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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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를 부르심 / 마10장 1절 / 2020년 6월 28일 주일설교
4.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나는 하늘아래 하나밖에 없는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다이아몬드가 가공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이아몬드이기 때문입니다. 돌멩이라면 아무도 가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늘아래 하나밖에 없는 보석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들어가는 글) 좀 특이한 교회 이름이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어떤 교회 이름 올라왔습니다. 화면을 볼까요? ‘덜 종교적인 더 예수닮은 사랑빚은 교회’ 교회 이름이 16글자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님 닮은 교회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교회가 아니라 작은 예수가 되고 싶다는 의미 아닐까요? 말로만 예수쟁이라 하지 말고 삶으로 증명하라는 말 아닐까요? 오늘은 본문은 제자에 관한 말씀입니다.
먼저 마태복음의 맥락을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 마태가 기록했습니다. 마태복음의 독자는 유대인입니다.
마태복음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메시야이고 하나님 나라 회복을 위해서 오셨다’
마태복음은 1장은 왕이신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왕의 혈통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4장에는 사단의 시험이 나옵니다. 그 동안 세상 나라는 사단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로 바뀌게 됩니다. 이젠 사탄의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왕국이 시작됩니다. 즉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가 시작됩니다.
마태복음5-7장까지는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시작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완성은 되지 않았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에 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즉 산상수훈은 천국시민으로서의 삶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보다 더 높은 수준의 말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8-9장은 왕이신 예수님의 권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10가지 기적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는 치유와 회복을 일으킵니다. 특별히 눈먼 자가 눈을 뜨고 못 듣는 자가 귀가 열리고 말 못하는 자가 입이 열린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예수님의 권세에 관해서 말씀을 보았습니다.
마태복음10장은 어떤 주제일까요? 제자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제자의 자세에 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마태는 왕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오셨습니다. 왕은 통치를 하는데 직접 하지 않습니다. 왕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 있습니다. 사람을 선택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펼치십니다. 바벨탑 사건을 기억하시죠. 인간의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흩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펼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펼치십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봉사하시는 분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 이어야합니다.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은 리더가 되면 안 됩니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있습니다.
1. 기적만 추구하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마태복음8-9장에는 10가지 기적이 모여 있습니다.
1)나병화자의 치유 2)백부장의 하인 치유 3)베드로의 장모 치유
4번째 기적이 있기 전에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8장 22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한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서기관에게 나를 따르기 위해서는 고난도 각오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제자의 우선순위는 예수님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갑자기 기적중간에 이 말씀이 들어 있을까요? 기적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4번째 기적은 무엇입니까?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5번째 기적은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십니다. 6번째 기적은 중풍병자를 고치십니다.
그리고 또 다시 제자도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마태를 부르시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9장 9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7번째 기적은 야이로의 딸 치유입니다. 8번째 기적은 혈루병 여인의 치유입니다. 9번째는 두 소경을 치유하시고 10번째는 두 벙어리를 치유하셨습니다.
10번째 기적이 끝나고 또 제자에 관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없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9장 38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비젼은 무엇입니까? 일꾼을 세우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8장,9장의 기적 중간마다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요? 너희도 기적을 추구하라는 말입니까? 기적은 본질이 아닙니다. 기적은 목적이 아닙니다. 기적을 추구하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라는 도전입니다.
기적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십니다.
한국교회의 문제점 중에 하나가 기복주의입니다.
기복주의를 사전에 찾아봤습니다. ‘복을 비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고방식’
한국교회는 그 동안 너무 복을 강조했습니다. 복도 중요하지만 기복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성공도 중요하지만 성공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기적도 중요하지만 신비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는 의도적으로 말합니다. ‘기적보다 예수님이 중요하다’ ‘기적을 추구하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가라’
(설명) 교회에서 부흥회나 집회를 하면 기적적인 간증을 많이 합니다. 특별집회고 부흥회니까 열정과 사모함이 필요하죠. 그런데 저는 한편으로 이런 마음도 들어갑니다. 저 분이 죽다가 살아나셨는데....저 분이 망했다가 성공했는데....하나님이 그것을 거두어 가셔도 믿음 생활 잘 할 수 있을까? 어떤 간증은 들으면 불안 불안합니다.
기적이 기초가 되면 안 됩니다. 반석위에 집을 지어야 하는데 모래위에 집을 짖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석은 예수님이십니다.
