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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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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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권세’ 마태복음8장 23-27절 말씀입니다. / 20200621주일설교
<나는 하늘아래 하나밖에 없는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일 뿐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가 됩니다. 예수님이 친자이고 우리는 양자입니다. 양자도 아들과 똑같은 상속권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로 당당하게 살아가길 축복합니다.
(들어가는 글) 성경은 총66권으로 되어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총 몇 권일까요? 39권입니다. 신약성경은 몇 권일까요? 27권입니다. 구약성경 39권이잖아요? 3곱이9하면 27이죠. 이렇게 왜우면 됩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에 관한 책입니다. 신약은 오신 예수님에 관한 책입니다.
성경은 40여명의 저자들이 무려 1600년에 걸쳐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데도 통일성이 있죠. 왜요?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 졌기 때문입니다.
(설명) 성경을 8가지 큰 골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구약은 율법서,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입니다. 신약은 복음서, 역사서, 서신서, 예언서입니다.
복음서에는 4권이 있죠.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4복음서라고 합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 즉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한 책이 바로 사복음서입니다.
역사서는 어떤 책일까요? 사도행전입니다. 교회와 사도들과 그리고 성령의 역사에 관한 책입니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마태입니다. 화면을 볼까요? 누가복음의 저자는 누가입니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마가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요한입니다.
마태복음는 예수님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왕으로써 메시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종으로 예수님을 묘사합니다. 섬김의 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사람으로 예수님을 묘사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사람을 회복시키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묘사합니다. 즉 신적인 특성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을 강조합니다. 한번 외워볼까요? 마태복음은 왕, 마가복음은 종, 누가복음은 인간,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는 최근에 마태복음의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잃어버렸던 에덴동산 회복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회복을 위해 오셨습니다.
마태복음1장에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우연히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왕의 혈통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가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요한복음은 안 나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백두혈통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다. 김일성의 직계가족을 말합니다. 김일성의 가계도를 보면 좀 복잡합니다. 지금 김정은 자신이 백두혈통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약속된 메시야로 오셨습니다. 마태복음의 수신자는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은 약속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은 그 메시야가 예수님이고 만왕의 왕으로 오셨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4장에 보면 사단의 시험이 나옵니다. 사단이 세상 왕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단의 3가지 시험을 이기십니다.
그 동안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영역에서 사탄이 군림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을 가진 사탄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젠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왕이 바뀌엇습니다. 마귀가 아니라 예수님이 왕이십니다. 나라가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하는 나라로 바뀌었습니다.
(예화) 일제 식민지시대를 기억하십니까? 일본이 우리나라를 완전히 지배를 했습니다. 학생들을 뽑아 강제징용을 했습니다. 한국어교육을 폐지하고 일본어 공부를 시켰습니다. 우리나라 이름을 버리고 일본 이름으로 개명하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각종 식량을 수탈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48년 8월 15일 광복했고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이젠 일제 강점으로부터 벗어나 당당한 독립국으로 정부가 수립된 것입니다. 마태복음4장은 예수님이 사단의 시험에서 승리하십니다. 이젠 예수님이 통치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마태복음5-7장까지는 산상수훈입니다. (화면을 볼까요) 왕이신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에 관해서 말씀해주십니다. 천국시민으로서의 삶을 말씀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율법보다 더 높은 수준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8-9장은 왕의 권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8-9장은 마태가 의도적으로 10가지 기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연대기순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 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35장 5-6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포로가운데 있지만 회복의 날, 치유의 날이 있다. 메시야를 통해서 치유가 일어날 것이다. 육신의 치유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1. 맹인이 눈이 밝을 것이다. 2.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린 것이다. 3.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다. 4.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메시야가 오면 이런 기적이 일어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의도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8장, 9장은 예수님의 권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3가지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은 질병을 정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1) 나병환자를 치료하셨습니다. 마태복음8장 1-4절 말씀입니다.
