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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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마음
예수님 마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마11장 28-30절) 2014년 9월16일 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늘아래 하나밖에 없는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연봉과 학벌, 외모, 지식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내 직업과 나이와 월급과 상관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들어가는 글) 몇 칠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우리나라인구수가 대략5천 200만명인데 이중에 서울인구는 대략1000만명입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5분의 1이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세계 언론에서는 박원순시장을 한국의 제2인자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힘이 센 공직자가 숨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힘센 선출직 공직자이고 2022년 대선주자였다“
영국의 일간 더타임스 "차기 한국 대선의 잠재적 후보 중 한명이자 서울시장이 전 여비서의 성추행 고소 사실이 알려진 뒤 숨졌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인구 1천만의 도시인 서울을 이끌었던 박 시장은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고 소개했다.
이미 사망한 고인에 대해서 평가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너무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가능한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연약해서 우리도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 죄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워도 함부로 죽지 말아야 합니다. 죽음으로 책임 질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죄가 있다면 용서를 구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또 한편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무거운 짐이 생명과 바꿀만한 가치가 있었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환) 여러분 모든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화면을 볼까요)
오늘 말씀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라고 말합니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에게 괴로움은 항상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태어나서 고통 속에서 살다가 죽어갑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거대한 고통의 바다입니다.
가난아기를 생각해보세요. 엄마의 자궁에 안에 있는 아기는 그곳이 천국입니다. 적당한 온도, 적당한 영향공급을 받고 자라죠. 그런데 출산과 함께 고통이 시작됩니다. 배고프다고 울죠. 졸리 다고 울죠. 안아달라고 울죠. 오줌 쌌다고 울죠. 아이의 입장에서는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아기 때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야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느낀다고 합니다.
아이가 자라서 유치원이 되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됩니다. 초등학교1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을 공부합니다. 대학까지 공부하면 20년이 넘어갈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자랍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만 하면 취업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경기가 어려우면 취업의 문이 더 좁아집니다. 간신히 직장을 잡고 한숨을 돌 릴만 하면 결혼을 해야 합니다. 결혼만 하면 행복이 저절로 올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 않죠. 부부간의 갈등, 육아문제가 있죠. 자녀들이 한 번씩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40-50대가 되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평생직장의 개념이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회사에서 짤리지 않을까 걱정을 합니다. 조기 은퇴로 제2의 직장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50-60대 되면 이젠 한숨을 돌릴까 싶었는데 성인병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합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이 생깁니다. 여성들은 폐경기가 되면 몸의 변화가 찾아옵니다. 심하면 우울증으로 고생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갑자기 친한 친구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납니다.
여러분 대학병원을 가보세요. 뭔 환자가 그렇게 많은지~ 응급실에 자리가 부족해서 바닥에서 대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법원에 가보세요. 뭐 그렇게 소송할 문제가 많은지.....우리는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기도 합니다. 자녀들이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어려움 없으신 분 있으면 발을 높이 들어보세요.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누구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예화) 보통 덤프트럭은 물건을 최대로 싫을 수 있는 무게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기사들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더 많이 실죠. 그럴 경우 사고의 위험성 커집니다. 자친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집니다.
(예화) 19세기 영국의 많은 선박들이 침몰했습니다. 사고방지를 위해 적재한계선을 만들었습니다. 선박에 한계선을 긋고 그 선까지만 물속에 잠겨야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짐이 계속 늘어나면 나중에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우울증도 갑자기 생기는게 아닙니다. 무거운 짐이 계속 쌓이다 보면 나중에 감당을 못하게 됩니다.
(예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술은 안 마시니까 밥이나 커피를 마시면서 마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목자도 있고 장로님도 계시지 않습니까? 밥사 달라고 하면 언제든 사주실 분입니다. 마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고백하기 어려우면 하나님께 기도하면 됩니다.
우리는 종종 질문합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질문이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 이런 시련가운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람은 힘들어서 죽는게 아닙니다. 그 문제를 나눌 수 없어서 죽는 것입니다.) 꼭 돈 때문에 죽는게 아닙니다. 외로워서 죽고, 두려워서 죽고, 배신당해서 죽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고난의 과정을 잘 통과해서 더 견고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아픔을 통해서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번째 모든 사람에게는 수고가 있습니다.
