 이웃집 사람까지 초청해서 이 양 한 마리를 먹게 했어요. 안식일을 지키는 원칙이 무엇입니까? 4계명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네 아내와 네 아들과 네 딸과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육축과 네 문안에 거하는 객이라도 안식일을 지키게 하라.” 신약에서 안식은 은혜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내가 은혜를 받으면, 나 한 사람에게 머물러버리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에 있어서 안식일 제도가 뭐냐 하면, 내가 안식하면, 내 아내도, 내 자녀들도, 심지어 우리 집에 종들도, 우리 집에 키우는 개도, 심지어 우리 집에 애들 때문에 찾아온 아이들까지도, 문안에 유하는 손님까지도 내 안식을 같이 누리는 거예요. 내가 은혜를 받으면 가족들이 같이 누리는 거예요. 얼마나 좋은지... 양을 잡는데, 개인별로 잡으라는 것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어린양을 취하라는 거예요. 복음의 최소 단위는 가정입니다. 한 가정에 한 사람만 은혜를 받으면 흘러가게 되어있어요. 같이 사니까.
오늘 아침에 저의 식사를 대접하신 집사님이 여기 현대 중공업에 다니시는 분이신데, 그의 아내 되신 분이 지난주일 낮예배 때에 간증을 했어요. 어떤 간증을 했는가 하면, 전혀 뜻밖의 은혜를 경험한 거예요. 공부하고 나서 숙소에 들어가서 자려고 하는데,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일찍 끝났는데, 그래서 둘이서 앉아가지고 두런두런 얘기하다가 상처가 치료되기 시작한 거예요. 이 분이 엄마가 셋이예요. 생모는 네 살 때 돌아가셨고, 그 뒤에 계모가 들어왔는데 들어와서, 14년인가 살면서 애 둘 낳고 살다가 바람나서 그냥 도망가 버렸어요. 그 계모한테 너무 시달렸어요. 애 둘 놔두고 도망가 버린 거예요. 그때 그 계모한테 당했고, 그 다음에 지금까지 살고 있는 엄마가 들어온 거예요. 그러니까 이 여자 분의 정서적인 구조가 편안한 구조예요, 힘들고 어려운 구조예요? 너무 힘든 구조예요.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자기 집 큰 아이에게 계속 분노가 일어나는 거예요. 무지무지하게 사랑하는데 이 아이가 조금만 잘못하면 분노가 일어나서 막 쏴 대 버리는 거예요. 무슨 얘기를 서로 앉아서 대화를 하다가 아들에게 그런 짓을 하는 것은 계모와의 상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면서요. 대화하신 분은 이 가정 구조에 대하여 조금 알았던 분인가 봐요. 대화를 시작하는데 그것에 대한 치유가 일어나는 거예요.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께서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그 계모를 용서하게 되고...
예상 밖의 부흥회가 일어난 거예요. 다른 조원들은 옆에서 자고 있는데, 둘이서 울고불고 하고 나중에는 상처가 드러나니까 이제 축사(逐邪)도 막 하고... 그래서 완전히 치료가 되었어요. 돌아가서 누가 제일 혜택을 받겠어요? 큰 아들이에요, 큰 아들. “우리 엄마가 나갔다 왔어도 어떻게 화도 안 낸다.”고 그러면서 애가 말하더래요. “엄마가 화를 안 내니까 너무 좋다.”고요. 중학교 몇 학년이지요, 그 애가? 중학교 3학년 되겠던데, 보니까. 그날 간증하는데 엄마를 붙잡고 우는 거예요. “엄마가 바꾸어지니까 너무 좋다.”고요. 한 사람이 은혜를 받으니까 가족들이 다 혜택을 누리는 거예요. 너무 좋은 거예요. 예수님 믿은 지 3개월밖에 안 되신 분인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며느리가 변화되니까요. 그래서 가정이 다 이렇게 혜택을 받아요. 어린 양을 먹는데, 혼자 먹지 말고 어떻게 먹으라고요? 가족대로 먹으라고요. 이것이 비밀입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랬습니다. 나는 이 비밀을 꼭 예수님 만나면 물어볼 거예요. 왜 이마에다 바르라고 말씀하시지, 문설주와 문 좌우 인방에다 바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꼭 물어볼 참이에요, 내가...
아버지가 예수 믿는다고 해서 아들이 자동적으로 구원받는 것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가정 단위로 말씀하셔요. 그건 뭘 말할까? 우리 복음기초원리12강 공부하면 나옵니다. 이게... 복음의 파장은 아무리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복음의 파장이 어디까지는 가야 한다? 가정, 가정. 사모님이 오늘 샤넬 넘버 화이브를 바르고 왔어요. 그러면 최소한 몇 사람이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어야 되요? 2~3평 반경 안에 계신 분들은, “어? 이상하다, 예수님의 향기인가? 향수 냄새인가?”하며 뭔가 냄새를 맡아야 되요. 그런데 자기는 오늘 샤넬 넘버 화이브를 30만원 주고 구입해서 바르고 나왔다는데, 옆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 그럼 이건 향수예요, 아니에요? 이런 것을 보고 “중국산 짝퉁”이라고 그래요. 그런 것도 있거든요. 우리의 복음의 최소 반경이 얼마라고요? 가정이라는 거예요, 이게 놀라운 얘기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 전도하기 어려운 사람이 누구에요? 가정이에요, 또 이게 기가 막힌 거예요, 이게... 그래서 복음은 능력이에요. 말이 아니라... 처음 길에서 만난 사람은 우리가 전도할 수 있어요. 그러나 부부간에는 “야! 너나 잘해.” “나는 안 믿어도 너보다 잘하잖아.” 이러면 할 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복음은 삶이고, 복음은 능력인 거예요.
가족들에게는 지식으로, 입으로 하는 전도는 소용이 없어요. 엄마가 달라지고 화를 안 내니까, 애가 우는 거예요. 엄마를 붙잡고 엉엉 우는 거예요. “엄마 너무 좋아졌어, 그런데 언제 바뀔 거야?, 나 긴장 안하게 해줘?” 이게 복음의 능력이에요. 복음의 최소 반경은 어디다? 가정, 가정, 같이 사는 사람. 물론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사무엘 같은 분도 그렇게 훌륭하신 분인데도 두 자식이 망가졌어요. 다윗이 참 훌륭한 분이였지만, 자식들 관리는 잘못했어요. 압살롬의 반역, 암논의 사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요.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복음의 능력은 최소한, 아무리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도 내 가정, 내 집, 내 문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영향력을 미친다는 거지요. 이거 성공 못하면, 우리가 참 어려움 많습니다. 이게 쉬운 이야기 아닙니다. 이게... 100%. “아버지가 신포도 먹으면, 자식이 다 이빨이 시냐?”하는 이런 속담도 있는데, 100%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너의 영향력은 최소한 가정에는 미쳐야 한다.”라고 하는 기본원칙을 세워주는 거지요. 내가 먹는 양고기가 내 자녀와 내 가족들이 같이 먹는 양고기가 되길 바랍니다.
3) 5절.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라...” 일 년 짜리 수컷 염소가 뭘까? 제가 어릴 때 젖염소를 많이 키웠어요. 젖염소를 사가지고 오면, 두 달쯤 되면 뿔이 나오기 시작해요. 아버지가 고무 밴드 있지요? 지금은 고무 밴드가 흔하지만 그때는 고무 밴드가 귀했어요. 고무 밴드를 구해다가 양쪽 뿔에다가 칭칭 감아줘요. 이렇게... 일주일 단위로 또 바꾸어줘요. 그러면 조금 있으면 이게 뚝 떨어져요. 희한한 것은 뿔이 떨어져버리면, 힘이 없어요. 뿔이 나오면 힘이 세 가지고, 내가 몇 번 죽을 뻔했어요. 염소는 귀에 물이 들어가면 죽는데요. 비가 오면 얘들이 발작을 해요. 막 들고 뛰거든요. 내가 감당을 못해요. 그런데 뿔을 잘라버리면 이게 말을 들어요. 뿔이 있으면 말을 안 들어요. 아~~그거 희한하더라고요.
그러면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라.”는 것은 무얼 말할까? ① 일 년이 되면 정상화 되어 힘을 마음껏 발휘해요. 일 년이 넘어가면, 일 년 전까지... 힘이 통제가 된다는 거예요. 힘. 막 힘 있다고 소리 지르는 이런 사람은 안 된다는 거예요. 힘이 조절이 되는 사람.
② 둘째 일 년이 넘어가면요, 냄새가 고약해져요. 암내, 발작하고 이런 것 있지요? 수컷은 발작하고... 일 년이 넘어가면 냄새가 고약해져요. 일 년 전이면 냄새가 아직 안 날 때에요.
③ 또 하나는 욕망, 욕망. 발정이 시작되어버리면 그런 정욕을 따라 살게 되요. 그래서 “일 년짜리 수컷으로 해야 할 이유가 뭘까?”하고 제가 오랫동안 고민을 했는데, 어느 책을 보니까 이런 내용이 나와요.
양에 대해서 공부하려면, “양과 목자”라는 책이 있어요. 이름이 누구죠? Phillip Taylor. 아주 좋은 책이에요. 여러분 그 책 꼭 한 번 읽어보세요. 이 내용이 나온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 내용은 다른 데서 얻었는데, 하여튼 꼭 한번 일독을 권합니다. “양과 목자”라는 책과 보이스사에서는 “시편 23편”이라고 또 나왔을 거예요. 같은 책인데...
하여튼, “일 년짜리 수컷으로 하라.” 제물이 될 수 있는 자격 조건입니다. 이게. 힘이 조절이 되어야 되고, 더러운 냄새를 안 풍겨야 되고, 정욕적이지 아니어야 된다는 거지요. 욕정을 따라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지요. 이런 조건이 “예수님이 흠 없는 양이었다.”는 개념. 또 우리가 주의 제단에 제물로 드려진다는 개념은 이런 것이 control된다는 거지요. 없는 것이 아니라, 조절이 된다는 거지요. “일 년짜리 수컷으로 했다.”
4) 7절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 역시 출입하는 문이죠, 이게. 문지방에 피를 바르라는 말은 없어요. 피는 짓밟으면 안 되죠? “문설주와 인방에다 바르라.” 들어가면서 눈에 보이지 않겠어요? 이렇게 “피가 발렸구나?” 안에서 피를 본 게 아니라, 밖에서 피를 봅니다. 누가 보는 거예요?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고, 죽음의 사자가 보는 거예요.
5) “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고, 아침까지 남기지 말라. 물에 삶거나 날 거로 먹지 말라.”고 그랬어요. 불은 뭘 의미할까요? 심판을 의미합니다. 심판 받으신 그리스도, 십자가 달리신 그리스도만 우리에게 구원을 줍니다. 다른 예수도 있어요? 병 고치시는 예수, 4대 성인 가운데 한 분이신 예수, 윤리 선생님 예수. 예를 들어서 간디 같은 경우는 매일 산상수훈을 읽었대요. 예수 안 믿는 분이거든요. 그래도 그 산상수훈의 도덕 윤리가 너무 고상하기 때문에 자기는 그걸 읽었다는 거예요. 다른 복음, 다른 예수는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해요.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에요? “내 죄를 대신 지시고 심판 받으신,” 그 말이에요. 불에 구워 먹는다는 말은. 불에 의해서 심판을 받아야만 대속의 자격이 있는 거예요. 불에 구워 먹어라.
6) “쓴 나물과 허리에 띠, 지팡이, 급히 먹어라.”
무얼 의미합니까? 안주(安住)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우리 떠나야 한다. 떠날 준비를 하는 거예요. 구원은 거기 있으면서 복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옛 생활을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Exodus하는 겁니다. 떠나지 않으면 구원이 의미가 없어요.
7) 14절, 17절 “이 날을 기념하여 절기로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켜라.”
절대로 이 날은 잊어버리면 안 돼. 매년 유월절은 반드시 지켜야 돼. “너는 피의 사람이다.” “피가 너를 구원했다.” 사모님! 꼬이십니까? 어떻게 해야 되요, 그러면? “피 발라라.” 그랬지요? 네, 이 사모님, 자식이 사고를 쳐요, 목사님 목회가 잘 안돼요? 그겁니다, 바로... 절대로 잊어버리지 마라. 너희들은 피에 의해서 구원받았고, 피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니까 헷갈리고 힘들고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것 같으면 바로 피를 적용하는 것. 피를 적용하는 것이 뭐예요? 십자가를 적용하고, 피를 적용하는 것이 뭐에요? 회개하는 거예요, 회개... 십자가 그늘 밑에 내가 들어가는 거예요. ♩♬ “십자가 그늘 밑에 나 쉬기 원하네...” ♩♬
십자가 그늘 밑에 들어가서 “나는 죄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아니고는 씻을 방법이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셔야 됩니다. 주님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라고 회개하고 그 질서 아래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장하시지요. 이것을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돼요, 절대로...
“해마다 지켜라.” 민수기에 보면, 유월절 기간에 여행을 갔다왔다 할지 혹은 불결해서 유월절을 못 지켰을 경우에, 그 사람들이 날짜는 지나갔지만, 보조적으로 유월절을 지킬 수 있도록 또 하나님이 배려를 해 주셨어요.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피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돌아왔어도, 구원받았다고 자기는 확신하고 있어도, 피 바르는 사건을 잊어버리면 자녀 됨의 혜택을 못 누린다니까요. 죽이라고 그랬어요. 유월절을 안 지키는 자를 어떻게 하라? 죽이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자녀지만, 한 번 하나님의 자녀는 지옥은 안 가지만, 하나님의 자녀지만 하나님이 쳐 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어떤 사람? 유월절이 없는 사람... 피 흘림의 복음을 모르는 사람... 죄 짓고도 그냥 회개도 안하고 사는 사람... 이걸 잊어버릴까봐서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대대로 지킬 규례니라.” 그랬어요. 피의 복음을 잊어버리지 맙시다. 우리의 복음은, 무슨 복음이지요? 피의 복음, 무슨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정치 신학적인 그런 복음이 아닙니다. “굳디엘이즈”는 그냥 예수님을 딱 그렸는데, 따발총을 뒤에다 메고 이마에다 두건 두르고 막... 그런 정치 신학적인 예수님, 그런 예수님도 있어요. 혁명가 예수님도 있지만, 구원자는 아니에요. 구원자는 유일하게 어떤 분? 피 흘리신 예수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나니, 천하에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
유일한 구원이 복음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에요. 불에 구워먹는 예수님, 심판 받으신 예수님. 카톨릭 수녀들 가운데 법정(法頂) 스님이 너무 멋있어서 개종해가지고 불제자가 된 수녀들이 많데요.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니까,
기독교는 멋있는 것이 아니에요. 무소유 이야기하는 것 아니에요. 기독교는 철학이 아닙니다. 복음이에요, 복음. 인간의 타락과 인간의 저주 심판을 대신 해결해줄 수 있는, 대속의 복음이에요, 딴 복음 얘기하면 안 돼요. 옛날에 설교시간에 스님들 이야기 자꾸 했어요. 멋있는 얘기는 인용할 수 있잖아요? 개방된 목사인데 이러면서... 어느 날 주님이 책망하시더라고요. “연약한 심령, 기독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네 말 듣고 가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 영혼을 네가 책임질 것이냐?”하시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 인용을 해도 절대 익명으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뭐 이러면서... 쓸 만한 말이 많습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더라고요. 우리는 어떤 복음? 피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이에요. 이게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불에 구워서 먹어라.” “절대로 이날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피의 복음,” “유월절복음.”
8) “7일 동안 무교병(無酵餠)을 먹어라.” 이게 중요합니다.
7일 동안. 하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서 다음 안식일까지 7일 동안을 먹는데, 무교병이 뭐냐 하면, 누룩 없는 떡이에요. 이스트를 넣지 않은 빵은 맛이 없어요. 무미(無味)합니다. 부풀이지도 않고 급히 만든 떡이에요. 우리는 세상을 즐기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시대적으로 워낙 문화가 enjoy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이게. 세상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먹고, 그리스도를 마시고, 그리스도로 사는 인생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생이에요. 무교병은 맛없는 떡을 먹을지라도 누룩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거예요. 죄와 더불어서 세상을 살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죄를 이길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어요. 그러나 죄를 내가 인정하고 죄를 품고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어쨌든 죄를 버리고 누룩 없는 떡이라도 먹으면서 내가 인생을 살아야 되요. 직장생활하시는 분은 이런 문제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뇌물 쓰지 않으면 승진이 어렵습니다. 최근에 교육 비리가 많이 드러나고 하는데... 교수 채용하는데, 얼마 줘야 되고, 고등학교 들어가는데 얼마 줘야 되고, 이건 뭐 묵계적인 관행으로 되어있어요. 그런 것들이 극히 일부분 드러나 가지고 뭐, 사회가 발칵 뒤집히고 그러는데, 사회가 발칵 뒤집힌 것이 아니라, 다 알고 있는데, 자기들만 몰랐지... 우리 다 알고 있었잖아요? 임용고시 pass하여 학교를 들어가려고 하는데, 학교에서 요구하는 거예요? “몇 천만 원 내놓아라.” 해야 되요, 안 해야 되요? 이런 게 우리 목사님들은 “당연히 안해야 한다.”고 그러지만, 저쪽은 목구멍이에요. 임용고시 pass하고 학교 들어가야 되고, 또 보조 교사로 있다가 내가 또 어떤 기관에 들어가려고 하면, 돈을 써야 먹고 사는 길이 열리는데, 목사님들이야 뭐 양심 지키고 살아도 전혀 어려움이 없잖아요? 워낙 직업이 좋아가지고... 저 사람들은 양심을 지키면 쫓겨나야 되고, 왕따를 당해야 되고.., 그런 구조란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에게 누룩 없는 떡을 가르쳐줘야 되요. 그래도 맛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도, 그래도 “구원받은 영생의 사람들은 누룩 없는 떡을 먹어야 합니다.”라고 교육을 시켜야 되요. 그럼, 맛없는 떡을 먹으면, 우리의 갈증은 어디서 해갈합니까? 그럴 때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거지요. “배고프다.” 그러면 불러가지고 출애급기 가르치는 거예요. 그냥. 며칠 밤 새워가면서...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래도 열을 못 받으면, “네가 가르치라.”고 교재를 만들어줘요. 그러면 같이 불붙기 시작해요. 해 보세요. 이건 제 경험입니다. 복음은요, 둘 중의 하나예요, 네가 회개하고 돌이키든지, 아니면 넌 가짜다. 이게 성경공부의 능력이에요. 여러분 성경공부만큼 능력 있는 것이 없어요. 하여튼 변화되든지, 죽든지, 둘 중에 하나에요. 왜? 말씀이 능력이 있으니까요. 특별히 복음 앞에 서면, 무교병 때문에 힘듭니다. 무교병...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되는데, 복음이 옛 생활을 거절하라고 그러고, 누룩을 거절하라고 그러고... 이게 문제란 말이에요. 이게.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절대로 세상과 타협하면서 적당히 부풀린 누룩이 썩은 음식을 먹으려고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것을, 처음부터 orientation 때부터 가르쳐주어야 되요. 이거 중간에 가르쳐주려면 참 힘듭니다.
제가 전도사 때 어느 교회에 부임해갔어요. 남선교회 구역모임한다고 다 모였어요. 멋있게 허리가 짤룩한 컵이 있잖아요. 다 놓았더라고요. 뭘 돌리려고 이런 것을 놔두었느냐 그랬더니, 딱 뭘 따라요, 포도주가 적색, 검은색 포도주만 있는 줄 알았는데, 흰색 포도주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딱 돌리는데, “마주앙”이라고 그러더라고요 “마주앙” 마주보면서 먹는 것이 마주앙인가? 그랬어요. 뭔 줄 모르고 그랬더니, “전도사님, 이건 포도주인데 한 잔씩 돌리고 기분 좋게 예배드립니다.” 그러더라고요. 심방전도사로, 남선교회 담당전도사 첫 부임했는데, 첫 모임에 금요일 날 구역예배예요, 이게 실상이에요. 그때 위기감이 오더라고요. “여기서 내가 잡히면 끝난다.” 딱 선언했지요. “이거 마시면, 난 일어나겠다. 어떻게 할 것이냐?” “아. 지금까지 그렇게 했어요~~~” 전도사가 쩍~ 이러더라고요. “목사도 했는데...” “난 옛날 사람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내 양심상 포도주 마시고 구역예배 드리는 것, 허용이 안 된다. 새 술에 취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마주앙 먹었다는 말은 못 들어 봤다.” 30분을 신경을 썼어요. 기어이 날 보고 양보를 하라는 거예요. “이거 하라는 얘기는 날 그만 두라는 얘기로 알고 난 일어나겠다.”고 하면서 진짜로 일어났어요. 그랬더니 딱 잡더라고요. “아이~~~ 전도사님 융통성도 없이 그러냐고요?” “이것은 허용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적당히 즐기기를 원해요. 술이 죄다, 아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예배 문화가 안 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게. 술이 죄입니까? 담배가 죄입니까? 나는 죄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어떤 분이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신부님이 로만 칼라를 딱 입고 담배를 피우는데, 영~~~ 거룩하게 보이지 않더라는 거예요. 안 믿는 사람 얘기예요.
“아~ 불신자들이 예수 믿는 사람이 담배 피우는 것 안 좋아하구나.” 그때 알았어요.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잔 딱 걸쳐 가지고, 뻘게 가지고 돌아다녀요. 불신자들이 그걸 보고 좋아하겠어요? 참 저분은 합리적이고, 융통성이 있는 사람으로 보겠어요? 싫어하지요? 우리 문화에서는 술 담배는 안 된다는 것을 제가 결론을 내린 거예요. “누룩 없는 떡을 먹어라.” 이게 중요합니다. 세상을 즐기지 마라. 우리는 하나님을 즐겨야 한다. 그런 의미죠?
9) 이방인이나, 거류인이나, 타국의 품꾼은 먹지 못하고, 종은 할례를 받으면 먹을 수 있다.
품꾼,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은 절대로 유월절 잔치를 먹을 수 없어요. 돈 때문에 일 하십니까? 사명 때문에 일하십니까? 만약에 돈 때문에 일하면, 품꾼은 먹어요? 못 먹어요? 못 먹어요. 우리는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품꾼은 안 된다고 그랬어요. 이방인들의 경우에는 안 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이방인이라는 말은, 종은 먹을 수 있는데, 할례를 받은 다음에 먹을 수 있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자기를 내려놓으면 먹을 수 있다는 말이죠. 할례라는 말은 신약에 와서는 세례와 같은 개념이지요?
그래서 유월절에 이런 의미 전체가 뭐냐 하면, “새로운 존재, 새로운 창조된 존재. 변화된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이전에 질서로 살면 안 됩니다. 이제. 오늘날 교회 안에 쉽게 5분짜리, 10분짜리 복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까지는 잘 했어요. 잘 했는데, 이제 당신은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절대로 이제 버림받지 않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0:28~29에 말씀하셨고, 또 요한복음 14:16에 보면 “성령을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떠나지 않는다.” 구원의 확신을 말하지요?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것만 가르쳐주었지, 그 다음에 구원받고 이런 새로운 질서 가운데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 믿고 난 후에도 불 가지고 사는 사람도 많고, 자시 냄새피우고, 욕망에 따라 살고, 피 없는 복음만 자꾸 얘기하고 있고, 누룩 있는 떡만 찾아다니면서 먹고, 돈 받고 일하고 이런 것들이 비일비재한 거예요. 그러니까, 출애급기 12장의 서론만 읽고 그냥 끝내버린 사람이에요. 본론, 결론을 못 본 거예요.
10) 마지막 열째는 40일째, 여호와의 군대가 됨.
이제는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누구를 위해 살아요? 하나님의 군대, 여호와의 군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고, 가치 자체가 바뀌는 거예요. 여호와의 군대가 된다. 구원받은 이후에는 유월절 질서를 가르쳐 주어야 하겠지요? 그래서 가짜와 진짜를 식별해 주어야 되요. orientation을 잘 해 주어야 해요. 선택은 그 사람들이 하는 거고,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얘기해 주어야 되요. 천당 간다는 얘기만 하니까,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 믿고도 변화가 안 되잖아요. 이걸 잘 가르쳐 주어야 되요. 이걸 여러분이 하면 목사가 치는 소리한다고 해요. 그냥 읽어가면서 “뭐라고 써놓았죠?” 하면서 그냥 읽게 해요 읽게...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하면서 자기가 대답하게 하면, 그러면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벼락같은 말씀으로 하시는 거예요. 그냥. 목사가 힘을 내버리면, 목사는 가능하면 소리를 조그맣게 해야 되요. 강조하지 말고, 조용~ 조용히, 이렇게. 부드럽게, soft하게 해야 되요. 하나님이 벽력같은 소리로 말씀하시게 해야 되요.
설교학 가르치셨던 정장복 교수님이 어느 날 설교 실습을 하는데, 이제 신대원 다니면서 실습을 하는데, 어떤 신학생이 나와 가지고 턱~ 성경을 읽는데, 이렇게 읽었어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목에 힘을 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읽음) 교수님이 듣다가, “야, 내려와! 네가 하나님이냐? 내려와. 목에 힘 빼!” 그 얘기가 저에게는 그냥 계시(啓示)의 음성으로 들렸어요. “그렇구나, 우리가 목에 너무 힘주면 안 되겠구나. 우리가 조용조용해야 그 분이 큰소리치시지...” 내가 큰소리치면, 그 분이 할 말이 없으시잖아요? 할렐루야.
< 출애급기 강의 (8) >
★ 적용 질문
1.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를 ‘신’(엘)이라 하였습니다.
원수, 적들이 보는 나는 어떤 모습일 것 같습니까?
2. 하나님의 심판, 진노를 피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2:23)
3. 유월절의식을 어떻게 후손들에게 가르치라 하셨습니까? (13:8-10)
1)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를 신이라 했습니다. 원수, 적들이 나를 보는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너는 우리 편 고맙다. 적진에 들어가서 우리 편 되었으니…” 이런 사람들도 있어요.
아군 폭격하는 사람들... 하나님은 우리를 원수 앞에 세울 때, 신으로 세웠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대행자,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심판, 진노를 피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2:23) “여호와께서 애급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 뭐를 보시고요? 피를 보시고요. 피... 자, 여기서 믿음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뭐냐 이렇게 한 번 예를 들어봅시다.
① 동물애호가가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은 양의 피를 바르라고 그러면 싫어할 겁니다. 나는 양의 피를 바르지 않고, 망고를 내가 갖다 바르겠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합시다.
② 둘째 사람은 애이~ 양이 뭐야 코끼리정도는 잡아야지, 양은 한 마리에 한 십만 원 한다면 코끼리는 한 오십 만원 한단 말입니다. 나는 큰 것으로 하겠다고 하고 코끼리를 잡아가지고 거기다가 피를 발랐어요.
③ 셋째 사람은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신데 무슨 동물의 피를 가지고... 그런 잔인한 하나님이 아니다. 안 바르고 그 밤을 지났어요.
④ 한 사람은 양을 잡아서 그대로 했는데, 너무 불안해 가지고 집안에서 바들바들 떨었어요. 그 밤에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요?
망고를 바른 사람, 코끼리 피를 바른 사람, 피를 안 바르고 평안하게 주무신 사람, 피를 발라놓고 그냥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던 사람, 결과를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요? 피를 바른 사람, 어떤 피요? 그런데 안 믿었잖아요? 떨었잖아요? 떨어서도 믿음이 있는 거예요? 피는 안 바르고, 우리 하나님 그런 하나님 아니야, 무슨 피를 바르라 그래, 난 우리 하나님 그런 하나님 아니야, 나는 하나님 신뢰해, 그러면서 방에서 주무셨던 사람 믿었잖아요. 그러면 장자가 살아난 집은 어떤 집이에요? 피 바르고 바들바들 떨었던 사람, 그럼 바들바들 떤 것은 뭐예요? 소화가 안 되었대요, 소화가... 너무 떨어가지고 그냥.., 긴장을 해가지고 죽을 까봐서... 믿음으로 피 바르고 쉬어버렸으면 간단한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지금 얘기하는 거예요. 지금 믿음이 뭔가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분 믿음이 뭐예요? 예~~~ 믿음은 느낌이 아닙니다, 그대로 순종하는 겁니다. 우리가 믿음 그러면, “믿싸오니... 믿싸오니... 믿싸오니...” 그래서 억지로 믿으려는 뭐 이런 것을 말하는 것 아니라, 느낌으로는 불안해도 이미 그 말씀을 받아들여서 행동하는 그 자체가 신뢰예요, 신뢰... 믿음이 뭐예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만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이란 거지, 느낌, 기분이 좋다, “오늘 은혜 받았다.”고 눈물 흘리는 것을 믿음이라 그러지 않아요. 그것이 구체적으로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게 될 때 그 것을 믿음이라 그래요. 그러면 교회 안에 믿음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가 알 수 있잖아요? 목사가 선포하면 그저 은혜가 되든 안 되든, 눈물이 나든 안 나든 관계없이 그대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고, 앞에서 은혜 받았다고 별나게 쓸레방 떨어대고, 그거 안 하는 사람은 장에다 죽어요, 안 죽어요? 죽더라 이거예요. 거기에는 복이 없어요. 우리가 믿음이란 개념을 말씀 순종으로 딱 연결 시켜주어야 되요. 그런데 한국교회가 그 동안 이걸 잃어버린 거예요. 그리고는 즐기는 거예요, 그냥... 설교에 즐기고, 오늘 은혜 너무 많이 받았다고 감동이나 올려놓고, 가서는 잊어버려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리셨나이다.” 말씀을 버리면 죽어요, 왕관을 잃어버려요. 피를 볼 때 내가 넘어가겠다고요(12:13), 피를 볼 때... 피를 바르는 게 중요합니다.
회개 기도할 때 눈물을 흘려야 되느냐, 얼마나 애통해야 되느냐,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그냥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그러면 되는 거예요... 눈물이 2cc 나오면 안 되고, 3cc 넘어야 되고 뭐, 흐느껴야 되고 뭐... 다시는 그런 행동하면 안 되고 뭐... 아이고! 그런 얘기하지 마요~~~. 자전거 배울 때 한두 번 깨어졌습니까? “믿음이 뭐냐?” 오늘 예수 믿고 바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깨끗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니에요. 애들 보세요, 천박하고 유치하고 헷갈리고, 심지어 들이받기도하고, 방황하고, 청소년기 때는 부모를 막 대항하잖아요. 그래도 집안에만 있으면 아이들이 다 변화되고 다 성숙해서, “아이구! 저게 시집가서 어떻게 살란가?” 했더니, 애들 2~3명 거느리고 오는 거 보면, 참 은혜예요, 은혜... “아! 은혜가 그거구나.” 엄마 아버지가 3~40년 기다리며 팍 밀어줄 때 천박함, 더러움, 대항했던 것, 반항했던 것, 다 해결되어요, 다... 한 번 그 분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므로 단 번에 우리를 온전케 하셨다는 말은 그런 말씀이에요.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 오늘 당장 달라진다는 얘기가 아니라, 아버지 말씀 순종하고 심지어 반항한다 할지라도, 바울 신학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이게 “in 그리스도(in Christ) 사상”이에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집 안에 있고, 교회 안에 있고, 목자와의 관계에서 질서 안에 있게 되면, 시간이 흐르면 해결이 되더라. 이거에요. 육신적인 아이를 키우는데, 3~40년 걸리는데, 영적으로 한 사람 변화 시키는 것 하루아침에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도 40년 기다려 주잖아요. 너무 성급하게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가르치다가 망가뜨리면 안 되고, 천천히... 그러나 말씀의 질서 앞에 있어야 되요. 불순종해도 따라오는 애들이 있어요. 이렇게... 질서 가운데 있는 애들이 있고, 말을 잘 듣는 것 같은데, 근본적으로 안 듣는 사람이 있어요.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우선 경청(傾聽)이 중요합니다. 자꾸 들어야 되요. 그래서 ”피 발라라.” 그러면서 어련히 알아서 그랬을까... 난 잘 안 믿어지는데도 바르겠다하고 바르는 것이 믿음이라니까요. 그냥 따라오는 거예요.
3) 유월절 예식을 어떻게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그랬습니까?
(13:8~10) “너는 그 날에 네 아들에게 보여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급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로 말미암음이라 하고,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해마다 절기가 되면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잊어버리지 말라는 거예요. 기호, 표, 입, 무슨 얘기냐 하면, 집에다가 문설주에도 붙여놓고, 화장실에도 붙여놓고, 또 애들 공부하는 방에도 붙여놓고... 요즘은 웃통 벗은 이상한 근육질만 그냥 붙여놓으니까... 그런 야시꾸리한 것 다 걷어내고, 거기다 뭘 붙여요? 하나님 말씀 붙여주는 거예요. 애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전달해 주고, 그저 부모가 입으로 “공부해라, 공부해라.” 그렇게 하지 말고,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된다.” 그렇게 해야 되요.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지 않게 하는 거예요. 우리 아이들 의식 속에 각인(刻印)이 되어야 되요. 그러면 그 아이의 인생은 하나님께 보장을 받는 거예요. 이런 delivery 안 하게 되면 나중에 심판받아요.
13장-24장 인도하여(1)
13장-18장 (자기와의 싸움)
13장 그리스도인 삶에 대한 orientation
1. 으뜸, 을 드려라. (시간, 주간, 물질, 건강, 첫 자녀)
2. 무교절을 지켜라. - 누룩 없는 떡을 취하라.
3.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아라.
12장에서 피를 통해서 하나님이 계약(契約)을 맺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子女)로 인 쳐 주신 다음에,
13~24장은 인도(引導)하였는데, 우선 13~18장까지가 성화(聖化)인데,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내면의 싸움입니다. 아까는 싸움이 밖에 있었잖아요? 우상과 싸웠고, 바로와 싸웠고, 사탄과 싸우는데, 그것이 나의 내면으로 들어와요,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이 됩니다.
13장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orientation이에요.
예수 믿는 것은 무얼 말하느냐? 12장에서 구원을 경험한 다음에 바로 구원이란 개념을 설명을 해 줘야 되요. 도대체 뭘 도움 받는 거냐? 어떤 걸 결단하는 거냐?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다.”하는 말은 대학교에 들어가면 첫 시간에 orientation을 하죠, 이 orientation을 잘 받아야 되요. 앞으로 어떻게 대학생활을 해야 되며, 학점은 몇 학점을 받아야 되고, 결석일수가 1/3이 되면 뭐 탈락이 되고... 이런 기본 원칙이 있어요. 그걸 무시하고 열심히 해봐야 소용이 없어요. orientation을 잘해야 되는데, 세 가지 orientation을 주셨어요.