축복이 목적인 사람은 축복을 못 받으면 언제든지 하나님을 떠날 수 있습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이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선물을 주신 하나님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예화) 제가 예전에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가 논산YWCA쉼터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는 일은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쉼터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일도 물어보고 격려를 해줍니다. 운영위원중 4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어느 날 본인의 이야기를 힘들게 커냈습니다. 본인이 결혼을 했는데 임신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병원도 가보고 한의원도 가보고 심지어 신유의 은사가 있는 목사님한테 안수기도도 여러 번 받았다고 합니다. 서울에 있는 유명한 찾아가서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자신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주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더 이상 임신이 되지 않아서 그냥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평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그분이 출석하는 교회 장로님이 비난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왜 기도를 포기하냐고~
그분이 마음이 불편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야 성공한 사람입니까? 선물을 못 받았을지라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입니까?
진짜 믿음의 사람은 거절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해서 고난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병고침 받은 믿음이 큰 믿음이 아닙니다. 사업에 성공한 믿음이 큰 믿음이 아닙니다. SKY대학에 합격한 사람이 큰 믿음이 아닙니다. 큰 믿음의 사람은 내 뜻데로 되지 않았을지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면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2. 무리가 되지 말고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마태는 왕의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젠 왕이신 예수님을 위해서 일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수많은 무리들이 따랐습니다. 이당시 유대인들은 정치적 메시야, 경제적 메시야 꿈꾸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로마의 통치로부터 해방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길 기대했습니다.
예수의 행보가 특별했습니다. 무엇보다 육체적 질병으로 고통 받는자를 예수님이 치유하셨습니다. 그 당시나 오늘날이나 특별한 사건에 대한 소문이 빠르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추종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율법에 정통한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로 이 땅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해방을 가져다주기 위해 정치인으로 이 땅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정치적 메시야로 삼으려고 할 때마다 홀로 한적한 곳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에 가장 중요한 사역은 십자가를 지는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죽으셨습니다.
에베소서1장 7절에 보면 예수님이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나옵니다. 영어로 보면 redemption
무슨 뜻이냐면 ‘속전을 내고 죄인을 구원함’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죄의 댓가를 받으시고 우리에게는 죄사함과 자유를 주십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사역이 있습니다. 제자를 삼는 사역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혼자 일하셨습니다. 그러나 10장부터는 상황이 전혀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제자를 삼는 사역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녀이면서 동시에 주님의 제자입니다.
1절 말씀을 다시 볼까요?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를 불렀습니다. 제자란 보냄을 받기 위해서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열두 제자를 부르사’
동일하게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열두제자를 택하시고 훈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들을 만나셨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설교도 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고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초점은 늘 12제자에게 있었습니다.
제자하면 보통 예수님의 12제자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가면 믿음의 사람들을 향해서 제자라고 합니다. 즉 성경은 믿는 모든 사람을 향해서 제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인 동시에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도 제자삼는 일입니다. 마태복음28장 19-20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주신 말씀입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입니다.
(설명)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저는 야구를 종종 시청합니다.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고 있는데 최근 18연패를 했고 10구단 중 꼴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잘 안보고 있습니다.
팬들은 선수들이 잘하면 응원을 하고 때론 함성을 치릅니다. 팬들은 선수의 이름이 새겨진 옷을 입기도 합니다. 팬클럽에 가입을 하기도 하죠. 선수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극성 펜들은 더 열열하게 응원을 합니다. (사진을 볼까요) 얼굴과 가슴에 그림을 그리고 뜨겁게 응원하기도 합니다.
결정적으로 팬들은 직접 경기에 나서지 않습니다. 경기장에 참여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거나 공을 차지 않습니다. 선수들이 실력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돌아서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다른 팬으로 옮겨가기도 합니다. 펜은 어디까지나 펜일 뿐입니다.
제자란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고 따라나서는 사람입니다. 2000년 어부출신 베드로는 자신의 생업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물론 우리도 생업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적어도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라면 주님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내가 직장인이라면 그곳에서 주님께 영광 돌리고 최선을 다할 때 그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내가 공무원이라면 맡겨진 업무를 잘 감당하는 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수많은 무리들을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열광했습니다. 그들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고 그들의 얼굴에는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이면 어디든지 따라갈 자세였습니다.
그랬던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앞에서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이 떡 줄 때 열광하던 무리들이 예수님의 고난 앞에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팬이었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무리들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종교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지식으로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제자에게 희생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노예로 있을 때 그들은 고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에 10가지 기적을 일으키시고 애굽에서 탈출시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첫 번째 만난 관문이 뭐죠? 홍해입니다. 홍해를 건너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10장에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침례라고 해석을 합니다. 홍해를 건넌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젠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결단을 요구합니다.
이젠 애굽의 문화를 동경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순종을 요구합니다.