왜 인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쫓겨 날뿐 아니라 수고해야 먹고 살수있게 됩니다. 창세기3장 17절 말씀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온 것이 바로 '수고'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대로 고달픈 삶을 살아갑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많은 대로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지식인은 지식인대로 괴로움이 있습니다. 권력자는 그들 나름대로 힘겨운 고통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학생들은 공부하고 시험을 치러야 하는 짐이 있습니다.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사업하시는 분도 저마 고충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목사님 중 설교를 잘 하시는 분이 옥한흠 목사님이십니다. 열정이 있고 깊이 있고 말씀이 풍부합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은퇴하시면서 설교가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만큼 많은 준비를 했다는 증거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주일날 새벽2-3시까지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설교준비가 늦은게 아니라 그때까지 계속 말씀을 다듬는 것입니다. 큰 교회 목사님은 목사님대로 힘들고 작은 교회 목사님은 목사님대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수고와 땀을 흘리며 평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뒤돌아보면 허무해질 때가 많습니다. 시편90편 10절 말씀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인생을 뒤돌아보면 남는게 수고와 슬픔이라고 말합니다. 세월이 신속히 흘러갔습니다. 자랑할게 별로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최고 부자인 분은 병상에 누워있습니다. 수조원의 돈이 있으면 뭐합니까?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창세기47장 9절 말씀입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나그네 길이란 이 땅은 영원한 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돌아갈 본향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야곱은 형에서와 갈등했습니다. 형을 속여서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권을 받습니다. 그리고 도망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외삼촌과 불화고 있었고 속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열심히 살아온 것 같지만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지나고 보면 내 인생이 한심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안에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세 번째 모든 사람에게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요한복음4장에 보면 예수님이 사마리아연인을 만나주십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사마리아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이 우물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다. 하지만 내가는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을 5번이나 바꾸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수취심, 죄의식, 패백의식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고백을 볼까요?
요한복음4장 15절 말씀입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근원적이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즉 영혼에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목마른 인생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었습니다. 한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애인을 바꾸고, 파트너를 바꾸고, 직업을 바꾸고, 직장을 바꾸고, 종교를 바꿉니다. 그래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인생은 방황입니다. 끝없는 목마름으로 허덕입니다. 마치 우리가 시원한 콜라를 마시지만 더 갈증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목마른 인생입니다.
그러면 수고와 무거운 짐, 인생의 목마름을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요?
1.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28절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네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에게 진정한 안식과 평안이 있습니다.
(설명) 우리의 무거운 짐, 목마름은 예수님만이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해서 정부에서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3차 추경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무려35조원이고 역대 최고 금액이라고 합니다. 정부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도 모든 사람이 만족할까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지금 누가 초청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십니다. 만약에 대통령이 우리를 초청하면 어떨까요?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겠죠.
예수님이 초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에 가장 높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사신 분이고 마지막 심판하실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초청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초청하고 있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들입니다. 예수님은 짐이 없는자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병든자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죄없는 자를 부르지 아니하시고 죄있는 자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소심한 자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술, 담배 끊고 나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 일단 나오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 예수님께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설명)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을 기억하십니까? 바로가 남자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버리라고 했습니다. 요게벳은 석달 동안 모세를 몰래 키웠습니다. 더 이상 몰래 키울 수 없었습니다. 요게벳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이젠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요게벳은 갈상자를 만들었습니다. 화면을 볼까요? 그리고 물이 들어가지 않게 역청과 나무 진을 말랐습니다. 그리고 갈 상자안에 아기 모세를 넣었겠죠. 요게벳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이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갈상자 안에 모세를 넣을 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 마음이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염평안씨가 작곡한 요게벳의 노래에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제가 일부를 읽어 보겠습니다.
‘동그란 눈으로 엄마를 보고 있는 아이와 입을 맞추고 / 상자를 덮고 강가에 띄우며 간절히 기도했겠지 / 정처 없이 강물에 흔들 흔들 흘러 내려가는 / 그 상자를 보며 / 눈을 감아도 보이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 주저 앉아 눈물을 흘렸겠지 /너의 삶의 참 주인 /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요게벳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이젠 참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젠 진짜 부모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내 자녀를 책임지는게 좋을까요? 하나님이 책임지는게 좋을까요? 요게벳의 노래를 일부를 영상으로 보겠습니다.
여러분 자녀도 하나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사춘기 때 아이들이 반항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홀로서기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님한테 겁이 대드는 경우가 있죠. 너무 서운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닙니다. 일정기간 동안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꿈의 날개를 펼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만 해주면 됩니다.
자녀도 하나님께 맡기고 내 삶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교회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무거운 짐도 맡겨야 합니다.
(예화) 선교사님들의 자녀들을 보면 대체로 잘 자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낯선 땅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맡기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들의 자녀 중에는 갈등을 겪는 아이가 많아요? 왜 그럴까요? 율법으로 키우기 때문입니다. 율법으로 키우면 처음에는 말을 아주 잘 듣습니다. 고등학교가 되고 대학교가 되면 반항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그렇게 간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어깨를 누르고 있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까? 하나님 발 앞에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시 37;5-6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무엇을 맡길까요? 너의 길을 맡겨라. 즉 인생 여정을 맡기라는 것입니다.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습니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두번째 수고와 무거운짐, 인생의 목마름을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요?