① 첫째는 “으뜸을 드려라, 첫 것을 드려라.” 이거예요. 요즘은 십일조 설교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출애급기 가르치면 다 해결되는 거예요. 자. 구원 받은 다음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무조건 첫 것은 하나님 거예요. 하나님을 잘 모시는 방법은 첫 자리를 내드리는 거예요. 동양, 한국은 그런 질서가 참 잘 되어 있어요. 식탁에 쭉 앉아 있을 때, 누가 먼저 수저를 들어요. 제일 어르신이... 반찬도 미리 먹으면 안 되죠. 눈치를 좀 봐야 되죠, 어르신이 먼저 드신 후에... 자리에 일어날 때도 누가 먼저? 어르신 먼저, 이게 성경적인 문화와 연결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이 예수를 잘 믿게 되어 있어요. 너무 이스라엘과 풍속이 비슷한 게 많아요. 장남에 대한 선호 사상도 마찬가지. 첫 것을 드리는 게 왜 필요하냐? 하나님은 우리 장자를 탕감해 준 것이 아니라, 사셨어요. 값으로 사신 거예요. “내가 양을 주고 너희 장남을 샀다.”고 그랬어요. 구원받은 순간 첫 것은 누구 거예요? 하나님 거예요. “내가 드려야 한다.”가 아니라. 자동이 되어야 해요. 법적보장이에요. 그 대신 내가 첫 것을 드리면, 하나님이 나를 장자로 인정하시고 장자권의 복을 줘요. 내가 첫 것을 안 드리면, 내 첫 것을 가져가버려요. 신앙생활하며 첫째가 뭐냐 하면, 첫 것이에요 첫 것. 으뜸을, 너의 삶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냐는 거지요. 하나님께 있다. 그걸 고백하는 것이 십일조 사상이에요. 십일조에는 다섯 가지가 있어요.
a) 시간의 십일조 -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예요. 그동안 한국교회가 복 받았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 거예요. 이것도 이제 부도 나게 생겼어요. 사람들이 도시 문명이 자꾸 발달하다보니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습성화하여 새벽기도가 점점 밀려나기 시작해요. 미국에 갔더니 요즘 새벽기도 바람이 불었어요. 한인 사회에서 새벽기도를 안 하면 이단이라는 소문이 나가지고, 목사님들이 이단 안 되려고 새벽에 그냥, 새벽기도 안 하려고 미국 갔다가, 지금은 죽을 뚱, 살 뚱해요 지금은... ‘할렐루야!’ 그랬죠, 그냥... 본국에서 수출을 하니까, 그 쪽에서 수입을 해요, 그냥. 야~~~ 멋있더라고요 아주 그냥... 첫 시간 드리는 것, 새벽기도 나오면 좋지만 못 나와도,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첫 시간을 하나님 앞에 “주인님!” 그러고, 하루에 대해서 여쭙는 거예요. “오늘 내가 어떻게 할까요? 무엇을 해야 됩니까? 누구를 만나야 됩니까?” 이렇게... 종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주인에게 가서 하루의 일거리를 받듯이..
우리가 엎드려서, 반드시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예배의 마음을 가지고 어르신을 예우하는 거예요.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b) 둘째는 주간의 첫날이에요. 주일입니다. 주일. 이것은 안식일이 아닙니다. 일주일의 첫날입니다. 첫 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일은 구별시켜라. 주간의 첫 날.
c) 물질의 첫 것, 이걸 십일조라 그러지요.
d) 그 다음에 건강, 건강의 첫 것을 드려야 되는데. 이건 뭘 말하느냐 하면, 다른 스케줄 다 잡고 남은 시간 교회 봉사하는 게 아니라, 모든 스케줄 잡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내 건강을 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남은 시간 가정을 위해 쓰고, 남은 시간 자기를 위해 쓰는 거예요. 봉사. “집사님! 다음 주간에 시간을 내셔서 심방을 같이 좀 가십시다.” “목사님! 저는 다음 주간에 시간 없어요.” 벌써 스케줄을 다른 것부터 먼저 잡은 거예요. 이건 으뜸 사상이 아니에요. 먼저 목사님께 전화해 가지고 다음 주 안에 교회 중요한 일 없습니까? 먼저 물어봅니다. 하나님 것 먼저 하고, 남은 시간에 하는 거예요. 요새 엄마들은 너무 바빠요, 교회 일 안 하고 다 바빠서 못 한다고 그래요. cell장도 안 하겠다. 이런 원리(?) 가르쳐주면 제일 먼저 하려고 그래요. 왜 장자권의 복을 받는데, 이게... 저는 봤어요.
건강 바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건강 보호해 주시더라고요. 아버지가 건강 바치시고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 자식들이 복을 받더라고요. 하나님은 절대로 에누리 없는 장사를 하시지 않더라고요.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반드시... 아버지가 뿌린 것들을 자녀가 다 거두어요. 정확하게 자식이 거둡니다. 놀랍습니다. 수학이에요 수학. 신앙생활은... 거저가 없어요. 지금 나는 부지런히 심고 있어요. 누가 거두겠어요? 자녀들이 거두지요. 그대로 흘러가는 거예요, 그대로... 건강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강...
e) 첫 자녀를 드려야 되요, 첫 자녀. 민수기를 보니까, 레위지파 사람들이 대신 받고 첫 자녀를 대속하라 그랬어요, 그래서 장남, 첫 것과 레위지파 사람들을 묶었어요. 장남=레위지파 이렇게 묶었어요. 나중에 수효가 부족하니까 태어난 지 2개월짜리까지도 이렇게 묶었어요. 그래도 레위 지파 사람을 다 cover를 못해요. 그러니까 나중에는 속전(贖錢)을 내게 했어요, 속전... 돈 내게 했어요. 그래서 레위지파 사람들을 support하는 거예요. 자, 첫 자녀를 드린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내 장남이 귀하잖아요? 내 장남 바지 사줄 때 선교사님 바지사주는 거예요. 내 아들 뭐 챙겨줄 때 목사님 챙겨드리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이렇게 처음에 가르쳤더니 사람들 시험 들더라고요. 은혜 받았을 때는 아들하고 똑같이 목사님을 예우하고... 이걸 잘못 가르쳐놓으면 오해가 될까봐서, 담임목사를 섬기지 말고, 풀타임으로 일하시는 선교사님을 지원하라고 그랬어요. 이렇게 묶어주었어요. 이렇게...
처음에는 아들 예우할 때 같이 예우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아들 엄청 사랑하잖아요? 그러니까 비용이 많이 나가니까, 시험 들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살∼짝 “믿음의 size대로 하십시오.” 그랬더니 지금은 5천원, 만원, 10만원 막 이렇게 내요. 우리 교회에서는 이것을 “첫 열매 선교회”라고 그래가지고, 첫 자녀의 이름으로 무조건 선교하는 거예요. 5천원이라도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자녀가 장자로 “복 받게 하는 원리”라고 가르쳐 줘요. 전교인이 첫 열매 선교회에 다 들어와 있어요. 그것을 선교비 보내는 거예요. 제일 좋은 것은 아들 몫으로 이렇게 같이 묶어주는 거예요.
이렇게... 다섯 가지입니다. 다섯 가지, 첫 것을 드리는 것, 그러니까 첫 자녀를 살려주신 대신에 그 첫 자녀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구별 시켜버렸어요. 하나님이. 이게 법적 장치입니다. 이게... 이거 뭐 드려도 좋고, 안 드려도 좋은 것이 아니라, 드리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이 되어요. 그런데 얼마만큼 우리가 이익이냐면, 토미 테니가 쓴 책 가운데 그런 얘기가 나와요. “하나님이 지나가시면서 ‘팁’ 한 번만 주셔도 평생 먹고산다.”고 워낙 부자시라... 하나님께서 팁만 주셔도 그걸로 평생 먹고 사는데, 우리가 장자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자권의 복을 주시는데, 누가 이익이에요? 이런 거예요. 제가 억만장자라고 그럽시다. 수첩이 여기 있어요. 선교사님 것 내 놓아보아요. 지갑 내 놓아보아요. 둘이 바꾸기 하면 누가 이익이겠어요. 내용은 잘 모르지만, 누가 이익일 것 같아요. 자~ 거기서 장자권, 곧 으뜸만 드리는 거예요. 십분의 일만 드리는 거예요. 이렇게... 그러면 내가 뭐라고 그러냐 하면, “내 후사로 세우겠다.”고 그래요. 후사(後嗣)가 뭔지 알아요? 거기에는 내가 십분의 일을 드리고, 그 분이 내게 그분의 것을 통째로 넘겨주시는 거예요. 여기에는 재산문서까지 다 들어있어요. 여기에... 거래하면 누가 이익이겠어요? 계산할 필요가 없지요. 이런 계산을 사람들이 못한다니까요? 그러니까 미련 곰퉁이들이에요. 교인들한테 이걸 가르쳐 주어야 되요. 그래야 복을 받지요. 하나님을 통째로 얻는 것인데, 왜 그것을 안 합니까? 이런 “영적 dealing”을 모릅니까? 내가 만든 말이지만... 우리는 거룩한 거래를 하는 거예요. 그런 머리는 사람들이 안 돌아 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장을 해주시는데, 너 십분의 일, 첫 것만 드리면, “내가 너를 나의 후사로 나의 전 재산, 전 기업을 다 너에게 몫으로 주시겠다.”는 거예요. 이게 거래가 됩니까, 안 됩니까? 십일조 사상은 계산이 안 되는 것이니까요. 그걸 사람들이 못하는 거예요. “첫째, 으뜸을 드려라. 으뜸은 내 것이다.” 심지어 나귀나 부정한 짐승 같은 경우에는 죽이든지, 목을 치든지, 아예 목을 안 치려면, 속전을 내라고 그랬어요. 아니면 죽이라고 그랬어요. 못 내놓겠으면, 죽여라. “하나님을 으뜸으로 모시면, 지금부터 너는 나의 상속자가 된다.” 이게 기가 막힌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수지가 맞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겁니까? 아주 굉장한 거지요, 아주...
② 둘째는 무교절을 지키라고 그랬어요. “누룩 없는 떡을 취하라.”, “죄 없는 삶을 살라.”는 거예요. 우리가 죄를 피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죄 없는 삶을 살기위해 애쓰고, 기도하고, 이런 성별된 삶을 추구해야 되요.
③ 셋째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아라.” “지금부터는 내 의지, 내 경험, 내 지식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함으로 살아라.”라는 거예요.
이 세 가지가 13장의 내용이에요. 이 내용을 정리해 보면
첫째 으뜸을 드리는 것은 누구하고 연결된 것 같아요? 성부 하나님과 연관이 있어요. 하나님... “하나님 잘 섬긴다.” 그러면서 최고의 자리를 드리지 않는 것은 거짓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은 첫 것을 드리는 거예요.
둘째 죄 없는 삶은 어느 분과 연결된 것 같아요? 예수님, 예수님과...
셋째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는 것은요? 성령님과 연결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신앙생활은 뭐냐? 우리가 삼위일체적으로 하는 거예요.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 성자 예수님에 대해서, 성령님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단하는 거예요.
가까운 불레셋 길로 인도하지 않으심
‘하나님의 군대’라 하셨지만, 아직 전쟁할 준비가 되지 않음.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급으로 돌아갈까 하여 홍해길로 인도하심(13:17-18)
• 숙곳에서는‘해변길’과 병행하여 곧장 가데스바네아로 가는‘술길’이 있다.
•‘술 길’은 해변길에 비해 좋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이었다.
• 하나님께서는 이 길도 허락지 않으시고, 더 돌려 광야 끝, 에담 광야길로 인도 하신다. 이 길은 사람들이 거의 이용하지 않는 길이었다.
하나님이 13장에서 세 가지 orientation한 다음에 14장은 홍해를 건너게 하는데, 지금 여기 라암세스에서 숙곳으로 와서 이렇게 내려오는데, 이게 제일 가까운 길이에요. 이게. “해변길”이라고 해요. “왕의 길”이라고도 하고 “술 길”이라고도 해요. 지금도 이 길이 있더라고요. 둘째로 가까운 길, 셋째 길은 전혀 엉뚱한 길로 내려가 버리는 거예요. 이렇게... 이 쪽 블레셋 길로 가면 제일 가까워요. 그런데 이 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셨어요. 둘째로 가까운 길로도 인도하시지 않으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는데, 광야 길로 인도하셨어요. 가까운 블레셋 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군대라 하셨지만, “아직 전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급으로 돌아갈까 하여 홍해 길로 인도하셨다.”
숙곳에서는 해변 길과 병행하여 곧장 가데스바네아로 가는 술 길이 있다.
위엣 길과 가운데 길이지요.
술 길은 해변 길에 비해 좋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이였다. 하나님께서 이 길도 허락하시지 않으시고, 더 돌려서, 돌쳐서 광야 끝 에담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 이 길은 사람들이 거의 이용하지 않는 길이었다.
지도상으로 볼 때 이렇게 여기서 이렇게 가면 쉽잖아요? 그렇게 가지 않고 일부러 가다가 밑으로 이렇게 홍해를 건너게 해요. 안 건너도 될 지역인데 홍해를 건너게 밑의 길로 가게 해요.
14장 홍해를 건넘 ( )
14:1-2,31 하나님의 계획 (돌려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14:10-12 백성들의 반응
14:13-14 모세의 태도
14장은 홍해를 건너게 하는데, 이것을 “세례”라 합니다. 세례... 하나님께서 일부러 홍해를 건너게 해서 세례를 받게 해요.
1~2, 31절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급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돌려서 인도하셨다는 거지요.
10~12절 백성들의 반응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서 본즉 애급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급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급에서 이끌어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급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두라. 우리가 애급 사람을 섬길 것이라.’하지 아니하더냐? 애급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백성들이 불신했어요. 신뢰를 못했어요.
13~14절 모세의 태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하나님의 계획과 백성들의 반응과 이미 훈련이 끝난 지도자의 태도가 전혀 다릅니다. 자~ 지도자는, 이미 훈련이 끝난 사람은 “두려워하지 마라.”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구원을 보라.”
♩♬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되심을 알지어다.
열방과 세계 가운데 주가 높임을 받으리라.” ♩♬
모세가 “하나님 하시는 것을 좀 보자, 기다려 보자, 우리가 신뢰해 보자.”라고 이야기를 하지요. 이것은 찾아봐야만 은혜가 되니까 14장에 가 봅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백성들은 원망했고, 지도자 모세는 기도했어요. 자. 14장부터 봅니다. 광야 길로 인도하면 이런 반응들이 나타나기 시작해요.
14:10~12 홍해 앞에 선 백성들이 반응을 한 번 봅시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서 본즉 애급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급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급에서 이끌어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급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두라. 우리가 애급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급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급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원망하는 백성, 기도하는 모세
• 14:10-12, 13-16
• 15:24, 25
• 16:3, 4
• 17:3, 4
• (민 11:1) 백성이 …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
• (민 14:27)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 (민 21:5-6)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모세는 어떻게 했어요? 15절에 보니까, “내게 부르짖었다?” 그랬지요? “부르짖었다.”
11절에 보면 백성들도, 10절에 보면 맨 뒤에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했지요. 이스라엘도 부르짖었잖아요. 이 부르짖음은 기도의 부르짖음이 아니고 뭐예요? 원망, 불평, 대적하는 부르짖음이란 말이에요. 앙탈하는 거예요, 앙탈. 모세는 기도했죠?
자~ 15장, 위기가 또 옵니다.
(15: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에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백성은 뭐 했어요? 원망했고, 모세는? 기도했고...
16장 또 광야가 나오지요? 신 광야.,
(16:3) 백성이 어떻게 했는지 봅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급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자~ 2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 했는데, 모세는 그 때 어디 갔어요? 어디 있었어요? 4절에 모세가 있는 위치가 어디에요? 하나님 앞에 있었지요? 뭐 했어요? 기도했지요. 백성들이 문제 때문에 원망했을 때, 모세는 같은 문제를 보고 하나님 앞에 있었어요. 17:3-4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급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모세가 여호와에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백성은 원망했고, 지도자는 기도했고, 자! 그러면 중요한 결론을 제가 내립니다. 보세요. 모세는 광야 40년을 끝낸 사람, 광야 시험에서 합격한 사람, 훈련이 끝난 사람은, 백성들은 앞으로 40년을 훈련을 받아야할 사람, 저를 보세요. 목사님들의 광야가 앞에 있어야 합니까? 뒤에 있어야 합니까? 더 40년간 고생을 하셔야 되겠습니까? 40년을 더 고생하시렵니까? 뒤에 있어야겠지요? 권한이 뒤에 있는 사람의 특징이 뭐라고요? 문제가 오면, “이 놈의 인간들이 그러면서 원망하며 불평하는 자 누구야?” 이렇게 하는 사람은 다 고난이, 광야가 앞에 있다? 뒤에 있다? 아, 저것은 10년짜리, 아, 저것은 20년 짜리... 이미 고난이 끝난 사람의 특징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한다? 누구한테 간다? 사람 붙잡고 얘기하고, 누가 어떻고...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누구한테 간다? 하나님께 간다. 원리가 간단해요? 어려워요? 너무 쉽지요. 너무 간단하지요? 이런 것을 찾아내는 것이 성경공부라니까요? 그냥 기도하면 되요. 하나님 아시지요, 나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 감당 못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나님 도와주세요. 다윗이 훌륭했던 것이요. 이런 부분이 훌륭했어요. 그렇게 힘들고 어려워도요, 그 속에 있는 원망, 불평, 분노 이런 것들을 누구 앞에 가서 풀었나하면, 하나님 앞에서 풀었더라고요. 시편을 읽어보니까요, 가슴이 섬뜩섬뜩한 내용이 나와요. 이런 거예요. “하나님 그 집 아이를 고아가 되게 해주시고, 그 집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해 주시고, 그 집 재산은 고리 대금업자가 다 빼앗아가게 해주시고...” 이런 얘기가 막 나와요. 그 성군 다윗이, 훌륭한 그 분이, “하나님. 벼락은 어디에다 쓰시려고 아끼십니까? 자동차 사고 많이 나던데...” 이런 말을 사람한테 하면, 원망 불평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하면, 기도가 되는 거예요. 이런 간단한 원리인데, 너무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거예요. 어떻게 앞으로 광야를 40년 거니시렵니까? 광야를 내 뒤로 보내시렵니까? 예! 뒤로 보내셔야지요. 그러시려면 뭐 하셔야 되요? 기도해야지요. 기도 안하면, 사람 대적하고, 원망하고, 불평 나옵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니까? 그 인간이 나를 힘들게 했고, 저 원수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이렇게... 사람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 신앙을 아는 사람은 그래요. “하나님! 저 사람을 나에게 붙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60억 인구 가운데, 이런 고약한 인연도 있습니까? 하나님,.. 대형 컴퓨터로 계산해도 이건 안 나올 얘기인데, 하나님! 왜 이르셨습니까? 틀림없이 무슨 뜻이 있을 텐데... 태어나도, 태어나도, 저 아이가 왜 우리 집에 태어나야 합니까? 하나님 실수하신 것 아닙니까?” 이것을 아이한테 말하거나, 사람 앞에 말하면 그것은 죄가 되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 하면 기도가 되고, 치유가 되요. 나는 다윗이 굉장히 그릇이 커서 그런 줄 알았어요. 사울을 죽일 수 있는데 안 죽였잖아요. 시므이라는 사울 왕가의 말단(末端) 종이 와 가지고, 좇아오면서 다윗을 막 저주하며 욕을 하잖아요. 옆에 있던 장수들이 시므이를 죽이려고 하니까, “버려두어라. 하나님이 하시니까...” 그런 도량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몰랐어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셨어요. 바로 자기의 분노, 원망, 불평하는 마음이 해결 안 된 이런 감정들을 누구하고 해결해요? 하나님 앞에 실컷 털어놓고 나니까, 사람 만나면 용서가 되어요. 이해가 돼버리는 거예요.
“두어라!” 중요한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stress 많은 목회하면서, 하나님과 둘이 만나가지고, 내 감정을 토설하는 그런 시간이 없는 사람은 100% 입으로 범죄합니다. 사람에게 좋지 않은 말을 했다가 10~20일 지나서 그 말이 돌아온 경험을 한 적이 많지요? 나는 그 사람 믿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이 인간이 배신을 한 거예요. 이 인간이 배신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인생을 모른 거지요. 목사는 부정적인 얘기하면 되요, 안 돼요? 절대 안 되어요.
“집사님 이 얘기 하면 절대 안 돼~~~” 그 얘기까지 합쳐서 돌고 돌아다녀요. 딱 결단을 내리세요. “절대로 교인에 대해서는 내가 불편한 심정을 말하지 않겠다.” 결단을 내려 버리세요. 그럼 stress 받고 심기가 불편하면 어떻게 되느냐? 기도실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토설하고 기도해요. 방언기도가 좋은 것이 뭐냐? 방언으로 욕을 해버려요. “그 원쑤 같은 인간~~~.” 다윗이 그랬어요. 신학적으로 뭐라고 기록했냐 하면요, “저주시(詛呪詩)”라고 그랬더라고요. 이건 잘 모르고 한 것이고 저주시가 아니에요. 그게. 사람에 대해서 막 저주하는 거예요.
저주가 아니고, 현대 심리학에서 밝혀졌어요. ‘토설(吐說)’이라고 해요, ‘토설.’ 감성을 하나님 앞에 풀어놓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토설해 놓으니까, 마음이 녹아내려 버리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 원수를 만났을 때 어떻게 되요? 자비와 사랑으로 대할 수 있더라 이거예요. 현대 심리학에서 이걸 밝혀 준 거예요. 우리 교회에서는 이것을 이용해서 “therapy program”을 만들어 건강한 방법으로 감정을 토로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랬더니, therapy만 갔다가 오면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거예요. 완전히 변화되어 버려요. 다윗이 그런 것을 사용하였더라고요. 야~~ 놀랍다, 역시 이 분은 탁월하다. 우리가 목회하면서 stress를 얼마나 많이 받습니까? 그것을 털어놓는 방법이 없는 사람들은 고약한 문제가 생겨요. 물론 테니스나, 수석(壽石), 난(蘭) 채집으로도 풀 수 있지만, 그것은 임시방편 밖에 안돼요. 결국은 어디에 가서 해결해야 되요? 하나님 앞에 가서 해결해야 되요. 우리가 답을 다 알고 있잖아요? 안 해서 그렇지... 얼굴들 보니까 stress를 너무 많이 받고 있어요. 필요 없는 군살들이 많이 찐 것은 이게 stress 받은 거예요. 풀어야 되요, 풀어.
Joke 하나 할게요. 어떤 아내가 전화기를 잡으면 서너 시간은 풀어야 한대요. 그게 그 사람이 stress 푸는 방법이에요. 남편도 그것을 인정해 주는 거예요. 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30분 만에 끊더라고요. 남편이 너무 놀라가지고 “당신 거듭났네... 어떻게 30분만에 전화를 끊었어?” 그랬더니, 이 여자가 시~~~익 웃으면서 “잘못 걸려온 전화였어...”
우리는 무엇으로 풀어요? 이거 딱 보니까 대별이 되잖아요.
민수기 11:1에 보니까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그랬어요. 이 원망을 하나님 앞에서 했으면 문제가 안 돼요. 사람 앞에서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신데 가서 풀면 되요. 민수기 14:27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민수기 21:5-6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하여튼 원망, 불평,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싫어하시는 거예요. 너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나를 인정하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거예요. 그것을. 좋은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아뢰고, 궂은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토설하고... 이것이 신앙이란 말이에요.
구약에 나타난 세례의 상징들
고전 10:1-2 출애급 시 홍해 사건
벧전 3:20-21 노아 홍수
골 2:11-15 할례
신약에서의 세례의 중요성
막 16:16
행 2:38
행 22:16
1) 구약의 나타난 세례의 상징들, 찾아봅시다.
고린도전서 10:1-2 바울이 홍해를 건넌 사건을 세례라고 그랬어요.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구름은 광야를 말합니다. 광야 40년이 세례 받는 기간이라는 거예요. 자기를 내려놓는 기간, 어제 개념으로 말하면 신발 벗는 기간이에요. 여기서 바다는 뭘 말하겠어요? 홍해지요, 홍해를 걷는 것이 뭐라고요? 세례 때문이라는 거예요.
베드로전서 3:20-21 보통 우리가 기도할 때는 노아의 방주를 구원의 방주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 안에 들어오면 구원받고, 안에 못 들어오면 구원받지 못했다고 해서, 많은 신앙인들이 구원의 방주라고 그러는데, 베드로는 구원의 방주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물세례를 말하죠. 20절에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 여덟 명이라는 거지요.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이 피에 의해서 구원을 얻어요, 물에 의해서 구원을 얻어요? 피에 의해 구원을 얻지요. 그럼 여기서 말하는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라는 말은 무얼 말합니까? 세례예요, 세례.
우리는 피에 의해서 얻은 구원만 아니라, 물에 의해서 구원을 얻어야 되요. 피는 누구를 죽였어요? 예수님을 죽이고, 물은 누구를 죽여요? 나를 죽여요. 이 복음을 가져야 된다니까요. 안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내가 복음’을 써요. ‘내가 복음’...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다음으로 ‘내가 복음’이 나온대요. 자기가 챙겨버리고 자기 왕국 만들고...
물에 의한 구원, 자기를 내려놓는 거지요. 그래서 베드로는 노아홍수 사건을 구원의 사건으로 보지 않고, 세례 사건으로 봤어요.
골로새서 2:11-15 할례, 이것도 역시 세례에 대한 상징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세례에 대한 예표가 세 가지가 나오는데, 하나는 홍해를 건너는 사건, 또 하나는 노아 홍수 사건, 또 하나는 할례 사건이에요.
2) 신약시대에서도 세례는 굉장히 중요했어요.
마가복음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이렇게 표현하지 않고,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② 또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아라.”그랬어요.
사도행전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어라.”
초대교회 때에는 믿음과 세례를 동일시했어요. 지금은 믿고 일 년이 있어야 세례를 줍니다. 왜? 그동안 교회 역사를 통해 보니까, 가짜들이 많거든요. 초대교회 때는 가짜가 없었어요. 왜 가짜가 없었느냐? 고린도전서 12:3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당시에 로마시대 때 Christian인지, non-Christian인지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로마 병정들이 길 가다가 아무나 붙잡아서 나오라고 그래가지고, “너 예수를 저주해라.” 그래요. 그 다음에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 “예수님 성화 갖다놓고 침 뱉고, 발로 밟고 지나가라.” 그러지요. 이렇게 하여 가짜인지, 진짜인지 식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가이사가 주(主)다.”라고 고백하게 해요. “예수는 저주하고 가이사는 내 주님이다.”라고 고백하게 해요. 예수 믿는 사람은 그 두 가지를 못해요. 예수님을 저주하지도 못 하고, 가이사를 주(主)라고 고백도 못해요. 그러면 거기서 뭐하느냐? “예수님만 내 주님입니다.”라고 고백하다는 거예요. 그 죽음의 자리에서... 그러면 끌려가는 거예요. 사자 밥이 되고, 순교자가 되는 거예요. 검투사들이 막 죽이고 그랬잖아요? ‘벤허’ 이런 영화에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초대교회 10대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할 때는 가짜 신자가 없었어요. 거짓말로 고백할 수가 없거든요. 왜요? 신앙이 없는 사람이 “예수님만이 나의 주님입니다.”라고 고백하면 당장 어떻게 되요? 사자 밥이 되는데, 누가 거짓을 하겠어요. 가짜 고백이 없었기 때문에 믿는 거나, 세례 받는 거나, 나는 오늘 예수님 믿고 바로 내 인생을 포기합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을 드린다는 말을 다 정직하게 한다 말이에요. 그때는 가짜가 없었어요.
평화시대가 되니까, 가짜들이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왜? 자기 고백해보아도 손해 보는 것도 없고,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별도 잘 안 되고, 그러니까 다 저마다 ‘주여. 주여’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잘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가 얻은 지혜가 뭐냐 하면? “믿는다고 해도 일 년 동안 검증을 해보자. 그래서 진짜로 믿는 사람이면 세례주고, 입으로 믿는 사람은 세례주지 말자.” 해가지고, 교회가 역사적으로 일 년 동안의 interval을 둔 거예요.
원칙적으로는 예수님을 믿겠다고 고백하는 순간, 어떻게 해요? 세례를 주는 거예요. 빌립도 사도행전 8장에서 에디오피아 내시가 와서 이사야 말씀을 듣고 어린 양, 속죄양에 대한 교리를 듣고 나서 어떻게 “예수를 믿겠느냐?”고 그랬더니, 믿겠다고 하니 그 자리에서 바로 세례를 주었잖아요(행 8:26-39)? 또 간수도 역시 마찬가지, 바울이 바로 세례를 주었잖아요(행 16:25-34)? 이렇게... 현대사회로 들어오면서 우리가 지혜를 얻은 것이지, 원칙은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하나였다는 거지요. 지금은 믿고 세례를 안 받는 사람이 많아요. 세례의식은 행하는데, 자기를 안 내려놓는다는 거예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요, 부부 싸움할 때 당신이 양보하라고 하면, 쉽게 양보하던가요? 목사님 사모님도 양보 안하더라고요.
“세례 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받았으면, 목사님이 집사님 부부 싸움할 때, 잘했어도 그냥 잘못했다고 그래요. 그랬다면 그렇게 해야 되요, 안 해야 되요? 왜 해야 되요? 그렇지요. 세례 받을 때 약속했잖아요. 이것이 약속이라니까요. 그러면 이 분의 삶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셔요.
그런데 약속은, 세례 받아 놓고는 계속 자기 주장하는 거예요, 그냥. “저 인간이 나쁜 인간이라고...” 상담을 못해, 바쁜데... 다섯 시간씩 어떻게 상담을 합니까? 기도할 뿐이에요. 하나님 난 시간 없어요. 부부 상담 못해주니까. 보통 부부 상담하면 한 쪽에 세 시간, 이쪽에도 세 시간 주어야 되요. 또 뭐라고 그런 줄 알아요? 남편한테는 세 시간 주고, 왜 나한테는 한 시간 주느냐고 이런단 말이에요. 그것도 여자들이...
부부 상담은 이게... 목사는 시간으로 사는데... 해결만 하면 되잖아요? 꼭 굳이 다 들어봐야 할 필요 뭐 있어요? 들어봤자 뻔한 얘긴데... 그래서 교회 프로그램 만들어 놓고, 프로그램에 집어넣는 거예요.
특별히 세례교육을 이렇게 미리 시켜놓아요. 세례 받을 때 정확하게 가르쳐줘요. 출애급기 12장, 13장, 14장 가르쳐준 다음에 광야가 뭐냐? 세례교육 때 다 가르쳐줘요. 이것만 orientation 잘 되어 놓으면, 그 다음부터 교인들 시험들 이유가 없어요. 광야 공부해 보세요. 이제. 정확하게 답이 다 나오거든요. 모르니까 헷갈리는 짓하고, 하나님 대적하고, 목사 대적하고 그러지요. 원리를 딱 알고 나면 대적할 이유가 없어요. 죽을래, 살래? 그건데... 죽을 짓을 왜 합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안하지요. 그래서 세례교육이 중요합니다.
문제가 생겼어요. “집사님 세례 받았어요?” “예. 받았습니다.” “세례 받는 것이 뭐에요?” “자기를 내려놓는 겁니다.” “지금 내려놓을 수 있겠어요?” “몇 년 전에 세례 받으셨죠?” “10년 되었습니다.” “그러면 10년 동안 내공이 뛰어나겠네요? 훈련 많이 받으셨네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내가 내려놓아야지요.” “그럼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상담시간 많이 필요해요? 성경공부 해 놓으면 시간을 save해요. 복잡하게 설득할 필요 없어요. 진리대로 말하고 못 받아들이면 할 수 없는 거지요. 그래서 따로 무슨 개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공부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은혜 받고 나면 그 다음 어떻게 해야 되지요? 피 발라야지요. 피 바른 다음에 어떻게 해야 되지요? 세례 받아야지요. 세례가 뭐지요?
예, 첫 것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요, 둘째 죄 안 짓는 생활로 사는 것이고요.
셋째는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거예요. 아이고 공부 잘 하셨습니다. 세례 드릴게요. 세례 줘요. 그리고 광야가 왔어요. 시험 들어가지고 난리를 쳐요. 세례 받으셨습니까? 이 문제가 뭐 같아요? 성부 하나님과 연결된 것 같아요, 성자 예수님과 연결된 것 같아요, 성령님과 연결 된 것 같아요? 딱 답이 나와요. 광야가... 쉬워요, 어려워요? 우리가 어렵게 목회하는 이유가 뭐 같아요? 성경을 모르니까 그래요. 예수님도 안하신 일을 우리가 파고 들어가니까 얼마나 어려워요? 무기도 없이 손가락 가지고 땅굴 파는 것과 똑같지요. 인간의 강팍한 마음이 어떻게 녹습니까? 미리 말씀으로 기경(起耕)해 놓고, 그 다음에 손으로 살살살 헤비면서 여기 있잖느냐고... 여기, 여기, 세례 여기 있지요? 보세요, 그러고... 쉬워요. 말씀으로 했는데도 말을 안 듣는다. 그럼 나도 포기해야지요. 뭐. 말씀이 해결 못해주는데, 목사가 그걸 어떻게 해결합니까? 뭐 설득시키고 꼬실라이해봐야, 그것은 얼마 안 갑니다. 해결은 뭐가 해야 되요? 말씀이 해야 되요. 그래서 말씀교육이 중요한 거예요.
우리 주와 말씀께 여러분을 부탁합니다. 바울이 그랬어요. 말씀께 여러분을 부탁한다고. 우리가 목회를 할 때 말씀에게 교회를 부탁해야 합니다. 목사가 자기주장과 철학 가지고 하면 안 되요. 언제든지 나는 종으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되요.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내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라고 항상 종의 자세로 있는 거예요. 목회가 보람 있어요. 들이받는 사람이 없어서 보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칠고 힘들어도 가는 길이 보이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이 검증을 해 주시고, 말씀이 나를 증거해주고, 내가 진리로 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이 내게 보여주고 있고, 성령이 입증해 주시고, 하나님이 나의 사역에 대해서 뒷받침해 주시기 때문에 목회만큼 즐거운 것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장을 해 주시는데... 우리 좀 그런 즐거운 목회를 하십시다. 얼굴 좀 활짝 펴시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처럼, 이렇게 환희 웃으시면서... 한 번 따라해 봅시다.