이젠 바로의 녹을 먹고 사는 인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결단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무리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제자로 나아가야 합니다. 결단해야 합니다.
배는 항구에 머물러 있으면 소명을 다할 수 없습니다. 묶인 밧줄을 끊어야 목적한 방향으로 멀리 항해할 수 있습니다.
비록 내가 녹슬고 찌그러진 깡동 같다고 할지라도 결단하면 생명을 구하는 물을 나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결단이 중요합니다. 물론 결단하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길 결단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성경에 나를 믿으라는 말이 많이 나올까요? 나를 따르라는 말이 많이 나올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시고 능력도 주십니다. 1절 말씀을 볼까요?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1.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입니다.
2. 병고치는 능력입니다.
3.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 셨을 뿐 아니라 능력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우리를 목사로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불러주셨습니다. 부르셨을때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그냥 교회에 오래 출석한다고 집사로 임명한 것이 아닙니다. 직분은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많은 은사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 보면 7가지 은사가 나옵니다.
첫 번째 예언의 은사입니다. 이런 분은 선과 악을 잘 분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정의감이 강하고 양심적이면 원리원칙을 좋아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두 번째 섬김의 은사입니다. 행동하는 실천파입니다. 접대하기를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잘 보는 사람입니다. 돕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깁니다.
세 번째 가르침의 은사입니다. 아는 바를 이론적, 논리적, 체계적으로 제시하거나 가르치기를 좋아합니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바르게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 위로의 은사입니다. 이런 분들은 매우 긍정적이고 소망이 있습니다. 위로의 은사가 있는 분은 문제 해결을 잘 하고 어려운 결정도 쉽게 내리는 선천적인 지혜가 있습니다.
다섯 번째 구제의 은사입니다. 다른 사람이 모르게 돕는 것을 좋아합니다. 자신에게 있는 시간, 물질, 재능을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싶어 합니다. 구제의 은사가 있는 분은 다른 사람을 도왔을 때 큰 기쁨을 느낀다고 합니다. 구제의 은사가 있는 분은 기부자체가 돈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검소하고 부지런합니다.
여섯 번째 다스림의 은사가 있습니다. 책임 맡은 일을 위하여 조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장기적인 목표와 안목을 가지고 일에 임합니다. 다스림의 은사가 있는 분은 사람을 능력을 개발시킵니다.
일곱 번째 긍휼의 은사가 있습니다. 소외된 사람, 상처받은 사람, 불쌍한 사람에게 특별히 마음이 끌립니다. 자신의 유익이나 이익을 구하기 보다는 양보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일곱가지 은사 말고도 많은 은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분위기를 메이커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나기만 해도 평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중에 은사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은사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은사를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교회에 덕을 세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예화) 제가 목회초기 설교를 많이 배웠던 목사님이 온누리교회 하용조목사님이셨습니다. 사진을 볼까요? 몇 년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은 설교를 아주 쉽게 하면서도 깊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중심으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 분의 설교를 계속 들으니까 나도 모르게 따라하게 되더라구요. 지금은 여러분 훌륭한 목사님들의 책을 통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제자는 스승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닮게 되어 있습니다.
조용기목사님의 제자들이 많죠. 실제 조용기목사님 처럼 목소리도 똑 같이 설교를 하시는 분이 꽤 있다고 합니다.
우리 침례교에서는 윤석전목사님이 유명하시죠. 사진을 볼까요? 이분의 특징 중에 하나가 긴 마이크를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강대상을 주로 걸어 다니시면서 설교를 하십니다. 그리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성도들에게 호통도 치십니다.
대전관저동에 윤석전목사님의 제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윤석전목사님하고 완전히 똑 같이 설교를 하신다고 합니다. 마이크사용, 제스처, 목소리, 심지어 성도들에게 호통치는 것도 똑 같다고 합니다. 제가 지금 좋고 나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는 스승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입니다.
우리는 완전하시고 온전하신 예수님과 같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조금은 닮아야 되는 것 아닐까요? 닮고 있지 않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즉 우리는 작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 20-30년 했다면 예수님의 냄새가 나야 합니다.
찬양중에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 찬양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젼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신앙생활 20-30년 했는데 성품이 안 바뀌고 인격이 안 바뀌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축복만 바라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 믿고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예수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왜 그리 부족한가요?
예수님 믿고 축복받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예수 믿고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사람은 왜 그렇게 부족할까요?
저와 여러분이 작은 예수가 되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데 밑거름이 되길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하나님~ 많고 많은 사람중에 저희를 선택하시고
하나님 자녀 삼아주심을 감사하드립니다. 구원의 단계에 멈추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날이 갈수록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찬양-영상으로 보면서 따라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