나병은 일종의 피부병입니다. 피부전체가 궤양으로 퍼지게 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부정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나병은 저주 받은 질병입니다.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진밖에 살아야 합니다. 종교적으로 부정한 사람입니다. 가족과 함께 살 수 없습니다. 나병환자는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만져주심으로 치유하십니다.
2) 예수님은 백부장의 하인의 중풍병을 치료하셨습니다.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종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백부장은 겸손함으로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말씀만으로도 하인이 나을 거라는 큰 믿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대로 고쳐주셨습니다.
3)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치료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고 있습니다. 아마 고열로 인해서 누워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8장 1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몸에 열이 난다는 것은 대부분은 내가 어떤 병균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몸이 참 신기하죠. 몸에 열리를 올리면 백혈구와 면역세포들의 움직임이 아주 빨라진다고 합니다. 즉 몸이 병균과 바이러스를 빠르게 잡기 위해 비상체제에 돌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이 너무 오래가면 위험하죠.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만지시고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남자나 여자나 주인이나 종이나 이스라엘인이나 이방인이아 구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요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백부장은 주인입니다. 백부장의 종은 하인입니다. 예수님은 주인의 요구도 들어주셨고 종의 병도 고쳐주셨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남자들의 요구도 들어주셨고, 종의 병도 고쳐주셨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남자들의 병만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여자의 병도 상관하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질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태복음9장에 보면 두 맹인을 고치십니다. 그리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십니다.
마태복음8장 17절 말씀을 볼까요?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담당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무섭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안에 치유가 있고 예수님 안에 참된 쉼이 있고 예수님 안에 참된 평안이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예수님은 자연을 정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큰 풍랑이 있을 때 바다를 꾸짖자 잠잠케 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바로 왕이신 예수님은 자연도 통치하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탔습니다. 제자들은 아직 신앙이 미숙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긴 따라도 온전히 따르지 못했습니다. 갈릴리 바다를 볼까요? 화면을 보면 큰 바다가 아닙니다. 배를 타고 건거가면 약30분 정도 걸립니다. 그래서 갈릴리호수라고도 부릅니다. 예수님이 탄 배는 작은 고기잡이 배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기에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갑자기 큰 바람이 불었습니다. 마태복음8장 24절 말씀입니다.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놀’이란 뜻은 사나운 물결을 말합니다. 갈릴리 바다는 종종 이렇게 강한 바람이 불때가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주변에 높은 산 때문에 강풍이 종종 분다고 합니다. 배를 타고 가는데 큰 파도를 만나면 괜장히 무섭죠. 심장이 쿵쿵띠고 얼굴은 창백해집니다. 두려움의 먹구름이 나를 덮어버리죠.
이런 거센 파도 가운데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죠? 예수님은 주무셨습니다. 예수님이 배를 타자마자 주무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셨겠죠. 그러다가 피곤하셨는지 곤히 잠이 들었습니다. 큰 폭풍이 있는데도 주무신 것을 보면 예수님은 깊은 잠이 드신 것 같습니다.
(설명) 예수님이 배에 계셨음에도 폭풍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인정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 잘 믿어도 인생의 폭풍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14장 22절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우리는 예수님 잘 믿으면 만사형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잘 믿으면 복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질문합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아픔을 주시나요?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질문이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길 원하시나요?
제자들은 겁에 질렸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지팡한 상황입니다. 어쩌면 이게 우리의 인생입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인생의 무서운 폭풍이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꼭 하나님은 주무시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언제나 폭풍이 불게 되어 있습니다. 폭풍을 만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쓰나미 같은 폭풍을 만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폭풍을 만나기도 합니다. 폭풍을 피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폭풍가운데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떻게 이겨나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제자들은 폭풍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을 깨웁니다. 25절 말씀입니다.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기 까지 여러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을거야~ 예수님을 구지 깨워야 하나? 아니~ 예수님이 계시는데 왜 이런 어려움을 만나는 거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맞는거야? 제자들은 의심도 했다가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확신도 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급하게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폭풍 속에서 곤히 주무셨던 예수님은 깨자마자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26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예수님은 공포와 두려움 가운데 제자를 위로하지 않았습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야단치셨습니다. 인생의 문제 앞에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적은 까닭입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You of little faith, why are you so afraid?“ 왜 그렇게 두려워하느냐? 두려움은 인간의 본성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두려움의 바다에 완전히 빠지면 안 됩니다. 두려움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군인이 적의 총탄을 두려워하면 어떻게 전투를 할 수 있겟습니까?