“산다는 것은 황홀(恍惚)한 것입니다.”
세 분에게 한 번 얘기를 해보세요.
자, 목사님들께서 세례를 주실 때 어떻게 주십니까? 세례를 어떻게 주셔요? “이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물을 찍어서 이렇게... 침례하시는 분, 손을 높이 들어보세요. 침례교입니까? 오순절... 또 어디세요? 또 침례하시는 분들... 어디세요? 감리교, 감리교도 침례합니까? 자유입니까? 우리 장로교도 수련회 가서 한번 침례 연습하는 것 괜찮아요. 물속에 그냥 확 집어넣는 거예요. “입 다물어 코 잡아.” 그래가지고 푹 집어넣고 “죽었지?” 이렇게 한번 실습시키는 거예요. 장례식도 실습하는 거예요. 관 가지고... ‘알파 프로그램’같은 데는 그런 것 있지요? 그렇게 해도 괜찮고... 하여튼 ‘죽었다, 살았다.’ 하는 개념을 입증해주는 실습들이 좀 필요해요. 러시아에 ‘아나토리’라는 제 아우가 있어요. 어느 날 저한테 사진을 한 장 주었어요. 뭐냐 그랬더니, 영화 30도에서 얼음을 깨고 침례를 주는 장면이에요.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형님! 세례는 이렇게 주어야 됩니다.” 그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얼음물 속에서 세례를 받는다는 거예요. 얼음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되니까... 그리고 또 목사가 그걸 보여주니까요. 이게 권위가 있다는 거예요. “야 ~~~ 부럽다.”
내가 그때 느낀 것이 있었어요. 이렇게 침례를 받고 나면 느낌이 새롭겠구나...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라는 개념이 훨씬 더... 그 성부 성자 성령이 뭐예요? 뭘 결단한다는 거예요?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는 내가 뭘 드린다는 것입니까? 으뜸을 드리는 것, 성자 예수님에 대해서는 죄를 내려놓는 것, 성령님에 대해서는 “지금부터는 내가 인도하심을 복종하겠습니다.” 이 약속만 성실하게 지키면, 그 다음부터는 인생의 문제가 다 풀립니다. 이것은 세례언약이니까...
13-18장 성화의 진행
1) 유월절 : 의 변화
- 심판의 해결 - 어린양이 저주를 받음으로 신분적으로 아들이 됨
2) 애급을 떠남 : 생활의 변화
- 옛 생활과의 결별, 죄와의 결별 - 자유, 권리의 누림
3) 홍해 : 의 변화
- 과거 - 바로를 의존하고 예배하고 두려워했다.
- 홍해 이후 -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예배함
4) 광야 :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 새로운 양식
• 세례 - 옛 사람과 새 사람의 경계선
• 광야 - 새 사람의 생활훈련 - 시내산, 성막으로 이끔
• 성막 - 하나님과 하며 하나님의 정신, 하나님의 철학, 하나님의 영으로 적셔짐
자! 13~18장 성화의 진행인데, 우리가 어떻게 변화를 경험하느냐? 구원은 결국은 sanctification, 성화의 여정(旅程)인데,
1) 유월절 때에는 신분이 변화되어요. 우리가 신분적으로 아들이 됨. 애급에서 유월절을 경험하잖아요? 종에서 아들이 되었다는 이 신분의 변화만으로는 하나님이 만족하지 않아요. 문화생활을 바꾸기를 원해요.
2) 그것은 애급을 떠나는 거예요. 살았던 삶의 방식을 내려놓는 거예요. 문화생활의 변화입니다. 옛 생활과의 결별, 죄와 결별 - 자유, 권리의 누림.
문제가 있는 표현이지만, 그래도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감옥에서 회심한 사람들이 나와 가지고 얼마나 견디던가요? 감옥에서 나와 회심하고 나와 가지고 "이제 내가 조폭 다 내려놓고 새로운 삶이 되었다.”고 간증하고 다니는데. 일 년짜리가 없어요. 일 년 후면 다시 다 돌아가 버려요. 문제가 뭐예요? 왜 감옥에서 회심한 것이 나오면 쓸모가 없게 될까요? 가짜 고백을 했어요? 왜 그래요? 감옥에서는 죄를 지으려고 해도 지을 것이 없어요. 그런데 죄가 득실거리는 현장에 나오니까 다시 물들어버린다는 거예요. 문화에 대한 죄, 문화... 그 사람 죄 안 짓게 하기 위해서 어디에 보내야 해요? 다시 감옥에 보내야 되지요. 그러면 10년 동안 도둑질 한 번도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삶의 ground가 중요한 거예요. 예수님 믿고 나서 옛날 친구 만나고, 옛날 즐겼던 문화 좇아가고 그러면 100% 돌아갑니다. 100%...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굉장히 의미로운 거예요. 그게... 하나님은 떠나라는 거예요. “네가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는 이 땅, 이 문화권을 떠나라.”는 거예요. 롯이 망한 이유는 문화 때문에 망한 거예요. 타락한 문화에 들어가니까... 목사가 성경은 안 보고 맨 날 텔레비전 1번부터 150번 채널 있는 것 사다 놓고 월 회비까지 주면서, 토요일 밤에 설교 준비 stress 받아가지고 채널 왔다가 하면서 국제 프로까지 다 보고 그냥... 그래서 은혜로운 말씀이 나와요?
어떤 분이 텔레비를 끊어라 그랬더니 그 다음 날 집에서 난리가 났어요. 도끼 가져와서 줄을 끊어버린 거예요. 목사님만 끊으면 되지, 왜 애들까지 못 보게 해요? 끊으세요. 필요한 것 봐야죠? 그러나 무작위로 그냥, 그것은 텔레비전은 세상의 문화가 그냥 물밀듯 들어오는 거거든요. 텔레비전 앞에서 구별된 생활을 못하는 사람은 문화생활을 정리하지 못한 사람이에요. 문화생활을 정리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게... 어떻게 우리의 문화를 구별됨이 있게 하느냐? 하나님은 exodus하라, 나가라는 거예요, “나가라...” 문화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보고 듣는 것으로 심령이 상합니다. 망가져요.
3) 첫째는 신분의 변화고, 둘째는 문화생활의 변화고, 셋째는 주권의 변화가 옵니다. 홍해를 건널 때 주인이 바꿔져요. 홍해를 건널 때 하나님이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너희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선포하셨어요. 그러고는 지금까지 주인 노릇했던 바로는 그 홍해에 수장(水葬)되고,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고 따랐던 백성들은 살아나게 되요.
그래서 홍해를 건너면서, 홍해가 뭐라고요? 세례지요. 세례. 세례를 받으면서, 홍해를 건너면서 바로가 죽고 이제 비로소 “하나님이 나의 주인입니다.”라는 고백이 사실적인 고백이 되는 거예요. 홍해를 건너기 전까지는 여전히 바로가 그들의 왕이에요. 홍해를 건넜을 때 비로소 바로가 수장(水葬)되고 하나님이 나의 왕이라는 것이 확인된 거예요.
과거에는 바로를 의존하고 예배하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홍해 이후에는 바로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예배한다.
4) 넷째 변화는 광야입니다. 이제는 옛 구조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새로운 삶, 새로운 양식. 그래서 광야 생활은 예배생활... 하나님께 계속 집중하는 훈련하는 거예요. 때문에 옛 사람과 새 사람의 경계선입니다.
① 세례 받지 않으면 구원 받았다 해도 옛 생활 가운데 있습니다. 세례 받으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지지요?
② 광야는 뭐냐? 새롭게 변화된 사람이 생활 훈련하는 거예요. 몸에 익을 때까지 계속... 시내산 성막으로 이끄시면서 하나님으로 계속 적셔질 수 있도록 하나님으로 교육되어지고, 의식화 되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계속 인도하셔요.
③ 성막, 하나님과 동거하며, 하나님의 정신, 하나님의 철학, 하나님의 영으로 적셔짐.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따르기만 해도 되는데, 계속 따라가면서 딴 주머니 찬 거예요. “그 때가 좋았는데 …” 그러고 헷갈리는 소리하고 있고, 그래서 몸뚱아리는 따라가는데 영적 변화가 없는 거예요.
※ 14장 : 홍해를 건너는 영적 전략
1) 자기 자리에 서라. - (13a)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차브’(bXeyָ) : 자리를 잡다. 위치를 잡다. 서다. stand still (KJV), stand firm (NIV)
자기 자리에 서라. 감정에 요동하지 말라. 자신의 진리를 지켜라. 그 자리에 꿋꿋이 서 있어라.
• 자기 자리를 이탈하고 저질렀던 이적행위들 (11-12)
- 하나님을 대적함. 지도자를 대적함. 적을 두려워함.
과거로 회귀하려 함.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마음이 흔들리게 함
2) 보라. - (13b)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라아’(האָרָ) : 바라보다. 주목하여 보다. 분별하다.
< 문제가 오면 우리는 … >
① 적에게 집중함 - 바로의 군대
② 환경에 집중함 - 넘실대는 홍해의 물결
③ 원망 대상 찾음 - 지도자, 주변의 사람
④ 자신에게 집중 - 문제 앞에 떨고 있는 연약한 자신
- 힘을 빼는 것이 세례
- 말씀과 기도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훈련 (감사 조건을 찾아라.)
- 모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기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 예수님은 저들이 궤계로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의논함을 아셨으나(마 26:4),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도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눅 22:46) 하셨다.
3) 입을 다물어라. - (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수 6:10)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라쉬’ (vyrIj) - 가만히 있다, hold your peace (KJV), only to be still (NIV)
4) 찬양, 선포하라. - (15:1)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 출애급기 강의 (9) >
광야를 통과하는 비결
1. (15장) 기대가 무너져 일이 꼬일 때
- 십자가를 적용하라. 하나님의 기대를 맞춰라.
2. (16장) 경제문제가 괴롭힐 때
- 하늘 양식,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라.
3. (17장a) 목마를 때
- 반석으로 가서 생수를 경험하라.
4. (17장b) 내가 가는 길을 사람이 방해할 때
- 사람을 얻어 함께 기도하라.
5. (18장) 지도자의 한계가 드러날 때
- 몸을 세우기 위하여 지도자를 조력하라.
자. 이제 광야에 들어왔어요. 첫째 광야는 수르 광야, 마라의 쓴 물이죠? 이것이 신 광야에요. 여기에 와서 양식이 떨어졌어요. 지금 여기 있는 나무들이 있죠? 이것이 싯딤나무예요. 아카시아나무라고 그러죠? 조그만 잡목같이 생겼지요? 자. 광야가 뭐냐?
(1) 15장. 수르광야에 들어갔는데 사흘 길쯤 물이 없었고 마라의 물을 만났을 때 마시려고 했더니, 쓴물이었고, 기대가 무너져 일이 꼬일 때, “물이다.” 했는데, 내가 기대하는 물이 아니었어요. 그럴 때는 나무를 넣으라고 했어요. 워런 위어스비는 이것을 십자가라고 했어요. 십자가를 적용하라. 회개하라. 예수님 앞에 가서 “잘못했습니다.” 십자가. 내 죄를 내려놓는 것이에요.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네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급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
결국 원칙 중심의 사람으로 가는 것이에요.
십자가 앞에 가서 내 죄를 자백하고 원칙 중심으로 가려고 애쓰는 마음.
(2) 16장은 양식이 떨어져버렸어요. 경제문제가 괴롭히는 거예요. 경제는 기본이죠?
그러고는 그 다음부터 하나님이 양식을 주시겠데요. 하늘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라. “빵은 내가 준다. 내가 너의 양식이다. 내가 너의 음료다.” 바로가 주었던 빵이 아니라, 애급에서 가지고 나온 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빵, 우리는 이것을 뭐라고 해요? 말씀. 언약, 약속이라고 하죠. 우리는 광야를 살면서 약속을 붙잡고 사는 것이에요. 현장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희한한 것은 소망이라는 것은 바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항상 소망은 기다려야 되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라고 했잖아요? 소망이 성취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려요.
이 세상에 항상 있어야 할 것 세 가지는 뭐라고 했어요?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했지요? 간단한 거예요. 신뢰하는 거예요. 그게 믿음이잖아요? 두 남녀가 만났어요. 신뢰해야 해요. 믿음이 필요하죠? 소망은 뭐에요? 그에 대한 기대에요. 희망을 붙잡는 거예요.
셋째가 뭐에요? 사랑. 이 세 가지만 있으면 그를 신뢰하고, 그에 대한 기대가 있고, 그를 뜨겁게 사랑하면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사랑하는 그대만 보입니다.” 그래요.
그러면 지하실에서 라면 끓여먹고 살아도 행복해요. 그런데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산해진미를 먹고, 대궐 같은 집에서 살아도 둘이 이혼해요. 맞지요?
항상 있어야 할 것 세 가지가 뭐에요? 신뢰, 소망 곧 그를 향한 기대, 그에 대한 뜨거운 애정, 사랑. 하나님께 대한 것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을 기다려야 해요. 광야를 지날 때도 기다려야 되고, 빨리 응답이 안 될 때도 기다려야 되고, 그때 이 믿음과 소망을 강화시켜주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사랑이에요. 그분을 뜨겁게 사랑하면 한없는 세월을 기다릴 수 있어요. 한없는 세월을 기다리는 거예요. 복음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본을 무너뜨리면서 너의 인생의 기본이 말씀이 되어야 하고 나의 철학이 되어야 하고, 나의 약속이 되어야 한다. 돈이 너의 인생의 기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40년 동안 훈련시켰어요. 만나를 40년 동안 주셨잖아요? 보통 어려운 게 아닌 것 같아요.
진짜 돈 욕심 없는 목사가 되어야 하고. 돈이 없어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고백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얼굴을 보면 돈 떨어진 게 보인다니까요. 너무 막 힘들어하니까. 돈 떨어졌구나, 쌀 떨어졌구나. 그냥 알아버려요, 그냥. 그러면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무얼 믿고 살아요? 쌀을 믿고 살더라 이거예요. 그거를 하나님이 그것을 지금 real하게 보여주신 거예요. “너희가 날 믿고 살았냐? 빵 믿고 살았지.” 하나님을 믿고 살면 그날분만 주어도 전혀 문제가 없어요. 왜? 하나님이 살아 계시잖아요? 내일 아침 줄 것 같아요, 안 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인간들 못 믿어. 그것을. “아니 한꺼번에 일 년 분 주세요.” 현대 교인들이 지금 그러고 있어요.
10년분, 내 대에서만이 아니라, 내 후손 대에도 먹을 것을 쌓아놓고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祝福)이라고 그래요. 언제 쌓아놓고 살 만큼 주시느냐? 가나안에 들어간 다음이고, 광야에서는 그날 분만 주세요. 왜요? 그러면 그걸 의존해버리니까.
목사님들 가운데 경제 문제가 너무 어려운 분들은 “아직 광야가 안 끝났나 보네.”라고 하면 되요. 내가 그 문제 때문에 좌지우지 안하고 정말 하나님의 약속으로 살면 경제 문제 가지고 힘들게 하시지 않아요. 훈련이 이미 이수되어 버렸는데, 그것 가지고 또 시험 봐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pass해 버렸는데... 여러분 경제문제 다 pass하셨어요?
야! 이게 말은 쉽게 16장 지나가지, 이거 정말 40년 걸리는 거예요. 정말. 피눈물이 난다? 피가 마른다. 피가 마른다. 야! 말이 쉽지 이게.... 진짜로 돈이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붙잡기까지에는 “야! 그렇구나. 이게 원리구나.” 결국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사는 것인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가 뭘로 산다고 했어요? 사랑으로 산다고 했지요. 우리 크리스천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약속, 말씀으로 산다. 너 하나님 신뢰하지? 예 하나님 신뢰합니다. 너 하나님 기대하지? 예 기대합니다. 너 하나님 사랑하지? 사랑합니다. O.K. 그러면 됐어.
믿음, 소망, 사랑, 다 되었잖아? 뭘 걱정해? O.K. 갑니다. 돈 없어도 갈 수 있어요. 그런데 말은 하나님 신뢰하고 나는 말씀 의지한다고 하면서, 돈 떨어지면 가슴이 철렁하고...
그것을 극복하기까지는 오래 걸린다니까요. 돈 가진 사람이 오면 이렇게 고개가 숙여지고.. 그거 아니잖아요? 가난한 사람이건, 여유 있는 사람이건 똑 같은 영혼으로 대할 수 있는... 진짜로 목사가 돈에 휘둘리지 않고... 조지 뮬러(George Müller, 1805-1898)가 5만 번 기도응답 받았지요? 그건 다 아시지요? 그건 별로 훌륭한 것 아니에요. 더 훌륭한 건 뭔지 알아요? 고아원 사업하면서 단 한 번도 사람에게 구걸하지 않았어요. 단 한 번도 사람에게 돈 떨어졌다고, 애들에게 양식 먹여야 하니까 돈 달라고 해보지 않았어요.
“진짜로 돈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라고 고백하면요, 나보다 누가 더 성가셔요. 그렇게 해야 되요. 우리 애가 용돈을 달라고 하지 않아요. 그러면 내가 걱정이 되요. “너 용돈 안 떨어졌냐?” “나 돈 필요 없어요. 아빠가 돈 있잖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너는 돈을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기초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너는 신뢰하고 있구나.”라고 하나님이 감동 받으실 때까지는 40년 계속 광야가 있어요.
목사가 돈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 않잖아요? 내가 지금 너무 어려운 일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양식은 하나님이 공급하신다. 하나님의 약속 말씀이 내 음식이다. 나는 그 말씀을 먹으면 힘이 됩니다. 우리기 맛있는 음식 먹을 때 힘을 얻잖아요? 그런 것처럼 정말 말씀으로 힘을 얻어야 해요. 이번 세미나 끝나고 갈 때에는 여러분들은 배가 불러 가지고 가야 해요. 무슨 방법론, 무슨 도구 같은 것 말고, “진짜로 나는 배가 부르다. 나는 부자다. 나는 자신 있다.” 이런 풍요로움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니까요.
“하나님이 나의 양식이다.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런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세상을 정복할 수 있어요.
모세처럼 탁월한 지도자도 이 훈련을 몇 년 시키셨어요? 40년 시키셨어요.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훈련시켰어도, 이 훈련이 결코 쉬운 훈련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 부분에 대하여는 깊이 묵상하세요. 정말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으로 살겠다. 어디 가서 사례 받지 않고 일할 수 있고, 사례 때문에 교회 옮겨가지 않고, 부흥회 인도하고 내가 사례 받은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이런 것들, 정말 우리가 초월해야 해요.
품꾼은 여호와의 유월절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셨어요. 돈 받고 일하는 사람, 돈 때문에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유월절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셨어요, 장사꾼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성직을 가지고 거래해요. 이런 것을 너무 real하게 말하면 우리가 너무 깊이 상처가 되니까 더는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것 때문에 얼마나 개탄했는지 몰라요. 목사 장사꾼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 경제를 빼앗아가 버려요. 양식 떨어지게 만드세요. 그리고는 그날분의 양식만 주세요. 그날 분의 양식만. 처음엔 돈을 보다가 나중엔 하나님을 보기 시작해요. 어차피 양식은 하늘로부터 오잖아요? 훈련시키시는 거예요. “양식은 내가 공급한다.” 그러시다가 “내가 양식이다. 너는 내 약속으로만 살 수 있느냐?” “예. 주님의 말씀은 나의 양식입니다. 내가 주님의 말씀을 정금보다도 더 사모하고, 주님의 말씀을 송이꿀보다도 더 달게 음식으로 취하고 있습니다.” “O.K. 내가 너를 쉬게 한다.” 그러고는 맡기시는 거예요. 나라를 맡기시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를 빙자해서 착복하는 사람도 있어요.
(3) 17장(a). 목이 마를 때.
르비딤에 갔을 때에 목이 말랐어요. 목이 마를 때 반석에게 가서 반석을 치라고 하셨어요. 생수가 터졌어요. 반석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고난당하심으로 성령이 오셨어요.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이 오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인생이 목이 마르면 반석인 그리스도께 가서 knock해야 해요. “내가 목이 마릅니다.” knock하면 생수를 주셔요. 기도하면, 구하면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어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에요? 성령.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기도하는 자에게!
인생의 목이 마르고, 목회에 목이 마를 때엔 기도합시다. 생수를 경험합시다. “생수의 강이 네 배에서 흐르리라.” 그냥 입에서 갈증을 해갈시키는 그런 정도의 물이 아니라, 내 입으로 마셔서 내 배를 적시고 온몸을 채우고 흘러넘치는, 그것이 엔게디의 사해까지 흘러서 죽음의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바꾸어버리는 놀라운 능력의 물, 생수의 강이에요. 거기에 열두 나무가 과실을 맺고, 어부들이 와서 고기를 잡고, 각종 물고기가 찾아와서 죽음의 바다가 생명의 바다로 바뀌는 놀라운 역사가 한 사람이 경험하는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목마르게 하세요. 하나님은 광야를 지나게 하시면서 목마르게 하십니다. 인생의 진정한 갈증은 성령이다. 경험하게 하십니다.
(4) 넷째 광야는 아말렉입니다(출 17장b). 내가 가는 길을 원수가 막아요. 사람이 내가 가는 길을 막아요. 자기하고 나하고 무슨 빚진 것도 없는데 그렇게 나를 막아요. 나를 힘들게 해요. 목회할 때도 가까운 사람, 먼 사람이 우리를 힘들게 할 때가 많이 있어요. 그럴 때 그 사람하고 맞장 뜨려고 하지 말고, 목사는 어디로 가야 해요? 모세는 어디로 올라갔어요? 산으로 올라갔어요. 산으로 올라가서 뭐했어요? 기도했어요. 기도의 동역자를 찾아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 전에는 아론과 훌의 이름이 성경에 없었어요. 모세가 사역을 시작했지만 그들이 큰 조력자가 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아말렉 사건 때 종일토록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못하게 하는 일은 아론과 훌이 했어요. 기도의 조력자! 사람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는 사람과 같이 세워가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얻지 못하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없어요.
사람 원수가 나타나 우리를 힘들게 할 때. 산에 가서 기도해야 할 사람과, 그것을 옆에서 받쳐줘야 할 사람과 현장에 나가서 직접 아말렉과 싸워야 할 사람이 있어요. 교회 안에 이런 영적 질서가 있어야 해요. 지도자는 현장에서 뛰는 사람이 아니라 배후를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개척교회 할 때는 목사가 현장에서 뛰어야 하고, 봉고 차량 운전해야 하고 새벽기도 때 차량 운행해야 하고, 금요 철야 끝나면 교인들 다 데려다 주어야 하고...
그러나 교회가 성숙하게 되면 얼른 역할을 나누어야 해요. 빨리.
어떤 교회를 갔더니 지금도 사모님이 교회 재정 장부를 갖고 있더라고요. 큰일 날 행동하지 말라고... 빨리 회계장부 넘겨주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다고요. 없으면 키워서라도 해야지요. 통장 따로, 장부 따로, 도장 따로 할지라도 맡기라고 했어요.
그거 목사가 쥐고 있으면 언젠가 시험에 듭니다. 사탄이 돈 갖고 얼마나 장난을 치는데..., 지금도 그것을 가지고, 시험거리를 가지고 있어요? 빨리 내놓으라고 했어요. 안 됩니다. 역할을 나누는 거예요. 기도해야죠. 목사는 기도해야 해요. 기도의 조력자를 찾아서 기도해야죠. 현장에서 뛸 사람에게 역할 나누어주고... 그것이 교회에요.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요. 목회는 사람하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만, 하나님과만 하는 것은 목회가 아니에요. 그것은 신앙생활이고, 목회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누구하고 해야 해요? 장로님하고 해야 하고, 권사님하고 해야 하고, 집사님하고 해야 하고... 헷갈리는 이 집사하고 해야 되요. 그러려면 그 사람을 얻어야 해요.
사람이 소중한지 모르는 사람은 목회를 못해요. 하나님만 중요한 게 아니고, 사람도 중요해요. 이 땅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끼리의 연합이거든요. 사람 소중한 걸 알아야 해요.
마지막 시험은, 광야훈련은, 18장에 가면 모세의 leadership에 한계가 드러났어요.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계속해서 일어나는 송사 문제를 해결을 못하는 거예요. 일단 하나님께서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세워서 네 역할을 나누어주라 하셨어요. 비로소 교회의 조직이 생기고, 행정 시스템이 생기고 하나님 나라의 build up, 건축이 시작되었어요.
잘 보세요. 광야를 쉽게 통과하는 비결입니다. 일이 꼬여요. 뭘 붙잡아야 되요? 십자가죠.
경제, 경제라고 하는 것은 기본이에요. foundation. 경제가 있지만, 또 여기에 가족이랄지, 인간관계랄지, 저 같은 경우에는 건강이 무너지면 아주 힘이 듭니다. 이런 것들이 인간 삶의 기본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것이 무너질 때가 와요.
정말 희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위기가 오는 거예요. 그때에는 누구에게 집중해야 해요? 하나님께.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이 양식으로 주신 말씀, 계속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해요. 보니까 나는 모세보다는 조금 부드럽더라고요. 모세는 40년, 나는 30년. 대개 센 사람은 오래 걸려요. 야곱은 진짜 센 사람이니까 120년, 130년 걸렸어요. 그래서 십자가가 중심이 되고,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성령님이 중심이 되고, 그 다음에 사람이어요, 사람, 다음에 몸, 몸, 하나님의 나라, 교회.
예수님, 하나님, 성령님, 사람, 교회, 하나님 나라.
가만히 광야를 연구해 보았더니, “아∼! 광야를 지나면서 우리가 구속사를 위해서 준비된 일꾼이 되는구나.” 모세가 80년 지나고 나서 이스라엘 앞에 탁 세웠을 때에는 이미 준비된 일꾼이었거든요. 준비된 일꾼이 뭘까를 보니까 광야를 생각해 보니까 알겠어요.
십자가 중심, 말씀 중심, 성령 중심, 사람 중심, 교회 중심.
결국 광야를 통과한 사람들은 이런 내면세계의 프레임을 딱 갖추더라고요. 이게 훈련의 목적이에요. 이리로 가더라고요, 보니까. 그러고 나서 교인들을 보니까 광야가 다 보여요. 자 봅시다. 자꾸 계획했던 일이 무너지고, 이 장사해도 안 되고, 저 장사해도 안 되고... 한 번씩 간판 올렸다 내릴 때마다 몇 천만 원, 몇 억 원씩 날아가잖아요? 그냥.
어떻게 상담해 주어야 해요? 자. 그런 분이 왔어요. “나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기도해도 응답도 없고, 나는 지금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상담을 요청해 왔을 때 어떻게 상담해줘야 해요? 그때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해요? 15장이에요. 15장.
기대가 무너져 꼬일 때, 어떻게 하라고 했어요? 15장이에요. 십자가를 적용하라고 하면 그분이 알아듣겠어요? 어떻게 해야 되요? 구체적으로 뭐라고 해야 되요?
회개를 어떻게 해야 해요? 노트 펴놓고 다 적으라고 했어요. 다 적어라. 샅샅이 찾아내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 이만큼이라도 있으면 다 찾아내서 다 적어라. 다 적게 한 다음에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소각(燒却)시켜라. “하나님. 내가 이 죄로부터 자유하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의 보혈(寶血)로 씻고 소각시켜라. 일주일 금식기도하면서 회개시키면 다 풀려버려요. 진짜로 풀립니다.
어떤 교인이 있었어요. 부도가 나 가지고 애들 친척집에 맡기고 다섯 식구가 동반 자살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아내가 성령 받은 사람이라 “그럴 수는 없다. 우리가 예수님 믿는 사람이고, 성령 체험한 사람인데 어떻게 자살할 수 있느냐?” 남편은 죽자는 거예요. 이거 창피해서 못 살겠고, 자식들을 어떻게 먹여 살리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아내가 “우리가 죽으려고 생각했으면 뭘 못하겠느냐? 우리가 죽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께 가서 부르짖기라도 하자.” 그리고는 자식들 친척집에 맡기고 기도원에 올라갔어요. 그때만 해도 ‘금식기도!’하면 오산리로 가잖아요? 오산리로 가서 21일, 다니엘의 세 이레 작정기도를 생각하고 21일 기도하기로 했어요.
올라갈 때 주문을 했죠. 기도를 하는데 발가벗겨진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 다 고백해라. 다. 떼굴떼굴 구르면서... 한 삼일은 힘들더래요. 4일째부터 회개의 영이 온다고 하잖아요? 성령께서 회개를 도와주시면은요. 술술술술 풀리기 시작해요. 진짜로 죄가 더러운 게 보이고, 자기가 너무 혐오스럽고, 진짜로 죄에 대한 아픈 마음이 와요. 떼굴떼굴 구르면서...
7일째 지나고 나니까 눈이 밝아지더래요. 죄를 고백하고 나면 영적인 세계가 밝아져요. 철저히 고백하고 나면... 앉아서 하면 안 돼요.
일주일이 넘었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사람이 찾아왔어요. 30년 전에 그때 돈 300만원을 친구에게 빌려주었어요. 서류도 안 받고. 워낙 가까운 친구였으니까. 그런데 돈만 먹고 미국으로 도망쳐버렸어요. “츳. 돈 잃고, 사람 잃고... 참 슬프다.” 그러면서 다 잊어버렸어요. 이 친구가 미국으로 가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어요. 회개하고,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기업을 일구었어요.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었어요. 큰복을 받고나니까 자기 친구가 생각나는 거예요. 자기를 믿고 문서 한 장 안 받고 돈을 빌려주었는데 간다는 말 한 마디도 않고 떠나왔는데, 회개 기도할 때 어찌 생각이 안 났겠어요? 하나님 앞에 “하나님. 죄송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찾아가라.”
와서 수소문했는데 없어져버린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이 금식기도 갔다는 얘기를 해준 거예요. 그때만 해도 금식기도 하면 어디로 가야 해요? 그때는 강남금식기도원도 없었어요. 오산리 금식기도원에 간 거예요. 거기 가서 찾으면 뻔한 거예요. 본당 가서 없으면, 기도굴 다 뒤지면 되요. 그래서 이분이 와서 아예 일삼고, 기도굴마다 앞에 가서 두 부부가 어디 있는가 찾은 거예요. 그때가 7일 금식기도 끝났을 때에요. 21일 작정하고 기도하는데... 철저하게 회개하고 떼굴떼굴 구르면서....
그분들 이야기에요. 금식기도하고 7일 지나면 눈이 밝아지기 시작하더래요. 자기가 보이고, 하나님이 보이고, 영적인 세계가 보이더래요. 왜 자기들이 부도가 났는지, 왜 실패했는지 깨달아지더래요. 그래서 “정말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면서 싹싹 빌면서 기도를 한 거예요.
그런데 30년 만에 자기 돈 떼어먹고 도망친 친구가 찾아온 거예요. 와 가지고 금식하는 중에 죽~ 이야기를 들으니까 기가 막힌 게 아닙니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수퍼를 사주었어요. “이 돈 30년 복리로 쳐서 다 계산하고, 네가 나를 신뢰해주었고, 내 사업자금을 대주었기 때문에 나도 네 사업자금을 대주겠다.” 수퍼를 사 주었어요. 수퍼.. 수퍼마켓. 잘 살았어요. 뭐가 해결된 거예요? 뭐가 이걸 만든 거예요? 누가 움직인 거예요?
죄가 들어오면 기분 나빠요, 불편해져요. 관계가. 죄가 들어오면...
“내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함도 아니요, 내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함도 아니라” 너희와 나 사이에 뭐가 있다? “죄가 있다”(사 59:1-2). 죄가 있는 거예요.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열심히 신앙생활해도 하나님을 불편하게 하는 죄가 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도와주실 수 있겠어요? 싹싹 씻어내는 거예요. “어차피 죽을 건데,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하자.”하면서 두 부부가 난리법석을 친 거예요. 노트에다 막 쓰고, 눈물 콧물 흘려가면서... 완전히 청소를 했더니 누가 감동하셔요? 하나님이... 저 멀리 미국 가서 30년 전에 기억도 못하는 친구의 마음을 움직여 가지고, “가라. 빨리 가라. 내 아들이 지금 힘들어하고 있다. 빨리 가서 네가 친구 사업 밑천 대줘라.” 사람이 계획할 수 있어요? 누가 해요? 이런 영적 원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이에요. 십자가만 들어가면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요. intimate, 친밀한 관계가 된다니까요. 내가 염려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염려해 주시는 놀라운 인생을 살게 되요.
기대가 무너질 때, 일이 꼬일 때, 어떻게 하라? 십자가를 적용하라.
근본이 무너질 때, 나의 foundation, 내 기초가 무너질 때 어떻게 하라? 하나님께 집중하라.
인생이 목마르고, 목회가 목마르고, 뭐를 해도 만족이 없을 때, 성령님께 집중하라. 반석이신 그리스도께 집중하라.
자꾸 사람이 와서 나를 힘들게 하고, 아말렉 같은 사람이 나를 공격할 때에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동역자를 찾아라. partnership을 가지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라.
leadership에 문제가 있다고 교인들이 계속 이야기하고, 목사님이 이렇다, 우리 교회에 문제가 있다고 할 때에는 빨리 leadership을 역할을 나누어서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을 찾아서 그들과 같이 교회를 build up하라.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가는 거예요. 광야만 정직하게 통과해도, 멋∼있는 모세 같은 지도자가 나옵니다.
목사님만 멋있는 지도자가 아니라, 이런 광야의 의미를 알고 교인들을 훈련시키면 그 교인들이 다 모세와 똑같은 leadership을 가지고 백성들을 책임지면서 같이 가는 거예요. 우리가 같이 이루어나가는 하나님의 나라!
그러나 이런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왕국 짓다가 모래성 무너지듯이 또 무너지고, 또 자기 성, 자기 왕국 짓다가 또 무너지고, 슬픈 인생을 살다가 인생을 마친 사람들, 하나님이 왕권 다 빼앗아가 버리고, 말을 해도 능력도 없고,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목사가 말을 해도 권세가 없는 거예요. 말에. 기도해도 응답도 없고...이미 왕권이 사라져버렸거든요. 제사장권을 하나님이 가져가 버렸어요.
엘리가 타락하니까 ‘이가봇!’ 그랬어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거예요(삼상 4:21).