2. 예수님과 함께 걸어야 합니다.
29절 말씀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일하지 않는다고 휴식이 있는게 아닙니다. 남자들은 은퇴하고 나서 몇 년동안 힘들다고 합니다. 안식은 노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함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짐을 벗겨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의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멍에는 브이자로 생긴 막대입니다. 소가 쟁기를 끌 때 목덜미에 멍에에 연결시킵니다. 그런데 오늘성경은 너의 멍에를 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여기서 나의 멍에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밭을 갈 때 두 마리 소를 사용합니다. 화면을 볼까요? 우리나라는 한 마리로 밭을 갈았습니다.
한 마리의 소는 경험이 많고 다른 한 마리의 소는 경험이 없습니다. 경험이 없는 소는 밭을 어떻게 가는지 모릅니다. 경험이 많은 소는 노하우가 있습니다. 언제 멈추고, 언제 돌아서는지, 어떻게 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경험이 없는 소는 경험이 많은 소와 함께 멍에를 지고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밭을 가는 법도 배우고 짐 지는 법도 배우고 멈추고 돌아서는 법도 배웁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면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참된 쉼은 예수님과 함께 할 때 가능합니다.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갈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쳐서 쓰러질 때 주님께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잘못된 길로 갈 때 그 길을 바로 잡아주십니다.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가는 사람에게는 실패가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에서 중요한 강조점은 “내가”라는 것입니다. 안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안식자체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안식을 주시는 분을 더 좋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평화요 우리의 안식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을 없애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환경을 바꾸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뀐다고 말합니다. 내가 쓰고 있는 멍에는 풀고 예수님이 만들어 주시는 멍에를 메면 안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짐은 누가 대신 져줄 수가 없습니다. 대신 져주고 싶어도 대신 져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린 아기들이 아퍼서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기에 링거를 맞고 있으면 너무 안쓰럽죠. 부모가 대신 아퍼 줄 수가 없습니다.
고3수험생들을 보면 안쓰럽죠. 잠도 못자고 늦게 까지 공부를 합니다. 부모가 대신 해줄 수 없습니다.
여행을 할 때 어디로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가느냐입니다. 왠수같은 사람하고 하와이, 발리, 몰디브로 여행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즐겁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하고 양촌이나 벌곡, 운주냇가로 가도 행복하겠죠.
모처럼 쉬겠다고 여행을 하는 사람 중에는 싸우고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여행가면 계속 붙어있어야 하는데 그러다가 갈등을 한다고 합니다.
진정한 쉼은 예수님안에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설명) 인간은 깨진 항아리와 같습니다. 아무리 물을 부어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빨리 물을 부어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깨진 항아리에 물을 가득채우는 방법을 아십니까? 깨진항아리를 물속에 넣으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진정한 쉼를 맛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시편23편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는 부족한게 너무 많아요. 돈도 조금 많이 벌면 좋겠고 내가 하는 사업도 좀더 잘되면 좋겠고~ 자녀들이 성공하면 좋겠고~ 우리 학생들은 성적 좀 올랐으면 좋겠고....
(예화) 우리 딸 중에 수학점수가 너무 오르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다른 과목은 열심히 하면 한만큼 점수가 나와서 만족을 하는데 문제는 수학입니다. 제가 딸한테 사과를 했습니다. 아빠가 학교 다닐 때 수학공부를 못했다~ 다 내 잘 못이다. 우리에게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니까 부족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부족함은 가져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함이란 소유해서 채워지는게 아닙니다.
소유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로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의 짐, 두려움의 짐, 율법의 짐을 다 가져가시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다윗은 문제가 해결되서 행복의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만나니까 무거운 짐에서 해결되었습니다.
물이 없어서 목마른 것이 아닙니다. 양식이 없어서 배고픈게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네게로 오라” 주님이 주시는 쉼을 누리며 경험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중에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 울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남몰래 울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미래가 불안해서 희망의 별이 보이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이시간 우리 주님이 초청하십니다. 나에게 와라~ 나에게 맡겨보지 않겠니~
우리중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피곤한 몸으로 일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중에는 쉬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일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입에 쓴내가 날 정도로 일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허리, 관절의 통증가운데 일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고난한 우리의 인생길 ~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사랑하는 딸아~ 힘들지 / 사랑하는 아들아~ 힘들지
내가 잘 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이 흘러갑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 고난의 길일지라도
기쁨으로 주님과 함께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조용히 기도하겠습니다.