어부가 파도를 두려워하면 어찌 바다로 배를 몰고 나갈 수 있게습니까?
농부가 흉년를 두려워하면 어찌 씨를 뿌릴 수 있겠습니까?
성도는 주님과 함께 저 천국으로 가는 배를 탄 사람입니다. 두려워하면 되겠습니까?
지금 제자들의 잘못이 큽니까? 바다의 잘못이 큽니까? 예수님은 바다를 꾸짖기 전에 제자들을 꾸짖었습니다.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바다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떤 환경을 만나든지 승리하길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길 원하셨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폭풍도 지나갑니다. 거센 파도도 지나갑니다. 고난은 꼭 오지만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위기는 꼭 오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폭풍 중에도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배에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의 우리 인생의 배에 함께하시면 배는 절대 침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순종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자연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연계에서도 왕이십니다.
세 번째 예수님은 귀신을 정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28-34절)
예수님은 질병을 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연도 정복하셨습니다. 세 번째 예수님의 영적 세계에서도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것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통치의 영역 아래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배에서 내려 가다라 지방에 가셨고 그곳에서 귀신들린자를 만났습니다. 28절 말씀입니다.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어떤 사람은 귀신이 없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귀신이 있다고 말합니다. 귀신은 사탄의 하수로 보면 됩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디서 생겼습니까? 성경에 보면 원래 사탄 또는 마귀는 천사장였습니다. 그러나 교만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대항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되었고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완전히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지금도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비로소 역사는 완전한 심판을 이루게 됩니다.
귀신들의 특징을 볼까요? 28절 말씀에 나오죠.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귀신은 성격이 거칠고 사납습니다. 통제 불가능합니다. 어디서나 소리를 지르고 다닙니다. 귀신은 거짓말쟁이입니다.
귀신들린 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가 예수님이십니다. 29절 말씀입니다.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귀신들린 자는 예수님을 무서워합니다. 귀신은 보혈을 무서워합니다. 아무리 악한 귀신도 예수님 앞에 오면 약해집니다.
32절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예수님은 명령합니다. 그러자 귀신이 돼지 떼에 들어가 몰살당하게 됩니다. 수많은 돼지가 죽었다는 것은 돼지떼보다 사람이 귀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귀신으로부터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은 귀신을 연구하기도 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꼭 붙어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두려움이 많습니다. 놀이동산에 가면 엄마를 잊어 버릴까봐 엄마 손을 꼭 잡고 다닙니다. 만약을 대비해서 준비할 수 있습니다. 엄마를 잊어버릴 경우? 첫 번째 안내하는 곳으로 찾아가라. 두 번째 착하게 보이는 사람한테 이야기 하라. 처음부터 엄마 손을 꼭 잡고 다니면 됩니다.
귀신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십자가를 가지고 다니면 될까요?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면 될까요?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될까요? 귀신 쫓는 방법을 연구하면 될까요? 구지 연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됩니다.