오늘 주의 종들 가운데, 크리스천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예배를 드려도 감동이 없고, 말씀을 들어도 뜨겁지 않고, 기도를 해도 응답 받을 자신감도 없고, 찬양을 해도 눈물도 없고... 그런 dry한 예배생활을 하면서 “나는 구원받은 백성이다.” 구원은 받았지요. 예수 믿기 때문에, 그러나 이미 성령도 떠나버리고 하나님의 영광도 떠나버리고, dry한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경험하는 광야만 정직하게 우리가 몸으로 안아도 하나님께서 왜 이 고난을 내게 주셨을까? 정직하게 우리가 그 고난 앞에 서기만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리더로 세우셔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셔서 이 땅을 변화시키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를 통로로 삼아주시려고 우리를 선택하셨어요.
왜 목회가 어렵습니까? 왜 인생이 안 풀립니까? 저는 30년을 헤맸어요. 30년.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가지고 ...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되는지. 남들은 금식기도하면 다 풀린다는데, 나는 금식기도해도 안 풀려요.
목사님들하고 상담하면 “성경 많이 읽어라.” 성경 부지런히 읽었어요. 부지런히... 안 풀려요, 안 풀려. 배 아프면 아스피린 먹는 것과 똑 같은 거예요. “머리 아프면 머큐롬 머리에다 발라라.” 또 어떤 목사님은 그래요. “네가 봉사를 안 해서 그렇다. 봉사를 많이 해라.” 봉사 많이 했어요. 얼마나 봉사했느냐? 12명 받아가지고 6개월 동안에 140명 만들었어요. 애들. 그만 하면 잘했지요, 뭐. 그래도 문제가 풀려요, 안 풀려요? 안 풀려요. 왜 안 풀리느냐? 중풍이 걸리면 손주 다리를 막 긁어, 자기 다리 가렵다고... “남의 다리 긁지 마”라는 말이 거기서 나온 거예요. 딴 데를 헤매고 다니니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해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해답이.
뭘 봐야 되요? 뭘 봐야 되요? 기계를 다루다가 고장이 나거나 작동이 잘 안 되면 뭘 봐야 해요? manual을 보아야지요. manual이 어디 있어요? 크리스천의 manual이 어디 있어요? 성경을 봐야지요. 어디를 헤매고 다녀요? 정신과 찾아가고, 상담소 찾아간다고 답이 나옵니까? 헷갈리는 얘기밖에 안하지요.
목사가 어디 가서 해답을 찾아요? 목회가 안 되는 부분을 어디 가서 찾아요? manual을 봐야지. 워낙 본 지가 오래 돼서 읽어도 잘 모르겠어요.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격조(格調)했습니다.” 그러죠?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 너무 멀리 계시네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특권을 주셨어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나를 대신하여 내가 너를 세웠노라. 했는데 우리가 딴 짓 하느라고..그 동안에 하나님을 놓쳐버렸어요. 그때부터 삶이 곤고해지고, dry해지고, 원수가 와서 나를 들이받고, leadership에 대하여 나를 공격하고... 이럴 때는 뭐예요? calling, calling. “야. 와라. 와. 본질로 돌아와 너 어디 딴 데 가냐? 너 목회가 자꾸 꼬이지? 회개해. 회개해. 너 근본이 무너지잖아? 힘이 안 되잖아. 그게. 그럼 너 약속 붙잡아. 해도 해도 dry하지? 그럼 성령님을 의존해 봐. 본질로 우리를 부르고 있잖아요?
사람이 소중한 것 알고, 목회를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leadership을 나누어서 같이 하고. 그러면서 광야, 고난의 환경들, 힘든 세월들을 살아가면서 나는 몰랐지만 하나님은 차근차근 나를 흔들어서 이렇게 보내주시는데, 나중에 그 긴 세월, 모르고 살았으니까 긴 세월. 그러고 보니까 이 안에 다 들어있는 거예요. 내가 수백 번을 읽었었는데도 아무도 안 가르쳐주더라고요. 내 눈도 가려져 있어서 안 보였지만. 그러고 보니까 이렇게 간단한 문젠데 ... 그걸 모르고 수십 년을, 아까운 세월을 보낸 거예요. 아까운 세월은 아니죠? 그것을 깨달았으니까 여러분들에게... 쉽게 앉아서 여러분들은 터득하잖아요? 너무 부럽네요. 여러분이. 진짜로요. 알기만 했어도 나 이렇게까지 고생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몰랐으니까 엉뚱한 데서 헤매고 다닌 거지요.
인생이 좀 보입니까? 목회가 보입니까? 보여야 되요. 이게. 말씀이 하나님이고, 말씀 안에 진리가 있고, 말씀 안에 인생의 길이 있고, 말씀 안에 해답이 있고, 말씀 안에 문제를 푸는 키가 들어 있고, 말씀 안에 사탄을 깨뜨릴 수 있는 권세가 들어 있고... 말씀 안에 해답이 들어 있는데, 말씀 아닌 다른 자료들을 가지고 수없는 세월을 보내 봐도, 실력은 안 늘고, 땜빵은 되는데... 사람들은 변화가 안 되고, 나도 변화가 안 되고, 그런 목마른 목회 얼마나 지치고 피곤합니까? 주일날 돌아오는 것이 천근만근... 토요일 밤에 잠을 못 자요. 설교준비가 안 되니까. 탁 터져야 하는데 안 터지니까... 그냥. 너무너무 힘든 거예요. 토요일 밤이면... 꼬빡꼬빡 새우는 거예요. 그냥. 해답이 없으니까. 그러나 길을 알고,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나니까, 설교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즐겁고, 시간이 자꾸 늘어나요. 그냥. 설교 시간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가지고, 이번 주에 다 못하면 다음 주에 시리즈로 2탄, 3탄. 4탄. 막 가는 거예요. 계속...
★ 적용질문
1. 지난 세월 동안 고난의 삶을 통하여 내게 나타난 변화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 내가 광야생활을 통해 경험한 하나님의 모습
(공급하시는 하나님, 회개하면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
2. 출애급의 와중에 요셉의 유골을 취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13:19) - 언약하신 일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줌
3. 광야의 삶은 결국 어디로 나를 인도합니까?
- 하나님을 알고 깨닫도록 말씀(시내산)으로 인도하심
(1) 지난 세월 동안 고난의 삶을 통하여 내게 나타난 변화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가 당하는 고난들은 전부가 의미가 있거든요. 이런 거 알지요?
산모가 어느 날 갑자기 막 멸치가 먹고 싶어요. 그게 뭐에요? 우리 엄마들만 얘기해 보세요. 아기에게 뭐가 필요한 거예요? 아기에게 칼슘이 필요한 거예요. 엄마가 느끼는 결핍이나 어떤 need는 전부 아기의 생명과 연결된 거예요. 이것을 광야에 적용해 보세요. 지금 내가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내 편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데, 뭔가 자꾸 꼬이고 안 되는 게 있어요. 그러면 이게 뭔가 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sign을 준 거예요. “지금은 이런 게 필요하다, 지금은 이런 걸 찾아라.”라고 하나님이 나에게 무언가 sign을 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고난은 반드시 결과가 있어요. 하나님을 찾도록, 내게 필요한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공급하시는 하나님, 회개하면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 내가 기도하면 성령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 사람을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건설하는지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그때는 우리가 이론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배우고 경험으로 배우고, 환경을 통해서 배운단 말이에요. 그래서 광야는 너무 중요한 거예요. 성도가 구원받고 난 이후에 환경은 너무너무 중요한 거예요. 그때의 해답은 뭐내 하면 무조건 하나님이에요. 어떤 하나님을 요청하는 걸까? 도대체 지금 이런 문제로 꼬이는데 뭐를 채워야, 뭐를 넣어야 될 건가?
우리 청년 가운데 한 애가 겨울 수련회를 가면서 라디에타에 물을 넣으라고 했더니 오일 넣는 데다 물을 집어넣은 거예요. 그러고는 시동을 걸려고 하는 것을 잡았어요. 시동을 걸었으면 어떻게 될 뻔 했어요? 기계가 다 망가지는 것 아니에요? 그것을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이 녀석이 라디에타 통하고는 다른 곳에 집어넣은 거예요. 그래서 towing차 불러서 car center에 가서 다 청소해 가지고 겨우 차 하나 살렸어요. 딴 것 집어넣으면 어떻게 되요? 휘발유 차는 뭘 집어넣어야 해요? 경유차는? 개스차는? 아이고! 우리가 진리를 다 알고 있네.
“구원받은 성도들은 무얼 먹고 살아요?”
“에이! 돈 갖고도 살죠? 뭐. 명예가 있어야 하잖아요? 무얼로 살아요?” “말씀이요.”
“진짜로요? 그런데 말씀 안 주고 무얼 주었어요? 진짜로 말씀 주었어요?”
성경 가르쳤어요? 그러면서도 건강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죠. 삐거덕거릴 수밖에 없죠. 엔진에 파열음(破裂音)이 나오고, 요란하죠. 아유. 음식 잘못 먹어봐요. 배탈 나고 난리 나죠. 화장실 몇 번 가고... signal 준다니까요. 사고가 나야 해결을 하죠. 환경. 삶에 문제가 생기고.. 하나님의 백성인데 잘 돼야 하는데, 꼬이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의 message가 있어요. 빨리 엔진 검사를 해봐야 해요. 뭐가 잘못 되었는지 조사해 가지고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반드시 잘 가야 하는데. 왜 차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지? 뭐 이래야 되요.
아주 오래 전에 어떤 목사님이, 약수를 뜨러 가재요. 그래서 집에 있는 물통 다 뒤져서 큰 통 5개를 가지고 갔어요. 가다가 세곡동 미군 부대 비행장 앞을 지나가는데 차에서 갑자기 빨간 불이 번쩍번쩍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분이 딱 때리는 거예요. 자고로 사람이나 기계나 말을 안 들을 때에는 때려야 해요. “자고로 사람이나 기계나 때려야 해”라고 그러면서. 그러니까 불이 딱 꺼지는 거예요. 그래서 “야. 이렇게 하는 수도 있구나” 그랬지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뒤에서 택시가 따라오면서 계속 크락션을 울리면서 야단이 난 거예요. 뒤를 보았더니, 연기가 막 나는데 난리가 난 거예요. 보니까 라디에타에 물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까딱했으면 불고기 될 뻔 했어요. 그래서 먹으려고 떠오던 식수통의 물을 부었는데, 물통 두 통이 다 들어가는 거예요. 들어가면 다 증발되는 거예요. 와! 세 통 남은 건 그분께 가지고 가라고 했어요. 나는 안 먹겠다고...
그때에 깨달은 중요한 진리! “signal에 불이 들어오면 차를 멈춰야 한다.” 야! 간단한 건데, 그걸 주먹으로 때려버린 거예요. 억지로 막 끌고 가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요? 불고기 된다. 할렐루야. 인생의 진리가 멀리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보니까. 야! 그렇구나. 주먹으로 때리는 데에 문제가 있고... 때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구나.
왜 목회자들이 사는데 인생에 고난이 옵니까? 목사님들인데... 헌신하겠다고 결단하였는데... 하나님이 시그널을 주신 거예요. “너 그렇게 살면 안 돼. 목회 그렇게 하는 것 아니야.”
그러면 우리는 주먹으로 때려버려요. 어느 집사가 들이받으면 발로 걷어차 버려요. 그러면 사고가 나는데, 물 2리터면 해결될 것을, 두통이 다 들어가도 해결이 안 되더라니까요.
그렇게 걷어찼다가 자기 발목 부러진 사람 얼마나 많아요? 그래서 쫓겨나잖아요? 아이고! 이거 남의 얘기니까 쉽게 하지만 심각한 이야깁니다. 이거.
동의하시면 고개 끄덕끄덕 해보세요. 맞습니까? 아이고. 산전수전 다 겪으셨네.
고난은 signal이다. 하나님을 찾도록. 인생의 진정한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도록 하나님이 환경을 통해서... 경제문제, 자녀문제 부부간의 갈등, 사람과의 관계, leadership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셔요. 그렇게 살면 안 된다. 하나님을 찾는 게 목적이죠? 광야의 목적은 하나님입니다. 애급이 채워져 있고, 바로가 채워져 있고, 자기가 채워져 있던 그 공간에 하나님으로 채우기 위해서 고난을 주십니다.
(2) 출애급의 와중(渦中)에 요셉의 유골(遺骨)을 취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13:19에 요셉의 미라를 취하게 하셔요. 세상에.., 하나님도 잊어버렸던 백성 아닙니까? 그런데 이사할 때는 짐을 많이 가지고 가요, 있는 짐도 버리고 가요? 그런데 이미 송장이 되어서 400년이 넘은 그 미라... 미라 보셨어요? 끔찍합니다. 아주. 오징어포 보는 것 같아요. 뼈에 살이 딱 붙었는데, 누~레 가지고, 아주 징그러워요, 아주. 그런 미라를, 400년 지난 요셉의 유골(遺骨)을, 미라를 가지고 가게 해요. 광야 40년 돌아다니다가 ...
이사 여러 번 다니면 어때요? 있는 것도 다 버리죠? 다 버려요.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요. 제가 계산해 보니까 스물 몇 번 이사했더라고요. 우리 아버지 일기장, 내 일기장 다 없어졌어요. 다 놔둬야 하는데... 제가 옛날 것을 좀 좋아합니다. 초등학교 교과서, 중고등학교 학습지... 다 없어졌어요. 제가 책이 많아 가지고 어찌나 구박을 많이 받았던지 그냥... 다니면서 몇 박스씩 다 흘려버렸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까워요. 그런데 이 인간들, 송장을 끌고 40년간을 다닌 거예요. 이해가 됩니까? 일기장도 다 버리는 판인데... 이해가 됩니까, 안 됩니까?
뭘 말하는 거예요? 400년 전에 약속하신 것은 400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잊어버렸어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지키신다. “야. 신실하시구나. 하나님은 진짜로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을 때에 여호수아가 말하기를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長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季子)를 잃으리라.”(수 6:26) 하였지요? 그때로부터 400년이 지난 어느 날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성 쌓다가 큰아들이 죽고, 그 문을 세우다가 막내아들이 죽었어요(왕상 16:34). 400년, 500년이 지나도 하나님은 다 지켜주세요.
여호수아 9장에 보면 기브온 사람들이 와서 속이고 여호수아와 화친을 맺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속였어요. 그러나 속아서 한 약속도 약속은 중요한 거다. 여호수아가 “너희가 속였으니까 나무패며 물 긷는 자가 되라. 그러나 우리가 너희를 보호하겠다.”고 했어요(수 9:21-27).
그 후 400년이 지나고, 사울 왕이 기분 나쁘다고 기브온 사람 몇을 죽였어요. 하나님이 그것을 기억하시고, 3년 동안 이스라엘에 비가 안 오게 하신 거예요. 이스라엘은 비가 안 오면 죽어요. 일 년에 우기가 두 번 있는데, 그때만 파란 빛이 있고, 나머지는 다 타버려요. 그런 땅에서 3년이나 비가 안 오니 다들 죽을 뚱 살 뚱한 거예요.
다시 기도했더니, 사울이 약조를 어겼다는 거예요. 400년 전에, 그것도 속아서 한 약속을 안 지켰다고 3년 동안이나 비가 안 오게 하셨어요.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에게 물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사울 왕의 자손 일곱을 내주십시오. 우리가 저희를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그래서 사울 왕의 자손 7명을 주었어요. 그들을 죽였을 때에 비로소 다시 비가 내렸어요.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로 변경이 없습니다. 신실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서 인격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도 점점 어떻게 해야 되요? 자기가 한 말에 대하여, 속아서 한 약속이라고 해도 지켜야 해요. 신앙인의 언어는 그렇게 중요합니다. 내가 잘 모르고 농담으로 약속을 했어요. 그래도 지켜야 해요. 나는 기억이 없어요. 10년이나 지나서 기억이 없지만, 400년이 지나고, 500년이 지났어도 하나님이 지키라고 하시면 지켜야 해요. 하나님이 언약의 하나님이신 것처럼, 인간도 언약의 사람이 되어야 해요. 이것이 인격적인 만남이어요.
크리스천도, 지도자도 목사도, 언어에 대한 책임을 안 져요. 말을 함부로 하고,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아요. 그래서 영적 권위를 자꾸 잃어버려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처럼 우리도 세례언약 반드시 지켜야 해요. “하나님. 나를 내려놓겠습니다.”하면 내려놓을 때까지 하나님은 억지로 무릎을 꿇려요. 그렇지 않으면 어차피 무릎 꿇을 건데, 왜 얻어터지고 무릎을 꿇습니까? 내가 미리 무릎을 꿇어야지. 어차피 무릎 꿇을 건데. 약속이잖아요? 신실하신 하나님을 얘기합니다.
(3) 광야의 삶은 결국 어디로 나를 인도합니까?
하나님을 알고 깨닫도록 말씀으로, 시내산으로 인도하시죠? 광야가 지나고 나면, 어떤 몸으로, 환경으로 경험하는 게 아니라, clear하게 이제는 논리로, 이치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해요. 그러면 이 진도가 훨씬 빨라지죠. 이런 걸 몸으로 깨달을 때에는 30-40년 걸려요. 그러나 말씀 안에서 깨닫고 순종해 버리면 이것을 3-4년으로 줄일 수 있어요.
40년을 살고 깨닫겠습니까? 3,4년 만에 해결하겠습니까? 성경을 모르면 모르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까운 세월 다 보내고, 엉뚱한 곳에 가서 헤매게 되요. 빨리 말씀의 산으로 가야 합니다. 몸으로 체득한 것들이 이론화하여 체계화하고, 논리화 되어 내 삶속에 철학으로, 내 삶의 가치관으로 딱 정렬될 수 있도록 빨리 시내산으로 가야 해요.
자. 멋있는 질문 하나 하고 통성기도하고 마칩시다. 옆엣 분에게
“평생을 광야에서 보내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세요.
“일생을 광야에서 마치겠습니까?”라고 물어보세요.
“여러분 교인들을 광야에서 헤매다가 광야 백성으로 그냥 끝나게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가나안으로, 성막으로 인도하시겠습니까?” 물어보세요.
10분 동안 하나님. 내가 이제 진리의 말씀 앞에서 결단합니다. 성경책에 손을 얹으세요.
“하나님. 내가 다른 것은 다 못하더라도 말씀의 전문가가 되겠습니다.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길을 찾고, 교인들을 어디로 인도해야 할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분별하겠습니다. 이 말씀 앞에 내가 정직하게 해 주시고, 이 말씀의 스승이 되게 해 주시고,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게 해 주시고, 말씀을 통하여 성도의 삶을 바르게 인도하는 선한 목자가 되게 해 주세요.”
< 출애급기 강의 (10) >
다섯 개의 case를 제가 말씀드리고 이런 문제를 가지고 성도들이 목사님을 찾아왔을 때에, 어떻게 상담해야 하는지 토의해보는 겁니다. 세 분씩 짝을 지어보세요. 제가 예제(例題)를 읽어가는 동안에 우리 조는 저것을 하면 좋겠다고 정해서 상의하는 것입니다.
< 상담 1 >
경제문제가 너무 어렵습니다. 이제는 아주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막막합니다. 있는 것 다 까먹고도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인 생활은 돼야 하는데 생계마저 염려가 되는 상황까지 와있습니다. 가족도 있고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필요한데 아예 바닥을 치고 있으니 나오는 것은 한숨과 원망뿐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건강마저도 힘들어 낙심이 됩니다. 무언가 희망이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복을 받아 경제문제가 풀리겠습니까?
< 상담 2 >
인생이 무의미해졌습니다. 돈도 만져봤고, 명예도 얻어 봤고, 성공도 해 봤지만 모든 게 다 헛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가족이 내 삶에 중요한 목표이지만 배우자도 자식도 내 기대와는 관계없이 자기 길을 갑니다. 인생이 이렇게 dry한 것인 줄 몰랐습니다. 신앙생활을 계속해 왔는데도 내 안의 갈증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전에 기쁨을 주었던 일마저도 이제는 희미합니다. 성경도 안 들어오고, 기도해도 답답하고, 봉사를 해도 기쁨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내 안의 열정과 의미를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 상담 3 >
난 요즈음 너무나 큰 허탈감에 빠져 있습니다. 기도하고 계획하고 시도한 일인데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전에는 기도하지 않고 마음만 먹어도 응답을 주신 하나님이신데, 이제는 기도하고 또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을 따라 순종하는 데도 너무나 실망스러운 일들이 반복됩니다. 무언가 될 듯 하다가 안 되고, 뚜껑을 열어보면 전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별 유익이 없는 결과만 얻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꼬인 문제를 풀어갈 수 있겠습니까?
< 상담 4 >
나는 목사님이 싫어졌습니다. 전에는 목사님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설레는 마음이 들었는데 이제는 목사님을 보고 있노라면 단점들만 보이고 너무나 많은 약점들이 눈에 보입니다. 하나님처럼 대할 수 있었던 그런 영적 권위를 이제는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설교도 귀에 안 들어오고, 매사가 뒤틀려져 교회에 나가는 일마저도 내게는 짐이 됩니다. 평생을 모시고 선교 다니면서 헌신하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목사님을 뵈면 짜증부터 납니다. 어떻게 해야 잃어버린 열정을 회복하고 다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겠습니까?
< 상담 5 >
그 원수 같은 인간 때문에 신앙생활을 못하겠습니다. 나와 특별한 이해관계도 없는데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지 도대체 믿음생활을 할 수 없도록 방해하고 고통을 줍니다. 차라리 내가 교회를 떠나든지 그 인간 꼴 보기 싫어서 아예 도망을 쳐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신앙대로 살아보려 하고, 무언가 바르게 살아보려고 시도하는 것마다 시비를 걸고 내 가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그 인간이 안 보이는 곳이 내게 천국입니다. 내게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만들어내어 이야기하고 다닙니다. 하나님은 왜 그런 인간을 심판하지 않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조별 토의 및 발표 >
한 조가 번호 하나씩 선택해서 의논하는 거예요. 어떻게 상담을 해 줘야 할지...
광야를 통과하는 비결
1. 15장 - 기대가 무너져 일이 꼬일 때
- 십자가를 적용하라. 하나님의 기대를 맞추라.
2. 16장 - 경제문제가 괴롭힐 때
- 하늘 양식,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라.
3. 17장a - 목마를 때
- 반석으로 가서 생수를 경험하라.
4. 17장b - 사람이 내가 가는 길을 방해할 때
- 을 얻어 함께 기도하라.
5. 18장 - 지도자의 한계가 드러날 때
- 몸을 세우기 위하여 지도자를 조력하라.
지금 뭐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결국 광야거든요. 광야.
광야의 문제는 결국 뭐를 요구하는 것이라고요? 내 속에 과거의 나를 비우고, 거기에 누구를 채우라고요? 거기에 하나님을 채워라. 그런데 문제는 어떤 쪽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1) 경제문제는 몇 장이에요? 16장. 신 광야죠. 목적은 뭐에요? 경제를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집중하고 그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라. 그거였죠?
(2) 2번 문제가 무엇이었어요? 인생이 dry합니다. 이것은 몇 장이에요? 17장의 르비딤 사건이죠. 목적이 뭐에요, 거기는? 반석이신 그리스도께 가서 기도함으로 뭘 경험해야 한다? 성령세례 받도록, 성령이 충만할 수 있도록, 그러니까 그런 쪽으로 유도를 해 주는 거예요. “그러면 뭐를 하면 인생에 만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했던 일 가운데 제일 기분이 좋았고 의미 있었던 일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서 그의 설명을 들은 다음에 상담자가 “인생이 dry한 이유는 성령님을 받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요청이다”라고 해줘야 하죠.
(3) 3번 문제는 기대치가 무너졌을 때, 기도하고 계획했는데도 기대가 다 무너졌을 때, 몇 장이지요? 15장. 15장의 목적이 뭐에요? 십자가. 회개하고 돌이키는 거죠.
(4) 4번은 목사님이 싫어졌습니다. 몇 장이에요? 18장, 문제가 뭐에요? 지도력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답이 뭐예요? “네가 목사님을 도와라.” 네가 동역자가 되어서 목사님의 약한 부분을 도와라. 밥만 쏘지 말고... (청중) “식사를 대접하고 기분 좋을 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목회자의 한계는 누가 cover해야 하나? 그 문제를 본 사람이 cover해 줘야 한다. 거기까지 가면 되는 거죠.
(5) 그 다음 마지막 문제가 뭐예요? 아말렉, 5번. 몇 장이에요? 원수 같은 인간. 어떻게 해야 해요? 기도 partner를 찾아서 서로 기도하고, 기도로 승리해야 하죠. 하나님은 사람을 얻게 하기 위하여 사람으로부터 힘들게 한다는 거죠.
아!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상담입니다. 공감을 해야 되고, 경청을 해야 되고, 또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 뭔지 알아야 되는데... 우리가 상담학을 공부하려면 최소한 4-5년을 해야 상담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素養)을 쌓습니다. 상담이 쉽지가 않아요. 목사님들이 또 상담목회를 한다는 것이 사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리는 상담목회보다는 말씀목회를 해야 되요. 그러니까 사고가 난 이후에 이것을 도와주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사전에 미리 광야에 대한 어려움을 설명해주고, 또 우리가 광야를 지나면서 이런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될 터인데,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내가 아닌, 바로나 애급이나, 살았던 방식이 아닌, 거기에 누구를 채워야 한다? 하나님을 채워야 한다. 그래서 이미 피의 언약을 맺었고, 세례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제는 문제가 생기면 나를 내려놓고, 누구를 붙잡는다? 하나님을 붙잡는다. 이런 것들을 미리 신앙의 어떤 기본 구조로 설명해주고 훈련을 시키면 사고가 나도 큰 어려움 없이 잘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의 process가 성도들에게 세워져 있지 않을 때에는 계속 자기 욕망만 이야기해요. 자기 불편한 것, 자기의 감정 상한 것만 이야기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거절하면 해답이 없거든요. 목사가 마음을 만져서 어떻게 하겠어요? 그 사람이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 있어요? 어디까지 들어줘야 해요? 우리는 마음을 들어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진리 되신 그리스도를 소개해 주는 데에 상담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상담이 어렵습니다. 진리의 틀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도울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바로 데리고 가시지 않고, 홍해로 데리고 가셔서, 세례를 받게 하고, 다시 광야로 데리고 들어오셨습니다. 똑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바로 복을 주시면 다 썩고 말아요.
선인장을 옮겨 심을 때 그냥 옮겨 심으면 선인장이 절대 살지 못합니다. 죽어요.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선인장을 꽃꽂이하거나 옮겨 심은 때. 어떻게 합니까? 물에 담가놓아요? 응달에다가 일주일 정도 말려요. 그러면 수분이 다 빠져나가서 거의 죽을 지경이 되요. “아이고. 나 죽겠네. 나 물 좀 주세요.” 그러고는 일주일쯤 후에 심고 물을 주면 100% 물을 흡수하면서 쫙~ 생명력이 살아납니다. 그런데 건강한 선인장을 그냥 옮겨 심어놓고 물을 주면, 이미 자기 안에 물이 있기 때문에 물이 고여 가지고 뿌리가 썩어버려요. 죽습니다.
성도를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에 왜 광야로 데리고 가셨는가? 그 원리에요. 적절한 고난을 통해서 우리 속의 생명력이 살아납니다. “아! 돈도, 사람도 나에게 의미가 없구나. 정말 하나님이 아니면 내가 못 살겠구나.”라는 진정한 갈증을 갖게 되요. 그러면 그 고난 이후에 주신 복은 그냥 생명의 부요함을 갖게 되죠. 그런데 이런 갈증이 없이, 곤고함이 없이, 복을 받게 되면 뿌리가 썩어버리고 인생을 상실하게 되죠. 하나님이 성도를 인도하시는 이 구원의 과정을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고난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그 고난을 통하여 누구를 붙잡는 거예요? 하나님을 붙잡는 거예요. 이게 핵심이에요.
자. 광야에서 이렇게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또 나와 함께 동역해야 할 사람들, 또 교회, 하나님 나라를 얻도록, 찾아가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어디로 데리고 갑니까? 시내산.
여기가 시내광야에요. 시내광야에서 모세가 시내산 올라갑니다.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받게 되죠.
19-24장 성화(聖化) (하나님의 자기 계시)
19장 : 시내산 앞에서 제사장 나라로 세우심(약속) 4-6
1. 은혜 :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다.
2. 조건 :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말을 지키면
3. 목적 :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 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 세계가 나에게 속하였나니
20장 : 십계명
십계명 정신 - 하나님께 예배, 이웃 존대(마 22:37-40)
21-23장 : 하나님의 원칙들 (paradigm shift)
24장 : 언약 백성으로 세움
약속에 응답할 줄 아는 신실한 언약 백성으로 세우시기를 원함
19-24장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시내산 앞에서 제사장 나라로 세우심.
19:4-6 봅니다. 이스라엘을 부르신 목적이죠.
“(4) 내가 애급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나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내가 너희를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인도하였다.” 은혜입니다. 은혜.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우리를, 환경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왔던 삶의 여러 가지 아픔과 상처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는 말이죠. 여기서 말하는 독수리 날개는 아주 평안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아주 맹훈련을 하는 거지요.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시킬 때 높은 벼랑이나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뜨립니다. 독수리 새끼가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다가 땅에 추락하기 직전에 어미가 날개로 받아서, 또 높은 곳에 올라가서는 또 떨어뜨리고... 이런 걸 독수리 훈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업어서 인도했다고 하십니다.
조건 -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코드를 맞춰야 해요. 출애급기로 말하면 은혜는 어디까지예요? 은혜는 11장까지에요. 조건은 12장부터
목적 - “내가 너희를 제사장 나라로 세우겠다.” 세계를 내게 속하게 하기 위하여 제사장 나라를 세우겠다. 25장부터 40장까지죠. 은혜를 받는 거나 훈련을 받는 거나 전부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고, 제사장 되게 하기 위한 것이고, 다 하나님께 속하도록...
하나님의 속마음을 지금 알려주는 거예요. “내 소원이 뭔 줄 아느냐? 네가 빨리 성장해서, 장남이니까, 우리 집안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다. 내 나라를 빨리 회복시켜라. 내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20장은 십계명이죠. 십계명은 돌비가 두 개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 또 하나는 이웃을 존대하는 법이죠. 21-23장은 하나님의 원칙들
19-24장 계시(啓示) -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채움
1. 도덕법(Moral Law) - 대자기(對自己)관계
2. 시민법(Civil Law) - 대인(對人)관계
3. 의식법(Ritual Law) - 대신(對神)관계
24장은 이제 언약백성으로 세우십니다. 약속에 응답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시 계시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세 가지로 볼 수 있어요. 도덕법, 시민법, 의식법 Moral Law, civil Law, Ritual Law.
도덕법은 나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내 양심과의 관계. 시민법은 대인관계입니다. 이웃과의 관계죠. 의식법은 하나님과의 관계, 대신관계입니다. 그래서 이 계시의 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나 자신 앞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당한 길, 진리의 길을 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당한 길을 걸어라.”
하나님은 이런 원칙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지요. 멋대로 자기 충동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원칙대로 살기를 원하신다. 우리 안에 하나님에 대한 법. 이웃에게 대한 법, 자기 자신에게 대한 원칙이 있어야 해요.
시내산 : 말씀은 하나님의 사상, 하나님의 철학이다.
★ 말씀은 인격이다.
★ 말씀으로 인격 속에 찾아오신 주님, 우리 안에 거하심
★ 첫 창조 : 혼돈⇒질서로, 공허⇒생명으로, 흑암⇒빛으로 채워짐
1. 사명선언문 “뜻을 정한 인생은 아름답다.”
2. 나의 매일의 십계명 - 체크리스트로 매일 점검하기
3. 복음 선포문 만들기
시내산은 하나님의 사상, 하나님의 철학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곧 인격입니다. 하나님의 인격. 말은 곧 인격이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인격입니다. 말씀으로 인격 속에 찾아오신 주님. 우리 속에 말씀이 들어오면 그 말씀이 사상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게 됩니다.
처음 창조 때,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가라사대”할 때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했어요. 여기에 말씀이 선포되니까 혼돈은 뭘로 바꿔져요? 질서로 바꿔집니다. 윗물과 아랫물로, 또 물과 뭍으로, 낮과 밤으로, 이렇게 separate, 구분됩니다.
둘째, 말씀이 선포되니까 비어 있던 공허(空虛), empty가 contents, 생명으로 꽉 채워집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 흑암은 무얼로 바꿔져요? 빛으로 바꿔집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역시 우리 안에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실 때 무얼로 찾아오세요?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도 무얼로? 언어입니다. 언어.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격과 하나님의 갈망을 알게 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선포되어지고, 교육되어지고 훈련되어졌을 때, 그 하나님 말씀이 나의 사상이 되고, 나의 가치관이 되고, 나의 목표가 됩니다. 그것들이 다시 우리 언어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선포됩니다.
그렇다면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체화(體化) 되고 나의 사상이 되고, 나의 인격이 되게 하기 위하여 어떤 작업을 하는 것이 좋으냐?
① 첫째 사명선언문(使命宣言文), mission statement라고 하죠. 사명선언문을 만들어야 해요. 어떤 목적으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기 사명선언문이 있어야 해요. 따라합시다.
“뜻을 정한 인생이 아름답다.”
저희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자유게시판에 가면 사명선언문, 또 나의 매일의 십계명, 복음 선포문, 이런 예제들이 있어요. 이런 것을 만들고 사는 사람과 만들지 않고 사는 사람은 전혀 격이 다른 인생을 삽니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어요.
② 둘째, 십계명을 주셨는데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이 정하신 사명에 도달하기 위하여 내가 매일매일 지켜야 할 십계명을 만들어보면 참 좋습니다. 나는 성경을 얼마를 읽겠다, 기도를 어떻게 하겠다 등,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열 가지 원칙을 정해야 합니다. 나의 매일의 십계명.
③ 셋째는 복음선포문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 하나님께서 내게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는 것을 적어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자. 이 사람 것을 한 번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이분은 우울증으로 굉장히 오랫동안 고통당한 분이어요. 그런데 치료하는 방법으로 제가 복음선포문을 쓰라고 하였어요. 당신이 원하는 소원들을 쓰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해 주시기를 원하는 것을 써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매일 선포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우울증 약을 끊었어요.
< 복음선포문 >
1) 나의 하나님 앞에서
• 나는 하나님에게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나의 진홍같이 붉은 죄는 눈과 같이 희어졌다.
• 사망이나 생명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 내 삶의 주인은 주님이시며 내 인생의 주관자가 되신다.
• 내가 겪는 모든 아픔은 훗날 많은 영혼들을 섬기기 위함이다.
• 주님의 뜻을 믿기에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다.
2) 나 자신 앞에서
•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 나는 리더십이 있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섬세한 사람이다.
• 나는 용기가 있고 유머러스하며 솔직하다.
• 나는 밝고 유쾌한 사람이다.
• 나는 이제 사탄이 참소하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며 나의 약점을 이용하는 악한 영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만 더욱 바라볼 것이다.
• 나는 빛의 자녀다. 어둠의 영이 나를 더 이상 해치지 못할 것이며 두려움과 불안 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바뀔 것이다.
• 나는 사랑받는 아내이며 남편의 좋은 친구이자 믿음의 동역자이다.
• 나는 사랑받는 딸이자 며느리며 부모님과 웃어른을 공경하는 사람이다.
3) 나의 가정 앞에서
• 주님은 우리 집의 주인이시며 식사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님이시며 모든 대화에 말없이 듣는 이시다.
• 주 1회의 가정예배로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고백한다.
• 남편과 나의 셀(cell)원들은 우리의 섬김과 가르침을 통해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고 영적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 남편과 나는 교회의 2012 비전에 합당한 600명의 리더 중 하나로 세워질 것이며 이를 위해 모든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고 비전과 영적인 고민을 함께 나누는 진정한 동역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4) 나의 건강 앞에서
• 나의 몸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다.
• 건강에 해로운 음식과 습관을 피하고 운동과 호탕한 웃음으로 심신의 건강을 관리할 것이다.
• 우울증, 불안장애로 오는 호흡 곤란과 가슴 두근거림, 손 저림은 예수의 보혈의 피로 없어지고 깨끗하게 치료될 것이다.
• 2010년 7월까지 현재 복용중인 약(불안장애, 우울)을 끊고, 둘째를 가질 것이다.
• 우울증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내 몸과 마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나는 계속해서 우울증 약을 복용하지 않을 것이며 맑은 정신으로 주님을 묵상하고 기도할 것이다.
< 소감을 썼는데 >
사명선언문, 나의 십계명, 복음선포문은 현재 저희 집 냉장고 문에 붙여져 있습니다. 매일 큰소리로 읽으며 선포하지는 못해도 그냥 언제나 볼 수 있는 곳에 걸려 있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더군요. 마음으로 항상 생각하고 선포하게 되고, 저희 집을 방문하는 셀원들이 보게 되면 긴장하게 되고, 제 자신을 다짐하는 효과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2010년 3월 지금은 복음선포문의 문구대로 2010년 7월까지 현재 복용 중인 약(불안장애와 우울)을 끊고 둘째를 가질 것이라고 했는데 2009년 3월부터 먹던 우울증 약을 일 년 만에 끊게 되었습니다. 선포의 힘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박승호) 우울증 약은 의사의 동의 없이 끊으면 절대로 큰일 납니다. 이거. 의사가 “이제는 안 먹어도 됩니다.”라고 할 때까지는 먹어야 해요. 의사가 처방을 내리는 거예요. 이젠 괜찮다고.... 그 동안에 복음선포문을 통하여 자기 언어로 자기 문제 해결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빠른 속도로 일련의 사건들을 진행시키시며 약을 끊을 수 있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약을 끊은 지 2주 정도 되었을 때에 3일 연속 저를 불안하게 하는 사건들이 일어났고, 순간 약을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저는 바로 이것이 사탄의 전략임을 눈치 챘으며, 더욱 마음을 강하게 하고 선포함으로 그 순간을 이겨냈습니다.
요즘은 셀 모임을 인도할 때 예전과 다른 자신감과 은혜가 있고, 모임도 더 풍성해짐을 느낍니다. 지난 영성수련회 때도, 주일예배 때도, 성령께서 제 마음을 만지고 계심을 느끼며 집중해서 그분께 나갈 수 있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셀 차원에서 정 모 성도(류마티스 관절염, 불임)와, 송 모 자매(불임)를 위하여 릴레이 금식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기 엄마들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동참하고 열심을 내주어 너무 감사하고 은혜가 됩니다. 이렇게 저는 지금 과정의 한가운데 서 있고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갈망이 머릿속에 있을 때에는 그게 갈망이지만 문장으로 끄집어내어 선포할 때에는 또 하나의 영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이번 기회를 통하여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포문의 갈망을 응답으로 채워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잃어버렸던 것들을 되찾게 하시고, 슬펐던 어제를 기쁨의 오늘로 변화시키시고, excellent한 내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이게 이제 이런 문장, 언어를 통하여 빼앗겼던 영역들을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을 선포하심으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이기셨던 것처럼, 우리의 창조적인 언어를 통하여 잃어버렸던 영역들을 우리가 되찾는 것입니다. 언어, 생각, 마음이 아주 중요합니다. 사탄이 지배했던 영역들, 우리 건강을 빼앗겼고, 또 대인관계를 빼앗겨 버렸고, 부부 간의 갈등, 자녀문제, 이런 것들을 다 빼앗겼거든요.
복음은 뭐냐 하면, 사탄이 왕노릇하고, 사탄이 역사하는 그 현장을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극복해서 그 영역들을 전부 다 하나님께 되돌려드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제일 안 되는 영역이 어디냐 하면 생각과 마음과 언어입니다. 밖의 것은 오히려 쉬워요. 환자를 치료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해결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를 속여요. 그래서 우리 안에 견고한 진을 두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생각이에요. 생각이 바꿔지기 어려워요. 그 생각이 부정적인 생각, 공격하는 생각, 남을 정죄하는 생각, 원망하는 생각, 이런 생각들이 무얼로 바꿔져야 해요? 찬양 감사 은혜 하나님을 묵상하는 걸로 바꿔져야 해요. 시내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뭐냐 하면 바로 우리 안에 채워야 할 하나님에 대한 문장들을, 광야에서는 생활을 통하여 깨달았고, 시내산에서, 말씀을 공부하는 데에는 그런 문장들, 내 안에 가득 찼던 부정적인 문장들이 긍정적인 문장으로 바꾸어지는 작업을 하는 것이에요. 기왕에 그렇게 할 것 같으면 의도적으로, 먼저 내 훈련의 방법을 내가 미리 선점하는 거예요. 저절로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선포하면서 찾아가는 거예요.
자. 보세요.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자동차들이 가기 힘들도록 도로를 막 파놓았어요.
생각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불편하니까, 출근하는데 한 차선만 허용하기 때문에 한 차선은 기다려야 되고 그래서 차가 밀린단 말이에요. 기다리면서 한 사람이 생각하는 거에요. “우리나라는 맨날 이래. 덮어놓고 열고, 덮어놓고 열고, 이건 뭐 국가적인 낭비고, 이거 어떻게 하라는 거야? 맨날 열었다 덮었다, 열었다 덮었다. 이거, 참. 정치하는 인간들 정말 정신이 썩었어.” 이렇게 화를 내는 생각이 있고, 또 하나의 생각은 “야. 겨울에 얼었다가 봄이 되어 해빙되니까 사고 날까봐서, 야! 공무원들 수준이 높아졌어. 사고 나기 전에 미연에 방비하느라고 국민들이 사고날까봐서, 위험한 곳을 다 뜯네. 야. 공무원들 수준이 옛날하고 달라.”
어때요? 앞의 생각으로 출근을 했어요. 어땠을까요? 하루 종일 기분 나쁘고, “이 놈의 인간들. 다 썩었고, 세금 아깝고, 말이야” 이렇게 계속 나가는 거예요.
후자는요. “야. 공무원들 수준 높아졌어. 이렇게 국민들 사고날까봐 미리 작업하고 옛날하고 너무 달라졌어.” 이 사람은 오늘 기분이 어때요?
그러면 앞의 생각은 부정적인 생각, 누가 좋아하는 생각? 사탄이 좋아하는 생각. 뒤의 생각은 긍정적인 생각, 생산적인 생각. 누가 좋아하는 생각? 그러면 나는 어디를 선택해야 해요? 긍정적인 생각을 선택해야 되죠.
그런데 이런 것을 작업하지 않고 그냥 놔두면 긍정적인 생각이 잘 떠오르던가요? 부정적인 생각이 잘 떠오르던가요? 훈련하지 않아도 부정적인 생각, 그냥 그리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의도적으로 복음선포문을 만들고,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사명선언문을 만들고, 내가 매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나의 매일의 십계명을 만들어가지고 자기 생활을 자기가 control해주는 거예요. 어차피 얻어맞고, 깨지고 하면서 광야 40년을 살고서 그리로 가야 할 것인데, 40년까지 걸릴 것이 뭐 있어요? 빨리 깨닫고 내가 미리 만들어 가지고 가버리면 되지. 여러분 이게 어차피 매를 맞고 가나, 몸으로 때우고 가나, 어차피 그길로 가야 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되요? 얼른 가버리죠. 뭐. 성경을 모를 때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니까..., 뛰어도 알고 뛰어야지, 아무 데나 뛰면 됩니까?
성경을 알고 나니까 아! 광야가 뭐고, 고난의 의미가 뭐고... 안단 말이에요. 하나님 붙잡는 거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거고, 헌신하는 거고, 제사장 만나는 거고...
그렇다면 내가 알고 미리 가는 거예요. 이런 걸 작성하기 전에는 계속 몸으로 얻어맞아야 되고, 깨닫고 그것을 순종하게 될 때까지 5년, 10년 걸렸어요. 그런데 가는 길을 알고 나니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요. 성경을 공부해 보니까요. 광야 40년을 지나도 못 깨닫는 인간은 못 깨달아요. 결국 200만 명 가운데, 199만 9998명은 광야에서 평생을 마쳤어요. 두 사람만 들어갔어요. 그 두 사람이 누구예요? 여호수아와 갈렙이죠? 어떻게 해서 그들이 들어갔대요?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의 말씀을 온전히 붙좇았다”고 했어요. 말씀을 붙잡고 사니까 같은 광야를 지나가는데 들어간 사람과 못 들어간 사람의 차이가 결국 말씀이더라고요.
그럴 바에는 왜 40년씩 기다려요? 어차피 말씀을 잡아야 할 것 같으면 처음부터 “하나님 말로 합시다. 제가 말씀하실 때 듣겠습니다.” 따라 합시다.
“말로 합시다. 하나님. 말로 합시다.”
그게 광야를 단축시키는 비결이라니까요. 우리 교인들에게 광야를 단축시켜주는 비결이 무엇이에요? 말로 할 때에 듣게 해 주는 거예요. 말의, 언어의 채널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설교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그 말씀을 들었을 때에는, 반드시 그 말씀을 씹지 말고,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도다.” 그것을 교인들에게 미리 가르쳐주는 거예요.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 것은 사신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점치는 것, 복술(卜術)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어요.
하나님이 무지무지하게 싫어하는 것이 뭐냐?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것이에요.
그런데 대부분의 교인들은 목사님이 설교하면 그대로 살던가요, 안 살던가요? 대부분의 교인들은 앉아서 즐기고, 문 나가면서 다 잊어버려요. 그러면 그게 뭐냐? 사울 왕이 걸었던 길이거든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리셨나이다.”
그럼 우리가 교인들을 그대로 놔두면 어떻게 되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가 됩니다. 어떻게 해야 되요? 설교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서 결단하게 해야 되요. 자기 행할 바를 적게 하고 점검해서 실천하게 도와줘야 해요. 안 그러면 목사님 설교가 교인들을 오히려 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요. 왜?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데도 안 지키잖아요? 즐기기만 하지...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하고서는 안 지켜요.
우리 교회만 그런가? 여러분들 교회는 안 그럽니까? 주일날 설교 말씀하면 100% 다 지키던가요? 기억이라도 하던가요? 우리 교회는 프린트까지 해줘요. 설교 요약까지 해주고.
“그래도 대부분의 교인들이 --- 지켜요.” 내가 말 잘못하면, 전달 잘못하면 큰일 나요.
어찌 되었건 성도들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사명선언문을 만들게 해주고, 매일 자기가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을 지킬 수 있도록 check-list를 만들어서 점검하게 해주고, 그 말씀들이 자기 삶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복음선포문을 만들어서 벽에다 붙여놓고 읽게 하고 적용하게 하는 거예요.
임산부인데 불면증에 걸려서 밤에 잠을 못 자요. 밤에 전화가 왔어요. “목사님.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임산부니까 수면제를 먹지 못하잖아요?
임신한 상태에서 잠까지 못 자니까 얼마나 힘들어요? 목사님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내가 기도해주고 내가 과제를 내주었어요.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셨으면 좋겠느냐? 그것을 당신이 문장으로 써봐라.” 썼어요. 첫날 저녁에는 조금밖에 효과를 보지 못했대요. 이튿날부터는 잠을 잘 잤어요. 지금 임신 중이에요.
언어가 우리 삶 가운데 들어와서 우리의 정신세계, 사상세계 속에 들어와서 나의 문장이 되고 나의 사상이 되고, 나의 철학이 될 때까지는 광야가 계속되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서 왕노릇할 때까지는 광야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받아들이니까. 광야를 지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기보다는 더 빨리 광야를 지나가게 하는 방법은, 그렇게 광야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문장을 내가 미리 만들어서 매일 선포하면서 가도록 만들어주면 된다, 이거죠. 이해가 됩니까? 이런 구체적인 작업을 도와주어야 해요.
사명선언문을 만들어서 사는 사람과 만들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주 수준이 달라요.
다행히 요즘 이런 사명선언문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 아주 많이 나와 있어요.
이런 책들을 여러분들이 보시면서 우선 목회자 자신이 사명선언문을 만들고, 또 자기 십계명 만들고,.. 우리 목성연(牧聖硏) 내에서는 Dream School이라고 해서 원하는 사람들은 이런 신앙 관리, 목적 관리, 인생 관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만들어서 다 도와드립니다. 그래서 시간을 단축시켜 줘야죠.
어차피 매를 맞아서라도 가야 할 길이라면, 매를 안 맞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죠. 그 문장 하나,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를 얻게 하기 위하여 몇 년 걸렸어요? 40년. 그것을 미리 선포해 주는 거예요. "당신이 그것을 쓰시오."해서. 그것을 매일 선언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40년까지 안 가고, 4년이면 해결되는 거예요. 그렇죠? 언어구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들어오고, 그 언어가 내 사상이 되고, 생각이 되고, 또 그 언어, 그 언어가 내 입을 통해 선언되고, 증거되고, 전파되고...
엄마가 아이를 가르칠 때 뭘로 가르쳐요? 말로.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 뭘로 가르쳐요? 그 말이 그 아이의 사상이 된 거예요. 그 사상이 된 언어가 그의 입술을 통하여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언어를 들으면 그 사람의 사상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언어가 안 바꿔지면 뭐가 안 바꿔진 거예요? 사상이 안 바꿔진 거예요. 성도의 말이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 출애급기 강의 (11) >
성막론은 이 주제 하나만 가지고도 한 주간을 공부해야 할 만큼 많은 분량인데, 이미 우리나라의 여러 목사님들이 성막에 관해 많은 세미나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자세하게는 안 해도 구속사적으로 성막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어떤 방향만 잡으면 될 것 같습니다.
1장-2장, 출애급기를 하고 나면 이게 탁 나와야 됩니다. 켜면, 온(ON)하면 불이 탁 들어와야 됩니다. 1-2장, 3장-11장, 12장, 13-24장, 25-40장. 자 이제 자세하게 합니다.
1-2장 하나님께서 상황을 준비하심,
3-4장 목자를 준비시킴, 성령체험하게 하셨고, 세 가지 자격 조건을 준비시켰지요?
5-11장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냄. 12장, 13장, 13장만 하면 신앙의 orientation,
14장 세례, 15장-18장 광야훈련, 19장-24장 시내산 훈련, 말씀훈련,
25장-40장 예배훈련, 성막 훈련이죠.
자. 그 다음 크게 다섯으로 분류합니다.
1장-11장 은혜, 12장 피의 언약, 13장-18장 세례언약, 19장-24장 말씀언약,
25장-40장.
자. 전체적으로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봤던 구조하고, 상세하게 본 구조하고, 크게 다섯 구조로 보는 세 가지입니다.
옆엣 분하고 한번 묻고 대답하고... 이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져야 그 다음 자기식으로 살 붙이고 적용할 수가 있어요. 이 구조가 안 잡히면 공부를 많이 해도 자꾸 지엽적인 것만 다루게 됩니다. 세 가지 가운데 하나씩 가지고 한 번 서로 설명해 보십시오.
25-40장 이르려 하노라
1. 25장-31장 성막설계
(25:8-9,40) “내가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해 지어라.”
(26:30)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세울지니라.”
2. 32장-34장 우상숭배 - 계약의 파기
3. 35장-40장 성막건축
(출 39-40장) “명하신 대로 되니라.”
(레 9:5-6) “명하신 대로 하면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리라.”
(레 9:22-24)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결국 출애급기의 마지막 목표는 25장부터 40장입니다. 성막으로 데리고 가서 예배 훈련시키고 하나님의 임재, 교통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게 한 다음에, 그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하나님의 영향력,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향취(香臭)를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을 제사장이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연결시켜주고 용서받게 하고 또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것. 이제 하나님은 신약시대에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다고 그랬죠.
자. 마지막 25장부터 40장을 보면 “이루려 하노라. 데려가려 하노라.”
25장부터 30장까지는 성막설계입니다. 25장 8,9절, 40절에 보니까 “내가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서 나를 위하여 지어라.” 자 이걸 잘 보셔야 됩니다. “누가 거하신다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이 거할 성소, “누가 짓습니까?” 사람이 짓죠, 그런데 누구를 위해 짓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짓습니다. 우리 시대에 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표현할 수 있죠. 누구를 위하여 하나님의 거처가 되지요. 누가? 우리가, 목사가 짓는 것이 아니고 같이 짓는 거예요. 협력해서 같이. 누구를 위해서요? 하나님을 위하여 이런 원칙들을 우리가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26:30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설계도 건축의 원칙을 우리가 “멋있게 지어 드리겠습니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지어야 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건축을 해보신 분들은 알지만 법대로 안 지으면 아무리 잘 지었어도 ‘준공필(竣工畢)’이 나오지 않습니다. 만약에 허락 받지 않고 사용하면 불법사용이 되죠. 우리는 우리 쪽에서 멋있게 지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이번에도 보니까 동계 올림픽 때 1등을 했지만 1등이 몰수된 사람들이 있었죠. 우리나라 선수도 그랬고 또 우리가 득도 봤고... 왜 1등을 했지만 몰수 되었어요? 예~ 법대로 하지 않았죠. 잘하는 것,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시~작
“속도(速度)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方向)입니다.” 열심히 일을 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이것을 모르면 사울 왕처럼 평생, 다윗도 40년, 사울도 40년이거든요. 봉사기간은 똑 같지만 사울은 왕관을 잃어버렸고 그의 집안은 몰락을 했고, 다윗은 흥왕했고 후손들까지 복을 받았어요. 오래 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많이 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법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죠.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세울지라.” 모세는 식양을 받아온 분이고 우리는 식양대로 하면 되죠. 우리는 따로 계시를 받을 필요가 없죠. 어디에 있습니까? 기록된 말씀이 있잖아요. 이 말씀을 우리가 잘 분별하고... 그러나 기록된 말씀대로 하면, 잘못하면 문자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항상 두 가지죠. written words ‘기록된 말씀’과 speaking words ‘지금 선포하시는 말씀’ 또 우리 옛날 어르신들은 로고스(lovgo")와 레마(rJhvma)로 표현을 했죠. 로고스와 레마의 말씀이다. 또 어떤 분들은 Word of God ‘하나님의 말씀이다,’ Word of Holy Spirit ‘성령의 말씀이다.’ 여러 가지로 말을 합니다만 어찌되었건 지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듣는 것, 또 기록된 말씀을 듣는 것, 두 가지가 같이 가야 합니다. 만약에 따로 가버리게 되면, 현상에만 치중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 버립니다. 항상 두 관계가 같이 가야 됩니다. 기록된 말씀에 위배됨도 없고 또 치우치지 않고 지금 임재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지금 내가 어떻게 접근, 해석해야 할지... 항상 현장에서 묻고 기도하고... 이런 영적 긴장을 놓치면 안 됩니다.
모세를 통해서 이미 주셨던 말씀, 성경의 기자들을 통하여 주셨던 말씀과 현대적 해석, 현대적 상황 우리의 문화적인 정황 속에서, 이 시대에 이 말씀을 어떻게 선포할 것인가 하는 성령님과의 교통이죠. 이게... 수시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감동받기를 기다리고... 이런 것들이 같이 갈 수 있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하는 거죠.
32~34장은 잠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는 동안에 아론과 함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시내산 계약이 깨지죠. 하나님과의 언약이 망가집니다. “내 백성을 다 쓸어버리겠다.”고 하나님이 아주 진노하시지요. 이걸 모세가 중보하면서 “하나님 그리하시면 안 됩니다.” 모세가 중보해서 다시 살리는 그런 romantic한 역사가 기록이 되고,
35~40장은 구체적으로 이미 주셨던 말씀을 가지고 성막을 건축하는 내용이 나오죠.
39장과 40장에 우리가 시간이 있으면 하면 좋은데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직접 한 번 해보게 하세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이 말씀이 39장에는 몇 번이 나오고 40장에는 몇 번이 나오는지? 서로 찾아보게 해 보세요. 그러면서 얼마나 건축을 말씀대로 했는가?
total 두 장에 18번이 나옵니다. 그 말은 출애급기의 마감은 결국은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데 focus를 두지요. 우리 목회가 잘 했다, 성공했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성취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다.”로 목회의 결론이 나와야 합니다. 큰 목회, 작은 목회는 우리끼리 얘기이고, 하나님이 보실 때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었나를 먼저 따집니다.
레위기 9:5~6 한 번 찾아봅시다.
어제 간증하신 목사님도 말씀하셨습니다만, 목사님들이 교회에서 출애급기의 성막론(聖幕論) 또 레위기 5대 제사와 7대 절기, 이런 내용들은 잘 숙지해서 교회에서 하게 되면 교인들이 예배 생활이 달라져버립니다. 예배가 신약시대에는 다 똑같다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레위기에 보면 제사도 다섯 가지가 있고 절기도 7대 절기가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공부하게 되면 교인들이 헌금 하나를 해도 이것은 화목제물이다, 이것은 번제물이다, 이것은 속죄제다, 개념들이 달라지게 됩니다.
캄보디아에 저희 목성연 지회(支會)가 있는데 우리 모임에서 레위기를 잘 아시는 목사님이 한 번 다녀오셨어요. 그 다음에 갔을 때, 어떤 얘기를 들었는가 하면 선교사회가 상당이 어려움이 많습니다. 다들 고국을 떠나서 타 문화권에 와 있는데 선교에 대한 어떤 부담도 크지만, 동료들끼리 보이지 않는 그~ 내면의 갈등이 상당히 심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오픈하기도 힘들고 또 치우칠 수 없고, 해서 굉장히 긴장이 되어 있는데, 제사법에 대해 공부를 하고 난 뒤에 화목제에 대한 분위기가 딱 떴다는 거예요. 친교하고 화목하고...
그 다음에 제가 갔더니 완전히 분위가 달라졌어요. 서로 그 동안 앙금 졌던 것 화해하고 마음도 풀게 되었다고요... 제사를 모를 때는 그런 마음의 갈등이나 막혀있는 것들이 있었지만 제사를 알고 난 뒤에는 “아이쿠. 그것 안 하면 큰일 나겠구나...” 마태복음에 보면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와 화목하지 않는 것이 생각나거든 먼저 예물을 제단에 두고 형제와 화목하고 나서 예물을 드려라.”라고 그랬지요? 그럼 이에 대해 누가 설명을 한 번 해 보세요. “예배가 먼저입니까? 화해하는 것이 먼저입니까?” 화해가 먼저입니까?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입니까? 사람과의 관계가 먼저입니까?” 레위기를 안 배운 사람은 이렇게 말을 해요... 레위기를 배우면 어떻게 되느냐? 제물과 예물이 달라요. 자. 제물을 설명해보세요. 거기서 말한 것은 “예물을 드리다가” 그랬지요? “제물을 드리다가”가 아니라 “예물을 드리다가”예요. 제물과 예물이 어떻게 달라요? 제물을 드리지 않으면 예물을 드릴 수가 없어요. 제물은 의무제(義務祭)라 그러고, 예물은 자원제(自願祭)라고 그럽니다. 기쁨으로 하는 거예요. 이건 안 드려도 되지만 내가 받은 바 은혜가 너무 커서 감사해서 드리는 것을 자원제라 그래요.
자원제는 반드시 의무제를 드린 이후에 드릴 수 있는 거예요. 의무제는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이건 안 드리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나 ‘화목제, 소제, 번제’는 예물(禮物)이에요 예물. 이게 자원제입니다.
성경에서 ‘흠향(歆饗)하시는 제물’이라는 개념은 제물을 말하겠어요, 예물을 말하겠어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다. 향기로운 예배다. 흠향하시는 예배다. 제물이에요, 예물이에요? 예물입니다. 그러니까 예물을 드리려다가 보니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된 거예요. 그러면 제물인 경우에는 뭐냐?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해결하라는 거지요. 이런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성경대로 살면 변화되지 않을 사람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습니다. 해결 안 될 문제가 없어요. 모르니까 우리가 그냥 의식하지 못하고 간 거지... 예배를 드려도 받으시는지, 안 받으시는지.. 이런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기뻐하시지 않는지, 도통 그건 관심이 없어요... 내가 열심히 드리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 “산에서 본 식양대로, 내가 너희에게 명한 대로,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이런 개념들이 없다는 거지요. 성경을 모르니까. 일차적으로 누구에게 책임이 있겠어요? 지도자의 책임이에요. 안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멋진 목회, 잘하는 목회, 성공하는 목회보다는 정석대로 하는 목회, 말씀대로 하는 목회, 이런 것이 일 순위가 되어야 됩니다.
다시 한 번 더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방향설정이 중요합니다.
열심히 달리다 “어? 아닌가?” 하면 벌써 10년 지나가 버린 거예요. 또 ‘이거다.’하며 누가 성공했다고 하면 그 방법 가지고 열심히 했는데... 머리가 희끗희끗 되어 중년 그룹에 들었는데... 이것도 아닌 것 같아... 그래서 처음부터 신학교에서부터 성경에 대하여 잘 배울 수 있어야 되는데... 신학에 공부할 것이 많아 가지고 사실은 본문은 관심 밖이에요. 본문 공부는 우리 자신에게 넘어온 거예요. 신학교에서는 울타리 만들어주고, 이 울타리 밖에 안 나가도록 공부했으니까, 울타리 안에서 성경 공부는 스스로 해라... 그런 분위기지요. 그래서 이런 목사님들의 재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 시켜가지고 노회별로나 또는 그룹들이 형성되어서 이런 본문 공부를 성실히 꾸준히 하게 되면 우리가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데, 그의 교육에 대한 책임을 신학교에만 둬 버렸기 때문에, 짧게 공부하면 3년 길게 공부하면 6~7년 하는 것인데... 사실 성경 66권을 공부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 부족한 거지요. 그래서 좋은 것은 선배 목사님들의 일생을, 목회헌신하고 성경공부 했던 분들이 헌신을 해서 후배를 키워주는 이런 모임이 많이 활성화 되어야 합니다.
어제 제가 몇 분을 만났는데, 신학교 졸업 후 20~25년 지난 후에도 매주 만나는 모임도 있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모임도 있고... 참 귀한 모임이라고 생각이 되더라고요. 그거 쉽지 않거든요. 목사님들이 꾸준히 만난다는 것이... 만나서 성경본문 연구하고, 식사하고, 목욕하고, 운동하고 그런다고 해서 ‘참 부러운 모임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자꾸 우리가 그런 만남을 가지면서 서로 도와주고, 또 그런 그룹이 형성되면 또 후배들에게 전해주어, 그럼 우리가 고생했던 만큼 그 분들이 고생하지 않고 그 외에 또 다른 세계를 개척할 수가 있잖아요?
그 동안 한국교회가 외적으로 성장하는데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이런 내면적인 문제를 미처 돌아볼 여유가 없었죠. 이제는 한 세대가 지나갔잖아요? 1세대 선교 초기에 또 개척 1세대가 지나가고 이제는 조금 안정되었다고 생각이 되요.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옛날처럼 부흥도 되지 않고, 한꺼번에 한 주에 2~30명, 50명씩 등록한다면 언제 밖을 돌아볼 시간이 있겠어요? 지금은 여유를 가질 수 있잖아요? 이젠 그런 시절은 지났어요.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자기 자신도 좀 돌아보고 서로 좀 돕고 하는 이런 것들이 전체적인 목사님들 그룹 속에서 분위기 속에 나아가야 된다 하는 그런 필요를 느낍니다.
선교지에 가보면요. 뜨거운 열정으로 선교지에 왔어요. 그런데 줄 게 없어요. 2, 3~4년 지나고 나면 탈진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죽을 지경이라는 거예요. 한국에 와서 좀 공급 받으러 왔는데 다 강단에 세우잖아요? 선교 보고하라고, 보고하고 나면 몇 개월 지나가 버리고 쉬어야 되고 공급을 받아야 되는데 ⋯ 그럴 만한 여건이 안 되고... 아주 선교사들 지쳐 있어요. 지금 보니까. 뜨거운 열심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레위기 9:5~6 봅시다. 레위기 9장은 성막 건축이 마친 후에 내가 이 성막에 와서 살겠다하는 그런, 요즘 말로하면 봉헌식(奉獻式)이라고 할까요? 하나님이 성막에 내려오시는 과정에 대한 기록인데 8장에서 제사장 위임식을 마치고 위임 받은 아론이 첫 제사를 드리는 기록이 9장이죠. 5~6절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모세의 명한 모든 것을 회막 앞으로 가져오고 온 회중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선지라, 모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자. 가만 보세요.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하신 것이니”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인데 그대로 하면 어떤 결과가 온다고요?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그랬어요. 이런 부분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잘 섬기고 성장시켜서 하나님 말씀하신대로 순종을 했더니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거예요. 분위기가 달라지고 심령들이 움직이고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어이샤, 어이샤”해서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에 의한 부흥이 아니라, 정말 뜻밖에 하나님이 우리 예배 가운데 찾아오시는 거예요. 그리면서 예배 분위가 달라지면서 교인들의 얼굴빛이 달라지고 언어가 달라지고 삶이 달라지는 거예요. 변화가 되는 거예요.
사도행전 2장에서 아주 극적인 상황이 벌어졌잖아요?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셨고, 빌라도의 군병들과 유태인들이 짜가지고 제자들을 체포하려고 하고,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120명이 모여 가지고, 정말 목을 거는 그런 위험한 모임이거든요. 지금도 120명이 한 곳에 모였다 하면 금방 드러납니다. 그런데 120명이 한 장소에 모였다는 것은 목을 내놓은 극적인 상황에서 정말 약속을 기다리면서 오늘입니까? 내일입니까? 피를 말리는 시간이 아니겠어요? 첫 우두머리를 잡아 죽였는데, 그 밑의 졸개들을 잡아 죽이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지요. 그런 상황 하에서 전혀 기도에 힘을 썼을 때에, 어느 순간이 지나니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는 그 때에 느꼈을 전율을 생각해 보세요. 자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굉장한 겁니다. 아주.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에 3기 부흥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처음 개척해서 얼마동안 임대교회로 분당에 있을 때를 1기로 보고, 교회를 건축하고 나와 가지고 급성장을 했어요. 교회 건축 되니까 사람들이 몰려온 그때를 교회 부흥 2기라 한다면, 이제 내가 3기 부흥을 주겠다고 몇 년 전에 주셨어요. “교인들 중에 10%가 매일 한 시간 이상씩 기도하게 해라.”라고 말씀하셔서, 그래서 기도하자 해서 기도운동을 일으키고 있는데,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에요.
기도로 준비하고 있는데, 어느 틈엔가 교회 분위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람들의 언어가 달라지고 표정이 달라지고, 자세들이 달라지고... 그전에는 서로 비난하고... 하는 분위가 팽배했는데 어느 순간에 부정적인 이야기가 없어지고 분위기가 업(up)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느낌은 목사의 전율하는 그 감격... 어? 하나님이 오셨네. 와! 임재가 나타나네.
모세가 뭐라고 했는가 하면 우리가 지은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했는데 말씀대로 해서 합격하면 뭐가 온다? 하나님 영광이 나타난다는 거예요. 이런 말을 할 때에 그 지도자인 모세의 마음과 그 기다리고 있다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을 때에 그 백성들이 느꼈을 것이 아니겠어요?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런 것이 목회의 재미에요. 그저 자연발생적인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께 성실하게 순종했을 때에 오는 그 결과 이게 언약과 성취란 거예요. 하나님은 언약하시고 우리가 순종하므로 그 언약이 성취되는 것들, 그래서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그랬죠? 22절 봅니다.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필하고 내려오니라.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다 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한번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 현장을 한번 가보세요. 어떤 분위기였겠는가? 아주 기가 막힌 분위기죠. 우리가 목회의 승부를 어디에 걸어야 합니까? 사람입니까? 현장입니까?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말씀대로 백성을 지도하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고, 그리고 그 약속하신 것을 우리가 이루어드렸을 때, 약속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광이 찾아오는... 이걸 진정한 부흥이라고 합니다. 전도의 방법론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고, 성경공부 방법론으로 어떤 것으로 할 것인가? 제자훈련 교재를 어떤 것으로 쓸 것인가? 이런 것들이 다 중요하지만,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방법론에 모든 energy 쏟고 정작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있어요.
1.4 후퇴 때 한강 다리를 폭파해 버리니까 피난하는 사람들이 한강을 도강을 해야 했어요. 얕은 곳을 찾아 가지고 넘어오는데, 북에서 남하한 한 엄마가 비단 장사를 하는 사람인데 남편도 이제 잃어버리고 애 하나 등에 업고 비단을 머리에 이고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단은 물에 젖어버리면 쓸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비단이 물에 젖지 않게 하려고 조심조심 해서 한강을 건넜어요. “야. 비단 잘 보관해서 잘 팔아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고 그러면서 아주 신중하게 한강을 건넜는데, 다 건너고 나서 “야. 비단 잘 건넜다.”하고 비단을 내려놓고 보니 등 뒤의 포대기가 아래로 축 처져 있는 거예요. 비단은 살리고 아이는 죽었어요.
우리 목회가 그럴 때가 많이 있어요. 본질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그 다음이 사람과의 관계인데, 목회의 1순위를 사람에게 두거나 상황에 두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넘어가버립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났다.” 얼마나 기가 막힌 상황입니까? 기도한 대로 응답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그대로 성취되고 이때 느끼는 희열과 감격! 이럴 때 “산다는 것은 황홀한 것입니다.”라고 이렇게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시작 “산다는 것은 황홀한 것입니다.”