요한일서4장 4절 말씀입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자녀들이여,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거짓 예언자들을 이겼습니다. 이것은 여러분 안에 계시는 분이 세상에 있는 마귀보다 더 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속해 있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십니다. 귀신은 우리에게 잠시 두려움을 줄 수 있지만 우리를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질병을 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연을 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도 정복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메시야, 즉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단순한 질병치료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단순히 귀신을 내 쫓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나라의 3요소가 뭐죠?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3가지가 꼭 필요합니다. 영토, 백성, 주권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 나라를 지배했습니다. 즉 주권을 빼앗겼습니다. 주권이 없기 때문에 나라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역시 3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땅,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주권입니다. 주권이 누구에게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첫 번째 마귀에게 있다고 합시다. 마귀가 주권을 장악하고 있으면 사탄의 왕국이 됩니다.
두 번째 나에게 있다고 합시다. 내 뜻데로, 내 감정대로, 내가 결정하면 내 왕국이 됩니다.
세 번째 하나님에 있습니다. 내 인생의 주권을 하나님이 쥐고 계시면 나는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세상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사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이 되었습니다.
죽어서 천국 가는게 우리의 목적이라면 우리는 이 땅에서 대충 살아도 됩니다. 죽어서 천국가는 신앙은 50점짜리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 우리의 교회를 작은 천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유기성목사님 일상의 순교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생명 바쳐 선교를 한다 든지 주의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 귀한 것은 우리의 삶속에서 예수의 향기로 살아야 합니다. 유기성목사님이 쓴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어떤 분이 선교 여행 중에 오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의 집에서 며칠을 묵었는데, 집안에서 아내의 설거리를 돕거나, 식탁을 치운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오지에서 원주민들을 섬기는 사역은 너무 존경스웠습니다. 하지만 가정에서 너무나 권위적인 모습에서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사역은 정말 귀한 사역입니다. 그러면 가정에서도 천국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잘하는게 중요합니다. 나중에 크게 성공해서 주의 일을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 형편 주님을 섬기는게 중요합니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헌금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 형편에서 하는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성공만 하면 박수를 쳤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교회만 커지면 박수를 쳤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돈만 많이 벌면 박수를 쳤습니다.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친 것은 아닐까요? 내가 있는 곳에서 작은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 예수님의 통치가 이루어 져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교회에서 그렇게 사역을 잘하는데 집에서 사모님을 때린다고 합니다. 사모님이 창피해서 어디다 말을 못한다고 합니다. 어떤 장로님은 밖에서는 그렇게 잘하는데 자기 아내를 무시한다고 합니다.
어느 사모님이 다른 목사님한테 상담을 올린 글입니다. ‘저는 14살때부터 작은 교회의 반주자로 봉사하다가 26살되던 해에 남편을 만나 주님의 뜻이라고 믿고 순수한 마음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자마자 신혼때 두 번의 유산을 겪었고, 전임 사역자인 남편은 매일 피곤하다며 집에만 오면 짜증을 부렸습니다. 제가 서운해하면 도리어 자기를 괴롭힌다고 타바가을 주었습니다.
남편은 지난 주일, 두 아이들을 앞에서 제게 ‘미친년아 껴저’라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저는 너무 슬퍼 두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갔습니다. 두 주일이 지났지만 남편은 연락이 없습니다. 제가 남편이 존경받는 목사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인가요? 제가 너무 답답한 마음에 자살하고 싶다고 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너 혼자 지껄이라는 식이에요‘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우리 교회 여학생들은 욕하고 폭력을 행하는 남자하고 절대 만나면 안 됩니다.
신앙의 목적을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첫 번째 십자가는 있는데 두 번째 십자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지신 십자가입니다. 두 번째 십자가는 자기부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살아야 합니다.
일상에서의 순교는 뭡니까? 나는 죽고 내안에 예수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므로 회복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게 건강한 신앙입니다. 성공이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병고치러 오셨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귀신을 쫓으러 오셨습니까? 궁금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마귀의 왕국에서 하나님 나라로 바뀌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신앙이 예수님 믿고
구원받는 단계에서 멈추지 않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길 원합니다.
나 때문에 가정이 변화되게 하시고 나 때문에 목장이 변화되게 하시고
나 때문 교회가 변화되는 역사가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이젠 사탄의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길 원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찬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