목회가 황홀한 겁니다. 그 어르신이 나를 인정해주었다. 그럼 다 된 것 아닙니까?
성막을 세우고 여호와의 군대를 계수함
⋅ 2년 1월 1일, 성막을 완성하여 세움(출 40:2,17; 민 1:1)
⋅ 20세 이상 남자로서 싸움에 나갈 만한 사람의 명수를 계수함
(603,550명, 민 1:2-4:33)
- 가족과 종족을 따라 세움
- 진용을 짜고 깃발 밑에 세워 여호와의 군대로 출발케 함
⋅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를 대신하여 레위인 22,000명을 구별시킴
⋅ 이스라엘의 진 배치와 행진의 순서를 알려주심 (민 2:1-34)
⋅ 여호와의 군대로서의 출발
⋅ 2년 1월 1일 성막을 완성하여 세웠다. 그리고 민수기에 가면 20세 이상 남자로서 싸움에 나갈 만한 사람의 명수를 계수하여 여호와의 군대를 세우게 되지요. 가족과 종족에 따라 세우고 진영을 짜고 깃발 밑에 세워 여호와의 군대로 출발케 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내려왔고 그 영광을 호위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 군대를 만들어 하나님 나라, 여호와의 영광을 우리가 지키자. 언약궤를 앞세우고 여호와의 군대가 이제 진격을 하게 되죠.
⋅ 이스라엘의 처음 난자를 대신하여 레위인 2만 2천명을 구별시킴.
장자들을 대신해서 처음난 사람을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데 처음난 사람 대신에 레위 사람을 택했어요. 이렇게 묶어주셨지요. 내 집에 장자와 레위 사람을 묶어가지고 그 레위 지파 사람들을 지원해 주는 거예요. 이렇게 내 아들 몫으로 주의 종으로 섬기는 것이지요. 구약시대에는 십일조를 다 제사장들에게 갖다 드렸어요. 레위지파가 관리하고 그 중에 다시 십일조를 제사장에게 드렸지요.
⋅ 이스라엘의 진 배치와 행군의 순서를 알려주심.
이제는 그냥 백성들이 이동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군대로 진용을 짜서 이동하게 합니다. 여호와의 군대로써 출발하지요.
하나님의 거처
1. 출애급 시대의 하나님의 거처
(출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2. 신약 시대의 하나님의 거처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3. 완성된 하나님의 거처
(계 21:3)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1) 하나님의 거처로서 성막을 보면 출애급시대의 하나님이 계신 장소는 성막이었습니다.
출애급기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우리가 가끔 기도할 때 이런 기도를 합니다. “높고 높은 보좌에 앉아 계셔서 낮고 천한 죄인들을 돌보시는...” 이런 기도를 하는데 그것은 성경적으로 조금 문제가 있어요. 하나님은 하늘에만 거하시는 것이 아니고 여기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광야에서 성막을 주셨고,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것도 임마누엘하시기 위해서... 하늘에만 계시고 땅에서 너희들끼리 살아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2) 요한복음 1:14 신약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구약시대에는 성막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가 있었어요. 성막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이렇게 올라와 있잖아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지성소 위에 떴어요. “하나님이 여기 와 계시구나.” 알았죠. 그 영광을 신약시대에 누구를 통해 봤어요?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것이 성령시대,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성령이 오셨어요. 성도들의 몸이 성전이 됩니다. “너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린도전서 3:16에 말씀했죠. 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고린도전서 6:20. 우리의 몸, 존재가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이 몸들이 연합하고 함께 build up 되면서, 지어져 가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거처가 됩니다. 에베소서가 이것을 말하고 있죠.
에베소서 2:21~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개인 성전, 개인 건물이 연결되어서 성전이 되어 간다는 거지요. 또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제 우리가 완성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사탄은 계속해서 우리가 연결되지 못하도록 분열 작업을 합니다. 계속. 부부간에도 갈라지게 해 버리잖아요. 서로 마음을 달리하게 하고, 서로 반목질시하게 하고... 성령님은 자꾸 연합을 시켜요, 이렇게. 서로 연결해서 협력하게 하고 서로 연합되게 하는...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어서 성전이 되어간다.”
(3) 마지막 완성은 계시록 21:3에 보니까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이 상태가 바로 에덴동산의 상태였거든요. 타락하기 전의 상태, 아담과 하와와 함께 살았던 상황이 에덴동산이었죠. 그것이 타락했을 때 깨져버려요.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고 하나님과 동거하는 것을 잃어버렸지요. 구약에서는 그림자로 신약에서는 실제로 이제 예수님이 오셔서, 성령님이 오셔서 그러나 아직은 제한적이죠. 재림 이후에 완성이 되는데 재림하시고 완성이 되었을 때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장막이 같이 있고, 함께 거하시고...
지금 제일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지금부터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을 훈련하는 거예요. 요즘 젊은 부부들은 결혼하고도 너무 개성이 강해 가지고, 요즘 토요일에 결혼식 주례를 많이 하는데, 저는 주례할 때마다 가슴이 선뜻선뜻해요. “이것들이 얼마나 가려나?” 얼마나 개성들이 강한지 양보를 안 합니다. 내가 뭐 아쉽다고 너한테 양보하느냐는 겁니다. 결혼예비학교 4주를 하는데, 마지막에 제가 꼭 물어봐요. “헤어지자는 말 할 거냐, 안할 거냐? 이혼한다는 말 할 거냐?” 안 한다고 말할 때 주례해 준다고 다짐을 받아요. 둘이만 있는 데서 한 약속이 부족한 것 같아, 증인을 세워 또 물어봐요. 주례하면서, 그런 거 물어보면 주책이잖아요. 요즘 개성이 워낙 강해 가지고 바로 독립 선언을 하잖아요? 신혼여행 갔다 오면서 벌써 깨져버리는 거예요. 분열의 영이 너무 강하는 거예요. 연합이 안 돼요. 연합을 하려면 누군가 한 쪽이 손해보고 져 주어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거예요,,. 요즘 애들은... 하도 엄마들이 기를 세워가지고.. “너 어디 가서 기죽지 마, 기죽지 마.”해서 키워 가지고... 이제 기가 너무 안 죽어서 큰일이에요. 소금을 뿌렸을 때 배추가 기가 죽어야 김치를 담아 먹지요. 얼마나 항생제를 쳐 놓았는지, 소금을 뿌려도 기가 안 죽어요. 쓸모가 없어요, 쓸모가. 어디를 가도 기가 안 죽는 이것이 문제예요. 문제... 섬기고 사랑하고 양보해야 되는데... 연합의 영이 없는 거예요. 전부 “나요. 나요.” 그러지 남을 배려해주려는 마음들이 없어요. 하나님의 집은 서로 연합되는 거지요, 연합. 부부도, 부모와 자식, 또 나와 개성이 다르고 성향이 다른 사람끼리 만나가지고, 누군가 십자가 지는 사람이 있으면 되거든요. 예수님 십자가만 이야기하지, 자기 십자가는 얘기 안 하니까 연합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 32장 : 우상숭배 - ‘종교의 영’
(32:4-6)
(24:4-5)
(24:11)
자. 32장에서 하나님이 아주 싫어하시는, 무서운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교회를 비난하면서 종교의 영이 강하다고 그래요. 그리고 이세벨의 영이 강하다고 그래요.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얼 이야기하는가 했는데, 뭐냐 하면 뒤에서 조종하는 거예요. 사모님들이 뒤에서 목사님을 리모콘 가지고 조종해요. 권사님들이 뒤에서 장로님들을 조종해요. 이세벨이 아합을 조종했죠. 이세벨의 영이 한국에 강하대요. 그 양반들이 보고서 하는 얘기니까 난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그런 게 많아요. 배후 조종...
또 하나 종교의 영은 뭐냐 그랬더니, 내용은 없고 껍데기만 흉내 내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우상숭배인데, 어떻게 우상숭배했는지 한번 봐요.
(출애급기 32:4~6)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급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이 부분만 빼면 그 뒷부분은 똑같아요.
(24:4~5) 시내산 언약을 맺을 때를 보면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뛰놀더라.” 같아요, 달라요? 똑 같습니다. 번제와 화목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도 똑 같고, 제단 쌓는 것도 똑 같고.
(24:11)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먹고 마시는 거예요.
종교의 영은 뭐냐? 그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만든 신이라는 거예요. 오늘 우리 시대에 내가 만든 신이 많아요, 교회 안에도. 교인들이 오면 목사님한테 자기가 만든 신을 위해 달라고 “이렇게 해 주세요, 저렇게 해 주세요.”라고 요구하는 것이 많아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설교로 전하고 목회를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것이 힘을 얻게 되어 당회가 되면 심각하죠.
또 목사님의 입장에서도 정말 진리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게 될 때에는, 내가 생각할 때 이것이 바르다고 생각한 자기 철학을 가지고 밀어붙여요. 그러면 방법은 똑 같아요.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제단을 쌓고 즐기라고 하고 화목제와 번제를 드리고, 먹고 마시고, 뛰어 놀고, 똑 같잖아요? 제단 쌓고, 12기둥 세우고, 번제와 화목제 드리고, 뛰어놀고, 먹고 마시고, 똑 같아요. 다만 형식도 같고, 모양도 같고, 자세도 같지만 대상이 하나님이냐, 내가 만든 신이냐에 따라 다르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를 계시의 종교라고 그래요. 종교학적인 면에서 종교의 개념은 사람들이 의식주가 해결이 되면 즐거움을 찾습니다. 생존의 문제, 즐거움에 문제가 해결이 되면 그 다음은 방종하며 타락으로 가는데 그 사이에 뭐가 있냐 하면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큰 힘을 만나게 되요. 절대 힘을 만나게 되면, 지진, 쓰나미 자연 재해... 그러면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만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종교를 만든 거예요. 종교. 이런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더 큰 신을 찾아보자 해 가지고, 산을 신으로 모시기도 하고, 바다를 신을 보시기도 하고, 이러다간 다른 신이 노엽게 될 것 같다고 하여 나중에는 다 신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빗자루 신, 고무신 신... 혹시 그 신을 노엽게 해서 벌 받을 줄 모른다고 해서... 재앙이나 어떤 해(害)의 두려움 때문에 만들어 낸 것이 종교예요. 이게 종교학적인 정의입니다.
기독교는 그렇게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사건으로 시작을 하지요. 계시, 은혜, 전혀 다르지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 형식이 똑 같다고 해서 본질도 같다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단이 왜 이단입니까? 끝(端)에가 다르다(異)고 해서 이단이라고 그러잖아요? 본질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잘 봐야 되요. 아프리카 흑인들은 방언을 아주 많이 한답니다. 황홀경에 들어가면 이상한 언어가 나온다는 거지요. 방언하는 현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영역에 연결 되었느냐가 중요하지요. 우리만 예언하는 게 아니라, 중들도 예언을 합니다. 미래에 대해서...
또 금세기에 예언자를 많이 봤잖아요? 2012년에 세상 끝난다고 난리 났어요. 2012년 영화가 나오고, 과학적으로 2012년이 문제가 많데요. 크게 말하면 안 되는 얘기인데, 어떤 행성(行星) 하나가 지구로 오고 있데요. 그걸 해결할 방법이 없데요. 우리 지구에서... 그런 것이 2012년에 연결되어 있어요. 그런데다가 또 마야문명, 잉카문명, 옛날 고적에 무슨 카렌다가 있는데, 그 카렌다에서 2012년을 겨냥했다네요. 92년도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했던 것이 어디서 연유된 줄 알아요? 노스트라다무스가 99년에 끝난다고 하니까, 세대주의 휴거론자들이 7년 환난이 있기 전에 휴거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성경적 상식 ⇒ 92년⌟ 그렇게 나온 거예요. 머리 좋은 사람들이 작품을 만들어 보려고 그랬는데 그게 불발이 되어 버렸어요.
그 92년 설이 어디서 나왔어요? 종교가 강한 한국에서 나왔어요. 한국은 하나님도 많고, 성령님도 많고, 감람나무도 있고, 아버지 하나님도 있고, 어머니 하나님도 있고, 조심해야 되요. 똑 같은 형식이에요.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이것이 너희를 애급에서 이끌어낸 하나님이란다.” 그 내용도 똑 같아요, 똑 같아. 똑같이 복사하잖아요.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고 현상에 집중하면 나도 모르게 우리가 만든 종교 속에서 뛰어놀고 잔치하고 박수치는 거예요. 같이 뛰는 거예요. 같이. 혹여 군중심리나 문화적인 요구에 의해서 늘 긴장해야 되요. 성막을 건축할 때 보면 이런 긴장을 우리가 어떻게 focusing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 35장 : 성막 건축 - ‘마음, ’
(35:1)
(35:4,5)
(35:21-22)
(35:26,29)
(36:1)
(35:1) “모세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사 행하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35: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일이 이러하니라. 이르시기를”
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사 행하게 하신 일이 이렇다.” 또 “여호와께서 명령하심이 이러하니라.” 놓쳐서는 안 될 메시지 핵심이 뭐예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설교할 때 설교학에서 “그렇게 사료됩니다,”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선포는 그런 게 아니잖아요.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하라고 하지요. 자기 생각이나 유추에 의해서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런 모세에 calling에 대해서 백성들이 어떻게 응답했는냐 하면 5절에 보니까 “마음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우선 마음에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21절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22절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26절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들이,” 29절 “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누구나”
성령께서 이렇게 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동하는 마음의 갈망을 주신다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감동(感動)이라고 그러지요. 감동.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행하고자 하는 감동. 신약시대에 성령을 어디에다 부어주신다고 그랬어요?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다고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시대적인 차이가 있다면 구약시대는 주로 기름 부음을 밖에다 두었어요. 신약시대에는 그것을 마음에 둡니다. 고린도후서 1:21~22 봅시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마음을 움직인다는 거예요. 억지로 하는 순종이 아니라, 마음에 감동을 주고 자원하는 마음을 주어서 기쁨으로 할 수 있도록...
우리가 처음 부르심을 받을 때, 신학교를 가려고 할 때, 목사 안수를 받았을 때, 우리 마음이 얼마나 뜨거웠습니까? “내가 주님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내가 주의 제단에 제물 되겠습니다.” 마음을 드렸어요. 그런데 격무(激務)에 시달리고, 순한 양만 있는 것이 아니라 들이받는 염소 떼 속에서 시달리다 보니까, 이제 마음은 떠나버리고, 껍데기만 남아 가지고 억지로 할 때가 많이 있지요. 프로그램에 의해서 하고, 또 해야 된다는 당위성 때문에 하고, 그것도 필요하지요... 그러나 마음을 잃어버렸어요. 마음의 감동, 기쁨으로 섬기는 마음, 자원하면 열정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러나 억지로 하면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다보니까 stress가 간으로 와 버리고, 피곤이 누적되어 가지고 사람 만나기도 귀찮고... 우리 마음을 회복해야 되요. 이런 집회를 통해서 깊은 기도 가운데 들어가서 우리가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 마음에 다시 하나님의 성령께서 오신 touching을 경험해야 되요. 성령께서 나를 만져주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sensitive한 감성으로 돌아가야 되요. 그것을 영성이라고 하지 않아요? 하나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요구하시는 것을 듣고. 이번 주에 어떤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하고 이 메시지를 어떻게 증거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저는 공개강좌를 할 때에는 항상 출애급기를 먼저 합니다. 하나님. 이번에는 어떤 issue를 가지고 제가 접근을 할까요? 울산 지역이라고 하는 context가 다르잖아요? 울산 지역의 목회자들의 문화적인 context가 다르잖아요? 난 잘 모르지요. 이것을.
하나님 이번 주에 어느 부분에 강조점을 두어야 합니까? 늘 기도하면서 기다리죠. 이렇게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으려고 하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을 순종했을 때는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는 거지요. 어떻게 이번에 처음에는 억지로 오셨다는 분들이 많으셨다는데, 극동방송에서 다섯 번, 열 번 연락이 와서 할 수 없이 와서 인사하고 도망치려고 했는데, 잡혔다고요. 잡혔다는 말은 무슨 말이에요? 그게 감동을 받았다는 거지요 그게. 성령께서 마음을 휙 휘저어주니까 감동이 일어나는 거예요. 갈망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아. 내가 헌신해야 되겠구나.” 우리가 목회하면서도 늘 프로그램 따라가고, 스케줄에 따라가잖아요. 그러다 보면 마음을 잃어버려요. 늘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마음을 만져주시고 하나님을 만나는 여유를 가져야 되요. 그걸 못 가지면 점점 사울 왕처럼 되어 버립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출발 안했는데 나중에 유명해지고, 일이 많아지고,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은 간 곳 없고 프로그램만, 스케줄만 남아 있는 거예요. 그럼 이제 하나님은 간 곳 없고 내가 만든 프로그램, 내가 만든 목표에 충성하기 시작하는 거지요. 출발할 때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그랬는데 어느 새 내가 사업가가 된 거예요. 내 사역에 반대하는 사람은 걷어차 버려야 되요. “저 사람이 나를 반대해” 그러면 불편한 거예요. 그런데 출발할 때는 안 그랬거든요. 진짜 한 영혼이 소중하게 느껴졌고 그 영혼들을 섬기기 위해서 기도했고 한 사람의 실족자를 위해 금식도 했고 그런 민감한 마음을 가지고 성령님에 의해서 움직였던 사람이, 이제는 일이 너무 많아지니까 귀찮아지는 거예요. 설교도 길게 하는 사람 안 쳐다보고 싶어요. 솔직하게... 상담을 몇 번이나 해야 되나 이러면서...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만지신다는 것을... 이 마음이 딴 데 사로잡혀 있으면 답이 안 나옵니다.
< 출애급기 강의 (12) >
지금 이 화면을 보십시오. 이 자매, 이 키 큰 자매 있지요? 공을 몇 번 받고 pass하는지를 세어보는 겁니다. 제가 여러 군데에서 했는데 정확하게 맞추는 사람들이 없더라고요. 울산은 과연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맞추는지... 자. 이 자매를 잘 보십시오.
< 영상 >
고릴라를 못 본 이유는 여러분들이 집중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보란 말도 안 했는데 본 사람은 둘 중의 하나예요. 아주 주의력이 산만하거나 타고난 천재성이 있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왜 이 그림을 보여드리느냐 하면,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차례 찾아오셨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셨지만, 우리가 어느 것 하나에 집중 되어있으면 다른 것을 못 봅니다. 이게 문제예요. 우리 인간의 한계거든요.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관심사가 되어야 하고, 구속사가 관심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것을 이것보다 더 집중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는 고릴라가 나와서 춤을 추고 지나가도 못 보는 거예요. 이제 보니까 보이잖아요? 그리고 저렇게 큰 action을 못 보다니 우습잖아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고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는 자세로 볼 때 하고 다른 목적을 가지고 볼 때하고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신앙생활이 자기 야망, 자기 욕망, 자기 갈증을 실현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복은 받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게 광야 백성이거든요.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겁니다. 더 좋은 빵을 먹어야 되고, 바로보다 더 나아야 되고, 애급에 살 때보다 더 나아야 된다는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을 때는 하나님의 영광도 미래에 대한 약속도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집중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데 그 집중의 대상이 누구냐? 진리의 하나님이에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복음. 그럴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지만, 자기 야망, 인기.., 사울이 나중에 인기에 편승하잖아요. 하나님은 너를 버렸다고 그러는데도 사무엘에게 사정을 해요.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 해도 당신이 나를 비행기를 좀 태워 달라고 장로들이 나갈 때 따라오라고, 내 입지를 좀 세워달라고... 이미 사울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어져 버린 거예요. 사울이 하나님을 버렸으니 하나님이 사울을 버릴 수밖에 없잖아요? 이것이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격무에 시달리고 여유 없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우리가 나도 모르게 자칫 흘러갈 수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진리에 서 있는지를 늘 확인해야 되고 검증해야 되고 그것들을 도와줄 수 있는 network을 형성해야 되고, 서로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되고, 도움을 줄 수가 있어야 되요. 그래서 목사들의 모임이 필요합니다. 교인들 앞에 가면 항상 위엄을 가져야 되고, 위치를 지켜야 되고, 하고 싶은 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긴장 속에 살잖아요. 그런 차원에서의 삶만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놓고 나눌 수 있는 이런 지기(知己)가 있어야 합니다. 교제권이 아주 중요합니다.
★ 성막의 구조적 의미 - 생명의 성숙
(1) 출입문 - 구원
(2) 뜰 - 번제단, 물두멍
(3) 성소 - 떡상, 금등잔대, 향단
(4) 지성소 - 속죄판, 그룹, 언약궤
성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서 내가 너희를 만나겠다고 말씀하셨고,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또는 우리와 함께 하심을 거기서 확인할 수 있고... 성막은 이 땅에서 천국을 사는 중요한 공급과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이게. 그래서 우리가 성막에 나아갈 때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신선한 공급을 받고, 또 정결케 되는 경험을 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영광, 후광을 입고, 돌아서 나올 때는 우리 몸에서 그 분의 향기, 그 분의 후광이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고린도후서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 뵙고 산 아래로 내려왔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너무 커서 수건으로 자기의 얼굴을 가렸어요. 율법에서의 영광도 이렇게 큰데, 하물며 신약시대 새 언약을 통한 영광은 얼마나 크겠느냐? 우리가 주의 형상을 보매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러 주의 형상으로 변화된다고 말씀하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집중하고, 또 하나님을 목표로 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경영, 하나님과의 관계를 내가 늘 돌볼 때, 작은 영광에서 큰 영광, 이젠 우리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막은 구약에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으로 주셨지만 신약에 나타날 완성에 대한 예표고, 성령님이 오셔서 교회를 인도하시고 또 마지막 구속사의 완성을 도모하시는 이 마지막 때에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에 대한 좋은 모델이 됩니다.
(1) 우선 출입문은 구원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10:9-10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그랬습니다. 구원만 얻는 것이 아니라 꼴, 양식 공급을 받는다는 거지요.
(2) 뜰은 씻음의 장소지요. 거기 번제단이 있고 물두멍이 있습니다. 번제단은 피로 씻는 곳이고, 물두멍은 물로 씻는 것이지요.
(3) 성소는 공급의 장소지요. 떡상, 금등잔대, 향단,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령한 양식들을 공급받는 곳입니다.
(4) 마지막 지성소는 하나님을 배알하는 곳인데, 거기에 속죄판이 있고, 그 언약궤 위에 그룹이 있고, 그 밑에 언약궤가 있습니다.
성소가 네 부분으로 되어있다고 하는 것. 들어가는 문, 씻음 받는 장소, 공급받는 장소, 하나님의 영광을 배알하는 장소로, 네 부분의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염두에 두고 이제부터 진행을 합니다.
★ 생명의 성숙 - 뜰 (벗고 씻음)
(1) 번제단 - 피로 씻음 (히 9:22)
(2) 물두멍 - 물로 씻음
⋅ (벧전 3:20-21)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 (마 28:18-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막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 (행 2: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어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 (행 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우선 번제단은 피로 씻는 장소입니다. 히브리서 9:22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대속의 제물이 있어야 되요. 내가 내 문제로, 내 죄 문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지은 죄를 대신 심판 받고 나를 위해서 대속할 제물이 필요합니다. 그 피가 나를 씻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구원받은 사람들도 항상 피의 씻음을 의식해야 합니다.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나아갈 때 반드시 먼저 피로 씻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피의 제사가 없으면 하나님께 열납 될 수가 없습니다.
둘째는 물두멍입니다. 여기는 물로 씻는 장소지요? 성경적인 개념으로 말씀드리면 여기가 세례의 장소입니다. 피를 만졌기 때문에 제사장의 손의 피를 물두멍에 씻고 성소로 들어갑니다. 요한복음 3:5에 물과 성령으로 할 때 그 물을 학자들이 ‘말씀이다.’라고 해석 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러나 성경 전후의 상황을 보면 그 물은 세례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더 성경적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물은 내 쪽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내가 나를 내려놓겠다는 나의 자기부인이고, 성령은 위로부터 나를 도와주시는 것이지요.
★ 생명의 성숙 - 성소 (공급)
(1) 떡상 - 말씀 (요 6:47-51)
(2) 금 등잔대 - (요 16:7-13)
(3) 금 향단 - 찬양, 기도, 예배 (계 5:8;8:3-5)
성소에 들어가면 떡상이 있고 금 등잔대가 있고 금 향단이 있습니다.
① 떡상은 말씀입니다. 열두 개의 떡을 진설해놓고 한 주간이 지나면 새 떡을 갖다 진설하고 묵은 떡은 제사장이 먹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 “내가 떡이니 나를 먹어라, 내가 음료니 나를 마셔라.”할 때 떡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② 그 건너편에 금 등잔대, 옛날에는 금 촛대라고 번역을 했죠. 금 등잔대가 있습니다. 촛대는 초가 타는 것인데, 이것은 기름을 공급하기 때문에 촛대라고 번역하기 보다는 등잔대라고 해야 한다. 이것이 학자들의 견해죠.
요한복음 16:8에 보면 “성령이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은 오시면 우리를 비춰줘요. 성령이 오시면 어두움 가운데 있는 것을 드러냅니다. 내가 잘못 살았던 것들 ... 성령이 오시면 이렇게 자꾸 드러내줘요. 성령의 조명(照明) 혹은 성령의 조망(眺望)이라고 하지요. 자꾸 우리를 빛 가운데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죠. 성령이 자꾸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잖아요? 내가 누군가 미워하고 있다 할지, 또한 내가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다고 할 때, 우리 마음에 성령께서 불편함을 줘요.
③ 금향단은 하나님께로 드려 올려지는 찬양, 기도, 예배입니다. 계시록 5:8에 보니까 천사들이 와서 금대접에 향과 기도를 받아 갑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향은 사람이 맡거나, 사람의 향수를 위해서 만들면 하나님 앞에서 끊쳐지리라고 그랬어요.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예배 찬양은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죠.
우리 총회에서 이런 예식을 할 때에 용어를 바꾸라고 그랬잖아요? 결혼예배가 아니고 결혼예식, 회갑기념 예식입니까, 예배입니까? 심지어는 출판기념예배, 이런 것도 하잖아요? 박사학위취득기념 예식이에요, 예배예요? 예배라는 개념을 쓰지 못하게 한 이유가 무엇이에요? 예배는 누구한테만? 사람한테 돌리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이런 것은 아주 성경적으로 잘 규명한 것 같아요. 전적으로 이 향은 하나님을 향해서만... 사람이 맡기 위해서나, 자기 몸에 향품으로 쓰기 위해서 하면 끊어진다는 거예요.
★ 생명의 성숙 - 지성소 : 교통의 삶
- 지성소 : 속죄판(시은좌), 그룹, 언약궤
나를 이끌고 가는 나의 언약궤
① 감추어진 만나 - 공급원
② 아론의 싹 난 지팡이 - 영적 권위
③ 돌비 - 삶의
⋅ 하나님을 섬기는 삶 : 예배
⋅ 사람들을 섬기는 삶 : 사랑, 존대
자.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세 가지가 있어요.
1) 지성소 안에 속죄판(贖罪板), 시은좌(施恩座)라고도 하지요. 속죄판이 있고, 그 위에 그룹이 있고, 언약궤가 있지요. 지성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에요. 하나님을 배알하는 장소지요. 그래서 가지고 들어온 피를 속죄판에 뿌려요. 그러면 백성들의 죄를 사함 받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내가 너희를 만나겠다.”할 때 두 군데를 얘기하셨지요. 하나는 여기 ‘시은좌’이고 또 하나는 ‘번제단’입니다. 피가 있어야 하나님 만난다는 거죠. 번제단에 뿌려진 피는 개인들의 죄를 속죄 받기 위해 뿌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리고 일 년에 한 번만 백성을 위해서 피를 뿌리고, 일 년에 한 차례만 속죄판에 와서 백성을 위해서 피를 뿌리죠. 그러면 백성들의 죄가 사함 받습니다. 이것을 ‘은혜의 보좌’라고 그러지요. 히브리서 4:16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할 때의 바로 ‘시은좌’가 ‘은혜의 보좌’입니다. 이것은 언약궤 위에 있는 속죄판을 말합니다. 지성소에 들어갈 때 ‘내가 죄인입니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야 됩니다.
2) 둘째, 그룹(Cherubim)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그룹이죠. 그 영광을 우리가 뵙게 되고,
3) 언약궤에 가면, 언약궤 안에 세 가지가 있어요. 감추인 만나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돌비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이런 언약의 마음으로 나아가는 내용입니다. 자, 언약궤 안에 있는 세 가지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① 첫째 감추인 만나 - 언약궤에까지 들어왔다가 나가는 사람이 누구예요? 구약으로 말하면 대제사장이지요. 구약에서는 유일하게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만 들어왔어요. 그것도 얼마나 엄격하게 제한을 했는지 몰라요. 그 대제사장의 복장을 보면 에봇 끝에 석류모양의 종을 달았어요. 우리로 말하자면 레이스(lace) 다는 자리지요. 이 종은 소리가 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지성소 안에 들어갔는데 대제사장이 들어가서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가지고 죽어요. 그러면 시체 꺼내려고 들어갔다가는 또 죽어요. 그렇게 지성소는 무서웠어요. 그래서 에봇 허리끈에다가 리본 같은 것을 길게 달아요. 이렇게. 성소에서 일반 제사장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방울소리가 안 들리면 죽은 줄 알고 뒤에서 당기는 거예요. 그러면 “어~ 나 살아있다. 가만히 있어라.”라고 하면, 가만히 계속해서 방울 소리만 듣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지성소는 무서웠어요. 뭘 의미하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출발은 은혜로 출발합니다. 그 다음은 우리가 하나님과 코드를 맞추는 거예요. 사람을 창조할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거든요.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우리를 창조했거든요. 타락을 해가지고 우리가 무너지니까 할 수 없이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거예요. 그래서 자격을 부여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거지, 너희들이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고 봐 주는 게 아니에요. 이게. 그래서 복음은 뭐냐? “예수님이 내려오셨다가 예수님이 올라가셨다.”고 하는, 하늘로 올라간 자는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 “내리셨던 그가 곧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라.” 어제 우리가 배웠죠? 내려오실 때는 누구를 모시고 내려왔어요? 하나님, 구원, 영생을 갖고 왔단 말이에요. 이렇게. 그 영광을 모시고 왔어요. 그리고 올라가실 때는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아 데리고 올라가셨다는 거예요. 우리를 구원받고 하나님의 종자를 받은 사람들을 훈련시켜서 다시 지성소 수준으로 끄집어 올리는 거예요. 신약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하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왕 같은 제사장은 ‘어랏차차’하면서 휠체어 (탄 사람) 일으키고, 죽은 사람 살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수준이 무슨 수준? 대제사장의 수준이 된다는 거예요.
제사장은 반드시 레위기를 공부해야 되요. 레위기를 모르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을 모르는데... 제사 법도를 알아야 되요. 성경에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출애급기에도 성막 만들 때도 그랬고, 민수기에도 그런 부분이 많이 나오고, 레위기에도 고가 몇 규빗, 광이 몇 규빗, 뭐 판자는 어떻게 하고... 이것을 왜 자세하게 써 놓았어요?
쉬운 질문을 합니다. “평신도를 위한 겁니까? 제사장을 위한 겁니까?” 제사장을 위한 거예요. ‘예수 믿고 구원받읍시다.’하는 사람들은 이걸 보면 잘 안 보여요. 자기 얘기가 아니잖아요? 양복점에 가니까 이렇게 두꺼운 책이 있어요. 재단은 어떻게 하고... 이 책을 주면 관심이 있어요, 없어요? 줘도 봐요, 안 봐요? 왜 그래요? 그 책은 재단사를 위한 거지요. 왜 성경이 재미가 없느냐? 교인들, 일반 평신도들, 제사장 mind가 없는 사람들은 너무 어려워요,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제사장들은 이게 너무너무 귀한 자료예요. 이게. 이거 보고 연구하는 거거든요. 이것은 비전이예요. 비전... 하나님의 성령께서 신약시대에 제사장들이 많아질 것을 아시고 자세하게 이런 놀라운 기록을 남겨 놓았어요. 지도자의 수준이 평신도 수준이면 볼 필요도 없어요. 요한복음 3:16 가지고 평생 우려먹고 사는 거예요 그냥.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하면서 시사 이야기도 좀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좀하고... 이렇게 하면 재미있잖아요? 그러면서 슬슬 웃어가면서 한 세월 살다가 죽은 다음에 좋은 데 가면 좋지요 뭐. 그것이 복음입니까? 이 사람들은 지성소로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러면... 수준이 마당에서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이지요. 맨 날 죄 사함 받고 구원 받는데 감사해야죠, 뭐... 이건 제사장이 아닙니다.
제사장은 뭐냐? 제사장은 씻음을 받는데, 죄만 씻어서는 안 되고, 물로 내면(內面), 자아를 씻어야 되요, 자아를... 자기 왕국 세우면 큰일 나는 거예요. 부부가 싸웠어요. 그 중에 한 사람만 제사장이 있으면, 제사장은 자기를 내려놓는 거예요, 너 세례 받았잖아? 너 자기 부인(否認)하겠다고 결단했지? 그럼 네가 양보해... 제사장은 죽었다 깨어나도 싸우지 못해요. 왜요? 세례 받을 때 약속을 해 버렸거든요. 내가 아닌 그리스도를 위해 살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자기가 손해보고 양보하는 거예요. 그냥. 떡상 위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등잔대 위에서 하나님의 비침을 받고 향단에 가서 하나님을 배알할 수 있도록 온전히 하나님께 코드를 맞추고 “O.K. 들어와라” 하면 들어가서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거예요. 속죄판에서 죄를 씻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자기를 비쳐보고 언약궤 앞에서 세 가지를 확인하는 거예요.
지금 내가 누구 얘기하고 있어요? 제사장 얘기예요, 평신도 얘기예요? 사실은 신약시대에는 평신도라는 개념이 모호한 개념입니다. 우리를 다,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그 육체가 찢어질 때에, 휘장이 찢어지면서 우리가 다 지성소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평신도란 말은 사실은 모호한 개념입니다. 그러나 굳이 사용해야 된다면 제사장 권위를 빼앗긴 사람들, 구약의 엘리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잃었죠? 제사장이면서 제사장의 권위를 잃어버렸던 사람, 홉니와 비느하스 같은 사람, 왕관을 잃어버린 사람, 장자권을 잃어버린 사람, 그런 사람들은 부를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평신도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원래는 다 우리가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어요. 그러니까 성경의 수준이 낮은 수준이에요, 깊은 수준이에요? 깊은 수준이죠.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책입니다. 회사에서도 leader급으로, 중역으로 올라갈수록 회사의 기밀 사항을 많이 알고 있어요. 아랫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어요. 군대도 마찬가지죠. 장교들은, 더 높은 장교들은 더 깊은 비밀을 알고 있어요. 성경은 open시켜 놓았어요. 예수님도 비유로 말씀하셨잖아요.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귀가 있어도 다 듣지 못한다. 눈이 있어도 다 보지 못한다.” 깨닫는 귀가 있고 보는 눈이 있다는 거예요. 왜 비유로 말씀하셨는가 하면 너희가 다 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내가 비유로 얘기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감추어진 비밀이라는 거예요. 교회론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말씀이 뭔지 몰라요. 그냥 교훈서로 생각해요. 그저 논어 한 구절 얘기하고, 사서삼경 한 구절 얘기하고, 성경 한 구절 얘기하는 그런 수준으로 생각하는 지도자들 많이 있어요. 이건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이건. 그 분이 4대 성인 가운데 한 분입니까? 그 분이... 그런 차원에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이 비밀을 못 보는 거예요. 어떤 분이 저 보고 그러더라고요. 박 목사는 죽으면 뇌를 좀 분석해 보아야 된다고요. 예수 믿고 천당 가고 요한복음 3:16만 알면 되었지, 창세기 출애급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배워서 뭐할 거냐고요? 교인들 그렇게 가르쳐서, 머리 아프게 할 거 뭐냐고요. 박 목사 뇌를 연구를 좀 해봐야 할 사람이라고 그러더라고요. 내가 대답은 안 하고 웃었지만, 내가 속으로 당신 뇌를 조사해보아야 되겠다. 아니, 하나님이 어련히, 무슨 성서공회 돈 보태주려고 이렇게 두껍게 했어요? 안 닳아지게 가죽까지 입혀 가지고 말이에요. 이것은 평생, 평생 연구해야 할 책이에요. 하나님은 지구에 있는 모든 공간과... 찬송가에 얼마나 멋있는 가사가 있어요? “바다를 먹물 삼고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도 그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데... 겨우 몇 년, 2~3년 공부해가지고 하나님 안다고 떠들어대는... 그것 아닙니다. 깊이 연구하고 더 묵상하고, 더 기도하고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먼저 “성숙한 선배들과 어르신들이 평생 목회하면서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목사님께는 어떤 은총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까? 그걸 제게 전수해 주십시오.” 이런 영적 질서가 우리 교회 안에 딱 잡혀야 되요. 요즘 춘추전국시대예요. 어른도 없고, 애도 없고, 질서도 없고, 처음 목사 안수 받을 때 노회 가면 참 재미있었어요. 어르신들이 계셔가지고, ‘어흠’하면 다 조용했어요. 요새는 뭐 앤지 어른인지 그냥 나와 발언한다고 마이크 잡고 떠들어대고...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질서도 없고, 위아래도 없고, 그냥. 우리 시대가 그래요. 우리 시대가. 옛날에 대가족제도 시절에는 어르신들이 가르쳐주신 것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 것이 우리 목회자 세계에도 있거든요. 한 세상을 사신 분들이 30~40년 목회하면서 얻어진 그 지혜가 얼마나 크겠어요? 나이 70인데, 아직 정정한데 ‘물러나라’ 그러고, 그 어른들 할 일이 없어 그냥 낚시나 하러 다니고, 그냥. 참 안타까워요, 그런 것들이... 노회에 그런 컨설팅회사를 만들어 가지고 은퇴한 노인들 다 모셔가지고 후학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구원의 문 들어가서 씻는 정도로, 피로 씻는 정도로 일생을 마치는 사람이 있고, 그 안에 들어가서 세례를 받고, 자기를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성소의 공급을 받고, 돌아 나와서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고, 더 깊은 데 지성소까지 들어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배알(拜謁)하고 그 분의 대행자가 되어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고, 질이 다릅니다. 하늘의 원본을 가져다가 그대로 땅에 ‘모델 하우스’ 만들어 놓은 것이 성막이잖아요. 안 가 봐도 저는 어려서부터 제 주변에는 그런 분들이 많았어요. 갔다 왔다. 뭐 보고 왔다 그래요. 그래서 제가 그런데 관심이 있어 계속 연구를 했어요. 성경을 보는데 보고오기는 왔는데, 어디 귀퉁이 보고 와서, “뭐 금이 많더라, 꽃나무가 많더라.”라고 말한 사람들도 있고... 모세 어르신보다 더 많이 본 사람이 없어요. 정확하게 봤어요. 안 가 봐도 나는 그 동네를 훤히 봐요, 훤히. 성막이 그거거든요. 그곳에 가서 저 뜰에 있을 사람이 있고, 아버지 가까이에 가서 겸상해서 나의 잔치에, 나의 식탁에 참여하라고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의 대우를 받는 사람이 있다니까요.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와서 나의 잔치에 참여해라.” 아버지의 식탁 제일 가까운 데 가서 식사할 사람들이 있어요. 같지 않아요, 우리가... 입학이야 똑 같이 했지만 졸업할 때는 다르잖아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에요.
언약궤 안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감추인 만나, 둘째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셋째는 돌비입니다. 감추인 만나는 “40년 동안에 내가 너희를 어떻게 먹였느냐?” 양식은 내가 준다. 내가 너의 양식이고, 내가 너의 공급원이고, 내가 너에 보장이다. 적어도 네가 나를 대행해서 제사장으로 살려면 빵 문제에는 얽매이지 마라. 그것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누가 어디서 얼마 받고 그런 것 헤아리지 말고 내가 너의 공급원이 될 터이니까. 너 이거 확인하는 거예요. 빵 문제 해결 되었습니까? 우리는 많이 받아도 섬기고, 베풀고, 살리는 데 쓰기에, 탐욕을 위해서 물질을 버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는 지성소에 들어가서 감추인 만나를 보면서 “나의 공급원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만족은 하나님입니다.” 이거 고백할 수 있어야 제사장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안 받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받아도 이번에 어느 어르신이 80억 내놓았잖아요. 장학금하라고, 야! 원래도 훌륭한 어른이지만 달리보이더라고요. 우리가 모이는 이유가 뭐예요? 우리가 복을 받고 능력을 받고 우리가 잘되고 하는 것은 나의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뭐예요? 섬기기 위해서 살리기 위해서... 우리는 무소유(無所有)가 아닙니다. 유소유(有所有)입니다. 그 대신 이 땅을 우리가 책임진다. 우리가 왕이고 제사장이거든요. 베풀어야 되거든요.
② 둘째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이것은 영적 권위입니다. 민수기 17장에 보면 고라 자손들이 반역을 일으키잖아요? “너희만 기름 부음 받았느냐? 우리도 레위지파고, 우리도 기름부음 받았다. 왜 너희들만 잘 난 체 하느냐?”하며 반란을 일으켰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12지파의 지팡이를 가져와라 해서 지팡이를 다 세우고 레위 지파의 지팡이는 아론의 지팡이를 대신해서 지팡이를 세웠지요. 자고 났더니 잎이 나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가 맺힌 지팡이는 아론의 지팡이였어요. 그러나 나머지 11지파의 지팡이에서는 아무런 표가 나타나지 않았어요. 이때 나온 유명한 말이 있어요. “죽은 나무에는 봄이 없다.” 그런 유명한 명언이 거기서 나왔어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제일 화를 내신 때가 언제냐? 이때였어요. 우리 한국 아버지 같았으면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하시면서 된 발음이 많이 나왔을 것이에요. 삼중심판(三重審判)이 내렸어요. 염병(染病)이 와서 싹 죽였어요. 그것도 부족해서 위에서 불이 내려와서 싹 태웠어요. 그것도 부족해서 땅을 싹 갈아가지고 싹 묻어 버렸어요.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렇게 했겠어요? 소돔성을 심판하실 때도 그렇게 안 하셨어요. 노아 홍수 심판 때도 그렇게 안 하셨어요. 이건 뭘 의미하느냐? 정-말 중요한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천사가 와서 하거나 예수님이 또 오셔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진행이 되는데, 사람 지도자를 인정하지 않으면, 사람 가운데 세운 리더를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속사를 펼쳐 나갈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교회 가운데 leadership을 목사님께 주셨으면 목사님의 영적 권위에 다 복종해줘야 합니다. 장로님이 박사학위 더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 영적 권위에 대해 복종해줘야 그 교회 영적 질서가 세워집니다. 우리 시대는 실용주의 시대가 되어서 쓸모 있으면 쓰지만, 쓸모없으면 잘라버려요. 이것은 하나님의 영적 권위하고 전혀 다른 거예요. 자 목사님들이 20명이 모였어요. 그곳에서 만약 대표를 뽑았으면 19사람은 의견 개진을 하다가 결론이 나오면 한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민주주의 훈련이 잘 안 되어 있어요. 회의 결론을 난 후도 또 뒷소리를 해요. 이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leadership은 한 사람에게 줘요. 가정에 가장은 누구예요?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지면 가정은 다 무너져요. 엄마가 대신할 수가 있지 않나? 천만의 말씀, 아버지가 안 계시면 모르지만 아버지가 계시는데 엄마가 leadership을 가지면 가정이 무너져요. 애들이 다 정신적으로 혼란을 느껴요. 무능해도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해 주어야 해요. 아주 어려운 얘기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누구에게 이 공동체의 leadership을 주었느냐? 모세만 똑똑했겠어요? 250명 족장들 가운데 모세보다 더 잘난 사람이 없었겠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leadership을 모세에게 주었으면 모두가 모세의 leadership에 복종을 해 주어야 되요. 의견 개진은 하지만 마지막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어요? 모세에게 있는 거지요. 모세는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께 묻고 백성들에게 물어야 할 것은 백성들에게 물으면서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사역을 해야 되기 때문에...
얼마 전에 네팔에 우리 신학교를 세우기 위해서 교회 대표 몇 분하고 저희 교회 영어예배에 사역하시는 세슨 목사님이란 분과 가족들하고 네팔을 가게 되었어요. 현지답사를 하고 상황 조사를 하는데 우리 가시는 분들이 네팔에 가서 선교하신 지 10년이 넘은 분하고 연결이 되었어요. ‘네팔에 오면 제가 좀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듣던 세슨 목사님의 얼굴이 하얗게 변한 거예요. 자기는 못 가겠다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하니까? 그럼 그 사람이 다 알아서 할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너 무슨 얘기하냐?” 그랬더니. 그 분이 이런 이야기 하는 거예요. “leadership은 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네팔에 10년 살았다고 ‘이리 가자 저리 가자.’ 하고, 내가 호텔 예약 다 해놓았는데, ‘이 호텔이 좋습니다’ 하면 자기가 어떻게 되냐”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걱정하지 마라. 내가 교육시켜서 보낼 테니까 염려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고서는, 그리고 같이 가신 실무진에게 명확하게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는 이 팀에 팀장은 이 세슨 목사님이십니다. 그곳에서 선교사님이 마중을 나와서 삼일 동안에 동행을 해도 이 분의 leadership에 도전을 하거나 다른 얘기하면 절대 안 됩니다. 철저하게 그 분이 이 세슨 목사님의 질서 하에 들어오겠다고 하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 분이 안 간다고 그럽니다.”라고 하니, 아, 염려하지 말라고 하며 그대로 지키겠다고... 그러고 그 선교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절대 무리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전화를 받고 갔다 왔습니다. 다녀와서 제가 물어 봤습니다. 어떻게 leadership에 문제가 생겼는지 물어봤더니, 같이 가신 분들이 너무 훈련이 잘 되어 가지고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제가 무슨 얘기하는지 이해가 되지요? 그러니까 누가 높으냐, 낮으냐의 문제가 아니고 이 팀의 leadership을 하나님이 누구한테 주었느냐에 따라 내가 더 어른이어도 하나님이 저 분을 세웠다 하면 나는 그 밑에 들어가야 되요. 이것을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이거든요. 그런데 교회 안에 이런 질서가 지금 다 무너져 버렸어요. 개척 1세대 때는 문제가 없었어요. 목사님이 개척을 했기 때문에 권위가 있잖아요. 그 개척하셨던 목사님이 물러나가시고 당회가 목사님을 청빙하게 되었어요. 결정할 권한이 당회에 있다 보니까 이제는 거꾸로 되어 버렸어요. leadership이 거꾸로 되어버렸어요. 당회가 키를 잡고 있고, 목사는 고용인이 되는 거예요. “월급 줄게, 너 우리 말 들어주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 “말 안 들으면 사례비 주지 않겠다. 청빙하지 않겠다.” 이러다 보니까 leadership에 혼란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서 이 공동체에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야 할 일에 신경을 써야 되는데, 이 사람들의 비위 맞추는데, 그것도 또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요. 그런데 파워 게임을 하는 거예요. 이것이 현실이 되어 버렸어요. 하나님은 아주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당회의 기능은 목회자가 일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종으로서 일할 수 있도록 모든 주변 여건을 정리해주고 지원해주는 역할을 해야지, 위에서 조종하거나 control하는 일을 하면 leadership에 큰 혼란이 와 버립니다. 이런 것들이 이 시대에 가치관과 혼합이 되어가지고는 이게 하나님의 공동체인지, 무슨 파워게임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에요.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가운데 주기철(蘇羊 朱基徹, 1897-1944) 목사님의 스승이 조만식(古堂 曺晩植, 1883-1950) 장로님 아닙니까? 오산학교 출신인데, 어느 날 조만식 장로님이 예배 시간에 늦었어요. “장로님 거기 서세요.” 예배 끝날 때까지 그곳에 세웠다고 하잖아요. 요새 이런 일 생기면 어떻게 됩니까? 몸이 근질근질하죠. 수(首) 장로님인데... 존경받는 어르신이데, 그런데 그 조 장로님이 무릎을 꿇고 “목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라고 사과를 했다고 그러잖아요. 이게 하나님 나라의 질서라는 거지요. 나이도 많고 자기 제자지만, 하나님이 주신 영적 권위를 인정하고, 그 말씀하심 앞에 무릎을 꿇는 그 자세. 그러니까 조만식 장로님은 역사에 빛나는 위인이에요. 지금은 우리가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또 목사님들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대표로 뽑았든 간에 어느 공동체에 한 분을 대표로 세웠으면 나머지 분은 그 분을 지원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쟤, 쟤, 내가 키웠는데...아. 저.” 이러면서 눌러버리는 거예요.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어른 되었다고 큰소리치느냐?” 이러면서... 또 한 쪽에서 “야야. 모여, 모여.” 해 가지고 갈라서 나가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가 없는 거예요.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뭐냐? “너 제사장인데 땅에 세운 영적 질서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예요.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앞에, 이 권위 앞에 복종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거예요. 자 아들이 목사고, 아버지가 장로님이에요. 교회가 가정의 질서를 따라가야 됩니까, 교회 질서를 따라가야 됩니까? 그겁니다. 바로. 그런 것들을 복종할 수 있는 사람이 제사장이라니까요. 너 하나님 앞에 결단할 수 있겠느냐는 거예요. 이걸 뭐하러 집어넣었겠어요. 계속 가지고 다녔잖아요.
③ 셋째 돌비에요. 두 쪽으로 되어 있지요. 하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하나님은 예배의 대상입니다. 이용의 대상이거나 무슨 수단이나 방법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은 존경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면 큰일 나죠. 둘째는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겠다. 이게 목회 철학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을 늘 존중하며 높이며 경배하는 것과 사람을 소중이 여기는 이 철학을 가지고 내가 제사장 역할을 감당하겠습니다. 이런 다짐입니다. 이게. 보통 우리가 지성소에 산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산다는 것은 “내가 지성소의 삶의 원칙들을 accept하고 그대로 하기로 동의합니다.”라고 도장을 찍는 것을 뭐라고 말하냐 하면 지성소의 삶을 산다고 해요. 기도하면 자기는 뭘 본다, 그건 현상이에요 현상. 그 내용을 들어가서 철학을 보면 “이런 것이 내 사상이고 내 삶이고 내 원칙이다.”라고 선언하는 사람이 지성소의 삶을 사는 사람이에요. 그때 하나님의 형상과 왕권을 가지고 나온다는 거지요.
★ 예수 그리스도를 누림의 차이 - 공간적 의미의 차이
(1) 뜰 -
(2) 성소 - 공급 받음
(3) 지성소 - 그의 영을 좇음 ( )
자. 백성과 제사장과 대제사장의 차이가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누림의 차이.
공간적인 의미를 볼 때 뜰은 씻는 곳입니다. 피로 씻는 거예요. 죄에 문제만 해결하고 끝나는 거예요. 뜰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그러나 성소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님의 의로 채움 받은 사람이에요. 말씀으로, 성령으로, 하나님의 의로 채워진 사람이에요. 그것은 세례, 자기가 부인되어졌을 때,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거예요.
그러나 지성소를 사는 사람은 더 깊어요. 하나님의 영을 좇습니다. 요새말로 하면 코드를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코드가 맞다.
★ 예수 그리스도를 누림의 차이 - 음식의 차이
(1) 뜰 - 만나
(2) 성소 - 진설병, 제물
(3) 지성소 - 감추인 만나 (계 2:17)
음식에 차이가 있어요. 광야를 살면서 음식이 박하다고 늘 불평했는데, 그 사람들이 누군가 하면 뜰만 왔다 갔다 하던 사람으로, 그 사람들은 만나밖에 못 먹었거든요. 그런데 성소 안에 들어간 사람은 음식이 달라요. 진설병을 먹었죠, 하나님이 잡수시던 떡을 먹을 뿐만 아니라 제물을 먹어요, 제물. 그것도 좋은 부위. 기름은 다 잘라서 하나님께 드리고 그 옆에 붙은 제일 좋은 부위를 제사장들이 먹었어요. 지성소에 들어간 사람은 더 깊은 음식이 있어요. 감추인 만나. 하나님을 공급원으로 사는 사람, 하나님이 나의 양식인 사람들,
★ 예수 그리스도를 누림의 차이 - 빛의 차이
(1) 뜰 - 자연 빛
(2) 성소 - 성령의 빛
(3) 지성소 - 하나님의 영광의 빛
그들이 경험했던 빛에 차이가 있었어요. 백성들은 자연 빛, 태양 빛만 가지고 살았어요. 그러니까 밤이 있고, 낮이 있고, 저물어가고, 동이 트고 그랬어요. 낮과 밤이 늘 있었어요. 명암이 엇갈렸죠. 그러나 성소에 들어간 사람들은 밤이 와도 걱정이 없어요. 거기에는 등잔대의 불빛이 있기 때문에. 성령께서 마음을 비추면 어두움이 와도 어두움이 먹히지 않습니다. 성령의 조명이 있기 때문에. 그러나 더 깊은 데 들어간 사람들은 그룹에서 비춰 나오는 영광의 빛이 있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어둠이 없어요. 하나님의 빛으로 살지요. “우울하다, 슬프다, 죽고 싶다.” 이게 너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백성입니까, 제사장입니까, 대제사장입니까? 백성입니다. 어두운 밤이 오고, 시련이 와도, 밝게 기쁘게 희망을 붙잡고 사는 사람은 누구에요? 제사장이나 왕 같은 제사장이에요. 달라요. 내면에 빛이 있기 때문에. 밖에서, 환경에서 오는 위로가 아니라, 교인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든, 사람들이 나를 평가할 때 뭐라고 하든 간에 나는 내면의 빛, 내 주님으로부터 오는 빛, 하나님의 영광, 약속으로부터 오는 빛 때문에 사는 사람은 제사장들이에요. 옷은 제사장 가운 입었는데 속은 평신도가 많아요, 백성이 많아요.
★ 예수 그리스도를 누림의 차이 - 섬김의 차이
(1) 뜰 - 자기 자신을 돌봄(피동적)
(2) 성소 - 하나님과 사람을 섬김
(3) 지성소 - 하나님의 가슴(교회와 열방)을 섬김
섬김의 차이죠. 뜰을 왕래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돌볼 뿐입니다. 자기문제, 천당 가는 문제, 용서 받는 문제뿐이에요. 그건 자기 혼자 못하고 도움을 받아야 해요. 피동적이지요. 그러나 성소에 들어간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알할 뿐 아니라 사람을 섬겨요. 남을 도울 수 있죠. 또 이 사람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씻음을 받아요. 지성소까지 들어간 사람은 하나님의 가슴을 알아요. 하나님의 가슴은 뭔지 알아요. 그의 나라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염려를 해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늘 고민합니다. 이 시대의 하나님 나라는 교회입니다. 교회. 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키우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 사람들을 돌봐주고, 그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갈망을 가진 사람들은 깊은 곳에 들어간 사람들이에요. 하나님과 코드를 맞추는 것이지요.
★ 적용질문
(1) 나의 매일의 관심사는 어디에 있는가? - (유월절, 세례- 시내산, 성막)
(2) 나는 어디에 속한 삶을 살고 있는가? - (뜰, 성소, 지성소)
(3) 나는 매일 성막예배를 드리는가?
(1) 나의 매일의 관심사는 어디에 있는가?
피, 피에 있는 사람이 있어요, 피. 또 물, 자기 부인에 있는 사람, 또 공급받는 데 있는 사람, 더 나아가 하나님의 가슴에 있는 사람. 차이가 있죠. 출애급기 전체의 구조를 보면 이렇게 되어있어요. 유월절, 피죠. 세례, 광야는 뭐예요? 물이죠. 그 다음 시내산 성막은 뭐예요? 하나님의 영. 요한일서 5장에 보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세 가지라고 했어요. 세 가지 증거를 가진 자가 세상을 이긴다고 그랬어요. 뭐예요. 피와 물과 성령의 증거를 가진 자라고 그랬어요. 출애급기 구조도 피, 물, 성령으로 되어있고, 성막의 구조도 피, 물, 성령으로 되어있어요. 요한일서에서도 피와 물과 성령. 요한복음 3장에서 말하는 “물과 성령으로” 그 말은 이미 구원 받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데,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사람. 이 사람이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갈망입니다. 이게. 역사의 진행은 지금 하나님 나라로 가고 있어요. 구속사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 볼 수 있다. 살 수 있다.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천당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2) 나는 어디에 속한 삶을 살고 있는가?
, 그저 양심, 죄. 이런 문제에 급급한 사람들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야 죽건 말건 교회가 어떻게 되건 말건, 하나님께서 자존심 상하심에 대하여 관심이 없어요. 오직 자기 천당 가고 자기 복 받고에만 관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뜰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소(聖所)는 하나님으로부터 공급을 받고 하나님의 것으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애쓰는 사람, 복의 근원, 복의 유통자(流通者). 생명의 부양자(扶養者), 다 이게 제사장(祭司長)들이에요. 성소에 들어간 사람들이예요.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간 사람들은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알아요. 시대의 흐름을 알고, 다니엘서를 제가 공부하면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몰라요. 예수님 오시기전 6~700년 전 사람이 초림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장차 종말에 일어날 수천 년 이후에 일어날 일까지 다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준 거예요. 하나님이 다니엘을 얼마나 신뢰했으면, 당신이 펼칠 구속사의 비밀들을 그에게 보여 주셨겠어요? 야! 사람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구나. 자식이 여러 명이 있는데, 아버지나 어머니가 성장한 자식들 가운데 살아왔던 가정의 역사를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줘요? 그것은 신뢰 받은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펼쳐나갈 구속사의 비밀을 이 땅의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셨다. 굉장한 사람 아닙니까?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만진 사람이 다니엘이었고, 바울 사도였고, 사도 요한이었죠. 비밀을 알잖아요? 모세도 마찬가지. 이런 구속사적인 사람들이 있어요. 그저 자기 밥 그릇 챙기느라고 자기 명예, 자기 이름... 그런 사람이 있고, 큰 걸 보는 사람이 있어요. 이게 그릇이 다르죠. 이게.
(3) 나는 매일 성막 예배를 드리는가? 성막 예배는 어떻게 드리느냐?
좀 있다 설명하겠습니다.
나의 구속사 점검하기
하나님이 준비시킨 나의 과거
1. 구속사를 위해 하나님이 배열해 주신 환경은? (1-2)
1) 나의 가정교육 2) 학교교육 3) 광야훈련
2. 구속사를 위해 나이 준비과정들 (3-4)
1) 나의 성령체험, 소명
2) 주권포기 (자기 부인의 출발)
3)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세 가지 표지는?
3. 나의 영적 전쟁의 역사는? (5-11)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목자로서 싸웠던 영적 전쟁의 역사는?
(1) 1장 2장을 볼 때 구속사를 위해서 하나님이 배열하신 환경은 어떠했는지? 자기 문제를 보는 거예요. 하나님은 내 가정을 통해서 나에게 가정교육을 어떻게 하셨는지, 또 학교 교육을 어떻게 받게 했는지, 또한 광야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서 어떤 광야 훈련을 받았는지를 지도자인 저와 여러분이 다 자기를 점검해 보아야 해요. 하나님이 사역할 수 있도록 적합하도록 준비시켜 주신 거예요.
(2) 3장 4장 구속사를 위한 나의 준비과정들.
나의 성령체험, 소명은 어떠했는지? 또 신발 벗는 작업. 언제부터 자기부인, 자기포기를 했었는지,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세 가지 표지가 있는지. 뱀 잡는 능력, 육성을 처리하고 세상을 조종하는 능력이 내게 있는지, 점검해 보는 거죠.
(3) 5~11장 나의 영적 전쟁의 역사, 하나님이 나의 목자로서 싸웠던 어떤 영적 전쟁의 역사. 우리가 이력서를 쓸 때, 자기 이력을 쓰잖아요.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디서 목회했고 이렇게 쭈욱 나오잖아요. 영적인 프로파일은 뭐냐 하면 내가 목자로써 영혼들을 세우기 위해서 어떤 투쟁을 해서 어떻게 승리했는지 이걸 내 놓아야 되요. 세상의 프로파일은 잘 만들면서 영적 프로파일이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교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어떻게 했으며... 이혼할 가정들을 어떻게 살렸으며, 탈선한 자녀들을 어떻게 상담해서 돌보아 돌이켰고, 교인들을 어떻게 훈련시켜서 군대로 세웠으며 이런 영적 프로파일이 있어야 되요.
나의 목자로서의 성실한 사역
4. 유월절 (12)
1) 내가 전도한 사람은(나의 피 자녀)?
2) 나의 사역의 현장에 유월절이 있는가?
3)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성실하게 양육하며 돌봤던 사람은?
4) 유월절은 새로운 시작이다.
유월절에 경험하는 네 가지 변화 중 어떤 항목들이 그대에게 나타나는가?
(새로운 신분, 새로운 경영, 새로운 목적, 새로운 삶)
5. 세례 (13-14)
13장 - 신앙의 orientation을 제대로 심어주었는가?
14장 - 하나님이 경험시킨 세례, 내가 선택한 세례
자. 12장 이후는 내가 이제 목자로써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유월절을 경험하게 해주어야 되요. 내가 전도한 사람에 피 자녀가 있는가? 사역의 현장이 유월절에 있는지 우리 교회에 들어오면 다 구원받고, 피에 의해 씻음 받은 사건을 다 경험하게 해 주는 거죠?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성실하게 양육하며 돌봤던 사람은 누구인가?
유월절은 새로운 시작이다. 유월절을 경험하는 네 가지 변화 중 어떤 항목들이 그들에게 나타났는가? 새로운 신분, 새로운 경영, 새로운 목적, 새로운 삶. 어제 우리 공부 다 했죠? 이런 것들을 교인들이 다 경험하고 있는지? 그런 출발을 갖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거죠?
13~14장은 세례입니다. 13장 신앙의 orientation을 제대로 심어주었는가? 구원 받고 나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님에 대해서 어떤 결단을 하는 건지? 어떤 것을 드리는지? 죄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 자기 고집이나 편견을 따라가는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가? 그것을 잘 가르쳐 주어야 되요. “이제부터는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이렇게 사는 게 신앙의 생활입니다.” 점검을 해주는 거예요. 가르쳐주는데도, 못 살면 본인 책임이고. 안 가르쳐 주면 지도자 책임이죠.
14장 하나님이 경험시킨 세례, 내가 선택한 세례.
다 보면요. 다 신발을 벗고 하나님에게 항복할 수 있는 꺼리가 있어요. 보면. 그런데 죽었다 살아난 경험이 내겐 참 중요한 경험이에요. 자동차 사고, 뭐 병원에 실려간 사건. 이어령 씨가 최근에 좋은 책을 하나 썼는데 ⌜지성에서 영성으로⌟, 딸의 위기를 통해서 딸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온 이런 것을 써 놓은 거예요. 이 사람이 그때 자기를 내려놓는 거예요. 그 지성인. 이대 교수로 있으면서 “그대는 아는가?” 그 분 에세이가 아주 그냥 제목이 야시야시해요 그냥. 책 제목 다 잊어버렸네. 그냥. 그 때는 다 탐독했었는데. 하여튼 그 에세이가 참 재밌어요. “무슨 재미로 사나?” 뭐 그런 것도 있고, 하여튼 그 문장 표현력이요. 여대에 있는 교수 같아요. 꼭 그냥 야시야시하게 지나가는데 아주 그냥 간지러워요. 그냥. 아주 그 때 안병욱 교수, 김영욱 교수, 이어령 교수, 다 에세이(essay)들이 hit치고 그랬잖아요? 그 때, 그런 사람이 하나님 만나고 나서 어떻게 자기가 변화되어가는 자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에게 항복(降伏)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다시 펼쳐가는 그게 세례 사건이란 말이에요. 다 그 교만했던 사람이 결국 꺾인 것은 그 사건 때문이었어. 하나님이 누구에게 이런 것을 준다니까요. 목회가 안 되는 것도 세례의 경험으로 올 수 있어요. 열심히 했는데 배신을 당했다. 그것도 세례 사건일 수 있어요. 하여튼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홍해 앞에 나를 세워 놓고 어떡할 거니? 물어보셔요.
“하나님이. 하나님 나 도와주세요. 나 이렇게 살 수 없어요.”
무릎 딱 꿇고 항복하면 그 다음부터 이제 새로운 인생이 출발 되잖아요? 그래서 피에 의해서 거듭난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목사가 되려면 지도자가 되고 제사장으로 살려면 또 무슨 것이 중요해요? 물에 의해서 새롭게 거듭난 경험도 있어야 되요. 그거 없으면 ‘자기 복음’ 가지고 산다니까요. ‘자기 철학’ 가지고. 예수님 이름 파는 사람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목사가 그런 것을 경험하면 교인들도 마찬가지 어떤 위기가 왔을 때 이건 세례사건이다. 당신 내려놓으라는 하나님의 calling이다. 빨랑 내려 놓으셔야 됩니다.
신발 벗으십시오. 이거 자기 죽여야 됩니다. 포기(抛棄)해야 됩니다. 이거 극복(克服)하셔야지 새롭게 거듭납니다. 이것을 guide해 줘야 되는데, 목사가 거듭나지 못했으면 어떻게 이걸 도와주겠어요?
6. 광야훈련 (15-18)
15장 수르광야 - 좌절, 실망스러운 삶
16장 신광야 - 경제적 어려움, 근본이 무너질 때
17장A 르비딤광야 - 삶의 의미가 무너질 때
17장B 아말렉 경험 - 방해하는 사람, 원수를 만났을 때
18장 모세의 leadership, mentorship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런 훈련의 삶을 통하여 자신이 갖고 있던 철학을 내려놓고
어떤 하나님을 만나게 했는가?
15장 수르 광야 - 좌절 실망스러운 삶,
16장 신 광야 경제적인 어려움 근본이 무너질 때
17장 내 믿음 광야 삶의 의미가 무너질 때,
17장 후반부 아말렉 경험 방해하는 사람 원수를 만났을 때,
18장 모세의 leadership, mentorship에 문제가 생겼을 때.
교인들은 이런 광야를 다 경험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미 광야를 통과한 지도자라고 하면, 이런 훈련의 삶을 통하여 자신의 철학을 내려놓고 어떤 하나님을 만나게 했는가?
이 광야가 다 누구를 찾기 위한 통로라고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통로.
그러니까 목사는 답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저렇게 혼란스럽고 저렇게 꼬이고 저렇게 dry해지고, 또 leadership에도 이렇게 도전을 하고 이것들이 다 무슨 의미인지, 다 알잖아요. 이제 그거를 잘 guide를 해줘야 되요.
7. 말씀훈련 (19-24) - 진리(원칙) 훈련
1) 말씀을 체계적으로 양육한 사례가 있는가?
2) 그들에게 성전으로 세워지기 위한 10가지 약속을 정하게 했는가?
(사명선언문, 거룩한 삶을 건축하기 위한 10계명, 복음 선포문 만들기)
3) 그는 종교적인 사람인가, 바른 신앙인인가?
19~24장 말씀 훈련입니다. 진리로 말씀을 가르치는 거죠.
1) 말씀을 체계적으로 양육한 사례가 있는가?
반드시 시내산 데리고 가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해요.
2) 그들에게 성전으로 세워지기 위한 10가지 약속을 정하게 했는가? 사명선언문, 거룩한 삶을 살게 한 10계명, 복음 선포문 만들기, 이런 사상이나 표현을 할 수 있는 문장으로 삶의 목표를 설정하게 해줘야 되요. 생각만 하는 것은 금방 지나가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10계명을 돌판에 새겨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써서 기록해야 되요. 중요한 건 기록하라고 그랬잖아요. 아말렉 죽인 사건도 기록하라 그랬고, 또 여호수아서 5장에서 요단강 건너고 나서 돌비석에 세우고 기록하라고 했잖아요. 또 영원히 잊어버리지 말 것에 대해서 얘기했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 삶에 절대로 잊어버려서 안 될 원칙들을 문장으로 기록하게 해줘야 되요. 그리고 그것을 써 붙여놔야 되요, 저는 현수막으로 만들어서, 나에 사명선언문. 그래가지고 현수막 만들어서 붙여놨어요. 이런 구체적인 작업이 필요한 거예요.
3) 그는 종교적인 사람인가, 바른 신앙인인가? 자기를 성취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처럼. 그들을 우리가 도와줘야 되요.
8. 성막훈련 (25-40)
1) 거룩한 처소로 세워져가고 있는가?
① 뜰 - 씻음 ② 성소 - 공급 ③ 지성소 - 교통
2) 지성소 ① 시은좌 ② 그룹 ③ 언약궤
1) 거룩한 처소로 세워져 가고 있는가? 그 사람이 씻고 있는지 하나님으로부터 공급을 받는지, 지성소로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는지를 봐줘야 되고, 또 지성소에 들어갔으면 보좌에 늘 나아가는지, 하나님께 나아가는지 영광의 그 중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예배 가운데, 찬양 가운데,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지.
제일 중요한 것은 언약궤입니다. 그가 정말. 거기서 나올 때 세 가지 언약을 하나님께 다짐하고 나오는지? 그 세 가지가 뭐예요? 만나와 싹 난 지팡이와 돌비를 가지고 나오는지. 그 앞에서 결단하고 나오는지를 목사가 점검을 해줘야 되요.
9.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
나를 이끌고 가는 나의 언약궤 - 사역자로서의 원칙
① 감추인 만나 ② 아론의 싹 난 지팡이 ③ 돌비
자.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 나의 어깨에 지고 가는 언약궤 사역자로서의 원칙을 가지고 있는가?
① 정말 돈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하나님 이용하지 않고,
② 아론의 싹 난 지팡이 - 세우신 영적 지도자의 권위에 내가 복종할 수 있고,
③ 돌비 -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과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역할 것인가? 이것 사역자를 세울 때, 장로님을 세울 때, 이것을 결단시켜야 되요. 정말 이것에 대해서 당신 언약하겠느냐? 이 언약궤 앞에서 정직하게 당신 서약할 수 있겠느냐? O.K. 그러면 Pass. No, 그러면 더 훈련. 그렇게 해야 되요. 이것도 안 해놓고 선거해서 뽑아가지고 이제 들이받는다, 그럽니까?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인데 이게 내 일이 아니고 내가 영광을 얻기 위해 하는 것 아니잖아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나도 하나님의 종이고 당신도 하나님의 종인데 우리 이런 서약 확실하게 말씀 앞에서 하자. 출애급기를 공부하면 이게 보인다니까요. 그도 망하지 않게 해줘야 될 것 아니에요? 죽어라 훈련시켜 놓고는 왜 망하게 하는 일을 시켜요. 안 가르치면 망하는 일을 하고 있죠. 나와 내 가정 내 교인들을 위해서 이거 가르쳐야 됩니다.
10. 왕 같은 제사장으로 나아가라.
1) 승리의 삶을 살도록 점검표를 만들어 매일의 삶을 경영토록 점검표를 만들어 매일의 삶을 경영토록 하라.
2) 모일 때는 제물, 간증, 찬양을 가지고 오도록 하라.
3) 사도행전적인 사역일지를 쓰게 하라.
4) 그들의 사역, 섬김의 결과에 성과가 있도록 도와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나아가라. - 승리의 삶을 살도록 점검표를 만들어 매일의 삶을 경영토록 check-list를 만들어가지고 경영하도록 해줘야 됩니다.
모일 때는 제물, 간증, 찬양을 가지고 오도록 하라. 영적 전쟁터가 삶이거든요. 삶에서 모일 땐 항상 승리의 간증, 찬양을 가지고 오게 해야 되요.
여호와의 군대니까 사도행전적인 사역일지를 쓰게 하라. 사도행전 29장을 다 쓴다고 그러잖아요? 말은 그렇게 하는데 성도들의 삶을 그렇게 살도록 도와주지 못하고 있어요. 그럼 안 되죠. 그들의 사역, 섬김의 결과에 성과가 있도록 도와라. 왜요?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고 있으니까. 성과가 있어야 되요.
재생산의 원리만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
12 제자의 원리 3 제자의 원리
1년 → 12명 1년 → 3명
9년차 → 51억 6천 21년 → 100억의 제자
(10년차 → 619억)
유명한 부흥사
매일 → 1000명에게 복음을 전함
100억의 인구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 27,397년 3개월
자. 우리 시대의 세상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어야 되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는 영화가 있는데 ⌜Pay It Forward⌟라는 영화지요. 그 영화를 보면서 제가 큰 감동을 받았어요. 세상을 정복할 원리가 있구나. 유명한 부흥사가 날마다 1000명에게 복음을 전했어요. 빌리 그래함 목사님도 이렇게는 못했어요. 그런데 날마다 천 명을 만나요. 매일. 오늘 천 명, 내일 천 명, 해서 전 세계 100억으로 잡고, 100억 명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몇 년이 걸리느냐면 27,397년이 걸려요. 27,397년이 얼마나 긴 줄 알아요? 70년을 400일로 잡으면 몇 년이에요? 몇 날이에요? 4x7=28. 28,000년 이 숫자의 개념 아시겠어요? 워낙 억(億)으로만 사니깐 이런 만(萬) 정도는 보이지도 않죠? 우리가 오래 살아봐도 우리가 30,000날을 못 살아요, 우리가. 그런데 하루에 천 명에게 복음을 전해도 한 번씩만 듣게 하는 데도 28,000년이 걸려요. 28,000날이 아니고. 그런데 만약에 12명의 제자가, 예수님의 제자원리의 시스템을 가지고 내가 목회를 해서 내가 1년에 12명씩 번식을 시키면 9년차가 되면 51억 명이 되고, 10년차가 되면 610억 명이 되요. 12명은 너무 과하다 내가 3명만 해보겠다. 내가 일 년에 3명 돌보고, 내년에는 자기 밑에 3명씩을 돌보고 해서 3명씩 번식을, 1년에 3명씩 번식을 시키면 21년이 되면 100억 명의 제자를 만들 수 있어요. 100억 명에게 복음을 전한 게 아니라, 100억 명의 제자를 만들어요.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그랬죠? 제자는 그대로 따라오게 하는 거예요. 세 명으로 시작하는 거 쉬워요, 어려워요? ‘세 명’ 쉽습니다. ‘세 명’ 그거 못하겠어요? 목숨을 걸고 ‘세 명’ 한번 해봐야겠다. 내가 그러고 계속 세 명만 돌봐주는 거예요. 금년에도 세 명, 내년에도 그 사람 ‘세 명’ 하는 거예요. 그 대신 세 명을 키운 다음에는 너희들이 또 세 명을 거느려라. 번식을 하게 하는 거죠. 그렇게 우리가 목적을 가지고 목회를 했으면 20년이면 세계를 뒤집는다니까요. 우리가 철학이 없고 경영 전략이 없었어요. 열심히 목회를 했지만 방법이 부족했기 때문에 세계를 뒤집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목성연(牧聖硏)’의 철학은 뭐냐? 반드시 하나의 책을 읽으면 세 사람에게 전수해라 그거에요. 이게 처음 들어올 때 입회원서의 자격입니다 이게. 트레보의 세 사람만 가지면 21년 후면 전 세계에 하나님 말씀이 높여질 수 있어요. 100억 명을 제자로 만들 수 있어요. 100억 명. 이게 간단한 것 같지만 어마어마한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왜 우리가 사탄에게 세상을 내주고 꼼짝도 못합니까? 전략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어떻게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자존심을 세워드려야지요? 사람한테 맡겨놓았는데 사람들이 비리비리해가지고 딴 생각하고 있고, 딴 주머니 차고 있고, 그러니깐 100년이 지나도 안 되잖아요. 21년이면 끝날 문제를. 저는 이런 것에 대한 비전을, 하나님이 제게 주셨어요. 간단하다는 거죠. 제가 섬겨 드릴게요. 이미 시작됐던 우리 목성연 회원들이 여러분을 섬겨드릴 겁니다. 목적은 하나님 나라. 딴 주머니 차지 말고, 진짜로 돈도 명예도, 무슨 정치적인 목적도 갖지 말고, 정말 복음만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만나보자. 이게 우리 목성연의 철학입니다.
출애급기를 통해 배운 구속사 정리
1. 준비된 목자 만나기 (1-11)
2.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효능 경험하기 (12)
3. 신앙 교육, 세례 교육 (13-14)
4. 나의 십자가 지기 -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15-18)
5. 하나님의 말씀 배우기 (하나님의 생각, 사상, 철학) (19-24)
6. 하나님의 영 안으로 들어가기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25-40
7. 가나안을 누리기, 제사장으로 살기 - 그는 나와 더불어 먹고, 나는 그와 더불어 먹으리라. (신명기 풍요의 개념, 성전의 문제)
총 복습이죠.
첫째 1~11장 은혜죠. 준비된 목자 만나기. 하나님이 목자를 준비하시죠.
12장 예수님 십자가 피의 효능 경험하기. 13~14장 신앙교육, 세례교육
15~18장 나의 십자가 지기.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내가 죽고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야 되죠? 19~24장 그것을 문장화 시키고 논리화 시키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 배우기, 하나님의 생각 사상 철학 25~40장은 하나님의 영 안으로 들어가기.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교통하는 거죠? 가나안을 누리기, 제사장으로 살기.
“나는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신명기에 가면 이런 풍요의 개념, 성전의 개념이 있습니다. “네가 짓지 아니한 성읍을 얻을 것이며, 네가 수고하지 않은 물건으로 가득한 성읍을 가지게 될 것이다.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신다는 거죠.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책임지는 거죠. 이것이 교통입니다.
광야 개념
1. 첫째 광야 - 문제가 꼬임
2. 둘째 광야 - 근본이 흔들림
3. 셋째 광야 - 삶이 무의미해짐
4. 넷째 광야 - 사람의 공격을 받음
5. 다섯째 광야 -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짐
우리 교인들이 시험 들 때 주로 어디에 많이 흔들립니까? 거의 보면 4~5번에서 흔들리죠? “어느 집사 꼴 보기 싫어 교회 나간다. 목사님 은혜가 안 됩니다.” 그러고 나가고.
광야를 미리 공부시켜 놓으면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지성소 개념
1) 속죄판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피의 예배가 있는가?
⋅보혈의 공로 의지하여 문제가 있을 때마다 기도하는가?
2) 영광의 임재
⋅매일 그 거룩한 임재 앞에 자신을 돌아보는가?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대화하며 교제하는가?
3) 언약궤
⋅인격적 만남. 그분과의 살아있는 언약이 있는가?
⋅하나님의 원칙으로 사역하는가? -
우리가 늘 지성소까지 들어갔다 와야 됩니다.
언약궤 앞에서 드리는 나의 제사장 약조
1) 감추인 만나
⋅ 나의 공급자는 하나님이십니다. - 아멘
⋅ 하나님이 주신 만나 말씀으로 힘을 얻겠습니다. - 아멘
⋅ 거룩한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 영리를 목적으로 살지 않겠습니다. - 아멘
2) 아론의 싹 난 지팡이
⋅ 구속사를 위해 세우신 지팡이에 순종하겠습니다. - 아멘
⋅ 목자를 통해 공급받고 돕는 배필 역할을 감당하겠습니다. - 아멘
⋅ 내 목자와 내 양의 인생에 VIP로 섬기겠습니다. - 아멘
3) 돌 비
⋅ 하나님을 예배하며 높이는 일은 내 생애 최고의 사명입니다. - 아멘
⋅ 주께 하듯 이웃을 존대하며 이웃을 살리는 성령의 사역을 감당하겠습니다. - 아멘
⋅ 이 원칙들이 나의 사역의 철학이며 spirit입니다. - 아멘
우리 총회 헌법은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서약하십니까? 그러면, “예. 서약합니다.” 그렇게 해야 되요. “서약하십니까?” “예. 서약합니다.”
여러분 중직자들 훈련시킬 때, 장로님들 훈련시킬 때, 출애급기의 지성소 가지고 훈련시키면. 서약했는데 안 지키면 누구 책임이에요? 본인 책임이고. 서약했는데 서약하도록 안 가르치면 누구 책임이에요? 지도자 책임이죠. 우리가 우리 일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지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돕는 거예요. 아군 폭격하지 않도록 잘 우리가 섬겨야 합니다.
성막예배를 드려라.
1) 구원에 대한 감사 - 문
2) 죄를 씻음 - 번제단
3) 자기부인 - 물두멍
4) 말씀 - 떡상
5) 성령의 조명 - 등잔대
마지막 성막예배 드리는 법, 가르쳐 드립니다.
제가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목사들이 자기 예배를 안 드린다고 해요. 목사들이. 이거 설명하겠습니다. 주일학교 교사가 애들만 가르치고 갑니다. 그 정당한 거예요? 교사들이 뭐라고 그러냐면. “나 예배드렸어요. 애들하고 같이.” 그거 허용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되요? 그건 다른 사람 예배를 돕는 것이지, 자기 예배가 아니에요. 예배의 봉사자지, 예배자가 아니에요. “맞습니까?” “예.” “목사가 예배자입니까, 예배를 돕는 사람입니까? 예배를 드리고 있어요? 예배를 돕고 있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목사님이 예배 인도하는 것은 예배입니까? 예배를 돕는 것입니까?” 잘 대답하세요. 아까 주일학교 교사는 대답 잘하더니, 왜 대답 안 합니까? 예배를 돕는 사람입니까? 예배자입니까? 예배자입니까? 여러분 심각하게 대답하세요. 이거.
어느 날 기도하는데 주님이 이런 감동을 주셨어요. 목사에게 감동이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예배를 돕는 것과 예배드리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 이것을 어떻게 증명해야 합니까? 그러니까 성막을 보라는 거예요. 예배를 돕는 사람들이,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돌보기 전에 먼저 자기 예배를 드립니다. 번제단에 가서 자기 죄 씻고, 물두멍에서 손 씻고, 성막 들어가서 진설병, 등대, 향단 향 지피고, 그리고 나와서 백성들의 예배를 돕습니다. 맞습니까?
목회자의 영성이 시간이 갈수록 죽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예배가 없어요. 하나님을 대면해서 내 죄를 씻고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으로부터 공급 받는, 나와 하나님과의 예배가 없으면, 남 예배 도와준 걸로 내가 채워지지 않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들, 애들 봉사하고 가는 애들요. 나중에 날라리 다 됩니다. 뭘 가지고 가르칠 거예요? 자기가 은혜 못 받고 자기가 하나님 경험을 못하고 있는데 뭘 가르칩니까? 우리 교회에서는 못하게 합니다. 그만두게 해요. 목사가 자기 예배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구약에 봐라, 제사장들이 자기 예배 먼저 드리지 않았느냐? 일주일에 단 한 시간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임재를 기다리면서 드리는 예배, 자기 나름대로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목자가 될 자격이 상실되어 갑니다. 점점 능력이 빠져나가버려요. 처음에는 모르죠. 그것을 나중에는 교인들은 은혜를 받는데 자기는 성경을 읽어도 은혜를 못 받아요. 나중에는 찬양해도 교인들은 눈물을 흘리는데, 목사는 눈물을 안 흘려요. 몇 절을 하고 있는지 그것도 모르고 불러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거. 그래서 고민하다가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다가. 매일 성막 예배, 한 5분도 안 걸려요. 잠깐 돌아보지만, 그러나 가능하면 일주일에 어느 시간, 월요일이 됐건, 토요일이 됐건, 어느 시간에는 신성불가침의 시간을 놔두세요. 특별한 게 아니면 전화기도 끄고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시간을 갖고 있어야 되요. 저 같은 경우에는 매일 자기 전에 성막 예배를 드립니다. 한 5분, 10분 동안 이래도 잠깐 자기를 돌아보는데 이게 1년 2년 되니까요, 엄청난 발전이 되요. 자 어떻게 하느냐?
(1) 문으로 들어가요. 성막문으로 들어가요. 감사합니다. 구원에 대한 감사, 오늘 내게 주신 감사, 나를 살려주시고 오늘도 함께하신 주님 안에서 내가 살게 한 구원에 대한 감사, 시편 51편에 보면 구원에 그 감격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다윗이 노래하잖아요?
(2) 둘째는 번제단에 가서 혹시 내가 하나님께 불법을 행한 게 있는지, 죄를 지은 게 있는지 돌아봅니다. 회개하죠?
(3) 그 다음이 어려워요. 세례는 뭐냐 하면. 오늘도 나를 주장하고 나를 내세웠는가? 내가 영광 받으려 했는가? 이거 많이 걸립니다. 이거 아주 누구와 대화를 하다가 화를 냈어, 내가 그럼 뭐가 걸린 거예요? 내가 감정 조절을 못했어요. 죄는 아니지만 내가 나를 너무 주장했구나. 내가 그 사람이 말한 것 때문에 감정이 상한 것이 자기주장 때문에 그런 거예요. 세례. 이 물두멍에 와서 자기를 내려와서 자기를 내려놓았는지 점검하는 거예요.
(4) 떡상에서 오늘 말씀, 하나님이 뭘 주셨는지, 어떤 메시지를 내게 주셨는지, 말씀 점검하는 거예요. 만약에 아침에 드린다면, 하나님 오늘 말씀 내게 주십시오.
(5) 그 다음에 성령의 조명, 등잔대 앞에 가서 어둡고 부정적이고 공격적이고 이런 사탄적인 삶을 살지 않았나, 어둠의 삶을 살지 않았나 점검하는 거예요. 오늘 정말 밝게 살았는지 빛을 내가 선포했는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는지 점검하는 거예요.
성막예배를 드려라.
6) 예배 - 분향단
7) 지성소
① 속죄판 - 존재의 열납, 은혜의 보좌, 후사권
② 그 룹 - 영광의 임재
③ 언약궤 - 언약으로 사는 제사장
그 다음에 분향단은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거예요.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기도, 찬양. 하나님을 존중해 드리는 거,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거죠. 내가 오늘 그런 삶을 살았는지?
지성소에 들어갔어요.
① 첫째 속죄판 - 존재의 열납, 은혜의 보좌, 하나님의 자녀로써 오늘도 하나님께 열납된 존재로 세워졌는지.
② 그룹 -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임재를 높여드렸는지. 그 임재를 내가 느끼고 살았는지.
③ 이제 언약궤에 가서, 하나님께 앞에 언약을 내가 오늘도 성실하게 지켰는지,
a) 첫째는 만나 힘의 근원, 공급의 근원, 행복의 근원, 말씀, 약속으로 살았는지, 나 자신에 대한(對自身) 문제죠?
b) 둘째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 - 보이는 영적 질서에 대한 나의 자세, 대인(對人)관계, 내가 선배 어르신 또 내 아랫사람에 대해 영적 질서를 가지고 살았는지.
c) 셋째는 돌비 - 사역의 철학, 삶의 원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사람을 존대하는가? 대신(對神)관계, 사역자로 살았는지 점검해보는 거죠.
자. 하나님은 우리를 선한 목자로 부르셨습니다. 이 그림은 카자흐스탄에 갔는데 그 카자흐스탄의 목동의 그림입니다. 아주 좋죠? 양들이 이 목자를 잘 만나게 되면 아주 푸른 초장으로 눈이 와도, 겨울이어도, 푸른 초장으로 가서 인도를 받게 됩니다.
목자에 관한 영상을 하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 목자 영상 >
세상에서 제일 큰 복은 만남입니다. 좋은 부모님 만나고 존경할 만한 스승 만나고, 더 큰 복은 좋은 목자 만나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진리를 하는 것보다 큰 복이 없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하고 소중한 직분이 있다면 우리가 목사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애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찾아서 도와달라고 하는 우리는 특권의 위치에 있습니다. 잘 가르쳐서 수고하면 지금 퍼주는 유의태의 작품이죠? 마지막에는 자기 몸을 내주고 해부하라고 하죠. 좋은 제자가 좋은 스승에서 나옵니다. 오늘 교회의 위기, 시대적인 위기를 우리가 말하는데. 사실 일차적인 책임은 목자들에게 있습니다. 잘 가르치고 잘 섬겼다면 이렇게 혼란상태가 오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 나는 어떤 목자입니까? 하나님 앞에 참된 목자 선한 목자입니까? 아니면 돈이나 요구하는 목자는 아닙니까? 아니면 아예 그들을 온전히 이용하려는 이리(狸)는 혹시 아닙니까? 스스로 돌아보면서 이 출애급기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결단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 갖겠습니다.
하나님! 선한 목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달하고 잘 키워서 시대를 책임지고, 민족을 책임지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책임질 수 있는 그런 교회, 그런 교인들로 만드는 선한 목자이고 싶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결단합니다. 우리 잠깐 기도하는 시간 가집시다.
“하나님! 가르치기 전에 먼저 행하는 목자가 되고 싶습니다. 군림하고 명령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섬기는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말하기 전에 먼저 진리가 무엇인지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내가 먼저 고민하고 연구하고 예비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에게 특별한 시간과 공간을 주시어서 출애급기 말씀을 통하여 모세의 영성, 광야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는가를 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씀이 나에게 철학이 되게 하시고 목회의 원칙이 되게 하시고, 이 후로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번 집회를 위하여 극동방송에서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한OO 교회가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수고한 종들에게 함께하시고 이후로 울산지역에 좋은 목사님들의 모임이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견본 >
☆ 생명샘교회 웹사이트(http://www.lifesam.net)에 소개되어 있는 몇 개의 예문을 소개합니다.
1. 나의 사명 선언문
오 동 철 장로
나의 사명은 생명샘교회와 담임목사님이 목성연과 세계에 흩어져 있는 선교사들에게 말씀과 성령의 사역을 펼쳐 나갈 수 있도록 동역하는 일이다.
나는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2012년까지 교회 내에 600명의 지도자를 세우는데 헌신할 것이며 그들과 동역하여 생명샘교회를 부흥케 할 것이며 2020년까지 1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성전을 건축할 것이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루 1시간 이상 기도로 준비할 것이다.
2. 나의 매일의 십계명
내 삶의 철학은 로마서 14장8절 말씀이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나는 장로로써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산다.
1. 교인들의 아픔을 아비의 마음으로 품고 하루 1시간씩 기도한다.
2. 주일 1.2.3부 예배 20분 전에 예배부원과 헌금 봉사자와 기도한다.
3. 1년 300일 이상 새벽기도를 하여 영성을 키운다.
4. 매일 성경 5장씩 읽는다.
5. 교회 질서와 규례를 지키기 각 부서장들과 월1회 정기모임을 한다.
6. 매일 3명의남성교구 셀원에게 전화하며 1년 100회 직장 심방을 한다. (월 8~10회)
7. 어머니와 일주일에 한 시간씩 TV 보며 이야기한다.
8. 아내가 건강에 무리되지 않도록 일주일에 2회 이상 청소를 해 준다.
9. 윤미가 훌륭한 사회복지사가 될 수 있도록 매주 1시간씩 함께 대화한다.
10. 1년에 1회 3일 금식기도하며 초심의 마음을 지킨다.
~~~~~~~~~~~~~~~~~~~~~~~~~~~~~~~~~~~~~~~~~~~~~~~~~~~~~~
1. 나의 사명 선언문
최초작성일: 2007년 2월 6일~9일 정 광 훈 장로
나의 사명은
1)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선한 목자와 교우들을 섬기고, 말씀을 배우고, 마음에 새기며, 실천하는 장로가 될 것이다.
2) 말씀을 자손들에게 가르쳐 천 대까지 축복을 이어 가게 할 것이다.
3) 전 세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도와주어 꿈을 이루도록 도울 것이다.
나는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 2020년까지 JM그룹을 매출 5조원의 IT기업으로 성장 발전시키고, ‘JM그룹과 금계문화재단과 전인치유센터와 글로벌드림스쿨을 통하여 2030년까지 세계 천만 명의 사람들이 꿈을 이루도록 도울 것이다.(나는 2030년까지 천만 명의 사람들이 꿈을 이루도록 도울 것이다)
2. 나의 매일의 십계명
1. 나는 앞으로 30년 동안 2모작, 3모작의 인생을 살기 위하여 매일 1시간 걷기를 통해 육신의 건강을 도모한다.
2. 나의 영적 건강을 위해 매일 성경읽기 5장 이상, 기도 한 시간 이상을 계획한다.
3. 하나님 사역을 위해 말씀공부와 자기계발을 성실히 한다.
* 2012년까지 성경 10권 이상을 가르칠 수 있도록 준비한다.
* 상담학, 치유공부 - 사이버 대학 수강
* 코칭, NLP, 리더십 공부 - 세미나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공부
4. 가족구원과 화해를 위하여 매월 1회 정기모임을 갖는다.
5. 나눔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금계문화재단과 실업인선교회를 통하여 년 간 정기적으로 장학사업, 구휼사업, 선교 사업, 식량 지원 사업 등을 펼침으로 요셉처럼 생명의 부양자의 인생을 산다.
6. 년 4회 이상 테라피 프로그램을 진행함으로 감정적인 상처와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치유하며 치유 사역자들을 육성한다.
7. 매년 해외 선교사들을 위한 테라피, MK(Missionary kids)들을 위한 드림 스쿨을 개설하여 해외에서 수고하는 사역자들을 섬긴다.
8. ‘트레버의 세 사람’의 스피릿을 실현할 수 있는 전인치유센터를 건립하여, 2030년까지 1,000만 명의 사람들이 꿈을 이루도록 ‘JM그룹, 금계문화재단, 전인치유센터, 글로벌드림스쿨, 실업선교회를 통하여 도울 것이다.
9. 감성 치유를 위해 전문 연주가가 되기까지 매주 1회 하늘소리 선교단과 함께 색소폰 악기 연습을 한다.
10. 해외 선교사역을 위해 매일 1시간 이상 영어 공부를 한다.
~~~~~~~~~~~~~~~~~~~~~~~~~~~~~~~~~~~~~~~~~~~~~~~~~~~~~
나의 정체성 : 나는 신앙인(信仰人)이며, 가장(家長)이며, 교사(敎師)이다.
권순화 장로
1) 나의 사명 선언문
나는 가정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되며,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학생들에게 꿈을 이루도록 도울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전달하는 일을 일생의 업으로 삼는다.
이를 위하여
1. 나는 2012년까지 남성 교구의 셀을 120개 셀로 확장한다.
2. 나는 2016년까지 1,000명의 학생에게 꿈과 지식과 복음을 전달한다.
3. 나는 2020년까지 성경 20권을 배우고 연구하여 1,000명에게 전달한다.
2) 나의 십계명
1. 나는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에 최선을 다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2.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산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와 함께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마 22:37-39).
3. 나는 긍정적 생각으로 정직과 겸손의 삶을 산다.
4. 나는 생명샘 교회의 장로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
5. 나는 성경 말씀을 1년에 두 권씩 가르칠 수 있도록 준비한다.
6. 나는 한 달에 교회 서적(1권), 전공서적(1권)을 읽는다.
7. 나는 하루에 세 사람 이상에게 칭찬과 격려를 한다.
8. 나는 두 자녀(준학, 준영)에게 신앙의 삶, 성공의 삶을 위한 뒷받침을 다한다.
9. 나는 월 2회 부모님을 찾아뵙고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10.나는 심신을 단련하기 위하여 여행과 등산(주 1회)과 조깅(주 2회)을 생활화한다.
~~~~~~~~~~~~~~~~~~~~~~~~~~~~~~~~~~~~~~~~~~~~~~~~~~~~~~
1) 나의 사명 선언문
고 진 수 권사
나의 사명은 성경 말씀을 바르게 알아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알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참 진리를 알도록 돕는 일’이다.
나는 이 사명 감당을 위해
1. 2014년까지 성경 전반에 대한 이해를 위한 공부에 모든 노력을 집중할 것이며,
2. 성경의 배경 역사를 공부하고 현장에 다녀올 것이며,
3. 성경 20권을 가르치기 위해 필요한 교안을 준비할 것이다.
4. 또한 이 사역을 함께 감당하기 위해 같은 꿈을 품은 나의 가족에 대해 잘 협력할 것이며,
5. 나의 가장 소중한 동역자인 가족들을 위하여 나의 건강유지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2) 나의 매일의 십계명
1. 하루의 첫 시간을 드린다 : 새벽기도회 주 5회 이상
2. 성경 안에 있는 중요한 언약의 말씀을 외운다 : 1일 1구절
3. 하루 1시간 이상 기도, 1시간 이상 말씀을 읽는다,
4. 매일 주님의 가슴으로 중보한다 : 교회, 셀, 환우..등.
5. 책별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며 사역을 준비한다.
6. 월 경건 서적을 2권 이상 읽는다.
7. 성경의 배경이 된 역사를 공부한다. : 로마,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서적을 월 1권 이상.
8. 컴퓨터를 잘하도록 배운다 : 주 1회 문화 강좌 참여.
9. 영어 공부를 다시 한다 : 주 2회 1시간 이상.
10. 주 3회 1시간 이상 걷는다.
~~~~~~~~~~~~~~~~~~~~~~~~~~~~~~~~~~~~~~~~~~~~~~~~~~~~~~
복음 선포문 2009. 10. 18
나 윤 정 집사
1) 하나님 앞에서
• 나는 하나님에게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나의 진홍같이 붉은 죄는 눈과 같이 희어졌다.
• 사망이나 생명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 내 삶의 주인은 주님이시며 내 인생의 주관자 되신다.
• 주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의 아픔을 모두 이해하시는 분이다.
• 주님은 나와 교제하기를 원하시고, 기다리시며, 비밀을 나누기를 기뻐하시는 분이다.
• 하나님은 내 삶을 통해 당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시며 영광 받으실 것이다.
• 하나님은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시고 내가 웃으면 함께 웃으신다.
•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 나라의 충성된 일꾼으로 세우실 것이다.
• 주님은 영원히 나와 함께 계시며 나를 절대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신다.
• 내가 겪는 모든 아픔은 훗날 많은 영혼들을 섬기기 위함이다.
• 주님의 뜻을 믿기에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다.
• 나의 하나님이 내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다. 그가 나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나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
• 나는 지금 그 분의 섭리 안에 있고, 앞으로의 삶도 그 분의 계획 안에서 신실하게 인도하실 것이다.
• 나는 세상이 나를 통해 예수님을 보는 창문이며 축복의 통로이다.
2) 나 자신 앞에서
•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 나는 리더십이 있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섬세한 사람이다.
• 나는 용기가 있고 유머러스하며 솔직하다. • 나는 밝고 유쾌한 사람이다.
• 나는 이제 사단의 참소하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며 나의 약점을 이용하는 악한 영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만 더욱 바라볼 것이다.
• 나는 빛의 자녀다. 어둠의 영이 나를 더 이상 해치지 못할 것이며 두려움과 불안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바뀔 것이다.
•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회복하고 대학교 때의 열정과 헌신을 회복할 것이다.
• 주님을 신뢰함으로 얻었던 자신감과 영적 리더십을 회복할 것이다.
• 시간, 물질 등 자기관리에 성공할 것이다.
• 문학적 감수성, 창의적 사고력, 영적 민감성이 회복될 것이다.
• 영혼에 대한 긍휼과 민망히 여김, 거룩한 부담감이 회복될 것이다.
• 내게 주신 은사로 하나님과 사람을 섬길 것이다.
• 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언제나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 부르심에 대한 초심과 자신감을 회복하여 직업적으로 능력 있고, 신앙적으로 영향력 있는 교사로 교단에 설 것이다.
• 나는 사랑받는 아내이며 남편의 좋은 친구이자 믿음의 동역자이다.
• 나는 사랑받는 딸이자 며느리며 부모님과 웃어른을 공경하는 사람이다.
• 나는 매일 살리는 언어를 사용할 것이며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힘을 얻고 도전을 받을 것이다.
3) 나의 가정 앞에서
• 주님은 우리 집의 주인이시며 식사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님이시며 모든 대화에 말없이 듣는 이시다.
• 원진이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우리는 원진이를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묵상한다.
• 주 1회의 가정예배로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고백한다.
• 남편과 나의 셀원들은 우리의 섬김과 가르침을 통해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고 영적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 남편과 나는 교회의 2012 비전에 합당한 600명의 리더 중 하나로 세워질 것이며 이를 위해 모든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고 비전과 영적인 고민을 함께 나누는 진정한 동역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 우리 가정은 항상 열려 있으며 모든 이들이 우리의 섬김을 통해 쉼을 얻고 기쁨을 얻을 것이다.
• 우리 가정은 믿지 않는 자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가정이다.
4) 나의 건강 앞에서
• 나의 몸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다.
• 하나님은 나를 지으셨으므로 나의 몸을 가장 잘 알고 계신다.
• 나에게 가장 좋은 약은 신약과 구약이다.
• 건강에 해로운 음식과 습관을 피하고 운동과 호탕한 웃음으로 심신의 건강을 관리할 것이다.
•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음으로 다리의 피로와 왼쪽 고관절의 통증은 사라질 것이다.
• 주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으로 인해 경직된 근육들이 부드럽게 이완될 것이다.
• 차가운 손발이 따뜻해질 것이다.
• 우울증, 불안장애로 오는 호흡 곤란과 가슴 두근거림, 손 저림은 예수 보혈로 없어지고 깨끗하게 치료될 것이다.
• 2010년 7월까지 현재 복용중인 약(불안장애, 우울)을 끊고 둘째를 가질 것이다.
• 우울증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내 몸과 마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나는 계속해서 우울증 약을 복용하지 않을 것이며 맑은 정신으로 주님을 묵상하고 기도할 것이다.
• 나는 우울증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상담자와 mentor가 되어 빛 가운데로 인도하고 묶인 것들로부터 자유케 되도록 그들을 도울 것이다.
정오표(正誤表) (2011. 4. 20. 日字 책)
(↓ 위에서부터; ↑ 아래에서부터)
page
오자(誤字)
교정(較正)
표지
↓ 3
2월
3월
머리말
↓ 24
2월
3월
7
↓ 1
가로 막는
가로막는
19
↑ 1
타드벤틀이라는
타드 벤틀리라는
21
box 4
그비딤
르비딤
21
↑ 10
스루광야
수르광야
30
box 11
9공급
(공급
37
↓ 22
죠.”물론
죠.” 물론
49
↓ 6
음악을
음악
56
↓ 19
이것을
이것은
64
↓ 7
사람이
사람을
64
↓ 12
복음주이에요
복음주의예요
65
box 2
제사 (희생)을
제사(희생)를
78
↓ 15
되버렸어요
돼버렸어요
83
↑ 9
다말아 먹은
다 말아먹은
84
↑ 11
왕에 눈에
왕의 눈에
85
↓ 9
밧세바에서
밧세바에게서
95
↓ 32
주셨고는
주셨다는
98
↑ 13
우리자신의
우리 자신의
105
각주3&4
일찌기
일찍이
105
각주5-6
몸둥이
몸뚱이
112
↑ 9
먹어야 한다
먹을 수 있다
113
↑ 2
큰 소리
큰소리
124
↑ 12
걷는
건넌
142
↓ 32
헤메다가
헤매다가
146
box ↓ 5
내제사장
내 제사장
169
2box 4
계 5:8;8:3-5
계 5:8; 8:3-5
175
↑ 7-8
나왔어. “삼일
나와서 삼일
176
↓ 11
비유
비위
184
box 8
목음
복음
187
2box 11
일을
일은
“”
‘’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